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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7

궁극의 문구 -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 김보화 : 별점 3점

궁극의 문구 - 6점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지음, 김보화 옮김/벤치워머스

최근 문구 관련 책을 꽤 자주 읽는군요. 이 책은 공대 출신 디자이너로 1999년 "TV 챔피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식 '문구왕' 에 등극한 이후, 문구왕으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저자의 문구 리뷰집입니다. 저자의 화려한 프로필은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책은 130여 페이지 정도의 얇은 분량으로, 문구왕이 직접 써 보았던 정말로 괜찮은 문구 68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당 문구의 장점과 가격 등 상세 정보가 소개되어 정보로서의 가치는 아주 높고요(이후 8종의 추가 문구까지 더하면 76종!). 직접 그린 일러스트도 꼼꼼해서 볼 만 합니다.
짤막한 리뷰지만 곳곳에서 문구왕 다운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톰보우의 유성 다색 볼펜 리포터 4 소개에서 '4색 노크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아이디어를 콕 짚어 이야기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색별로 다른 형태를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구현하는건 앞으로 정말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몇몇 칼럼들, 그리고 문구왕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부분도 많이 공감되었고요.

당연히 몇몇 제품은 리뷰 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인데,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제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 펜텔 멀티 8. 8종의 심을 가진 색연필 샤프펜슬 : 3,800엔(국내 판매가 약 34,000원)이라는 가격은 좀 비싸지만 딸아이 필통에 넣어주고 싶네요. 
  • 펜텔 사인펜 : 이전에 써 본 적 있습니다. 별 감흥없이 사용했었는데 문구왕 왈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는, 이 바닥의 컵누들, 포카리스웨트, 오로나민C라고 하는군요. 1963년에 발표된 세계 최초의 휴대용 수성펜으로, 지금까지 디자인을 유지하고 발매되는 원조라는데, 이런 역사적 의미만으로도 다시 구입하고 싶어집니다.
  • PIROT 캡리스블랙 : 펜촉이 클립 쪽에 달려 주머니에 꽂고 다녀도 잉크가 흐르지 않는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2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 단종되었다는 현실의 벽은 높지만 실물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 몰스킨 노트, TOMBOW MONO 지우개, A-Type 커터칼, D형 디자인 나이프, 3M 스프레이 풀 시리즈, 3M 테이프들, 국내에서는 '날크립'으로 알려진 OHTO 슈퍼 그립 등 친숙한 문구 소개도 아주 반가왔습니다.

그러나 몇몇 리뷰는 지나칠 정도로 '오덕' 스럽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크게 "쓰다", "지우다", "자르다", "붙이다", "엮다", "재다", "정리하다", "그 외" 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 중 "쓰다"와 "지우다" 외 다른 분류 속 제품 들은 일반 가정에서 일반인이 쓰기에는 좀 과하다 싶은 제품들이 제법 되는 탓입니다. 테이프 커터, 게이지 펀치, 날짜 스탬프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제품이 제법 많은 점도 아쉬웠어요. 설명만 읽어도 몇몇 제품은 소장 의욕이 불타오르는데 구할 방법이 없네요. 문구왕의 쇼핑몰에서 국내 배송도 지원해 주면 좋겠지만 힘들겠지요.

하지만 단점 보다는 재미, 가치가 워낙 뛰어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문구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이렇게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쓴 리뷰집은 대체로 한 번 읽어볼 만 한 것 같습니다. 전문가의 노하우를 저렴하게 훔쳐(?)올 수 있으니까요.
물론 원하는 정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블로그, SNS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 과잉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기에, 지금은 이렇게 진짜배기 전문가가 공인한 정보의 가치가 더욱 높아 보입니다.

2020/12/27

문구상식 - 와다 데쓰야 / 고정아 : 별점 2점

문구상식 - 4점 와다 데쓰야 지음, 고정아 옮김/홍시

모으는 취미도 없고, 그다지 많이 쓰지도 않지만 문구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이전 "문구의 과학" 리뷰 글에서 언급했듯 친숙하지만 놀라운 창조물로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는걸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구의 과학" 외에도 "궁극의 문구", "문구의 모험" 등 문구 관련된 여러 책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문구의 대명사인 연필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읽었고요. 이 중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일종의 논픽션인 "그래, 나는 연필이다"와, 거대한 농담과 같은"연필 깎기의 정석"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문구에 대한 미시사적 접근, 혹은 특정 문구에 대한 소개나 저자의 문구 사용에 대한 노하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책도 문구에 대한 소개와 노하우를 담고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들에 비하면 재미도 없고, 내용에 대해 공감하기도 힘들었어요. 

물론 건질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다른 책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붙임쪽지'에 대해 한 단락을 할애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풀어놓는 부분이 괜찮았어요. 저도 책을 읽을 때, 읽고 나서 리뷰에 사용하기 위해 포스트잇이나 투명한 필름형 붙임쪽지를 붙여 놓는 편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저자 의견에 공감되는 점이 많기도 했고요. 저도 저자의 말대로 투명한 필름형 붙임쪽지가 왜 3색 이상 컬러로 구성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파일링' 단락도 볼 만 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저자와 같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지는 않지만 기본 개념 자체는 배워볼 만한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쌓이는 자료는 1차적으로 '즉시 분류'한 뒤, 여유가 생길 때 제대로 분류하라던가, 데이터로 저장할 경우 폴더명의 계층화와 파일명에 신경쓰라는 이야기는 충분히 업무에 적용해 봄 직 했습니다. 

소개되는 문구도 많지는 않지만, 몇 가지는 흥미가 갑니다. 첫 번째는 펜텔 오렌즈 샤프입니다. 0.2mm 두께로 경도 B나 2B로 쓰면 부드러우면서도 가늘고 섬세한 글씨를 쓸 수 있다는데 하나 구입하고 싶어졌어요. 가격도 저렴하다고 하니까요. 파카 조터 볼펜은 제가 진급 축하 선물로 받았던 거라 소개 자체가 반가왔고요. 풀과 테이프, 양면 테이프의 장점만 모았다는 '풀 테이프'는 정말 유용해 보여서, 곧 찾아서 구입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내용 외에는 다른 책에서 접했던 내용도 많고, 관심없는 분야 소개도 많은 탓에 지루했습니다. 지워지는 볼펜 프릭션, 샤프심이 회전하는 샤프 쿠루토가, 몰스킨 노트 등은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입니다. 만년필에 대한 항목은 인터넷이나 다른 책을 통해 알 수 있던 내용보다도 못했고요.
그나마도 필기구 류는 관심있는 분야라서 열심히 읽었는데, 노트와 수첩은 정말 지루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문구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이유인 '놀라움과 노력'을 느끼기 힘든 내용들인데다가, 제가 '노트 필기'를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식적인 자리는 회사에서 배포하는 무료 수첩이나 다이어리를 이용하고, 업무 시에는 주로 이면지에 스케치나 노트를 하거든요. 그나마도 그때그때 PC로 바로 옮길 뿐더러, 대부분은 이미 PC나 스마트폰으로 바로 디지털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고요. 비싸고 전문적인 노트는 필요가 없어요. 유명한 '몰스킨 노트'도 한 번 써 봤지만, 저한테는 가성비가 최악인 물건이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제품 중 리히트 랩의 '트위스트 노트'는 그래도 혁신, 참신함이 도입된 결과물로 보이기는 하는데, 이 역시 저에게는 가성비가 좋을리 없겠지요. 아울러 도판이 전무하다시피한 것도 큰 약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다른 문구 관련 서적에 비해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런 책을 좀 많이 읽은 탓이 큰데, 이제 이 쪽 분야도 당분간 좀 접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1/10/31

문구는 옳다 - 정윤희 : 별점 2.5점

문구는 옳다 - 6점
정윤희 지음/오후의서재

문구 관련 책은 좋아합니다. 틈나는대로 구해서 읽곤 하지요. 일본 저자의 책 몇 권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작가 책이 있길래 한 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30개의 문구에 대해 멋진 사진과 관련된 글이 어우러진 구성인데, "궁극의 문구" 보다는 "문구 상식" 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문구와 관련된 개인의 추억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두 권의 일본 책보다 개인 감성이 훨씬 많이 묻어나는 글들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구는 주인공이지만, 그리고 문구에 대한 소개가 없지는 않지만 일본 책 처럼 디테일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아요. 데이터보다는 감성인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렇게 탐나는 문구는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꼰대 중년 남성인데다가, 필기보다는 입력을 더 많이 하는 직업이라 더 그러했겠지만요. 그래도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첫 번째는 '페이퍼 패션' 향수입니다. 말 그대로 '책 향수'로 오로지 나무 성분에서 추출한 4~5가지 재료만으로 만든 우드 계열의 향이라는데, 칼 라거펠트의 하드커버 북 스타일의 멋진 디자인이 기가 막힙니다. 책 안을 파 낸 케이스라니! 빠져들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조금 조사해보니 현재 판매하고 있는 곳이 없더군요. 안타깝습니다.

펜텔 트라디오 수성펜은 만년필의 가격과 사용의 불편함을 보완한 편리한 펜이라니 그렇게 필기를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만 한 번 써 보고 싶었고, 칼 엔젤-5 로얄 연필깎이는 디자인이 아주 클래식하면서 멋져서 탐났습니다. 지금은 전통의 티티 하이샤파 기차모양 연필깎이를 쓰고 있는데, 하이샤파가 퇴역하게 되면 칼 엔젤-5로 바꿔야겠습니다.

그 외에, 몇 가지 정보들도 기억에 남네요. 무언가 구별하거나 잊지않기 위해 표시를 해 두는 것을 순우리말로 '보람'이라고 하며,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람하다'라고 표현한다는 글, 생각을 정리할 때 포스트잇으로 키워드를 적은 뒤 기승전결에 따라 순서를 바꿔가며 정리한다는 생각 수세미 풀이법, 몰스킨은 실제로 헤밍웨이나 고흐가 썼던 노트가 아니라 그들이 썼을 법한 노트의 정신을 잇는다는 묘한 뉘앙스로 포장된 제품이라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피셔 스페이스펜, 즉 우주 공간에서 쓸 수 있는 볼펜의 비법은 극강의 탄화텅스텐 볼과 가압질소를 넣은 볼펜심 덕분이라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무중력에서도 질소 압력으로 잉크가 흐를 수 있던 거지요.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인감도장은 한국 책이라 나올 수 있었겠지요? 왜 벼락맞은 대추나무가 좋나 했더니 대추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밀도가 높은 덕분이더라고요. 그래서 벼락을 맞으면 순식간에 발생하는 열로 숯처럼 타버리고, 이때 만들어진 탄소 성분은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어 오랫동안 제 형태를 유지한다고 하네요. 또 붉은색 대추가 나쁜 기운을 밀어내어, 몸에 지님으로써 액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일본 제품이 지나치게 많이 소개된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일본이 문구 강국이라는건 잘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니까요. 국내 제품은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빼면 모닝글로리의 '리포터스 노트북'과 평화 가위 정도만 소개될 뿐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감성적인 접근도 좋네요. 책도 아주 예쁘게 만들어져 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9/04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 사이먼 가필드 / 송성재 외 : 별점 4점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 8점
사이먼 가필드 지음, 송성재 외 옮김/안그라픽스

정말 오랫만에 디자인 전공 관련 책을 읽어보았네요. 여러가지 서체를 통해 서체의 역사와 디자인 속성들, 그리고 쓰임새 등에 대해 안내해 줍니다.

제가 이십년도 더 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내용이 많았습니다. 헬베티카가 왜 그렇게 많이 사용되는지?에 대한 저자의 해설처럼요. 헬베티카는 불편부당, 중립성, 신선함 등 스위스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기하학적 인상과 함께 근면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전해주어 기업의 CI에서조차 친근하고 검소한 인상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애초 헬베티카는 간결하고 범용적인 알파벳, 그리고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중요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제가 현역 시절 가장 많이 사용했던 유니버스는 프루티거가 디자인한 서체로 스위스의 완벽함과 프랑스의 우아함, 영국의 고귀함을 종합했지만 조금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는 반면, 프루티거는 좀 더 인간적인 느낌이 담겼다라는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프루티거를 더 많이 쓸걸 그랬네요. 여튼, 프루티거가 했다는 말, "점심식사 때 사용한 스푼의 모양을 기억한다면, 분명 그 모양은 잘못된 것입니다. 스푼과 글자는 도구입니다. 하나는 그릇에서 음식을 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페이지에서 정보를 꺼내는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자여서 독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 그것이 좋은 디자인입니다".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편안한 것, 그게 궁극의 디자인이라는 건데 정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메타 폰트 등을 디자인한 전설적인 독일 폰트 디자이너 슈피커만이 한 말도 마찬가지에요. "이코노미스트"의 리디자인 작업을 할 때 한 말이라는데, "나는 결코 누군가가 그 서체를 꼭 집어서 '멋진 서체군요.'라고 말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정말 멋진 기사네요.'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죠. 나는 소리를 디자인해요. 그 소리는 읽기 쉬워야 하죠". 거장은 역시, 달리 거장이 아닙니다.

이외에도 푸투라, 고담, 타임스뉴로만, 배스커빌, 길산스, 리버풀, 벵돔 등 다양한 폰트의 탄생기와 사용기 등과 서체를 만들 때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가는지, 어떤 서체가 가독성이 좋은지, 어떤 문구가 서체를 표시하기에 적당한지, 어떤 서체가 어떤 상황에 적합한지와 같은 디자인 방법론, 그리고 헬베티카를 표절한 에이리얼과 같은 표절 및 폰트 저작권이 무시되고 사용되는 행태 등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여러가지 디테일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과연 '헬베티카' 폰트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와 같은 재미난 이슈들도 포함하고 있고요. 

이 중 기억에 남는건 특정 상황에서 어떤 서체가 어울리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입니다. 감사편지는 자신 있는 분위기와 분명하고 진실한 태도를 보여줘야 하니 제네바가 제격, 사직서의 경우는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즐거웠다면 뉴욕이나 버다나 같이 인간적인 면이 묻어나는 서체를, 일하던 시간이 지옥같았다면 냉정해 보이는 에이리얼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연애편지에 잘 어울리는 폰트는 이상적으로는 O가 큰 폰트가 사랑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조금 고풍스러운 글씨 느낌이 나거나 글을 읽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는 듯 부드럽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남기려면 이탤릭체인 휴머나 세리프라이트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하고요. 절교 편지에는 불쾌함을 주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려면 평범하고 오래된 타임스레귤러, 혹은 살짝 내려놓는 느낌의 이탤릭 폰트도 나쁘지 않다네요. 

그리고 항상 궁금해했던, '왜 아직도 새로운 서체가 디자인되는가?'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알려준다는게 참 좋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세상이 바뀌고 그 세상의 콘텐츠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니까요. 음악 앨범, 책 디자인을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몇 개의 마스터 페이지로 돌려막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이렇게 재미와 가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좋은 책인데, 내용에 약간 두서는 없으며 편집 자체가 좋지 않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언급되는 폰트를 따로 찾아서 확인해보기가 어렵게 만들어져 있거든요. 좋은 서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좋은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하니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당연하겠지만 영문 서체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조금 괴리감을 전해주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폰트 디자인을 막 배우기 시작했던 학생 시절이나 아니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할 때 읽지 못했던게 아쉽기만 하네요. 왜 이 서체가 이렇게 디자인되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디자인을 했어야 했는데, 단순히 글자 몇 개의 디자인 형태에 매몰되어 대충 아웃라인만 따서 변형하여 작업했던 그 시절이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지금이라도 심기일전하여, 좀 더 좋은 디자인을 해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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