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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7

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 - 찰리 돈리 / 안은주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범죄 재구성 전문가 로리 무어는 변호사인 아버지 프랭크 무어의 급작스러운 사망 후, 아버지의 고객이었던 장기 복역수의 가석방 절차를 인계받아 진행하게 되었다. 그는 '도적'이라는 별명으로 40년 전 유명했던 연쇄 살인범 토머스 미첼이었다. 그러나 토머스 미첼이 죽였다는 피해자의 시신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찰리 돈리의 장편 범죄 스릴러입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작품은 현재 시점의 로리와 과거 시점의 앤절라 미첼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앤절라 미첼 시점에서 ‘도적(The Thief)’이라 불린 연쇄 살인범의 정체를 쫓는 과정이 더 볼만 합니다. 앤절라가 주변 인물들을 의심하며 조금씩 진실에 접근하는 흐름이, 앤절라의 자폐로 인한 강박적인 심리묘사와 함께 펼쳐져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덕분입니다. 앤절라가 헛다리 - 남편 회사의 새 고용인이 범인이다, 친구 남편이 범인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 를 짚어 나가다가 범인이 남편 토머스라는걸 깨닫는 장면까지의 빌드업도 좋습니다.

로리의 아버지 프랭크와 토머스 미첼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토머스 미첼이 60년 형을 선고받은 결정적 이유는 아내 앤절라 미첼의 실종 때문이었습니다. 도적이 저지른 연쇄 살인은 시체를 찾지 못해 혐의를 입증하는데 실패했거든요. 선고 후 토머스는 아내를 찾아 달라며 프랭크를 개인적으로 고용했습니다. 자신이 죽이지 않은 앤절라의 생존이 확인되면 자신은 풀려날 수 있으니까요.
프랭크도 처음에는 의뢰인인 토머스를 믿고 앤절라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랭크는 토머스가 연쇄 살인범이라는 것, 그리고 앤절라는 토머스에게 살해된 것이 아니라 출산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프랭크는 앤절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갓 태어난 아이를 입양함과 동시에 토머스를 속여 가며 가석방을 늦춰 왔던겁니다.
이는 현재 시점의 화자인 로리가 바로 토머스와 앤절라의 딸이었다는 그럴싸한 반전으로 이어지며,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게 만들고요.

하지만 절대로!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연쇄 살인마와 맞서 싸우는, 다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 화자를 중심으로 한 흔해빠진 양산형 범죄 스릴러에 불과한 탓입니다.
특히 주요 화자인 로리와 앤절라의 자폐 성향이나 강박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 묘사는 과할 뿐더러, 최근 범죄 스릴러에서 자주 보이는 캐릭터 유형을 그대로 반복하여 식상합니다. 친절하고 다정해 보였던 남편이 사실은 연쇄 살인마였다는 설정 역시 뻔하고요.

수사 과정 역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토머스가 증거를 완벽하게 지웠다고 해도 거의 십 년 동안 여성들을 수십 명이나 살해했는데 경찰과 검찰이 아무런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설정, 그리고 토머스를 체포하는 근거가 되었던 실종 여성의 신분증과 목걸이는 분명한 물증인데 이걸 단순한 정황 증거처럼 취급했던 재판 과정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토머스의 후반부 행동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는 40년 동안 복역한 뒤 가석방되자마자 곧바로 앤절라를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캐서린과 그레타를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무리한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작품 안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토머스가 시한부라든가 하는 설정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설명은 없어요.
범행 과정 역시 허술합니다. 그레타를 살해하면서 방명록에 서명을 남기는 등 명확한 증거를 남기는데, 이런 방식은 40년 전 이야기라면 모를까 2020년대에서는 빠져나가기 힘들 겁니다. CCTV도 있을테고요.
마지막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진상을 눈치챈 로리가 토머스의 집을 혼자 찾아가는 행동부터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토머스가 언제나처럼 희생자를 매단 교수대를 만들어 변태적인 놀이를 즐기다가, 숨어 있던 로리의 기습을 받고 죽는 결말은 허무함의 극치였고요.

불필요한 묘사도 많습니다. 앞서 말했듯 주인공들의 심리적 문제를 강조하는 묘사는 과할 정도로 반복되고, 캐스트너 인형 복원이나 플로이즈 다크로드 맥주 같은 이상한 취미와 집착도 이야기 전개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카밀 버드 관련 설정은 차라리 나오지 않는 편이 나았고, 로리의 연인인 레인의 존재 역시 작품 전개에는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앤절라가 출산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가능성은 비교적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범죄 전문가라는 로리가 이를 지나치게 늦게 눈치챈다는 점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답답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범죄 스릴러에 불과합니다. 흥미로운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지탱할 만큼의 독특함은 없어요.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5/08/29

네버 라이 - 프리다 맥파든 / 이민희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리샤와 남편 이선은 둘러보기 위해 방문했던 교외의 외딴 저택에 고립되었다. 눈보라 탓이었다. 저택은 원래 2년 전 실종된 유명 정신과 의사 에이드리언 헤일의 소유였다. 머무는 동안 트리샤는 누군가 숨어 있다고 의심했지만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고, 대신 에이드리언이 환자 상담을 몰래 녹음해 보관한 비밀방을 발견했다. 테이프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트리샤는 또 다른 숨겨진 지하실을 찾아냈는데, 그 안에 부패한 사체가 놓여 있었다... 

2년 전, 유명 정신과의사 에이드리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차량 타이어를 훼손했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은 환자 EJ의 협박이 시작됐고, 그녀는 연인인 컴퓨터 전문가 루크의 도움으로 영상을 삭제하려 했지만 EJ는 이 장면마저 촬영해 협박 수위를 높였다. 결국 에이드리언은 EJ 살해를 결심하는데...

프리다 맥파든이 쓴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장편 소설입니다. 최근 너무 일본 작품만 읽은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편식은 좋지 않으니까요.

이 작품은 2년 전 정신과 의사 에이드리언 헤일의 시점과 2년 후 현재 트리샤의 시점이 번갈아 전개되다가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전개 방식 자체는 특별히 독창적이지 않지만, 이 과정을 통해 트리샤가 에이드리언의 환자 PL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PL이라는 이름은 패트리샤에서 비롯된 것이고, 트리샤는 (패)트리샤였던 겁니다.

PL은 원래 약혼자와 친구들과 캠핑을 갔다가 의문의 연쇄살인마에게 습격당해 혼자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혼자와 친구의 불륜을 알게 된 뒤 두 사람을 살해하고, 이후 살인마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꾸며온 것이 진상이었습니다. 에이드리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를 위해 찾아온 PL과의 상담 과정에서 이 사실을 간파했고, 자신을 협박하던 EJ를 제거하기 위해 트리샤를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진 트리샤는 오히려 에이드리언을 살해하고 시체를 감췄지요. 

한편, 에이드리언의 집 지하실에서 발견된 시체는 에이드리언이 아니라 EJ였는데, 이는 에이드리언이 EJ를 감금해서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루크가 지하실에서 발견한 사체를 보고도 에이드리언이 아니라고 확신한 이유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시체가 청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런 디테일은 확실히 여성 작가스러워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진상, 반전에 이르는 과정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트리샤는 에이드리언을 살해한 범인인데, 마지막 반전이 드러날 때 까지 트리샤 시점 전개에서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심약한 임산부로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3인칭도 아니고 1인칭 시점이며, 다중인격도 아닌데요. 이건 반칙입니다.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과 묘사도 많습니다. 트리샤가 굳이 비밀리에 테이프를 듣는게 대표적입니다. 트리샤는 EJ를 죽인건 에이드리언이고 루크가 범인이 아니라는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둘의 상담 테이프를 들을 이유는 없어요.
트리샤가 이선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걸 알고, 그런 그에게 자기 범행을 고백한 뒤 부부가 함께 입을 막기 위해 루크를 살해하고 사체를 파묻는다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선의 범행은 지금 와서는 제대로 증명할 수도 없고, 그나마 증거라는 테이프도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나 트리샤의 범행은 잔혹함과 규모에서 이선의 범행과는 수준이 달라요. 아무리 부창부수라지만 이선이 선뜻 트리샤의 손을 잡는다는건 와 닿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설명도 부족합니다. 트리샤가 에이드리언을 왜 살해했을까요? 트리샤는 EJ를 납치하는 자기가 CCTV같은데 찍혔을지도 모른다며 에이드리언을 살해했는데,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에이드리언을 죽인다고 CCTV 데이터가 사라지는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EJ의 사체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억지입니다. 사체가 발견되면 가장 문제가 될 건 에이드리언이니, 그녀가 알아서 잘 숨겼다고 믿는게 당연합니다. 되려 시체만 하나 더 늘렸고, 유명인사 에이드리언의 실종을 초래하여 경찰이 수사에 나서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수사 당시 경찰이 저택 비밀 공간들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건 순전히 운이었고요. 
저택에 누군가 침입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선이 지나치게 태평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 루크가 저택에 침입한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결말도 별로입니다. 환자를 돈으로만 대했고, 특별히 좋은 치료를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환자를 살해하기 까지 한 에이드리언 헤일은 죽어도 쌉니다. 트리샤, 이선 급으로 나쁜 악당이니까요. 그러나 엄청나게 순수했고, 진심으로 에이드리언을 사랑했을 뿐인 루크를 마지막에 부부에게 개죽음당하게 만든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부부의 행복한 생활과 트리샤가 이선마저 죽일 수 있다는 에필로그보다는 루크의 죽음이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거라는 식으로 그리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처럼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반전은 흥미롭지만 반전을 반들기 위한 의도적인 가짜 서술 트릭물이라서 감점합니다. 억지와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고요. 그다지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10/27

종이학 살인사건 - 치넨 미키토 / 권하영 : 별점 2점

종이학 살인사건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권하영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범인 및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세이 의대 부속 병원 조직 검사실 병리의 치하야의 아버지 미노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병리해부를 유언으로 남겨서 치하야는 동기이자 지도의 시오리의 보조로 해부에 참석했다. 그런데, 아버지 위에는 암호가 새겨져 있었다. 암호는 28년 전 어린 아이들을 노렸던 미제 연쇄살인극 '종이학 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진나이 양의 시신이 숨겨진 곳을 의미했다.
둘은 이를 몰래 알리려 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28년 전 형사였던 아버지의 동료 사쿠라이 형사와 진범을 찾아내려 나섰다. 그와 함께 다시 연쇄 살인극이 일어났고, 현장에는 28년 전과 똑같이 '종이학 살인사건' 범인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유리탑의 살인"으로 이름을 날린 치넨 미키토의 장편 소설. "유리탑의 살인"처럼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이 '위 속에 암호를 새겼다.'는 독특한 설정은 흥미로왔어요. 덕분에 이야기 중반까지 흥미를 잘 잡아줍니다. 
치하야, 시오리가 의사이며 특히 시오리가 병리해부를 맡은 병리의라는 설정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미노루가 생전 유전병인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는걸 알아내는 식으로요.

뼈가 약해지는 구루병은 X염색체 변이가 원인으로 100% 딸에게 유전됩니다. 즉, 키도 크며 격투기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튼튼해서 구루병을 앓지 않는 치하야는 미노루의 친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노루의 친 딸은? 목이 부러진채 발견된, 28년 전의 피해자 진나이 양으로 알려진 시신의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구루병 탓에 급작스럽게 딸이 죽어 혼란에 빠졌던 미노루의 아내가 진나이 양을 유괴했고, 범인이었던 야기누마(타치바나) 와카코가 이 사건을 연쇄 살인극이 하나로 위장했던 겁니다. 알리바이를 통해 혐의를 벗기 위해서요. 마침 유괴 사건을 엮어 미노루를 협박하기도 해서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요. 범인을 놓아준 죄책감에 경찰을 그만 둔 미노루는 더 이상의 범행을 막기 위해 와카코를 계속 감시해왔고, 미노루가 죽자마자 와카코는 범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여러모로 전작보다 못합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범인을 추리할 만한 단서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미노루가 경찰을 그만둔 뒤,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무언가를 감시했다' 정도만 의미있는 단서입니다. 그 외의 단서들은 모두 쓸모가 없어요. 핵심 증거와 단서들은 모두 마지막에 범인이 치하야를 납치하며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후 독자에게 공개됩니다. 시오리가 알아낸 아버지의 유전병이라는 단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특했던 '위에 암호를 새긴다는 설정'도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작품에서처럼 위궤양으로 암호가 지워질 수도 있는 등 변수도 많아요. 차라리 변호사에게 사쿠라이 형사에게 전해주라고 편지를 남겼으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암호로 남길 이유도 없었고, 암호의 내용도 불합리합니다. 마지막 사건의 시신 위치를 알린다 한 들, 이는 진상과 연결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냥 범인 이름을 써 놓지 않았을까요? 범인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에 피해자도 두 명이나 생겼는데 말이지요. 암호 해독도 특별한게 없고요.

전개도 어이가 없습니다. 둘이 암호를 곧바로 경찰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 시신 발굴 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 사쿠라이와 비밀 수사를 하는 이유 모두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경찰 수사도 많이 어설픕니다. 특히 가장 어이가 없었던건, 이전 수사 담당자 이노하라가 타치바나 사장의 자식이 마지막 사건에서만 알리바이가 없었다고 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모든 연쇄 살인이 단독범의 소행일리 없는데, 마지막 알리바이가 없다고 유력한 용의자를 그냥 풀어주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려 다섯 명의 아이가 살해된 사건인데, 경찰이 너무 안이한거 아닙니까? 범인이 유괴한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운다는 설정도 많이 접했던것이라 식상합니다. 이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전해주고요.

이렇게 위에 새긴 암호, 병리의, 유전병 정도의 소재를 제외하면 연쇄 살인범과 형사의 대결을 그리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와 흡사합니다. 범인의 정체도 반전처럼 등장하지만 굉장히 뜬금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설득력낮고 억지스러우며, 뻔했다는 점에서 위에 암호를 새기는 상황을 떠올리고, 전체적인 얼개없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간게 아닌가 싶네요. 

2024/10/12

세상 끝의 살인 - 아라키 아카네 / 이규원 : 별점 1.5점

세상 끝의 살인 - 4점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및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4년 9월 7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충돌 날짜는 정확히 반년 뒤인 2025년 3월 7일이었다. 그 뒤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루의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도망갔고, 아버지는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남동생 세이고는 뉴스 전부터 중학교 때 학교 폭력을 저지른 탓에 히키코모리가 되어 있었다. 매일을 운전 면허 교습을 받으며 소일하고 있던 하루는 고속도로 실습날인 12월 31일에 운전학원 실습차 트렁크에서 칼에 찔려 죽은 여성 사체를 발견했다. 
전직 형사였던 운전학원 강사 이사가와와 함께 얼떨결에 사건 수사에 나선 하루는,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있는 하카타와 이토시마에서 펼친 끈질긴 수사로 사건에 NARU라는 인물이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런데 NARU는 하루의 동생 세이고였다. 모든건 세이고가 중학생 때 다른 친구들과 나카노 이쓰키라는 동급생을 심하게 이지메하고 괴롭혔던 과거와 관련되어 있었다.

제 68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얼마 뒤 지구는 멸망하는데 운전학원에 다니는 여자와 운전을 가르치는 여자 교관이 차 트렁크에서 시체를 발견한 뒤, 연쇄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선다는 기발한 설정이 돋보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상황도 그럴듯합니다. 세이고는 유이치, 준야와 함께 지구 멸망 전, 자기가 괴롭혔던 이쓰키에게 사과하려고 변호사 히츠미의 도움으로 그를 불러냈던 겁니다. 그런데 마침 불러낸 현장이 폭주 택시 연쇄 살인마인 경찰 이치무라가 시체를 버리던 초등학교였지요. 범행이 들통났다고 여긴 이치무라는 우선 세이고를 현장에서 살해했고, 도주한 유이치, 준야, 히쓰미를 차례대로 살해했던 겁니다. 이 때 세이고의 차를 유이치가 타고 달아나서 범인의 동선이 기묘해졌던 것이고요. 
피해자들이 방심한 상황 - 왜 차 안에서 창문을 열어서 범인이 손쉽게 찌를 수 있게 했는지 - 을 통해 범인이 경찰이라는걸 은근히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의감이 너무 넘치는 탓에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사가와 강사 캐릭터도 강렬합니다. 그외 멸망을 앞둔 상황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도 다채롭고요.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히쓰미의 신원을 알아내어 사건 파일을 입수하고, 피해자 준야를 처음 발견했다는 료도 형제와 우연찮게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듣고 동행하고, 세이고의 '마지막 사과'와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장에 있었던 이쓰키가 하루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알려주고, 이치무라가 직접 나타나서 하루 등을 납치하지만 료도 형제와 중간에 만났던 소녀 나나코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구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는 탓입니다. 이 과정에서 추리가 개입될 여지는 전무합니다. 이사가와 강사의 추리력이 번득이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본 사건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리고 범인이 경찰 이치무라라는건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경찰차 범퍼에 가해진 손상이 비중있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폭주 택시'가 경찰차라는걸 목격자들이 놓쳤다는게 더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높은 가드레일 탓에 경찰차 특유의 도장을 확인할 수 없었던 탓이라고 설명되는데, 지극히 운과 우연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치무라의 동기가 작품의 핵심인 '지구가 곧 멸망하는데 사람들을 죽이는 까닭이 뭔지?'를 잘 설명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무대 설정만 기발할 뿐, 결국 뻔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극과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면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작품처럼 그 설정이 추리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다른 후보작이 어땠기에 이 작품이 만장일치 수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란포상 수상작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망작이었습니다. 추리물도 아니고, 특수 설정도 이야기에 잘 녹여내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도저히 줄 수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점에 가까운 1.5점입니다.

2024/09/27

어페어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점

어페어 - 4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시시피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된 사건으로 육군 헌병 수사관 잭 리처가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범인이 그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공수부대원일 가능성이 높았고, 부대 중대장이 상원의원 칼튼 릴리의 아들 리드 릴리였기 때문이었다.
마을에는 이전에도 두 명의 미인 흑인 여성이 살해당했었고, 공수부대 근처에서는 비밀리에 통제와 위협이 일어나고 있었다. 잭 리처는 마을 보안관 데버로와 깊은 관계가 되었고, 리드 릴리가 세 명의 피해자와 교제했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데버로가 리드의 첫 번째 여자였고, 군내부 조사 결과를 통해 과거 해병대원이었던 데버로가 질투로 심각한 폭행 및 음해 사건을 일으켰다라는 보고가 전달되었다.
데버로가 질투심에 리드와 교제했던 여자들을 살해한걸까?


"희망은 최선을 기대할 때 품는 거고 계획은 최악을 대비해서 세우는 거야." 프레이저 대령 (이 말을 처음한게 빌런 프레이저 대령이라는게 놀랍습니다!)

잭 리처 시리즈. 리처가 군을 그만두게 된 이유가 실려 있습니다. 군 치부를 알아내어 주모자 - 릴리 부자, 프레이저 대령 - 를 살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게 된 것이더라고요.

군부대와 수십 명의 민병대가 엮여 있고, 희생자만 5명이 넘으며 최종 보스는 상원 군사 위원회 위원장인 등 큰 스케일은 돋보입니다. 이를 오롯이 잭 리처의 활약으로 파헤쳐 나가는 과정도 잘 그려져 있고요. 공수부대와 싸우는게 아니라,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피해자 채프먼 자택에서의 지문 채취로 그녀가 오드리라는 여성이었다는걸 알아내는 식으로 잭 리처의 탐문, 현장 검증 등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데버로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계속 뿌리면서 독자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솜씨도 본격물 작가 못지 않습니다. 그녀가 사슴 사냥꾼으로 사슴의 피를 빼는 가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숨겼다던가, 그녀 차에 있던 흙자국(시체를 옮겼을지 모를), 해병대 시절 질투심으로 일으킨 사건에 대한 보고서 등으로 빌드업 하는 전개가 좋습니다. 작중 잭 리처마저도 잠깐이지만 속아넘어갈 정도이니까요.
사건 보고서가 가짜라는걸 반전처럼 등장시킨 장면도 괜찮았습니다. '사진'이 옛날 것이라는걸 포착한건, 그래서 가짜라는걸 알아챘다 - 그녀는 능력이 있으므로 5년이나 진급을 못 했을리 없다 - 는건데 그야말로 헌병 수사관 잭 리처에게 딱 맞는 단서였지요.
팬이라면 반가울 니글리의 활약, 그리고 잭 리처 못지 않은 능력의 헌병대 수사관 문로의 활약도 눈에 띕니다. 문로는 다른 작품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을 법 한데, 제가 읽은 다른 작품에서 접했던 기억이 없네요. 언젠간 한 번 다시 나와줄걸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과 스케일에 비하면 알멩이는 부족합니다. 추리물, 수사물로서의 값어치는 거의 없기도 하고요. 물론 이런 부분에서 큰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데버로가 범인이 아니라면 범인은 리드 릴리일 수 밖에 없는 탓이 큽니다.
데버로 보안관이 능력이 없다시피한 것도 문제입니다. 채프먼 사건의 현장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고, 채프먼의 지문을 채취한 신원 검증도 하지 않았고, 피해자들 모두가 리드 릴리와 교제했다는걸 마을 전부가 알고 있는데 리드 릴리를 아예 수사선상에 올리지 않은 등 사건 해결을 위해 하는게 없어요. 이런 무능력은 외려 본인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요.

설명도 불충분합니다. 군이 릴리 사건을 덮으려 했고 범인이 체포되었다며 부대 통제를 풀었다면, 이 시점에 데버로를 체포했어야 했습니다. 부대 통제를 푼 시점에서 진범이 누구인지는 정해지지도 않은건 이상하잖아요? 프레이저 대령이 칼튼 릴리에게 충성심을 보이며 리처를 죽이려 한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대령이 도청을 했다는게 리처에게 들키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리처에게 대단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자기 사무실에서 죽일게 아니라 밖에서 살해 시도를 하지 않은 이유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잭 리처를 그 자리에서 죽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프레지어 대령이 완력에 자신이 있다 한들 잭 리처의 경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또 프레이저는 잭 리처가 배후 인물을 알고 있다고 했으니, 그걸 릴리에게 보고했을 겁니다. 그러나 잭 리처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건 프레이저도 죽을 때 알았으니, 그걸 보고할 틈은 없었습니다. 즉, 잭 리처는 살아있는 위험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를 그냥 놓아두고 릴리 부자가 사건 해결 파티를 열 정도로 경계심을 풀었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리드 릴리가 연쇄 범행을 저지른 동기도 단순히 사이코패스였다는게 전부라 식상하며, 다른 설정도 문제가 많아요. 피해자들 모두가 엄청난 미인이었다는건 그나마 리드 릴리의 허영심이 컸기 때문이라는 일종의 동기 측면으로 기능하기는 하지만, 마지막 피해자 채프먼(오드리)은 테드 릴리의 정부이기도 했다는 설정은 억지스러운데다가 불필요하기까지 했습니다.
데버로와의 성관계 묘사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장황합니다. 이게 이렇게까지 묘사될 일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때문에 이 작품이 펄프 픽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전형적인 헐리우드 사이코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을 잭 리처 시리즈 설정에는 잘 녹여내었지만, 전반적으로 액션이 부족하여 잭 리처스럽지도 않고 수사물로도 가치가 없어 감점합니다. 

2024/08/07

키스 더 걸 (1997) - 게리 플레더 : 별점 1.5점

알렉스 크로스의 조카 나오미가 납치되었다. 범인은 젊고 아름다우며 능력있는 여성들을 연달아 납치하는 '카사노바'였다. 알렉스 크로스는 '카사노바'를 잡기 위해 관할이 아닌 노스캐롤라나 더램으로 향해 수사팀에 합류했다. '카사노바'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한 여의사 케이트의 도움이 수사에 큰 힘이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본 1997년도 영화. 제임스 패터슨의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 중 한 편을 영화하였습니다. 원작 소설은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군요. 리뷰도 올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처음 보는 작품처럼 볼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의 제임스 패터슨 작품이 그러하듯,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입니다. "양들의 침묵" 이후 대 유행했던 천재 연쇄 살인마와 수사관의 대결이 뻔하게 펼쳐집니다.
그래도 몇 가지 차이점을 두어 변주를 꽤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범인 '카사노바'가 연쇄 '살인마'는 아니고, 사랑을 갈구하여 여성을 납치하는 연쇄 '납치마'라는 점입니다. 이게 꽤 중요합니다. 납치한 여성들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경찰이 알아내지 못해서, 알렉스 크로스를 비롯한 경찰이 용의자를 추격할 때 쉽게 총격을 가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혹여 죽기라도 하면, 납치된 여성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서부(LA)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쇄 살인마 '젠틀맨'과 '카사노바'는 동일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명이라는 진상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헐겁습니다. 알렉스 크로스가 FBI에게 알리지 않고 케이트와 루돌프 검거에 나서 그를 놓친다던가, '카사노바'의 은신처에 대한 단서를 얻은 뒤 둘이서만 찾아나서는 것처럼 알렉스 크로스와 케이트 컴비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비합리적인 전개도 많습니다. 루돌프가 범인이라는걸 케이트가 확신한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루돌프는 범인의 지인이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카사노바가 은신처를 손에 넣은 방법도 모르겠고요.
'카사노바'가 생각보다 별로 뛰어난 범죄자가 아니며(증거를 계속 남김), 하는 짓도 뻔하기 그지없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덕분에 대결 구도는 초반부를 지나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합니다. 액션이 별볼일없는데 두뇌 싸움도 없으니, 영화가 재미가 있을리가 없지요.
경찰이 '카사노바'였다는 반전도 지금 보기에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범죄도시 3"에서도 써먹을 정도로 널리 퍼진 설정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앞서 별다른 비중도 없던 인물이 갑자기 범인이라고 등장하는건 뜬금없었습니다.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합리성을 결여한 결과랄까요.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모건 프리먼은 알렉스 크로스와 별로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포르쉐를 타고다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의사이자 형사인 인물에는 좀 더 섹시(?)한 배우가 나았을 겁니다. 애슐리 쥬드가 연기한 케이트와의 관계 설정을 위해서도요. 영화에서는 거의 부녀 관계처럼 보이더라고요.

건질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알렉스 크로스가 케이트에게 투여된 약물의 출처를 조사하여 LA의 의사 루돌프가 수상하다는걸 알아내는 장면, 마지막에 경찰 서명과 카사노바 서명을 비교하여 정체를 알아채는 장면은 추리적으로 볼만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역시 저는 제임스 패터슨과는 안 맞는 듯 합니다.

2024/02/11

놀라운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들 - 북오프 칼럼

가끔 소개해드리는 이러저런 미스터리, 추리소설 추천 정보. 이번에는 북오프 온라인 칼럼 하나를 찾아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의역이 많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촘촘히 짜여진 수많은 복선, 상상할 수 없는 전개, 충격적인 결말 ...... 소름이 돋는 오싹함을 찾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그 중 '반전'이 뛰어난 미스터리 작품들을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들과 유명 작가들로 나눠 소개해 드립니다.
꼭 한번, 그 '반전'에 감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반전'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
"가면병동" 치넨 미키토
"If의 비극" 우라가 가즈히로 (국내 미출간)
"신의 숨겨진 얼굴" 후지사키 쇼
"출판금지" 나가에 토시카즈 (국내 미출간)

유명 작가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 이치
"살인귀" 아야츠지 유키토

"가면 병동"
강도로 인해 밀실로 변한 병원, 숨 막히는 심리전의 막이 오른다!
요양병원에 강도가 침입해 자신이 쏜 여자의 치료를 요구한다. 사건에 휘말린 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는 여자를 치료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중 병원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폐쇄된 병원에서 펼쳐지는 궁극의 심리전.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현직 의사가 그리는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본격 미스터리×메디컬 서스펜스'. 저자 첫 문고판 장편소설!

인기 시리즈 제1탄.
의료 소설이라고 하면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알기 쉽고, 읽기 쉽습니다. 라이트 노벨 같은 경쾌한 터치로 독자를 쏙쏙 끌어당깁니다.
게다가 치넨 씨는 현직 내과 의사로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문적 견해를 바탕으로 집필되어 있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점도 매력적인 점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속편인 '시한부 병동'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If의 비극"
소설가 가노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자살을 의심한다. 결국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오쿠츠의 불륜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쿠츠를 불러내어 살해한다. 하지만 위장공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노가 운전하는 차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A는 남자를 치어 죽인 경우, B는 아슬아슬하게 남자를 치지 않은 경우. 두 개의 평행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때,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식인 작가(사람을 잡아먹는 소설을 많이 써서)로 알려져 '미스터리계의 기인'으로 불리는 우라가 카즈히로 씨의 작품. 경력이 거의 공개되지 않아 그 수수께끼 같은 부분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고 합니다.
"절대 속지 않는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 작품이지만, 절대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 반전에 역시나 격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숨겨진 얼굴"
신과 같은 청렴결백한 교사, 츠보이 세이조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통곡의 밤은 슬픔에 휩싸여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신'을 추모하는 가운데, 엄청난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 츠보이가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었을까...? 츠보이의 아름다운 딸, 후배 교사, 제자인 중년 남성과 요즘 여자, 이웃집 주부와 개그맨. 두 번, 세 번 뒤집어지는 그들의 추리는? 반전이 있는 결말이 화제!!!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대상' 수상작. 아리스카와 아리스, 온다 리쿠, 구로카와 히로유키, 미치오 슈스케라는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받았다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절묘한 유머 감각이 있고, 서비스 정신이 넘친다 (온다 씨)', '개그맨으로 활동한 경험 때문인지, 말투가 매우 유쾌하고 유머 감각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미치오 씨)'라는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이, 어쨌든 유머가 넘치는 작품입니다. 반전도 훌륭하고요.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출판금지"
작가인 나가에 씨가 손에 쥔 것은 "카뮈의 자객"이라는 소문난 원고였다. 저자는 작가 와카바시 고세이. 내용은 유명 다큐멘터리 작가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신도우 나나오와의 단독 인터뷰였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산장, 동반 자살의 모든 것을 기록한 영상. 불륜의 끝에서 벌어진 비극인가? 왜 여자만 살아남은 것일까? 숨막히는 전개, 무서운 반전. 기형적인 걸작 미스터리.
작가인 나가에 씨는 원래 호러와 서스펜스를 전문으로 하는 TV 감독이었습니다.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그램 '방송금지'(후지TV)의 기획, 각본, 감독도 담당했다고 하네요. 이 책은 그런 경력을 가진 나가에 씨가 가상의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논픽션처럼 느껴져서, 도중에 공포에 질려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는, 스릴 있고 무서운 작품이라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어느 도시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은 아파트 13층에서 갈고리에 매달린 알몸의 여성이었다. 그런 시체 근처에는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히라가나로만 쓰여진 조악한 범행 진술서가 있었다. 이후 제2, 제3의 엽기 살인이 일어난다. 한 기자는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범인에게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
이 작품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입니다. 기괴한 살인을 다룬 서스펜스 넘치는 미스터리지요.
마지막 반전에 이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반전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범인의 책임능력을 묻는 형법 제39조가 강하게 개입된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미스터리로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미로관의 살인"
추리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에 의해 신예 작가 4명이 '미로관'이라는 기괴한 관에 모였다. 미야가키의 비서는 미야가키가 자살했다며 카세트 테이프를 대신 건네 주었다. 테이프에는 '미로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달라', '가장 좋은 작품을 쓴 사람에게 유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도리없이 네 사람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등 반전과 의외의 결말이 있는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다.
곳곳에 깔려있던 복선이 회수되고 여러 가지 장치가 차례로 밝혀지는 후반부 전개가 특히 압권입니다. 이 작품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걸작이에요.
참고로 이 작품은 시리즈 작품이지만, 이 작품만으로 독립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 권부터 읽어도 무방합니다.

"어둠 속의 기다림"
살인 혐의로 경찰에 쫓기던 아키히로는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라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숨어들었다. 미치루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있다'며 아키히로의 기척을 느꼈지만 계속 모른척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맹인 여자와 살인 용의자인 남자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는데...
여자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살인 용의자인 남자가 무단으로 여자의 집에 숨어든다 - 이런 줄거리를 보면 앞으로 도대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점차 유대감 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하거든요.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살인귀"
'TC멤버스'는 중학생부터 성인까지가 소속된 친목 단체다. 그런 TC멤버스 일행이 후타바산으로 캠핑을 떠난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캠프는 후타바산 살인마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참극으로 변해가고, 한 명, 또 한 명씩 살해당하는데............
이 작품은 스플래터 호러 소설입니다. 그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상당히 그로테스크해서 이런 작품을 싫어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전부는 아닙니다. 후반부에는 아야쓰지 유키토다운 깜짝 놀랄만한 장치가 준비되어 있으며, 거기서 그려지는 반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면역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2023/11/17

#진상을 말씀드립니다 - 유키 신이치로 / 권일영 : 별점 2점

#진상을 말씀드립니다 - 4점
유키 신이치로 지음, 권일영 옮김/시옷북스

일본 추리계의 신성이라는 작가의 단편집. 모두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공정한 정보 제공과 추리의 연계입니다. 고전 본격 추리물을 연상케 할 정도였습니다. 반전들도 강렬합니다. 뒷맛을 전해 준다는 점에서는 '기묘한 맛' 류라고 보아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일단 사건들이 일어나는 상황, 동기들이 비현실적입니다. 사건을 저지른 다음의 뒷 수습을 고려하고 있지도 않고요. 여기에 더해 전개가 너무 뻔합니다. 현재 상황이 어떠하며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어요. 추리는 이런 예상을 굳히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추리를 통해 의외의 진상이 드러난다던가 하는건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그나마 2021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을 수상했다는 마지막 작품인 "#퍼트려 주세요"만이 뻔하지 않은 진상과 결말로 이어지기는 합니다만, 비현실적이라는 단점은 마찬가지고 오히려 '추리' 적인 요소가 별로라는 문제는 도드라지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자면담
가정교사 소개 영업사원 가타기리는 야노 모자와 방문 상담을 진행하던 중, 무언가 수상하다는걸 느꼈다. 야노 부인의 신경질적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여러가지 행동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들 유의 행동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명문 중학교를 노린다는 아이가 간단한 수학 문제의 답으로 110만 쓰고 있었다....

요약에서 설명한 장점과 단점이 모두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소년의 이름이 한자를 일반적으로 읽는 발음과 달랐다던가 ('유'가 아니라 '하루카'였음), 소년이 피아노를 배웠다는데 치지 않는다던가, 분명 먼 사립 학교를 다니는데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논다고 하고, 무슨 문제를 내어도 110이라는 답을 내 놓는 등 정보 제공은 확실합니다. 심지어 이웃집 부인이 진짜 야노 부인을 살해했던 동기인 쓰레기 봉투 문제까지도 앞 부분에서 설명될 정도입니다. 하루카는 이미 사고로 죽었었으며, 야노 마리가 아직 아들이 살아있다고 믿은 망상 탓에 불거진 일이었다는 반전도 섬찟했고요.
상황도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살인범과 피해자의 아들, 그리고 평범한 일반인이 함께 삼자 면담을 진행하는 과정은 서스펜스 넘칩니다.

하지만 단점 역시 말씀드렸던 그대로입니다. 우선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입니다. 가짜가 가타기리를 만나서 방문 상담을 진행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아파서 날짜를 조정하겠다 정도로 이야기하는게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무려 20분이나 걸려 현장을 대충 치워야 했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게다가 아이가 아무리 공포에 질려 있었어도 순순히 범인의 협박에 따라 행동한 것도 이상해요. 작중에서도 초등학교 6학년이면 성인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언급할 그런 나이인데 말이지요. 전개도 너무 뻔합니다. 초반부터 야노 부인이 가짜라는 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대 놓고 수상하다는걸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매칭어플
나는 kento라는 가명으로 매칭어플을 통해 마나를 만나 데이트한 뒤 그녀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방을 관찰하고 샤워를 하던 중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위화감을 느꼈다.

마나가 원조 교제 남성들을 낚아 협박하는 조직의 멤버였으며, 마나의 자취방은 일당의 아지트였다는 내용은 신선했습니다. 그래서 마나가 데이트 중 했던 말과 방 안 사물들이 일치하지 않았고, 샤워기 높이 등도 잘못 놓여져 있었던 것이지요. 이를 위한 정보 제공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정합니다. 추리적으로는 나무랄데 없어요.

그러나 딸의 원조 교제를 중단시키기 위해 이런 사건을 저질렀다는 동기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딸이 매칭 어플로 원조 교제를 한다고 딸을 닮은 원조 교제녀들을 여러명 죽이고 다닌다? 이건 비현실적을 넘어서는 미친 설정입니다.
또 주인공이 매칭 어플을 사용하는 딸과 닮은 여성들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마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는데다가, 마지막에 밝혀지는, kento의 딸 미유키 역시 조직의 멤버였다는 반전도 신선하기는 했지만 작위적이었습니다. 마침 그 때 문자 메시지가 배달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판도라
명문대 출신인 나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괴로워하다가 힘들게 딸 마나쓰를 얻은 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자 제공을 하려고 결심했다. 하지만 정자 제공은 딱 한 번에 그쳤다. 그리고 1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자 어린이 연속 유괴 살인사건의 범인 호조지 재판이 잘못되었었다는 뉴스가 나오던 어느날, 나의 딸이라는 아이 쇼코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잔잔한 드라마로 쇼코와의 대화를 통해 마나쓰가 친딸이 아니며, 아내도 다급한 나머지 정자를 기증받았던게 아닐까라는 깨닫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고 두 아이 모두 자기 딸로 인정하겠다는 결말이 괜찮았던 작품.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정자 제공을 한 상대가 호조지의 아내였다는건 쉽게 눈치챌 수 있었지만, 이야기의 핵심 요소는 아니라서 큰 단점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정체는 금방 밝혀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문제는 추리물도 아닐 뿐더러, 그녀가 정자 제공을 받으려 했던 동기가 영 설득력이 없다는 겁니다. 호조지와 마지막 관계를 가진 뒤 그가 체포된 탓에, 혹시 임신되었을 때를 대비해 누구의 딸인지 모르게 하기 위해 기증받은 정자를 주입했다고 합니다. 혹시 딸 쇼코가 아버지의 정체를 눈치채면 딸에게 "너는 살인범의 딸이 아니라 기증받은 정자로 태어난 아이다"라고 말해주려고요. 그런데 유전자 검사라는 방법이 있으니 이는 결국 자기 만족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임신 중절을 하기 싫었다면,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키우느니 이민을 가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거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삼각간계
나 (기리야마), 모기, 우지하라는 대학 시절 친했던 "이쓰멘" 모임 멤버로 5년 만에 모임을 가졌다. 오사카에 사는 모기의 집 앞으로 우지하라가 전근온 것이 계기였다. 도쿄에 있는 기리야마를 고려해 온라인으로 가진 모임 중, 우지하라는 기리야마에게 모기를 죽이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 약혼녀가 모기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우지하라가 보낸 사진 속 약혼녀는 기리야마가 사귀고 있는 여자 미나미였다...

전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뻔합니다. 우지하라 약혼녀의 불륜 상대가 기리야마라는건 전개 상 당연했거든요. 당연히 우지하라가 죽이려 하는 것도 모기가 아니라 기리야마였고요. 오사카에 있는 척 했던 트릭은 머리를 많이 쓴 것 처럼 설명되지만, 원격 미팅이 잦은 최근 시점에서는 새롭지도 않으며 기리야마가 눈치챈게 아니라면, 우지하라가 장황하게 설명해 줄 이유도 없습니다.
기리야마가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이렇게 원격 모임처럼 가장해서 속였다는 동기도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약혼녀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살인을 저지르는 우지하라는 몰상식한 인간이라고 쳐도, 친구 모기가 공범으로 살인에 가담하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결혼해서 애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1점. 수록작 중 워스트입니다.

#퍼트려주세요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외딴 섬 몬메지마로 이사온 와타나베 초모란마는 자기처럼 도쿄에서 오고 독특한 이름을 가진 동갑내기 구와지마 사데쓰, 안자이 루주, 그리고 유일하게 토박이었던 소녀 린코와 친해졌다. 그러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날, 섬에 방문했던 외지인이 나가사키에서 살해당했고 그날 이후 도쿄 출신 아이들에 대해 링크를 포함한 섬 사람들이 모두 서먹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마침 그 날은 린코가 아이폰을 보여주며 유튜버가 되자고 말했던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6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두고, 린코는 초노를 불러내었다. 린코는 중요한걸 고백하려고 했었지만 실패했고, 절벽에서 추락해 죽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섬에 살며 TV 정도를 제외하면 문명의 이기, 인터넷 등을 전혀 접하지 않던 섬 소년, 소녀들의 부모가 알고보니 인기 최고라는 6인조 유튜버였으며, 그 유튜브 컨텐츠는 섬에 사는 자기 아이들을 몰래 찍은 동영상이었다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트루먼 쇼의 소규모 개인 버젼이라 할 수 있는데, 최근 기술력과 장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네요.
섬의 비밀을 밝히려는 외지인이 살해당한건 충성스러운 구독자들 때문이었고,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유튜버 가족들을 피하게 되었다는 것도 그럴싸 했습니다. 자기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관여하지 말자고 생각한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일단 유튜브를 아이들에게 비밀로 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알려주었어도 상관없었을겁니다. 구독자들만 아이들이 '모르고 있다'고 속으면 되잖아요? 어차피 영원히 속일 수도 없어요. 작 중 묘사처럼 중학교 진학을 위해 섬 밖으로 나가게 되면 바로 알게 될 테니까요.
게다가 마을 주민들이 비밀에 동참한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심지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부모가 아이들 몰래 유튜브를 찍어 올렸다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학교에서 보호되고 통제가 되었을 겁니다. "귀등의 섬" 세계관처럼 고아들을 모아놓은 고립된 섬에서 선생들이 작당하고 학생들을 몰래 카메라로 찍었다면 모를까, 21세기에는 있을 수 없는 설정입니다.
아이 세 명의 부모 중 누군가가 아니라 루주가 린코를 직접 살해하고 알리바이를 조작한 것도 말이 안됩니다. 자동차도 있고 힘도 좋은 어른들이 6명이나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 생에게 살인을 저지르라고 시킬 까닭은 없지요. 알리바이 트릭도 상당히 유치했고요. 이 모든걸 알아낸 초모란마와 사데쓰가 루주에 대한 응징을 라이브 방송 투표로 결정하겠다는 마지막 장면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9/17

전래 미스터리 - 홍정기 : 별점 1점

전래 미스터리 - 2점
홍정기 지음/몽실북스

DC인사이드의 추리소설 갤러리에서 괜찮은 한국 추리 소설이라고 누군가 소개하길래 읽어보게 된 작품.

결론부터 말하면, 대실망이었습니다. 완성도가 지나치게 낮은 탓입니다. 전개와 묘사 모두 수준 이하에요. 전래 동화가 바탕이 된 이야기에서 '변태 스토커', '알리바이', '스위치' 라는 말이 나온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고증은 둘째치고서라도 문체, 묘사라도 고전처럼 가져갔어야 했습니다. 잔인하고 자극적인 묘사가 쓸데없이 많은 것도 불쾌했으며,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부분도 거의 없어요. 
고전을 모티브로 잔혹함을 버무렸다는 점에서 한 때 유행했던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시리즈를 떠오르게 하지만 그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조선 후기를 무대의 괴담물인 <<삼개주막 기담회>>와 비교해도 그 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하고요. <<삼개주막 기담회>>는 이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에 비하면 노벨문학상 감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아마츄어가 어딘가 커뮤니티에 올렸던 반 장난스러운 글이 출판된 걸로 보여지는데, 결과물 수준에 대해서는 출판 담당자의 책임도 커 보입니다. 최소한 어느정도 완성된 글로는 보이게끔 방향을 알려줬어야 했어요. 뭐 지금 말해봤자 별 의미는 없겠지만요. 앞으로 이 작가, 이 출판사 책을 두 번 다시 읽어볼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콩쥐 살인사건>>
콩쥐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팥쥐가 원님과 결혼하기 위해 발목을 스스로 자른다던가, 원님의 칼에 언년이 머리가 토막난다단가, 마지막에 팥쥐 목이 배달(?)되어 오는 등 쓸데없이 잔인한 묘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로입니다. 급작스럽게 언년이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고, 트릭도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핵심 트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팥쥐가 도깨비 감투를 쓰고 방을 몰래 빠져나갔다는 트릭, 또 하나는 쥐가 언년이의 손톱을 먹은 뒤 언년이로 변신했다는 트릭이지요. 그러나 도깨비 감투 트릭은 창문이 작아서 어차피 성립할 수 없었고, 쥐가 언년이를 대신한 알리바이 트릭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쥐를 변신시킨게 아니라, 마침 쥐가 변신한걸 보고 즉흥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말이 안됩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니까요.
단서 제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콩쥐가 죽은 어머니로부터 기이한 보물을 물려받았고, 그 덕분에 계모가 시킨 말도 안되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정도만 앞에서 설명될 뿐입니다. 이런걸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는건 말도 안됩니다.

고전 설화 속 설정을 트릭으로 써먹는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물은 아쉽기만 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나무꾼의 대위기>>
사슴과 사냥꾼이 짜고 선녀 날개옷을 훔치도록 유도했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극적인 반전도 생기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일단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이 관음증 환자일 수 있다는 설정은 워낙에 흔해서 새로울게 없었습니다. 금도끼 은도끼 신령이 갑자기 나오고, 탐정역으로 토끼가 나오는 등의 뜬금없는 전개는 황당했고요. 탐정역인 토끼는 이 모든게 나무꾼을 범인으로 몰기 위한 산신령까지 포함된 음모의 결과라는데, 그 때문에 산신령이 범인 선녀, 나무꾼, 사슴을 참살하는 결말도 영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옥황상제 앞에서의 공식 재판도 아니었으니, 그냥 나무꾼을 죽이고 거짓말로 고해 바치면 되는게 아니었을까요? 이런 연극을 꾸밀 이유가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굶주린 사냥꾼이 토끼를 잡아먹는다는 결말도 이해가 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배가 고팠다면 애초에 사슴을 죽여서 잡아먹었어야 하잖아요?

추리적으로도 엉망입니다. 범인 선녀가 물 속에서 죽은 선녀 다리를 끌고 움직이는 척 해서 옮긴 뒤, 온천의 뜨거운 열로 시체가 사후 강직이 풀리는걸 이용하여 스스로 주저 앉는것처럼 꾸몄다는 트릭인데, 만화에서도 써먹기 힘들겁니다. 뜨거운 물 속에 숨느라 갈대를 입에 물었다는 디테일도 유치하기 짝이 없고요. 애초에 사슴이 말하고, 선녀가 날아다니는 세계관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트릭을 쓴다는게 설득력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해와 달>>
떡장수 아주머니가 식인범에게 사로잡혀 산채로 먹히는 장면은 잘 그려냈습니다. 식인범의 설정도 꽤 탄탄하고 무서웠고요. 마츠모토 세이초의 <<전골을 먹는 여자>>를 떠오르게 만드는데, 그만큼 설득력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식인범이 어미의 머릿가죽을 뒤집어쓰고  찾아와 딸을 속이려 하는 장면, 그 뒤 정체가 탄로난 식인범이 딸과 사투를 벌이는 부분도 괜찮았습니다. 리처드 매드슨의 크리처물인 <<사냥감>>이 떠오르는 박진감넘치는 묘사와 전개가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러나 해와 달이 쌍둥이고, 해는 타고난 살인마였다는 진상은 영 아니었습니다. 시간대별로 풀어가는 전개도 불필요했고요. 착한 남매가 기지를 발휘하여 식인범을 없애는 식으로 - 썩은 동아줄을 활용한다면 더 좋고 - 이야기를 풀어가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연쇄 도살마>>
보름이 될 때마다 집의 가축들이 차례로 죽어나가고, 큰 아들 일남은 막내 미호가 가축의 생간을 뽑아먹었다고 하는데...

여우가 가축의 생간을 뽑아 먹는다는 이야기를 추리적으로 풀어낸 이야기. 
알고보니 일남이 진범이었다는 반전은 괜찮았지만 그 외에는 문제 투성이입니다. 우선, 가축들을 차례로 죽이고, 나중에 부모 형제까지 죽였다면 이렇게 공을 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한 번에 다 죽이면 되잖아요? 뭐하러 땅을 파고 몸을 숨겨가면서까지 범행을 숨겼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미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이유도 없어요.
미호의 짓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미호의 신발을 신고 발자욱을 남긴건 괜찮았지만, 미호 시체를 소의 항문을 통해 쑤셔 넣어 은폐했다는건 어이를 상실케 합니다. 
추리물 흉내를 조금 내기는 했지만 설득력 떨어지는 전개로 일관하는 졸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스위치>>
나는 백정의 아들로 파란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눈을 누군가 나뭇조각을 댓가로 가져갔다. 나는 나뭇조각이 타인의 신체를 가지고 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걸 깨달았다. 그 능력이 마을 주민들을 기괴한 모습으로 죽게 만든 연쇄 살인극의 진상이었다.

스위치라는 표현을 천연덕스럽게 쓴다는 것부터 황당했던 이야기. '혹부리 영감'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신체 전환(?) 설정은 그래도 볼 만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죽기 전에 뇌를 바꿨는데, 갓난 아이가 되어서 실패했다는 황당한 결말로 점수를 다 깎아먹습니다. 한 10살 정도 되는 아이하고 뇌를 바꿨으면 될 것을 왜 갓난아이랑 바꿨는지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당연한걸 모를리 없을 정도로 능력을 계속 써 왔다는 점에서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초반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의 연쇄 살인극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나간게 아닌가 싶은 이야기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3/09/10

소문 - 오기와라 히로시 / 권일영 : 별점 2.5점

소문 - 6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모모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짓 소문을 퍼트려 - WOM (Word of Mouth), 입소문 - 경쟁사의 매출을 떨어트리고, 특정 제품의 판매를 신장시켜온 '컴사이트'의 대표 쓰에무라는 '뮈리엘'이라는 향수 브랜드를 위해 죽인 여자의 발을 가져가는 살인마 레인맨은 뮈리엘 로즈 향수를 뿌린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런데 실제로 고등학생 등 젊은 여성들이 살해당하고 발목이 사라진채 유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내를 잃은 뒤 고등학생 딸을 키우는 형사 고구레는 사건 수사에 투입되어 나이어린 신참 여성 경부보 나지마와 한 조가 되어 피해자들이 컴사이트에서 주도해서 레인맨 소문을 퍼트렸던 뮈리엘 향수 아르바이트를 했다는걸 알아냈다. 그리고 쓰에무라의 오른팔인 아소를 체포했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결정적 단서는 컴사이트 압수 수색에서 발견된 '카드 브레인스토밍' 자료였다.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레인맨 설정을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으며, 그는 광고회사 직원 니시자키라는게 밝혀지는데....

오기와라 히로시의 장편. 2000년대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었던 작품입니다. 수년전 재간되었네요.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최고의 반전' 운운하는 띠지에 혹해 읽게 되었습니다.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 타율도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고요.

경찰과 일종의 게임을 벌이는 엽기 변태 연쇄 살인마와 형사의 대결이라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 범죄 스릴러와는 다른 점은 경찰 수사가 정말 '발로 뛴다'는 겁니다. 어딘가의 천재가 활약하는게 아니라요. 고구레가 딸 뻘인 여자 아이들과 어울려 단서를 모으고, 나지마가 지인들을 동원하여 '레인맨' 소문이 퍼진 경로와 위치, 날짜를 수집하여 도식화하는 등의 과정은 굉장히 실감났습니다. 고구레의 말 그대로, '과수원에 벌레 먹은 사과가 있다면, 해야 할 일은 나무에 매달린 사과 가운데 벌레 먹은 사과를 찾는 일이 아니라 땅바닥에 엎드려 사과를 골라내는 일'인 것이지요. 덕분에 소문을 낸 원흉이 컴사이트의 쓰에무라라는게 밝혀지는 과정도 설득력이 충분했고요.
고구레와 나지마가 마지막에 발견된 피해자 발에 칠해진 패디큐어를 보고 펼치는 추리도 좋았습니다. 고구레는 범인이 왼손잡이라고, 나지마는 발톱에 범인 지문이 남아있을거라고 추리하는데 설명이 아주 그럴듯했거든요. 패디큐어 색깔이 다른건 범인이 색맹이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수사 관계자가 모인 수사본부에서 마지막 스커츠 차림으로 발을 들어 올려 설명하는 장면도 극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짜임새도 발군입니다. 범인 니시자키가 왼손잡이라는걸 앞서부터 설명한다던가, 세 번째 발견된 피해자 미사키 야스요가 니시자키와 함께 살던 '사키'였고, 그녀가 이미 죽었음을 치밀하게 복선으로 깔아둔 전개 - 예를 들어 '냉장고에서 악취가 났다. 사키가 또 음식물을 썩힌 것이다' 등 - 에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청 캐리어와 출세는 포기한 관할서 형사라는 캐릭터, 두뇌와 실무로 나누어진 캐릭터 구도도 흔해 빠졌지만, 본청의 경부보인 나지마가 더 나이가 어린 여성이라는 점과 둘 다 남편, 아내를 잃은 편모, 편부 가정이라는 등의 세세한 설정을 덧붙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줍니다. 상당히 디테일하게 짜여져 있어서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사건 이면에 존재하는 WOM 이론도 흥미로왔습니다. 한 명이 WOM으로 정보를 전파하는 평균치는 일주일에 대략 2.5명, 대략 한 달 만에 10만명 가까운 사람에게 퍼진다는 데이터는 놀라왔고요. 실제로 쓰에무라처럼 괴소문을 퍼트려 매출을 떨어트리는 행위는 암암리에 있어 왔기에, 남의 이야기같지 않았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이지만, 바로 옆 경쟁 점포를 음해하려고 했던 '밤식빵 쥐 혼입 조작 사건' 같은 것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떤 정보가 진실인지를 알아내는게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보았던 만화 <<로켓맨>>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하지만 카드 브레인스토밍 자료와 사체에서 발견된 지문으로 범인이 니시자키라는게 밝혀지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는 재미가 떨어집니다. 전개를 보면 니시자키는 딱히 의도적으로 범행을 숨기려거나 과시하려고 했던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체포되지 않은건 운이 좋아서 - 그리고 경찰이 멍청해서 - 였을 뿐입니다. 심지어 알 수 없는 이유로 고구레 앞에 나타나 직접 정보를 제공하기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즉, 이런 류의 작품에서 핵심인 '천재 범인과 경찰과의 두뇌 게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경찰의 수사만 있는 셈이에요.
물론 경찰과 게임을 펼치는 천재 범인이라는 만화적인 설정이 좋은건 아닙니다. 그러나 니시자키가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이유를 단지 정신이 이상한 변태라고 설명한건 아쉬웠습니다. 도화선이 된 '사키'의 존재도 억지스러웠고요. 변태 정신병자의 클리셰만 모아 놓아서 진부했는데, 그나마 클리셰의 재미 요소는 빼 먹은 셈입니다.

띠지에서 광고했던 반전도 그닥입니다. "마지막 4글자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의 4글자는 '기나오싹'입니다. 고구레의 딸 나츠미가 만든 말이지요. 즉, 쓰에무라를 살해한건 나쓰미였다는 것이지요. 사회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약간의 사회파적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생각됩니다. 작 중 고구레가 피해자들 부모를 만나며 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 역시 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는건 말 그대로 기나오싹 - 기분 나쁘고 오싹하다 - 했거든요. 굉장히 자상한 아빠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건데, 세대 차이를 충격적으로 드러내는데는 적당했습니다. 나츠미가 잦은 외박을 한다던가, 머리 색깔이 바뀌었다는 등의 복선도 충실히 설명되고요.
그러나 이 반전은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궁금증만 더 키운다는 점에서 별로였어요. 평범한 여고생들이 어떻게 쓰에무라 집에 침입해서 살인을 저질렀고, 시체를 토막까지 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4글자라는걸 띠지에서 강조하는건 일종의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기나오싹이 작중에서 좀 비중있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띠지가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의 호토리가 미스터리를 읽는 방법을 따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답게 흡입력은 높습니다. 잘 짜여져 있기도 하고요. 반전 운운하는 마케팅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2023/08/25

폭탄 - 오승호 / 이연승 : 별점 2.5점

폭탄 - 6점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상,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시 정각. 아키하바라 쪽에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겁니다." 술에 취해 자판기를 훼손해 인근 경찰서로 붙잡혀온 남자가 왠지 촉이 온다며 내뱉은 이 말에 귀 기울인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술이 덜 깼나?" 하는 비아냥은 10시 정각에 폭발 사고 신고가 들어오며 서늘한 공포로 변한다. 남자가 히죽거리며 말을 잇는다. "제 촉대로라면 지금부터 총 3회, 이다음에는 한 시간 후에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가벼운 상해 사건이었던 이 건은 금세 최우선 순위로 격상되고, 본청 형사들이 취조실로 들이닥친다. 베테랑 형사들을 앞에 두고 남자는 선문답을 연상케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아홉 개의 꼬리'라는 퀴즈 게임을 제안한다. 어쩔 수 없이 제한 시간을 두고 그와 마주 앉아 절박한 게임에 참여하게 된 경찰. 허술한 주취자로 생각했던 남자가 "하지만 폭발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 될 것 없지 않나요?" 하며 싱글벙글거리고, 사건의 전모가 예상을 가히 뛰어넘는다는 것이 밝혀지며 취조실에는 오싹함이 감돈다. 이들은 폭발을 막을 수 있을까. (출판사 제공 줄거리 인용)

<<도덕의 시간>>, <<스완>>의 작가 오승호의 따끈따끈한 신작. 작년 거의 모든 일본내 추리, 미스터리 랭킹을 휩쓸었던 화제작이었지요. 천재 범인과 경찰의 대결을 독특하게 변주한 점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제가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빼어난 덕분일 겁니다. 
별볼일 없는 사고뭉치 노숙자로 보였던 스즈키가 폭탄 테러의 핵심 인물로 드러나는 도입부부터 굉장히 흥미로우며, 스즈키가 경찰에게 심문을 받으며 내 놓는 퀴즈(?)는 대부분 말장난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고, 설명도 그럴듯합니다. 전설의 동물 구단 이야기로 지역은 '구단시타', '신의 말씀과 회문, 그리고 탁점'이라는 힌트로 '신문지'를 떠올리게 해서 구단시타의 조간신문을 배달하는 곳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정답을 이끌어내는 식으로요.
스즈키와 진범 다쓰미 일당과의 연결 고리를 더듬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에요. 스즈키가 일부러 남긴 핸드폰이라는 단서와 도도로키 형사의 심문 중 나온 하세베 유코의 이름을 통해 가족들을 찾게되는 수사 모두 다쓰미의 마지막 거주지로 연결되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습니다. 다쓰미 시체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한 것도 단순히 경찰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쓰미의 사인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목적이었다는 것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스즈키의 퀴즈로 역을 알아낼 수 없었던건, 그도 어떤 역에 폭탄이 설치되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스즈키는 다쓰미 일당이 아니었고 진범임을 자처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는 반전도요. 다쓰미의 모친 아스카가 아들의 테러를 알고 살해한 뒤 스즈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도 셰어 하우스에 다쓰미가 데려왔던 네 번째 인물, 그리고 스즈키가 노숙자 시절 알고 지냈던 신참 노숙자, 스즈키의 드래곤즈 모자 등으로 차분히 단서와 복선을 설계하여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진범 다쓰미 일당이 계획했던 폭탄 테러 방법도 기발했습니다. 일당 중 한 명인 야마와키의 주류 배달업이라는 직업을 활용하여 음료수 형태로 가공한 폭탄을 자판기 안에 넣었다는데, 이래서야 경찰의 수색으로 찾아내지 못한건 당연하겠지요. 결국 정해진 시간이 되어 순환선 야마노테선의 주요 역들이 차례대로 폭발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요. 이건 영상화되면 꼭 한 번 보고 싶을 정도에요.

아울러 오승호 작품답게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도 좋았습니다. 단순한 사회파 범죄물처럼 특정 이슈에 대한 범죄를 등장시키는건 아니고, 주로 스즈키의 입을 통해 누군가 폭발로 죽을 때 내가 슬퍼해야 하는가? 인간의 생명은 과연 평등한가? 동료가 아닌 적의 목숨은 없애도 괜찮지 않나? 이 세상은 정말 살 가치가 있는가? 이런 세상은 모두 망해버려야 하지 않는가? 등 작가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여러가지 문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합니다. 덕분에 스즈키의 캐릭터성도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천재 범죄자이자,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있을 '조커'가 배 나오고 머리에 땜통까지 있는, 자기비하에 능숙한 노숙자 출신 아저씨라니! 다시 보기 힘든 빌런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작가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듯한 메시지가 과잉인 탓입니다. 다쓰미가 가족이 무너진 것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테러를 저지른다는 동기는 명확하고 설정도 참신했지만, 그 뒤 스즈키가 테러를 떠안는 동기도 잘 설명되지 못해서, 메시지 전달도 공허합니다. 다쓰미가 직접 별거 아닌 일로 가족을 붕괴시킨 일본 사회에 복수하겠다는 메시지를 외쳤다면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애초에 남편과 아버지가 변태였다는게 사회적으로 가족이 모두 매장당할 일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범행 현장에서 자위 행위를 한 건 피해자들 입장에서 분통이 터질 행위인건 맞지만, 법률적으로는 죄라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거주지만 옮겨도 가족들의 생활이 무너질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억울했을 다쓰미에 비하면, 스즈키의 메시지는 사회 부적응자의 개인 주장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또 노숙자에 불과한 스즈키가 어떻게 고도의 심리 - 정보전을 엘리트 경찰들과 대등하게 벌이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유너바머' 정도의 배경은 있어야 할 인물 같은데, 노숙자라는 '현재'만 보여주다보니 그런 부분에서 설득력이 많이 부족해져 버렸네요.

그래도 스즈키는 독특한 매력을 뿜뿜해서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역으로서의 자리매김은 확실히 하고 있는 반면, 상대역인 경찰쪽 인물들의 매력은 부족하다 못해 없다시피 합니다. 도도로키 형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스타일이라서, 루이케는 정의와 사명감보다는 스즈키와의 게임에 심취해서, 기요미야는 심약하고 정서가 불안해서 스즈키에게 농락만 당하는 탓에 모두 맞상대로서의 격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때문에 스즈키와 1:1로 대결을 펼치는 재미를 전혀 주지 못합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 중요한 팽팽한 대결의 긴장감도 없다시피하고요. 마지막에 야마노테 선 폭탄 테러를 막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싶을 정도였어요. 
그 외에도 친구의 부상으로 폭주하는 순경 사라, 자리를 지키는데에만 급급한 쓰루쿠 등도 그야말로 뻔하디 뻔한 스테레오 타입이라 지루했습니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범죄로 다쓰미 가족 모두가 무너져 버린다는 것 같이 다른 작품에서 보아왔던 설정도 많습니다. 천재 범죄자와 경찰과의 두뇌 게임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가치관에 맞는 행동을 고집하여 조직 내에서 고립된다던가 (도도로키 형사) 하는 이야기는 질릴 정도로 많이 봤습니다. 잇달아 일어나는 범죄 탓에 일반 시민들이 경찰서로 몰려드는 묘사도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등에서 이미 써먹었던 것이고요.
 
변태 남편 탓에 이미 지옥을 맛 보았던 아스카가 또 고통을 겪고야 마는 결말, 에필로그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쓰미가 폭탄 탓에 산산조각이 나기 전 살해당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스즈키를 죽일 의도로 경찰서로 찾아오기는 했지만 폭탄도 없었고, 살의를 증명할 방법도 사라의 증언 말고는 딱히 없어 보이고요. 그녀를 어떻게 재판에 회부할 수 있을까요?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알겠지만 제게는 좀 애매했습니다.

2023/05/27

당신의 과녁 - 고태호 : 별점 2점

당신의 과녁 5 - 4점
고태호 지음/3rdpost(써드포스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스무살 청년 최엽은 연쇄 살인범 석규남의 함정에 빠져 누명을 쓴 뒤,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다행히 석규남이 노환으로 죽고, 남은 가족들이 발견한 증거를 제출한 덕분에 17년 후 풀려났다. 
그러나 17년 만에 돌아온 세상은 지옥과 같았다. 연인은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가족은 생업을 잃고 갖은 욕을 먹었으며, 어머니는 무죄를 탄원하는 거리 시위를 하다가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였다. 이에 최엽은 연쇄 살인마의 손녀를 납치해 자기와 똑같이 17년간 감금하기로 결심했다.
죄책감으로 최엽의 협력자가 된 경찰과 당시 기자, 그리고 여동생과 절친 3인방은 최엽의 계획을 알고나서, 17년 감금할 시설 공사를 한다는 핑계로 최엽과 주말마다 어울렸다. 사회의 따뜻함, 가족의 온정 등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엽은 석규남의 손자 - 납치 대상의 남동생 - 으로부터 자기가 무죄라는걸 알고도 그 가족들이 증거 제출을 10년이나 미루었다는걸 알고난 뒤, 납치를 결행했다. 그러나 납치 대상이 여성 연쇄 납치범 일당에 납치당하는걸 목격한 최엽과 일행들은 납치범들을 뒤쫓아 결국 그들을 체포하고 납치 대상을 구해냈다....


간략한 줄거리 소개만 보고 혹해서 보게 된 웹툰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최엽의 심리 묘사입니다. 뎃셍력이 별로라 인물 형태가 계속 깨지며, 모든 묘사에서의 디테일이 부족해서 작화는 등 좋은 편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미묘한 심리 묘사는 놀라울정도로 탁월했습니다. 최엽이 분노하는 장면은 묘사의 달인 윤태호의 <<야후>>를 보는 듯한 섬찟함마저 느껴졌으니까요.
만화의 컷 구성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도 돋보입니다. 엣 연인을 다시 만나 각자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게 마지막 컷에서 드러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기대했던 복수극으로는 뜨뜻미지근한 탓입니다. 최엽의 복수 외길 전개가 아니라, 최엽이 친구들을 만나 다시 흉금을 터 놓게 되는 과정처럼 주변 인물들과 관계 복원을 이루는 출소자의 사회 적응기, 주변 인물들과 여러가지 즐거운 추억을 쌓는 일종의 일상 시트콤, 거기에 연쇄 부녀자 납치범들과 대결하는 액션 추적극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곁가지 이야기들이 비중만 놓고 보면 복수 자체보다 더 커요.
게다가 복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납치하려던 여자를 도리어 구해주게 된 뒤, 최엽이 복수를 포기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더 큰 악을 만나서 그들을 물리치고나니 모든게 허탈해졌다는 건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더 이상 위험에 빠트릴 수 없었던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이 과정에서 석규남 가족의 진심어린 사죄도 없고요.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한 뒤 식물인간이 되었던 어머니가 깨어난다는 말도 안되는 해피엔딩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너무 뜬금없었어요. 최엽이 겪은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이 정도는 줘야지!라는 작가의 의도일까요? 이런 애매한 해피엔딩보다는 차라리 화끈한 복수가 더 맞는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엽 캐릭터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0cn가 넘는 거구의 근육질로 묘사되는데, 딱히 대단한 전투력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두뇌가 비상한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라서 강력 범죄를 계획하는 인물로의 설득력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맨몸 운동을 조금 한 정도로 세상과 맞서 싸우기는 어렵지요. 경찰과 기자라는 조력자, 그리고 죄책감을 느낀 검사의 유산 - 납치범을 가둘 일종의 별장 - 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흥미진진한 전개를 위해서는 최엽이라는 인물에게도 보다 설득력을 부여했어야 했습니다.
납치 계획도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만약 납치에 성공했었더라도 체포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납치가 핵심인 범죄물이 아무리 아니더라도,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기대했던 복수극이나 범죄 스릴러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더 글로리>> 류의 화끈한 복수극을 기대하고 보신다면 실망하실겁니다.

2022/12/17

밤에 걷다 - 존 딕슨 카 / 임경아 : 별점 2점

 

밤에 걷다 - 4점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리 경시청 총감 방코랭은 스포츠 스타 살리니 공작으로부터 신변 보호 요청을 받았다. 아내 루이즈의 전남편 로랑이 협박 편지를 보낸 탓이었다. 로랑은 정신병으로 입원했다가 의사를 죽이고, 성형 수술을 한 뒤 도주 중인 위험인물이었다.
공작 부부를 만나러 페넬리의 가게에 방문한 방코랭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한 밀실에서 목이 잘린채 살해된 공작의 시체를 발견했다. 뒤이어 유력한 용의자였던 공작의 친구 보트렐르도 목이 베여 살해되고 말았다.
로랑은 어떻게 유럽 대륙을 건너 밀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사라졌을까?


존 딕슨 카의 앙리 방코랭 시리즈 장편. 데뷰작이기도 합니다. 괴이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그리고 정신병자 살인마가 괴이한 상황에서 사람 목을 베어 죽이는 간담 서늘한 묘사들은 고딕 호러물 느낌도 전해줍니다. 같은 시리즈인 <<해골성>>과 비슷하게요.

추리적으로는 밀실의 제왕 존 딕슨 카다운 밀실 살인 사건이 서두부터 등장하여 눈길을 잡아끕니다. 펠리니의 가게 3층의 방은 앞, 뒷문 모두 감시가 확실했고 (심지어 문 하나는 방코랭이 직접 감시!), 창 밖으로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으며 비밀 통로도 일체 없었던 완벽한 밀실이었고,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도 완벽했거든요. 트릭이 무엇이었을지 아주 궁금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지명수배범인 로랑이 국경을 건넌 방법에 사용된 트릭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륙에서 공작을 살해한 뒤, 공작으로 변장하고 국경을 건넌 것으로, 간단해서 현실적일 뿐 아니라 단서들 제공이 아주 공정했던 덕분입니다. 유럽 대륙을 갔다온 이후 공작이 180도 변했다는 증언과 단서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거든요. 공작이 마약 중독자였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초반부 공작의 짐은 국경에서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와 연결하여 '공작이 마약 밀수를 했다'는 식으로 독자를 이끌지만, 알고보니 스포츠맨 공작은 마약 중독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단서였지요.
탐정으로서 매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방코랭의 추리법에 대한 소개 등도 추리 애호가로서 볼 만 했습니다. 지식이나 경험없이 타고난 통찰력만으로 수사관이 될 수 없다며, 과학 수사 기법을 비롯하여 분석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일갈하는데, 시대를 앞서간 생각이었어요.

벨 에포크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는 배경 설정도 볼거리였습니다.. 공작 등 귀족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며 마약을 빨면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데, 자동차를 타고다니고 전기불이 존재하는 이색적인 세계의 풍광이 잘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분명 존재했던 과거인데 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라서 이런 곳이라면 명탐정과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이 있어도 자연스러울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제 강점기 당시, '마굴'이라 불렸던 상하이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딕슨 카의 다른 걸작들에 비하면 많이 처집니다.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너무 커요. 밀실 트릭부터가 알고보면 별게 아니었거든요. 설명도 부족했고요. 공작 (으로 변장했던 로랑)은 이미 11시경에 부인에게 살해당했고, 11시 30분에 목격된 공작은 보틀레르의 변장(?)이었다는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문제는 카드룸 입구를 지켜보는 경찰 눈에 뜨이지 않고 흡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카드룸 문은 벽 때문에 홀에 서 있는 그 누구라도 문을 볼 수 없었다나요. 그렇다면 이건 밀실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런걸 현장에 있었던 명탐정 방코랭이 몰랐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게다가 이 중요한 사실이 독자에게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맨 첫 장에서 약도가 제공되기는 하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보틀레르가 아무런 변장도 하지 않고 로랑처럼 보였던 이유, 루이즈 부인 몸에 반드시 튀었을 핏자욱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설명되지 못한 점도 너무 많습니다. 보틀레르가 가발이라도 썼더라면 모를까, 여러모로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처음에 등장해서 살해당했던 살리니 공작은 변장한 로랑이었다는 트릭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나고 얼굴이 닮았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아니고, 이 당시 성형수술 수준은 별볼일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옛 친구야 안 만났다쳐도, 공작 가문의 오래된 변호사 키라르의 눈까지 속였다는건 지나쳤어요.
또 변장에 성공했는데, 자기 자신을 협박하는 편지를 써서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한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경찰과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것 같지도 않고, 그나마 생각해 볼만한건 자기 과시지만 그걸 위해서는 잃는게 너무 많아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방코랭의 추리대로 루이즈 부인을 살해하고 도주할 생각이었다면, 경찰을 부를 이유는 없었어요.

루이즈 부인의 자백만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그닥이었습니다. 첫 번째 범행은 그렇다쳐도, 보틀레르를 살해할 때의 증거는 이미 방코랭이 차고 넘치게 모은 것으로 보여서, 구태여 자백은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남자들에게 농락당한 기구한 인생이라는게 잘 그려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용한 남자들을 깔끔하게 살해한 팜므 파탈로 보기에는 범행이 허술해서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게다가 루이즈 부인이 모든 트릭과 살해 방법을 스스로 말하는 탓에, 방코랭은 별로 하는게 없다는 문제도 큽니다. 모든 트릭을 알아챘다고는 하지만, 정작 하는거라고는 루이즈 부인의 자백에 추임새를 넣는 것 밖에 없어서 이게 과연 명탐정인가 싶더라고요. 물론 진짜 공작의 시체를 발견하고, 루이즈 부인이 진범이라는걸 알아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명탐정이라면 마지막 루이즈 부인 자백에서도 뭔가 존재감을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런 점이 방코랭을 다른 딕슨 카의 명탐정들만큼이나 기억에 남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네요.
화자인 미국인 제프 역시, '사랑꾼' 으로의 모습 말고는 아무런 활약을 보이지 못해서 인상이 흐릿한건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절판된지 오래인데,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번역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독성도 떨어지는 편이고요.
오래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봅니다. 제가 읽었던 딕슨 카 작품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2022/10/15

이별의 수법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5점

이별의 수법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근무하던 탐정사무소가 폐업한 탓에 빈둥거리다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하무라 아키라. 위험한 구석이라곤 없는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녀의 불행은 멈추지 않는다. 뇌진탕과 갈비뼈 골절, 폐 손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말기 암으로 입원해 있던 왕년의 스타 배우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얄궂게도 그녀는 하무라 아키라에게 20년 전 가출한 자신의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하무라는 실종 직후 딸의 행방을 좇았던 탐정을 찾아가지만, 그 탐정 또한 20년 전에 실종되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의뢰인의 6촌 조카는 교살당했으며, 의뢰인의 집에서 일했던 두 명의 가정부의 행방마저 묘연하다. 왕년의 배우를 둘러싼,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잦은 살인과 실종 사건들. 20년 전 실종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들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탐정은 왜 사라졌을까? 하무라 아키라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오래된 비밀과 마주한다. (출판사 제공 소개)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장편. '살인곰 서점' 시리즈가 국내에 출간된지는 꽤 되었는데, 이 작품이 살인곰 서점 시리즈 중에서는 첫 작품입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시리즈 연착륙을 노리고 단편집부터 발간했던게 이유였다는데, 독자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 처사입니다.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답게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별 것 아닌 의뢰로 보였는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의외의 사건으로 발전해 나가며 그 와중에 거친 (?) 액션이 폭발한다는 이야기거든요. 일반인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속 이야기가 많았던 다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와는 다르게 정통, 본토 (?) 하드보일드 냄새를 물씬 풍긴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과거 유명 여배우이자 유력 정치인의 접대부 (?)였던 의뢰인, 의뢰 대상인 실종된 여배우의 딸은 유력 정치인의 손녀 + 강간 피해자 + 연쇄 살인범, 딸이 저지른 연쇄 살인의 끝은 어머니 살해라는 내용이니까요. 스케일은 본토 못지 않아요. 제목부터가 <<기나긴 이별>>스러웠는데, 알맹이도 만만치 않았던거지요.

다행히 이런 스케일 크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잘 그려내고는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와 그녀가 조사하는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잘 묘사된 덕입니다. 전개도 매끄러우며 하무라 아키라의 조사 과정도 아주 현실적이에요. 경찰이 아닌 일반인 탐정이 가능했을 조사의 최고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남다른 하무라의 눈썰미와 추리력은 여전하고, 사소한 단서들로 진상이 드러나는 구조도 잘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 사건 외에 함께 진행되는 사건들의 완성도도 높아요.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계기가 되었던, 백골 발견 사건처럼요. 살아있는 줄 알았던 아내 에이코가 알고 보니 변장한 남편이었고 백골이 에이코였다는 트릭인데 꽤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탐정 이와고 사건의 진상도 설득력 높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장편 속에서 지나가는 사건으로 등장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했을,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하무라 아키라 2기 살인곰 서점 시리즈의 막을 여는 작품답게 백곰 탐정사 설립 유래도 등장하고,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 등 팬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읽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2016년 발표 당시 이런저런 리스트에서 베스트 10 안에 포함된건 -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0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6위 등 - 당연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전개 중간중간마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눈에 걸리는 탓입니다. 우선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딸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 부터가 억지입니다. 과거 시오리가 사라졌던건 후부키가 시오리의 살인 행각을 알고난 뒤 시오리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후부키는 시오리가 죽었고,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가 사체를 처리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녀 주변에 시오리를 닮은 누군가 (알고보니 진짜였지만)가 출몰했기 때문에 그 진상을 알기 위해 사건을 의뢰했다는데, 이건 말도 안됩니다. 20년 전에 시오리를 처리했다는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는 건재했으니까요. 그냥 야마모토에게 연락해서 진상을 알아보면 될 일이었어요!
야마모토가 시오리와 관계를 가진 탓에 미안해서 연락을 못 받았다는 묘사가 있지만, 그랬다면 의뢰는 비서를 찾아달라는걸로 족합니다.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면, 탐정의 조사를 통해 과거의 연쇄 살인이 드러날지도 모르잖아요. 20년 전 처럼 시오리 친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실제로 하무라는 시오리의 부친이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그녀가 사라진 이유 등 모든 진상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억지스러운 의뢰였습니다.

시오리의 연쇄 살인도 하무라의 조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급작스러울 뿐더러 비현실적인 사건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이건 시오리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그녀의 캐릭터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탓입니다. 고등학교 때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과거 언급이 전부인데, 이 아픈 기억이 연쇄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전혀 설명되지 않고, 범행에 대한 묘사도 전무하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야마모토의 여동생 유코는 그녀가 시오리를 도발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는데,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는 대체 왜 죽인건지도 모르겠어요.
후부키가 시오리의 최종 목표였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럴거라면 과거에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를 살해했을 때 같이 죽이려 했어야지요. 또 시오리가 입원 중이었던 병원을 몰래 빠져나온지도 3주 정도 지났다고 설명되는데, 왜 주위만 맴돌고 진작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뚱뚱한 시오리가 후부키를 덥치고, 그걸 막는 하무라와의 사투는 지나칠정도로 전형적이면서 크리쳐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고요.
매니저 야마모토의 복수 - 성폭행을 저질러 시오리를 연쇄 살인마로 만든 안자이에 대한 - 도 뜬금없었고, 20년 전 1990년대에 이렇게 많은 죽음이 제대로 조사되지 못한 이유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단순 실종이나 자연사로 위장한 이모 할머니 사건이야 그렇다쳐도 명확한 살인 사건이었던 하나 사건, 유코 사건은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을텐데 그 경과는 대충 넘어갑니다.

또 곁가지 사건 중 친구인 줄 알았던 악녀 마미가 얽힌 사건은 비중은 제일 큰 반면 내용은 별게 없어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벤트를 가장한 불법 카지노 운영 방식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순진한 사기 피해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무라를 속여넘긴 프로 범죄자이자 일종의 생활밀착형 사이코패스 마미 묘사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 계속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의 확장형이기도 한데, 이후 시리즈가 생활밀착형으로 방향을 전환하게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만큼은 분명합니다. 단점을 잔뜩 언급하기는 했지만 읽는 동안에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나쁜 토끼>>의 비현실적인 세계관에서 생활밀착형 하드보일드인 살인곰 서점 시리즈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작가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10/02

미로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권일영 : 별점 3점

미로관의 살인 - 6점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한즈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는 환갑을 맞아 자신의 저택 '미로관'에 제자 작가 4명과 평론가, 담당 편집자, 친한 추리소설 애호가를 초대했다. 그리고 미로관에 모인 그들에게 미야가키의 비서 이노 미쓰오가 요타로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함께 공개된 유언장에는 4명의 제자 중 한 명에게 거액의 유산을 줄 생각인데, 그 한 명은 앞으로 닷새 동안 미로관에서 그들이 각각 쓴 추리 소설을 함께 참석한 편집자, 평론가, 애호가들의 심사로 결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람이 죽기는 했지만, 워낙 거액이 걸려있는 탓에 작가들과 심사 위원들은 요타로의 유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작가 중 한 명인 스자키가 살해당했으며 나머지 생존자들 모두는 미로관에 갇혔다는걸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사라진건 비서 이노였다. 작가 중 한 명인 기요무라는 이노가 범인이라며, 유언에 따른 추리 소설 창작 대결을 속행할 것을 주장하는데....


신본격의 탄생을 알렸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일본에서는 1988년에 출간되었던 작품이지요.
사실 이 작품은 나름대로는 비교적 빠르게 국내에 소개되었던 편입니다. 1997년에 학산 문화사에서 정식 출간되었었으니까요. 하지만 절판은 더 빨랐었습니다. 이유는 인터넷이 발달했던 시대가 아니어서 정보가 전달되고 소개되는게 많이 늦었던 탓입니다. 저 역시 추리 소설 애호가를 자처하고 있었지만 이 시리즈가 출간되었던 것 조차 잘 알지 못했던, 그런 시대였거든요. 인터넷 서점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절판 이후 인기가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이지요. 덕분에 중고책 가격도 꽤나 올라가게 되었었고요. 그러고보면 이러한 프로세스 '1. 국내 출간 -> 2. 광속 절판 -> 3. 인터넷 등으로 유명세, 가치 상승 -> 4. 중고가 상승'을 거친 책들이 1990년대 후반에 꽤 많았었습니다. <<점성술 살인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래도 저는 절판 직후 연이 닿아서, 2000년대 초반에 <<십각관>>, <<수차관>>, <<시계관>>, 그리고 <<인형관>>을 구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도 대체로 기억나고요. 그런데<<미로관의 살인>> 만큼은 이상하게도 내용이 전혀 기억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러던 차, 추리 소설 관련 정보를 조사하다가 한 랭킹에서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이 빼어난 작품으로 <<미로관의 살인>을 꼽고 있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도 생겼고, 오래된 숙제를 마치는 기분도 느낄 겸 해서 알라딘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 오래 전에 읽지 않았던 작품이 맞더군요. 모든 내용이 새로왔기 때문입니다. 당초에 왜 읽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사람의 기억이라는게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각설하고 작품에 대해 소개해드리자면, 이야기는 '시마다'가 시시야 가도미라는 작가의 <<미로관의 살인>>을 선물받아 읽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미로관의 살인>>이라는 소설 속 소설이 곧바로 이어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로관의 살인>>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미로관'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고요. 시마다 기요시가 다른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탐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로관의 주인이자 추리 소설계의 거장인 미야가키 요타로가 자살하면서, 4명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에게 유산을 넘겨줄 생각으로 그들을 미로관에 불러 모았다는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잡아 끕니다. 이들을 닷새 동안 미로관에 가두고 작품을 쓰게한 뒤, 같이 초대했던 평론가와 편집자,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심사 위원 역할을 맡길 셈이었다는 계획은 꽤 그럴싸해 보였거든요. 뛰어난 신진기예 작가들의 실력을 극한으로, 하지만 공정하게 뽑아내기 위해서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테니까요. 물론 공정함을 위해 현장에서 동일한 주제 - 무대는 미로관이며 피해자는 작가 본인으로 할 것 - 를 주기는 했지만, 작가 중 누구라도 자기가 쓰려고 했던 다른 작품에서의 획기적 트릭을 유용할 수 있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 실제로 다이잉 메시지를 쓰려고 했던 작가가 있었는데, 이는 장소와 피해자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트릭이니까요 - 아주 공정했다고 보기는 힘들긴 하지만요.
이후 4명의 제자들이 각자 작업했던 작품에서처럼 살해당한다는 전개도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피해자들이 살해당한 현장 등 여러가지 단서들과 정보들 모두가 화자격인 우타야마를 통해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진상 역시 합리적이고요.
조금 상세히 설명드리자면, 가장 처음 살해당했던 스자키는 목이 거의 떨어져 나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목 부분에는 소 머리 박제가 놓여 있었고요. 하지만 왜 머리를 아예 잘라 놓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박제 머리를 올려놓지 않고 이렇게 어중간하게 현장을 만들었을까요?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는 범인이 현장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를 피로 덮기 위해서 목을 잘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사실로 판명되고요.
마찬가지로 하야시는 입구에 바리케이트까지 쳐 놓았을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었는데, 왜 범인은 쉽게 방 안으로 들여 보냈는지? 후나오카가 살해당한 방은 빗장까지 걸린 완벽한 밀실 상태였는데 범인은 어떻게 도주한 것인지? 에 대한 답은, 미로관의 각 방은 비밀 통로가 있었다는 추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야시가 남겼던 다이잉 메시지, 후나오카가 죽기 직전 거울을 가리켰던 행위로 비밀 통로의 존재는 밝혀지고, 이로써 진범은 죽은 줄 알았던 미야가키 요타로였다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는 살인이 하고 싶어서 4명의 제자를 죽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방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지요.
이렇게 기묘한 현장 조작과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 등이 함께 펼쳐져 추리의 여지가 많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다면, 이 작품이 그렇게까지 추리적으로, 그리고 반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워드프로세서의 키보드 배치 문제, S가 하나 더 표기된 MINOSS 왕의 철자, 지속적으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축물은 특별한 장치가 있다며 시마다 기요시가 비밀 통로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는 등 다이잉 메시지와 비밀 통로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이 주어지고 있어서 아주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비밀 통로'는 트릭으로서는 반칙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반칙이라고 언급될 정도지요.
기요무라를 살해한 트릭을 제외하고는 '미로관'이라는 말 그대로 미로를 이용한 트릭이 부족한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부분입니다. 기요무라 살해 트릭도 우타야마의 입을 통해 '통로에서의 위화감'이 계속 언급되고 있어서 특별히 대단한 추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요. 아울러 기요무라가 가면이 아니라 평면도를 통해 이동해서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 등 상세한 내용 설명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과 또다른 진상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작품 전체에서 당연히 남자인줄 알았던 사메지마가 여자였다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던 겁니다! 이로써 스자키의 목을 잘랐던건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가 맞았다는게 판명됩니다. 당시 현장에서 그 누구도 출혈을 일으킬만한 상처가 없어서 범인을 알아내지 못했었는데, 사메지마가 갑자기 생리가 터졌던게 출혈의 원인이라는게 밝혀지거든요. 그녀와 미야가키의 오래된 인연, 장애가 있는 그녀의 아이 등 사건의 동기 역시 모두 공정하게 설명되고 있고요. 자살을 위장해서 미야가키 요타로만 살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유산의 전부나 일부가 미야가키 요타로가 만들려고 했던 추리상 기금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 그를 살인범으로 몰아 죽게 만들었다는건 충분히 합리적이었습니다. 연쇄 살인마가 만든 추리상을 받고 싶은 작가는 없을테니까요. 액자 소설 형태를 취했던 이유도 알고보니 이 서술 트릭을 위해서였는데,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고 있어서 완성도도 높고요.
서술 트릭물답게 성별은 물론, 여성이라고 짐작 가능하게끔 사메지마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등 알고보면 억지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만 합니다. 이는 에필로그의 대화를 통해 '일부러 그렇게 썼다'는 작가의 말로 재치있게 빠져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사건의 무대인 미로관과 사람이 죽어나가는 중에 벌어지는 추리 소설 창작 대결 등 비현실적인 소재가 많다는 등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라나 신본격의 중흥을 이끌었던 작가의 당시 대표작다운 재미는 충분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기본 이상은 해 주며 그리 길지 않다는 미덕도 크고요.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09/25

살인자의 사랑법 - 마이크 오머 / 김지선 : 별점 2점

살인자의 사랑법 - 4점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이는 20년 전, 자기 동네에서 벌어졌던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이웃 글로버라는걸 알았지만 그가 도망가는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만보았던 과거 탓에 프로파일러가 되었다. 그러나 글로버는 그녀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며 회색 타이를 보내는 방식으로 자기의 존재를 계속 어필해 왔다.
그리고 현재, 시카고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돕기 위해 조이는 FBI요원 테이텀과 함께 수사팀에 합류했다. 언론에서 '목조르는 장의사'라 부르는 살인범은 살해한 여자들을 방부처리하여 시내에 유기하고 있었다. 조이는 프로파일링과 수사를 진행하면서, 사건의 범인이 20년 전 사건의 범인 글로버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시체를 가지고 장난치는 연쇄 살인마와 프로파일러, FBI 요원 컴비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작품. <<살인자의 기억법>>과 비슷한 제목 때문에 영 손이 가지 않았던 작품인데, 읽어보니 생각보다는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적으로 꽤 괜찮았던 부분이 많았던 덕분이지요.
우선 연쇄 살인마인 '목조르는 장의사'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초반에 방부처리된 사체를 보고 가짜 프로파일러가 범인은 전문 장의사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체의 발목 부분이 부패했다는걸 조이가 간파하고 범인은 이러한 사체 처리에 익숙하지 않은 초짜라는걸 밝혀내는 첫 장면부터 그럴듯했어요.
연쇄 살인의 패턴을 파악하여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는 과정도 여타 연쇄 살인물과 비슷하지만 추리의 여지는 많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들의 키가 전부 달랐는데, 딱 맞는 옷을 입고 있었던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범인은 살해 전에 피해자들에게 옷을 사 입혔던 겁니다! 첫 희생자 집 배관이 자주 역류했다던가, 납치되었던 피해자가 범인에 대해 재갈이 물린채 했던 말 등을 통해 범인이 배관공이라는걸 드러내는 식으로 단서 제공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고요.

범인이 여성들을 방부처리한 이유와 유기한 시체들이 전부 우는 듯한 표정이었던 이유를 범인이 오랫동안 함께 한 '연인'을 꿈꿨고, 그녀와 헤어지게 되자 사체들이 슬퍼하는 것 처럼 연출했다는 황당무계한 추리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그냥 범인의 광기 묘사에 집증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교적 객관적인 서술이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광기어리고 비참했던 유년 시절의 끔찍했던 학대가 원인이었다는건 다소 뻔했습니다만, 도화선이 된 사건은 동기로서는 충분하다 생각될 정도로 잘 그려져 있거든요.
아직 살아있는 피해자 목에 칼을 대고 협박하던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조이가 범인의 판타지를 활용하여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범인 앞에서 옷을 벗으며, 팬티에 감춘 권총을 테이텀이 잡게 만드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영화화하면 괜찮았겠다 싶더라고요.
현재의 사건과 병행 진행되는 20년 전 과거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글로버가 진범이란걸 확신한 뒤, 그의 집에 몰래 잠입해서 증거를 뒤지다가 글로버와 마주치는 장면, 글로버가 조이의 집에 쳐들어와서 자매를 협박하는 장면은 굉장한 서스펜스를 안겨줍니다. 21세기 작품다운 속도감있는 전개 역시 좋았어요

그러나 워낙 뻔한 설정이라 비슷한 작품과의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고, 캐릭터가 진부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프로파일러 조이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공포스러운 기억, 그에 따른 불면증, 감정적이면서 도전적인 말투와 행동 등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여성 수사관 캐릭터와 별다를게 없거든요. <<양들의 침묵>>의 클라리스가 바로 떠오를 정도었어요. 그나마 조이에게는 여동생 안드레아, 그레이에게는 여든 살 넘은 할아버지 마빈이라는 가족이 굳건한 유대를 보여준다는건 좋았지만 , 이야기와 크게 관련이 있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편의에 따라 작위적으로 쓰여진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20년 전 사건 관련 내용에 특히 그러합니다. 우선 12살 중학생의 고발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시해버린 처사는 쉬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고발 직후 소녀들 집에 침입해서 협박하다가 도주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범인으로 몰려 자살했던 용의자 매니 앤더슨의 부모가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또 1996년이라는 시기는 그리 옛날도 아닙니다. 어느정도 법의학이 정립되어 있었을터라 분명 단서도 남아있었을텐데, 경찰이 매니 앤더슨에게만 촛점을 맞춘건 말이 안됩니다. 글로버의 철벽같았던 알리바이가 알고보니 매니 앤더슨을 옭아매기 위해 검시 보고서가 조작된 탓에 불과했다는건 솔직히 어이가 없더군요. 글로버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이야기니까요. 이를 테이텀이 짧은 시간 동안 밝혀냈다는 것도 당황스러웠어요.
또 현재의 시카고 사건에 갑작스럽게 글로버가 끼어드는건 전혀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글로버가 등장하는 속편을 강하게 암시하는 결말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설득력도 없어요. 조이가 동생 안드레아의 심층 트라우마를 일깨울까봐 글로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안드레아가 글로버를 알아보지 못하고 납치될 수도 있다는건데, 조이가 스토킹을 당했다면 안드레아도 글로버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건 당연합니다. 진작에 최대한 상세히 정보를 제공해 주었어야 했어요.
덜 떨어진 것 처럼 보였던 글로버가 20여년 동안 FBI의 자문역도 맡고 있는 전문가를 거리낌없이 스토킹하며, 나중에는 덮치는데 성공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과거의 알리바이도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충동적 범죄자에 불과하니까요. 게다가 조이가 습격당한건 대낮이었습니다. 미국의 치안이 이 정도로 엉망일까요?
납치되었던 피해자 전화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려는 시도 외에는 범인을 잡아낼 방법이 없어 보인다는 것도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범인이 범행을 저질렀던 거리까지 알아냈는데도 불구하고 범행 장소도 결국 특정하지 못하는 등, 시카고 경찰의 무능만 작품 전체에 걸쳐 도드라지고, 범인을 잡은건 오로지 조이의 프로파일링 덕분인데 이는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장점이 없지는 않지만 아주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힘드네요.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한 작품입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09/03

파기환송 - 마이클 코넬리 / 전행선 : 별점 1.5점

파기환송 - 4점
마이클 코넬리 지음, 전행선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방검사장 게이브리얼이 미키 할러에게 특별 검사 자리를 제안했다. 아동살해범으로 유죄 선고를 받고 20년 이상 수감되어 있었지만, 스스로 사법 투쟁을 벌여 파기 환송을 만들어낸 제이슨 제섭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 당시 발견되었던 정액이 DNA 분석 결과, 제이슨 제섭의 것이 아니었다는게 결정적 이유였다. 앞으로 60일 이내에 검찰은 그를 무죄 방면할지, 재심할지 결정해야 했다. 게이브리얼은 사건을 재심하기를 원했지만 특별 검사제를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미키 할러가 필요했다. 

전처 매기를 차석 검사로, 이복형 해리 보슈를 전담 수사관으로 임명하는 조건으로 사건을 받아들인 미키는 팀을 꾸렸고, 재판을 위해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한 끝에 세라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걸 알아챘다. 사건 당시 13살의 나이로 제섭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그녀는 현재 실종 상태였다. 해리 보슈는 수사를 통해 세라를 찾아냈고, 그녀를 증언대에 세우는데 성공하는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이후 이어지고 있는 마이클 코넬리미키 할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이전 작에서 언급되기는 했었지만, 미키 할러가 '특별 검사'로 변신하여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변호사 클라이브 로이스와 맞서 싸운다는 설정 변주가 독특했습니다. 전처인 검사 매기 맥퍼슨, 그리고 작가의 또 다른 인기 시리즈 주인공 해리 보슈와 함께 하는 '드림팀' 구성도 볼만했고요.

그러나 내용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제이슨 제섭 사건 재판은 분량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 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조사가 진행된 듯 하지만, 실상은 세라의 증언 - "제이슨 제섭이 동생을 납치한 바로 그 사람이다", "정액이 묻었던 옷은 원래 내 옷으로, 양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탓에 정액이 묻었었다." - 가 증거의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이를 뒤집기 위한 클라이브 로이스의 카드도 별볼일 없습니다. 세라의 전 남편인 에디 로만을 증언대에 세워, 당시 양부가 멜리사를 죽였으며 이를 숨기기 위해 세라에게 거짓 증언을 시킨 거라는걸 폭로하려 했는데, 이 시리즈 내내 반복되어 왔던, '검찰 측 거짓 증인' 이나 '교도소 내 밀고자' 를 통한 물 흐리기 작전과 똑같아서 식상했어요. 

게다가 미키 할러가 법정에서 에디 로만을 무너트리는건 전작들보다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에디 로만의 현재 동거인 소니아 레이예스를 법정 안에 데리고 들어온게 전부거든요. 그녀가 있거나 없거나 에디 로만의 증언이 바뀔 이유가 딱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에디가 그녀를 본 뒤 증언을 완벽하게 번복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클라이브 로이스의 작전은 배심원들에게 의심의 씨앗만 심으면 충분했는데, 이렇게 전적으로 증언을 번복할 이유 역시 없고요.

추리, 범죄, 스릴러물로도 기대 이하입니다. 멜리사 사건의 진범이 제섭이고, 초반 재판의 키 포인트로 보였던 정액이 양아버지 것이었던 이유는 세라가 성폭행 당했기 때문이라는 등 주요한 수수께끼 모두는 세라의 증언으로 밝혀지니까요. 세라는 제섭의 얼굴을 24년이 지났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양아버지 정액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추리의 여지는 전무합니다. 

다른 수수께끼들은 억지스럽기만 합니다. 제섭이 재판 전, 한 밤중에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따라 프랭클린 캐니언 등의 공원에 몰래 방문해서 촛불을 피운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수수께끼가 대표적이에요. 제섭은 연쇄 살인범으로 자기가 죽였던 피해자들이 묻혀있어서, 그걸 기념(?)하는 행동이었다고 주장하고, 이를 해리 보슈의 지인인 FBI 심리 분석관 레이철의 분석으로 설명하는데 이해하기 힘듭니다.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뒤, 자기의 실수를 깨닫고 피해자를 살해했던걸 어떻게 연쇄 살인과 연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동 살해범이 이전에도 범행을 저질러왔던 연쇄 살인마라는건 당황스러울 정도로 전형적이었을 뿐더러, 설령 그렇다쳐도 중요한 재판을 앞두고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수 있는 곳을 어슬렁거리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묻혀있는 시체를 제섭과 연결시킬 수 없으니 일단 묻고 가자는 미키 할러의 주장은 용납할 수도 없고요. 그게 제섭의 범행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종된 여자들과 그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동정심이 있다면 만사 젖혀두고 시체를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제섭이 해리 보슈의 집 앞에 머물렀던 이유, 은밀한 거처를 만들었던 이유 등도 딱히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전개도 시원치 않습니다. 우선 미키 팀이 피해자의 언니 세러를 찾아내서 인터뷰하는 부분이 작품의 1/3 정도 지점이라 그 이후 제섭 사건에 대한 흥미는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제섭이 진범이라는게 확실하니 당연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미키 팀이 에디 로만의 증언을 박살내 버린 후, 좌절한 제섭이 자기 변호사 팀과 감시하던 SIS 요원들을 사살하고 도주한다는 결말은 최악입니다. 법정물, 추리물 비스무레한 뭔가에서 헐리우드 액션물로 전락해버리는 탓입니다. 제섭이 도주 후 딱히 하는 것 없이 사살당하는 장면도 허무했고요. 복수를 노린 것도 아니고, 뭔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단지 숨어있으려고 했던 것 뿐이라 실망스럽습니다. 

아울러 중반부에서 엄청나게 치밀하고 복잡하다고 설명되었던 SIS 감시 시스템이 제섭의 도주로 별볼일 없이 무너져버리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미 제섭이 총을 손에 넣었다는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4명이나 제섭에게 살해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SIS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해리 보슈의 등장이라던가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은 나름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결말에서 제섭이 도주해서 사건을 키우지 않았다면, 배심원 중 한 명이 반대해서 - 심지어 미키 할러의 의도로 재판 초기에 바뀐 배심원 -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았다는 나름의 반전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단점이 훨씬 더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이 시리즈도 이제 더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