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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4

보험과 범죄 - 쯔키타리 카즈키요 / 황남일, 이홍미, 이미영 : 별점 3점

보험과 범죄 - 6점
쯔키타리 카즈키요/두남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서 구입한 책. 보험 범죄 사례를 역사별, 유형별로 소개해 줍니다.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일본 사례가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 몇개도 감초처럼 추가되어 있어서 얄팍하게나마 보험 범죄라는 것에 대한 시각을 많이 넓혀줍니다. 특히나 1762년 영국의 "이네스 사건" 부터 보험이 태동한 초기부터 이미 현재까지 계속되어오는 다양한 범죄들이 있어 왔다는 것에서 많이 놀랐습니다. 역시 인간은 무서워요...
이 책에서는 보험 범죄를 생명 보험 범죄와 상해 보험 범죄로 크게 구분짓고 있는데, 생명 보험 범죄는 역시 바이블과도 같은 보험금 살인, 즉 보험금 수취인인 범인이 피보험자를 제 3자의 살인으로 보이게끔 위장한 범죄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고나 타살로 위장한 자살, 그리고 사망사고의 날조, 기타 사기에 의한 보험사고를 다루고 있고, 상해 보험 범죄는 자기 상해, 그리고 사고의 날조로 나누어 다룹니다.
이렇게 구분되어 실린 사례가 무려 100여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비정한 범죄에서 부터 시체도굴까지 다양한 사례가 등장해서 읽는 동안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습니다. 분량도 짧아서 읽기도 편했고요.
이 중에서 1982년에 일어난 "하천부지 아들 살해사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해 왔던 범인이 새로운 결혼 상대자와의 행복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새로운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살해한 사건-과 1932년의 이른바 "철인 마로이 사건" - 백수건달 마로이의 단골 술집 주인 토니 마리노가 마로이에게 생명보험을 가입시키고 살해하려 했으나, 부동액, 다량의 메틸알콜, 썩은 통조림을 먹이거나 추운 겨울에 바깥에 술을 먹이고 방치하는 등 여러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로이가 그때마다 끈질기게 살아난 사건 (결국 죽었지만) -. 그리고 미국인 칼라일이 자신의 습관성 어깨탈구를 이용하여 상해 보험을 청구한 1950년의 "칼라일 사건"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독살 귀부인 마르타 마레크나 가짜의사 홈즈 사건과 같은 유명 범죄도 실려 있는 등 풍성한 사례만으로도 자료적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초반부와 마지막 부분에서는 보험 회사에 대한 상세한, 그러나 지금은 좀 낡아버린 법적인 내용을 길게 다루고 있어서 흥미가 떨어지며, 번역자가 2명에 감수까지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역시 80년대스럽고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래도 보험 범죄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면 충분히 제 값을 하는 책이긴 합니다. 저야 헌책방에서 구입했으니 더욱 만족스럽고요. 추천하기엔 좀 미묘하지만 혹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9/07/01

일본살인여행 - 니시무라 교타로 : 별점 1.5점

아오모리와 아키다현에 걸쳐있는 토와도 호의 오피스텔에서 이세키 유키라는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다. 자기가 언니를 사고사로 위장하여 살해한 뒤, 보험금을 타내 달아난 후루끼 야스오를 살해했다는 신고였다. 그러나 후루끼 야스오는 유키의 칼에 맞기 전에 교살당했다는게 부검결과 밝혀져졌다. 경시청 수사 1과의 토츠가와 경감은 대학시절 친구이자 이세키 유키의 변호사인 나까무라의 부탁으로 후루끼 보험 사기와 살인 사건 수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유력한 용의자였던 후루끼의 옛 친구이자 보험사기 공범자 시로이와 오까베 역시 살해당했고, 사건은 점차 미궁에 빠지는데... 

바로 직전에 읽었던 "히다다까야마에서 사라진 여인"의 작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다른 작품입니다. 관련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찮게 웹상에서 발견하게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개인 번역본으로 보이는데, 저작권에 문제는 있겠지만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고 출간될 일도 없을 것 같아 염치불구하고 읽어버렸네요. 작품은 "히다다까야마에서 사라진 여인"과 유사한 "여정미스터리"로 볼 수 있습니다. 원제는 제목에서부터 "토와다 지방"에 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으니까요(우리나라로 따지면 "해운대로의 살인 여행" 정도 될려나요?). 그만큼 토와다를 중심으로 아오모리와 아키타 지방의 다양한 명승지에 대한 이야기가 사건의 주요 장소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워낙 중요한 장소들과 도로에서 사건이 벌어지기에 이 지방 사람들은 아주 좋아했을것 같군요(아, 이걸 노린건가?).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실망스럽습니다. 제일 첫 사건인 후루끼 살인 사건 뒤로도 무려 4명이나 더 살해당하는 엄청난 연쇄살인극이지만, 헛점 투성이라 이야기의 짜임새가 굉장히 부실한 탓입니다. 예를 들자면 후루끼 살인 사건에서 범인은 이 사건을 다른 용의자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약간의 공작을 펼치지만, 곧바로 용의자가 될법한 후루끼의 옛 친구를 두 명 모두 차례로 살해해 버립니다. 한명이라도 사체를 숨겨 실종 상태로 만들었더라면 사건이 미궁에 빠졌을텐데도 그런 당연한 발상 자체는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후루끼의 유서 역시 범인이 자기한테만 유리하게 꾸민 뒤 자연스럽게 발견되도록 했다면 뒤의 사건들은 벌어질 이유조차 없었고요. 하긴, 애시당초 유서 조작부터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건 전개, 추리의 흐름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대충 넘기는 작풍도 여전합니다. 어떻게 시로이에게 한적한 곳에서 청산이 든 음료수를 마시게 했나? 라는게 대표적이며(도저히 사람이 그냥 지나가기 어려운 오지였으므로), 후루끼 그림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것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즈 캐릭터 토츠가와 경부의 모습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추리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 뒤에 단서를 모아 범인을 옭아매는 모습은 여전한데... 이 작품에서는 범인을 체포할 단서가 없습니다!! 오히려 범인에게 뒤통수를 맞고 친구이자 대학동창인 나까무라 변호사마저 자살하게 되는 등 제대로 체면만 구깁니다. 끝까지 범인은 체포하지도 못하고 훗날을 기약하는 결말은 독특하지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야기를 읽다보니, 범인을 체포할 방도가 아예 없다는 것고 문제고요. 

결론적으로 제가 읽었던 니시무라 교타로 작품 중에서도 최악의 졸작입니다. 불법(?) 컨텐츠로 읽었기에 처음에는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다 읽고나니 돈주고 사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요. 범인이 결국 승리하는 독특한 엔딩만 기억에 남습니다. 이 독특함조차 작가의 의도로 보이지 않는다는게 문제지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07/08/10

대답은 필요없어 - 미야베 미유키 / 한희선 : 별점 3.5점

대답은 필요 없어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집입니다. 잡지 "판타스틱"에서 읽었던 단편이 별로였으며 같은 여성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암보스 문도스" 역시나 그냥저냥이었기에 그닥 기대하고 구입한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상당히 물건입니다! 단편들의 수준도 높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정통파적인 맛이 느껴진 덕분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미야베 미유키의 해피엔딩은 익숙치 않았는데 의외로 아주 좋았어요. 바로 직전에 읽은 "백기도연대"와 정 반대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같이 사무실을 차려서 일할 만큼 서로의 영역에서 인정받는 작가들이긴 하지만 제 취향은 아무래도 저는 쿄고쿠 보다는 미야베 미유키 쪽이라 생각이 드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추리적인 요소가 잘 살아있는 "배신하지 마"인데 다른 작품들도 다 재미있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 대답은 필요없습니다.^^ 미야베 월드 입문작으로 추천합니다.

작품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답은 필요없어" 

일종의 은행사기를 다룬 단편으로 의외성은 없지만 사건 수사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비밀번호"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분의 맹점을 팍!하고 찔러주기 때문입니다. 보험사기 등 현대 신용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구성하는 작가의 전공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요.

"말없이 있어줘"

난데없는 교통사고가 완전범죄와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일본 추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의 수사극"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지만, 결말의 의외성이 독특했습니다. 너무 의외성을 강조한 점, 그리고 우연에 의지한 전개가 보이는 점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는 운이 없어"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일종의 사기극을 다룬 소품입니다.
그런데 작품의 설정이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너무 극단적인 복수극인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장난이지만 너무 심한 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결말부의 약간의 반전 역시 별로였고요. 주인공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에는 다 별로라서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선정합니다.

"들리세요"

어머니와 할머니의 불화끝에 이사를 오게 된 초등학생이 우연찮게 도청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노인의 외로움과 의심 등을 잔잔하지만 나름 충격적으로 담아낸 소품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서정적이면서도 주제를 잘 전달하는 능력이 잘 드러나는 수작입니다.

"배신하지 마"

빚더미에 올라 앉은 신세대 여성의 추락사를 수사하는 내용으로 가장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중요한 단서를 포착하는 부분이 너무 "감"과 "우연"에 의지하는 것은 단점이나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 여성작가답게 심리를 파고드는 점은 괜찮았어요. 씁쓸한 결말의 조화도 마음에 들었고요.

"둘시네아에 어서 오세요"

최고급 디스코텍 둘시네아에 관한 메모를 남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고학생 속기 아르바이트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설정이 일상적이면서도 재미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잔잔하나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2004/03/30

오후 3시 까지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외 / 정태원 : 별점 3점

오후 3시까지 - 6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정태원 옮김/글사랑

그동안 좀 뜸했었네요. 너무나도 지독한 독감에 걸리고 회사일도 바쁜 나머지...  오랫만이니만큼, 예전에 구입했었지만 읽지 않고 쌓아 두었던 책들 중에서 읽기 쉬워보이는 단편집을 골라 보았습니다.

이 책은 알프레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에 수록된 단편 중 13편을 엄선하여 편집한 앤솔러지입니다. 짤막하게 작품별로 소개해드리자면

"하인리히 헤런은 어디에?"
흑마술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공포 스릴러(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추리적인 요소는 약하고 반전도 그냥 그렇지만 섬뜩한 이야기를 괴담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전개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낡은 부적”
순문학 느낌 강한 단편. 보험사기를 다룬 심리물인데 끔찍한 사건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점점 붕괴되어 가는 사람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다룬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피가 낭자한 잔인한 묘사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이는?”
일종의 완전 범죄를 다룬 범죄물. 잔인하다기 보단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마음에 안드는 버스기사 택시로 쫓아가서 때려주기”와 비슷한 이야기랄까요. 여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후 3시 까지”
수록작 작가 중 유일하게 아는 작가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아브라함 레빈 형사 시리즈 단편. 심리 서스펜스물입니다.
어떤 남자의 자살을 막으려는 레빈 형사의 심리를 한정된 짧은 시간동안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소품 느낌이 강하긴 하나 작가의 명성에 값하는, 읽는 재미는 충분히 넘치는 작품이었습니다.

“막다른 길”
전형적인 미국 헐리우드 형사물 스타일의 하드보일드 드라마.
나름대로 비비 꼬아놓기는 했지만 전형적이고 뻔한 이야기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리모트 컨트롤”
암살자의 완전범죄를 위한 변장, 그리고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꽤 재미있으며 치밀한 점이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아요. 2% 정도 아쉬웠달까요?

“이중살인”
불륜 상대가 변태 성욕자에게 살해된 후, 아내를 변태 성욕자를 가장해서 살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반전의 묘미가 상당합니다. 반전 하나때문에라도 읽어볼 가치 충분한, 괜찮은 단편이었어요.

“산타바바라에서 생긴 일”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브릿지”를 소재로 하여 사기와 살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밀한 브릿지 묘사외에는 건질게 별로 없고 특히나 결말부분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브릿지를 잘 안다면 즐길거리가 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수준이하였던 작품입니다.

“지하철에서 생긴 일”
한 선원의 과거 항해에 대한 회상으로, 예전 배에서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1등 부 기관사 폴란스키와 그의 그리스인 조수, 그리고 의사 출신이라는 수수께끼의 남자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범죄 서스펜스물이라기 보다는 잔잔한 소품에 가까운 작품으로 교훈적이기는 하지만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였습니다.

“해리 해스팅스 방식”
해리 해스팅스라는 작가와 한 도둑이 벌이는 재미난 이야기.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 기발하고 글 전체가 유머스러워서 쉽게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추리 단편에서 보기힘든 결말도 마음에 들고요. 이 앤솔러지 전체를 통틀어 베스트로 꼽고싶은 추천작입니다.

“도시의 풋내기”
독특한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 해결사와 현상금 사냥꾼을 섞어놓은 듯한 주인공의 캐릭터가 정말 괜찮습니다. 동시에 벌어지는 두가지 사건을 하나로 묶어 처리하는 깔끔한 이야기 구조도 좋았고요.

“동업자”
두 동업자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했다가 자멸한다는 작품. 유머스럽고 가벼운 소품입니다.

“2차선”
우연히 지방국도에서 만난 대형 트럭에게 쫓기게 된 운전사를 그린 서스펜스 물.
제가 옛날에 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듀얼”과 굉장히 비슷해서 조사해 봤더니 원작이 맞더군요. 영화보다는 덜 했지만 글이라는 수단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서스펜스를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결말부분은 조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말이죠.

이렇게 전체적으로 걸작들은 아니지만 평균작 이상의 작품들로 구성된 괜찮은 앤솔러지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매거진도 집에 몇권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역시 머리를 식힐때는 추리 단편만한게 없는 것 같아요.

2005/07/13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EQMM) 1,2 : 각권 별점 3점


유명한 단편 추리 전문 잡지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EQMM) 한국판 1, 2호.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발견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겠죠? 짧게만 소개해 드리자면, 추리작가 엘러리 퀸이 간행하기 시작한 잡지로 유명한 단편 앤솔로지나 단편집, 단편 작가들은 거의 다 여기를 통해서 알려지고 배출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드가상 단편 부분 수상작으로도 선정된 작품도 많은, 그야말로 단편의 보물창고 같은 잡지죠.

각 권별 전체 평균 별점은 3점. 제가 뽑은 베스트는 1호에서는 "여행중에 생긴 일". 2호에서는 "평생동안의 기다림"과 "클레머티스의 향기" 입니다. 2호보다는 1호가 좀 더 고전파에 가깝다 보이는데 취향에 맞춰 골라보는 재미도 쏠솔하네요. 그러나 한국판은 제가 알기로는 2호가 마지막인듯 싶군요. 좋은 기획인데 역시나 판매부수가 문제였을테죠. 단편 추리물 팬으로서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이 정도 두께와 가격에 이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잡지라면 계속 구입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후에도 계속 출간되었으면 합니다만... 힘들겠죠?

수록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호 수록작
"욕실살인"
나름대로 개인적 인연이 약간 (아주 약간!) 있는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으로 아무도 없는 욕실 안에서 단검에 찔려 살해된 시체때문에 범인으로 몰리는 백화점 직원 수잔 홀트의 이야기입니다. 수잔 홀트는 수많은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중 한명인 모양이네요. 에드워드 D 호크 특유의 "불가능 범죄"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기는 하나 트릭은 좀 시시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

"여행중에 생긴 일"
보험 조사원 숀 콜란 (마스터 키튼? ^^)이 우연히 여행 중 사고를 당해 한 농장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농장 여주인 남편의 교통 사고를 알고나서 나름의 호감과 정의감으로 보험금을 받게 해 주려고 애쓰던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습격을 받게 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이런저런 앤솔로지에서 몇번 접해보았던 도그 앨린의 작품으로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길이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편의 영화처럼 서스펜스 가득한, 긴박감이 넘치는 묘사가 일품이었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부분에 공격받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는 부분도 아주 좋았고요. 그야말로 무릎을 칠 만 했달까요. 별점은 4점!  1호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여자의 행복조건"
생소한 작가 도날드 올슨의 작품. 유산을 둘러싸고 조카딸의 도박꾼 남편 윌리와 베스타 이모가 대결한다는 일종의 완전범죄물로 도박꾼이자 인간 쓰레기인 윌리라는 인물과의 두뇌싸움이 흥미진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놀라운 돼지들"
역시나 생소한 작가 조지 체스브로의 작품.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는 갈쓰 프레더릭슨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돼지를 둘러싼 소송때문에 갈쓰가 머리를 써서 소송을 낸 사기꾼 어크맨을 속여먹는 부분은 좋았는데 후반부가 황당해서 점수를 다 깎아먹네요. 상상력은 기발한데...글쎄요, 저는 적응이 잘 안되더라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계산 착오"
완전 범죄를 노리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여성작가 캔디스 앨리엇의 작품으로 '현대 범죄에서 동기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거나 분석되지 않는다'는 뒷부분 작품 해설처럼 동기보다는 완전 범죄를 위한 주인공의 계획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나름 설득력있는 발상이라고 생각되네요.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 처럼 결국 완전 범죄는 실패로 돌아가는게 문제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다쟁이의 질투"
존 몰티머의 작품으로 원래는 TV용 시나리오였다고 합니다. 짧지만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긴박감있는 법정 장면까지 보여주는 알차고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호 수록작
"비상을 꿈꾸며"
클라크 하워드의 작품으로 악당 조직의 두목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인물을 없애기 위해 항공기 관제사 제드의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는 인질극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서스펜스와 스릴이 확실해서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전개는 대단하더군요. 허나 마지막이 너무 허무한 편이라 아쉽습니다. 단편의 한계였던 것일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번엔 진짜 실탄?"
윌리엄 뱅키어의 작품입니다. 30여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조 헉은 보험 사기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현재 도피중인 인물이라는 이야기로 두번의 반전이 돋보입니다. 충격적이거나 놀랍다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소품같은 느낌이 좋고,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악녀의 죽음"
피터 턴블의 드라마에 가까운 소품. 우연하게 순찰경관이 발견한 방치된 차에서 범죄가 드러나는 과정, 그리고 범인의 심리를 밝히는 결말부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작가가 글을 참 잘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평생동안의 기다림"
1호에도 실려있는 도날드 올슨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 EQMM과 인연이 깊나 보네요. 두명의 노파가 등장하여 갈등관계를 보여주다가 한 노파가 고향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한 내용인데 범죄와 드라마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깊이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보다는 드라마가 중시되는 현대 추리 단편의 좋은 예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페트라코브와 고릴라"
러시아에서 망명한 병리학자 일리아 페트라코브 시리즈로 벤 클라인의 작품입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 고릴라 우리에서 굉장한 힘으로 짓이겨져 타이어에 쑤셔넣어져 있는 시체로 발견되고 범인으로 의심받는 고릴라가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로 캐릭터 측면에서는 손다이크 박사가, 수사 측면에서는 CSI 느낌이 많이 나는 단편이었습니다. 괜찮긴한데 시리즈 캐릭터라는 병리학자 일리아의 매력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단점으로 보입니다.별점은 2.5점입니다.

"콜럼버스의 얼굴을 훔친 사나이"
에드워드 D 호크의 괴도 닉 벨벳 시리즈로 거대한 콜럼버스 동상의 11톤이나 되는 머리 부분만 훔쳐내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시리즈이긴하나 전개와 설정 모두 납득이 잘 가지 않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와 시리즈 명성에 비하면 무척 실망스럽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비밀을 털어 놓은 남자"
H.R.F 키팅의 인도 봄베이 경찰국의 가니쉬 고케 경감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시리즈라고 하는군요. 일종의 "윤회"를 테마로 하고 있는 지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단편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별로 눈여겨 볼 것은 없지만 문체와 전개방식이 독특해서 읽는 맛은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클레머티스의 향기"
미뇽 F 발라드의 작품으로 한 노처녀의 의문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통 추리에 가까운 작품으로 애거서 여사의 단편같은 느낌의, 영국 정통 추리물의 명맥을 잇는 듯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럼 비지니스"
마가렛 요크의 그랜트 교수가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 내용과 전개방식은 고전적이고 정통 추리물에 가까우나 사건의 해결 방식이 쉽게 납득 되지 않고 그다지 공정한 편은 아니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마약 밀매로 이야기가 급진전 되는 것도 문제있는 설정으로 보이네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2/10

바텐더 - 윌리엄 래시너 / 김연우 : 별점 2.5점

바텐더 - 6점
윌리엄 래시너 지음, 김연우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떠돌이 바텐더 저스틴 앞에 정체불명의 노인 버디 그래클이 나타났다. 버디는 수 년 전 저스틴 어머니 살인 사건의 범인은 아버지가 아니었고, 자신이 청부를 받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가 의뢰했는지 알고 싶으면 1만불을 달라고 요구하는데....

바텐더가 오래전 살인 사건 진상을 찾아나선다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예전 어딘가에서 책 소갯글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이지요.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 소개가 상당히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법 두꺼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몰아쳐서 하룻만에 읽어버릴 정도로요.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인상적입니다. 어머니의 살인범이 아버지라는걸 고발했던 기억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어났는데,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나타나 사실은 자기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밝힌다!는 이야기를 짧은 도입부 안에서 긴장감 넘치게, 완벽하게 서술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정말로 어머니를 죽인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도저히 다음 장을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들 중 가장 괜찮았던 도입부였다 생각되네요. 

사건을 개인적으로 파고드는 바텐더 저스틴 나름의 수사 활동도 그럴싸합니다. 과거 로스쿨 출신이라는 배경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우직한 인터뷰, 탐문 중심의 조사만 벌이는게 무척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조사를 시작한 후 의미있는 단서를 손에 쥐게 되는 것도 이모와 형과의 인터뷰부터 였다는 점 역시 설득력 높은 전개였고요.

또 이 작품만의 특징인데, 제목에 걸맞게 칵테일 활용이 아주 탁월해서 눈길을 끕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단락의 소제목을 칵테일과 다양한 술, 음료수 이름으로 구성한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마구잡이로 붙인 것이 아니라 단락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내용에도 술이 적절하게 인용됩니다. 알콜 중독자 버디(던)을 낚기 위해 조니 워커 블루 라벨로 유혹한다던가, 아버지의 옛 불륜 상대 애니를 찾아간 저스틴이 그녀의 냉장고 속 다이어트 진저에일, 썩어가는 딸기, 말라 비틀어진 라임, 싸구려 보드카로 스트로베리 뮬을 만들어 준다는 식으로요. 해고된 저스틴이 친구 코디에게 총을 구입해달라며 최고급 데킬라 테존 아녜호를 주는 장면도 빼 놓을 수 없겠군요.
제가 칵테일,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더 즐길거리가 많았던 것 같은데, 여튼 이러한 요소들은 던이 코디에게 보험 사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복선 등에서 활용되는 디테일과 함께 작품의 짜임새를 높여줍니다.

그러나 추리, 범죄 소설로 볼 때 너무 별 볼일 없다는 단점도 명확합니다. 첫 번째로, 아버지의 작전은 너무 별볼일 없습니다. 플린이 증언 철회를 하기 위해 그냥 두어도 되는데 왜 죽였을까요? 그를 죽이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비밀이 있는 진범이 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는게 과연 합리적인 시나리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단순 사고로 처리될 위험도 있고, 결국 사람을 더 죽여야 하는 위험부담을 짊어져야 하니까요. 이보다는 플린 증언 철회를 통한 재심을 일단 시도해보는게 더 낫지요. 

또 아내의 불륜과 그에 따른 범행 조작 역시 증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재닛 모스가 몇년이 지난 후 죄책감으로 자살했다? 죽일만큼 미워한 여자가 죽었으면 두다리 쭉 뻗고 자면 잤지 자살했을리가 없습니다. 설령 그랬더라도 살인을 청부했다는 증거는 절대로 찾을 수 없었을테고요. 한마디로, 유죄 판결을 뒤엎을만한 증거는 전무합니다.

두 번째로, 버디 그래클(던)의 모든 행동이 말이 안됩니다. 제이크를 찾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이야기하는 도입부부터요. 왜 데릭이라는 유능한 하수인을 두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이 1만불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까요? 푼돈 벌이라도 하려는 의도였다고 칩시다. 그래도 저스틴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던이 협박, 회유 중에 데릭을 이용하여 제이크를 위협하는 것도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저스틴이 사건에 뭔가 있다는 생각을 굳히고 더 열심히 조사에 나서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했으니까요. 성과는 없고 뭘 기대했는지도 알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럴 바에야 데릭을 시켜 빈집을 터는게 훨씬 나았을테지요. 그나마 여기까지야 괜찮다쳐도, 던이 최후의 순간에 애니의 집에 침입해서 칼부림을 한건 최악 중의 최악입니다.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역시나 없지만, 끔찍할 정도로 작위적인 탓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집에 살인범이 침입하지만 백마탄 왕자가 구해준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의 반복에 불과해요.

마지막으로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되는 죽은 어머니의 장신구들도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사건이 현재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중요한 증거품인데 이게 어디서 났을까요? 이렇게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 좋은 작품이기는 힘들겠지요.

저스틴 캐릭터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드보일드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냉소적인 성격과 입담은 나쁘지 않습니다. 허나 술이나 다른 자극적인 것 모두 입에 대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오로지 명상과 요가로 자신을 다스리는 구도자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장황합니다. 사실 작품과 별 상관도 없는 설정인데, 그냥 너무 멋을 부린 느낌이에요. 구도자처럼 사는데 불구하고 여자는 왜 이렇게 밝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그냥 아픈 과거가 있는 바텐더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요? "바텐더"의 사사쿠라 류 처럼 손님의 심리와 느낌을 잘 파악하는, 한마디로 '눈치'가 빠르다는 바텐더의 특기를 잘 살려 사건 수사와 연결했더라면 훨씬 더 제목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을텐데, 책 속 묘사로는 바텐더의 기술과는 무관한 저스틴의 수도승같은 생활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어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던과 다른 청부업자들의 힘 센 도구 역할을 하는 데릭은 도무지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않아요. 너무 눈에 띌 뿐더러 범행도 지나치게 많이 저지르는데 그냥 공기와 같은 인물이라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건에서 손쉽게 빠져나가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을 이야기에 개입시키는 것보다는, 던과 데릭을 합쳐 실제로 몸을 써서 사람을 죽이는 보다 사악한 악당을 그려내는게 대결 구도에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지만 여러모로, 특히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킬링타임용으로는 적절한데, 개인적으로는 눈치빠른 바텐더와 미녀 단골 손님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 이야기가 더 좋지않았을까 싶네요. "구석의 노인"의 변주처럼요.

2025/04/18

악연 1~6 (2025) - 이일형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재영은 아버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직장 동료였던 폭력 조직 출신 조선족 장길룡에게 살인을 청부했다. 한 달 뒤까지 사채를 갚지 않으면 장기가 적출될 위기에 처해서 보험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살인 사건 수사가 시작되었고, 장길룡은 경찰마저 살해한 뒤 박재영에게 돈을 요구했다. 궁지에 몰린 박재영은 장길룡을 살해하려했지만, 되려 습격당한 뒤 납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길룡과 함께 김범준에게 살해당했다. 호구 한의사 한상훈을 살해한 혐의로 수배 중이었던 김범준이 박재영으로 신분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최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입니다. 최근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인데, 회사 동료 조문 차 장거리 버스 여행을 떠난 김에 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생생한 등장 인물들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빼어난 연기력을 보여주거든요. 그냥 욕설만 하는게 아니라 농담섞인 대사를 나누는 식으로 각본도 잘 받쳐주고요. 각본에서 시니컬한 블랙 코미디 정서가 묻어나는데, 제법 괜찮았습니다.

피해자인 의사 김주연을 제외하고는 주요 등장 인물들 모두가 이른바 '악연'으로 촘촘히 연결되었다는 설정도 눈에 띄네요. 박재영은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장길룡에게 청부를 의뢰하고, 장길룡은 교도소 동기였던 김범준을 범행에 끌어들입니다. 김범준은 박재영의 고등학교 선배이고, 사고로 입원한 박재영(으로 신분 세탁한 김범준)의 주치의 이주연은 고등학교 시절 박재영 일당에게 성폭행을 당했었는데 이는 김범준의 애인 이유정의 사주 때문이었고요. 마지막 장기 밀매 조직 소속 의사로 김범준의 장기를 적출하는건 김주연의 애인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복잡한 관계는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총 6화라는 비교적 짧은 분량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며 깔끔하게 마무리하였으며, 모든 악당들이 죽고 만다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최종 빌런인 김범준은 산채로 장기를 적출당한다는 끔찍한 죽음을 맞는데, 작 중에서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정도로 통쾌했습니다.

김범준과 이주연이 공모해서 한상훈을 털어먹기 위해 짠 설계, 박재영이 장길룡을 살해하기 위해 준비한 휴대폰 알람(방심하게 만들려고), 한상훈이 자동차 정비소 이야기를 듣고 블랙박스 메모리를 뒤져 진상을 알아채는 장면, 김범준의 약병 바꿔치기 등 추리 및 범죄물로도 볼만했고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채, 장기 밀매, 보험 사기 등 자극적인 소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데 너무 비현실적이라 극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유치하다는 인상을 주는 탓이 큽니다. 사채빚을 못 갚아서 장기가 털린다는건 도대체 언제적 발상인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김범준이 박재영과 고등학교 선후배였고, 이주연의 애인이 장기 밀매 조직의 일원이라는 요소는 과도하게 작위적으로 느껴지고요. 아무리 '악연'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지만, 이야기는 익숙하고 결말도 뻔합니다. 박재영이 이주연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중요한 단서가 초반에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박재영이 사실은 박재영이 아니라는 뜻이 되며, 그렇다면 그 정체는 이야기 흐름 상 김범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김범준이 마지막에 장기가 적출되며 죽음을 맞는다는건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요. 그래서 특별한 반전이나 여운이 남지는 못합니다. 제가 이런 장르물을 너무 많이 봤나 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흥미로운 전개, 배우들의 연기는 좋은데 개연성 부족과 다소 뻔한 전개는 아쉽습니다. 그래도 분량이 짧다는 장점은 확실하고, 흥미로운 부분도 많습니다.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신다면 보셔도 괜찮을겁니다. 인기작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2006/08/29

고독한 은행가 (Banker) - 딕 프란시스 / 정성호 : 별점 2.5점

BANKER - 6점
DICK FRANCIS/홍익미디어

에카테린 은행 창립자의 손자인 팀 에카테린은 전도 유망한 은행가로 부모님의 실패를 딛고 은행에서의 지위도 확실히 하고 있으나 상사인 고든의 부인 쥬디스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초대받아 방문한 애스컷 경마장에서 몇명의 경마관련 인사와 친해지고, 무면허지만 탁월한 실적으로 전 영국에 이름이 높은 "기적의 의사" 콜더 잭슨의 생명을 구해주기까지 한 인연 탓에, 팀은 이사 진급 직후 유망한 종마를 사기위한 투자금 500만 파운드의 대출건을 책임지도록 결정된다. 
그리고  애스컷 경마장 방문당시 기적의 우승을 했던 경주마 샌드캐슬에 대한 강한 인상과 사육장 주인 올리버에 대한 믿을만한 조사를 통해 대출을 결정한다. 일종의 주식과도 같이 한 종마의 노미네이션 (접붙이는 횟수에 대한 권리) 40개에 대한 투자로 약 20여년을 바라본 장기투자지만 확실한 수익을 안겨다 줄 것으로 기대되었고 거의 모든 사고에 대한 보험처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한 상태.
그러나 샌드캐슬과 교미했던 말들이 낳은 망아지들의 절반이 경주마로 뛸 수 없는 장애마, 기형마로 밝혀지고 이 건에 대해서는 미처 보험에 들지 못한 상태라 샌드캐슬의 인기와 주가가 폭락하면서 위기가 닥치며 올리버의 딸 지니마저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내놓은 작품 모두가 평균 이상의 재미를 주는 희대의 "타율왕"작가 딕 프란시스의 1982년도 작품입니다. 원제는 "Banker"인데 국내에서 앞에 "고독한"이란 타이틀을 붙였군요. 제가 읽은 딕 프란시스의 네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목 그대로 은행가가 주인공이고 초반부에는 은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로 그려지나 역시나 경마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주 스토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경마 레이스가 아닌 "종마 투자"라는 굉장히 이색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참신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이 종마와 그 투자에 대한 설명과 내용에 대한 묘사가 정말이지 너무나 디테일하고 매력적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흥미로웠어요. 저도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또한 500만 파운드라는 거금과 그 이면에 얽힌 음모 역시 설득력있게 묘사되며 살인까지 얽힌 복잡한 사건을 사소한 단서를 통해 밝혀낸다는 전개는 언제나처럼 흥분과 재미를 가져다 주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내세울만한 점은 없습니다. 트릭이 중요한 정통 본격 추리물은 아니고 스릴러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나 대충의 줄거리만 보아도 가장 수상한 사람이 드러나 보일 만큼 전개가 뻔하기 때문에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 주인공의 "가택침입"을 통한다는 점, 가택침입에서 중요한 증거가 드러나도록 방치해 놓은 범인의 방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거액이 걸린 음모에는 걸맞지 않는 허술한 결말이었어요.

그래도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정보의 제공, 그리고 별다른 이야기가 구성될 것 같지 않는 소재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능력은 "타율왕"이라는 별명에 값하긴 합니다. 시작 부분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전체적인 사건을 엮어나가는 이야기 솜씨도 탁월하고요.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5/22

밤과 낮 사이 1 - 마이클 코넬리 외 / 이지연 : 별점 2.5점

밤과 낮 사이 1 - 6점
마이클 코넬리 외 지음, 이지연 옮김/자음과모음(이룸)

영미권 장르소설 비평가와 편집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단편 컬렉션이라는 책입니다. 장르 문학 단편을 좋아하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볼륨은 풍성합니다. 무려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열 여섯 편이나 되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본격 추리물, 범죄물, 스릴러, 액션물에 섬찟한 느낌을 전해주는 '기묘한 맛' 계열 등 수록 장르도 다양한 덕분입니다. 조이스 캐롤 오츠, 마이클 코넬리와 같은 유명 작가들 작품이 수록된 것도 반가웠고요.

하지만 워낙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서 작품별 편차가 큽니다. 첫 수록작인 "그들 욕망의 도구"처럼 좋은 작품도 있지만, 뻔한 설정과 전개를 보여준다던가, 심리 묘사에 치중할 뿐, 이야기 자체는 모호한 등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앤솔러지인데 선정 기준을 잘 모르겠다는 것도 조금 아쉬웠어요. 누가,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선정하여 출간한 것일까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대략 2.5점입니다. 1권과 거의 동일한 분량과 볼륨을 자랑하는 2권도 있는데, 읽어볼지 말지는 조금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 욕망의 도구" 

'나'는 죽기 전, 짐 오빠를 만나 그가 로니 언니를 이용했던 70년 전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로 결심했다. 1931년, 아버지 가출 후 어려워진 가족을 위해 짐 오빠가 로니 언니에게 몸을 팔게 했었던 사건이었다...

끔찍했던 과거에 대한 회상에서 시작해서, 몸을 팔았던건 로니 언니가 아니라 짐 오빠 자신이었다는 충격적 반전까지 완벽했던 단편입니다. 탁월환 회상과 심리 묘사는 독자를 반전으로 이끄는 선입견을 잘 쌓아 올려주고요. 

아빠 실종에 관련된 설정은 지금 읽기에는 뻔하고, 짐 오빠의 고백 후 결말까지가 조금 늘어지는 감은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사소합니다. 단편의 맛을 잘 살린 걸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밤과 낮 사이" 

표제작. 주인공이 겨우 열기구에 매달려 있고, 두 명이 열기구에서 떨어져 죽거나 불구가 되는 첫 장면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주인공들이 뜬금없이 열기구에 매달리게 된 배경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결국 열기구 속 아이를 잃게 된 아버지이자 살인 강도인 브래들리가 주인공에게 복수심을 품고 습격해서 죽이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하지만 브래들리가 탈옥해서 주인공을 습격한 뒤의 이야기는 모두 작위적이라는건 단접입니다. “전적이 있는 은행 강도로 풀려난 지 고작 이삼 일 만에 기구를 탈취해서 도와주려던 착한 이웃을 죽게 만든 놈인데, 그래 그놈을 튀게 놔뒀다고요?”라는 주인공 말 처럼 쉽게 이루어진 브래들리의 탈옥, 브래들리가 탈옥 후 주인공 집을 바로 찾아와 주인공을 납치한 것, 마지막 죽기 일보 직전에 사라진 열기구를 발견하는 것 등 모두가 말이지요. 주인공이 브래들리가 3만달러라는 돈을 숨겨놓았을 코인 락커 열쇠를 강탈한 뒤 죽게 만든다는 것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또 주인공의 뉴요커 스타일 심리 묘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가득차 있는 작품이라면, 주인공은 보다 현실적으로 묘사하는게 나았을것 같습니다. 아니면 주인공이 3만 달러를 거의 손에 넣었지만, 로키 산맥 끝자락까지 몰고 왔던 머스탱이 고장나서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쇼트쇼트스러운 결말로 마무리하던가요.

그래도 도입부만큼은 역대급이며 스릴과 서스펜스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환상특급"같은 TV 시리즈로 만들었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책 제본가의 도제" 

베네치아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미국인 졸리 매독스는 부유한 괴짜 노인 샌본과 친해진다. 그는 졸리와 여자 친구 루치아를 식사 자리에 초대하는데....

굉장히 뻔했던 작품입니다. 제목과 책 제본에 대한 장인 정신 가득한 묘사, 희귀 서적 수집가와 책 제본가가 루치아의 피부 문신을 열광적으로 바라보는 묘사 등에서 결말이 쉽게 예상된 탓입니다. 마지막에 졸리가 받은 선물이 인피로 제본된 책이라는것 역시도 뻔했고요. 

샌본과 제본가 주치니가 인피 제본 책을 졸리에게 선물할 이유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졸리가 책 제본에 매력을 느껴 제자가 될 것을 결심할 거라는걸 알려줄만한 단서는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편의적인 전개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별다른 재미도 느끼기 힘들어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차라리 졸리는 사실상 이용가치가 없고 루치아의 인피만 중요한 상황인 것 처럼 끌고 가서 결국 졸리가 체포되도록 만드는 결말이었더라면 더 나았을겁니다. 졸리의 여자친구 사체 (머리?)를 여행가방에 몰래 넣어 두는 식으로요.

"스킨헤드 센트럴" 

짐 부부는 아들을 잃은 뒤 시골 마을로 이사왔다. 그곳에서 스킨헤드 머리를 한 데일에게 집안 일을 시킨 뒤, 짐 아내의 패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뒤, 데일의 동생 제이슨이 패물을 돌려주는데...

가정 폭력에 따른 범죄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뭘 말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이야기가 명쾌하지 못해요. 동생 제이슨을 폭행한건 형 데일인지? 그렇다면 형 데일을 폭행해서 사과하게 만든건 그 아버지인지? 짐 부부 집에 데일이 불을 지르려고 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이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또 형제의 아버지가 폭력 성향을 간직한채 10여년을 살아왔다고 해도, 데일이 저지른 범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애초에 데일은 절도를 저질렀고, 이는 맞아도 싼 짓이었으니까요. 때문에 아이를 매질했다고 짐이 이야기하는건, 그 아버지 말대로 오지랖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에 집에 불을 지른 데일을 육군 훈련소에 보내는 결말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당연히 경찰을 불렀어야 했습니다. 방화는 굉장한 중범죄니까요. 이미 성인이 된 데일은 그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합니다. 비교적 길게 설명되는 짐 부부 아들이 죽은 비참한 사고도 이야기를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데일 가족 이야기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요. 데일을 자기 아들처럼 여겼다? 이 역시 오지랖이죠.

좀 있어보이는 드라마를 쓰려고 했지만, 알맹이는 그닥인 모래성같은 이야기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심술생크스 여사 유감" 

늙은 노파가 온갖 사람들에게 심술궂은 편지를 보내는 취미가 있다는 설정은 고전 영국 추리 소설에 등장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고전 속에서 이런 편지는 은근한 협박이나 스캔들 폭로였던 반면, 이 작품 속 생크스 여사의 편지는 훨씬 적나라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전이 은근한 심리 서스펜스라면, 이 작품은 현대물답게 스플래터 하드고어물인 셈입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들 상황 묘사와 엮어서, 독자에게 이 노파는 죽어도 싸다는걸 확실히 알려주거든요.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던, 교사 시절 학생의 게이 성향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던 행위가 대표적입니다. 정말 치가 떨릴 지경이었어요. 진작에 살해당하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마지막에 생크스 여사가 살해되지만, 동기를 가진 인물이 너무 많아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끔찍한 범행'과 '처단' 자체의 자극적 쾌감에 비해 이야기가 평이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재미를 주는 작품이란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첫 남편" 

잘 나가던 변호사 리오나드가 아내의 첫 남편 사진을 발견한 뒤, 자격지심과 질투로 오해를 만들고, 결국 첫 남편 야드만을 죽인다는 범죄극입니다. 비교적 분량이 긴데, 리오나드가 붕괴해가는 심리 묘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탓입니다.

긴 만큼 디테일한 묘사는 좋지만, 전개는 평이합니다. 리오나드가 야드만을 죽인다는 결말은 뻔했고요. 아내 발레리도 죽였을 거라는 암시가 살짝 등장하기는 하는데, 제대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야드만을 죽인 뒤, 그의 렌트카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서 차안에 있던 야드만의 애견에 의해 습격을 당해 죽거나 범행이 드러난다는 결말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지금도 개 때문에 범행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우연히 지나가던 차량이 있었다는 작위적인 전개에 기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길이만큼 좋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운이 좋아" 

텔레파시 능력자 수키 스택하우스와 마녀 아멜리아 브로드웨이에게 보험 사업을 하는 그레그가 사건을 의뢰했다. 누군가 그의 사무실에 침입해서 서류철을 뒤졌는데, 누구인지 알아내 달라는 의뢰였다.

텔레파시 능력자, 마녀, 뱀파이어, 마술사 등이 나오는 판타지 범죄물로 그레그의 경쟁 업자 중 한명이 그레그의 비정상적인 행운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서류철을 뒤졌다는게 진상인데, 이를 수키 스택하우스가 더듬어 밝혀내는 과정은 꽤 재미있습니다. 이런저런 소동으로 뒤섞인 상황에 대한 정리도 깔끔하고 유쾌하게 묘사하며, 판타지적인 설정과 능력들을 조사 과정과 이야기에 잘 써먹고 있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만화스러운 설정만큼이나 만화스러운 전개는 아쉽습니다. 디테일을 챙기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게 많아요. 그레그가 주변 행운을 빨아들여서 사업이 잘 되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이거야말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 충분한 설정인데, 어떻게 동작하는지 설명도 없이 그냥 끝나버리고 말거든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아버지날"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단편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벌어졌던, 더운 날씨에 차 안에 방치되어 사망한 아이 사건이 그려집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었고, 그 때문에 부모가 의도적으로 아이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게 진상인데, 아내와 남편을 분리시킨 뒤 심문하여 이를 이끌어내는 과정 묘사가 빼어납니다. 아내가 먼저 자백했다며 자백을 유도하는 장면은 그 중 백미이고요. 또 그냥 심증이 아니라 '이미 그만 둔 보모를 재 고용하는 광고를 내지 않은 점' 에 착안하여, 어차피 아이가 죽을걸 예상했다는 추리를 이끌어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부모 시점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범인의 동기가 치열하게 드러나지 않는 탓에, 드라마의 깊이가 부족했어요. 전개와 결말도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경찰 수사물로는 기본은 하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과연 저명한 해리 보슈 시리즈다웠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개 산책 시키기" 

토론토에 사는 부유한 미시 로라 프랜시스는 개 산책 중에 단역 배우 레이를 만난 뒤 불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레이와 함께 하기 위해 남편 로이드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

정부에게 남편 살인 청부를 맡기지만, 남편이 선수쳐서 정부는 죽고, 선수친 남편도 정부가 의뢰했던 살인 청부업자에게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딘가에서 많이 보아왔던 -헨리 슬레셔였던가요? - 뻔하디 뻔한 내용이라 한숨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포르노를 연상케 하는 로라와 레이가 벌이는 질퍽한 정사 장면 묘사는 그나마의 수준을 더 낮고 저렴하게 보이게 만들고요. 이럴 바에야 뻔해서 짝퉁스러운 반전을 끼워넣지 말고, 포르노에 가까운 싸구려 펄프 픽션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그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볼 만한 부분이 있었을겁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모자족인" 

부유한 의료기기 사업가 제더버그 마틴이 살해당했다. 스무살이나 어린 젊은 아내 나네트는 정체불명의 거한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데....

언니의 전 남자 친구인 카일 헤이에스 형사 밑에서 일하게 된 감식관 테스 캐시디가 주인공인 작품. 

단서, 증거, 동기 모두 애매하고 설명은 부족하지만, 본격 추리물입니다. 테스 캐시디가 몇 가지 단서와 정보를 가지고 귀납법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서는 두가지입니다. 고인이 생전에 불을 두려워했으며, 친아들이 반대하는데도 나네트가 화장을 고집한 이유가 첫 번째, 흉기인 도끼에 찍힌 커다란 엄지손가락 지문이 두 번째입니다. 테스는 도끼에 찍힌 엄지손가락 지문은 고인의 엄지발가락 지문이었고, 이를 감추기 위해 화장을 서두른 것으로 추리합니다.

이 엄지발가락 지문에 대한 추리를 우연히 테스가 알게 된 '모자족인' - 아이가 바뀌는걸 방지하기 위해 엄마의 손가락 지문과 어린아이의 엄지발가락 지문을 찍는것 - 과 연결시키는 전개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현대 법의학으로 발가락과 손가락 구분이 불가능했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설령 구분이 불가능했다 치더라도, 동기가 있는건 나네트와 아들 스티븐 뿐이니 어떤 식으로든 범행은 드러났을테고요. 이런 점에서 현대물보다는 근대물에 더 적합했으리라 생각되네요. 아울러 테스와 상관과의 관계도 전개에는 불필요한 요소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뱁스"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한 뒷골목 싸구려 범죄극. 주인공이 스트리퍼 뱁스와 함께 마약 전달책을 찾아가 마약을 강탈해오는게 전부입니다. 온갖 비속어가 난무하지만 특기할 만한 내용은 전무합니다. 주인공이 때때로 '십자가'를 본다던가, 대학교를 나왔다던가 하는 기묘한 설정이 덧붙여져 있는데, 작품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도 않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잠" 

묘지 관리인 그레이브 디거는 과거 마크 틴들이라는 과거 용병이었다. 실수로 포로가 되었었지만, 상관 월터 잭슨의 희생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묘지에 월터의 시신이 매장되게 되는데, 얼빠진 아르바이트생들이 시신을 모욕하자 그는 용병 마크 틴들로 돌아간다....

그레이브 디거가 용병으로 돌아온다는, 영화로 따지면 캐릭터 탄생을 알리는 도입부 격입니다. 그나마 마지막 각성은 조각내버렸다는 한 마디로 끝이고요. "존 윅"에 빗대어 보면, 자동차와 개의 복수는 하지도 않고, 다시 킬러로 각성해서 집에 쳐들어온 마피아 조직원을 죽이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완성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즐거운 응원단" 

고등학교 응원단에 미모의 호랑이 코치가 부임했다. 그녀는 단원들에게 맹훈련을 시켰는데, 단원 중 3명은 그녀가 스터드 하사와 불륜을 저지르는걸 목격했다. 코치는 그녀들을 꼬드겨 친해지지만, 3명 중 한 명인 베스의 도발로 결국 트러블이 일어나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치가 불륜을 저지른 뒤 아이들을 입막음 시키려고 억지로 친한척을 한건 알겠어요. 아이들 중 한 명인 베스가 계속 입을 놀리자 그녀를 견제한 것도 알겠고요. 

하지만 코치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불륜남 친구들과 마약 파티를 벌인다? 한국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륜남 스터드의 친구 프라인이 베스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결말도 뭔가 싶어요. 죽인 것도 아니고, 설령 이 자리에서는 죽였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게 뻔하잖아요? 볼짱 다 본 막장 인생 이야기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설명되지 않고 답없는 전개와 결말을 그려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교차로" 

3인조 은행 강도인 잭 일당은 서부 텍사스 일대를 떠돌다가, 교차로에 있는 작고 낡은 주유소 겸 잡화점에 들르게 된다. 그곳에서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더브와 로이간에 다툼이 벌어지고, 둘은 충동적으로 가게 주인인 노부부를 살해한다. 둘은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두목 잭의 분노가 두려워, 잭에게도 총격을 가하는데....

서부 텍사스의 황량한 묘사, 그리고 작은 가게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묘사가 볼 만했던 범죄 액션극. 가게를 찾은 꼬마가 가지고 있던 총으로 잭이 기사회생하고, 꼬마가 잭의 새로운 동료가 된다는 결말은 독특했습니다. 주어진 암시와 내용을 보면 잭은 악마이고, 나이가 들어 쓸모없어진 인간 부하들을 때때로 교체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별다른 내용은 없지만 액션 장면만으로도 별점 2점은 충분합니다.

"악마의 땅" 

소몰이꾼 출신으로 서던퍼시픽 철도탐정으로 일했지만 해고당한 형제는, 핑커튼 탐정사 취직을 위해 바바리 해안으로 향했다. 구스타프 형은 사람을 관찰해서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내는, 셜록 홈즈같은 취미가 있었다. 하숙집 주인 메그가 둘에게 수상쩍은 일자리를 제안했다. 구스타프는 동생에게 일행인걸 들키지 말자고 말했고, 찾아간 술집에서 갑작스럽게 구스타프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에 대해 기묘한 독촉을 하는 편지에서 시작해서, 편지를 쓴 사람이 형 구스타프와 겪었던 사건으로 끝나는 작품.

사람이 술집에서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 본격물로 셜록 홈즈만큼 똑똑하다는 구스타프 형이 아니라, 힘쓰는 쪽인 동생이 추리를 하는 탐정과 이야기를 하는 화자 역할인 왓슨, 그리고 액션 담당인 브라운 신부의 동료 프랑보우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경구를 떠올리며 추리하는 과정은 홈즈 팬에게는 큰 즐거움이었고, 설득력도 높습니다. 술집에서 급작스럽게 피아노를 친 이유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이며, 좌, 우로 빠져나갈 수 없다면 위나 아래로 사라졌을 거라고 추리하는 식입니다. 결국 동생은 바닥에 문이 있다는걸 알아내고 형을 구해내게 되지요. 

또 소몰이꾼 1인칭 시점의 말투로 전개하는 묘사, 특히나 중간중간 삽입된 소몰이꾼 감성 유머가 아주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근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약간 무식한 막노동꾼 탐정이 등장하는 본격물이라는 점에서 "탐정 피트 모란"이 살짝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바닥의 문은 셜록 홈즈 운운하지 않아도 관찰만 한다면 알아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되고, 메그의 술집에서 벌어진 다툼같은 불필요한 요소는 감점 요소이지만, 장점이 명확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시리즈로 보이는데 다음에는 구스타프 형이 활약하는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네요.

"킴 노박 효과" 

제목은 주인공이 벌이는 사기의 명칭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가 애착을 가진 존재를 등장시켜 사랑에 빠지게 한 뒤 돈을 울궈내는 사기지요. "현기증"에서의 킴 노박 역할에서 따 와 붙인 이름이라고 하네요.

주인공의 킴 노박 효과 사기 생각이 이어지다가, 주인공이 정조역전세계처럼 나이든 과부들에게 킴 노박 효과를 일으키며 돈을 빼 먹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결말은 독특했습니다. 이게 바로 남녀평등이겠죠. 질퍽하면서도 상세하게 묘사된 범죄와 심리 묘사도 볼거리였습니다. 엘모어 레오나드의 작품들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하지만 '주교님'에게 사로잡힌 주인공이 빠져나온 뒤, 남창 역할을 하게 되는 결말은 설명이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완벽한 범죄자였던 주인공을 몰락시키려면, 정교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쉽게 약점을 잡혀버려서 인생이 막장에 몰려 버린다면, 앞서 대단해 보였던 사기와 범죄 행각에 대한 장황한 묘사도 힘을 잃을 수 밖에 없고 결국 이 작품은 시간 낭비에 불과해버리고 마니까요.

주인공과 성형외과 의사, 킴 노박 효과를 일으켰던 배우, 피해자 등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는 괜히 복잡하게 보일 뿐, 이야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또 킴 노박 효과도 의문스럽습니다. 어떤 사람이 옛날 사랑했던 애인이나 전처, 혹은 영화배우와 비슷한 외모의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게 과연 사기일까요? '그 사람이다!'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다른 사람이라는건 당하는 사람도 알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거짓말로 돈을 울궈내는건 사기일 수는 있지만, 이 정도면 추억에 대한 댓가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이들고 부자인 남자가 젊은 여자를 만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은 단편에 어울리지는 않았어요. 훨씬 길고 정교한 작품으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2016/07/04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어니스트 브래머 / 배지은 : 별점 2점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4점
어니스트 브래머 지음, 배지은 옮김/손안의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전 "눈먼탐정 캐러더스"라는 제목의 자유 추리문고로 접했던,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 중 한명인 캐러도스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모두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전 자유 추리문고 버전과 겹치는 작품은 2편밖에 없네요(하서판 걸작선에서 읽었던 "브룩벤드 장의 비극"까지 포함하면 3편이지만요)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좋은 작품들은 아닙니다. 추리적으로 별로인 탓입니다. 고전 황금기 작품답지 않은 수준이에요. 어떤 작품은 비약이 너무 심하고("디오니시우스의 동전" 등), 어떤 작품("나이트크로스 신호등 문제" 등)은 단서 추적이 전부라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브룩벤드 장의 비극", "틸링 쇼 미스터리" 두 편은 괜찮지만 양적으로 부족해요.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던 "추리적으로 그다지 정교한 장치는 없다. 이야기의 논리는 합리적이지만 세밀한 복선이나 반전 없이 한방향으로 흘러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에 기복이 별로 없고 드라마도 재미가 없으며, 무엇보다도 사건이 시시하다. 무엇보다도 결말이 너무나 한심스러운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말 그대로입니다.

아울러 캐러도스의 능력에 대한 과장이 너무 심합니다. 제목 그대로 장님이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오감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거든요. 인쇄된 신문도 손끝으로 만져 읽을 수 있을 정도니까요(너무 작은 글씨는 무리라서 비서에게 낭독을 부탁한다지만). 거기에 막대한 재산, 경찰 수사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위에 더해 심장 고동소리를 듣고 명중시킬 수 있는 총솜씨까지! 이 정도면 "데어 데블"에 필적하는 능력자이지요. 추리 소설이 아니라 마블 혹은 DC 코믹스에서의 활동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추리 소설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간과한 느낌입니다. 탐정의 개성에 집중하면 잠깐 흥미거리야 될 수 있겠지만, 오래 가기는 힘들죠. 노래 실력 없이 유행과 퍼포먼스에 치중하는 아이돌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국내에 소개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다른 셜록 홈즈의 라이벌보다야 이름이라도 널리 알려졌으니 아주 실패한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저와 같은 고전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디오니시우스의 동전"

이전 자유 추리문고 버전으로 접했던, 탐정 칼라일과 캐러더스가 처음 만나게 되는 시리즈 첫 단편입니다. 전설적인 명탐정이 첫 등장한다는 것 외에 딱히 언급할 만한 장점은 없으며, 추리적으로 비약이 심하다는 단점만이 도드라집니다. 칼라일이 가져온 동전을 캐러더스가 이전에 만져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은 주인이 시스토크 경이라는 것 뿐입니다. 동전의 진위 여부를 감정할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헬렌 브루네시가 니나 브룬이라는 가명을 계속 써가며 하녀로 일한다는건 추리의 영역도 아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나이트크로스 신호등 문제"

"그때 성공을 갈구하는 내 욕망의 잔에 자네의 조롱을 가득 들이붓는 거야." - 캐러더스가 칼라일에게 도와줄 것을 약속하며 하는 말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작은 주택이라도 정부의 합법적인 약탈로부터 안전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 주식 투자를 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캐러더스에게 답하는 파킨슨의 대답

나이트크로스 역에서 발생한 중앙 교외선의 충돌사고로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기관사는 통과 신호를 받았다고 주장했고, 신호원은 정지 신호를 바꾼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칼라일은 기관사 허친스 씨의 의뢰로 조사에 나선 뒤 캐러더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진상은 신호등을 바꿔치기한 범인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이게 과연 사립탐정이 나서서 수사했어야 하는지 의문이에요. 두 명의 증언이 모두 사실이라면 제3자의 조작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해 보는 것이 상식이니까요. 캐러더스의 추리도 거의 없고, 탐문 수사에 의지하는게 전부입니다. 

마지막에 드리슈나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결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라면 이런 인정을 베풀지 않았을 겁니다. 악당은 지옥으로 가야죠. 또 범인에게 유서도 없는 자살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대체 불쌍한 기관사는 어떻게 풀어줄 셈인걸까요?

딱 한 가지, 범인 드리슈나가 수십 명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지 않으며, 되려 영국 정부와 군대가 인도의 죄 없는 수천 명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로 자신이 영웅이라고 주장하는 장면만큼은 인상적입니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고려해보면 놀라울 정도죠.

"당신은 당신의 정부와 군대가 내 나라의 죄 없는 수천 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그래도 저 한 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역부족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브룩벤드 장의 비극"

크리크와 결혼한 여동생 밀리센트의 생명이 걱정된 홀리어는 칼라일에게 조사를 부탁했다. 현장 조사를 나간 캐러더스는 크리크의 트릭을 눈치채고 범행을 벌일 날짜를 예측하여 잠복하는데...

이런 저런 앤솔러지 등에서도 접해본 나름 대표작입니다. 범인이 공들여 만든 과학적인 트릭이 돋보이지요. 지금 읽기에는 많이 뒤처졌으며, 범인 크리크가 이를 위해 지나칠 정도로 세공을 많이 했다는 단점은 있지만 발표된 시대를 감안하면 큰 단점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충분히 벼락을 맞아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먹혔을 테니까요. 의외성 있는, "사랑과 전쟁"을 연상케하는 막장 결말도 아주 괜찮았어요. 지금 읽어도 낡아보이지 않으며, 크리크의 행동도 살짝 이해할 수 있게 만들거든요.

낡긴 했지만 대표작다운,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영리한 스트레이드웨이트 부인"

"어떤 상황에서 누가 뭘 할지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 사람의 행동이 지니는 단 하나의 특성만 연구하면 된다는 것이었지." - 캐러더스가 칼라일에게 추리법에 대한 단상을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하는 말.

"원의 호가 아주 작더라도 그 호를 가지고 전체 원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 하인들은 아는 게 거의 없을 거라는 스트레이드웨이트 부인의 말에 대한 캐러더스의 답.

이전 자유 추리문고 버전으로도 읽었던 작품. 다시 읽어도 유치하고 조잡한 사기극입니다. 자기 물건이 아닌 물건으로 보험에 가입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잃어버린 척 하고 보험금을 타낸다는 건데 발표 당시에는 먹혔을지 모르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습니다. 부부의 잘못이 크지만 보험사가 과연 이렇게 허술하게 보험을 가입해 주었을지도 의문이고요.

또 목걸이를 잃어버린 척 위장한 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5천 파운드를 편취하려는 사기 행각이니까요. 그런데 남편이 목걸이를 반납하려 했다손 치더라도(그것도 의사를 처음부터 밝힌 게 아니라 캐러더스의 강압에 못 이긴 것), 이를 캐러더스가 받아들인 것은 엄연한 직권 남용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언급할 게 별로 없습니다. 캐러더스가 부인 장갑의 향수 냄새가 다른 것을 눈치채고 진상을 알아낸다는 것만큼은 캐러더스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지만, 문제는 이 정보가 독자에게 공정히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범죄라 하기도 어려운, 일종의 부르주아 상황극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배우 해리의 마지막 업적"

루카스 스트리트의 사설 대여금고 회사는 런던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전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매니저만 아는 암호를 먼저 제출해야 하고 그 뒤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열쇠로 여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여금고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단편집에서 돋보이는 불가능 범죄물입니다. 진상도 합리적이에요. '범인이 변장하여 12개의 금고를 임대하여 열쇠를 복사하고 반납한다. 이후 아내를 통해 매니저 장부를 몰래 사진을 찍어 암호를 알아낸 뒤, 소유자로 변장하여 방문한다'는 것인데 꽤 그럴싸합니다. 캐러더스의 불에 타지 않는다는 호텔 (결국 화재로 전소해버린)에 대한 견해도 인상적입니다. "그 호텔이 화재에 안전하다고 확신한 조심성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데 이 이야기만 가지고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에요.

하지만 해리의 아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건 운과 우연 덕분이었으며, 변장이 만능처럼 사용된건 문제입니다. 아무리 변장이 특기라도 해도 한두 명도 아닌 열 두명을 변장했다? 무리입니다. 마지막에 범인 해리가 교회 간증회에서 구원을 얻어 훔친 물건을 모두 되돌려 준다는 결말도 어처구니가 없었고요.

또 캐러더스가 범인이 미국인일 것이라고 추리한 이유도 비합리적입니다. 현대 미국의 영민하고 창의적인 분위기가 그를 기발한 장치의 전문가로 키워낸 것이라고? 이건 뭔 말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 중 몇 안 되는 본격 추리물인 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틸링 쇼 미스터리"

매들린 휘트마시는 캐러더스에게 아버지 윌리엄이 재산 때문에 오랜 분쟁이 있어온 조카 프랭크를 쏘고 자살했던 사건의 진상 조사를 부탁했다. 프랭크는 운 좋게 주머니 속 시계에 총알이 박혀 살아났었다. 그녀의 몇 가지 증언 - 아버지 서랍 속 총이 사라졌었던 것, 두 번째 총성은 조금 약했던 것 - 을 토대로 캐러더스는 사건을 재수사해 나가는데...

조금 올드하지만 '팜므 파탈'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매들린 캐릭터가 돋보였고, 지나칠 정도로 운이 좋은 프랭크에게 의심이 가게끔 하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우선 매들린부터 살펴보자면, 프랭크가 나쁜 놈이기는 하지만 일말의 죄책감 없이 캐러더스를 이용하여 그를 살인범으로 만드려는 조작을 벌이는 전개가 예상 외라 깜짝 놀랐습니다. 이 당시 추리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굉장히 활동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생각됩니다.

또 매들린의 조작에 의해 프랭크가 범인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결국 최초 알려진(거짓말같은) 진상이 진짜이며, 의뢰인의 의뢰 후 독자에게 공유된 증언과 증거가 모두 조작되었다는 것 역시 시대를 앞서간 전개였고요.

물론 프랭크의 시계가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단점이긴 합니다. 캐러더스는 여기서 진상을 알고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눈치챘지만, 독자는 시계를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끌려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아주 신선하고 놀라운 요소가 많기에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파운틴 코티지의 소동"

"사람들은 기이하고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상황들을 운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버리곤 하지요" - 엘시가 최근 닥친 불운을 이야기하자.

칼라일의 사랑하는 조카딸 엘시 부부에게 이웃집에서 콩팥 요리를 정원에 던졌고, 멀쩡한 정원사가 저렴한 가격에 일하겠다고 자원하는 등의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캐러더스는 이 모든 일에 숨겨진 진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데...

일종의 일상계. 사실 지금 읽기에는 좀 뻔합니다. 원래 이 집의 집사였던 옆집 남자는 이 집에 세들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원래 이 집의 정원사였던 남자가 싼 값에 정원을 가꾸어 주겠다고 자원한다면 그 이유는 뭐겠습니까? 집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독자에게 보물 찾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주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암호가 숨겨져 있다는 책인 "돔 너머의 화염"이 독자에게 제공되지 않기에 암호문을 푸는 재미는 전무하고 그냥 캐러더스의 설명에만 의지하고 있거든요.

그 외 콩팥을 던진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에 더해, 도움을 당당하게 생각하는 염치없는 엘시 캐릭터는 정말이지 호감을 갖기 어려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한마디로 그냥저냥한 소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어둠 속의 게임"

"귀도는 외국인이었고 그 중에서도 최악인 이탈리아인이었다." - 귀도에 대한 소개 중. 발로텔리에게 분노한 영국 팬이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편파적이라 외려 인상적이군요.

비델 경감이 X 백작부인의 의뢰로 중요한 서류를 훔친 귀도 일당의 체포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흔쾌히 허락한 캐러더스에게 대영 박물관에서 귀중한 동전이 도둑맞았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이후 정체 모를 이탈리아 여인이 귀중한 동전을 발굴했다며 찾아오는데...

첫 번째 이야기인 "디오니시우스의 동전" 사건에 등장했던 위조범 동피에르, 그의 부인 니나 브룬이 등장하여 단편집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입니다. 일종의 수미쌍관식 구조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건은 별게 없어요. 동피에르와 니나 브룬이 동전을 미끼로 캐러더스를 유괴한 후, 귀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두려는게 전부인 탓입니다. 이후 납치된 캐러더스가 기지를 발휘하여 은신처를 정전시킨 후, 제목 그대로 어둠 속에서 납치범들과 대치한다는 전개로 이어지는데 이래서야 추리물보다는 모험물에 가까와 보입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 특기할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에 비델 경감이 어떻게 은신처를 덮쳤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의 약점만 도드라질 뿐이에요. 비록 캐러더스가 입구에 흔적을 남겼더라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불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또 과연 어둡다 하더라도 맹인 1명에게 2명, 아니 3명(니나 브룬까지)의 악당이 꼼짝없이 털리는 것도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캐러더스의 액션(?)이 펼쳐진다는 점은 놀랍긴 합니다. "데어데블"의 선구자격인 작품이랄까요. 어둠 속 클라이맥스의 긴장감도 대단했고요. 추리물로서 가치는 거의 없지만 만화 같은 극적 전개는 괜찮았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장님 슈퍼 히어로물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06/11/25

미궁과(迷宮課) 사건부 - 로이 비커즈 / 이종수 (자유 추리문고 19) : 별점 2.5점

자유 추리문고로만 접할 수 있는 희귀본이죠. 국내 굴지의 추리 동호회 사이트인 Howmystery.com 회원분의 도움으로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원제는 "The Department of Dead ends". 미궁과는 경시청의 한 부서로 여러가지 미해결 사건이나 증거, 정보들이 모이게 되어 결국 해결하게 된다는 부서로 이러한 설정은 일본 드라마 "케이조쿠"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단편이지만 전 작품이 모두 범인과 범행과정을 치밀하게 묘사, 서술하고 그 사건이 미궁에 빠진 뒤에 미궁과에서 남겨진 몇몇 단서를 가지고 추리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도서 추리 소설 형태로 쓰여져 있다는 점입니다. 도서 추리 단편집은 처음 접해 보았네요. 그래서인지 범행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실제 미궁과의 활약, 특히 미궁과의 수장격인 레이슨 경감의 비중은 굉장히 낮다는 것도 이색적이고요.

또다른 특징은 도서 추리물이기 때문에 범행의 치밀함, 특히 완전범죄를 이루려는 범인의 노력이 주가 되어야 이야기 전개가 매끄러울텐데 이 작품집의 거의 모든 범죄는 "우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독특한 부분이었습니다. 전부 10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웃은 부인"과 "보트의 푸른 수염", "장님의 망집" 3편이 그나마 범인의 치밀한 범행 계획을 담고 있으며 다른 작품들은 범행 자체가 우발적으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작품들의 수준이 딱히 우수하진 않더군요. 기대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추리"라는 요소가 많이 결여된 느낌이에요. 도서 추리물이기에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이 보다 치밀하게 그려질 수도 있을텐데 우발적 범행이 주를 이룬다는 특징 때문인지 우연찮게 얻어진 증거로 범행이 드러나게 된다는 구성이 많습니다. 또한 작품마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도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어요.

결론내리자면 엘러리 퀸 마저도 높이 평가한 미궁과의 제 1작 "고무나팔"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새로운, 단편으로서 완성도도 높으면서도 이후 시리즈에 기대를 갖게 하는 수작임에는 분명하나 다른 작품들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도 나중에 "고무나팔" 한편만 읽어보셔도 될 것 같네요.

1. 고무나팔
어머니의 과보호 하에서 성장한 유약한 청년 조지는 에셀이라는 아가씨와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한 뒤 노처녀 콜래미어와의 관계 때문에 그녀를 살해한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에셀과 교제했기에 경찰은 그를 찾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과로 넘겨진다.
기념비적인 "미궁과" 시리즈 1작. 추후 시리즈화된 것이 당연할 정도로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수작입니다. 우발적이지만 완벽한 완전범죄, 그리고 그 범죄가 파헤쳐지는 극히 사소한 단서라는 요소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거든요. 미궁과의 특징인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기도 하죠. 마지막 문장까지 인상적인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 웃은 부인
유명한 광대 스펜글레이브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남자로 인식하지 않고 "광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녀에게 살의를 품게된다.
전작과는 달리 범인이 범행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는 것이 차이점인 작품인데 미궁과가 등장할 필요가 없는 강력한 단서가 존재하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경찰이 그 차이점을 먼저 깨달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3. 보트의 푸른 수염
조지 매커트니는 알고 지내던 하녀와 보트를 타다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 덕에 "완전범죄"의 방식을 깨닫게 된 후 아내에게 보험을 가입하게 하고 그녀를 보트사고로 위장시켜 살해하는 수법으로 재산을 늘려나간다. 경찰은 그의 범행을 확신하지만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과로 넘어간다.
이 작품도 범인 이름이 조지네요. 작가가 조지라는 친구한테 사기라도 당했었나? 어쨌건 이번에는 연쇄살인극이네요. 그러나 범행 사실을 입증하기 힘들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범행 수법이 너무나 뻔하고 얄팍한데다가 사건의 해결이 지극히 우연에 기반하고 있기에 좋은 평을 주기 힘들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4. 없어진 두개의 다이아몬드
블렌든 집안의 11대째 백작인 헨리 어시웬 경은 희극 여배우 넬리 해이드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을 요구한 직후 살해되고 보석을 훔쳐간 건달 짐이 살인 혐의로 교수형을 받는다. 그러나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도둑맞은 보석이 새롭게 발견되고 미궁과는 사건 해결을 위해 헨리경을 다시 찾게 된다.
원제는 "속물의 살인", 우발적 범행을 다룬 작품으로 사건 해결 역시 우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범행 관련 당시의 물품을 그대로 소지하고 있던 범인의 사고 방식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건의 결정적 단서 역시도 납득하기 어려운,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5.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
앤드류 애머셤은 자그마한 체구의 소심한 사나이로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묵인하고 살다가 어느날 분노가 폭발한다...
제목과 설정에서 뭔가 정교한 트릭이 한번쯤 등장해 봄직한 느낌을 전해주는데 트릭이 너무 간단해서 좀 맥이 빠지네요.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되는 시계의 묘사와 설정 만큼은 마음에 들었기에 별점은 2.5점. 문제는 이 설정을 이후 계속 작가가 써먹는다는 것이죠...

6. 빨간 카네이션
변호사 웨이컬링은 한때 자신이 사랑했지만 캐스버트라는 인물과 결혼을 약속한 여성 지니를 10여년 뒤 그녀가 출소하는 교도소 앞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병으로 사망한 후 그는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캐스버트를 찾아가 살해하는데...
역시 우발적 살인을 다룬 작품으로 멜로드라마의 전형같은 범행 동기와 과정이 그려진 것은 특이했습니다. 카네이션과 포장지를 단서화 시키는 식으로 범행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물건을 찾는 이야기도 설득력 있었고요. 그러나 너무 많은 곳에서 범인이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에 구태여 미궁과가 출동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7. 노랑 잠바
여자 기숙 학교의 선생인 루스 워틀링턴은 같은 학교의 교사 허버트와 이성으로서가 아닌 우정을 오래 지속하던 중 그가 리타 스티븐즈라는 새로 부임한 선생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진심으로 축하를 전하지만 결혼 선물과 관련하여 리타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녀가 자신과 맞지 않는 가치관을 털어놓자 순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역시 순간적 충동에 의한 범죄, 그러나 그 범죄가 완전 범죄에 가깝게 흘러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동기나 범행 과정에 대해 합리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정말 사소하고 작은 단서에 의해 사건이 해결된다는 점은 마음에 듭니다. 단, 범인이 빠져나가려고 노력했다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8. 사교계의 야심가
대부호 은행가 스텐틀러는 해디넘경과 어린 시절 기숙 학교에서부터 친분을 유지했던 관계로 서로의 아들 딸이 곧 결혼을 앞둔 사이이기도 하다. 또한 사교계의 정점에 선 인물들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 가입에 20여년의 세월을 바쳐 결국 딸의 결혼과 클럽 입성이 눈 앞에 보이는, 행복의 정점에 다다랐다고 믿는다. 그러나 해디넘경과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클럽 가입이 거부되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원제는 "신분 상승자의 사건" 정도 될까요? 이 작품에서 귀족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최고위층 인물이라는 것이 독특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뻔해서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극히 사소한 단서" 라는 전제가 있지만 범인의 아주아주 작은 실수를 통해 드러나는 구조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너무 많이 반복되는 방식이라 생각되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9. 공처가의 살인
커머튼은 아내 거트루드에게 꽉 잡혀 사는 공처가로 아내와 전혀 다른 타입의 비서 이자벨과 은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사실이 들통나고 이자벨에게도 많은 돈을 요구받게 되자 그녀를 살해한 뒤 그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이 작품은 그간 보아왔던 "미궁과" 시리즈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는 작품으로 그다지 좋은 평을 내리기는 어렵네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가 너무 뻔할 뿐더러 기존 트릭의 반복일 뿐이었습니다. 평균 이하의 아류작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10. 장님의 망집
유망한 변호사 로버트는 자신의 변호에 앙심을 품은 여인의 테러로 장님이 되지만 곧바로 성공한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에게 호감을 가진 웨인이라는 인물때문에 자신의 장애를 깨닫게 된 뒤 그를 살해할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역시 비슷한 주제로 비슷하게 써 내려간 전형적 작품. 설정은 두번째 단편 "웃은 부인"의 판박이, 범행 계획 및 실행은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 그리고 해결되는 과정은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와 "사교계의 야심가" 등과 동일합니다. 솔직히 다른 작품으로 보기 힘들 정도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