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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1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김동진 : 별점 2.5점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6점
김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

제목 그대로 조선에서의 소고기 식문화에 대해 고찰하는 책입니다. 

근거가 확실하여 신뢰가 가도록 쓰여진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때 소고기를 정말 많이 먹었다는걸 증명해 주는데, 그 양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세종 때에는 무려 소가 15만 여 마리에 달했다니 놀라울 정도지요. 맛은 물론 몸에도 좋아서 성찬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전쟁 때 병사들에게 베푼 '호궤'의 중심이 소고기였다는 걸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양도 어마어마해서 숙종 때에는 군졸 한 명 당 0.81kg 부산물 제거 시 400g 정도 할당되었고, 술은 소고기 한 근당 술 다섯 홉까지 지급했다니 군 생활도 나름 할 만 했을 것 같네요. 소주 한 병이 2홉이니 고기에 술 2병 반이면 괜찮은 셈이잖아요? 이 양은 영조 때는 2.44배 등으로 이후 계속 증가했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우역 (소 전염병)이 퍼지면 소가 죽을게 뻔해서 일찌감치 잡아서 먹었던게 소고기 식문화가 널리 퍼지고 전형화된 이유라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이론이었고요.

이러한 조선 시대 소고기 식문화 관련 자료는 물론이고, 후반부에 소개되는 다양한 소고기 요리들도 볼거리입니다. 당연히 당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15세기는 주로 "산가요록"을, 16세기는 "촌가구급방", "수운잡방", "묵재일기"를, 17세기는 "음식디미방"을, 18, 19세기는 "산림경제" 속 요리와 조리법을 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비슷한 요리들도 있지만, 지금은 잊혀진 요리와 조리법들이 더 눈길을 끕니다. 어떤 요리들은 상당히 맛있을거 같아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600여년 전 요리인 육면, 토장, 양 식해가 대표적입니다. 육면은 고기를 솔잎처럼 가늘게 썰어서 깨끗이 씻어 밀가루 또는 메밀가루를 반복해 묻혀 끓는 물에 삶는 국수 요리입니다.
토장은 밀가루 한 되와 고운 쌀가루 한 홉, 녹두가루 한 홉을 물로 반죽해 밀판에 놓고 밀어 길이 두 치(약 6센티미터)에 너비 한 치 반(약 4.5센티미터)으로 자릅니다. 이를 대광주리에 담아 끓는 물에 익혀 물에 담가 차갑게 식히고, 들깨즙에 간장을 넣고 여러 가지 향채와 맛있는 고기, 계란면, 표고 등을 섞어 먹습니다. 일종의 냉 비빔국수인 셈이죠.
양식해는 양을 먼저 물에 깨끗이 씻어 둥글게 조각내어 후추를 갈아 넣고 물이 펄펄 끓을 때 양을 잠깐 넣어 반만 익혀 꺼낸 것을 차게 식힌 뒤, 소금을 살짝 뿌리고 진밥 한 사발과 누룩 한 움큼을 고루 섞어 버무려 항아리에 담아 기름종이로 봉하고 재[灰] 속에 깊이 묻어두었다가 꺼내어 썰어먹는 일종의 젓갈입니다. 고춧가루를 더해도 괜찮을 듯 싶네요.

지금도 흔하게 먹는 소고기국과 곰국의 조선 시대 레시피도 인상적입니다. 소고기국은 "산림경제"를 통해 그 유래가 사슴고기국임을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요리의 흐름을 아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조리법을 보면 지금의 소고기국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고기를 소금과 술, 식초를 써서 담그고 기름과 후추를 넣어 볶은 뒤 국을 만드는 식이며 내장 등의 고기도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지금의 내장탕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반대로 곰국은 끓는 물에 넣고 뭉근한 불로 오래 익히는 지금 방식과 똑같다는 것도 재미있고요. 그 외 요리들 소개 모두 나름대로 볼 만 했습니다.

또, 당시의 소고기는 대부분 늙은 소의 고기였기 때문에, 이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도 인상적입니다. "음식디미방"에서는 소고기를 삶을 때 살구씨 빻은 것과 떡갈나뭇잎을 넣는게 비결로 소개됩니다. 처음부터 고기를 물에 넣지 말고, 펄펄 끓을때 넣는 것도 비법으로 이는 "수운잡방"에서도 소개된 방법입니다.
"음식디미방"에서는 질긴 고기는 산앵두나무를 함께 넣고 뽕나무로 때서 삶으라고도 하고요. 저자는 조사를 통해, 살구씨는 굳은걸 풀어주는 성분이 있고 떡갈나뭇잎은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타닌이 함유되어 있으며, 산앵두나무 역시 굳은 것과 부은 것을 풀어주는 성분이 있어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해 주었을거라고 알려줍니다.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는건, 보관 방법과 오래된 고기의 조리법도 비중있게 소개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상한 고기의 경우, "당추자唐秋子에 구멍을 서너 개 뚫는다. 말만한 크기의 고기에 (당추자) 서너 개를 같이 넣고 삶으면 상한 것 같지 않다."며 조리해 먹을 정도입니다. 이는 소고기의 유통양이 적고 희귀했다면 관심가질 일이 없는 항목일테지요.

그러나 이러한 레시피들의 효과에 대해서 실제로 실험을 통해 증명한건 없으며, 단지 추정만 있는건 아쉽습니다. 또 소고기를 먹어야 장수했으며, 소고기를 먹지 않아 단명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는 등의 항목과 같이, 저자 입맛에 맞추어 가공된 자료가 많다는 것도 거슬렸던 점이고요. 이렇게 일반화 시킬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내용이 학술적 자료에 근거한, 논문과 같이 쓰여져 있어 읽는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였어요.

조선 시대 소고기 식문화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는건 분명하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좀 더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를 수록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2020/05/30

콜드 문 - 제프리 디버 / 유소영 : 별점 2.5점

콜드 문 - 6점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뉴욕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현장에 시계, 기묘한 시와 함께 자신을 '시계공'이라고 서명한 범인을 찾기 위해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나섰다. 한편 색스는 이 사건 외에도 자살로 위장한 사업가 살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경찰 118번 지구대가 범행에 연루되어 있다는게 드러났으나, 당장은 내사과 투입이 어려워 부시장 월러스와 경정 매릴린 플레허티의 합의로 색스 혼자 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이었다.

전신마비 법의학자 링컨 라임과 그의 수족인 여성 경찰 아멜리아 색스 컴비의 활약이 그려지는 제프리 디버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30주년 기념 킹 오브 킹 순위'에서 해외편 6위에 당당하게 위치해 있는 탓에, 평소 궁금하게 여기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장점이라면 흡입력, 재미입니다. 거의 550여페이지에 달하는 대장편인데 쉽게 읽힙니다. 시계공 던컨의 범죄 행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유행했던 "싸이코 연쇄 살인마와 천재 경찰의 대결"을 비튼 아이디어도 좋아요. 반전도 괜찮으며, 철저한 증거 위주의 수사로 수집한 증거를 통해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그것들이 추리로 이어지는 과정도 마음에 듭니다.
새 캐릭터인 동작학 전문가 캐스린 댄스의 심문 과정에 대한 묘사도 그럴듯합니다. 거의 인간 거짓말 탐지기 수준으로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럴듯하게 묘사되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다른 링컨 라임 주변인물 묘사도 시트콤스러운게 유쾌했고요. 아멜리아 색스가 아버지의 추문, 경찰에 대한 신뢰 추락이라는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결말도 전형적이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좋은 사람은 잘 되고 나쁜 사람은 파멸하는 이야기가 감정이입이 잘 되더라고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걸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에서 지난 30년간 작품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으로 꼽을만하냐면, 그렇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의 여지가 많지 않은 탓입니다. 다음 단계로의 진행은 모두 주요 관계자의 증언에 따를 뿐입니다. 빈센트 체포 후 빈센트의 증언으로 다음 피해자 대상이 좁혀지고, 이는 베이커의 작전이었지만 베이커 체포 후 던컨 본인도 체포되어 연쇄 살인극이 아니라는게 그의 입으로 밝혀지고, 던컨이 풀려난 뒤 그의 다음 목표가 델파이 메커니즘이라는 것도 빈센트와 이전 시계점 증언으로 밝혀지는 식이거든요. 이래서야 링컨 라임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솔직히 링컨 라임이 없어도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지나친 반전과 어처구니없는 진상도 문제입니다. 초, 중반까지는 연쇄 살인극을 꾸미는 시계공 던컨과 조수격인 성범죄자 빈센트가 몇 명의 여성 희생자를 집요하게 노리는 묘사가 이어지죠. 그러나 빈센트는 그냥 미끼였고, 던컨의 진짜 목표는 118번 수사대 비리와 연류된 비리 경찰 베이커의 의뢰로 색스를 연쇄 살인범의 범행으로 위장해서 죽인다는 반전, 베이커 뒤에 흑막으로 부시장 월러스가 있었다는 반전, 시계공 던컨의 진짜 목적은 세슘 시계를 조작해서 이전부터 탐낸걸로 묘사된 '델파이 메커니즘'을 훔치려는 것, 인줄 알았지만 진짜 중의 진짜는 뉴욕 도시 개발 공사에서 뉴욕시와 국방부 등이 주최하는 행사에서 사람을 다량으로 살상하는 테러였다는 반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렇게 반전이 너무 많다보니 가면 갈 수록 흥미가 떨어지더군요. 90년대 후반부터 유행했던 '반전물' 들을 보고, "내가 진짜 반전이 뭔지 보여주겠다!"라는 결심을 하고 쓴 느낌인데, 지나쳤어요. 과유불급이랄까요....

게다가 '시계공의 목적은 무차별 대량 살상 테러였다!' 라는 진상도 너무 별로입니다. 작 중에서는 사람은 죽이지 않고, 이전에 사람을 죽였다고 언급헸던 범행의 대상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 안티 히어로 모습을 보여주던 천재 범죄자 시계공이 왜 무작위로 사람을 살상하는 테러를 선뜻 받아들이는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계공의 캐릭터도 이상해져 버렸고요.
마지막 범행, 즉 테러를 위해 연쇄 살인 시도를 가장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역시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입니다. 자물쇠를 따고 숨어드는게 쉽다면, 루시 릭터가 친구를 만나러 나갔을 때 집에 침입해서 필요한 서류를 찍어가지고 오면 되는거잖아요? 꽃가게 조앤의 화분 역시 마찬가지고요. 구태여 엄청난 숫자의 뉴욕 경찰이 동원될만한 살인극을 가장할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리 경찰 베이커의 의뢰를 받아들인 목적도 불분명합니다. 시계공의 범행이 가짜이고 해프닝에 불과했다는걸 구태여 드러낼 이유는 없어요. 테러를 위해서라면 그냥 연쇄살인극을 위장하는게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요? 구태여 아는 사람을 늘릴 이유도 없고, 베이커에게 복수하겠다는 가짜 동기 등 시계공의 모든게 가짜라는게 드러나는 것도 시간 문제인데 말이지요. 베이커의 의뢰를 받아들여 아멜리아 색스를 연쇄 살인범에 의한 것으로 가장하여 살해하려는 의도였다고 중간에 설명되지만, 이는 시계공이 베이커의 범행은 실패하게끔 총을 조작했다는 이야기 전개를 보면 역시나 합리적이지 않아요. 차라리 링컨 라임과의 대결을 위해 도전한다는걸 보다 명확하게 표현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만, 비리 경찰 베이커와 아멜리아 색스의 아버지 이야기를 빼고 350~400 페이지 정도로 이야기를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2020/05/24

폐허에 바라다 - 사사키 조 / 이기웅 : 별점 2.5점

폐허에 바라다 - 6점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북홀릭(bookholic)

"에토로후 발 긴급전"의 작가 사사키 조의 단편집입니다. 홋카이도 도경 경부보 센도 타카시가 이런저런 부탁으로 개인적인 수사를 벌인다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탐정사전"에서 멋지게 소개된 덕에 기억하고 있다가, 우연찮게 읽게 되었네요. 

센도는 이전 사건 때문에 PTSD 장애를 입어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장기 요양 중으로, 의사 말에 따르면 "경찰에 관련된 일은 모두 잊어라, 가능하면 신문도 읽지 마라, 책은 읽어도 상관없지만 범죄 소설은 금물이다"라는 상황이지만 주위의 요구에 응해 이런저런 방법으로 수사를 돕습니다.

니세코 스키장, 홋카이도 동부 토카치 온천 여관, 유바리 시, 삿포로 시내, 히다카 등 북쪽 지방 이곳저곳을 자동차로 돌아다니며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관련 묘사들이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폐허에 바라다" 속 소도시는 가공의 마을 같지만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요. 유바리 시 인근 쿠라야마 초 등 현존하는 곳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덧붙여진 덕분입니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 대한 묘사는, 지금이라도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거든요. 연어 정치망 어업과 가리비 양식이 주인 오오츠크해 연안 항구 마을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묘사 덕분에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강하게 전해 줍니다. 또 매 이야기마다 실제 사건을 담당한 형사가 등장하는데,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것도 재미요소에요. 사건 해결을 위해 센도를 이용하는 형사가 있는가하면 센도를 방해꾼 취급하면서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형사도 있고, 애주가도 있고 패션 감각이 빼어난 패셔니스타도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나오키 상을 수상했을 만큼 문학적인 묘사가 돋보입니다. 사회파스럽게 현실에 대한 고발, 비판 의식을 이야기에 잘 담아낸 솜씨도 빼어나고요.

그러나 현실 고발없이 단순 범죄에 대한 이야기로만 끌고간 몇 몇 작품들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냥 멋드러지게 쓴 범죄가 등장하는 드라마일 뿐, 추리 소설이나 범죄, 수사물로 보기에는 영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합한 별점은 2.5점. 문학적으로는 근사하고, 뭔가 품격이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추리적으로 빼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와 같이 추리물에는 어느 정도 수수께끼 풀이나 트릭같은 요소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추리 애호가 분들께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

60여 페이지에 불과한 짤막한 단편입니다. 이야기도 대단한건 없어요. 센도 타카시가 휴직 중인 탓에 치밀한 수사를 벌일 수도 없고요. 하지만 고작 하룻밤 조사로 아서에게 쏠린 혐의를 돌릴만한 정황 증거를 담당 형사에게 들이민다는건 너무하다 싶었어요. 그것도 잠깐 관계자 옆자리에 동석했던 정도라면, 현재 담당 경찰들이 수사를 등한시 했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지 경찰들이 '오지'에게 한 번 맛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죠. 용의자 아서의 아내는 일본인이고, 그의 자식 역시 일본인일테니 이렇게 푸대접을 받을 이유도 없고요. 특별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으며, 인간 관계 및 경제적인 이득 등 동기까지 명확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사토미와 아서가 관계를 맺었다는 등의 설정도 불필요했습니다.

스키장 마을의 묘사라던가, 이야기를 쉽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전개는 나쁘지 않은데 특별히 점수를 줄 만 한 부분도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폐허에 바라다"

지독한 가난으로 어린 시절, 여동생을 죽이고 자살하려는 어머니를 목격한 뒤 범죄에 빠져버린 후루카와의 범행을 건조하게 그려냅니다. 후루카와를 한 때는 융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해버려 폐허가 되어버린 탄광촌 마을에 빗대는게 인상적이에요. 후루카와가 바란건 죽음이었고, 결국 자살로 센도 앞에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장면은, 제목과 겹쳐지고요. 폐허에 바라는건 결국 흉물스러운 모습을 창피하게 드러내어 명줄을 유지하는게 아니라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읽히거든요. 이런 내용으로 본다면, 사회 고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사건이 워낙 명확한 탓이에요. 후루카와와 만나기로 한 센도의 의도를 야마기시가 어떻게 알고 추적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있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렇게 형사가 등장하고, 비참한 현실과 그 때문에 생겨난 비극을 범죄 드라마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는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과 비슷합니다. 드라마로서 볼 만하고, 묘사도 특출난 부분이 있지만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일본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그러나 일본의 버블 붕괴 및 지방 경기의 몰락을 그렸기 때문에, "어느 창녀의 죽음"만큼이나 우리에게 와 닿기는 힘들지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빠 마음"

'토'라는 어부들의 조합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는데 흉기가 어부들이 쓰는 마키리라는 등 어업과 관련된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지저분한 마을 유력자의 음모, 그와 손을 잡은 폭력단의 만행이 동기라는 점에서 사회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회 고발에만 그치지는 않습니다. 사건 속 수수께끼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용의자 이시마루가 피해자 다케우치를 폭행한건 인정했지만, 칼은 가져가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단지 칼을 가져가지 않았을 뿐, 칼로 찌른건 명백한 사실이며 이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끝에 그냥 손에 잡힌 칼로 범행을 저지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시마루의 가족들이 이시마루가 범인이라고 못 박은 이유가 드러나는 과정은 볼 만 했어요. 앞서 이야기한 사회파적인 고발이 함께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단순한 센도의 추측 - 추리라고 하기는 어려운 - 만으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전개는 너무 뜬금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쉽고 짧게 소비되어 버린 느낌도 들고요. "붉은 수확" 처럼 마을의 실력자,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장편 사회파 하드보일드물로 그려낼만한 이야기였는데 말이지요.

센도의 추리에 좀 더 설득력을 부여하고, 좀 더 드라마틱한 세력간 갈등을 그려낼 수 있는 장편이었다면 별점 3점 이상도 충분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별점 2.5점입니다.

"사라진 딸"

범행은 강력하게 의심되지만, 시체가 없어서 본격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작품. 경찰이 직접 일을 벌일 수 없어서 경찰 타나베가 미야우치에게 센도를 소개시켜 준 것입니다. 센도가 사건을 해결한 건 타카다 방에서 발견한 평범한 스냅 사진 속 인물에게 주목했던 덕분이고요. 그 인물의 정체를 알아낸 뒤, 전화 한 통으로 시체 은닉 장소를 알아내게 되거든요. 경찰이 수사 중 간과했던 단서에 주목한게 주효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경찰 수사의 디테일 부족으로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꽤 그럴듯했습니다. 추리적으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름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서 타카다의 과거를 상세하게 조사할 정도로 경찰이 수사를 확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설득력을 더합니다.

아주 빼어나지는 않지만, 실감나는 이야기라는건 분명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바쿠로자와의 살인"

저자 후기를 보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아들들이 극도의 증오심을 가지고 있고,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원수로 여기는 젊은이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유도했다는 진상이 좀 비슷하기는 합니다.
여기에 더해 유언장이 주요 동기 중 하나로 등장하며, 지방 영주의 성 같다는 오하타 목장의 저택 묘사, 말을 키우는 목장 묘사 등이 더해져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을 전해 줍니다. 일본이 아니라 영국 어딘가를 무대로 한 작품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작가의 의도는 러시아였겠지만요.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외에, 추리적으로 건질건 없습니다. 내용을 보면, 17년 전 피해자였던 나가누마의 어린 아들이 장성해서 복수를 한게 뻔해 보이고, 새로 온 잡역부 청년 하라다가 마침 18살이라 수수께끼고 뭐고 이야기할게 별로 없네요. 오히려 하라다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지 않은 경찰의 무능함만 돋보일 뿐이에요.

추리 소설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순문학, 드라마를 그리고 싶었다면 좀 더 길고 풍성한 묘사가 필요해 보였던 작품입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복귀 전날"

센도의 PTSD의 원인이 된 사건이 회자되며 센도의 완쾌를 알리는, 단편집의 대단원을 이루는 작품. 그러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추리적으로 대단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유미코의 전화는 도움 요청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하루카가 진범이라는걸 드러내기 위한 목적의 밀고 전화였다는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이 역시 그렇게 의외의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화 내용이 사실과 달랐다면, 전화를 건 사람이 거짓말을 한게 당연하니까요. 오히려 왜 이렇게 밀고를 하려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라던가, 범행에 무언가 트릭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내용도 없어서 이게 추리 소설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유미코의 동기는, 센도가 처음 만났을 때 손에 반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라는 디테일과 하루카가 피해자인 나오와 남자 문제로 다투었다는 증언이 순차적으로 드러나니 그리 대단한 수수께끼는 아니거든요. 하루카의 범죄 역시,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나오를 죽이고 불에 태웠는지에 대한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그냥 그녀가 범인일 수 있다는 정황 증거 정도만 추가될 뿐이라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도 않고요.

물론 이렇게 추리적으로 허술하다는게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차피 이 단편집 수록작 모두가 마찬가지이기도 하고요. 또 아는 사람, 잘 해주는 듯한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명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를 위해 억지로 센도를 엮었다는 점입니다. 수록된 다른 작품들은 모두 센도가 사건에 개입되는게 나름 이유가 명확한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미코 본인이 와인바 사장인 유키에가 겪은 일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중요한 단서가 될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걸 그냥 경찰에 제보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구태여 센도를 중간에 연락책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어요. 오히려 가족을 밀고한다는 자신의 치부를 아는 사람을 만들 필요도 없고요.

이렇게 시리즈를 위한 억지 투성이인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