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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 아서 코난 도일 / 송기철 : 별점 2점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 4점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송기철 옮김/북스피어

코난 도일의 출세작인 표제작을 포함한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입니다. 홈즈 시리즈 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경험에 따르면 지금 읽기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만, 표제작부터 그동안 궁금했던 작품일 뿐더러 마이클 더다의 '코난 도일을 읽는 밤'"에서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소개한 "북극성 호의 선장", "249호 경매 품목"이 함께 실려 있어서 구매하게 되었네요.

그러나 역시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상대로였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모두 낡아버린 소재와 전개의 이야기들입니다. 재미와 현재의 가치만 따지면 별점은 2점 이상 주기 어렵습니다.

물론 코난 도일 경을 경애하고 있으며 고전 추리문학 애호가이기도 한 저 같은 사람에게는 소장할 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며, 출간된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입니다. 앞으로도 북스피어와 임프린트 에스프레소 노벨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선박 관련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인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작품에서는 "마리설레스트호"라고 등장합니다. 'J. 하버쿡 젭슨'이라는 꽤나 그럴듯한 이력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가 마리설레스트호의 유일한 생존자이며 죽기 전 진상을 고백한다는 내용이지요.

워낙 유명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긴 하나, 이야기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배에 남겨진 모든 것들이 너무나 평온했다는 실제 사건과 달리, 작품 속 진상은 거의 선상 반란에 가까워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코난 도일이라는 작가의 시작점을 엿볼 수 있는 상세한 설정은 인상적이에요. 하버쿡 젠슨이 흑인 노예에게 받은, 사람 귀 모양의 기묘한 돌에 대한 묘사라던가 이 돌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는 설정은 흥미로웠거든요. 사건의 흑막인 혼혈아 고링도 돋보였어요. 첫 등장부터 손가락이 없는 손이라는 묘사로 오싹함을 전하고, 고링이 설파하는 복수와 흑인들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상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던 덕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실제로 관계된 사람이 많은 사건을 픽션으로 다룬 것이 가능했던 것은 빅토리아 시대라서였을까요? 지금 시점에 "천안함 제대병이 이야기하는 천안함의 진상!" 같은 제목으로 UFO가 배를 파괴했다는 소설을 쓴다면 아마 잡혀가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가죽 깔대기"

거대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깔대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기묘한 맛"류의 작품입니다.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을 등장시켜 역사 추리물스러운 분위기를 전해주는 점도 좋았고요.

그러나 역시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습니다. 깔대기 주둥이에 있는 이상한 자국의 정체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고, 강력한 염원이 있으면 그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는 설정도 시대를 고려하면 대단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허황되고 장황했어요. 이렇게 길게 끌 필요는 없었습니다. 특히 깔대기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에도 전개가 늘어진 점은 아쉬웠습니다.

결론적으로는 평작.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경매품 249호"

동양 사상에 정통한 음침한 친구가 경매품 249호 미이라를 구입한 뒤, 그 친구의 원수에게 기묘한 습격이 일어나고, 같은 건물에 살던 스미스 등이 그의 방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분량은 가장 길지만, 그러한 분량을 갖출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누가 봐도 미이라를 조종하는 음모라는 게 명확한데, 이를 대단한 서스펜스처럼 길게 끌고 가는 순진함이 다소 안쓰럽게 느껴졌어요.

그나마 긴 분량에 걸맞는, 영국스러운 상세 묘사는 그런대로 볼만했습니다. 보트 대회라든가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 특히 흑막 벨링엄을 찾아가 정중하게 협박하여 미이라를 비롯한 관련 물품을 불태우는 결말은 굉장히 영국적인 결말이었다고 생각되니까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북극성호의 선장"

포경선 북극성호가 빙원에 고립된 후 유령과 조우하여 벌어진 기묘한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다른 선원들의 목격담이나 동요도 있지만, 주로 선장에게 일어난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지금 읽기에는 일종의 순애보 같은 느낌도 들었고, 고유성 화백의 대표작인 "복제인간"도 연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장의 심리묘사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어, 재미나 가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마이클 더다가 왜 그렇게 극찬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4/09/30

하늘의 공포 - 아서 코난 도일 외 : 별점 2.5점

표제작을 포함한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직지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하나로 구글북스를 통해 무료로 읽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데, 번역 및 책의 구성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각 단편 서두에 실려 있는 짤막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도 학습 문고 스타일이고요. 예전에는 이런 책들도 이렇게 포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하긴 하네요.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괜찮지만 이렇게 대상 연령대에 맞추어 가공된 탓에 저 같은 일반인 독자가 읽기에는 여러모로 조금 애매했습니다.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 무료이니 한번 읽어보시고 괜찮다 싶으시면 정식 번역본(비록 많지는 않지만)을 구해 읽어보는게 좋을겁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사나이" H.G 웰즈

지구가 갑자기 멈추면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는 고전적인 과학 지식이 등장하는 유명한 꽁트. 포저린게이가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반전의 묘미가 살짝 있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작품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하늘의 공포" 아서 코난 도일

비행기로 고공 기록에 도전할 경우 비행사들이 이상하게 죽는 - 비행기 잔해는 발견되었지만 비행사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든지, 겨우겨우 비행장에 돌아와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다든지, 시체의 머리만 없어진 채 발견된다든지 - 사건에 도전한 영국의 명조종사 조이스 암스트롱의 수기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코난 도일 경도 초창기에는 수기 형식을 굉장히 애용한 듯 싶네요.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처럼요. 이 수기가 몇 페이지가 찢겨져 있다며 궁금증을 자아내는 도입부는 아주 괜찮았어요.

그러나 암스트롱이 "고공밀림"이라 부르는 곳에 도달하여 그곳에 사는 괴물들과 조우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루며 끝나버려 실망스러웠습니다. 딱히 대단한 수수께끼가 있지는 않은 그냥저냥한 크리처물에 불과한 탓입니다. 수기의 마지막 글 "아아 이제 끝장이다"는 여운이 남기기는 하지만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작은 거인" 폴 F 에른스트

1만 미터가 넘는 깊이의 구리 광산 갱도에서 신발을 신은 인간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다. 그리고 난장이들의 유령이 보인다는 설이 퍼지는데...

지하에 거주하는 난장이 인간에 대한 상상력을 펼친 SF입니다. 지하는 기압이 높고 열도 높은 탓에 지하 인간의 몸은 분자구조 자체가 단단하게 되어 콘크리트 같은 물질도 물처럼 유영할 수 있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습니다. 발자국 화석도 밀도가 높아서 무게로 그냥 땅이 푹푹 파였다는, 설정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였지요(물론 현실성은 없습니다만).

또 지하 인간들이 지성인으로 나름의 과학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굉장히 호전적이라서 주인공의 친구를 죽이고 표본으로 삼기 위해 시체를 가져가려 한다는 일종의 크리처물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주인공이 지하 인간의 지구 정복이 머지않았다고 절망하는 결말도 나름 괜찮았고요. 

다만 주인공의 걱정을 뒷받침해주는 복선이 약간이라도 등장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벽속의 아프리카" 레이 브래드베리

아이들 방이 가상현실을 투영한 공간으로 바뀌는 고도로 자동화된 세계에서 벌어진 기이한 참극입니다. 섬뜩한 SF의 거장인 레이 브래드베리 (브래드버리)의 솜씨가 잘 발휘된 단편으로,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 수록된 "대초원에 놀러 오세요"와 동일한 작품이지요.

"왜 가상현실의 사자가 현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자동화된 기계에 모든 것을 맡겨 극도로 이기적이면서 양심과 도덕에 대해서 둔감해진 아이들에 대한 묘사는 지금 읽어도 섬찟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주 스파이" 필립 K 딕

우주인과 전쟁 중인 지구에 우주인이 지구인과 똑같이 생긴 폭탄을 몰래 잠입시키는데...

"사기꾼 로봇 (Imposter)"라는 제목으로도 유명한 작품이지요. 폭탄 로봇이 살해당한 원래 인간과 똑같은 인격을 지니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바디 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설정도 기발하지만 주인공 올햄이 자신은 로봇이 아니라고 믿으며 진상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긴박하게 묘사되며 마지막 결말까지 인상적인 걸작입니다. 아동용 축약 버전이 아니라 정식 버전으로 다시 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우주에서 온 거머리" 로버트 셰클리
"불사판매 주식회사"의 저자인 셰클리의 단편으로, 물리적인 모든 것을 흡수하는 바위(거머리)가 등장하여 점점 커져가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거머리보다는 거머리를 배탈나게 하기 위해 굉장히 강력한 물리적 힘(수소폭탄)을 동원하는 멍청이 오도넬 장군의 폭주로 오히려 사건이 커지는 중반부가 인상적입니다. 원폭에 대한 시대적 공포를 반영한 풍자로 보이는데, 오도넬 장군이 억지로 거머리를 폭파시킨 뒤 더더욱 큰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는 결말까지도 완벽한 풍자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예전 "로보트 킹"에서 유탄이 에너지를 흡수하는 적에게 오도넬 장군 마인드로 킹의 모든 에너지를 때려넣어 과부하로 폭파시키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하긴 유탄은 무식한 놈이었지...

2019/08/25

테러호의 악몽 1, 2 - 댄 시먼스 / 김미정 : 별점 3점

테러호의 악몽 1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테러호의 악몽 2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1845년, 최신식 함정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를 타고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출발한 존 프랭클린 경 탐사대는 무리한 항해 끝에 얼음 속에 고립되고 말았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탐사대를 키가 4m가 넘는 하얀색 괴물이 습격하기 시작했고, 괴물과 추위, 식량 부족 등의 문제가 겹치며 프랭클린 경을 비롯한 탐사대원들이 하나씩 죽어가자 테러호의 함장 크로지어는 배를 버린 후 생존한 탐험대 전부와 함께 육로로 탈출을 결행했다.
그러나 계속된 괴물의 습격과 식량 부족은 생존자들을 계속 괴롭혔고, 누수방지공 히키를 중심으로 한 대원들의 반란까지 일어나는데...

"칼리의 노래"로 접했었던 댄 시몬즈의 장편 호러 팩션입니다. 실존했던 싱클레어 탐험대에게 닥친 비극과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지요. 실존하는 미해결 미스터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는 코난 도일"J.하버쿡 젭슨의 진술"이 떠오릅니다.

이전부터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 2권 합쳐서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순식간에 읽어버렸을 정도로요. 재미의 가장 큰 요소는 끔찍한 초극한 상황의 생생한 묘사입니다. 이들에게 닥친 비극은 작 중에서도 언급되다시피 포경선 에식스 호의 비극과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에식스 호는 십 수명의 선원들이 주로 '굶주림' 과 싸우며 그래도 다섯 명이나 생존했지만, 싱클레어 탐험대는 백명을 훌쩍 넘는 대원들이 아무 것도 잡지 못해 줄어드는 자원만으로 버텨야 해서 직면한 굶주림은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몇 수 위입니다. 최고 영하 60도 이하로 떨어져 맨 손으로 총을 잡으면 살갗이 벗겨질 정도니까요.

탐험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요소로는 괴혈병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묘사도 굉장합니다. 모공 등 모든 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이빨이 빠지고, 붓기가 심해지며 피부의 탄력도 사라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몇몇 선원들이 걸린 납중독 묘사도 처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죽어가는 핏제럴드 함장의 최후가 특히나 끔찍합니다. 

탐험대를 습격하는 거대 괴물 툰바크의 위협도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4m도 넘는다는 거대한 체구에 속도도 엄청나며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괴물로 인간은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나마 탐험대의 발버둥은 테러 호의 항해장 블랭키가 괴물에 맞서 오랫동안 버티며 살아남는 정도에 불과해요. 참고로 블랭키의 사투는 박력이 넘쳐서 전체 내용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어려움에서 드러나는, 인간 관계를 통한 드라마도 탄탄해서 재미를 더합니다. 작중 최고 악역인 누수방지공 코닐리우스 히키의 존재는 비교적 평범한 편이나, 다른 인물들의 묘사와 설정이 아주 빼어납니다. 실력은 없지만 운과 허세에 의존하는 존 프랭클린을 비롯, 실력은 뛰어나나 아일랜드인이라는 출신 성분 탓에 뼛 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사는 크로지어 함장, 순수한 군인이자 '인간' 인 어빙 소위, 체력이나 능력은 딱히 없지만 열정과 신념으로 무장한 해리 굿서 등 모든 인물들이 눈에 보이듯 그려져 정말 살아 숨쉬는 듯 합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다가 죽어가는 인물들과 인간임을 포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인간 군상들의 대비도 확실하고요. 사실 극한 상황에서 군율과 군기가 유지된다는게 처음에는 영 와 닿지 않았는데, 묘사를 통해 국가와 인간에 헌신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덕분에 나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탐험대가 전멸할 때 이누이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히키가 어빙을 죽이고 이누이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탓이라는 설명이 더해진 것도 좋았습니다. 탐험대가 이누이트를 복수 명목으로 학살해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탐험대의 생존 경쟁만 그렸으면 좋았을텐데,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영역의 이야기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은 탓입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툰바크, 그리고 툰바크와 관련된 벙어리 여인 실나의 정체입니다. 실존한다기 보다는 결국 이누이트 신화 속의 존재라는 진상은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크로지어 함장이 '천리안'을 갖춘 인물로 그 역시 실나와 결혼하고 이누이트 주술사로 거듭난다는 결말 역시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프레데터'와 총으로 싸우다가 나중에 부적을 붙여 퇴치한다는, 크리쳐 호러물이 갑작스러운 퇴마물로 전환되는 셈인데 영 개운치 못했거든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TV 시리즈에서는 툰바크가 실체가 있는 괴물로 그리고 있던데 그게 더 나은 선택인건 분명합니다.

그래도 워낙에 압도적인 내용이 많고 재미 또한 빠지지 않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결말만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내었더라면 4점도 아깝지 않았겠지만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밀리의 서재' 처음 한 달 무료 프로모션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 아직 '밀리의 서재' 가입을 하지 않으셨다면 무료로 읽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덧붙이자면 TV 시리즈도 무척 땡기지만, 심하게 무서울 것 같아 망설여지는군요. 호러 무비는 취향이 아니다보니...

2017/06/18

미스테리아 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5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구하게 되면 읽곤 하는 장르문학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 5호입니다. 작년 초에 출간된 한참 전 과월호지요. 언제나처럼 특집 기사와 신간 소개, 이런 저런 연재 기사, 인터뷰, 수록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관심 있던건 특집입니다. "음식 미스터리"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 속 요리'에 대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좋은 비교, 혹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소재가 진부하다는 겁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해 빠진 내용이에요. 도입부의 식인 천재 범죄자 한니발 렉터,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대표적입니다. 그나마도 인터넷을 뒤지면 알 수 있는 내용일 뿐이고요. 정작 기대했던 내용은 실려있지도 않습니다. 저라면 한니발 렉터의 '전두엽 소테'나 네로 울프의 '소시스 미뉴이'를 소개할 때 최소한 해당 음식의 레시피와 조리 사진을 수록했을 겁니다.
이어지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속 독약에 대한 소개는 '음식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기는 무리입니다. 차라리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같은 작품 소개가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작품 속 요리를 재현하는 코너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제와 연결되는 요리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미스테리아 측에서 별다르게 창작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참고 도서 속 - 주로 "미국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 -  요리를 재현한 것에 불과해요. 그나마 셜록 홈즈가 '해군 조약문'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던 "해군 조약문" 속 치킨 커리 정도만 어느정도 주제에 값할 뿐, 재현한 요리가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의 '10권의 맛있는 미스터리' 소개는 실망의 정점을 찍습니다. 기준, 근거를 알기 어려운 탓입니다. 일단 소개작 중 "스위트 홈 살인사건",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기나긴 이별"은 절대로 음식 미스터리로 포장할 수 없습니다. 억지에요. "어느 백만장자의 죽음"은 아슬아슬하게 음식 미스터리 범주 안에는 들기는 한데,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추천 도서로 떡 하니 내미는 행위는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는 빈말로도 좋은 작품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 외 작품들도 음식 미스터리로는 볼 만 하지만, 추천할만한 수준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특별 요리""맛" 외에는 모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주자면 1.5점 정도? 제 개인 프로젝트에 필적할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는 조금 안심했지만,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 힘든 기획입니다. 

다행히 특집 외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빼어난 리뷰가 많아서 "미스테리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간 소개 코너는 역시나,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좋은 리뷰들이 많더군요. 솔직히 읽어본 결과에 따르면 좀 과한 홍보의 결과물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번에 소개된 작품 중 마쓰모토 세이초의 "범죄자의 탄생"은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원작,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신부""상복의 랑데뷰"보다 낭만적인 애상으로 넘쳐흐른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완성도 면에서 천지차이니까요. 영상화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해 주면 좋겠습니다.

연재물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의 밀실에 대한 대담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써먹기는 힘들다는 단점은 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특히 다다미를 걷어내면 아마추어는 다시 깔 수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는 정보를 토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내 놓는 아이디어 - 다양한 기술자들이 등장하는 탐정물 - 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로관을 예로 들며 전기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 등 건축 전문가의 식견이 느껴지는 여러 코멘트들도 기억에 남고요.

한국의 50~60년대 추리 소설을 발굴한 추리소설 평론가 박광규 씨와의 인터뷰 역시 좋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재 사고와 관련된 논픽션, 폴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젊은 지식인 발라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웠는데, 특히 범인 크리스티안 발라와 그의 작품 "아목", 형사 브로블레브스키라는 키워드는 꼭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봐야겠습니다.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를 추적하며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다는 기획물인 '동아시아 미스터리, 정치적 죄와 서스펜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대중 서사의 최고봉이라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 "별이 차가운 밤이면"과 김내성의 "청춘 열차"는 틈 나는 대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두 편의 단편도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척박한 한국 장르 문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좋은 잡지이지만, 이번호는 특집이 너무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2편의 단편의 짤막한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나비 부인의 커튼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두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 건너편에 '나비 부인'이라는 카페가 개업했다. '나비 부인'은 가면을 쓰고 서빙하는 독특한 컨셉과 인테리어, 커피 맛이 입소문을 타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던 중, 기묘한 노인이 '나비 부인'에서 진상을 부린 다음 날 '나비 부인' 사장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최혁곤의 단편입니다. 시리즈 캐릭터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콤비가 등장하는 단편집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전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쾌한 분위기의 버디물인데, 아쉽게도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별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초반에 나왔던 수상쩍은 노인이 범인으로 체포되는 등 수수께끼의 여지도 없고요. 

특히 후더닛 물로는 영 아니올시다에요.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 사람을 공격하여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버 테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회파적 측면이 강하며, 이것이 동기로 밝혀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와이더닛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사회파적 설정이 잘 어울리지는 않네요. 인터넷의 비방글로 자살을 한다는 것도 와 닿지 않고요. 또 고3 수험생 투신 사건도 불필요할 정도로 질질 끄는 느낌입니다. 동기 부분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와이더닛물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진범 검은 뿔테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도 불분명하니까요. 남자 친구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낮아요.
진소담의 가족 관계 증명서 정도만 나름 증거일 뿐, 추리가 모두 정황 증거에 기반한다는 약점도 크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던 범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버디물로서는 충분히 즐길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단편집은 한번 읽어 볼 생각입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기흥 보리산 자락에 있는 무당의 당집에서 처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완벽한 밀실 안에서 홀로 생존한 채 발견된 유홍석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 그러나 판사에게 유홍석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한국에서 보기 드문 본격 추리물들을 발표하고 계신 도진기 판사님 - 현 시점에서 변호사가 되셨지만 - 의 스탠드얼론 단편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뼛속까지 고전 본격물 애호가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1인칭의 수기 형태로 전개되며, 끔찍한 사건이 초자연적인 현상과 얽혀 일어난다는 점이 완전 고전 스타일이었거든요. 비교하자면 코난 도일경의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이라던가, 앰브로스 비어스의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에 수록된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워낙 고전물을 좋아하기에, 완전 제 취향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단지 스타일을 따온 것에 그치지 않고, 무당 '인문희'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덕분에 독특한 한국적 오컬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에요. 특히 그녀가 서상표의 집에 몰래 부적을 붙인게 드러나는 장면은 굉장히 섬찟합니다. 만약 영상화한다면 클라이막스로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문희에 비하면 서상표는 전형적인 한국 쓰레기 남자와 다를 바 없어 지루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상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어요. 괜찮은 고전 오컬트물이 갑자기 크리쳐 호러로 변질되는데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게다가 잘린 목이 경동맥을 물어 뜯었다면 부검으로 밝혀지는게 당연한데 간과되고 있고, 유홍석이 현장 문을 잠가 밀실로 만든 이유도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등 디테일에서도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고전 스타일 오컬트 호러 스릴러임에는 분명합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굉장히 탈 텐데 저한테는 호 쪽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씀드린 부적이 드러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2025/04/05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유감.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 2점
남궁진 엮음, 아서 코난 도일 원작/센텐스

아서 코난 도일 경의 국내 미출간 단편집이라 하여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챗GPT를 통한 자동 번역이 어느 정도 보편화된 시대에, 이런 수준의 번역을 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래는 이 책의 "폴스타호의 선장"의 한 부분입니다.

앞으로는 비스킷 반 탱크, 소금에 절인 고기 세 통, 커피콩과 설탕의 매우 제한된 공급이 남아 있었다. 후방에는 통조림 연어, 수프, 하리코 양고기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사치품이 많이 있었지만, 이것들은 50명의 인원이 먹기에는 매우 한정된 양이었다.

창고에는 밀가루 두통이 있고 담금질한 담배만 많았다. 모두 합쳐서 18일이나 20일 동안 절반의 배급으로 선원들을 지탱할 수 있는 양이었다. 

...

"여러 시즌 동안 우리나라에 온 배 중에는 오래 된 폴스타호 만큼 많은 석유 돈을 벌어들인 것이 없었고, 너희 모두가 그 돈을 나눠가졌지. 다른 불우한 녀석들이 와이프를 편안하게 남겨두고 돌아오지 못하는 동안 너희들은 그 여유를 누렸다. 너희가 그것을 얻은 것에 대해 내게 감사해야 하며, 우리가 실패한 것에 대해 불평할 이유는 없다. ."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담금질한 담배'라니....  아래는 원문(저자 사후 70년이 지난, 저작권이 풀린 퍼블릭 도메인이라 무료입니다)을 찾아서 챗GPT에게 번역을 시킨 결과물입니다. 그냥 보아도 수준 차이가 확연하지요. 번역본이 임의로 원문을 줄인 것도 눈에 뜨이고요.

선수 쪽에는 비스킷 반 통, 소금에 절인 고기 세 통, 그리고 커피콩과 설탕은 아주 적은 양만 남아 있었다. 선미 쪽 창고와 보관함에는 통조림 연어, 수프, 해리컷 양고기 등 사치품에 가까운 식료품들이 제법 있었지만, 승무원 50명에게 돌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저장실에는 밀가루 두 통과, 담배는 무제한으로 비축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따져봤을 때, 모든 인원이 절반의 배급량으로 나눠 먹어도 18일, 길어야 20일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양이었다.

...

“그동안 이 땅에 오는 배들 중에서 ‘올드 폴스타’호처럼 많은 기름 돈을 벌어들인 배는 없었고, 여러분 모두 그 덕을 봤잖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집에 아내를 안심시키고 떠났지만, 다른 불쌍한 놈들은 돌아와 보니 여자가 구빈원에나 들어가 있지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 모든 것에 대해 나를 원망할 수 있다면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이번 전에 대담한 모험을 해서 성공했었고, 이번엔 실패했을 뿐이에요. 그러니 실패했다고 해서 울고불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 "

하여튼, 이따위 결과물을 돈 받고 팔려고 했다는게 황당하기만 합니다. 도저히 더 읽을 수가 없어서 포기했기에 점수를 따로 주지는 않겠습니다만, 앞으로 이런 책은 사라져주면 좋겠네요.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북극성 호의 선장"은 다른 단편집에서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단편은 무료 텍스트를 챗 GPT에 번역을 시키는게 훨씬 나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