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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5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노버트 데이비스 / 임재서 : 별점 3점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6점 노버트 데이비스 지음, 임재서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개 카스테어스와 함께 하는 탐정 도앤은 다른 관광객들과 멕시코의 관광지 로스알토스로 버스 여행을 떠났다. 미국인 앨드리지를 찾아 모종의 행동을 하기 위해서였다(처음에는 부패 정치인들에게 고용되어 앨드리지가 미국에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후에 앨드리지를 미국에 데려가기 위해 온 것으로 밝혀짐).

그러나 도앤이 앨드리지를 만나는 순간 로스알토스에 대지진이 덮쳐 앨드리지를 포함한 여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중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재벌 상속녀 패트리셔가 살해되었다는게 밝혀진 뒤, 범죄자 보티스트 보노파일을 체포하기 위해 마을을 감시하던 군인 페로나 대위가 마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마포 김사장으로 유명한 북스피어 김홍민씨의 홍보글을 통해 알게 된 책입니다. 김사장의 홍보력이야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에 대한 소개가 유독 다른 책들보다도 호기심을 자극했던 덕분입니다. "하드보일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도 노버트 데이비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노버트 데이비스의 열렬한 팬이었다."라고 소개했는데, 하드보일드의 큰 형님이자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무게 있는 작품같이 느껴져서 도저히 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허나 실상은 정 반대입니다. 기대와 예상을 이렇게까지 뒤집은 작품은 기억에도 몇 개 없지 싶을 정도로 말이죠. 예상했던 묵직함과는 몇만 광년 떨어져 있는 작품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유쾌하고 시끌벅적합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모두 극단적이기 짝이 없고요. "스쿠비 두"가 연상되는, 거대한 그레이트 데인 카스테어스를 끌고 다니는 탐정 도앤부터가 그러합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고문서를 통해 과거 개척시대 영웅 페로나 부관에게 푹 빠진 재닛은 한류 스타에 빠진 일본 아줌마와 다를 게 없고요. 여기에 파리 끈끈이를 발명한 부자의 상속녀 패트리셔 밴 오스델 일행,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덩어리 아들 모티머를 중심으로 한 배관 업자 헨쇼 가족, 근거 없는 엘리트 의식과 자신감에 절어있는 멕시코 군인 페로나 대위(개척시대 영웅의 직계 후손!) 등 모든 캐릭터가 좋게 말하면 한 개성하고, 나쁘게 말하면 만화적이라고 할 정도로 화려합니다.

이러한 과장된 캐릭터들이 멕시코 휴양지 로스알토스에서 대지진, 반군과 엮인 범죄자와 은닉 무기 등의 스케일 큰 사건에 휩쓸려 좌충우돌 소동을 벌인다는 내용은 옛날 코미디 영화 시리즈 "무슨무슨 대소동", 아니면 주성치 영화를 떠오르게도 합니다. J.M. 메르의 "개를 돌봐줘"와도 좀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사건이 얽혀 있는 블랙 코미디라는 점에서는요.

그러나 단순한 블랙 코미디에 그치지도 않습니다. 일어나는 사건들 모두 이치에 합당할 뿐더러 앞뒤도 잘 맞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재닛이 탐독한 페로나 부관의 일기와 마을의 은닉처가 연결된다는 설정이 좋은 예입니다. 김사장의 소갯글이 아주 허언은 아닌 셈입니다.
그러고보니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오타쿠가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사건 해결에 기여하게 된다!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다른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추리적으로 상당한 수준이며, 탐정 도앤 역시 만만치 않는 명탐정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대지진의 와중에 상속녀 패트리샤가 사망한 사건이 사실은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밝혀내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을 적절히 이용한 것도 좋지만, 순식간에 확인한 현장의 유류물을 나중에 진상을 밝힐 때 적절히 써먹기도 하니까요. (그녀의 가방은 어디로 간 걸까요?) 
유력한 용의자 그렉의 시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단순한 부자의 변덕으로 보인 패트리샤의 방문 목적을 셜록 홈즈 식으로 해석해 내는게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관광객들 모두 화가 프레딜립 때문에 로스알토스를 찾지만 패트리샤만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게 이유인데, 꽤나 그럴듯 했습니다.
복잡한 사건을 한방에 해결하는 능력 역시 탁월합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지만 결국 보티스트 보노파일을 죽이고, 그를 돌봐주던 흑막이 카야오 대령이라는 것도 밝히고, 패트리샤 살인사건의 진범과 실종된 그렉의 행방까지 한방에 해결해 버리니까요. 명탐정의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는 추리쇼도 한껏 펼쳐 보이면서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작품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확실한 하드보일드이기도 합니다. 하드보일드의 핵심이 탐정이라면 이 작품 역시 경쟁작들에 뒤질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제목처럼 진실은 말한 적도 없고 – "탐정은 그럴 수만 있다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노상 거짓말만 늘어놓습니다. 비즈니스죠." – 모든 것을 돈으로 바라보는 나쁜 놈인데다가 명탐정이라는 점에서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는 것 역시 서슴치 않기까지 합니다. 작중 어맨다 트레이시의 말을 빌자면 "이자는 교활하거든. 아가리 침 뱉는 것보다 쉽게 죽일 사람이야."인 거죠. 아, 당연히 말발도 아주 좋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샘 스페이드나 필립 말로우에 에이스 벤츄라를 섞은 느낌이랄까요... (아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오버스러운 설정, 작위적인 요소 때문에 조금 감점하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유쾌하며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덕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비트겐슈타인이 좋아한 이유는 킬링 타임용으로 딱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은 넓고, 모르는 작가도 많고, 재미있는 작품도 아직 이렇게나 많다니 너무나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신선한 작품이 많이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묵직한 고전 하드보일드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수 있다는 점 꼭 참고하세요.

2016/04/03

세인트 메리의 리본 - 이나미 이쓰라 / 신정원 : 별점 2.5점

세인트 메리의 리본 - 6점 이나미 이쓰라 지음, 신정원 옮김/손안의책

이나미 이쓰라의 단편집으로 표제작 외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손안의 책과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의 콜라보레이션 기획물인 '하우미 컬렉션'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하우미에서 기획을 담당했다기에 하우미 회원으로 안 읽을 수가 없더군요. 아니, 외려 읽는 게 늦었다 싶네요. 

작품들 수준은 편차가 있지만 재미있는 편입니다. 주인공들이 모두 '진짜 사나이'들인, 묵직한 남자 소설이라는 기존에 읽어왔던 일본 추리물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장점도 명확하고요. 남자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보통은 남자의 탈을 쓴 폭력 성향 가득한 마초물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작품들 속 남자들은 배려할 줄 알고 심지가 굳은 진짜 사나이들이거든요. 그들에 대한 묘사 역시 정말 매력적입니다. 작가가 이런 남자를 그리고 싶었다는 게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질 정도에요.

이렇게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구나! 싶은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장면, 상황에 집중한다는 것으로 "모닥불"과 "종착역"이라는 작품이 그러합니다. 어떤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핵심 장면만 뽑아내서 작품을 쓴다는 발상은 정말 기발하네요. 단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긴 이야기의 일부만 읽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고 읽고나니, 하우미 컬렉션이라는 기획물 의도에 적합한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추리물'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은 딱 하나밖에 없는 탓입니다. 사실 "세인트 메리의 리본" 역시 주인공이 탐정일 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고요.

그래도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은 확실하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모닥불"

남의 여자와 도망치던 남자는 여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 쫓기다가 한 노인의 오두막까지 오게 된다...

도주하는 남자가 주인공이지만 핵심은 노인입니다. 개의 행동과 밭을 밟지 않으려는 남자의 행동을 보고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하는 장면에서는 깊은 식견을, 남자를 쫓는 조직원들을 한방에 제압하는 장면에서는 고수의 풍모와 함께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주거든요. 짧지만 화끈한 액션에 더해 총에 대한 묘사도 아주 탁월했어요. 주머니에서 방아쇠를 당길 셈이라면 리볼버를 써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단점은 큽니다. 남자가 도주하게 된 자세한 사정이라던가, 이후 남자가 어떻게 되고 노인이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무대가 어디인지, 누가 선인지 악인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도 몇몇 장면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묵직한 남자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하나미가와의 요새"

지바의 알려지지 않은 강 주변에서 우연히 전쟁 당시의 토치카를 발견한 사진작가 마쓰무라는 토치카에 머무는 포 할머니와 하라다와 만난 후, 시공을 초월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진작가 마쓰무라가 전쟁 당시 극적인 비밀 계획을 목격한다는 일종의 타임 슬립물입니다.

패망한 일본군 수뇌부가 옮기던 재물을 빼돌리려는 하라다 조장의 작전과 맞물려 진행되는, 동물원 동물 탈주 계획이 핵심일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의외로 이 작품에서 탈주 계획은 거의 언급만 되는 수준입니다. 오히려 증기 기관차의 질주와 질주하는 열차 주변에서 벌어지는 활극에 집중하거든요. 이 부분의 묘사는 정말이지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그러나 단점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전작보다야 이야기로의 완결성은 있기는 하지만 타임 슬립의 이유가 무엇인지, 포 할머니의 정체가 무엇인지, 빼돌린 재물과 탈주한 동물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하라다 조장은 무사한지 등 상세한 설정은 뭐 하나 설명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탓입니다. 이래서야 솔직히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죠. 조금 더 길게 쓰더라도 떡밥은 모두 회수하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보리밭 미션"

영국 뉴베리에 있는 농장주의 남편인 제임스는 B-17F 폭격기 진 할로호의 기장이기도 했다. 목숨을 건 작전은 성공리에 끝났지만, 볼 터렛의 입구가 고장나 사수 제프 가르시아가 갇혔다. 착륙 직전 바퀴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동체 착륙 시 제프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제임스는 폭격기 기수를 농장으로 돌렸다. 그리고 농장 가운데 수로 '마시의 리본'에 기체를 포개어 볼 터렛을 으스러뜨리지 않고 착륙하려 하는데...

"파일럿이 되고 싶다면, 되려무나. 남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야." - 제임스. 아들 리처드가 농장주가 아니라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하자 하는 말.

2차대전의 독일 본토 폭격전을 그린 밀리터리 항공물입니다. 앞부분 제임스와 리처드 부자가 농장에서 보내는 목가적인 그림과 폭격에 관련된 화약 냄새 물씬나는 화끈한 묘사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지요.

매력 포인트는 사고뭉치 제프를 구하기 위해 승무원 모두가 목숨을 거는 "전우애", 즉 "싸나이 의리"가 아주 매력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겁니다. 이거야말로 밀리터리물의 로망이죠. 결말도 해피엔딩이고요.
2차대전, 항공물, 목숨을 건 작전, 전우애와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는 오래전 영화 "멤피스벨"이 떠오르는데, 좀 뻔하기는 하지만 전 이런 이야기 아주 좋아합니다.

멋진 드라마에 더해 수록작 중 유이한, 이야기의 완결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별점을 더 얹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종착역"

도쿄역 아카보(철도 역내에서 승객의 화물 등을 대합실이나 차량 같은 데에 운반하는 사람)의 우두머리인 라이조는 고향 산림에 펜션과 양로원을 짓겠다는 꿈이 있다. 그러나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한 현실 앞에 좌절하고 있던 중, 야쿠자가 운반하는 현금의 존재를 우연찮게 알게되고 그 돈을 몰래 빼돌리는데...

도쿄역에 대한 세밀한 묘사,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사나이 라이조에 대한 묘사 등에서 작가의 글 솜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의 디테일 외에 라이조가 계획에 성공했는지, 야쿠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등이 설명되지 않는 미완성 작품입니다. 본격적인 장편이라면 첫머리에 불과한 이야기에요. 이러한 점에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세인트 메리의 리본"

노세 지역의 땅 3만 5천 평을 소유한 류몬 다쿠. 그는 맥주를 좋아하는 애견 조와 함께 잃어버린 사냥개를 찾는 것이 주업인 사냥개 탐정이다. 그런 그에게 이치쿠라 가문의 외동딸이 잃어버린 '맹도견'을 찾는 의뢰가 들어오는데...

표제작. 이 작품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죠. 1993년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고 1994년 '고노미스'에서 3위를 차지한 작품이거든요.

하지만 탐정이 나올 뿐,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유사 설정의 작품(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탐정으로 등장하는)인 "트랙커 토우마"라는 추리 만화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보다도 추리적으로 별로에요. "트랙커 토우마"는 정말로 알려지지 못한 작품이라 안 읽어보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이보다 못하다면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사건 해결 후 계화가 경위를 듣고 싶어하지만 류몬 다쿠가 거절하는 장면의 묘사, '나는 "기업 비밀입니다"라고만 대답했다. 자랑할 만큼 대단한 추리를 한 것도 아니었고, 모험도 없었을 따름이다.'라는 말 그대로일 정도거든요.
작 중에서 류몬 다쿠가 하는 일이라곤 운 좋게 사건 현장 거의 대부분이 찍힌 비디오에서 수상한 트럭을 발견한 뒤, 트럭을 쫓아 집을 알아내고 개에게 냄새를 확인시키는 게 전부입니다. 다른 탐정 일 역시 마찬가지, 개 '조'의 후각에 의존하거나 친구로부터 들은 정보로 잠복하여 확인한다 밖에는 없어요.

물론 이런 수사가 현실적인 탐정의 수사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쓰려면 억지스럽게 하드보일드 탐정을 엮지는 말았어야 해요. 애초에 류몬 다쿠는 거액의 재산가이기 때문에 사건에 목숨을 걸고 일희일비하는 하드보일드 탐정하고는 어울리지도 않고요. 그래서인지 조직 폭력배와 얽히는 전개로 끌고가는데 이 역시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류몬의 땅을 노리는 센추리 흥업과 하나비시 구미의 수작질은 CCTV 설치로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광역 폭력단 효도구미의 김계화와 엮이는 건 완전 억지였던 탓입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메리를 하나에게 선물한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로 편의적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수임료보다 비싼 개를 턱하니 선물할 정도의 재산가가 하드보일드 탐정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낭만적인 자선사업가 산사나이이죠. "캔디캔디"의 윌리엄 아저씨와 다를 게 하나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사냥개 탐정이라는 직업과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만큼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류몬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 모두 멋진 사나이를 표방해서 마음에 듭니다. 억지로 하드보일드 탐정물로 엮은게 문제이지요. 그냥 산사나이의 인간 드라마로 그리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16/04/01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코넬 울리치 / 이은경 : 별점 2.5점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6점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단숨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 숀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미모의 여인을 구했다. 그녀 진 레이드는 아버지 할란 레이드가 기묘한 예지 능력자 톰킨스에게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삶이 지옥에 빠진 탓에 자살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숀은 그녀를 돕기 위해 상관 맥마너스에게 사건을 보고했고, 맥마너스는 여러 부하들을 선발해 사건의 뒤에 숨은 진상을 밝혀내려 하는데....

우리 모두 혼자야. 우리들 모두 각자라고. - 톰킨스. 아버지의 삶이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예언을 들은 진이 아버지가 혼자여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하는 말.

윌리엄 아이리쉬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코넬 울리히(울리치)의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전통적인 하드보일드와는 거리를 둔, 그야말로 "느와르"라고 할만한 작품입니다.

대표작에 걸맞게 작가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습니다. 1차원적인 폭력적인 묘사는 거의 전무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특유의 묘사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섬찟하게 만드는 심리 서스펜스 중심이라는 점에서요. 특히 어둠에 대한 공포심을 그리는 묘사가 압권입니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제목이 좋은 예입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눈에 비유하여, 밤을 두려워하는 여인의 심리를 묘사했는데 정말 멋드러진 글이라 생각됩니다.

시대를 앞서간 오컬트 설정, 즉 톰킨스가 정말로 예지 능력자였다는 것도 볼거리에요. 초반에 진과 레이드 부녀가 그의 기묘한 예언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톰킨스는 부녀에게 기묘한 예언 -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찬 저녁 만찬 손님들에게, 주식 중개인에게, 그리고 주식 매입을 위해 어서 돌아가시오. 그리고 가는 길에 어떤 여자아이를 부딪쳐 쓰러뜨리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 을 남기는데 그 예언이 하나씩 사실로 판명되죠. 아주 놀라우면서도 독자를 사로잡는 부분이었어요.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찬 이유는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그리고 2부에서 예언을 사건으로 처리하려 하는 맥마너스의 지시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의 활약과 이에 따른 전개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당신은 사자의 아가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요."라는 레이드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토대로 사자에 대해 조사할 것을 부하 한명에게 지시하는데, 실제로 서커스 사자가 탈주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식이거든요. 심지어 이 사건은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려 한 범죄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요!

사건이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레이드의 재산을 노린 음모가 얽혀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톰킨스 집 근처에 잠복한 두 명의 형사에 의해 밝혀지는데, 이렇게 예언에 관련된 사건의 또 다른 진상이 밝혀지는건 정통 수사물을 보는 맛도 제법 느껴졌습니다. 그만큼 잘 짜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탓일텐데 지금 읽기에는 묘사가 너무 장황하고 지루한 감이 크다는 단점은 큽니다. 맛있는 것도 너무 많이 먹으면 물리듯 아무리 좋은 묘사라도 끝도 없이 이어지니 지루했습니다. 이런 장황한 묘사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예를 들자면 진이 밤을 두려워한다는 설정을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기에 하루하루, 일분일분이 소중할 수는 있지만 딱히 밤이 두려울 이유는 없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는 건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잖아요? 차라리 시계를 무섭다고 하던가. 이런 설정과 묘사는 다소 공허함을 남깁니다.
그리고 2부의 내용 대부분은 몇 시간 남지 않은 삶으로 괴로워하는 레이드, 그리고 그를 보며 괴로워하는 진과 숀에 대한 묘사로 채우는데, 이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절망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의 기묘한 저녁 만찬과 룰렛 도박은 뜬금없기 그지없었고요. 그야말로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가 팍팍 났달까요?

무엇보다 마지막은 정말 최악입니다. 자정이 되자 레이드가 착란을 일으켜 사자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다는건 너무 편의주의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기억상실 설정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저택 입구의 사자상이나 스테인드글라스를 써먹어 레이드를 죽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대충 마무리할거라곤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최소한 외부에서의 공격, 예를 들어 음모를 꾸민 월터 마이어스가 톰킨스와의 만남 이후 저택에 침입하여 레이드를 살해하려 한다는 정도의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덧붙여,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톰킨스의 예지 능력이 사실이었다는 설정은 조금 허무했습니다. 예지한 것들이 인간의 힘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것들이 존재하기에 (대표적인 것이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차는 것이겠죠) 당연했지만, 이 탓에 서스펜스 스릴러라기보다는 오컬트 호러에 가까와 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가 마이어스에게 휘둘린다는 것도 말도 안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거장의 대표작으로 "느와르"가 무엇인지 한껏 느낄 수 있긴 합니다만 지금 읽기에 지루한 부분이 많기에 감점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