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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9

친구 중의 친구 - 헨리 제임스 / 하창수, 이승수 : 별점 2점

친구 중의 친구 - 4점
헨리 제임스 지음, 하창수.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바다출판사

너무 더워서 책 읽기도 싫어진 요즈음입니다. 짧은 책만 손에 잡게 되네요. "나사의 회전"으로 유명한 헨리 제임스의 작품집으로, 19세기 후반 영국 귀족사회를 무대로 한 희한한 판타지와 일상계 이야기 네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열여섯 번째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도 그러했으나, 이 책은 유난히 읽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장황하고 쓸데없는 묘사가 너무 많았으며, 친숙하지 않은 낡고 어려운 문체에다가 축약과 은유가 심해서 쉽게 읽히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던 탓입니다. 은근한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명쾌하고 속 시원한 부분이 없다는 점은 확실히 오래된 작품이란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요.

이런 점들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 바닥의 고전인 "나사의 회전"이나 읽어봐야겠습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생활"

상류사회 인사들이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저명한 인사의 색다른 진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 나름의 설정과 반전은 괜찮았지만 깔끔한 전개로 보이지는 않네요. 별점은 2점.

"오언 윈그레이브"

군인 가문의 기대주로 사관학교 입학을 앞둔 오언이 갑자기 진학을 포기한다는 선언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성장기, 또는 풍자극으로 읽혔으나 결말은 뜬금없이 유령에 대한 괴담인 희한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설명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불만스러웠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친구 중의 친구"

네 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기는 했습니다. 절대 만날 수 없는 운명의 남녀가 만나게 된 순간 사랑에 빠지고,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다는 이색적인 설정이 돋보였거든요. 주인공이자 화자의 역할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등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전개에 공감할 만하다는 점에서 가장 나았습니다. 별점은 3점.

"노스모어 가의 굴욕"

걸작 단편이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나름 괜찮기는 하나 역시 명쾌한 맛은 부족해서 아쉬움이 큽니다. 현대 작가가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일한 일상계 작품이기는 한데, 솔직히 내용을 이해하기도 좀 어려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2/08/04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 로드 던세이니 / 정보라 : 별점 2.5점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 6점
로드 던세이니 지음, 정보라 옮김, 이승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바다출판사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18번째 작품으로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게렉터님 블로그 리뷰를 접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로드 던세이니는 고전 "두병의 소오스"로 접하고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작품들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차에 반가운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작품들 대부분이 전형적인 "판타지" 문학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제 기대와는 좀 달랐습니다. 반전이 빼어나고 촌철살인의 맛이 있는 "쇼트쇼트" 같은 작품을 기대했었는데 말이죠. 게다가 몇몇 작품은 당최 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도 "불행교환상회"나 "어느 여인숙의 하룻밤" 같은 기대에 걸맞은 작품도 실려 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정통 판타지 문학을 좋아하신다면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곳"

영혼이 갈 데가 없어 버려진 존재들 속에서 기거하게 된 운명에 처한 남자가 최후에 구원받는다는 초단편. 철학적이면서 "불새 - 우주편"이 떠오르기도 하는 등 아이디어는 괜찮지만, 너무 짧은 탓에 재미만 놓고 보면 그닥이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들판"

들판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에 관한 이야기. 솔직히 저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

"칼과 우상"

철기와 종교의 도입 시기에 벌어졌음직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 결국 종교가 승리한다는 결말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상당한 수작이었습니다. 지금의 세태에 대한 풍자적 의미도 담겨 있는 듯 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카르카손"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카르카손을 향해 무모한 도전을 떠나는 정복자 일행에 대한 서사시. "원탁의 기사" 등이 연상되는 고전 느낌의 정통 판타지 문학입니다. 고전 느낌 그대로라서 의외성이 하나도 없다는건 단점이지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런데, 보드게임 "카르카손"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좀 궁금합니다.

"거지들"

이상한 예언을 하는 거지들과 맞닥뜨린 주인공이 버스 경적 소리로 환영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 "들판"처럼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별점은 1점.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표제작. 특별한 줄거리가 있다기보다는 주인공이 얀 강가를 중심으로 한 이국적인 도시들을 여행하며 경험한 것에 대한 기행문 성격의 작품입니다. 문체와 분위기, 설정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국적인 독특함이 일상계스러운 분위기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카페 알파" 등이 떠오르는데, 좀 더 풀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되네요. 혹 후속작이 있다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행교환상회"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의 것과 교환해 주는 상점에 관한 이야기로, "환상특급" 같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결말이 예상 범위 안에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런 작품이 좀 더 많이 실렸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별점은 3점입니다.

"어느 여인숙의 하룻밤"

짤막한 희곡. 많은 모험소설에서 접했던 "이교도 유적에 있는 신상의 보석 눈을 훔친 도둑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반까지는 일당의 브레인 '멋쟁이' 활약 중심의 모험-범죄물이었다면, 마지막 반전 이후 결말은 "기묘한 맛" 장르에 가깝습니다.   

반전이 굉장히 뛰어나서 전편을 통틀어 가장 기대에 값했던 작품이에요. 실제 연극도 보고 싶어지더군요. "두병의 소오스"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12/07/15

아서 새빌 경의 범죄 - 오스카 와일드 / 고정아, 이승수 : 별점 3점

아서 새빌 경의 범죄 - 4점
오스카 와일드 지음, 고정아.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바다출판사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14번째 작품. "목소리 섬"을 읽고 탄력받아 읽게 된 책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다섯 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수록된 "행복한 왕자", "저만 아는 거인"은 다른 책에서 이미 접했던 우화에 가까운 작품들로,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에게 기대했던 유머나 반전이 별로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물론 "행복한 왕자"는 어렸을 적 접했던 동화 버전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현실 풍자적인 요소가 눈에 띄긴 했지만요. 

다행히 그다음에 이어지는 작품들은 기대했던 그대로더군요. 사랑의 무용함을 작가 특유의 시각으로 표현한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솔로 부대를 위한 헌사로 보여 기대에 값했습니다.

중단편 표제작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수상학자의 예언을 들은 뒤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결심한 아서 새빌 경의 좌충우돌 범죄 계획을 다룬 작품으로, 내용은 사뭇 진지하나 작가 특유의 블랙코미디 같은 해학이 잘 살아있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나름 정교한 계획이 계속 실패한 뒤, 충동적으로 저지른 마지막 범행이 성공한다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캔터빌 유령"은 이 단편집의 백미입니다. 캔터빌 가문 저택의 오래된 유령이 새로 이사 온 미국인 가족에게 되려 된통 당하고 우울해하다가 성불한다는 내용인데, 현대 퇴마물을 보는 듯한 묘사와 전개가 압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령의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최첨단 세제를 동원하고, 유령의 쇠사슬 소리가 시끄러워서 윤활유를 권해주는 등의 깨알 같은 디테일이 정말 최고였어요. 마지막 성불에 이르는 과정과 완벽한 해피엔딩 결말까지, 뭐 하나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좋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3점. 앞부분의 교훈적 우화들이 기대와 전혀 다르기는 하나 뒤의 두 편, 특히 마지막 작품 한 편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덧: "저만 아는 거인"은 제가 아주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 버전이 기억에 생생한데 아직도 출간되고 있더군요! 지나친 종교적 결말은 지금의 제 취향은 아니나 반가운 마음에 같이 포스팅합니다.

저만 알던 거인 - 6점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미림 옮김/분도출판사

2022/01/21

싫은 소설 - 교고쿠 나쓰히코 / 김소연 : 별점 2.5점

싫은 소설 - 6점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손안의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담추리의 결합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교고쿠 나츠히코의 괴담 호러 단편집입니다. "싫은 아이", "싫은 노인", "싫은 문", "싫은 조상", "싫은 여자친구", "싫은 집", "싫은 소설"의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야말로 '싫은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입니다. 읽고 나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점에서는 '이야미스' 쟝르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후카타니'라는 인물이 모든 작품에 관여하고 있는 연작 속성이 있다는 것도 특징이고요. 윤회, 루프물이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수록작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괴담물입니다.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구조가 아니고, 괴현상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이야기들을 의미하지요. "싫은 아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머리가 크고 시체같은 아이의 정체, "싫은 노인"에서 구보타 가에서 돌보는 노인의 정체와 폭주의 이유, 살인 사건이 일어난 이유, "싫은 조상"에서 불단 속에 모셔진 시체도 아니고, 유령도 아닌 괴물체의 정체는 모두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점은 아닙니다. 설명이 없는 부분은 일종의 여백처럼 독자의 머릿 속에 여러가지 상상을 떠오르게 만들거든요. 그 덕분에 더 무서우면서도, 이래서야 사람이 미치는게 당연하겠구나 싶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들게 해 줍니다. 괴상한 아이에게 화자인 다카베의 아내는 강간당하고 다카베는 발광해 버리는다는 "싫은 아이"의 급작스럽고 뻔한 결말은 별로이긴 했지만요.

두 번째 단편물은 괴담물과는 다르게 나름 기승전결로 각자 완결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는 "싫은 문"과 "싫은 여자친구", "싫은 집"입니다. "싫은 집"은 일종의 윤회물로 '싫어하는 느낌'이 반복되는 집이라는 소재는 괴담물스럽기는 하지만, '저주받았다'고 해석한다면 나름 합리적(?)인, 완성된 이야기로 보입니다.

"싫은 여자친구"는 '싫어하는 느낌'을 극대화한, 수록작 중 최고의 '이야미스' 물입니다. 고리야마가 싫어하는 행동만 극대화하여 반복하는 여자친구 행동에 대한 묘사가 정말 압권으로, 사람을 정말 말려죽이는 공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단순한 스플래터 고어 호러보다, 이런 일상적이면서도 단순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저주같은 공포가 더 무섭네요. 이건 정말 영상화해야만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수록작 중 최고였습니다. 싫은 느낌, 완성도, 공포라는 모든 측면에서요. 

싫은 문"은 불행한 남자 기자키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호텔방에 초대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 방에서 기다리다가 들어오는 사람을 산탄총으로 쏴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챙겨 도망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기자키는 들어온 사람을 죽이고, 천만엔을 챙겨 달아난 뒤 이어지는 행운으로 성공합니다. 여기까지는 흥미로왔는데, 기자키가 1년 후 그 호텔방을 찾아가 스스로를 스스로에게 죽게 만든다는 결말은 좀 뻔했습니다. 영미권의 판타지 호러스러운 느낌이었어요. "바벨의 도서관" 수록작 "병 속의 악마"와 설정과 전개, 결말 모두 비슷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수록작들 중에서 싫은 느낌이 가장 덜하기도 합니다. 기자키는 스스로 선택해서 사람을 죽였고, 그 덕에 행운을 손에 넣게 됩니다. 싫은 느낌을 받을 이유가 없지요. 루프는 일종의 문이 1년 전으로 시간 이동하는 느낌이라 죽는다는 기분을 가져가지도 않고요. 알고보면 영원히 죽는 잔혹한 상황이지만 기자키가 그걸 알 방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은 설정 구멍같았어요. 기자키에게 방의 루프를 넘겨준 노인은 누군가 기자키가 다음에 오면 나가야 하는게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그 역시 그 말을 하고 루프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복귀하고요. 하지만 설정 상 현재의 기자키가 루프되는 걸 알 수가 없으니, 이 루프를 기자키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행운을 얻기는 후, 루프가 된다는걸 알아내야 다른 사람을 찾을텐데 그건 설정상 불가능하니까요.

이렇게 괴담물과 단편물은 각각 세 작품 씩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대미를 장식하는건 단편집 전체를 완결하는 표제작 "싫은 소설"입니다. 앞서 모든 작품에서 상담역 등으로 등장했던 후카타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상사 가메이와 출장가다가, 그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후카타니가 읽는 소설이 앞서 여섯 편의 이야기이며, 마지막 소설은 계속 반복된다는 일종의 루프물이지요. 후카타니가 폭주하여 루프는 끝나지만, 결국 후카타니도 '싫은'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이고요.

그런데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치고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후카타니는 좋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빚 잔치 끝에 자살한 동창 기자키의 처자식 장례식을 도맡아 진행해주고, 회사 선후배 상담역을 맡을 정도니까요. 고리야마가 입원했을 때는 병문안도 가 주고, 도노무라 본부장의 '싫은 집'은 휴가를 내어 함께 찾아가는 등 노력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주위 친구들을 모두 '싫은 상황'으로 잃고 본인도 싫은 상황에 빠진다는 결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능한 꼰대인데다가, 게다가 성희롱도 남발하는 가메이같은 상사가 멀쩡히 살아남는다는건 더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차라리 후카타니가 결국 폭발하고 루프가 끝난다면 시원하게 가메이의 목을 졸라 죽인다는 결말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물론 이런 이야기였다면 '싫은 소설'은 될 수 없었겠지만요.

별점 4점은 충분한 걸작 "싫은 여자친구"와 평작 수준 이상인 "싫은 노인", "싫은 조상", "싫은 집", 그리고 기타 평균 이하 작품들의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기 힘든 흡입력은 있는데, 취향을 많이 탈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뜻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2015/05/29

소원의 집 -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하창수 : 별점 2점

소원의 집 - 4점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하창수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바다출판사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스무 번째 책. "정글북"으로 유명한 키플링의 말년 단편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얇고 짤막하고 만듦새도 예뻐서 부담 없이 가끔 집어들고 읽곤 합니다만, 대체로 내용이 어렵고 대중적이지 않은 탓에 잘 와닿지는 못해왔습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기로는 역대 제가 읽은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예요. 그래도 다른 책들은 한두 편이나마 쉽거나 대중적인, 흥미를 끌만한 작품이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거든요. 덕분에 두께는 얇지만 읽는 시간은 웬만한 장편급으로 시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작품은 표제작인 "소원의 집"입니다. 한 여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그의 고통을 자신이 받게 해달라는 소원을 혼백이 살고 있는 소원의 집에 빈 뒤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애시크로포트 부인과 피틀리 부인이라는 두 할머니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으로, 소원의 집에 대한 반전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암이라는 과학적, 의학적 반전이 등장한다는 점만큼은 인상적이었어요. 소원의 집에서 빈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기발하긴 했으니까요.

그리고 "알라의 눈"에서 지옥을 묘사하기 위해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한다는, 역시나 과학적인 발상은 괜찮았어요.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허나 그 외에는 제가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며, 왜 이러한 내용을 썼는지에 대해서도 알기 어려워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군요. 때문에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만, 저도 잘 모를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기에 그리 공정한 점수는 아니긴 합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012/07/09

목소리 섬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김세미 : 별점 2점

목소리 섬 - 4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세미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바다출판사

깊이 있으면서도 해박한 리뷰로 존경해 마지않는 게렉터님이 소개한 책입니다. 보르헤스가 직접 선집한 "바벨의 도서관" 중 한 권이죠. "보물섬"의 저자 스티븐슨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환상문학 단편 4편을 모아놓았습니다.

한 편씩 짤막하게 소개하자면, 하와이를 무대로 원주민을 등장시킨 표제작 "목소리 섬"은 마법사가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린다거나 식인종이 등장한다거나 하는 설정이 그럴듯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두서가 없고 대충대충 흘러갈 뿐이라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별점은 2점.

두 번째 이야기 "병속의 악마"는 악마가 깃든 병을 구입한 가격보다 싸게 팔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본 이야기 얼개가 워낙 흥미진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게렉터님 소갯글에서도 가장 땡긴 것은 이 작품이었죠. 예전에 다른 결말의 작품으로 봤던 것 같은데 (이원복의 만화였던가... 아마도 선원이 착한 노인이라 사갔던 듯싶습니다만) 기억은 잘 안 나네요. 어쨌건 다양한 결말의 변주도 가능할 것 같은, 전통적이면서도 좋은 이야기로 별점은 3점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인 "마크 하임"과 네 번째 이야기인 "목이 돌아간 재닛"은 딱히 언급할 건 없네요. 종교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라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생각되지도 않을 뿐더러 재미도 없었거든요. 별점은 각 1점 정도?

전체 평균 별점은 반올림해서 2점. 보르헤스의 해제는 재미있고 짤막한 길이도 적당하며 책의 디자인도 괜찮은, 요즈음 찾아보기 힘든 정통 문고본이라 잘 팔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세월 탓인지 독특하고 신비롭기는 하지만 문체가 낡고 쓸데없이 장황해서 쉽게쉽게 읽히는 맛도 부족한 등 아무래도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큰 작품집이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