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5/07/28

제비뽑기 - 셜리 잭슨 / 김시현 : 별점 2.5점

제비뽑기 - 6점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엘릭시르

고딕 호러의 대가라는 셜리 잭슨의 단편집. 이전에 <우리는 예전에 성에 살았다>를 읽기는 했지만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은 제가 좋아하는 단편집이라 서슴없이 집어들었습니다.

25편의 작품이 4개의 목차로 구분되어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를 작가 특유의 디테일로 천천히, 그렇지만 섬찟하게 잡아낸 작품들입니다. 주인공들은 노처녀, 주부 등 여성이 많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불편함과 불안함이 모종의 이유로 촉발된다는 내용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결혼빙자 사기범에게 속아 넘어간 노처녀가 그 남자를 찾아 해멘다던가, 자신의 집을 깔끔하게 꾸며온 깔끔남이 집을 불청객에게 내 준다던가, 키우던 개가 동네 닭을 물어죽인 뒤 개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를 강요받게 되는 식이죠.
본인이 가해자, 혹은 광기의 중심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한 주부가 새로 이사온 이웃집과 친해지지만 그 집 미망인이 흑인과 관계를 맺게 되자 차별에 동참하게 된다던가, 안 팔리는 작가 에이전트 노처녀가 남자를 초대한 뒤 기묘한 환상을 꿈꾼다던가, 뉴욕으로 관광온 시골 주부가 뉴욕이 붕괴한다는 망상에 휩싸인다던가, 치통에 시달리던 중 결국 자신만의 광기로 진입한다는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그 중 화룡정점은 표제작이기도 한 <제비뽑기>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았고 결말이 예상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집단 내 고립과 편견, 집단에서 행하는 차별과 집단의식에 의한 폭력을 "제비뽑기"라는 행사를 빌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은 지금 읽어도 대단함을 느끼게 해 주네요.

그런데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며, 주위의 영향을 받아 쉽게 붕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탓에 한편, 한편이 읽고나면 굉장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딱히 서늘한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닌데 심리 묘사만으로 이만큼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다니, 역시나 거장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편하고 불쾌해도 다음 작품을 어떻게든 읽게 만드는 힘 역시도 거장의 위력일테고 말이죠.

문제는 불편함때문에 읽기 힘들었다는 점이죠. 단편집임에도 불구하고 1주일이 넘어 걸렸네요. 아울러 기대했던 추리나 스릴러, 호러적인 요소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퍼트리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의 순문학 단편집들이 연상되는 작품들로 수준은 높습니다만... 제가 기대했던 이야기들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디테일한 심리묘사에 더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맛 하나만큼은 최고임에는 분명한 만큼,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읽으면서는 눈치채지 못했던 설정을 알려주는 해설이 아주 좋더군요. 제임스 해리스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각 단편별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설정인데 혼인빙자 사기범, 집을 찾아온 불청객 모두 제임스 해리스이고 다른 단편들에 등장하는 불안을 불어 일으키는 촉매재 역시 제임스 해리스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니 놀랍습니다. 이런 장치 때문에 작품들이 연작으로 보이기까지 하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