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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8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 강신몽 : 별점 2.5점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 4점
강신몽 지음/이다북스

국내 ‘법의학의 대부’로 불리는 강신몽 교수의 에세이 집. 15년 전 "타살의 흔적"이라는 책으로 접했던 분이지요.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실제 사례와 엮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 주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칼에 찔린 깊이나 칼몸의 전체 길이 중 얼마가 들어갔느냐 하는 것은 '힘껏' 찌르거나 '살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피해자 가슴에 칼몸이 25센티미터 박혔다고 5센티미터 들어간 것보다 다섯 배의 힘으로 힘껏 찌르거나 지속적으로 힘을 가한 것이 아니라는 실제 사례를 드는 식입니다. 

의료 처치가 사망 원인을 왜곡할 수 있는 경우도 소개됩니다. 대표적으로는 심폐 소생 중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례 등인데, 이렇게 응급처치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들이 오히려 폭행의 증거로 오해될 수 있고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특정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한 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를 의미하는 자세성 질식은 새롭게 알게 된 개념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화장실 변기에 앉은 채로 발견되었거나, 놀이기구의 쇠봉에 목이 걸려 있는 상태로 사망한 사례 등으로 겉으로는 타살의 흔적이 없다고 합니다. 추리 소설에 사용될 법한 내용이 아닐까 싶네요.

또한, 20세기 초, 한 남성이 세 명의 아내를 차례로 욕조에서 익사시킨 후 보험금을 타냈던 "욕조 속의 신부들 사건"처럼 법의학이 범죄 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사례도 흥미로왔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단순 익사로 처리될 뻔했지만, 법의학적 검토를 통해 연쇄 살인이 밝혀졌다는군요.

이외에도 법의학적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 다양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은건 아래와 같습니다.

  • 공기색전증: 자위행위를 하던 중 질 속으로 공기가 유입되어 혈관을 통해 심장으로 들어가 사망한 사례. 부검을 통해 원인을 밝혀내었음.
  • 건성 익사: 물에 빠졌지만 물을 거의 마시지 않은 채 사망한 사례. 갑작스러운 찬물의 자극이 미주신경을 통해 심장을 멈추게 했을 가능성이 제기됨.
  • 열사병: 핀란드의 ‘사우나 챔피언십’ 참가자가 사우나 안에서 장시간 버틴 후 사망한 사례와, 국내에서 술을 마신 후 찜질방 한증막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례 등을 통해 고온 환경의 위험성을 경고함.
  • 황화수소 중독: 계란 썩는 냄새가 나는 가스에 노출되어 호흡 마비로 사망한 사례. 산업 현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위험할 수 있음을 강조함.

다만 법의학자가 탐정이 아니라는걸 지속 강조하는건 좀 별로였습니다. 법의학자도 부검 결과를 통해 충분히 자신의 의력을 피력할 수 있을텐데, 그건 법의학자의 영역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거든요. 당연히 경찰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겠지만, 반대로 보면 좀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에세이라서 개인 감상이 많이 포함된 점, 사례들은 저자의 주장과 견해를 뒷받침하는 용도로만 인용되어 후일담이나 결말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점도 좀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보다 전문적인 법의학 사례집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2024/10/11

이상한 그림 - 우케쓰 / 김은모 : 별점 2.5점

이상한 그림 - 6점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북다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사키는 후배 쿠리하라의 도움으로 '나나시로 렌'이라는 블로거가 올린 이상한 내용과 그림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림의 크기를 원래대로 맞추고, 기준점(번호) 중심으로 정렬하자 나나시로 렌의 아내 유키가 출산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아들 유타와 둘이서 살고 있는 나오미는 어린이집 선생 하루오카로부터 유타가 그린 이상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다음날, 누군가가 나오미를 쫓다가 집의 위치를 알아낸 후 유타가 사라져버렸다. 하루오카 선생은 그림을 통해 유타가 학대받았다고 추리했지만, 유타가 그린 그림은 '묘비'였다. 묘비의 주인은 유타의 친모 유키였고, 알고보니 나오미는 유타의 할머니였다.
1992년, 고등학교 미술 교사 미우라 요시하루가 살해당했다. 3년 뒤,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위해 미우라의 제자였던 신문기자 이와타는 실제 사망 당일 미우리의 행동 그대로 등산에 나섰다. 그리고 미우라가 죽기 전 영수증에 그린 풍경 그림은, 미우라가 사망했다는 시각에는 역광이라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는걸 알아냈다. 이를 통해 미우라의 사망 시각이 조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했지만, 그날 밤 이와타도 진범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상한 집"으로 유명한 우케쓰의 후속작. 크게 세 편의 단편이 연결된 연작 소설로, 모든 이야기에 미우라 요시하루의 아내 나오미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선, 책 서두에 등장하는, 모친을 살해했다는 소녀 - 그리고 이상한 그림을 그린 - 가 나오미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블로그 속 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존재가 암시되어 있는 인물도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나나시로 렌의 친모이며, 유키를 죽게 만든 범인이기도 합니다. 유타의 모친처럼 보였지만 알고보니 할머니였다는 나오미도 바로 이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남편 미우라가 아들 다케시를 힘들게 하자 그를 살해했습니다. 어린 시절 모친으로부터 당했던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키가 낳는 아기도 자신이 모친이라는 이상한 모성애가 발동하여 유키가 출산 중에 사망하도록 몸을 악화시켰고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케시가 자살했던 겁니다. 유타와 함께 살아가던 나오미를 쫓았던 건 이와타의 선배 구마이였습니다. 그는 이와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지난 10년간 고민하고 추리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제목처럼 '이상한 그림'을 가지고 펼치는 수수께끼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나나시로 렌 블로그' 속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하나의 그림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림에 포함된 번호의 동그라미를 기준으로 크기를 맞추고, 번호대로 겹치면 무서운 그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산모 배에서 아이를 억지로 꺼내는 듯한 그림이지요.
미우라 요시하루 사건에서의 그림도 흥미롭습니다. 보이지 않는 풍경 그림을 왜 그려서 남겼을까?라는 수수께끼인데, 이는 사망 시각이 조작되었을거라는 증거로 그림을 남겼다는 다이잉 메시지로 설명됩니다. 미우라가 먹은 하나야기 도시락의 소화 상태로 사망 시각이 추정되었는데, 그건 아침에 범인이 억지로 먹였던 것이고요.
그 외의 수수께끼들도 소소하지만 적절하게 사용됩니다. 나나시로 렌 블로그 속 글을 통해 드러나는 또다른 동거인, 미우라 사건에서 범인이 팥빵과 침낭을 가져간 이유 - 전날 저녁에 미우라가 먹은건 돈가스 샌드위치였고, 침낭으로 하룻밤을 보냈기에 범인은 이를 숨기기 위해 샌드위치와 함께 샀던 팥빵과 침낭을 가지고 사라졌던 것. 범인이 먹을걸 전부 가져갔다고 속이기 위해서, 그리고 침낭은 잤다는 흔적이 남아있어서 가져갈 수 밖에 없었다 -, 연약한 여자가 미우라와 이와타를 살해할 수 있었던 방법 - 침낭에서 자던 피해자들이 나올 수 없게 침낭 자체를 묶어버렸다 - 등이 그러합니다. 유타의 엄마로 보였던 나오미가 할머니라는게 밝혀지는 이야기는 서술트릭 기법이 사용되어 재미를 더해주고요. 나오미가 범행을 저지른 동기도 앞서의 사건으로 설득력을 높여주며, 사뭇 달라 보이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묶이는 구조도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전작은 인터넷에 올렸던 상상에 허황된 설정이 결합되어 있을 뿐인, 완성된 소설로는 보기 어려운 망작이었던 반면에 이 작품은 최소한 한 편의 완성된 소설입니다. 실력이 많이 늘었네요.

하지만 그림을 가지고 풀어내는 수수께끼 자체만큼은 주택 평면도에서 기묘한 범행을 추리해내는 전작이 더 괜찮기는 합니다. 이 작품에서의 그림 수수께끼는 재미는 있는데 상황 자체가 억지스럽기 때문입니다. 유키가 그린 그림을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아요.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게 그림을 남길 이유는 알기 힘듭니다. 그냥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하면 됐을 겁니다. 왜 가만히 죽음을 받아들였을까요? 또 이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낸들, '아이를 낳다가 죽는 미래'로만 보일 뿐입니다. 특별한 범죄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유키가 그린 기도하는 모습의 여성이 '나오미'였다는걸 남편이 눈치채지 못한 것도 설명되지 않고요. 유타가 묘비를 그리려다가 지운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우라 사건의 풍경화는 더 억지스럽습니다. 나오미가 풍경화를 눈치챘지만, 오히려 '알리바이가 있는 오전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로 삼기 위해 남겨두었다는게 특히 그러합니다. 용의자 중 그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는건 유키 뿐인데, 애초에 유키가 알리바이가 없다는걸 이 시점에 나오미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흉폭하게 사체를 훼손했다 한 들, 1992년의 법의학이 사망 추정 시각을 단순히 소화 상태에만 의지해 발표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들은 있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잘 풀어냈다는건 분명합니다. 작가로서 실력이 일취월장했으니, 다음 작품도 기대되네요.

2024/08/25

인계철선 - 리 차일드 / 다니엘 J. : 별점 2점

인계철선 - 4점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 웨스트에서 막노동으로 몇 개월 째 생계를 꾸리던 잭 리처 앞에 그를 찾는 사립 탐정 코스텔로가 나타났다. 리처는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 다른 사람인 척 했는데, 코스텔로가 살해당하자 죄책감을 느끼고 의뢰인을 찾아 나섰다. 알고보니 의뢰인 '제이콥 부인'은 잭 리처가 군 시절 존경했던 상관 가버 장군의 딸 조디였다. 가버 장군은 심장병으로 막 사망한 상태였다. 가버 장군이 최초 리처를 찾으려 했있고,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에 나선 둘은, 사건이 빅터 하비라는 월남전 실종 군인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한편, 뉴욕 세계 무역 센터에 사무실을 둔 사채업자 갈고리 하비는 체스터 스톤의 모든걸 빼앗기 위해 그와 그의 아내 마릴린을 납치했다. 그는 자신을 추적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아챈 뒤, 스톤의 재산을 서둘러 가로채 뉴욕을 뜰 생각이었다.


1999년 발표된 잭 리처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초창기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전개됩니다. 잭 리처가 조디와 만나 빅터 하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부분, 그리고 갈고리 하비에게 납치당한 사람들이 겪는 공포와 탈출을 위해 제한된 상황에서 두뇌 싸움을 벌이는 부분입니다. 잭 리처와 정 반대 시점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건 시리즈 후기작인 "10호실"과 유사합니다. 남자인 체스터가 아니라, 연약한 미모의 중년 여성 마릴린이 두뇌 싸움을 펼치는 핵심 인물이라는 점도요.

추리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제법 됩니다. 잭 리처가 코스텔로의 위치를 알아낸 뒤, 사무실에서 의뢰인 제이콥 부인의 거처를 찾아내는 과정과 빅터 하비의 연로한 부모를 사기친 악당들의 범죄 행위를 밝혀내는 장면처럼요. 
마지막에 헬기 사고 유해를 토대로 빅터 하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는 장면은 백미입니다. 유골들에 남은 흔적으로 죽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건 법의학 스릴러 못지 않았으며, 당시 헬기가 긴급하게 수송했던 세 명의 정체에 대한 추리 - 두 명은 헌병이고 한 명은 범죄자였을 것이다 - 와, 범죄자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추리 모두 그럴싸 했습니다. 상관을 살해하는 '조각내기' 수법은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보아 왔지만, 이를 현실감있게 실제 범죄 소설에 녹여낸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이 사건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 - 피해자의 영웅적인 죽음이 스캔들이 되므로 - 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하지만 후기작들에 비하면 재미는 사뭇 떨어집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부족하고요. 갈고리 하비가 빅터 하비의 정체를 찾아나선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사업을 접고 숨을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빅터 하비는 공식적으로는 동료를 살해하고 탈주한 탈영병 신세입니다. 당연히 빅터 하비라는 신분으로 정상적인 사업을 펼쳤을리가 없습니다. 빅터 하비는 그냥 행방불명 상태로 두고, 가지고 있는 거액을 활용하여 다른 신분을 사는게 당연합니다. 왜 빅터 하비의 신분과 그에 대한 조사가 문제가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체스터 스톤의 전재산을 강탈하려는 시도도 억지스럽습니다. 그에게 담보로 잡은 주식을 시장에 풀어 주식 가치를 떨어트리고, 그걸 빌미로 주식 담보 대출을 해 준 은행 채권을 사서 채권자가 된다는 것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그 뒤에 스톤 부부를 납치하고, 경찰을 두 명이나 살해하면서까지 체스터의 주식을 빼앗으려 한다는건 설득력이 낮습니다. 채권만으로도 담보로 잡혀있는, 원래 계획했던 땅을 손에 넣는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채권은 회사 명의이니 자기 이름이 드러날 일도 없고요.
빌런 갈고리 하비가 사악한 인물이라는걸 긴 설명을 통해 독자에게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는 무력으로는 애초에 잭 리처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일기토 장면은 다소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하비 일당은 달랑 세 명 뿐인데다가 특별한 훈련을 받은걸로 묘사되지는 않으니까요. 심지어 하비는 오른손까지 없습니다. 테러리스트 일개 부대를 쓸어버리는 잭 리처의 다른 시리즈를 본 사람들한테는 이건 한입거리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요.

잭 리처 시리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악에 대한 응징도 시시합니다. 쫓기는 공포라던가, 절대적인 무력 앞에서 좌절하게 만드는 사이다 전개는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하비가 인질을 이용해서 주도권을 계속 잡다가, 마지막에 잭 리처가 기습해서 단 한 방으로 끝장내는게 전부거든요. 잭 리처도 중상을 입고 총까지 맞는 등, 다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웠고요. 
이런 나약함(?)을 포함해서, 한 여자에게 진심으로 반한다던가, 가버 장군이 유산으로 남긴 집 때문에 정착과 취직을 고민한다던가 하는 잭 리처스럽지 않은 묘사가 많습니다. 이건 시리즈 팬으로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잭 리처 시리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작가가 잠깐 까먹었나 봅니다.

그래서 별점을 주자면 잭 리처 시리즈로는 1.5점이고, 그냥 범죄 스릴러로 본다면 2점입니다. 피해자 시점 전개에서의 서스펜스는 괜찮았고, 머리를 쓰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건 좋은데 잭 리처 시리즈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2022/12/25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3.5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1권과 동일하게 각종 사건들의 상세한 소개에 더해 수사와 특별히 관계되어 있던 법의학법과학 방식이 소개되는 논픽션.
이번에는 거짓말 탐지기, DNA 분석, 루미놀 시약, 삭흔, 뼈, 법보행 등이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범죄의 종류 - 실종, 도굴 - 이라던가 수사 방식 - 잠복, 공개 수배 -, 범인의 특징 - 싸이코패스, 피해망상 -, 단서로 사용되는 여러가지 요소들 - 자백, 간접증거 - 등 많은 범죄 관련 소재가 언급됩니다. 이건 법의학과 법과학 관련 소재가 떨어졌기 때문이었을걸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사건 쪽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는데, 특기할만한 점 첫 번째는 여러 지능범들의 등장이었습니다. 사체 인멸, 현장 조작에 알리바이 트릭까지 사용하는 놀라운 범인들의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기할 점은 범인들이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인면수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범인들의 행태에 대한 언급을 읽으니 사형 제도의 부활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네요.

특정 주제에 맞는 대표적인 사건을 선정하기 쉬웠을 1권보다는 주제부터가 다소 정리되지 않았다는건 아쉽지만, 상세한 사건 정리가 여러 자료와 도판 등으로 뒷받침되는 좋은 범죄 논픽션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두 타석 연속 장타!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드렸던 범죄 특징들이 잘 살아있는 몇몇 사건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건 몇가지를 아래에 소개해드립니다.

<<아산 노부부 살인 방화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1).
범인은 범행을 저지른 다음날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현장에 다시 침입했습니다. 양초를 이용한 장치로 시간 조작 방화를 일으키려고요. 범인은 집을 비웠던 시간에 영화 다운로드를 걸어 두어서 집에 있는척 했다는 알리바이 트릭까지 써먹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확실히 만화와 다른 법입니다. 범인은 한 달도 더 지난 사건 당일 행적을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운로드했던 영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해서 덜미가 잡히고 말거든요. 체포되어서 다행입니다.

<<환경 미화원 살인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2)
추리 소설에서나 봄직했던 정교한 시신 유기가 놀라왔던 사건입니다.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뒤 철물점에서 사온 50리터짜리 검은색 비닐봉투 15장과 이불로 시신을 감싸고 그 위에 100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 2장을 덧씌웠습니다. 이불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는 걸로 보이도록요. 그리고 환경 미화원이었던 범인은 자기 담당 구역에 '쓰레기'로 위장한 시신을 미리 가져다 놓은 뒤, 다음날 시신을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쓰레기 수거 차량에 던져 넣었습니다. 시신은 그대로 전주 시내의 한 소각장으로 이동 후 소각 처리되고 말았다는군요. 무섭습니다.

<<거여동 여고 동창 살해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3)
단순 질투로 친구와 친구 아이 두 명을 살해했던, 비상식적인 잔혹함으로 충격을 안겨다 주었던 사건으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손에 목장갑만 꼈어도 덜미를 잡히지 않았을 정도의 지능범으로 방 열쇠를 넣은 핸드백을 방범창 안으로 던져 넣는 식으로 일종의 밀실 트릭까지 사용된, 거의 성공했던 완전범죄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아이들이 너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손에 현장에는 없었던 종잇조각을 쥐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현장 수사관들의 식견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로, 종잇조각은 범행 도구로 준비해왔던 페트병으로 만든 빨랫줄 고정판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네요.
하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을거라고 경찰을 도발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집에 범행 기록을 꼼꼼히 적어둔 일기장을 남겨두었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시욕' 이라는게 있었던걸까요?
아울러 이런 계획 살인의 경우는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았어야 했는데 무기 징역에 그쳤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발 이런 범인은 좀 죽입시다.

<<신혼부부 니코틴 살인 사건>>
범인은 신혼 여행을 떠났던 일본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시신 화장을 서둘러 증거 인멸을 시도했지만 일본 경찰의 부검 감정서로 덜미가 잡힌 경우입니다. 피해자의 사인은 혈관 내 다량 투여된 니코틴에 따른 급성 중독사인데, 시신의 왼쪽 팔에서 두 곳, 오른쪽 팔에서 한 곳, 총 세 곳에서 주사바늘 자국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살인이 입증되었거든요. 처음 주사했을 때 바로 독성이 나타났을터라, 그 다음 나머지 두 곳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아니라면 타인이 주사를 놨다는 것이고, 사망 장소에는 남편밖에 다른 이는 없었으니 범인은 뻔한 셈입니다.
단지 돈 목적으로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살해한 인면수심의 뻔뻔한 살인범이라는 특징도 잘 살아있는 사건으로, 남편이라는 놈은 이 증거가 드러나자 자살 방조라고 우겼다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네요. 이런 놈도 좀 죽입시다....

뻔뻔함이라면 <<포천 암매장 살인 사건>>범인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싸이코패스인 범인이 완벽한 증거 앞에서도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가공할만한 뻔뻔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첫 조사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발뺌하더니, 두 사람이 함께 포천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 TV 화면을 제시하자, “함께 갔지만 피해자는 포천이동갈비를 먹으러 갔다"고 바로 말을 바꾼다던가, "함께 어머니 산소에 들렀는데, 피해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비상식적 변명을 늘어놓는 식이었다네요. 이런 변명이 통할거라 생각한 것도 어이가 없고,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왔어요.

<<미아동 노파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남아시아계라는게 결정적 증거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잠복 중이던 형사가 혼혈로 보이는 어린 형제를 보고 사진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 중 큰 아이가 "아빠다!"라고 외쳐서 범인임을 확신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말 잔인한 행동이었어요.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잡아야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혼혈 아이들의 집만 알아내어도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 아빠 신원을 알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울주 노인 연쇄살인 사건>>
사건 현장에 범인의 DNA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폐쇄회로 TV 영상도, 목격자도 없었지만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백 진술과 이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는 정황증거가 더해지면서 용의자가 범인이 됐던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자백'이 증거가 되기 위한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고요.
피고인의 자백이 곧바로 유죄 증거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최근에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도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또는 기망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의심되거나, 혹은 피고인의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땐 자백은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하고요.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는 조건도 까다롭다네요. 과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강도 살인'처럼 허위 자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경우가 많은 탓이겠지요.

<<이천 무덤 연쇄 도굴 사건>>
정신병자가 저지른 범행으로 범행 자체는 특기할게 없는데, 피해자가 너무 안타까왔던 경우입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최씨는 부모 무덤이 도굴당한건 자신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믿어서 11년간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친지와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고 하거든요. 정신병자 한 명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버렸는데, 이런건 정말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할까요?

<<제주 보육교사 피살 사건>>
미제 사건인줄 알았었는데, 과학 수사를 통해 이전에도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던 택시 운전사가 검거되었더군요. 사건 당시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과학 수사를 통해 피해자 사망 시각이 재조정되어 결국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 사체를 이용한 실험 결과로,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는 그늘인 데다 바람이 심했고, 사후 일주일이 넘은 뒤에도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걸 확인하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 물증이 없다는 약점이 있어서 경찰은 다시 철저한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9년 사이 미세 증거물을 증폭해 보는 기술이 발달한 덕에 다행히 추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피해자 옷에서 범인 옷과 동일한 섬유 조각이, 범인의 차에서 피해자 섬유 조각이 수집되었던 것이지요. 섬유 조각이 범인이나 피해자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교차 발견되는게 많아지면 둘이 만났다는 의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 책에서는 이렇게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구속 기소하는 단계까지만 언급되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용의자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나, 섬유 증거만으로는 증거력이 약하네요. 그 외의 증거들도 용의자가 범인이다! 라고 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쉽습니다. 언젠가 진범이 잡혀 피해자의 원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2022/12/04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국내에서 과학 수사를 통해 해결했던 여러 사건들을 정리한 논픽션. 2부 구성으로 모두 22건의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부는 특정 과학 수사 기법이 해결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해당 수사 기법에 대해 이해를 돕는 구성입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는 물론이고, 비산 혈흔 등 혈흔 형태 분석, DNA 분석, 프로파일링, 법 최면, 지문 감식, 지리 프로파일링 등이 등장하며, 수사 기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 등 부가 자료들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습니다. 사건도 밝혀진 모든 내용이 소개되고 있으며, 사건 현장 사진과 도해로 구성된 사건 상황 등 도판도 완벽합니다.
2부는 완전 범죄를 노렸지만, 수사관들이 끈질긴 수사로 밝혀낸 사건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소개는 1부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수준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4점. 우리나라 범죄를 다룬 논픽션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여,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첫 번째는 <<마포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입니다. 의사 남편이 만삭 부인을 살해했던 엽기적인 범행으로, 피고인 남편 측에서 캐나다 법의학 전문가까지 증인으로 불러 법정 다툼이 있었던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남편 범행이 확실하더군요. 피해자의 목졸림 흔적과 얼굴과 몸의 멍자국, 저항하다 생긴 것으로 보인 손톱 밑의 남편 DNA 등 현장 증거가 뚜렸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남편 쪽에서 주장했던, "욕조에서 넘어져 죽은 것 같다"는걸 설명할 수 없는, 피해자 몸의 혈흔과 상처가 결정적인것 같아요. 욕조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양양 일가족 방화 사건>>은 무식한 범인이 교과서처럼 단서를 남긴 범행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로 피해자 일가족 시신에서 수면제가 검출되어 누군가 방화를 저지른게 명백하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필요도 없는 말을 해 가며 자살이 맞다고 주장했고, 결국 현장에서 발견된 차용증 등으로 동기마저 드러나버리고 말았지요. 범행 직후 소방차를 따라 다시 현장에 나타난 것까지, 하는 행동 모두가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단순 무식한 범인을 연상케합니다. 아울러 고작 2,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어린 소녀가 포함된 네 명의 일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에게 무기징역은 너무 관대한 선고였습니다. 능지처참하고 저잣거리에 효수를 했어야....
<<서울 광진구 주부 성폭행 사건>>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DNA 감식을 통해 드러난 범인은 범행 당시 수감 중이었지만, 과학수사관 권경사의 추리 덕분에 진범이 체포되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수감 중인 용의자의 일란성 쌍동이라는 추리였지요.
<<60대 남녀 변사 사건>>은 단순 자연사로 보였지만, 현장 검증을 통해 몇 가지 이상한 정황이 포착되어 살인 사건이라는게 드러난 경우입니다. 현장에서의 구토 흔적과 기묘한 자살 시도 흔적, 그리고 자연사는 이불 한 장만 반듯이 덮고있는게 일반적인데 이불 두 장이 포개져 쌓여 있었던 것, 피해자 옷과 맞지 않았던 방에 떨어져 있던 단추 등이 단서가 되었습니다. 검시 결과도 살인 사건임을 증명해 주었고요. 현장 상황과 시신의 모습 등을 분석하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성 부부 살인 사건>>은 프로파일링이 사건 해결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잔혹한 현장 모습으로 청부 살인이나 원한 살인이 의심되었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이며, 근처에서 일어났던 침입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물일 것이다. 침입이 발각되어 과도한 공격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했고,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몰린 사람이며, 피해자들은 물론 마을을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일 것이다"는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는 실제 범인 모습과 일치했지요. 어떻게보면 좀 뻔한데, 현실은 픽션과는 엄연히 다르다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양주 전원 주택 살인 방화 사건>>을 통해서 지문은 고온에서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흔적 자체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화재 현장에서는 '열 사각 지대'에서 집중적으로 지문을 채취한다는 등 실제 현장에서의 지문 감식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의정부 연쇄 절도 사건>>은 이름도 생소한 '지리 프로파일링'을 접하게 해 주어 좋았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시간을 토대로 범인이 머무는 곳과 다음 범행 장소를 예상하는 과학수사 기법이라는데, <<넘버스>>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던 적이 있지요. 실제 사건을 해결할 정도로 정립된 기법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2부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은 완전 범죄를 노린 3인조 일당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고 전원 주택을 털었던 사건으로, 집에 설치된 폐쇄 회로 TV는 본체까지 뜯어서 들고갔고, 현장에 남긴 담배 꽁초도 어디선가 주워와 일부러 흘리는 등 굉장히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범행 장소를 오간 차량이 없었다는게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원 주택이 산과 가깝다는걸 이용하여, 목표지 인근까지 대포차로 이동한 뒤 야산에서 하루 노숙을 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군요. 현장에 일부러 뿌린 꽁초 중 동일한 DNA가 검출된 탓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지만, 정말로 대단한 지능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 교수 부인 살인 사건>>은 한 때 뉴스를 도배했던 사건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범죄 전문가 교수가 경찰과 두뇌 싸움을 벌인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건 개요를 읽어보니 별다르게 머리를 쓴 부분은 없어서 놀랐습니다. 내세운 알리바이도 엉망이었고, 내연녀를 동원한 시체 유기도 곧바로 경찰에 발각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언변만 빼어날 뿐 일개 잡범 수준에 불과했어요. 차라리 앞서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 범인들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범인의 직업이 선입견을 만든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이런것도 일종의 미스디렉션이겠지요.

2022/09/25

살인자의 사랑법 - 마이크 오머 / 김지선 : 별점 2점

살인자의 사랑법 - 4점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이는 20년 전, 자기 동네에서 벌어졌던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이웃 글로버라는걸 알았다. 그러나 그가 도망가는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았던 탓에 그녀는 프로파일러가 되었다. 하지만 글로버는 그녀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며 회색 타이를 보내는 방식으로 자기의 존재를 계속 어필해 왔다. 

현재, 시카고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돕기 위해 조이는 FBI요원 테이텀과 함께 수사팀에 합류했다. 언론에서 '목조르는 장의사'라 부르는 살인범은 살해한 여자들을 방부처리하여 시내에 유기하고 있었다. 조이는 프로파일링과 수사를 진행하면서, 사건의 범인이 20년 전 사건의 범인 글로버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시체를 가지고 장난치는 연쇄 살인마프로파일러, FBI 요원 컴비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과 비슷한 제목 때문에 영 손이 가지 않았는데, 읽어보니 생각보다는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적으로 꽤 괜찮았던 덕분입니다. 

우선 연쇄 살인마인 '목조르는 장의사'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초반에 방부처리된 사체를 보고 가짜 프로파일러가 범인은 전문 장의사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체의 발목 부분이 부패했다는걸 조이가 간파하고 범인은 이러한 사체 처리에 익숙하지 않은 초짜라는걸 밝혀내는 첫 장면부터 그럴싸 합니다. 

연쇄 살인의 패턴을 파악하여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는 과정도 여타 연쇄 살인물과 비슷하지만 추리의 여지가 많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들의 키가 전부 달랐는데, 딱 맞는 옷을 입고 있었던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범인은 살해 전에 피해자들에게 옷을 사 입혔던 겁니다! 첫 희생자 집 배관이 자주 역류했다던가, 납치되었던 피해자가 범인에 대해 재갈이 물린채 했던 말 등을 통해 범인이 배관공이라는걸 드러내는 등 단서 제공도 비교적 공정하고요.

범인이 여성들을 방부처리한 이유와 유기한 시체들이 전부 우는 듯한 표정이었던 이유를 범인이 오랫동안 함께 한 '연인'을 꿈꿨고, 그녀와 헤어지게 되자 사체들이 슬퍼하는 것 처럼 연출했다는 황당무계한 추리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그냥 범인의 광기 묘사에 집증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교적 객관적인 서술이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광기어리고 비참했던 유년 시절의 끔찍했던 학대가 원인이었다는건 다소 뻔했습니다만, 도화선이 된 사건은 동기로서는 충분하다 생각될 정도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피해자 목에 칼을 대고 협박하던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조이가 범인의 판타지를 활용하여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범인 앞에서 옷을 벗으며, 팬티에 감춘 권총을 테이텀이 잡게 만드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영화화하면 괜찮았겠다 싶더라고요. 

현재의 사건과 병행 진행되는 20년 전 과거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글로버가 진범이란걸 확신한 뒤, 그의 집에 몰래 잠입해서 증거를 뒤지다가 글로버와 마주치는 장면, 글로버가 조이의 집에 쳐들어와서 자매를 협박하는 장면은 굉장한 서스펜스를 안겨줍니다. 21세기 작품다운 속도감있는 전개 역시 좋았어요.

그러나 워낙 뻔한 설정이라 비슷한 작품과의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고, 캐릭터가 진부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프로파일러 조이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공포스러운 기억, 그에 따른 불면증, 감정적이면서 도전적인 말투와 행동 등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여성 수사관 캐릭터와 별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양들의 침묵"의 클라리스가 바로 떠오를 정도었어요. 그나마 조이에게는 여동생 안드레아, 그레이에게는 여든 살 넘은 할아버지 마빈이라는 가족이 굳건한 유대를 보여준다는건 좋았지만 , 이야기와 크게 관련이 있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편의에 따라 작위적으로 쓰여진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20년 전 사건 관련 내용에 특히 그러합니다. 우선 12살 중학생의 고발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시해버린 처사는 쉬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고발 직후 소녀들 집에 침입해서 협박하다가 도주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범인으로 몰려 자살했던 용의자 매니 앤더슨의 부모가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또 1996년이라는 시기는 그리 옛날도 아닙니다. 어느정도 법의학이 정립되어 있었을터라 분명 단서도 남아있었을텐데, 경찰이 매니 앤더슨에게만 촛점을 맞춘건 말이 안됩니다. 

글로버의 철벽같았던 알리바이가 알고보니 매니 앤더슨을 옭아매기 위해 검시 보고서가 조작된 탓에 불과했다는건 솔직히 어이가 없더군요. 글로버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이야기니까요. 이를 테이텀이 짧은 시간 동안 밝혀냈다는 것도 당황스러웠어요. 

또 현재의 시카고 사건에 갑작스럽게 글로버가 끼어드는건 비현실적이었고, 마찬가지로 글로버가 등장하는 속편을 강하게 암시하는 결말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설득력도 없어요. 조이가 동생 안드레아의 심층 트라우마를 일깨울까봐 글로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안드레아가 글로버를 알아보지 못하고 납치될 수도 있다는건데, 조이가 스토킹을 당했다면 안드레아도 글로버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건 당연합니다. 진작에 최대한 상세히 정보를 제공해 주었어야 했어요. 

덜 떨어진 것 처럼 보였던 글로버가 20여년 동안 FBI의 자문역도 맡고 있는 전문가를 거리낌없이 스토킹하며, 나중에는 덮치는데 성공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과거의 알리바이도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충동적 범죄자에 불과하니까요. 게다가 조이가 습격당한건 대낮이었습니다. 미국의 치안이 이 정도로 엉망일까요? 

납치되었던 피해자 전화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려는 시도 외에는 범인을 잡아낼 방법이 없어 보인다는 것도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범인이 범행을 저질렀던 거리까지 알아냈는데도 불구하고 범행 장소도 결국 특정하지 못하는 등, 시카고 경찰의 무능만 작품 전체에 걸쳐 도드라지고, 범인을 잡은건 오로지 조이의 프로파일링 덕분인데 이는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지만 아주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힘드네요.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하며,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1/11/13

노킹 온 록트 도어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노킹 온 록트 도어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우리 탐정 사무소의 현관문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지 않다.
차임벨이나 초인종, 노커 따위도 없다.
따라서 방문자들은 반드시 맨손으로 문을 노크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크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대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새로운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불가능 전문 고텐바 도리, 불가해 전문 가타나시 히사메, 두 명의 탐정이 함께 운영하는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 의뢰받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완벽한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작품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이 사용되어 있으며, 이를 추리하기 위한 단서들도 독자 시점에서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추리 소설 황금기 시절 대표작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에요. 과연 신세대 본격물로 유명했던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다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배경 본격물의 지닐 수 밖에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불가능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대물에 적합할리 없지요. 의뢰를 받기는 하는데, 보수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 모순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트릭들도 마찬가지에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트릭이 많은 탓입니다.

캐릭터도 아쉬웠습니다. 고텐바 도리가 특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탐정이라는 자의식이 넘쳐나는 캐릭터 묘사 자체가 영 별로였거든요. 우라조메 덴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캐릭터의 독특함과 매력은 훨씬 못 미칩니다. 히사메는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나마 조금 낫기는 했습니다만, 도긴개긴이었어요.

게다가 한 명은 불가능, 즉 하우더닛 쪽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불가해, 즉 와이더닛 쪽 전문가라는 설정은 최악입니다. 와이더닛 탐정 히사메의 존재는 아무리봐도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 히사메가 '불가해'를 풀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다이얼 W를 돌려라"밖에는 없습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에서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칩 트릭"에서는 트릭을 풀어냈지만 이는 이토기리 미카게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불가능 범죄에 대한 내용이라서 설정상으로는 히사메가 활약하면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반대로 불가해 상황이 등장하는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에서는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진상은 도리가 풀어냅니다. 이 역시 설정에 반하는 작품인 셈이지요. 대체 왜 두 명의 탐정이 필요했던걸까요? 셜록 홈즈와 그 라이벌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현대물에 가당키나 한 설정도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둘이 있을 때 뭔가 재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종일관 둘의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어요. 추리를 하면서 둘 사이의 티키타카가 빛났던건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가 유일했습니다. . 

아울러 악당들을 위해 트릭을 설계해주는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광대 요키치나 "탐정학원 Q"의 케르베로스와 같은 만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만들며, 경찰 쪽 협력자이자 친구인 우가치 기마리 경위가 막과자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설정들도 만화적이라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격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점들로 볼 때 차라리 만화화 버젼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킹온록트도어" 

살해당한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의 미망인 미즈에가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화가는 잠긴 작업실에서 등에 칼에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작업실은 밀실이었다. 남겨져있던 화가의 풍경화 여섯 점은 액자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 중 한 점은 온통 새빨갛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두 탐정 및 관련된 모든 설정이 소개되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작입니다. 트릭은 그림 여섯 점을 쌓아서 문 앞에 놓고, 카펫으로 덮어놓았던 겁니다. 그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문을 열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지요. 문이 잠겨있던게 아니라요. 그림 두께만큼 카펫 길이가 부족해져서, 맨 위 그림은 카펫 색깔로 덧칠했던게 새빨간 그림으로 남게 되었고요. 

범인은 걸쇠를 열 도구를 가져와 달라는 핑계로, 함께 있던 어머니와 미술상을 아래로 내려보내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잠겨져 있지 않았던 문을 여는 척 했던 화가의 아들 류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본격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트릭의 핵심인 복도의 폭과 레드 카펫의 존재, 그림 크기와 캔버스 두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서였던, 문을 두드릴 경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얀 페인트 가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빼 놓지 않고요. 트릭을 파헤친 뒤, 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전개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그림을 카펫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친구인 미술상이 그림을 밟게 만드려는 목적이었다는 히사메의 추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모욕받았다는 동기는 명확했고, 작업실을 밀실로 만들려는 목적도 확실해서 이를 불가해 상황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밀실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마지막 히사메의 추리가 없었다면, 아니, 히사메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사건 중개인 진보가 받아온 의뢰는 극단 "목이버섯"의 리더 젠다 미카 살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속옷만 입은 채 연습실의 물이 틀어져 있는 욕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가 짧게 잘린 채였다...

진상은 젠다 미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던 겁니다. 애인 오쿠데라로 변장하기 위해서요. 연습실에서 다투다가 애인 오쿠데라를 목졸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시체를 옮기기 위해 큰 상자 속 짐을 비운 뒤, 그 안에 시체를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연습실에서 시체가 발견되면 젠다 미카가 범인이라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짐은 다른 극단원 니시베를 시켜 옮기고, 자기는 오쿠데라로 변장해서 극장을 방문한 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사라질 속셈이었지요. 그럼 극장을 방문했던 오쿠데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할거라 여긴거지요. 그러나 오쿠데라는 죽지 않았었고, 의식을 회복한 후 그녀를 목졸라 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기묘한 상황을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하는 전개는 좋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본격 추리 소설로는 완벽했어요.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추리도 합리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편보다도 설득력은 약했습니다. 일단 젠다 미카의 계획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들 과학 수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검시가 이루어지면 오쿠데라의 사망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 이전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찰은 극장으로 옮겨진 커다란 '짐'의 존재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겠죠. 

머리카락을 흉기로 썼을거라는 히사메의 최초 추리도 용의자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목에 남은 흔적으로 흉기가 뭔지는 파악이 가능했을 테거든요. 죽은 줄 알았던 오쿠데라가 일어나사 젠다 미카를 다시 살해했다는 진상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 불가해한 상황 풀이인데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도리가 진상을 풀어낸다는 전개도 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라면 두 명의 탐정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설득력 높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는 추리 퀴즈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던 작품입니다.

"다이얼 W를 돌려라" 

30분 간격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첫 번째 의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어달라는 나가노사키 히토시의 의뢰였다. 유언장에 남겨진 대로, 금고 위 아래 다이얼을 돌렸지만 금고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뢰는 한 밤중 산책을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는 경찰은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며 찾아온 시마즈 나쓰코의 의뢰였다. 두 탐정은 각각 사건을 맡아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결국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로 금고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이 금고를 뒤집어 놓았던건, 윗면에 할아버지를 죽일 때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고요. 금고가 뒤집혔다는걸 알아낸 히사메의 추리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실제로 살해당했던 것을 지팡이를 통해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도리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모처럼 컴비 플레이가 빛났네요. 이를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요.

고작 십만엔 정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지, 금고가 뒤집힌걸 그렇게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왜 탐정이 오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해 놓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칩 트릭"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하나와 스쿨의 핵심 용의자였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는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평소 서재 창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를 창 밖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살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도리와 히사메, 그리고 경찰 우가치의 대학 동기인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였다...

창 밖에서 쏜 총에 유바시가 맞아 죽은건 확실합니다. 입사각도 명확했고요. 그러나 그가 창 바로 앞에 있었던게 아니라면? 서재 중앙 지점에서 발판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높이가 높아졌던 탓에 입사각이 맞아 떨어졌던 거지요.발상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총 한 발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광등을 가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중심에서 빗나가 있어도 원거리 저격은 성공했을리 없어요. 그리고 메이드 고노에가 해고되지 않기 위해, 시체를 창 밑에 옮겨놓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해고되는 것 보다, 현장 조작이 더 큰 중죄잖아요? 

또 상황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유바시가 저격당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고, 경찰도 구태여 탐정을 불러다가 불가해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날만 우연히 유바시가 창가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불가해한 상황의,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던 이야기에요.

아이디어는 평가할 만 하지만, 현실성없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였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이 쌓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칼에 찔린 가쓰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까지는 가쓰히코의 발자욱 하나만 남아 있었고, 흉기인 칼에 지문은 없었다.

동생과 싸운 뒤 흥분한 가쓰히코가 갓 세척을 마친 식칼을 들고 동생 집으로 향하다가 실수로 쓰러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진상은 합리적이었지만, 흉기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던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에 묻었던 눈이 녹으면서 씻겨 나갔다는데, 현실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물 좀 묻는다고 지문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그렇다면 손바닥에 묻었던 피는 왜 안 지워진 걸까요?

이 진상보다는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가쓰히코 공장 직원 두 명이 공모했다는 도리의 추리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한 명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죽은척 하고, 그 뒤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죽인 시체를 짊어지고 간 뒤, 시체를 내려놓고 공범자를 짊어지고 오면 된다는 추리로 꽤 그럴듯했어요. 최소한 지문이 눈이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칼에 대해 잘못 말한건, 그냥 말실수였다고 해도 무방했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십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사무소의 여고생 아르바이트 구스리코는 심심해하던 탐정들에게 학교에 가다가 들었던 기묘한 말의 진상에 대해 추리를 부탁한다. 수상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했던, "십 엔 동전이 너무 없어. 다섯 개는 더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제목과 내용 모두 걸작 단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오마쥬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탐정이 서로 각자 추리를 말하고, 반론하며 서서히 진상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의 빌드업이 좋습니다. 탐정이 두 명인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상한 남자는 꽤 여러 번 공중전화를 사용하여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남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이유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전 갯수를 어림잡았다는 점과 평일 낮이었던 시간을 근거로 둘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번호부를 통해 알아낸 특정 지역에 사는 주부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추리합니다.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이야기 특성 상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았을텐데 추리가 진짜였다는게 드러나는건 좀 별로였어요. 전화번호부와 공중전화가 과연 21세기에 먹힐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거든요. 저만 해도 집에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충분하니까요. 또 수상한 남자의 의도대로 형편좋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 들, 1분 정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목소리로 그 주부가 누구인지 특정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피해자가 마침 떨어트린 화과자 포인트 카드로 범인들이 그녀가 사는 동네와 성을 알아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변주로 적당한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추리 놀이는 놀이로만 끝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중의원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독살당했다. 후원회 파티에서 접객 담당 종업원이 날랐던, 똑같은 잔 10개 중 도자마 간조가 무작위로 고른 한 잔에만 독이 들어있었다. 독살 방법은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가 설계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리는 처음에 의원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비서가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에 독을 넣었다고 추리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게 밝혀져 실의에 빠집니다. 다른 작품과는 다른게 히사메는 트릭 담당이 아니라며 위로만 할 뿐이고요. 그래도 위로 덕분인지, 곧바로 도리는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독은 이미 마셨던 것이고, 샴페인 잔이 아니라 의원이 서 있던 위치를 가늠하여 바닥에 독을 발라 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추리와 전개 모두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던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의 착안점이 의원의 유류품이었던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여러가지 약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는데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해 마실 수 있는데, 그걸 항상 상비해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발라 놓았던 독이 떨어트린 샴페인 잔 속 내용물과 섞여, 삼페인에서 독이 검출되었다고 오인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지나치게 운에 의지했을 뿐더러, 현대 과학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본 걸로 보이니까요.

과거 도리가 목이 베여 죽을 뻔 했던 적이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동창 4명의 행보가 갈렸으며 도리는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고집하게 되었다는 과거사도 살짝 선보이지만 이야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 형성에 불과해서 거슬렸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5/22

밤과 낮 사이 1 - 마이클 코넬리 외 / 이지연 : 별점 2.5점

밤과 낮 사이 1 - 6점
마이클 코넬리 외 지음, 이지연 옮김/자음과모음(이룸)

영미권 장르소설 비평가와 편집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단편 컬렉션이라는 책입니다. 장르 문학 단편을 좋아하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볼륨은 풍성합니다. 무려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열 여섯 편이나 되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본격 추리물, 범죄물, 스릴러, 액션물에 섬찟한 느낌을 전해주는 '기묘한 맛' 계열 등 수록 장르도 다양한 덕분입니다. 조이스 캐롤 오츠, 마이클 코넬리와 같은 유명 작가들 작품이 수록된 것도 반가웠고요.

하지만 워낙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서 작품별 편차가 큽니다. 첫 수록작인 "그들 욕망의 도구"처럼 좋은 작품도 있지만, 뻔한 설정과 전개를 보여준다던가, 심리 묘사에 치중할 뿐, 이야기 자체는 모호한 등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앤솔러지인데 선정 기준을 잘 모르겠다는 것도 조금 아쉬웠어요. 누가,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선정하여 출간한 것일까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대략 2.5점입니다. 1권과 거의 동일한 분량과 볼륨을 자랑하는 2권도 있는데, 읽어볼지 말지는 조금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 욕망의 도구" 

'나'는 죽기 전, 짐 오빠를 만나 그가 로니 언니를 이용했던 70년 전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로 결심했다. 1931년, 아버지 가출 후 어려워진 가족을 위해 짐 오빠가 로니 언니에게 몸을 팔게 했었던 사건이었다...

끔찍했던 과거에 대한 회상에서 시작해서, 몸을 팔았던건 로니 언니가 아니라 짐 오빠 자신이었다는 충격적 반전까지 완벽했던 단편입니다. 탁월환 회상과 심리 묘사는 독자를 반전으로 이끄는 선입견을 잘 쌓아 올려주고요. 

아빠 실종에 관련된 설정은 지금 읽기에는 뻔하고, 짐 오빠의 고백 후 결말까지가 조금 늘어지는 감은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사소합니다. 단편의 맛을 잘 살린 걸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밤과 낮 사이" 

표제작. 주인공이 겨우 열기구에 매달려 있고, 두 명이 열기구에서 떨어져 죽거나 불구가 되는 첫 장면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주인공들이 뜬금없이 열기구에 매달리게 된 배경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결국 열기구 속 아이를 잃게 된 아버지이자 살인 강도인 브래들리가 주인공에게 복수심을 품고 습격해서 죽이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하지만 브래들리가 탈옥해서 주인공을 습격한 뒤의 이야기는 모두 작위적이라는건 단접입니다. “전적이 있는 은행 강도로 풀려난 지 고작 이삼 일 만에 기구를 탈취해서 도와주려던 착한 이웃을 죽게 만든 놈인데, 그래 그놈을 튀게 놔뒀다고요?”라는 주인공 말 처럼 쉽게 이루어진 브래들리의 탈옥, 브래들리가 탈옥 후 주인공 집을 바로 찾아와 주인공을 납치한 것, 마지막 죽기 일보 직전에 사라진 열기구를 발견하는 것 등 모두가 말이지요. 주인공이 브래들리가 3만달러라는 돈을 숨겨놓았을 코인 락커 열쇠를 강탈한 뒤 죽게 만든다는 것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또 주인공의 뉴요커 스타일 심리 묘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가득차 있는 작품이라면, 주인공은 보다 현실적으로 묘사하는게 나았을것 같습니다. 아니면 주인공이 3만 달러를 거의 손에 넣었지만, 로키 산맥 끝자락까지 몰고 왔던 머스탱이 고장나서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쇼트쇼트스러운 결말로 마무리하던가요.

그래도 도입부만큼은 역대급이며 스릴과 서스펜스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환상특급"같은 TV 시리즈로 만들었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책 제본가의 도제" 

베네치아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미국인 졸리 매독스는 부유한 괴짜 노인 샌본과 친해진다. 그는 졸리와 여자 친구 루치아를 식사 자리에 초대하는데....

굉장히 뻔했던 작품입니다. 제목과 책 제본에 대한 장인 정신 가득한 묘사, 희귀 서적 수집가와 책 제본가가 루치아의 피부 문신을 열광적으로 바라보는 묘사 등에서 결말이 쉽게 예상된 탓입니다. 마지막에 졸리가 받은 선물이 인피로 제본된 책이라는것 역시도 뻔했고요. 

샌본과 제본가 주치니가 인피 제본 책을 졸리에게 선물할 이유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졸리가 책 제본에 매력을 느껴 제자가 될 것을 결심할 거라는걸 알려줄만한 단서는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편의적인 전개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별다른 재미도 느끼기 힘들어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차라리 졸리는 사실상 이용가치가 없고 루치아의 인피만 중요한 상황인 것 처럼 끌고 가서 결국 졸리가 체포되도록 만드는 결말이었더라면 더 나았을겁니다. 졸리의 여자친구 사체 (머리?)를 여행가방에 몰래 넣어 두는 식으로요.

"스킨헤드 센트럴" 

짐 부부는 아들을 잃은 뒤 시골 마을로 이사왔다. 그곳에서 스킨헤드 머리를 한 데일에게 집안 일을 시킨 뒤, 짐 아내의 패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뒤, 데일의 동생 제이슨이 패물을 돌려주는데...

가정 폭력에 따른 범죄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뭘 말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이야기가 명쾌하지 못해요. 동생 제이슨을 폭행한건 형 데일인지? 그렇다면 형 데일을 폭행해서 사과하게 만든건 그 아버지인지? 짐 부부 집에 데일이 불을 지르려고 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이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또 형제의 아버지가 폭력 성향을 간직한채 10여년을 살아왔다고 해도, 데일이 저지른 범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애초에 데일은 절도를 저질렀고, 이는 맞아도 싼 짓이었으니까요. 때문에 아이를 매질했다고 짐이 이야기하는건, 그 아버지 말대로 오지랖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에 집에 불을 지른 데일을 육군 훈련소에 보내는 결말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당연히 경찰을 불렀어야 했습니다. 방화는 굉장한 중범죄니까요. 이미 성인이 된 데일은 그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합니다. 비교적 길게 설명되는 짐 부부 아들이 죽은 비참한 사고도 이야기를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데일 가족 이야기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요. 데일을 자기 아들처럼 여겼다? 이 역시 오지랖이죠.

좀 있어보이는 드라마를 쓰려고 했지만, 알맹이는 그닥인 모래성같은 이야기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심술생크스 여사 유감" 

늙은 노파가 온갖 사람들에게 심술궂은 편지를 보내는 취미가 있다는 설정은 고전 영국 추리 소설에 등장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고전 속에서 이런 편지는 은근한 협박이나 스캔들 폭로였던 반면, 이 작품 속 생크스 여사의 편지는 훨씬 적나라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전이 은근한 심리 서스펜스라면, 이 작품은 현대물답게 스플래터 하드고어물인 셈입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들 상황 묘사와 엮어서, 독자에게 이 노파는 죽어도 싸다는걸 확실히 알려주거든요.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던, 교사 시절 학생의 게이 성향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던 행위가 대표적입니다. 정말 치가 떨릴 지경이었어요. 진작에 살해당하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마지막에 생크스 여사가 살해되지만, 동기를 가진 인물이 너무 많아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끔찍한 범행'과 '처단' 자체의 자극적 쾌감에 비해 이야기가 평이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재미를 주는 작품이란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첫 남편" 

잘 나가던 변호사 리오나드가 아내의 첫 남편 사진을 발견한 뒤, 자격지심과 질투로 오해를 만들고, 결국 첫 남편 야드만을 죽인다는 범죄극입니다. 비교적 분량이 긴데, 리오나드가 붕괴해가는 심리 묘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탓입니다.

긴 만큼 디테일한 묘사는 좋지만, 전개는 평이합니다. 리오나드가 야드만을 죽인다는 결말은 뻔했고요. 아내 발레리도 죽였을 거라는 암시가 살짝 등장하기는 하는데, 제대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야드만을 죽인 뒤, 그의 렌트카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서 차안에 있던 야드만의 애견에 의해 습격을 당해 죽거나 범행이 드러난다는 결말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지금도 개 때문에 범행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우연히 지나가던 차량이 있었다는 작위적인 전개에 기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길이만큼 좋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운이 좋아" 

텔레파시 능력자 수키 스택하우스와 마녀 아멜리아 브로드웨이에게 보험 사업을 하는 그레그가 사건을 의뢰했다. 누군가 그의 사무실에 침입해서 서류철을 뒤졌는데, 누구인지 알아내 달라는 의뢰였다.

텔레파시 능력자, 마녀, 뱀파이어, 마술사 등이 나오는 판타지 범죄물로 그레그의 경쟁 업자 중 한명이 그레그의 비정상적인 행운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서류철을 뒤졌다는게 진상인데, 이를 수키 스택하우스가 더듬어 밝혀내는 과정은 꽤 재미있습니다. 이런저런 소동으로 뒤섞인 상황에 대한 정리도 깔끔하고 유쾌하게 묘사하며, 판타지적인 설정과 능력들을 조사 과정과 이야기에 잘 써먹고 있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만화스러운 설정만큼이나 만화스러운 전개는 아쉽습니다. 디테일을 챙기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게 많아요. 그레그가 주변 행운을 빨아들여서 사업이 잘 되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이거야말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 충분한 설정인데, 어떻게 동작하는지 설명도 없이 그냥 끝나버리고 말거든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아버지날"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단편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벌어졌던, 더운 날씨에 차 안에 방치되어 사망한 아이 사건이 그려집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었고, 그 때문에 부모가 의도적으로 아이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게 진상인데, 아내와 남편을 분리시킨 뒤 심문하여 이를 이끌어내는 과정 묘사가 빼어납니다. 아내가 먼저 자백했다며 자백을 유도하는 장면은 그 중 백미이고요. 또 그냥 심증이 아니라 '이미 그만 둔 보모를 재 고용하는 광고를 내지 않은 점' 에 착안하여, 어차피 아이가 죽을걸 예상했다는 추리를 이끌어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부모 시점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범인의 동기가 치열하게 드러나지 않는 탓에, 드라마의 깊이가 부족했어요. 전개와 결말도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경찰 수사물로는 기본은 하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과연 저명한 해리 보슈 시리즈다웠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개 산책 시키기" 

토론토에 사는 부유한 미시 로라 프랜시스는 개 산책 중에 단역 배우 레이를 만난 뒤 불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레이와 함께 하기 위해 남편 로이드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

정부에게 남편 살인 청부를 맡기지만, 남편이 선수쳐서 정부는 죽고, 선수친 남편도 정부가 의뢰했던 살인 청부업자에게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딘가에서 많이 보아왔던 -헨리 슬레셔였던가요? - 뻔하디 뻔한 내용이라 한숨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포르노를 연상케 하는 로라와 레이가 벌이는 질퍽한 정사 장면 묘사는 그나마의 수준을 더 낮고 저렴하게 보이게 만들고요. 이럴 바에야 뻔해서 짝퉁스러운 반전을 끼워넣지 말고, 포르노에 가까운 싸구려 펄프 픽션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그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볼 만한 부분이 있었을겁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모자족인" 

부유한 의료기기 사업가 제더버그 마틴이 살해당했다. 스무살이나 어린 젊은 아내 나네트는 정체불명의 거한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데....

언니의 전 남자 친구인 카일 헤이에스 형사 밑에서 일하게 된 감식관 테스 캐시디가 주인공인 작품. 

단서, 증거, 동기 모두 애매하고 설명은 부족하지만, 본격 추리물입니다. 테스 캐시디가 몇 가지 단서와 정보를 가지고 귀납법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서는 두가지입니다. 고인이 생전에 불을 두려워했으며, 친아들이 반대하는데도 나네트가 화장을 고집한 이유가 첫 번째, 흉기인 도끼에 찍힌 커다란 엄지손가락 지문이 두 번째입니다. 테스는 도끼에 찍힌 엄지손가락 지문은 고인의 엄지발가락 지문이었고, 이를 감추기 위해 화장을 서두른 것으로 추리합니다.

이 엄지발가락 지문에 대한 추리를 우연히 테스가 알게 된 '모자족인' - 아이가 바뀌는걸 방지하기 위해 엄마의 손가락 지문과 어린아이의 엄지발가락 지문을 찍는것 - 과 연결시키는 전개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현대 법의학으로 발가락과 손가락 구분이 불가능했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설령 구분이 불가능했다 치더라도, 동기가 있는건 나네트와 아들 스티븐 뿐이니 어떤 식으로든 범행은 드러났을테고요. 이런 점에서 현대물보다는 근대물에 더 적합했으리라 생각되네요. 아울러 테스와 상관과의 관계도 전개에는 불필요한 요소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뱁스"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한 뒷골목 싸구려 범죄극. 주인공이 스트리퍼 뱁스와 함께 마약 전달책을 찾아가 마약을 강탈해오는게 전부입니다. 온갖 비속어가 난무하지만 특기할 만한 내용은 전무합니다. 주인공이 때때로 '십자가'를 본다던가, 대학교를 나왔다던가 하는 기묘한 설정이 덧붙여져 있는데, 작품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도 않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잠" 

묘지 관리인 그레이브 디거는 과거 마크 틴들이라는 과거 용병이었다. 실수로 포로가 되었었지만, 상관 월터 잭슨의 희생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묘지에 월터의 시신이 매장되게 되는데, 얼빠진 아르바이트생들이 시신을 모욕하자 그는 용병 마크 틴들로 돌아간다....

그레이브 디거가 용병으로 돌아온다는, 영화로 따지면 캐릭터 탄생을 알리는 도입부 격입니다. 그나마 마지막 각성은 조각내버렸다는 한 마디로 끝이고요. "존 윅"에 빗대어 보면, 자동차와 개의 복수는 하지도 않고, 다시 킬러로 각성해서 집에 쳐들어온 마피아 조직원을 죽이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완성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즐거운 응원단" 

고등학교 응원단에 미모의 호랑이 코치가 부임했다. 그녀는 단원들에게 맹훈련을 시켰는데, 단원 중 3명은 그녀가 스터드 하사와 불륜을 저지르는걸 목격했다. 코치는 그녀들을 꼬드겨 친해지지만, 3명 중 한 명인 베스의 도발로 결국 트러블이 일어나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치가 불륜을 저지른 뒤 아이들을 입막음 시키려고 억지로 친한척을 한건 알겠어요. 아이들 중 한 명인 베스가 계속 입을 놀리자 그녀를 견제한 것도 알겠고요. 

하지만 코치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불륜남 친구들과 마약 파티를 벌인다? 한국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륜남 스터드의 친구 프라인이 베스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결말도 뭔가 싶어요. 죽인 것도 아니고, 설령 이 자리에서는 죽였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게 뻔하잖아요? 볼짱 다 본 막장 인생 이야기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설명되지 않고 답없는 전개와 결말을 그려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교차로" 

3인조 은행 강도인 잭 일당은 서부 텍사스 일대를 떠돌다가, 교차로에 있는 작고 낡은 주유소 겸 잡화점에 들르게 된다. 그곳에서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더브와 로이간에 다툼이 벌어지고, 둘은 충동적으로 가게 주인인 노부부를 살해한다. 둘은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두목 잭의 분노가 두려워, 잭에게도 총격을 가하는데....

서부 텍사스의 황량한 묘사, 그리고 작은 가게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묘사가 볼 만했던 범죄 액션극. 가게를 찾은 꼬마가 가지고 있던 총으로 잭이 기사회생하고, 꼬마가 잭의 새로운 동료가 된다는 결말은 독특했습니다. 주어진 암시와 내용을 보면 잭은 악마이고, 나이가 들어 쓸모없어진 인간 부하들을 때때로 교체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별다른 내용은 없지만 액션 장면만으로도 별점 2점은 충분합니다.

"악마의 땅" 

소몰이꾼 출신으로 서던퍼시픽 철도탐정으로 일했지만 해고당한 형제는, 핑커튼 탐정사 취직을 위해 바바리 해안으로 향했다. 구스타프 형은 사람을 관찰해서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내는, 셜록 홈즈같은 취미가 있었다. 하숙집 주인 메그가 둘에게 수상쩍은 일자리를 제안했다. 구스타프는 동생에게 일행인걸 들키지 말자고 말했고, 찾아간 술집에서 갑작스럽게 구스타프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에 대해 기묘한 독촉을 하는 편지에서 시작해서, 편지를 쓴 사람이 형 구스타프와 겪었던 사건으로 끝나는 작품.

사람이 술집에서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 본격물로 셜록 홈즈만큼 똑똑하다는 구스타프 형이 아니라, 힘쓰는 쪽인 동생이 추리를 하는 탐정과 이야기를 하는 화자 역할인 왓슨, 그리고 액션 담당인 브라운 신부의 동료 프랑보우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경구를 떠올리며 추리하는 과정은 홈즈 팬에게는 큰 즐거움이었고, 설득력도 높습니다. 술집에서 급작스럽게 피아노를 친 이유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이며, 좌, 우로 빠져나갈 수 없다면 위나 아래로 사라졌을 거라고 추리하는 식입니다. 결국 동생은 바닥에 문이 있다는걸 알아내고 형을 구해내게 되지요. 

또 소몰이꾼 1인칭 시점의 말투로 전개하는 묘사, 특히나 중간중간 삽입된 소몰이꾼 감성 유머가 아주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근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약간 무식한 막노동꾼 탐정이 등장하는 본격물이라는 점에서 "탐정 피트 모란"이 살짝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바닥의 문은 셜록 홈즈 운운하지 않아도 관찰만 한다면 알아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되고, 메그의 술집에서 벌어진 다툼같은 불필요한 요소는 감점 요소이지만, 장점이 명확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시리즈로 보이는데 다음에는 구스타프 형이 활약하는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네요.

"킴 노박 효과" 

제목은 주인공이 벌이는 사기의 명칭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가 애착을 가진 존재를 등장시켜 사랑에 빠지게 한 뒤 돈을 울궈내는 사기지요. "현기증"에서의 킴 노박 역할에서 따 와 붙인 이름이라고 하네요.

주인공의 킴 노박 효과 사기 생각이 이어지다가, 주인공이 정조역전세계처럼 나이든 과부들에게 킴 노박 효과를 일으키며 돈을 빼 먹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결말은 독특했습니다. 이게 바로 남녀평등이겠죠. 질퍽하면서도 상세하게 묘사된 범죄와 심리 묘사도 볼거리였습니다. 엘모어 레오나드의 작품들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하지만 '주교님'에게 사로잡힌 주인공이 빠져나온 뒤, 남창 역할을 하게 되는 결말은 설명이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완벽한 범죄자였던 주인공을 몰락시키려면, 정교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쉽게 약점을 잡혀버려서 인생이 막장에 몰려 버린다면, 앞서 대단해 보였던 사기와 범죄 행각에 대한 장황한 묘사도 힘을 잃을 수 밖에 없고 결국 이 작품은 시간 낭비에 불과해버리고 마니까요.

주인공과 성형외과 의사, 킴 노박 효과를 일으켰던 배우, 피해자 등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는 괜히 복잡하게 보일 뿐, 이야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또 킴 노박 효과도 의문스럽습니다. 어떤 사람이 옛날 사랑했던 애인이나 전처, 혹은 영화배우와 비슷한 외모의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게 과연 사기일까요? '그 사람이다!'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다른 사람이라는건 당하는 사람도 알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거짓말로 돈을 울궈내는건 사기일 수는 있지만, 이 정도면 추억에 대한 댓가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이들고 부자인 남자가 젊은 여자를 만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은 단편에 어울리지는 않았어요. 훨씬 길고 정교한 작품으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2020/11/1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로버트 바 외 / 이정아 : 별점 2.5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6점
로버트 바 외 지음, 이정아 옮김, 박광규/코너스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두 번째 권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문학의 초기인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발표되었던 단편들이 수록된 앤솔러지입니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과 마찬가지로 정가 할인되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셜록 홈즈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탐정들 등장이 많은게 이채롭습니다. 유명한 외젠 발몽, 마틴 휴잇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탐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산사나이, 자연인 명탐정 노벰버 조와 초창기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는 독특해서 인상적이더군요. 플랙스먼 로우는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수록작들 수준이 모두 높지는 않습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방작이 많은 탓입니다. 시대와 유행에 충실했지만, 뛰어넘지는 못한 셈이지요. "두 개의 양념병"이라는 걸작이 수록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수준 이하 작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가 인하된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거브 탐정, 일생 일대의 사건"

파일로 거브는 마대 자루에 꿰메어진 채 익사한 헨리 스미츠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그의 활약을 모든 리버뱅크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끊어진 전구를 쥐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는데...

도배 및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통신 교육으로 탐정이 된 파일로 거브가 활약(이라고 쓰고 좌충우돌이라고 읽는)하는 시리즈 단편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은 탐정은 "탐정 피트 모란"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피트 모란은 겉에 드러난 것들만 1차원적으로 해석하는 단순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민따위는 하지도 않지요. 당연히 추리보다는 코미디가 핵심인 이야기 들이었고요. 이 작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탐정에 대한 희화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요. 마을 주민 모두가 변장이라는 걸 알아채는 변장을 한 뒤 탐문 수사에 나선다던가, 파일로 거브가 펼치는 수사를 마을 주민 모두가 지켜본다는 등의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피트 모란" 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웃음거리를 제외하면, 나름대로는 추리물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 기묘하게 죽었던 헨리 스미츠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전구였으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어디서 전구를 갈았는지?"를 파악한 뒤 피해자의 작업실로 올라가 전구를 가는 동작을 따라하다가 진상을 알게 되거든요.
피해자는 자신이 만든 '양고기 자동화 포장 기계'로 넘어져 마대 자루로 포장된 뒤 강물로 던져졌던 겁니다. 단서를 찾고, 추리한 뒤 추리를 검증한다는 순서만큼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추리라기 보다는 겉에 드러난 단서를 '추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넓은 범주의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는 아니며, 흡사 "월레스 앤 그로밋"을 연상케 하는 황당무계한, 일종의 다고베르트 머신같은 기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도 언급되긴 했는데, 단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만 점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당연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 

로드 던세이니가 1934년에 발표했던 작품으로 장르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애호가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실 고전 걸작 단편입니다. 마지막의 의외성이 돋보이는, 이른바 '기묘한 맛' 장르의 대표작이지요.

이전에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정통 추리물 성격이 강할 뿐더러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충실해서 놀랐습니다. 이는 마지막 반전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상세한 묘사를 통해 반전을 탐정역인 린리 씨가 룸 메이트인 스메더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은근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스메더스는 살인 용의자 스티거가 구입했다는 양념 '넘누모'를 파는 행상인이라서 린리씨는 샐러드에 뿌려먹게 넘누모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메더스는 거절합니다. "고기와 짭짤한 음식에만 뿌려 먹는 겁니다"며, 잘 모르고 채소에 뿌려 먹더라도 "두 번은 안 하죠"라고요. 이 말로 진상이 드러납니다!

2주일 동안 고기를 어떻게 보존했을지, 뼈와 정말 먹을 수 없는 내장 같은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했을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고전 걸작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린리 씨와 스메더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백작의 사라진 재산" 

외젠 발몽 시리즈 단편으로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에도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트릭이 황당해서, 이전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주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래시계" 

버트럼 이스트퍼드는 골동품상에서 오래된 모래 시계를 구입했다. 시계는 30분 정도 지나면 시간이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그날 밤, 모래 시계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 버트럼 앞에 옛날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 모래 시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190여년 전 자신이 참전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는데...

표제작으로 저자는 '외젠 발몽' 시리즈 작가인 로버트 바인데, 작품은 외젠 발몽 시리즈와는 관계없는 역사 판타지입니다.

일단, 모래 시계 소유권을 주장하던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해 준 전쟁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중위는 장군으로부터 기습 공격 작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걸 몰라서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작전 실패 후 체포되었습니다. 장군은 '모래 시계 모래가 다 떨어지면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떠나고요.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 탓에 총살을 집행할 수 없었고, 장군도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총살 지시를 철회한다는 내용입니다. 긴박하면서도 왠지 모를 유머, 여유가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어떻게 버트럼 앞에 나타났는지부터 이유 불명이니까요. 왜 모래 시계가 파괴되고 중위는 사라졌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버트럼 이스트퍼드가 꾼 꿈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그래서 점수는 2.5점입니다. 여러모로 마무리가 아깝습니다.

"일곱 명의 벌목꾼" 

노벰버 조를 벌목꾼 막사 책임자 클로즈 씨가 찾았다. 작년에 나타났던, 벌목꾼을 대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는 검은 가면이 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클로즈 씨로부터 범인 체포를 부탁받은 조는 파트너 쿼리치와 함께 막사로 향했다. 다음날, 강도를 막기 위해 여섯 명이 뭉쳐 떠났던 인부들이 강도를 당했다며 돌아 오는데...

탐정 노벰버 조 시리즈 단편입니다. 노벰버 조는 깊은 산 속에서 일하는 벌목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이지요.

전개 방식은 셜록 홈즈와 동일합니다.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펼쳐 범인을 잡아내니까요. 여섯 명 벌목꾼이 차를 마셨던 주전자를 깨끗이 씻은 행동 등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사소한 일이 단서가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마신 차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었고, 그걸 숨기기 위해 주전자를 씻었던 겁니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단서가 범인을 드러내는건 아닙니다. 범인을 드러내는건 돈을 숨겨 놓았을 막사를 해체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덕분이거든요. 이에 놀란 범인을 현장에서 잡는게 전부입니다. 차에 수면제가 들어있던건 분명해서, 그걸 씻으나 안 씻으나 별 차이가 없었고, 범인이 특정 시간에 개울가에서 무슨 짓을 했건 별로 중요한 단서가 아니에요.

결론적으로 완성도는 그닥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미치지 못해요. 벌목꾼이라는 직업이 유용하게 사용돼지도 못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부여한 가치도 역사적 중요성과 초판본 희귀성 뿐입니다. 엘러리 퀸도 '오지 탐정' 이라는 개념 도입만 높이 평가한 셈입니다.

"유령 저택의 비밀" 

잘 생각해보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지. 또한 거기에 덧붙여 이 단 하나의 발자국까지 잘 생각해보게 뭔가 번쩍하고 해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나?" 

심령학에 정통한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가 등장하는 단편. 심령 현상도 과학과 추리로 풀어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걸 추리해 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고요.

그러나 진짜 유령이 나온거라는 결말 만큼은 영 별로네요. 이 정도까지 추리로 풀어내었다면, 사람이 꾸민거라는 진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이디어는 좋고, 추리도 볼만하지만 앞서 설명드렸듯 진상, 결말 때문에 감점합니다.

"레이커 실종 사건"

은행에서 수금을 담당하던 사원 레이커가 실종되었다. 그는 1만 5천 파운드를 지닌 채였다. 경찰은 그가 돈을 가지고 도주한걸로 판단했지만, 마틴 휴잇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

사립탐정 마틴 휴잇 (휴이트) 시리즈 단편입니다. 마틴 휴잇은 셜록 홈즈 시리즈가 연재된 스트랜드 매거진 출신 탐정으로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이지요. 그래서인지, 작품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여 추리 한 뒤, 경찰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이니까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한 결과가 의외라는 전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도 셜록 홈즈의 라이벌답게 추리적으로는 꽤 괜찮습니다. 수금할 때 레이커를 제대로 바라본 은행 직원은 거의 없었다, 은행 중 한 곳은 입구가 수리 중이었다는 수금 당시 정황, 그리고 레이커가 파리행 표를 살 때 본명을 댔고 독특한 우산만 채링크로스 역에 남겨졌다는 도주 정황을 통해 마틴 휴잇은 수금을 한 레이커는 변장한 가짜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합리적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의외성있는 반전이었을 테고요.

하지만 마틴 휴잇이 진범을 알아내는건 작위적입니다. 레이커 이름이 적힌 우산 속 광고지가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요. 광고지만 없었더라도, 이 범행은 완전 범죄가 되었을거에요. 광고 내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인들에게 진범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광고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최소한 암호 정도는 써 줬어야 합니다. 이럴 거라면 마틴 휴잇이 구태여 발품을 팔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신문 광고란 속 수상한 광고만 보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마틴 휴잇 캐릭터도 문제에요. 유명세에 비하면 별다른 매력은 없기 때문이에요. 이름만 바꾸면 셜록 홈즈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이더라고요. 후대에 그나마 이름을 남긴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은 다들 차별화된 특징들이 있었지요. 도둑인 뤼뺑을 비롯해서 장님인 맥스 캐러도스,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안락의자 탐정 구석의 노인, 멋드러진 별명만큼은 길이 남은 밴 듀슨 (반 두젠), 법의학 탐정의 시조인 손다이크 박사처럼요. 물론 독특하다고 해서 역사에 길이 남는건 아닙니다. 아마추어 괴도 탐정 래플스처럼 지금은 잊혀진 존재도 허다하지요. 그러나 이는 작품 수준이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마틴 휴잇 시리즈는 추리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만큼, 마틴 휴잇만의 개성과 매력을 더하지 못한게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스타일을 잘 따르고 있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이야기지만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바다 건너온 살인자"

로프터스 디컨 씨가 자택의 하치만 성상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장은 거의 밀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고인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헨리 콜슨 씨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둘은 함께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헨리 콜슨 씨는 고인이 애지중지했던 '마사무네 검'이 사라졌다는걸 알아챘다. 그 검은 일본인 게이고 가나마로가 되찾기 위해 부탁과 협박을 반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가나마로는 원래 검의 소유주 아들로, 아버지 영전에 검을 바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헨리 콜슨 씨는 게이고 가나마로가 일본으로 돌아갈 표를 예약했다는걸 알아내는데...

아서 모리슨이 쓴 단편인데 의외로 마틴 휴잇 시리즈가 아니네요. 내용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로, 마틴 휴잇이 등장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겁니다. 등장하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이 마틴 휴잇, 셜록 홈즈와 구분되는 특별한 매력이나 특기, 특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 했습니다. 추리가 진행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거든요. 약간의 범인 심리 분석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고요. 디컨 씨는 외출했다가 급한 용무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집 안에 있었던 누군가가 범인이었을테고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요? 경찰은 침실 창문을 주목했지만, 도링턴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왔다면, 디컨 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했을테고, 그곳에서 범행이 일어났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요. 그리고 도링턴은 하치만 성상이 집에 들어온 날 범행이 일어났고, 성상이 원래 있던 상점에서 물건이 없어지고 부서진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치만 성상 안에 누군가 숨어서 잠입했다'고 추리하지요. 물건 안에 범인이 숨는 이야기는 많을테지만, 이 정도면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네요. 범인 카스트로를 특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했습니다.

게이고 가나마로를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시킨 전개도 좋습니다. 앞서 피해자가 집착했다는 마사무네 검과 보라빛 옻칠 세공품 소개를 통해 가나마로가 한 말 - 큰 돈을 들여서 겨우 검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의미 - 의 뜻이 드러나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 여러가지 일본 물품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 했습니다.

물론 하치만 성상 무게에 대해 좀 대충 넘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사람 한 명 무게가 추가되었다면 이상함을 느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카스트로가 다시 성상에 숨은 뒤 몰래 빠져나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한 몫 잡아서 도주 자금을 마련하는게 상식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단점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빼어난 점이 분명 있고요. 탐정이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날 밤의 도둑"

프로비던트 은행 지점장 아일랜드가 텅빈 금고를 보고 혼절했다. 그런데 경비원 제임스 페어베언은 전날 밤, 지점장 아내인 아일랜드 부인이 지점장실을 향해 남편을 부르는걸 목격했었다. 아일랜드 부인은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지점장이 지점장실 문을 통해 금고로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건강을 회복한 뒤, 범행 시간에 있었던 완벽한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그리고 그의 재산 상태는 완벽해서 금고 돈을 훔칠 필요가 없다는게 드러나는데...

'구석의 노인' 단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아해서 여러 편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낯서네요. 이전 다른 단편집 수록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단편집에서 빠진게 이해가 되더군요. 단순하고 뻔한 탓에 재미없고 지루했습니다. '지점장은 범인이 아니다', '지점장 아내는 거짓말을 해가며 누군가를 감싸주려 한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결론은 쉽게 추리할 수 있어요. 범인은 바로 아일랜드 지점장의 아들이었던 거지요. 아들이 사건 발생 후 은행을 바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이 추리를 뒷받침하고요. 이 정도 사건을 구석의 노인에게 의지하는 버튼 양은 너무 무능력한게 아닌가 싶네요. 경찰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좋아하는 시리즈의 미번역 초역을 읽어보았다는 의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대리 살인" 

작가는 M.M 보드킨입니다. 작가는 영국에서 판사까지 역임했던 법조인이었다네요. 그래서인지, 클라이막스는 법정 공방이더군요. 정식 법정은 아니고, 검시이긴 합니다만 배심원이 배석하고, 변호사가 반대 심문을 하는 등 정식 법정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법정 미스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밀실에서 구식 전장총이 발사된 장치 트릭입니다. 물병을 돋보기처럼 쓴 게 진상이고요.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으로 익숙한 트릭이지요. 엉클 애브너는 1918년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이 원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작가 보드킨과 탐정 폴 벡이 포스트와 명탐정 엉클 애브너만큼 알려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조로서의 영광은 커녕, 잊혀져 버린거지요.

읽어보니 잊혀진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 완성도가 별로인 탓입니다. 우선 쓸데없는 묘사가 많고 장황합니다. 에릭 네빌이 정원으로 나가 복숭아를 먹는 묘사가 2페이지에 걸쳐 설명될 이유는 없어요. 그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 트릭은 대충 넘어가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에릭 네빌이 압박에 못 이겨 자백하고 쓰러진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어요. 트릭이 간파되었다 하더라도, 실수인지 살의가 있었는지 증명하는건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에릭 네빌이 정말로 목이 말라서 물병을 그곳에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엉클 에브너 시리즈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

2020/07/03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 황세연 : 별점 1.5점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 4점
황세연 지음/마카롱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8년, 충남 청양군 장평면 중천리라는 촌 마을에 살고 있던 젊은 미망인 소팔희는 마을 주민 신한국을 도둑으로 오인해 살해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신한국의 시체를 이장의 차에 치어 죽은걸로 위장하고, 마을 주민들은 '범죄없는 마을'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사건 은닉을 결정했다.
그날 신한국의 집에 화재가 발생하여 사체가 발견되었고, 마침 마을의 자살 명소로 유명한 구멍 바위에서도 자살자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이 출동했지만 폭우로 인해 일단 철수하여 마을에는 조은비 기자와 최순석 형사만이 남아 조사를 이어가는데....

한국 작가 황세연의 장편으로 작년 (2019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장편 소설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핵심 수수께끼는 신한국의 죽음, 그리고 사체에 심한 폭행과 감전, 교통 사고 등 다양한 흉행의 흔적이 남은 이유가 무엇인지? 입니다. 진상은 곧바로 마을 주민들의 '시체 떠넘기기'에 의한 걸로 밝혀지고요.

시체를 옮긴 뒤 살인 누명을 씌운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18세기 후반 "성진사전"은 시체를 성진사 문 앞에 가져다 둔 뒤, 성진사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돈을 갈취한다는 이야기라고 하니까요. 술취한 사람 옆에 시체를 두고 누명을 씌우는 일은 뉴스 등에서도 곧잘 보아왔던 이야기지요.
그러나 작품 속 신한국 시체 떠넘기기는 누명을 씌우려는 목적은 덜하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누명 보다는 '나만 아니면 돼'에 가깝습니다. 시체 돌리기의 발단인 우태우 이장이 소팔희 축사로 사체를 옮기려 한 행위처럼요.
그 이후의 시체 떠넘기기는 거의 다 우연에 의한 것이라 의도적이지도 않습니다. 박광규의 실수로 양식연 양식장에 시체가 빠지고, 양식연의 실수로 왕주영의 차 앞에 시체가 떨어져 왕주영이 자기가 차로 치었다고 착각한게 진상이거든요. 그나마 왕주영이 우태우 이장 차에 치인걸로 위장하는 것 정도만 전통적인 시체 떠넘기기에 가깝습니다만, 이 역시 누명을 씌우기보다는 '나만 아니면 돼' 쪽이지요.

그러나 '나만 아니면 돼'와 우연과 실수로 점철된 시체 떠넘기기의 과정은 가면 갈 수록 지루해 집니다. 양식장에서 전기를 흘리지 않았다면? 왕주영이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과 같은 부수적인 우연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지요. 작위적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건 너무 심했어요.

그나마 하룻밤 새 벌어진 시체 돌려막기 행각은 나름 속도감 넘치며 우스꽝스러워 읽는 재미는 나쁘지 않아요. 헐리우드 코믹 범죄극을 보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러나 사채업자 사병채 일당이 신한국에게 빌린 돈을 받으러 쳐들어 온 뒤부터는 영 별로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범죄(?) 행각을 알고 협박하며, 역시나 채무자였던 소팔희를 끌고 가서 팔아넘기려는 행각은 앞선 유쾌하고 순박한 분위기와 거리가 너무 멀거든요. 

결말도 억지스럽습니다. 사채업자들이 콜라 뚜껑 하나만으로 선뜻 몇 억에 해당하는 채무를 탕감해주는 장면도 이해가 되지 않고, 최순석이 현금 3억원에 가까운 강남 아파트를 자기와 별 관계없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선뜻 내 놓는 이유 역시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아가 된 아픈 기억에 대한 진상을 깨우쳤다 한 들, 그건 마을 사람들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니 딱히 선행을 베풀 이유는 없습니다. 한국의 컨텐츠들을 사로잡고 있는 불행한 과거와 부모와의 사랑을 그린, 길이 늘리기 목적의 신파극에 불과해서 고독한 안티 히어로이자 독고다이 악당인 최순석 캐릭터하고도 어울리지 않아요.

사채업자들이 마을에서 담근 독버섯주를 먹고 환각을 일으켜 사고로 죽는다는 결말도 너무 뻔했습니다. 중반에 조은비 기자와 최순석이 독버섯주를 먹고 환각에 빠졌을 때 이미 드러난 설정이기도 하고요. 뭔가 복선을 활용한 듯한 부분은 이렇게 뻔한게 대부분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신한국의 복권과 콜라, 독버섯 주가 대표적이에요.

발견된 단서가 모두 증거가 되어서 범인과 이어지는 전개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박광규의 라이터가 좋은 예에요. 또 마을 사람들이 쓸데없이 법의학이나 과학 수사에 나름 지식이 있는 듯한 묘사가 많아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은 방향은 아니었어요. 범죄 없는 마을에 상금을 준다던가, IMF 때 콜라가 강남 아파트를 경품으로 내 걸었다는 무리수 넘치는 설정들도 그러하고요.

하긴, 등장인물들 모두가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으니 이런걸로 문제 삼는 것도 좀 웃기네요. 등장 인물들 이름부터 문제니까요. 조은비 기자와 최순석은 무난하다 해도, 젊은 미방인 소팔희는 소를 판 돈을 세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에서 따온 이름, 양식장을 하는 호수집 주인 이름은 양식연입니다. 피해자 신한국과 범죄 없는 마을 타이틀을 위해 시체를 은닉하려는 이장 우태우, 마을 사람 왕주영은 90년대 정당과 정치인에서 따온 이름이고요. 이런 류의 작명은 다른 조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클라이막스로 몰고가는 악덕 사채업자의 이름은 사병채니까요. 소씨, 우씨, 왕씨에 사씨 같은 흔치 않은 성에다가 이름마저 이러니 반쯤은 장난같아서 집중이 잘 안되더군요. 점점 심각해지는 작품 분위기와도 영 어울리지 않았던건 물론입니다.

물론 건질게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몇 안되는 단서들을 발견하면서 진상에 접근해가는 조은비 기자와 최순석 컴비의 활약도 꽤 볼거리이고요. 욕이 난무하지 않는 묘사도 마음에 들고, 개성넘치는 캐릭터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누구에게나 반말을 해서 '양순이(서양여자)'라는 별명을 가진 소녀 황은조가 아주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이냐고 하면 그렇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나, 이야기 재미면으로나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거든요.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도대체 어떤 작품들이 출품되었던건지 좀 궁금해지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이런 시골마을이면, 왜 마을 사람들이 달랑 3명 밖에 안되는 사채업자들을 합심해서 사고로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말이죠. '범죄 없는 마을'도 물 건너간 상황인데, 앞 뒤 가릴 이유가 있을까요?

2020/06/13

미스테리아 2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23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엘릭시르에서 출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추리 전문 잡지로 2019년 3월 출간된 과월호입니다. 특집이 "명탐정 코난"이라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알라딘에서 중고를 발견해서 저렴하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에 가깝습니다. 과월호로 산게 다행이다 싶더군요. 특집인 "명탐정 코난"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탐정 코난"이 "소년탐정 김전일"의 대 히트로 기획되어, 당시 신인 만화가였던 아오야마 고쇼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첫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소개해주고 있는 구성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나무위키 등 인터넷 상에 있는 각종 정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코난" 속 주요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의 유래에 대한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마다 이 특집 전체 분량만큼을 할애하고 있는 나무위키에 비하면 턱도 없는, 그야말로 기본 정보만 알려줄 뿐이라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만화 속 에피소드를 클로즈드 서클,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독살, 마술사, 알리바이, 미스터리 투어, 물리 트릭의 8종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내용은 더 별로에요. 일단 분류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클로즈드 서클과 미스터리 투어는 이야기의 '상황' 이고,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알리바이, 물리 트릭은 '트릭' 이며, 독살은 방법, 마술사는 직업이라 아무리 보아도 동일한 수준의 분류가 아닙니다. 주요 소재를 끄집어 내었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키워드를 도출한 뒤 관련된 추리 소설 등을 풀어놓는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도 않고요. '마술사'를 이야기하는데 마술사 탐정인 그레이트 멀리니 인용이 없는 등 내용도 부실합니다. 이런건 아무래도 저자 편의에 따른 특집 기사 페이지 보충용 글 뭉치가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듭니다. 저만 해도 이런 키워드에 '변장'이나 '축구' 를 추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건 금방 할 수 있거든요. 변장이 등장하는 범죄물은 수도 없고, 축구는 "파리의 밤은 깊어" 정도만 당장 떠오르지만, 다른 스포츠 물도 인용하면 충분히 한 꼭지 글은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 무의미한 키워드 도출말고 코난에 대해 의미있는 컬럼이나 분석이 실리는게 더욱 좋았을겁니다. 추리 만화계 전반의 흐름과 함께 코난이라는 작품의 위치를 짚어주어도 좋았을테고요. 이 특집은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특집 기사 외에도 책 소개라던가, 드라마 작가인 도현정 작가 인터뷰도 이번 호는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도현정 작가 인터뷰는 두 번째 핵심 기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분량이기는 한데, 드라마들 전부를 보지 못했고 딱히 관심도 없어서, 드라마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내용은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기사와 글이 없는건 아닙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속 음식들을 작품과 함께 재미나게 소개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은 언제나처럼 포만감을 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법의학을 통해, 상세한 과학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 과거 사건을 소개해 준다던가, 옛 사건을 기록한 논픽션들도 마음에 드는데 이 중에서도 1950년대 말,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의 화재 사건은 몰랐던 사건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 방화인지, 정말 실수인지, 누군가의 음모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결말도 재미있었어요.
"겨울 여자"를 쓴 조해일의 범죄 소설 "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한 글도 인상적입니다. 대중 소설의 1인자가 추리, 범죄 소설의 수법을 차용하여 사회파스러운 작품을 일찌기 발표했었지만, 작가 스스로도 한계를 느낀 범작에 머무른 이유를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해방 후 20세기까지 한국 추리 소설의 한파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작가 송시우의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는 엄지 척! 입니다. 작가의 단편집에 등장했던 서행물산 총무부 과장 임미숙이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인데 일상 속에서 벌어진 비일상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빚어진 범죄를 일반인 임미숙이 해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행물산의 문제아 신입사원 추예나의 집을 찾아간 임미숙이, 그녀의 집에서 나타난 수상한 남자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추예나의 건방진 전화를 받고 진상을 깨다는 부분이 백미에요. 간단한 암호 트릭인데, 그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득력은 충분했습니다. 다른 시리즈 작품을 꼭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실리아 프렘린의 "정말 필요한 경우"는 오싹, 불쾌하면서도 서늘한 반전이 있는 일종의 '기묘한 맛' 류의 작품입니다. 80이 넘은 독신 노처녀가 공짜 전화를 놓는게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를 그리고 있는데, 앞 부분의 복선과 함께 하는 반전은 꽤 그럴싸 했습니다. 빼어나지는 않아도, 평균은 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마지막의 "가스등"은 히치콕 영화로 유명한 작품 시나리오를 3부작으로 나누어 1부를 싣고 있는데, 영화를 한 번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진진하더군요.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서스펜스만큼은 명불허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다른 장점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특집 때문에 구입했는데, 특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음에 들었던 논픽션들만 별도로 출간되기를 기다리는게 훨씬 낫아 보이네요.

2020/02/22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에도가와 란포 / 박현석 : 별점 2.5점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전설적인 에세이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오래 전 부터 존재를 알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 저 역시도 추리 소설(요리 중심이지만)에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 경험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책은 1956년에 출간되었으며, 주로 1950년대 "환영성" 등 이런저런 잡지들에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1953년, 에도가와 란포가 영미 탐정소설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던 트릭을 800여개 수집하여 쓴 "유형별 트릭 집성"이라는 글이 유래이며, 이 글로부터 여러가지 에세이들이 파생되어 이런저런 잡지들에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이 책의 탄생과정
1. 기발한 착상
2. 뜻밖의 범인
3. 흉기로써의 얼음
4. 특이한 흉기
5. 밀실 트릭
6. 은닉 방법에 관한 트릭
7. 프로버빌리티의 범죄
8. 얼굴 없는 시체
9. 변신 소망
10. 이상한 범죄동기
11. 탐정소설에 나타난 범죄심리
12. 암호기법의 종류
13. 마술과 탐정소설
14. 메이지의 지문 소설
15. 원시 법의학서와 탐정소설
16. 스릴에 대해서

각 주제별로,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충실히 들어가며 설명해 줍니다. 책의 특성 상 당연히 핵심 트릭이 까발려지고요. 노리즈키 린타로"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생충같은 책인거지요.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읽기 힘든, 오래전 잊혀진 작품들이거나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본 고전들, 아니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작품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또 미스터리 가이드에서처럼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트릭이 쓰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두루뭉실, 애매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리고 거장이 쓴 책 답게, 단순히 트릭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깊이있는 식견을 보이는 글도 많아요. 마지막 16장인 "스릴에 대해서"가 좋은 예입니다. 스릴의 종류를 상세히 분류하여 이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내용인데, 실로 이치에 맞고 설명도 적합하여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예로 드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서 60여년 이상 지난 탓이 가장 큽니다. 대표적인 예는 "이상한 범죄 동기"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미스터리"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에는 거의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라 특별히 소개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암호 기법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읽기에는 다른 비슷한 책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부실한 편이에요. 메이지 시대 지문을 증거로 삼는 소설이 처음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는 "메이지의 지문 소설"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하나의 트릭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서술 트릭이 빠져 있는 등, 현대적인 작품 속 최신 트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출판사나 후대의 작가가 증보판을 출간하는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제가 가끔 읽는 'oo의 지구사' 시리즈에 주영하 씨가 한국의 상황에 대해 수록한 글처럼, 다른 작가가 부록 형식으로 뒤에 최신 트렌드를 덧붙이는건 얼마든지 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책의 완성도, 모양새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또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출간되었다면 무슨 제목으로, 어디에서 출간되었는지를 따로 소개해 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어요. 어차피 추리 소설의 애호가들만 구입할 이런 류의 책에서는 필수적인 정보인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름의 가치는 분명하나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는 낡은 결과물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부족하고요. 추리 소설의 대단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즐길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누군가가 21세기에 걸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재출간해 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2020/01/09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유성호 : 별점 2.5점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6점
유성호 지음/21세기북스

법의학자 유성호가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죽음'에 대해 서술한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저자가 "미스테리아"에서 연재하고 있는, 실제 사건 속 법의학 이야기를 펼쳐내는 컬럼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터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미스테리아" 연재 컬럼과 비슷한 내용의 책일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책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제 실수지요. 

그래도 다행히 총 3부 구성 중 1부인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는 비교적 기대에 값합니다. 여러가지 실제 사건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법의학 소견과 검시 결과 등이 소개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완전범죄를 꿈꿨던 범행들이 눈에 뜨입니다.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이라던가, '의사 만삭 아내 살인 사건' 처럼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왔던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를 더하고요.

그러나 2부인 "우리는 왜 죽는가"와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부터는 이런 실제적인 법의학 관련된 글은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 역사적, 철학적, 과학적 개념을 다루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2부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뇌사와 연명 의료 지속 여부, 그리고 안락사 이슈에 대해 심도깊게 접근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평상시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제라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특히 환자 자신이 연명 의료를 받을거라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연명 의료로 생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 결정을 정작 당사자인 환자는 하지 못한다는 이슈는 남 이야기 같지도 않더라고요. 법의학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이러한 이슈에 대해 국내에서 법제화되거나, 법원 판결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생기게 된 1997년의 '보라매병원 사건' 과 2008년 '세브란스 병원 연명의료 판결' 과 같이 실제 사례가 소개된 것도 이해를 돕습니다.
자살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부분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근거를 가지고 접근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잡지 《뉴요커 The New Yorker》가 금문교에서 투신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행히 구출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리고 우리나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안용민 교수가 실제 자살 시도자를 진료하면서 들었다는 이야기 및 이를 연구한 내용들에서 자살자들 모두가 막상 죽으려는 순간에는 살고 싶었다고 생각했다던가, 자살의 원인으로 자살 유전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자살 유전자는 세로토닌이라는 뇌 신경화학물질과 관련되어 있다는군요. 물론 아직 명확하게 그 근거를 밝힐 수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자살의 원인 중 70퍼센트는 환경적 요인이고 나머지 30퍼센트는 유전적 요인일 것이라는 정도라고는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 자살자가 있는 가족은 보다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설명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3부만큼은 영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한 설명들인데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고, 저 역시 불필요한 연명 치료는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니까요. 하지만 저자의 약력이라던가, 다른 글들에서 기대했었던 실제적인 사건과의 연계라던가, 법의학자로서의 전문성이 묻어나는 글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마지막의 영생 등에 관련된 내용은 지금 시점에서는 많이 앞서간 측면이 없지 않아 보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러모로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제 기대와는 다른 결과물이었습니다. 차라리 "미스테리아" 연재 컬럼이 단행본화되면 좋겠습니다.

2019/07/07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민웅기 : 별점 2점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4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민웅기 옮김/바른번역(왓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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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의사로 일하던 저비스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장소로 왕진을 나가서 모르핀 중독으로 보이던 환자 그레이브스를 치료했다. 이후 저비스는 감금되다시피 이동했던 상황, 심상치 않았던 환자의 상태 때문에 사건을 친구 손다이크와 상의했다. 손다이크는 그 집이 어딘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두 번째 왕진에서 저비스는 그레이브스가 거의 사망 직전이라는걸 알고나서 왕진 후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당장은 사건성이 없다며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후 저비스는 고용 의사를 그만두고 손다이크 박사와 일하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수임한 사건은 기묘한 유언장 사건이었다. 의뢰인은 사망한 제프리 할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게 된 스티븐이었다. 그는 별 것 아닌 삼촌의 유언장 수정으로 거액을 상속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사건을 조사한 손다이크 박사는 이 사건이 저비스가 접했던 기묘한 환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걸 밝혀내는데...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장편입니다. 저자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풀려서 번역된 것 같네요. 저작권 만료된 작품이 주로 발매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 '왓북'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당연히 종이책은 없습니다.

읽기 전 기대가 컸습니다.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고전 본격물이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명이었던 손다이크 박사의 장편으로, 이전에 읽었던 손다이크 박사 장편은 모두 괜찮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다운 부분은 전부 장점입니다. 첫 번째는 현장을 방문하여 온갖 쓰레기를 샅샅이 뒤져 단서를 모으는 등 당시의 과학 수사가 치밀하게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초반에 저비스가 철저하게 마차에 가두어진 채로 미지의 장소로 왕진나갈 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경로 추적도를 만드는 장면이 일품입니다. 단순한 나무판에 나침반을 부착하고 수첩을 곁들인 정도지만, 그래도 방향이 바뀔 때의 시간 및 상세한 정보를 수첩에 자세하게 기록하는 방법은 꽤나 유용해 보였습니다. 서명을 분석하기 위해 사진 확대를 이용하는 장면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고요. 

두 번째는 본격 추리물로서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화자 저비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쫓아갑니다. 그래서 탐정과 독자에게 모든 정보와 단서는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디테일도 상당히 좋아요. 바이스 씨는 분명히 독일인이라고 했는데 집에 커피가 없고 차만 있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독일인은 보통 커피를 마시지 차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네요.
물론 몇 가지 단서들(기묘하게 생긴 갈대, 깨진 유리 조각 등) 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정체를 알기 힘들다는 문제는 있지만, 이 정도 단서는 없어도 진상에 이르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세 번째는 당연히 손다이크 박사의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다는 점이죠. 저비스가 의사를 떼려 치우고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일하게 된 첫 번째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손다이크 박사가 법의학자가 아니라 변호사로 소개되는게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고 많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진상이 너무 알아차리기 쉬운데, 저비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점입니다. 당대 독자 수준이 저비스 수준이라 이렇게 썼겠지만 지금 읽기는 너무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미 독자는 초반부, 저비스가 왕진나가 진찰했던 환자 그레이브스가 시체로 발견된 제프리라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편에 취해 결국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는 사인, 그리고 한 쪽 눈에 두드러진 실명에 가까운 증상 등의 단서 때문이지요. 과연 누가 그를 감금하여 살해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당연히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피해자의 형 존이 유력하고요. 그리고 존이 제프리와 꽤 닮았으며 배우로 활동했다는 이력을 듣고나면 그가 제프리로 변장해서 뉴 여인숙에 거주했다는걸 모르면 바보입니다. 설형문자 액자가 뒤집혀 있었다는 증거까지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저비스는 이런 점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저비스라는 인물의 설정에도 문제가 있어요. 초반부 저비스는 분명히 능력이 있는 걸로 묘사됩니다. 홀로 그레이브스에게 왕진갈 때가 좋은 예입니다. 그레이브스 코의 안경 자국을 보고 이건 얼마 전 까지 안경을 쓰고 있다는걸 나타내므로 오랜 기간 혼수상태였다는 바이스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걸 추리해 내거든요. 그러나 두 번째 왕진부터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의식을 찾은 피해자는 저비스가 계속 "그레이브스 씨"라고 말을 걸 때마다 당황해합니다. 누가 봐도 자기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걸 계속 놓칩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표현을 빌겠습니다. "저비스, 자네는 정말 구제불능이군". 단지 바보일 뿐 아니라 제프리 죽음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고 범죄의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그를 죽게 내버려둔 셈이거든요. 손다이크가 악당들의 위치를 알아낼 방법까지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핑계는 단지 바쁘다는 것 뿐이고요.
이래서야 아무리봐도 추리 소설의 사이드 킥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비스를 자신의 파트너로 불러온 손다이크도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추리에 있어서도 헛점이 눈에 뜨입니다. 바이스 박사가 은신처를 떠나면서 편지가 올까 두려워 열쇠를 가지고 자주 왕래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곧바로 다음 세입자가 입주해버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변장용 안경에 반드시 돗수가 있어야 한다는 추리는 현 시점에서 보면 그닥 일리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경용도 아니고, 회중 시계용도 아닌 유리의 정체가 범인을 밝혀내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도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위적인 우연, 불필요한 장치도 지나치게 많습니다. 저비스의 왕진이 사건과 겹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저비스가 그레이브스 씨라고 불리운 제프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덜어내고 추리를 펼치는게 더 완성도는 높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바이스 씨의 부인이 사시였다던가, 바이스 씨와 마부는 동일인물이었다는 등의 장치는 불필요했고요.

마지막으로 사건이 밝혀지는 계기가 된 다시 쓴 유언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확인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원래 존은 250 파운드만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바뀐 유언장에 의해 '잔여 재산 수여자' 가 되어서 죽은 고모의 유산 3만파운드를 받는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모든 유산의 수령인은 조카 스티븐인데, 왜 고모의 유산이 잔여 재산이 되어 존에게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너무 쉬운 내용이라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없었고, 특히 저비스의 왕진 부분은 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팬이시라면 모를까,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8/08/19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 D.P. 라일 / 강동혁 : 별점 2점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 4점
D. P. 라일 지음, 강동혁 옮김, 강다솔 감수/들녘

전문의이자 미스터리 작가이기도 한 저자 D.P 라일이 미스터리 작가들을 위해 운영하는 자문 사이트에 올라온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여 모아 놓은 책입니다.

실제 작품에 사용하기 위한, 굉장히 실용적(?) 인 질문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저에게는 '독물'에 대한 정보들이 아주 유용했는데,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사막에서 표류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물질은? 이라는 질문에 등장하는 알코올 관련 이야기가 있습니다.

맥주를 예로 들어 알코올은 이뇨제처럼 작용한다고 설명하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라식스' 라는 약을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것이라는 정보와 함께 말이지요.

흰독말풀이 효과적인 독극물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유용합니다. 악취도 심하고 맛도 지독하지만, 먹일 수만 있다면 굉장히 유독하다고 하네요. 술에 섞으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있고요. 비슷하게 쉽게 구하 수 있는 벨라도나, 독미나리, 디가탈리스, 사리풀 등에 대한 정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항상 궁금했던, 수은 온도계의 수은이 정말로 유독한지에 대한 답도 있습니다. 실제로 유독한데, 섭취보다는 증기로 만드는게 더 강력하다는군요. 이런 위험한 물질을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다니!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그 외에도 베타 차단제라는 일련의 약품은 스트레스 반응을 무디게 하여 거짓말 탐지기를 무력화 시킬 수도 있다, 담수 익사와 염수 익사의 구분 방법, 협죽도를 먹으면 고양이가 중독되는지 여부 등 관심이 있다면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쓸만한 정보들이 많습니다. 

독물 외에도 평상시 궁금했던 내용도 가득합니다. 그 중에서도 알코올 섭취로 동사를 막을 수는 없다, 표류 중 소변을 마시는 건 생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가 의외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베개를 이용한 질식 살인이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을테고요. 같은 이치로 다양한 시신 유기 방법에 대한 정보도 읽을만 합니다.

하지만 문제라면 읽으면서 재미를 찾기는 힘들다는 점입니다. 물어보는 사람한테만 궁금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답변도 애초에 원론적인 의학적 정보 기반 내용이라 재미있을리 없는 탓입니다. 내용도 별다른 가공없이 인터넷 사이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고요. 차라리 정보를 기반으로 한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식으로 재미를 더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이대로라면 작가 지망생을 위한 일종의 자료집에 불과해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정말로 미스터리 작가를 지망한다면, 혹은 사람이 죽는 과정이라던가 방법에 관심이 많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으니까요. 설령 이 책을 읽지 못했다 하더라도 미스터리 작품을 쓰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의사들만 미스터리 작품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덧붙이자면, 책의 성격은 굉장히 애매한데 "추리, 호러 관련 독서" 로 분류합니다.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한 일종의 참고서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