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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 셜리 잭슨 / 성문영 : 별점 2점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 4점
셜리 잭슨 지음, 성문영 옮김/엘릭시르

블랙우드 일가는 6년 전, 윌리엄 삼촌과 콘스탄스, 매리캣 자매를 제외하고 일가족이 모두 독살당한 사건으로 마을에서 고립되었다. 당시 요리를 했던 콘스탄스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여전히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매리캣은 사고 후 미쳐버린 윌리엄 삼촌, 광장공포증으로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콘스탄스와 함께 어렵지만 단란하게 살아가는데, 사촌 찰스가 방문한 다음부터 생활에 균열이 시작되는데...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열 한 번째 책. 고딕 호러의 대가라는 셜리 잭슨의 작품입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무섭다거나 섬뜩한게 아니라, 불편하다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작가의 엄청나게 상세한 묘사들 때문입니다. 특히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집요한 광기로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 작품 속 사건 사고의 원흉인 화자 매리캣의 성격 묘사는 정말 압권입니다. 초반에 열여덟 살이라는 나이를 밝혀주지만, 내용 내내 초등학생 이상의 연령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순수하고, 그만큼 완전히 미쳐버린 여자아이의 심리 묘사가 그야말로 극에 달해 있거든요. 이런 류의 캐릭터, 성격은 혐오감을 가질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파이 바닥의 달콤함"의 소악마 플라비아 들루스가 연상되었습니다.

또 시골 마을에서 고립된다는 설정은 "이끼"나 얼마 전 보았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사자개 저택의 비밀"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흔하디 흔하지만, 고립된 자매의 묘사에서 보이는 상세함과 깊이가 대단해서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과연 누가 얼마나 미친 것일까? 이러한 광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고요. 마지막 화재 이후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라 궁금증을 더해줍니다.

그러나 고딕 "호러"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무서운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독살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도 초반에 이미 짐작할 수 있어서, 대단한 반전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고요. 미쳐버린 노인과,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언니를 제외하면 과연 누가 남겠습니까? 또 완벽하게 미쳐버린 매리캣 시점으로만 전개되어 광기나 범행의 이유 같은 게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답답했습니다. 그게 뭐든, 최소한 '태양이 너무 뜨거웠다' 식으로라도 뭔가 설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화형법정"이나 "어두운 거울 속에"와 같은 추리적인 재미 요소를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기대는 완벽하게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묘사는 압도적이지만 추리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스터리 책장’이라는 레이블로 출간될 작품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담고 있는 건 작가가 경험했다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광기 뿐이니까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선들 같은, 약간 마음 불편한 순문학을 원하신다면 좋은 선택일 수 있지만, 정통파적인 추리 혹은 공포를 원하신다면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14/10/30

침묵 - 엔도 슈사쿠 / 공문혜 : 별점 3점

침묵 - 6점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홍성사

17세기, 박해받던 일본의 키리시탄들을 위해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고가 밀입국하여 활동하다가 결국 사로잡혀 마지막에는 결국 배교까지 한다는 내용으로, 저 역시도 항상 가지고 있던 "사람이 정말 괴롭고 힘들 때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문학 작품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순교자" 관련 글을 찾아보다가 이 작품의 소개글을 읽고 관심이 가서 읽게 되었습니다.

로드리고 신부가 고문을 앞두고 코고는 소리를 듣는데, 그 소리는 다른 신자들이 고문을 받으며 내는 신음소리였다는 것, 그리고 무지렁이 신자들이 배교를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한게 아니고 신부가 배교하기 전까지는 그들의 괴로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무간지옥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저는 신부가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 역시 핑계가 아닐까요? 본인의 믿음이 정말로 확고했다면, 괴로움도 모두 다가올 천국에 대한 일종의 보상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현세의 고통을 내세에서 보상해 준다는 일종의 거래가 서구식 종교의 핵심 중 하나니까요. 물론 이 책의 주제는 그것을 다루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일본에서 받아들여진 가톨릭은 다른 것이라는 페레이라 신부의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토속신앙, 혹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결합하여 또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이라는 뜻인데, 국내의 일부 종교단체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더욱 와닿았습니다.

여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으로, 종교의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잘 짚어낸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은밀히 자기들만의 조직을 만들어 종교 활동을 이어가던 가쿠레 키리시탄들 앞에 외국인 신부가 나타나 그들을 인도한다... 는 동일한 소재에 "모비 딕"을 결합시켰던 호시노 유키노부의 단편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2014/10/29

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 - 이소부치 다케시 / 강승희 : 별점 3점 -> 미정

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 - 6점
이소부치 다케시 지음, 강승희 옮김/글항아리

"차"보다는 "홍차" 중심으로 기원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소개해 주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도판과 자료가 화려해서 즐겁습니다. 차를 마실 때 사용했던 눈이 휘둥그레지는 각종 도구, 다기들, 차와 관련된 그림과 사진, 지도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거든요.

책은 유럽에 최초로 소개된 차는 녹차였는데 이것이 왜 홍차로 바뀌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영국물은 미네랄이 많이 함유되어 경도가 높은 탓에 녹차를 우리면 차의 떫은맛 성분인 탄닌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데, 녹차 대비 탄닌 함유량이 높은 발효차는 중국에서는 떫지만 런던의 경수에서는 순하게 우려져 좋은 맛이 되었기 때문이라네요.

원래 홍차가 실패한 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반발효차를 만들지 못해 완전 발효차가 되었고, 차를 만드는 공장에서 찻잎을 건조시키는 땔감으로 쓴 소나무의 연기가 찻잎에 착향된 것이 미묘한 향이 난다는 보히차, 정산소종이 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원산지인 우이산의 보히차가 영국의 소비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격동기의 중국에서 차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가짜 보히차가 범람하고, 더욱 강한 맛과 향을 착향시키기 위해 강제로 훈연한 랍상소종이 지금은 영국의 전통적인 차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니 세상 일은 정말 모를 일입니다.

또 차의 기원을 찾아 이런저런 곳을 돌아다니며 찾은 여러 가지 차에 대해 소개해 주는데, 홍차 관련된 장소에 대한 기행문이라는 점에서는 "커피견문록"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지노족이라는 소수민족의 량반차가 인상적이었어요. 왜냐하면 반찬처럼 먹는 차이기 때문이에요. 차의 생엽을 유념하여 생강, 마늘, 고추, 소금과 함께 섞어 뜨거운 물을 부은 뒤 먹는다고 합니다. 꽤 맛있을 것 같죠? 비슷하게 반찬처럼 먹는 차가 미얀마에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약간 발효한 절인 음식처럼 먹는다고 하네요.

이외에 여러 가지 차에 관련된 중요한 역사의 흐름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물론 "보스턴 티 파티"가 빠질 수 없죠. 아편전쟁도 어떻게 보면 차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관점도 새로웠고요.
홍차 관련 주요 인물들 어떤 활약(?)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얼 그레이 홍차를 만든 그레이 백작을 비롯해 중국에서 차 수입이 어려워지자 인도의 아삼이나 스리랑카의 실론 등의 식민지를 차 생산지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지금도 그 이름을 강하게 남기고 있는 홍차의 왕 "립턴"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다른 사람들은 정말 홍차를 재배하고 널리 퍼트리는 데 노력한 사람들이라면, 립턴은 순수한 사업가로 생산과 판매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거대 기업을 세운 것이니까요. 참고로 얼 그레이는 유명한 홍차 상회 트와이닝에서 정산소종의 훈연향이 랍상소종만큼 강하지 않자, 다른 향기에 주목하여 베르가못의 향을 첨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차가 전래되면서 미국인의 실용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등장한 티백, 아이스티, 레몬티 등이 소개되고, 마지막은 맛있는 홍차를 만드는 방법으로 끝맺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읽었던 조지 오웰의 수필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더 반갑더군요. 내용의 핵심은 "우유를 먼저 붓느냐, 차를 먼저 붓느냐"였는데 조지 오웰의 주장은 우유의 양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우유를 나중에 부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MIF, MIA 논란은 계속 이어졌는데, 왕립화학학회까지 나서서 내린 결론은 "우유가 먼저(MIF)"입니다. 우유를 나중에 넣으면 우유 속의 단백질이 고온의 차에 의해 변성되어 차의 맛과 향이 나빠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과학이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아주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는 물론 자료적 가치도 충분한 만큼, 차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의 장정, 디자인도 아주 예쁘고 실려 있는 도판들도 컬러로 제대로 수록되어 있는 등 책의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2014.10.30 수정) 댓글을 읽어보니 책 내용에 오류가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세요.

2014.11.06 수정) 댓글을 읽어보니 오류 정도가 아닌 것 같기에 별점은 미정으로 최종 수정합니다.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만 리뷰를 남길 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독서"가 자신의 교양을 쌓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데 목적이 있기도 하니까요. 잘못된 정보를 주는 책을 잘 모르는 독자가 읽었을 때의 폐해의 대표적인 경우라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