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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1

가면무도회 1,2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3점

가면무도회 1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가면무도회 2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배우 지요코는 네 번 결혼, 네 번 이혼이라는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유명했다. 그녀의 다섯 번째 연인인 다다히로는 재계의 거물이자 공작가의 후손으로,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지요코의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첫 번째 남편의 1주기가 마련된 휴양지에서 태풍이 휘몰아치던 밤, 근처에 있던 지요코의 세 번째 남편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네 번째 남편마저 모습을 감추었다. 아스카 다다히로의 요청으로 사건에 뛰어든 긴다이치 코스케는 현지 경찰 히비노 경부보 등과 함께 사건을 수사해 나가면서 충격적인 진상을 알게 되는데... 

1974년에 발표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대장편으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가 인생 끝자락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작품은 처음이네요. 사실 요코미조 세이시의 후기작은 대부분 별로였고, 1, 2권 합쳐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라 그리 땡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전작을 거의 다 읽었기에 숙제하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생각보다는 아주 괜찮았습니다. 장점이 명확했던 덕분입니다. 첫 번째 장점은 700여 페이지를 넘는 분량이지만 쉽게 읽힐 정도로 재미있다는 겁니다. 도입부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오도리 지요코의 전남편들이 연쇄적으로 죽어나가면서부터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조금 지루할 만하면 사건이 터지는 전형적인 연속극 구조인데, 고전적이지만 거장답게 적절히 잘 전개하고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이자 최고의 장점은 놀라운 진상, 그중에서도 "후에노코지 야스히사가 사망 전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녀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정말 엄지 척이에요. 충격과 놀라움의 정도로 비교하자면 "소름"에 버금간다 생각될 정도였어요. 또 이 진상이 지요코의 돈을 긁어내기 위한, 애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후에노코지 아쓰코의 음모였다는 것에서 전전 구세대 집권층에 대한 작가의 날선 비난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 장점은 가루이자와라는 무대와 재벌 가문들이 얽혀 있는 뻔한 설정을 묘하게 현대적으로 선보인다는 점입니다. 놀랍게도 막장 설정이 아니에요. 결혼과 이혼 좀 자주하면 어떻습니까?(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모델로 한 듯싶은데 작품 발표 시점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혼 경력은 2번밖에 없으니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 물론 억지스러운 기괴한 묘사에서는(미사의 변모에 대한 것 등) 특유의 고전 변격물 성향도 엿보이지만, 그래도 거장이 자신의 스타일을 변주하여 어떻게든 현대 추리소설의 흐름에 동참하려 한 노력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과거 프랑스에서 장 뤽 고다르 등이 주체가 되어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영화 흐름을 이끌 때 과거의 거장 르네 클레망이 "그럼 내가 진짜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지!"라면서 "태양은 가득히"를 발표했다는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분위기에 더해 경찰 수사가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을 주름잡았던 사회파의 영향력이 살짝 엿보이고요. 여러모로 현대 트렌드에 많이 맞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마키 교고의 시체가 기묘한 성냥개비 퍼즐(색맹의 유전 법칙)과 함께 발견되는 부분은 전통적인 고전 본격 추리물의 향취가 느껴지기는 했고, 쓰무라 신지가 마키 교고의 시체를 유기한 후 지쳐서 집에 있는 위스키를 마셨는데 그 안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는 식의 전개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많이 부족해요.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요.

단순하게 생각해도 첫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남편 후에노코지 야스히사 사건의 경우, 그가 죽기 전 전화를 통해 말한 것이 핵심 동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즉, 그가 오도리 지요코를 협박할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실을 오도리 지요코 스스로가 경찰에 직접 말한 시점에서 그녀는 이 비밀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녀는 모르는 그녀의 비밀이라면 결국 딸 미사에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에게 도전하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아무도 모를 전화 통화 이야기를 직접 꺼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녀가 몰랐던 미사의 비밀은 혈액형에 대한 것, 그리고 가즈히코에 의해 색맹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폭로됩니다. 이쯤 되면 과연 지요코가 불륜을 저질러 낳은 딸이고, 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진범인지에 대한 선택지만 남게 됩니다. 이 정도면, 그리고 명탐정 긴다이치라면 미사가 모습을 감추기 전에 그녀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텐데 너무 질질 끈 느낌이에요. 긴다이치는 2권 초반에 이미 색맹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미사에 대해 너무 일찍 밝혀버리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렸던 놀라운 진상의 충격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예요. "소름"의 경우 마지막 페이지에서 진상을 밝힘으로써 충격을 극대화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맛이 많이 부족하네요.

진범이 밝혀지는건 모두 오도리 지요코의 두 번째 남편인 아쿠쓰 겐조의 전처 후지무라 나쓰에의 목격 증언 덕이었다는 점도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녀가 경찰에 가서 증언하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또 등장인물도 최근 읽은 작품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다는 것 역시 단점입니다. 몰입해서 읽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어요. 전남편만 해도 4명에다가, 현재 교제하고 있는 건 재계의 거물인 아스카 다다히로, 지요코의 딸 후에노코지 미사와 할머니 후에노코지 아쓰코, 아스카 다다히로의 딸 히로코와 사위 데쓰오, 그가 총애하는 젊은이 무라카미 가즈히코와 고고학자 마토바 히데아키…. 이렇게나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보통이라면 유력한 용의자를 헛갈리게 하기 위함이겠지만, 너무 많아서 혼란만 가중되고 등장 인물 중 용의선상에 올릴 만한 인물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성공한 전략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아스카 다다히로를 노리거나 오도리 지요코를 노렸다면야 명확한 동기가 있는 인물이 드러났을 텐데, 오도리 지요코의 ‘전남편’들이 범행 대상이라면 동기가 없다시피 하니까요. 그나마 아스카 다다히로가 전남편들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정도만 동기 비스무레하지만, 설득력은 크게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분량 늘리기 목적으로 보이네요.

마지막으로 설득력 없고 개연성 없는 전개도 옥에 티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왜 다시로 신키치가 아스카 다다히로를 저격했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점입니다. 미사가 야스히사를 죽인 이유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셈이었을지도 묘사되지 않고요. 진상과 반전은 놀랍지만 이를 포장하는 전개와 묘사, 설득력 모두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제 생각, 기대보다는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 기대치가 낮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거장이 말년에 힘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추천할 만하지만, 읽으시기 전 긴다이치의 명추리가 거의 없다는 것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016/04/09

그들이 본 임진왜란 - 김시덕 : 별점 2점

그들이 본 임진왜란 - 4점 김시덕 지음/학고재

17~19세기 일본 에도 시대 베스트셀러였다는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그리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유행한 장편 역사 소설 "에혼 다이코기"를 통해 당시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주제가 흥미로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지부터 시작하여, 전쟁의 전초기지인 나고야성 건립,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중심으로 한 전쟁 서사, 명나라 원군의 출정과 화의 시도, 정유재란과 히데요시의 죽음, 그리고 전쟁의 종결까지를 순차적으로 설명해 주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아 특별히 새로운 정보는 없었습니다. 시각의 차이는 존재해도, 역사적 사실 자체는 크게 다르게 다루어지지는 않은 탓입니다.

그래도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통역에 대한 설명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전쟁 중이니만큼 통역은 필수였고, 쓰시마번의 소 요시토시가 보유한 통역뿐 아니라 점령지에서 확보한 인력도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고려말에 대하여"라는 한국어 회화집이 존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 길인가", "곧이 이르라", "나이 몇이고", "자식 있는가" 같은 질문형 문장부터, "피리 부는가", "장인인가", "글 하는가"처럼 포로 중 유능한 인물을 식별하기 위한 문장들, "잘 씻으라", "술 덥혀라", "이거 가지고 있어라" 등 포로를 부리기 위한 표현, 그리고 "사람 많이 죽였다", "네 목 벨 것이야"처럼 위협적인 문장까지 수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전 상황에서 상당히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씁쓸했던건 여성을 성폭행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고운 각시 더불어 오라", "옷을 벗으라" 같은 문장이 회화집에 있었다는 설명은 읽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로 진출하여 '오란카이'라는 말을 듣고 '오랑캐'를 상대하겠다며 여진족 지역을 침공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 당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을 공격해 승리한 전투가 문헌상에 "세루토스"라는 거인을 이긴 전투로 묘사되는데 '세루토스'는 절도사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측 문헌이긴 하지만, 조선군 인물의 활약도 일부 언급됩니다. 유극량을 비롯해 송상현, 류성룡, 신각, 곽준, 곽재우 등이 기록되어 있고, 이순신은 아예 '영웅'으로 칭해집니다. 물론 이러한 서술은 일본군의 우수함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그럼에도 조선 인물의 언급 자체는 반가웠습니다. 행주산성 전투에 이가 지역의 닌자가 투입되었다는 기록도 꽤 신선하게 느껴졌고요.

다만 이 책에서 묘사된 전쟁은 삼국지의 장면처럼 과장되고 영웅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는 영웅으로 이상화된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에도 시대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전한 고니시가 할복하지 않고 처형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당시의 유교적 가치와 충돌했다는 해석이 붙습니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사료적 가치 측면에서는 그리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깊이 있는 내용도 부족하고,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다고 하기에는 다소 평이해서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 보다는 "징비록" 정도만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6/04/07

세한도 - 박철상 : 별점 3점

세한도 - 6점 박철상 지음/문학동네

아마 대한민국 국민 중 "세한도"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단한 그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림의 완성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 탓입니다. 이 책은 저 같은 무식자를 위한 책입니다. 왜 "세한도"가 대단한 그림인지를 설명해 주거든요.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한도"라는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작품의 창작 배경을 이해시키기 위해 김정희의 일생과 그의 성취를 조명하는 부분으로요. 때문에 이 책은 예술, 문화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사 서적이기도 합니다.

그중 김정희의 일생은 정확하게 말하면 생애 전체는 아니고, 문과에 급제한 이후 중국 연행길에 올라 당대의 지식인들(특히 스승으로 모신 옹방강)과 교류하며 벼슬을 이어가다가 귀양을 가서 "세한도"를 그리게 될 때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의 분량이 약 100여 페이지인데, 그간 깊이 알지 못했던 만큼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귀양을 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유가 안동 김씨 세도 정치 때문이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되었고, 또 윤상도의 상소로 촉발된 국문 과정이 소상하게 묘사된 부분은 마치 대하 사극을 보는 듯한 흥미를 준 덕분입니다.

이어지는 "세한도"라는 작품에 대한 해설 역시 마찬가지로 흥미로웠습니다. 처음 알게 된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지에 대한 이유 중 첫 번째는, 이 그림이 문인화의 정점으로, 이른바 ‘선비의 기상이 나타나는’ 그림이라는 겁니다. 묘사력보다는 품격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된 ‘구방고’ 고사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내면을 볼 수 있다면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고사인데, 이런 고사를 자연스럽게 인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쌓은 공부의 깊이가 엄청나며, 그 공부의 결실이 바로 "세한도"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추사의 편지들과 그가 소장했던 책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됩니다. 또한 "세한도"가 귀양 시절 자신을 위해 여러 책을 보내준 역관 이상적에게 감사의 뜻으로 그려진 작품이라는 점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세한도"에 대한 감상으로 마무리됩니다. 문인화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련을 거듭한 거친 터치(적묵법, 초묵법)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특히 그림의 구도와 인장의 관계를 분석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그림에 쓰인 글, 그리고 인장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새로운 감상법은 기존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시각을 열어주었고요.

이렇듯 이 책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깊이 알지 못했던 주제를 상세하고도 깊이 있게 조명해 주는, 거의 리뷰에 가까운 연구서입니다.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도판이 생각만큼 충실하지 못하다는 점인데, 책의 판형과 가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공부가 많이 되었고 느낀 점도 많았지만, "세한도"가 정말 그렇게까지 뛰어난 그림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글씨를 제외한 그림만 놓고 본다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아직도 어렵고, 선비의 기상이라는 것도 특별히 느껴지지는 않으니까요. 아울러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는 점이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내공의 깊이와 작품의 결과물이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