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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

콘돌의 6일 - 제임스 그레이디 / 윤철희 : 별점 2점

콘돌의 6일 - 4점
제임스 그레이디 지음, 윤철희 옮김/오픈하우스

말콤은 CIA 조직에서도 한직인 미국문학사협회에서 일하는 코드네임 '콘돌'인 정보원. 하루하루를 한가하고 무료하게 보내던 와중에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다른 동료들이 모두 몰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말콤은 '패닉 넘버'로 사건을 보고하지만 조직내 끄나풀이 이 기회에 말콤을 살해할 것을 계획하고, 말콤은 운 좋게 살아남아 도주하며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한다.

<<콘돌>>은 오래전 극장에서 감상했던 영화였습니다. 찾아보니 국내 개봉이 1989년이었더군요. 1975년 영화이니 국내 개봉은 무척 늦었죠. 14년 후에야 개봉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몰고온 작품은 아닌것 같은데 좀 희한하네요. 여튼, 한창 전성기였던 로버트 레드포드페이 더너웨이가 주연을 맡고, 거장은 아니더라도 몇몇 작품 (<<투씨>>, <<아웃 오브 아프리카>>)으로 영화사에 큰 자취를 남긴 시드니 폴락이 감독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정말 너무나도 재미있게 감상했었습니다. 그때까지 보아왔던 영화 중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했었죠. 어린 마음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흥미로왔던 첩보 스릴러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쪽 장르 영상물로는 역시 비슷한 시기 TV에서 감상했던 리처드 체임벌린 주연의 <<잃어버린 얼굴 (본아이덴티티)>>와 제 추억 속에서는 쌍벽을 이루는 작품입니다. <<아이거빙벽>>까지 해서 3대장이라 할 수 있죠.

서론이 길었군요. 이 책은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입니다. 원작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번역, 출간되니 너무 반갑네요. 오픈하우스에서 선보인 장르문학 시리즈인 '버티고'시리즈 중 한권입니다.

그런데 제 기억 속 영화에 비하면 소설의 완성도와 재미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영화는 경험치도 높지 않고 접해본 컨텐츠도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 감상한 것이라 과대포장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설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영화화된 인기작답게 아예 형편없지만은 않습니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다하다 이런 것 까지? 라는 생각이 드는, CIA 같지도 않은 독립적이고 한가한 정보 분석 부서 '미국문학사협회'에 대한 설정은 분명 독특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현장 요원이 아닌 말콤 (콘돌) 캐릭터도 타 첩보물과 차별화됩니다. 군인이나 경찰 출신도 아니고 석사 학위 필기 시험 때 <<돈키호테>>를 '네로 울프'에 비교하여 쓴 답안지 덕에 취직한 문학 전공자라니 정말 특별하죠.

미국문학사협회 직원들이 급작스러운 습격으로 몰살당하고, 숨겨진 뒷문으로 점심을 사러 갔던 말콤만 운 좋게 살아남은 후 목숨을 걸고 도망다니면서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다는 중반부까지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별다른 훈련도 받지않은 무늬만 정보요원인 말콤이 여러가지로 머리를 짜내어 도주하는 과정아 아주 그럴듯해서 설득력이 넘치고, CIA의 핵심 인물 중 한명인 '노인'과 케빈 파웰이 말콤을 찾아내기 위해 벌이는 수사의 디테일도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이라면 도주할 때에는 절대 이발소를 찾아가지 말라는 것. 결국 이발소를 통해 모든 행적이 드러나게 되거든요. <<아저씨>>의 원빈처럼 직접 자르는게 답인듯 싶네요.
아울러 이만한 이야기가 200페이지를 갓 넘는 분량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그러나 말콤이 웬디를 만나 은신하기 시작한 후 부터는 영 별로입니다. 모두 우연, 작위적 설정으로 점철되어있거든요. 애초에 웬디가 말콤의 말을 믿고 몸과 마음을 바쳐가며 도주를 돕는다는 설정부터 작위적이죠.
그래도 대부분의 헐리우드 스타일 도주극이 그러하니 여기까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워싱턴에 변장하고 다시 잠입한 말콤과 웬디가 '우연히' 마로닉을 만나게되어 총격전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 말콤이 마로닉과 함께 있던 동행의 차 번호판을 기억하여 주소를 알아내는 과정은 개연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CIA 내부의 흑막이 벌이는 행동치고는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것도 문제고요.
이후 저택에 숨어든 말콤이 사로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마로닉에 의해 살아남는다는 과정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로닉은 구태여 말콤을 살려줄 하등의 이유가 없죠. 딱히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진상이 무엇인지 악당 시점에서 상세하게 설명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장면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마지막에 악당 마로닉이 자기 입으로 진상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그 다음에 말콤이 공항까지 찾아가 마로닉을 사살한다는 결말도 뜬금없습니다. 진상이라도 대단하면 모를까, 마약 밀수 때문이라니 좀 허무하네요. 웬디가 죽지 않아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마지막 장면은 사족에 불과하고요.
영화의 디테일이 모두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허나 마지막 장면만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신문사를 찾아가 모든 것을 폭로한 '콘돌'과 정부요원이 대화를 끝낸 후 인쇄된 신문이 쌓이는 장면이었죠. 신문에 말콤이 이야기한 사건이 실렸을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 여운도 남기고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드는 멋진 결말이었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결말만큼은 소설은 영화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독특한 캐릭터만큼은 높이 삽니다. 그러나 그 외의 부분은 딱히 특기할 점이 없는 스파이 소설입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를 구하실 수 있다면 영화로 감상하는게 훨씬 나으실 겁니다.

댓글 2개:

  1. 영화판에서도 청부업자가 마지막 흑막을 쏴죽이는 장면은 뭥미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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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도 영화가 7만배는 뛰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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