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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4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 도진기 : 별점 2.5점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 6점 도진기 지음/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법정에 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변호사 고진은 남편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미모의 중년 여인 김명진 사건의 변론을 맡아 법정에 서게 된다.
김명진은 20년 전 죽은 남편 신창순, 그리고 남궁현, 임의재, 한연우 4인에게서 구애를 받았으나 장난스러운 내기 끝에 신창순과 결혼한 상태. 3인과 김명진의 동생 김해나는 그녀의 무죄를 믿고 적극적으로 도움에 나선다.


현직 판사이자 소설가로 한국의 존 그리샴이라 해도 무방할 도진기의 장편. 시리즈 캐릭터인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제가 읽었던 이전의 어둠의 변호사와 가장 큰 차이점은 '법정에 선 고진'의 활약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진 '법정 미스터리'물이라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무려 4차례에 걸친 재판을 통해 피고인을 유죄로 만드는데 정평이 난 실력자 조현철 검사와 불꽃튀는 대결을 벌입니다. 이 과정에서의 논리 정연한 논리로 서로 배심원을 설득하고, 재판을 유리하게 이끄는 배틀이 아주 볼만해요. 조현철 검사가 은근슬쩍 끼워넣었던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를 뒤집는 변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외의 말싸움도 현란하기 그지 없고요.
작가가 현직 판사이기에 쓸 수 있었던 묘사들, 디테일도 가득합니다. 국민 참여 재판에서 배심원을 선정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라던가, 재판 속행과 보석 신청 등 모든 상세한 설정들이 그러합니다. 이 정도면 해외 유수의 법정 미스터리물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만 하지 않나 싶을 정도에요.

법정에서의 대결이 주이기에 이전 다른 작품들처럼 수많은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만, 딱 한가지 등장하는 트릭의 아이디어도 괜찮은 편입니다. 신창순 살해에 사용된 것으로 알리바이를 만드는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인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체가 발견된 이유와 범인 임의재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무역업자라는 것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트릭 덕분에 "하우더닛" 물로서의 진가도 발휘됩니다. 결국 유럽에 있는 사람만 가능한 트릭이기에 범인이 임의재다!는 것인데 꽤 설득력 있었습니다.

지고지순한 일종의 순애보를 그리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끕니다. 6명의 청춘들이 처음 만나게 된 것이 격동의 1990년대라 더 와 닿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1990년대에 청춘을 보냈기에...
이 사랑의 중심에 놓여있는, 작가의 이상형을 투영해 놓은 듯한 김명진 캐릭터도 인상적입니다. 팜므파탈과 정 반대인, 순진무구한 천사같은 캐릭터를 잘 그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작중 한연우의 표현대로라면, 오디오 기기에 취미를 갖는 사람들에게 마크 레빈슨 같은 존재랄까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우선 작위적 장치들이 많이 거슬립니다. 너무 '소설'을 의식한 티가 물씬 났거든요.
우선 신창순이 아내를 학대하던 인간 쓰레기였다는 중요 정보를 너무 나중에나 밝히는 것이 그러합니다. 살인의 가장 큰 동기인데도 불구하고 변론을 맡은 변호사에게 그러한 정보를 숨긴다는 것은 말도 안돼죠.
임의재가 차용증을 가지고 김명진을 겁박하는 장면도 나중에 고진과 이우현의 인기척을 느끼고 쇼를 했다고 밝혀지지만 억지스러웠어요. 독자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 뿐, 현실적이지 않은 묘사였습니다.
그 외 많은 부분에서 작가가 한연우를 범인이라고 유도하는 것도 너무 빤히 들여다 보였고요.

트릭도 순간 이동 방법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디테일은 그닥입니다. 1주일에 걸친 운송기간 동안 사후 경직으로 뻣뻣해진 시체를 어떻게 무마했을지가 가장 큰 의문이에요.
게다가 상당한 재산가로 묘사되는 임의재가 직접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블라디보스톡 현지 조사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강도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고 언급되는데 누군가를 고용하는게 훨씬 쉽고 간편했을겁니다. 중국인들이 당한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처리되었을 확률도 높고요.

마지막으로 추리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동기가 설득력이 낮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아무리 사랑했다 하더라도 20년이 흘렀습니다. 과거가 다 잊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죠. <<백야행>> 시대에나 먹혔음직한, 자신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여자를 위한 순애보는 이미 철이 지난지 오래에요. 1990년대에나 먹혔을까요? 그나마 <<백야행>>은 현재진행형이기나 했지, 20년 후에도 그렇다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달리기 시합에 이어서 김명진이 술을 먹은 후 강제로 관계를 가진 탓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는 것도 영 와닿지 않더군요. 1990년대가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덧붙이자면 심장 판막증이 있는 임의재가 장거리에 도전할 만큼 김명진을 사랑했다는 것도 작위적이라 별로였어요.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와 닿지도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사랑했다면 중간에 포기하면 안되는거잖아요? 차라리 뛰다가 쓰러져 기절이라도 하던가....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조금은 시대 착오적인 순애보는 거슬리며 작위적인 요소가 많아 감점합니다. 그래도 미녀. 청춘,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고 법정 미스터리물로는 평균 이상은 하는 만큼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블라디보스톡과 한국을 오가는 스케일도 크고 법정물로는 충분히 드라마틱할 뿐 아니라 '김명진'이라는 미녀의 존재도 확실하니 영상화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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