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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30

큐이디 Q.E.D 47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큐이디 Q.E.D 47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큐이디 Q.E.D 5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아 이런 실수를... "큐이디. Q.E.D"를 완독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놓친 권이 있었습니다. 간만에 본가에 방문한 차에 빌려 읽고 리뷰 남깁니다.


"태양은 아직 높다" 

발리섬에서 일어난 기밀 연구 자료 도난 사건을 로키의 부탁으로 해결해 나가는 토마와 가나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용의자는 연구소장 기델 박사와 월터, 카를로스, 주디스라는 3명의 연구원, 그리고 기밀 자료 반출을 철저히 막고자 했던 NSA 요원 무티아라입니다. 이들 중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와이더닛 물이자, 어떻게 파일을 빼돌렸는지를 밝혀내는 트릭물이기도 합니다.

'조사할 양이 늘어나면 시간이 극단적으로 걸려 풀기가 가속적으로 어려워지는 것'이라는 수학적 소재인 NP 클래스 문제 해결을 사건에 대입시킨 전개는 나쁘지 않습니다. 사건을 미궁으로 끌고 가기 위해 기델 박사가 일부러 연구원들을 범인으로 모는 증언을 한 이유가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파일을 바꿔치는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도 상식적이면서도 간단한 트릭이라 설득력이 높아요. 범인을 드러내는 증언도 합리적이고요. 범인밖에 알 수 없는 동기를 입 밖에 낸걸 눈치채는 장면인데 이치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에 대치되는 단점이 존재한다는 문제는 큽니다. 우선 NP 클래스 문제 해결을 대입시킨건 나쁘지 않더라도, 이 사건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능성을 여러 개 열어 놓았다 한 들, 토마에게는 한 입 거리에 지나지 않아 시간이 극단적으로 오래 걸리지 않게 되어버리니까요. 게다가 어차피 용의자가 몇 명 없는 상황에서 조사할 양이 그렇게 늘어날 일도 없어요.
범인밖에 모르는 동기로 범인을 특정한다는 것 역시 결론에 끼워 맞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돈'이 목적일 확률이 높기에 그렇게까지 실수한 증언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파일을 빼 낼 수 있었던 쓰레기 봉투에서의 회수가 너무 대충 그려져 있는건 아주 별로였어요. 앞서서는 절대로 파일을 가지고 나갈 수 없다고 한참 이야기하다가, 토마의 입으로 전혀 다른 진상을 드러내는 거니까요. 이건 완전히 반칙이죠. 또한 사건 당일에 무언가를 회수해 나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무티아라가 놓친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에 기델 박사가 사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결말도 허무합니다. 결국 박사의 장난에 놀아난 것에 다름없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좋은 점, 나쁜 점이 골고루 있는 무난한 이야기입니다만, 추리적으로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한 편의 이야기로 어떻게든 마무리한 솜씨는 높이 평가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비탈길" 

아키와 가나는 중학교 동창회에서 조우했다. 사실 아키는 작은 왕따를 당한 아픈 추억이 있었지만, 자신을 감싸 주었던 가나를 잊지 못해 동창회에 찾아왔다. 그녀는 가나에게 당시 있었던 게임기 도난 사건의 범인이 아키가 아니라는걸 강하게 주장했던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정작 가나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린 시절 있었던 일을 가나가 잊어버린 탓에 토마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는 이전(25권 "여름의 타임캡슐")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상은 가나가 잊어버린게 아니라 '숨긴 것' 이었다는 의외성이 돋보입니다. 앞서 동창회에서 숨긴 이유를 복선처럼 등장시키는 것도 탁월했고요.
또 가나가 사건을 덮은 이유를 아키가 오해해서 - 가나가 도둑이기 때문에 아키가 진범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것 - 또 다른 도난 사건을 꾸민다는 이야기도 꽤 괜찮았습니다. 아키가 사는 복잡한 골목을 이용한 트릭도 좋았고, 토마가 진상을 밝혀내는 추리도 굉장히 합리적인 덕분입니다. 봉투 속 돈만 훔쳐도 되는데 봉투까지 훔친 이유, 편의점도 없는 외진 동네라는 특이성 등을 가지고 설명하는데 무릎을 칠 만 했어요.

아키가 모델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과정이 디딤돌이 된다는 전개, 그리고 마지막에 건방짐과 자부심을 헛갈린 듯 한 묘사는 솔직히 와 닿지 않지만 이 정도면 수준 이상의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항상 느끼지만 일상계쪽이 훨씬 낫네요.


이렇게 두 편 평균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04/29

초초패미컴 - 타네 키요시 외 / 문성호 : 별점 2.5점

초초패미컴 - 6점
타네 키요시 외 지음, 문성호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이전 읽었던 "초 패미컴"의 후속작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패미컴'으로 발매되었던 여러가지 게임들 중, 특기 할 만한 것들을 소개하는 것이 중심입니다.

많은 게임이 소개되는데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던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당대 유행과 트렌드를 알려주는 작품들입니다. 혼다의 인기 소형차 '시티'가 주인공인 "시티 커넥션", 그리고 "북두의 권"과 "매드맥스"에서 영향을 받은 세기말 황야를 무대로 한 레이싱 게임 "마하 라이더" 등이 대표적입니다.
다양한 당시 컨텐츠를 원작으로 한 게임들도 같은 류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또 물건이 많네요. "스타워즈" 게임에 등장하는 '전갈 베이더', '갸오스 베이더', '크라도스 베이더', '완파 베이더' 등의 악당은 그야말로 대폭소에요. "맛의 달인" 게임의 후짐과 억지스러움도 아주 인상적이고요.
유명인들과 관련된 작품들도 눈에 띕니다. "명탐정 산마"와 같이 당시 유명인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유명 크리에이터들의 활약도 돋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공각기동대" 3인방인 오시이 마모루, 이토 가즈노리, 카와이 켄지가 손잡고 만든 RPG "산사라 나가"는 어떤 게임이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심거리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 내세워 새로운 흐름을 만든 작품들이었습니다. 비키니 여성 전사가 주인공인 "몽환전설 바리스", "아테나"라던가 전투 미소녀 안드로이드 밀리아가 등장하는 "가딕 외전", 소노다 겐이치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던 "갈포스" 등이 대표적인데, 전부 아는 작품들로 옛 추억이 소록소록 떠올라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네요.

조금 자세하게 들여다보자면, "바리스"의 유코는 이 바닥에서 전설같은 존재로 어린 시절 상당히 호감을 가졌던 누님입니다. 그런데 여기 소개되는 패미콤 버젼은 흑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엉망으로 이식되었다고 합니다. '쿠소게'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죠. 

SNK의 아테나는 "아테나"라는 게임으로 첫 등장한 듯 한데 접해보지는 못햇습니다. 하지만 "킹오파" 시리즈로는 잘 알고 있죠. SNK 간판걸로 아직 쌩쌩한 현역이기도 하고요. 패미콤 버젼은 아케이드판을 이식한 것인데 '비키니'가 방어구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방어력 '0'의 물건이라는 합리적(?) 설정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방어력이 중요한 디자인은 아니겠지만요.

"갈포스". 소노다 겐이치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죠. 당시 우리나라 잡지 소개 자료에서 보았던 게임도 무척이나 하고 싶었었는데 결국 손대지 못하고 애니메이션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가딕 외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컴파일의 슈팅 게임인데, 비행형으로 변신 가능한 미소녀 휴머노이드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특이하네요. 본편보다 외전이 유명해진 이유는 주인공 밀리아의 존재가 컸던 것 같습니다. 오리지널 "가딕"은 밀리아는 단지 설정 문장에만 존재했는데 "가딕 외전"에서는 도트 그래픽으로 게임 본편에 화려하게 등장한다고 하니까요. 참고로 아래의 밀리아 일러스트는 가토 나오유키 (스튜지오 누에)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렇게 재미난 정보가 많이 있지만 아쉽게도 게임을 잘 모르면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든데, 전작에 비하면 유명한 게임이 별로 없다는 단점도 큽니다. 그나마 아는 게임도 흔해빠진 아케이드 이식작인 "팩맨"이나 "봄버맨", "마계촌", "이카리" 정도거든요. 때문에 재미는 전작보다 못합니다. 

도판도 전작처럼 부실합니다. 제가 앞서 소개해드린 것 같은 특징적인 주인공이나 메카닉 도판 정도는 충분히 소개해줄 만 한데, 글로만 떼우는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었을까요?
아울러 뒷부분에 수록된 "패미컴 헌터, 난부선을 가다!"와 같은 리포트는 오시키리 렌스케가 동참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과 큰 상관이 없는 단순 추억담에 불과해서 분량 낭비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게임의 역사, 혹은 패미컴 게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거나, 굉장한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즐기기가 어려운 서브컬쳐 분석 자료입니다. 여러모로 추천드리기는 좀 애매하네요. 가격도 비싼 편이고요. 컬러 등으로 도판을 보강하고 보다 멀티미디어 측면을 강화한 e-book 버젼이라면 모를까, 구태여 구입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17/04/28

음식의 군사 1~3 - 쿠스미 마사유키 : 별점 2점

[고화질] 음식의 군사 03 - 4점 Masayuki Izumi/서울문화사

구루메 만화가 붐이 된 지도 꽤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구루메 만화들 속에서 "고독한 미식가" 등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쿠스미 마사유키의 신작입니다. 사실 일본에서 연재가 시작된 것은 2011년이니 신작이라고 하기는 좀 민밍하지만, 국내에는 얼마 전에나 출간된 따끈따끈한 작품이지요. e-book으로만 출간되어 있는데, 알라딘에서 구입해 읽었습니다.

내용은 무척 단순합니다. '혼고'라는 바바리 코트에 중절모를 걸친 남자가 맛집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먹는게 전부거든요. 이런 기본 설정은 유래없는 대 인기작 "고독한 미식가"와 별로 다를게 없습니다.
그러나 혼고가 리키이시에게 갖는 쓸데없는 경쟁 의식을 중심으로 '코미디' 터치가 강하다는 점, 일상 이야기는 쏙 빼고 음식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 리키이시라는 라이벌을 등장시켜 대결 구도를 보인다는 점에 더해 혼고의 머리 속에 '제갈공명'이 있어서 음식을 먹는 방법에 대해 지휘를 한다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건 첫 번째 에피소드인 "오뎅의 군사"입니다. 오뎅 가게에서 처음으로 리키이시를 만난 혼고는 그가 라이벌임을 직감하고, 리키이시가 주문한 무, 우엉 오뎅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오뎅 진을 펼쳐 공방을 펼친다는 전개를 보여주거든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비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라는 전통적인 병법에 대항하여 "비 오는 날에는 소주에 어묵탕이지!"라면서 풀어나가는 식인 셈이지요. 이 에피소드 만큼은 작품의 모든 특징이 잘 어우러진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구입한 보람이 느껴질 정도로요.

그러나 '군사'가 등장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는 방법을 병법처럼 푼다는 아이디어는 이후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면서도 음식과 잘 접목되고, 또 그것을 대결 구도로 만드는게 굉장히 힘들다는건 당연합니다. 이 아이디어가 빠져도 1권은 나름 괜찮은 이야기가 많기도 하고요. 모츠야키 가게는 신선한 재미가 있었고, 초밥집에서의 이야기도 괜찮았어요. 초밥 먹는 방법이 여러가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돈가스 한 개로 즐기는 풀코스 - 레몬 더하기 소금으로 한 점, 우스터 소스로 한 점, 간장 겨자, 소금 겨자, 소스 겨자, 간장, 마지막은 우스터에 재워둔 한 점과 흰 밥 - 역시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딤섬 도시락을 먹는 이야기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2권은 최악입니다. '군사' 설정은 뒷전이고, 혼고가 지방 맛집을 전전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이야기의 전부인 탓입니다. 지방을 돌아다녀서 라이벌 리키이시조차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스스로의 차별화 요소까지 걷어찬 최악의 전개를 보여줍니다.
그나마 3권은 조금 회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첫 번째 에피소드만큼은 못해요. 간혹 등장하는 '간장의 마술사' 이야기는 도대체 왜 나오는지도 모르겠고요. 너무 뜬금없을 뿐더러 재미도 없거든요. 간장 찬양만 하는 만화라 간장 회사 광고같은데, 돈 내고 광고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에요.
아울러 번역, 전개도 이상한 부분이 꽤 됩니다. 특히 몇몇 이야기는 중간에 페이지가 누락된 느낌입니다. 지금 보니 저자도 Masayuki Izumi라고 되어 있네요. 나 원 참.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1권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추천해드리기는 힘듭니다. 길게 끌고 갈 수 없다는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이에요. TV 드라마화 까지 된 것으로 볼 때 아주 인기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계속 봐야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라면이란 무엇인가"의 운치쿠 유조처럼 혼고는 검은색 정장 위에 '트렌치 코트'와 '중절모'를 걸친 한결같은 패션으로 등장하는데 무언가의 패러디인걸까요? 미디어 팩토리 학습만화 고유의 캐릭터인 운치쿠 유조를 따라한 것일지도...

2017/04/22

미스터리 사전 - 미스터리 사전 편집위원회 / 곽지현 : 별점 2점

미스터리 사전 - 4점
미스터리 사전 편집위원회 지음, 곽지현 옮김, 모리세 료 감수/비즈앤비즈

제목 그대로 미스터리, 추리라는 장르 문학에 관한 110개 항목을 설명해 주는 '사전' 입니다. 110개 항목은 6개의 대분류로 구성되고요. '게임 시나리오를 위해 꼭 알아두어야 할 110가지 추리 규칙·트릭·이론'이라는 부제를 보면, 이쪽에 관심있는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를 위해 쓰여진 책 같습니다.

일단 구성은 괜찮습니다. 항목별로 통일된 형태로 심지어 페이지 수 까지 똑같이 맞춰져 있어서 읽기 편하고 깔끔한 덕분입니다. 이런 건 정말 일본 사람들이 잘 하는 것 같아요. 이런 면에서 문제가 많았던 "탐정 사전"과 좋은 비교가 되네요.  

또 미스터리, 추리 애호가로서 즐길 부분도 제법 됩니다. 특히 소분류 항목별 대표작의 예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유명 소설 뿐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건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TV 드라마까지 방대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괴도'를 설명하며 '루팡 3세'를 예로 들고, '극장형 범죄'를 설명하며 "공각기동대" TV 애니메이션의 한 에피소드("웃는 남자")를 예로 드는 식으로요. '밀실 살인'의 예로는 RPG게임 "호라이 학원의 모험!"이 설명될 정도이지요. '살인범'의 예로 "죠죠 4부"의 키라 요시카게를 드는 등 지나치게 서브 컬쳐 중심으로만 소개되는 감도 없지는 않지만요.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제법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묘한 맛"이라는 분야가 어떻게 명명되었으며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된 책은 처음 봤네요. 에도가와 란포가 명명했다고 하며, 란포가 예시한 작법의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 명탐정에게 범행을 간파당하고도 사기범은 뻔뻔스럽게 결백을 주장하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범행을 계속한다.
  • 노부인에게서 집이나 재산을 빼앗고 감금까지 한 악당 청년이 알뜰살뜰 여자친구의 신변을 돌봐준다.
  • 신문기자에게 붙잡힌 연속살인마가 어째서 이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며 기자를 새로운 피해자로 만든다. 

솔직히 작법 예시는 영 와닿지 않습니다만, 사고와 발상, 그리고 상식의 틀어짐이 낳는 의외성이 중요하다는건 분명해 보이네요. 

몇몇 사건들도 재미있었습니다. 1981년 가부키쵸 러브호텔 연속 살인사건에서 두 번째 피해자 겨드랑이 밑에 액취 치료 수술 흔적이 있었기에 술집 여성이라고 판단했다는 내용은 신선했어요. 당시는 술집 여성이나 받을만한 수술이었나 봅니다.

'마지막 반전' 이라는 항목에서 '현대는 트릭만으로는 부족하여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트릭으로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트릭을 살리기 위해 플롯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은 추리 소설가를 지망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와 닿은 내용이었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2페이지라는 제약 탓에 지나치게 요약된 부분이 많다는 점입니다. 하드보일드 등 장르에 대한 설명을 두 페이지 안에 담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이런 항목들은 모두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추리 소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아는 정보에 불과하며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의 항목으로 꼽기에는 미약한 것들도 눈에 띕니다. 트릭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합니다. '발자국 트릭'이 하나의 항목으로 꼽힐만한 이야기였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순간이동, 소실 트릭과 같은 보다 큰 범주로 묶었어야죠. '눈의 착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량을 할애한 '착시 현상'은 미스터리 장르와는 무관해요.
이렇게 소분류 선정 및 분류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탓에 심지어는 왜 이런게 설명되나? 싶은 항목도 있습니다. '미스터리 연구회' 같은게 대표적이죠. 일본에 한정된 특정한 형태의 소모임일 뿐이고 그렇게 이쪽 바닥에서 유명한 소재는 아니니까요.

번역도 큰 문제입니다. 읽기가 힘들 정도에요. 조금 더 읽기 편하게 번역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딱딱하고 어려운 문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번역가가 이쪽 컨텐츠를 잘 모르는 티가 물씬 납니다. 이 바닥에서 자주 쓰지 않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거나 -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를 '나라 이름' 시리즈라고 소개하는 등 -, 잘 알려진 발음과 다르게 번역하거나 일본어 번역에서의 실수 - '면죄를 호소하다' -> '무죄를 호소하다' (99p), '사이타마현 아이켄가 연쇄 살인사건' -> '사이타마현 애견가 연쇄 살인사건' (101p) -, 당연한 고유 명사의 오류 - 히가시노 게이고 -> 토우노 게이고 (207p) -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오류, 오타가 너무 많아요. 조금이라도 이쪽 세계를 아는 사람이 한번이라도 교정, 검수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잘못 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처음으로 입문하는 초보자 대상의 학습 사전으로는 나름 괜찮지만 제가 읽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으며, 거기에 더해 번역 문제와 19,000원이라는 가격도 과합니다.
솔직히 이 책의 존재 의미도 잘 모르겠어요. 시나리오 라이터를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뭔가 만들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추리 소설에 첫 입문한다고 해서 이런 류의 '참고서'를 사 볼 필요는 더더욱 없죠. 고전 명작부터 찬찬히 읽어 나가면 그만이니까요. 한마디로 여러모로 애매했습니다. 저도 두번 읽게 될 것 같지는 않군요.

2017/04/21

아마겟돈 - 프레드릭 브라운 / 조호근 : 별점 3점

아마겟돈 - 6점
프레드릭 브라운 지음, 조호근 옮김/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그동안 유명세만큼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던 거장 프레드릭 브라운의 단편선입니다. 정식 소개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반가운 마음에 바로 구입하였습니다.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 유머, 반전이 살아있는 단편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유일한 단점이라면 국내 소개가 너무 늦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66.... 인데 반올림해서 3점주겠습니다. 늦었지만 번역 출간된 것만 해도 충분히 점수를 줄 만하니까요. 같이 소개된 "아레나"도 빨리 구해봐야겠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마게돈" 

마술사를 꿈꾸는 꼬마가 성수를 담은 물총으로 악마를 퇴치한다는 내용으로, 이전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단편집 ("마술 반지" 였던가요?) 에서 접했던 작품입니다.

악마가 소환되는 과정의 의외성은 돋보이지만, 딱히 대단한 반전은 없습니다. 그냥 저냥한 소품이에요. 솔직히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기는 어려운데 왜 표제작인지 잘 모르겠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스타 마우스"

과학자 헤르 오베르부르커는 직접 만든 로켓에 생쥐 밋키(미키인데 오베르부르커 발음이 이렇습니다)를 태워 달로 보냈다. 소행성 프록슬에 착륙한 밋키는 프록슬인에 의해 지성을 갖게 되었다.
밋키는 쥐들의 지능을 인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지구로 복귀해 쥐들의 나라를 만들 꿈을 꾸었지만, 아내 미니 우리에 설치된 전기 장치 탓에 원래의 생쥐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쥐가 놀라운 지능을 가지게 되지만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은 "앨저넌에게 꽃을"이 떠오릅니다. 앨저넌도 쥐였지요. 

작품은 오베르부르커 시점에서 로켓 계획이 펼쳐지는 전반부와 밋키 시점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 마지막에 말하는 쥐를 등장시킨 후, 그 이유를 후반부에서 설명하는 연재물같은 구성인데 덕분에 독자의 흥미가 끝까지 유지됩니다. 황당하지만 다소 허풍섞인 글도 매력적이고요. 복선인 미니 우리에 설치된 전기장치도 잘 안배되어 있습니다.

허나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소재임에는 분명합니다. 비슷한 류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은 탓입니다. 물론 이 작품은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선구자적인 작품일거에요. 시대가 너무 지난 뒤 읽은게 안타깝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자마술" 

두 커플이 더블 데이트를 즐기던 중, 밥이 카드 마술을 선보였는데 월터가 트릭을 말해버렸다. 자존심이 상한 밥은 월터에게 마술을 보여달라고 종용했고, 등쌀에 못 이긴 월터는 모자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묘한 생물을 꺼내어 보여주는데...

10페이지에 불과한 초단편인데 밥과 월터의 신경전으로 긴장을 자아내다가, 월터가 기묘한 생물을 꺼내는 클라이막스로 끌고 가는 과정이 탁월합니다. 

그러나 월터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안이했어요. 좀 쉽게 간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합리 행성" 

행성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나'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고 고용 선장인 조니, 아내 , 딸 엘렌과 착륙했다. 행성에 '불합리 행성'(시리우스 1번, 2번 행성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0'번이 되는 궤도의 행성을 발견한 것이므로)이라고 이름 붙인 후, 행성을 탐사하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기묘한 생물과 현상을 목격하는데...

행성에 나타났던 기묘한 동물과 거리는 모두 바퀴벌레를 닮은 행성 거주민이 투사했다는 내용의 SF 단편입니다. 이전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질 대신 정신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설정은 꽤 자주 변주되었던 것인데, 이 작품처럼 1940년대부터 인용된 고전적인 소재라는건 몰랐네요. 그만큼 작가가 시대를 앞서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작품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조금 뻔하지만 코믹한 내용에 의외의 반전이라는 작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즐겁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예후디 장치"

'나는 미쳐가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글로 시작되는 단편으로  예후디 장치라는 이름의 - 정식 명칭은 자율 자동암시 교열진동 초가속기' - 기계가 핵심입니다. 사람을 가속시켜 원하는 일을 해 주도록 만들지만, 본인은 자기가 직접 빠르게 움직여 무언가를 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계이지요. 그런데 예후디라는 "이름"을 부르는 탓에 무형의 존재가 실체를 갖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약간 동양적인 설정이죠? 이름을 불러야 의미를 갖는 꽃처럼 말이죠.
덕분에 '예후디'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명령인 "자살이나 하라고"에 따라 자살을 해 버려 동작이 멈춘다는 결말로 이어지는 전개가 아주 깔끔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예후디 장치를 이용해 '나'가 썼다는 마지막 반전도 놀라웠고요.

진으로 만든 칵테일인 '진 벅'이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칵테일로 먹지만 다음 잔은 진을 7/8 넣어서, 마지막은 진만 따르고 소다수는 건드리지도 않고 먹지요. 하긴 이런 기계를 보고 겪으면 제정신이기는 힘들테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디테일한 설정에 녹아든 동양 철학적인 사고 방식과 반전까지 잘 갖추어진 좋은 작품입니다.

"웨이버리" 

사자자리 어딘가에서 전파를 쫓아 지구로 온 베이더 (inavader)가 모든 전기를 빼앗은 후를 그린 단편입니다. 

분명 지구가 정복당한 상황인데, 주인공 조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는 결말이 독특합니다. 전기는 없지만 증기기관, 말로 동력을 대체한 뒤 자전거 등으로 더욱 건강해지고, 텔레비젼과 라디오에 시간을 뺏기지 않아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취미 활동을 즐기게 된다는 내용이거든요.
이러한 점에서는 SF라기 보다 풍자극으로 보는게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시사하는 바도 크고요. 현재를 무대로 인터넷을 잡아먹는 침략자가 등장하는 내용으로 변주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하늘의 혼란" 

1945년 작품으로, 무대는 1987년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하늘의 별을 조작하는 기계에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함이겠지요. 

그러나 천문학은 건판 사진기에 의지하고 있고, 라디오가 주요 미디어로 등장하는 등 미래에 대한 상상력만 놓고 보면 보잘 것 없습니다. 또 천문대 연구원 로저 플러터에서 물리학자 밀턴 헤일 박사로 주인공이 이동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습니다. 로저 플러터 없이 헤일 박사로만 이야기를 끌고나갈 수도 있었을텐데 괜히 이야기를 벌인 느낌이에요. 헤일 박사가 택시와 함께 장거리 여행을 하는 묘사도 불필요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분명 걸작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미래에 대한 상상력 자체는 별로지만 미래에 대해 진짜로 통찰력을 발휘한 부분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광고에 대한 것입니다. 하늘의 별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운동이 광고를 위한 것이었다는 반전, 결말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아이이디입니다. 천재 스니블리가 자신의 발명품으로 비누 광고를 하는데 성공하지만, 철자가 틀려 쓰러진다는 결말도 유쾌하고요.

조금만 더 압축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단점이 없었더라면 완벽했겠지만 아이디어와 반전만으로도 최고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노크" 

"지구 최후의 남자가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장 두 개로 이루어진 짧고 훌륭한 공포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단편입니다. 그러나 공포물은 아니고 기발한 SF에요. 주인공 월터는 잔이라 불리우는 외게인들에게 채집된 인간으로, 그 외 다른 인류는 모두 잔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월터는 백 종류에 달하는 무작위 채취된 동물 암수 한 쌍 중 하나로, 잔들의 동물원에 수용된 신세이고요.
거의 불멸에 가까운 수명을 가진 잔은 인간과 동물들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월터는 방울뱀을 이용하여 잔 두명을 죽게 만드는데 성공하여 그들이 떠나게끔 유도합니다. 첫 두 문장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여자, 이브가 될 그레이스가 월터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고요.

그런대로 재미있지만 허술한 것도 사실입니다. 서두만큼은 괜찮았는데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저 같으면 어떻게 썼을까요? 지구 최후의 남자가 방 안에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과연 문을 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딜레마를 다뤘을 것 같아요. 누가 문을 두드렸는지 너무나 알고 싶어서 혹시 죽을지라도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말이지요. 혹시 내가 지구에 혼자 남은 생명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과연 문을 두드린 것은 누굴까요? 아, 저도 궁금해지는군요.

"모든 선량한 벌레눈 괴물들이" 

SF 작가 엘모와 아내 도로시 앞에 안드로메다 2에서 온 외계인 5명이 동물들의 몸을 빌어 나타났다.

어딘가에서 봤음직한 내용입니다. 외계인들이 동물들의 모습으로 지구인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 속 외계인들이 엘모와 도로시 앞에 나타난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딱히 우주선을 고치는데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감시 때문에 사람만 부족해졌을 뿐이에요. 엘모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준다는 것도 창작력을 준 게 아니라 머릿 속에 있는 일종의 장애물을 제거해 주었다는 설정이라 여러모로 애매해보였고요.

그다지 기발하지도 않고 내용도 설득력이 낮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광기에 빠져라" 

조지 바인은 3년전 교통사고로 이전 기억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는데, 어느 날 편집국장 캔들러가 그에게 병을 핑계로 정신병원 잠입 취재를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기억 상실은 핑계일 뿐, 조지 바인은 27세의 나폴레옹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식된 상태였다. 조지는 취재 지시의 목적이 자신의 정신병을 몰래 치료하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취재에 응해 정신병원에 잠입하는데... 

인간은 실수이고, 기생충이고, 게임의 말일 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백만 개의 행성에는 그 행성의 유일한 지성인 곤충 종족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지성이 한데 모여서 단 하나의 우주적 지성을 만든다. 바로 신을!

개미가 신과 같은 절대자라는 반전이 독특한 작품으로 수록작들 중에서는 가장 긴 작품 중 하나입니다. 70여 페이지에 이르니까요.

초반은 꽤 흥미롭습니다. 정신병원의 비밀도 궁금할 뿐 아니라 조지 바인은 사실 나폴레옹이라는 설정도 꽤 매력적이니까요.

그러나 나폴레옹은 개미들의 게임을 위해 시공을 초월한 것이라는 짤막한 해석 외의 초반 떡밥은 하나도 회수하지 못합니다. 정신병원의 비밀은 무엇인지, 조지 바인을 본인 몰래 정신병원에서 치료하기 위한 음모였는지 아닌지, 나폴레옹을 구태여 조지 바인에게 소환시키면서까지 하려고 한건 무엇인지 등등은 결국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아울러 인간은 별거 아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이 진짜 절대자다라는 설정도 지금 읽기에는 식상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진실탐지기" 

2년 전 실종된 범죄 심리학자 채플 박사와 범죄자들이 거짓말 탐지기를 빠져나간 상황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유능한 탐정 벨라 조드가 사건 해결에 도전한다.

1999년을 무대로 한 SF 범죄물인데, 탐정과 범죄자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범죄는 그다지 비중이 없습니다. 유능하다는 탐정 벨라 조드의 수사도 변장과 함정 수사가 전부고요.

하지만 최면을 통해 기억을 지워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획기적입니다. 사건 자체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하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건데, 참신하고 대단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어지는 반전도 그럴듯합니다. 거짓말 탐지기 통과를 요청한 범죄자는 모두 중범죄자들인데, 그들의 기억을 지워주면서 선량하게 살게끔 최면을 걸어 결국 범죄 자체가 없어지게 만든다는 것으로 역시나 탁월한 아이디어였어요.

한마디로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프레드릭 브라운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불사조에게 보내는 편지" 

18만년 동안 살아온, 15만배 느리게 사는 남자의 독백으로 핵 전쟁이 일어나 문명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냉전시대의 공포를 희망적으로 설명하는 소품입니다. 불사에 가까운, 15만배 느리게 사는 남자에 대한 설정은 재미있으며, 인류는 역동적이기에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는 희망찬 메시지도 인상적입니다.

허나 배경이 되는 사상과 메시지 모두 지나치게 오래된 것이에요. 때문에 지금 시점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밋키 다시 우주로"

8년만에 다시 쓰여진, 똑똑해진 생쥐 밋키 이야기입니다. 어지간히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이번에는 새로 투입된 흰색 생쥐 화잇티와의 사투를 그립니다. 일종의 모험물이랄까요? 화잇티가 X-19 장치를 조작하여 흰 쥐를 생태계 정점에 놓으려 한다는 악마적인 발상이 눈길을 끌며, 지성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결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앨저넌에게 꽃을"과 역시나 비슷하네요. 앨저넌 이름이 밋키였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녹색의 땅"

붉은 행성 크루거 4에 추락한 우주비행사 맥개리는 이 행성에 추락한 것으로 알려진 우주선 잔해를 찾아 정글을 헤멘다. 트랜지스터 부품을 구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그의 유일한 파트너는 5족 생물 '도로시'. 어깨 위에 올려놓은 도로시는 흡사 여성의 손길 같고, 그런 도로시에게 위안을 느끼며 말을 건넨다. 그러던 중 우주선 하나가 그를 발견한다!

붉은 행성에서 '초록색'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아가는 광인의 이야기입니다.
구하러 온 아처 중위에 의해 도로시는 존재하지도 않고, 4~5년이라고 믿었던 표류 기간이 무려 30년이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지는 버틸 수 있었지만 지구가 우주 전쟁으로 파괴되어 초록색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에 결국 정신이 붕괴해버리고 만다는 결말은 섬찟합니다. 붉은 행성 크루거와 그곳의 생태계에 대한 짤막한 묘사도 상상력을 많이 자극하는데, 이 부분은 영상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 역시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은 반전이었어요. 예전에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기에 더 그러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인격 교환기" 

편집장 맥기에게 괴롭힘당하는 기자 '나'는 발명가 타킹튼 퍼킨스의 신발명 취재를 나선 후, 그가 '연격 교환가'라는 것을 발명한 것을 알게 되는데...

도라에몽스러운 발명품이 등장합니다. 내용도 성인용으로 변주한 도라에몽같고요. 발명품으로 소동이 일어나고, 결국 주인공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은 도라에몽 그 자체이지요. 

하지만 소동 이후 모든게 제자리를 찾는 도라에몽 장치와는 다르게 타킹튼 퍼킨스와 맥기의 몸을 바꾸어서 최악의 파트너들끼리 함께 살게 만든다는 결말은 아주 통쾌했습니다.

평범한 아이디어를 전개와 결말로 보완한 작품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무기" 

그레이엄 박사는 궁극의 무기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로, 그의 유일한 고민은 정신지체아인 아들 해리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니만트라는 인물이 찾아와 무기 개발을 그만둘 것을 부탁하는데... 

인류가 궁극의 무기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프레드릭 브라운의 답변. 

4페이지밖에 안되는 짤막한 분량이지만 흥미로운 도입부와 캐릭터, 진지한 주제에 놀라운 반전까지 모든 걸 갖춘 걸작입니다. 인류가 궁극의 무기를 갖는건, 백치가 장전된 리볼버를 갖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시각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측면도 있습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카투니스트" 

끔찍하고 흉물스러운 외계인 만화를 그린 후, 빌 개리건은 그가 그린 외계인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의 초대를 받았다. 그들은 만화에 감명해서 개리건을 황실 만화가로 임명하려 했다... 

"외눈박이 나라에 간 두눈박이" 이야기를 변주한 SF입니다. 서로를 끔찍하고 흉물스럽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점이 그러하지요. 그러나 결말은 정 반대입니다. 개리건이 외계인 모습이 된 다음에 익숙해진 후 모든 행복을 거머쥐거든요.

그러나 좋은 결말, 반전이었다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반전의 매력은 부족하며, 여러모로 쉽게 간 느낌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돔" 

'죽음보다는 고독이 나은 법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죽음보다는 나은 법이다.'

카일 브레이든은 핵전쟁이 발발했다는 뉴스를 듣고 구 형태로 완벽한 방어막을 이루는 "역장"을 작동시켰다. 카일은 죽음보다 고독이 낫다는 생각으로 30년을 버텼지만, 결국 홀로 죽기가 두려워 역장을 끌 결심을 하는데... 

착각으로 스스로 고립되어 이방인이 된 남자를 그린 작품으로 주제는 좋습니다. 냉전 시대를 극한까지 그려낸 설정도 볼만하고요. 하지만 홀로 돔 안에 갇히는 것을 선택한 카일 브레이든의 심정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고독보다는 죽음이 나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리고 밖의 세상은 유토피아가 되었다라는 반전도 평이합니다. 차라리 사랑을 고백한 '미라'가 그를 떠나지 않고 둘이서 같이 30년간 늙어가다가 유토피아를 만난다는 설정이 소설적으로는 더 나았을 것 같네요. 만약 그랬다면 미라에 의해서 지옥이 열렸을테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스폰서의 한마디" 

1954년 7월 9일 수요일 오후 8시 30분, 전 세계 라디오에서 기묘한 방송이 들려왔다.
아주 잠시 먹통이 된 후 차분하고 평범한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스폰서의 한 마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1초 후 다른 사람이 말했다. "싸워라."
미국 대통령은 이 방송이 현재 기술로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분석 결과를 전달받는데... 

'인간은 명령을 받으면 반대로 행동한다'는, 신뢰할 수 없는 심리학 설정에 기반을 둔 작품입니다. '밀그램 실험'이 있기 전에 쓰여진 이야기겠지요. 

그래도 과학적, 정치적인 분야에서 시작하여 종교적인 분야까지 전문가들에 의한 분석이 이어지면서, 이 명령은 들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만큼은 꽤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사탄이 내린 명령이면 당연히 들으면 안되고, 신이 내린 명령이라면 지성과 선의가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신성한 반어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했어요. 분석 덕분에 여론도 싸우지 않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전개도 괜찮았고요.
또 이러한 평범한 냉전 시대를 무대로 한 우화임에도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 요소가 존재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스폰서"라는 단어죠. 대체 우리, 지구, 인류의 스폰서는 누구란 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스폰서가 누군지 모르므로 명령을 들을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작품은 끝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약간 흥미로왔을 뿐 기대에 부합하지는 못했습니다. 결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 큽니다. 별반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무래도 냉전 시대 관련 설정의 작품은 여러모로 뻔하고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소재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나와 플랩잭과 화성인" 

광산을 찾아다니는 나와 당나귀 플랩잭은 어느날 화성인을 만났다. 화성인은 내가 아니라 플랩잭이 지성체라 여겨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의 지구 침공 계획을 털어놓는데... 

이른바 '오해와 착각' 개그물입니다. 나와 플랩잭의 티격태격 묘사가 유쾌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해로 인한 난처한 상황도 볼거리고요. 무엇보다도 플랩잭이 화성인에게 무언가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그들이 지구 침공을 포기하고 돌아가는데, 나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플랩잭이 준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결말까지 유쾌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마크 트웨인이 쓴 SF를 읽는 느낌이었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린 양" 

수록작 중 가장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싸이코 스릴러로 "진, 베르무트에 젖은 올리브 색깔"이라는 묘사나 여러 시, 음악, 밤이라는 배경에 대한 묘사는 '코넬 울리치'가 썼다 해도 믿을 정도로 디테일합니다. 아내 램이 살아 있는 것 처럼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그녀는 이미 죽은지 오래라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도 섬찟했고요. 유머러스한 블랙 코미디나 반전이 있는 장르 문학에 강한 작가인줄 알았는데 이런 순문학적인 스릴러에도 능하다니 과연 거장은 거장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날개짓 소리"

15달러에 영혼을 팔려던 무신론자가 급하게 멈추고 15달러를 날린 이유는? 에 대한 짤막한 소품입니다. 주인공이나 독자나 답을 찾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뭐가 껄끄러웠던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특별히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럴 바에야 영혼을 팔고 할아버지가 죽은 뒤 무언가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가는게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거울의 방" 

시간을 되돌리는 일종의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SF로 타임머신에 대한 아이디어와 함께 '50년'을 계속 되돌아가는 주인공에 대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돔"의 주인공은 역장을 끄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 작품의 주인공은 타임머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면 인류가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갖혀 지낸다는 점에서 좀 비슷한데, 냉전 시대의 뻔한 SF인 "돔"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설정도 보다 디테일하고요. 50년 동안 무얼 어떻게 먹고 사는지 등 깊이 들어가면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의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은 모두 1~2페이지짜리 쇼트쇼트입니다. 줄거리 요약은 생략하고 단평만 적겠습니다.

"해답" 두말할 필요 없는 걸작. 별점은 5점.

"데이지" 짤막하지만 담겨야 할 모든 것이 담겨있는 교과서적인 쇼트쇼트. 별점은 4점.

"대동소이" 뻔했음. 별점 2점. 

"예절" 이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을 다룬 유쾌한 소품. 별점은 3점.

"허튼소리" SF 작가의 자조적인 농담으로 보이는 소품. 별점은 2.5점.

"화해" 뻔하고 뻔하도다. 별점 1점.

"탐색"신이 두려워한 사람이 누구인거죠? 주인공 피터의 정체는 신선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2점.

"형기" 과학적인 농담인데 꽤 써먹음직한 반전이 돋보임. 별점은 2.5점.

"유아론자" 이 정도면 신성모독이 아닐까... 여튼 신선한 창조 이야기. 별점은 2.5점.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진정한 소리를 찾는 음악가 둘리 행크스가 우연히 만난 노음악가를 살해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호우보이'라는 악기를 손에 넣은 뒤 맞는 최후에 대한 이야기.
음악에 대한 장황한 묘사가 펼쳐지는 순문학스러운 범죄 판타지로 '하메룬의 피리부는 사나이'로 끝나는 결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04/18

클레이모어 1~27 - 야기 노리히로 : 별점 2.5점

클레이모어 Claymore 27 - 6점
야기 노리히로 지음/대원씨아이(만화)

클레이모어: 여전사의 싸움을 그린 다크판타지

"엔젤 전설"로 오해 학원 개그물의 한 장을 열은 야기 노리히로의 다크 판타지 장편 액션 만화입니다. 햇수로 따지면 거의 20년 가까이 된 작품이지만, 몇 주 전에야 겨우 완독하였습니다. Lionheart님 리뷰를 읽고 몇 자 적습니다.

이전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초반부 한 두어 권 읽다가 접은 이유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은 작화 탓이 컸습니다. 개그 만화에는 적당했지만 다크 판타지 액션에 걸맞는 작화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액션 장면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어요. 인간을 먹는 요마와 요마를 사냥할 수 있는 반인반요의 여성 전사 설정도 너무 뻔하다 싶었고요.

그러나 전 권을 몰아서 읽어보니 확실히 인기가 있었던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뻔하고 도식적인 것은 초반부 뿐, 이른바 '각성' 이라는 것이 핵심 설정이 되면서 부터는 독특한 맛이 느껴집니다. 이후 밀리아에 의해 밝혀지는 요마, 전사의 정체와 조직의 존재 이유도 꽤 그럴 듯 했고요. 결말도 깔끔해서 마음에 듭니다. 좀 급하게 끝낸 것 같다는 의견도 더러 있지만 저는 괜찮았어요. 불필요하게 질질 끄는 것 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떡밥 회수도 충실합니다. 요마가 아닌 전사를 취해, 전사가 된 클레어가 각성한 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이 대표적인데 이야기 결말에 잘 어울리는 아이디어였어요.
작품의 파워 밸런스가 일정하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강적들인 '심연의 주인들'과 주인공 멤버들 간의 밸런스가 끝까지 유지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밀리암을 리더로 하는 7명의 전사들이 무려 7년 동안 은신하여 수련했지만, 심연의 주인들과의 전투는 그들 한 두 명으로는 어림도 없고, 어쩌다 이기는 것도 전원이 달려들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식인 덕분입니다. 의외로 아주 현실적인 설정이라서 기억에 남네요.
강적을 쓰러트리면 또다른, 더 강한 강적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소년 만화 전개에서 벗어나 상당히 초반부에 등장한 적이 마지막 결전 상대가 된다는 점도 독특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다크 판타지이며 주인공의 처절하고 외로운 싸움을 그렸다는 점에서 "베르세르크"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각성자들과 심연의 강자들의 디자인, 그리고 '대검(클레이모어)'를 활용하여 전사들이 요마들과 사투를 벌이는 부분이 그러한데, 그래도 전사들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하는 등의 디테일과 앞서 이야기한 파워 밸런스, 그리고 전투에서 두뇌 배틀 속성이 들어가는 식으로 확실히 차이점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베르세르크"보다는 희망을 듬뿍(?) 담고 있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베르세르크"만큼 한 획을 긋지믄 못했어도 당대의 인기작으로서의 재미는 충분합니다.

2017/04/16

피너츠 완전판 6 : 1961~1962 - 찰스 M.슐츠 / 신소희 : 별점 2.5점

피너츠 완전판 6 : 1961~1962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피너츠 완전판 제 6권입니다. 구입한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서야 리뷰 올립니다.

이번권의 특징은 익숙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10년 이상 연재된 덕이겠죠. 특히 친숙한 캐릭터 설정에 기반을 둔 게 많습니다. 어디가나 빠지지 않는 라이너스의 담요 관련 개그를 비롯하여 찰리 브라운의 야구팀, 찰리 브라운의 연날리기, 자신이 예쁘다고 믿고 슈뢰더에게 계속 대쉬하는 루시, 라이너스와 할로윈 호박 대왕, 찰리 브라운의 펜슬팔 친구, 라이너스의 천재성 등의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너무 반복되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뻔하지만 약간의 변주로 또다른 재미를 끌어내는 솜씨가 워낙에 탁월한 덕분입니다. 아래의, 라이너스가 담요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합리화하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입니다. 라이너스의 담요 설정에 그의 천재성을 결합하고, 마지막으로 루시와의 대립관계까지 끌어들인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뻔한 이야기만 등장하는건 아닙니다. 천연 곱슬머리를 자랑하는 프리다와 그녀의 고양이,  라이너스가 안경을 끼는 것, "빨간머리 소녀", 스누피가 고양이를 증오(?)하지만 새들과는 친구로 지낸다는 설정, 라이너스와 낙엽들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처음 등장합니다. 슈뢰더와 친구들이 진짜 베토벤 생일 파티를 하는 것도 처음 봤네요. 찰리의 동생 샐리가 학교 가기 싫어하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설정은 꽤 오래 끌고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의외로 한번 유치원 갔다오고 나서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하며 치료되는게 조금 의아했습니다. 학부모들 반발이 우려되었던 것일까요? 참고로 이번 권에서는 샐리가 굉장히 귀엽더군요. 한번 보세요. 완전 귀염덩어리 아닙니까?

이외에도 라이너스와 함께 호박밭에서 호박 대왕을 기다리는 에피소드 등등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스누피의 비중도 높습니다. 새들과 친구로 지내는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이며 그 외에도 찰리 브라운에게 어리광을 부린다던가 - 찰리 브라운이 업어주지 않으면 자러 가지 않음 -, 루시를 무서워하는 등 새로운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땅바닥에 귀를 바싹대고 있는 것 뿐이라고!", "일단 언론의 동정을 사고 나면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지" 등의 대사들도 주옥같고요.

이러한 많은 에피소드들 중 개인적으로 베스트 에피소드는 찰리 브라운을 응원하는게 위선이라는 것을 깨닫는 라이너스와 루시, 다른 팀원들 - 우린 경기장에 나가서 '힘내, 찰리 브라운. 할 수 있어!'라고 외치기 힘들어. 네가 사실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말이야 - 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선의라는 감정으로 포장하고 있는 온갖 위선들도 이것과 별로 다를게 없으니까요.
샐리의 유치원 공포증을 찰리 탓으로 돌리며 루시가 하는 말은 베스트 명대사입니다. "모든 세대는 사진의 문제에 대해 직전 세대를 탓할 수 있어야 하지. 그런다고 뭐가 해결되진 않지만 기분은 좀 나아지니까!"라는 말인데 "나를 비난하라"고 후계자들에게 일렀던 소련 독재자들 유머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뻔하기에 지루하고, 아주 새로운 무언가가 없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작가 스스로 여러가지 설정을 던지고, 그 중에서 인기있는 설정을 뽑아서 여러가지로 변주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프리다 관련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새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천연 곱슬머리를 자랑하거나, 스누피에게 토끼나 쫓으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에요. 그리고 인기가 떨어지면 도태되어 사라질테고요.

이는 가혹한 연재 일정에 대처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생존 전략일 수는 있습니다. 그만큼 효과가 있었기에 작품도 전설이 되었을테고요. 하지만 매일매일 연재물로 본다면 모를까, 이렇게 책으로 모아서 한번에 읽게 되면 아무래도 반복, 복제가 눈에 많이 뜨일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팬이라면 놓치기 어려운, 선물과 같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반복, 복제는 거슬르기에, 한번에 읽지 말고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읽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오타가 하나 눈에 뜨입니다. 137페이지의 "블랙 버드 선장"은 "블랙 비어드 (검은 수염)"의 명백한 오타로 생각됩니다. 일어 중역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2017/04/15

몽키 턴 1~25 - 카와이 카츠토시 : 별점 3점

몽키 턴 25 - 6점
카츠토시 카와이 지음/세주문화

카와이 카츠토시의 히트작으로, 경정을 소재로 하여 청춘들을 그린 스포츠물입니다. 단행본으로 25권이나 되는 장편이지요. 

내용은 크게 3개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인공 겐지가 경정 선수가 되기 위해 입문하는 경정 학교 시절, 선수로 첫 더비 킹이 되는 이야기, 큰 부상을 입은 후 복귀하여 연말 상금왕 레이스를 우승하는 이야기로요.
스포츠 세계를 무대로 각자 주특기가 있는 주인공과 친구, 라이벌들이라는 캐릭터 설정과 주요 시합을 핵심 이벤트로 진행하는 전개, 그리고 주인공이 나름 천재이며 첫 등장부터 소꼽친구가 있는 커플이라는 점은 작가의 전작인 "캠퍼스 라이벌"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이전 히트작의 단순 반복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경정'이라는 잘 모르는 세계를 정말로 자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경정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이 작품 이전, 이후 모두 전무후무하다 할 정도로 독특한데, 단지 새롭기만 한게 아니라 나름의 재미도 확실하게 선사해 줍니다.
물론 '보트'를 타고 물에서 진행한다는 점 외에는 흔하게 보아온 레이싱 물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머신의 성능과 드라이버의 기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장르니까요. 그러나 보트와 물이라는, 이 차이점을 극대화한 전개에 작가의 뛰어난 구성력이 더해져 남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나름의 두뇌 게임이 펼쳐지는 것 역시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주인공 겐지가 5km 더 빠른 라이벌 도구치의 신형 페라를 더비 경주에서 이기고 더비킹이 되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입니다.

'유도'에 미쳤던 전작 등장인물들에 비하면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등 주인공들의 사랑과 청춘이 보다 자세하게 그려지는 식으로 인간관계, 드라마가 훨씬 복잡해진 것도 마음에 들어요. 조금 가볍고 유쾌한 주인공과 그에 대항하는 쿨하고 과묵한 느낌의 천재 라이벌(심지어 좋은 가문!)이라는 인물 설정은 스포츠물, 청춘물에 흔히 나오는 뻔한 설정과 구도이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첫 등장시점부터 주인공의 커플이 완성되어 있다거나 정말로 나쁜 악당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등 작가만의 독특한 요소가 덧붙여져 차별화되고 있으니가요. 개그 요소도 적절한 편이고요. 질질 끌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한 점도 높이 평가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뻔하고 진부한 설정, 전개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소재에 작가의 능력이 더해져 평균 이상의 재미를 전해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04/14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 도진기 : 별점 2.5점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 6점 도진기 지음/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호사 고진은 법정에 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남편을 죽인 혐의를 받는 미모의 중년 여인 김명진 사건의 변론을 맡아 법정에 서게 되었다. 김명진은 20년 전 죽은 남편 신창순, 그리고 남궁현, 임의재, 한연우 네 명에게서 구애를 받았으나, 장난스러운 내기 끝에 신창순과 결혼했었다. 과거의 남자 세 명과 김명진의 동생 김해나는 그녀의 무죄를 믿고 적극적으로 도움에 나섰다...

현직 판사이자 소설가로 한국의 존 그리샴이라 해도 무방할 도진기의 장편으로 시리즈 캐릭터인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합니다. 

제가 읽었던 이전의 '어둠의 변호사'와 가장 큰 차이점은 '법정에 선 고진'의 활약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진 '법정 미스터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작품 속에서 무려 네 차례에 걸친 재판을 통해 피고인을 유죄로 만드는데 정평이 난 실력자 조현철 검사와 불꽃튀는 대결을 벌이거든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서로 배심원을 설득하고, 재판을 유리하게 이끄는 배틀이 아주 볼 만 합니다. 조현철 검사가 은근슬쩍 끼워넣었던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를 뒤집는 변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외의 말싸움도 현란하기 그지 없고요. 작가가 현직 판사이기에 쓸 수 있었던 묘사들, 디테일도 가득합니다. 국민 참여 재판에서 배심원을 선정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 재판 속행과 보석 신청 등 모든 상세한 설정들이 그러합니다. 이 정도면 해외 유수의 법정 미스터리물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만 하지 않나 싶을 정도에요.

법정에서의 대결이 중심이라서 이전 다른 작품들처럼 수많은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딱 한 가지 등장하는 트릭의 아이디어도 괜찮습니다. 신창순 살해에 사용된 알리바이를 만드는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인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체가 발견된 이유와 범인 임의재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무역업자라는걸 잘 활용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 트릭 덕분에 "하우더닛" 물로서의 진가도 발휘됩니다. 결국 유럽에 있는 사람만 가능한 트릭이기에 범인이 임의재다!는 건데 꽤 설득력 있었어요.

지고지순한 일종의 순애보를 그리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6명의 청춘들이 처음 만난게 격동의 1990년대라 더 와 닿았고요. 저 역시 1990년대에 청춘을 보냈기 때문이지요. 이 사랑의 중심에 놓여있는, 작가의 이상형을 투영해 놓은 듯한 김명진 캐릭터도 인상적입니다. 팜므파탈과 정 반대인, 순진무구한 천사같은 캐릭터를 잘 그려 놓았거든요. 작중 한연우의 표현을 빌자면, 오디오 기기에 취미를 갖는 사람들에게 마크 레빈슨 같은 존재랄까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우선 작위적 장치들이 많이 거슬립니다. 너무 '소설'을 의식한 티가 물씬 났어요. 신창순이 아내를 학대하던 인간 쓰레기였다는 중요 정보를 나중에 밝히는게 대표적입니다. 살인의 가장 큰 동기인데도 불구하고 변론을 맡은 변호사에게 그러한 정보를 숨긴건 말도 안돼지요. 임의재가 차용증을 가지고 김명진을 겁박하는 장면 역시 나중에 고진과 이우현의 인기척을 느끼고 쇼를 했다고 밝혀지지만 억지스러웠고요. 독자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 뿐, 현실적이지 않은 묘사였습니다. 그 외 많은 부분에서 작가가 한연우를 범인이라고 유도하는 것도 너무 빤히 들여다 보였어요.

트릭도 순간 이동 방법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디테일은 그닥입니다. 1주일에 걸친 운송기간 동안 사후 경직으로 뻣뻣해진 시체를 어떻게 무마했을지가 설명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게다가 상당한 재산가로 묘사되는 임의재가 직접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 역시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블라디보스톡 현지 조사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강도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고 언급되는데, 누군가를 고용하는게 훨씬 쉽고 간편했을겁니다. 중국인들이 당한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처리되었을 확률도 높고요.

마지막으로 추리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동기가 설득력이 낮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아무리 사랑했다 하더라도 20년이 흘렀습니다. 과거가 다 잊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죠. "백야행" 시대에나 먹혔음직한, 자신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여자를 위한 순애보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지 오래에요. 그나마 "백야행"은 현재진행형이기나 했지, 20년 후에도 그렇다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달리기 시합에 이어서 김명진이 술을 먹은 후 강제로 관계를 가진 탓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는 설정도 영 와닿지 않더군요. 1990년대가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덧붙이자면 심장 판막증이 있는 임의재가 장거리에 도전할 만큼 김명진을 사랑했다는 것도 작위적이라 별로였어요.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사랑했다면 중간에 포기하면 안되는거잖아요? 차라리 뛰다가 쓰러져 기절이라도 하던가..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대 착오적인 순애보는 거슬리며, 작위적인 요소가 많아 감점하지만 미녀와 청춘,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고 법정 미스터리물로는 평균 이상은 되는 작품입니다.
블라디보스톡과 한국을 오가는 스케일도 크고 법정물로는 충분히 드라마틱할 뿐 아니라 '김명진'이라는 미녀의 존재도 확실하니 영상화해도 좋을 것 같네요.

2017/04/09

파인더스 키퍼스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파인더스 키퍼스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천재 작가 로스스타인의 원고를 훔친 모리스는 흥분 상태에서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는데, 35년만에 가석방되어 돌아왔다. 한편 숨겨진 원고를 찾아낸 피터 소버스는, 원고와 함께 있던 현금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써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돈이 다 떨어지자, 원고 일부를 동생 티나의 사립학교 진학을 위해 팔려고 계획했다. 이 계획을 알게 된 드루 홀리데이는 오히려 피터를 협박하여 원고를 손에 넣으려 하는데...

빌 호지스 3부작의 두번째 작품으로 "미스터 메르세데스" 후속작입니다.

스티븐 킹 작품답게 쉽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주는 덕분입니다. 숨 쉴 틈 없이 사건이 계속 벌어져서 눈을 떼기 힘들었어요.
묘사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특히 범죄자 모리스 시점 묘사가 아주 대단합니다. 광기어린 집착을 보이는 정신병자의 편향된 사고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굉장히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흡사 포르노나 하드고어 호러물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부분은 전작과 비슷하네요. 집착의 대상이 거장의 미발표 원고라는 점도 왠지 공감이 갔고요. 저 역시 한때(?) 오덕이었으니까요.

인물 설정도 괜찮습니다. 모리스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잘 묘사되어 있으며, 또다른 주인공인 피터 소버스도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평범한 초등학생이라면 대충 처리했을 로스스타인의 원고의 가치를 알아본다는 설정을 학교 수업과 연결하여 소개하는 점이 그 중에서도 백미였어요. 여러분, 학교 수업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빌 호지스 3부작으로 만든건 최악입니다. 호지스 패밀리보다는 모리스와 피터의 대결이 핵심이며, 홀리와 제롬은 그냥 등장한다 싶을 정도로 별다른 활약이 없는 탓입니다. 심지어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벌어진 최후의 대결마저도 빌 호지스는 물론이고 다른 호지스 패밀리는 없어도 됩니다. 피터가 붙인 불로 모리스가 타 죽는 게 끝이니까요. 제롬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설정은 억지로 시리즈로 만들기 위한 사족일 뿐입니다. 하기사 빌 호지스에게 사건이 의뢰된 이유도 피터의 동생 티나가 제롬의 동생 바브라와 친구라는 이유 때문이니 말 다했지요. 과연 이런 일로 탐정에게 사건 의뢰를 할까요?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에게 알리는게 당연하지요. 이것 역시 억지로 시리즈에 끼워 넣었습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 외에도 피트의 아버지가 메르세데스 킬러에게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던가, 메르세데스 벤츠 킬러 브래디가 등장하여 일종의 백치 상태로 살아난 묘사를 그린 부분도 마찬가지에요. 시리즈만 아니었으면 다 빼도 무방한 설정들입니다. 게다가 브래드가 무언가 초능력을 얻었다는 떡박이 던져지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불필요한 설정을 통해 후속작을 암시하다니, 돈독이 올라도 너무 오른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보다는 정신병자 모리스 대 여동생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모범생 피터와의 대결로 그리는게 훨씬 나았습니다. 빌 호지스 패밀리는 팬 서비스 수준의 카메오 등장이면 충분했어요.

전개도 열심히 달려주기는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전부 우연입니다. 모리스가 숨겨 놓았던 트렁크를 피터가 발견하는건 전개상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모리스가 원고를 훔치게 된 계기를 만든 드류 홀리데이가 이후 피터의 노트 판매 계획에 엮이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지나칩니다. 피터가 원고를 숨긴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심지어 바로 그 장소에서) 최후의 대결이 벌어진다는 것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고요. 스티븐 킹이 나이가 들어 변한건지 모르겠지만 전편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중요성과 해피 엔딩을 강조한 결말도 와 닿지 않았습니다. 피트 어머니가 모리스에게 총을 맞지만 살아난다는 것이 대표적인데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휙휙 읽히는 재미만큼은 명불허전으로 킬링 타임용으로는 최고의 선택이지만, 단점도 명확하기에 감점합니다. 딱히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2017/04/08

콘돌의 6일 - 제임스 그레이디 / 윤철희 : 별점 2점

콘돌의 6일 - 4점
제임스 그레이디 지음, 윤철희 옮김/오픈하우스

코드네임 '콘돌'인 정보원 말콤은 CIA 조직에서도 한직인 미국문학사협회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한가하고 무료하게 보내던 중,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다른 동료들이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다. 말콤은 '패닉 넘버'로 사건을 보고했지만, 오히려 조직 내 끄나풀에 의해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다. 운 좋게 살아남아 도주에 성공한 말콤은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콘돌"은 오래전 극장에서 감상했던 영화였습니다. 찾아보니 국내 개봉이 1989년이었더군요. 1975년 영화이니 국내 개봉은 무척 늦은 편이지요. 14년이나 뒤에 개봉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은 아닌데 좀 희한하군요. 여튼, 한창 전성기였던 로버트 레드포드페이 더너웨이가 주연을, 거장은 아니더라도 몇몇 작품("투씨", "아웃 오브 아프리카")으로 영화사에 큰 자취를 남긴 시드니 폴락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정말 너무나도 재미있게 감상했었습니다. 그때까지 보아왔던 영화 중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요. 어린 마음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흥미로왔던 첩보 스릴러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쪽 장르 영상물로는 역시 비슷한 시기 TV에서 감상했던 리처드 체임벌린 주연의 "잃어버린 얼굴 (본아이덴티티)"와 제 추억 속에서는 쌍벽을 이룹니다. "아이거빙벽"까지 해서 저만의 3대장인 셈이지요.

서론이 길었군요. 이 책은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입니다. 오픈하우스에서 선보인 장르문학 시리즈인 '버티고'시리즈 중 한 권으로, 원작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번역, 출간되니 너무 반갑네요. 

그런데 제 기억 속 영화에 비하면 소설의 완성도와 재미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물론 영화는 경험치도 높지 않고, 접해본 컨텐츠도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 감상했던 탓에 과하게 좋은 평가를 내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설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영화화된 인기작답게 아예 형편없지만은 않아요.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이런 것 까지? 라는 생각이 드는, CIA 같지도 않은 독립적이고 한가한 정보 분석 부서 '미국문학사협회'에 대한 설정은 분명 독특하니까요. 여기서 일하는, 현장 요원이 아닌 말콤(콘돌) 설정도 타 첩보물과 차별화되는 부분이고요. 군인이나 경찰 출신도 아니고, 석사 학위 필기 시험 때 "돈키호테"를 '네로 울프'에 비교하여 쓴 답안지 덕분에 취직에 성공한 문학 전공자라니 정말 독특하잖아요.

미국문학사협회 직원들이 급작스러운 습격으로 몰살당한 후, 숨겨진 뒷문으로 점심을 사러 갔던 말콤만 운 좋게 살아남아 목숨을 걸고 도망다니면서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다는 중반부까지의 전개도 흥미롭습니다. 별다른 훈련도 받지 않은, 무늬만 정보 요원인 말콤이 여러가지로 머리를 짜내어 도주하는 과정이 아주 그럴듯해서 설득력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CIA의 핵심 인물인 '노인'과 케빈 파웰이 말콤을 찾아내기 위해 벌이는 수사의 디테일도 빼어나고요.
참고로, 여기서 주는 교훈이라면 도주할 때에는 절대 이발소를 찾아가지 말라는 것. 결국 이발소를 통해 모든 행적이 드러나게 되거든요. "아저씨"의 원빈처럼 직접 자르는게 답인 듯 싶네요.
아울러 이만한 이야기를 200페이지를 갓 넘는 분량으로 소화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콤이 웬디를 만나 은신하기 시작한 후 부터는 별로입니다. 우연에 의한, 작위적 설정으로 점철되어 있는 탓입니다. 애초에 웬디가 말콤의 말만 믿고 몸과 마음을 바쳐가며 도주를 돕는다는 설정부터 작위적입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헐리우드 스타일 도주극이 그러하니 여기까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워싱턴에 변장하고 다시 잠입한 말콤과 웬디가 '우연히' 마로닉을 만나게 되어 총격전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 말콤이 마로닉과 함께 있던 동행의 차 번호판을 기억하여 주소를 알아내는 과정은 개연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CIA 내부의 흑막이 벌이는 행동치고는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것도 문제고요.
이후 저택에 숨어든 말콤이 사로잡혀 죽을 위기에 빠지지만 마로닉에 의해 살아남는 과정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로닉이 구태여 말콤을 살려줄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건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진상이 무엇인지를 악당 시점에서 상세하게 설명해주려는 목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악당 마로닉이 자기 입으로 진상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그 다음에 말콤이 공항까지 찾아가 마로닉을 사살한다는 결말도 뜬금없습니다. 진상이라도 대단하면 모를까, 마약 밀수 때문이라니 좀 허무했어요. 웬디가 죽지 않아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마지막 장면은 사족에 불과하고요. 

영화의 디테일이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신문사를 찾아가 모든걸 폭로한 '콘돌'과 정부 요원이 대화를 끝낸 후 인쇄된 신문이 쌓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신문에 말콤이 이야기한 사건이 실렸을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 여운도 남기고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드는 멋진 결말이었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결말만큼은 영화가 백만배는 더 뛰어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독특한 캐릭터만큼은 높이 평가하나, 그 외에는 딱히 특기할 점이 없는 스파이 소설입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를 구할 수 있다면 영화로 감상하는게 훨씬 낫습니다.

2017/04/07

울버린 : 올드 맨 로건 - 마크 밀러, 스티브 맥니븐 / 임태현 : 별점 2점

울버린 : 올드 맨 로건 - 4점
마크 밀러 지음, 스티브 맥니븐 그림, 임태현 옮김/시공사(만화)

로건 아저씨, 정말 그들과 싸우러 가는 거에요? 악당들을 쓰러뜨리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오려는 거에요?

그럴까 해,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마블 코믹스 시리즈입니다. 평도 좋고 색다른 맛이 좋다는 작품이라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알려진대로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빌런들과 히어로들이 최종 결전을 벌인 이후, 빌런들이 지배하게 된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울버린은 최종 결전 직전 미스테리오의 환각에 빠져 동료 엑스맨들을 학살한 탓에, 클로를 봉인하고 '로건'이라는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며 가족을 꾸린 뒤 늙어가는 상황이고요.

지주인 헐크 패밀리에게 지대를 내야 하지만 돈이 없는 상황에 처한 로건 앞에 호크아이가 나타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호크아이는 미대륙 횡단 여행을 도와주면 돈을 준다고 약속하고, 로건은 싸움도 하지 않고 살인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승낙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1,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호크아이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컴비는 여러 히어로들의 잔재와 빌런들이 지배하는 도시를 지나며 숱한 모험을 통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함정이었습니다. 호크아이는 살해되고 말지요. 로건은 레드스컬을 제압하고 겨우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요.
2부에서는 헐크 패밀리가 쳐들어와 가족을 학살한 것을 알게 된 로건이 클로를 꺼내 울버린으로 돌아온 뒤, 헐크 패밀리를 모두 죽이는 복수극이 펼쳐집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잔혹한 복수극이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북두의 권"이 떠올랐습니다. 무조건 몸으로 부딪혀 싸우는 육탄전 중심이라는 점도 비슷했으니까요. 하드 고어라고 불러도 무방할 작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작화는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마블 코믹스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고 화끈합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성공했지만, 가족이 죽어버려 복수한다는 이야기 구조는 서부극 느낌도 전해줍니다. "웨스턴 리벤지"와 분위기만큼은 아주 똑같더라고요. 목장이 중심이 된 배경 및 다른 소품들, 등장인물들의 묘사도 이런 느낌을 뒷받침해 주고요.

그런데 이 책 한 권만으로는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미국 만화 특유의 문제점이기는 한데, 히어로들이 어떻게 패배했는지, 헐크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 그의 패밀리는 왜 식인종 집단이 되었는지 등 기본 설정들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탓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히어로들의 잔재나 호크아이의 딸 이야기도 이야기에 제대로 녹아나지 못합니다. 솔직히 1부에 해당하는 호크아이와 함께한 모험 이야기는 일종의 추억팔이에 불과해요. 차라리 설명을 보강하고 2부 이야기에 치중하는게 이야기의 완성도는 더 높았을 겁니다.

파워 밸런스도 문제입니다. 1부의 최종 보스인 레드 스컬, 2부의 최종 보스인 헐크 브루스 배너 모두 울버린에게 너무 쉽게 제압되기 때문입니다. 2부의 헐크는 울버린을 산채로 잡아먹지만, 힐링 팩터로 부활한 울버린에게 내부부터 파괴되어 패배한다는 설정이라 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최종 보스답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헐크 패밀리와 헐크의 최후가 실망스러운건, 이렇게 허약한 놈들 때문에 울버린이 가족을 잃었다는게 어찌보면 황당하기 때문입니다. 진작에 다 쓸어버렸으면 됐잖아요?

그래서 충격적인 세게관과 꼼꼼하고 완성도 높은 작화를 제외하고는 좋은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종의 평행 우주를 다룬 외전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작화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지만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17/04/03

야구의 역사 - 조지 벡시 / 노지양 : 별점 2.5점

야구의 역사 - 6점
조지 벡시 지음, 노지양 옮김/을유문화사

제목처럼 야구에 대한 미시사 서적입니다. 19세기 후반 등장한 이후, 미국 전역을 사로잡기까지의 과정을 다룹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Chapter1 6단계 법칙
  • Chapter2 배트를 들고 있는 베르베르인
  • Chapter3 최초의 사업가
  • Chapter4 콜럼버스, 포카혼타스, 그리고 더블데이
  • Chapter5 한층 심해지는 전통
  • Chapter6 블랙삭스
  • Chapter7 베이브 루스
  • Chapter8 미스터 리키
  • Capter9 니그로리그
  • Chapter10 라디오 시대
  • Chapter11 전쟁
  • Chapter12 재키 로빈슨
  • Chapter13 이주하는 야구
  • Chapter14 자유 계약 시대의 도래
  • Chapter15 왜 양키스는 존재하는가
  • Chapter16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음한 야구
  • Chapter17 같은 경기, 여피풍의 경기장
  • Chapter18 누가 관리하는가?
  • Chapter19 네 가지 스캔들
  • Chapter20 10월의 퇴마의식

목차별로 해당 시기의 주요 이슈를 설명해주는 구성인데, 200여 페이지를 조금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차고 넘칠 정도로 상세합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글들도 많고요. 예를 들어 야구의 발상지 쿠퍼스타운과 야구의 아버지 애브너 더블데이의 신화는 날조된 것이다, 블랙 삭스 스캔들로 치명상을 입을 뻔 했지만 고맙게도 바로 베이브 루스가 등장하여 살아날 수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소소한 야구 관련 일화들도 볼거리에요. 슬라우터가 카디널스 계약서에 싸인한 이유는 사냥개 두 마리를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사냥개를 받은 첫날 두마리 모두 도망쳐 버립니다. 나중에 디지 딘도 똑같은 계약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슬라우터는 두마리 사냥개가 똑같은 놈들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지요... 이러한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들은 웃음과 추억을 자아내게 해 줍니다.

역사, 일화에 더해 유명 선수와 감독, 기타 야구인들 이야기도 많습니다. '프로 야구'라는 게임의 정의를 바꾸어 버린, 그래서 한 챕터 전부를 할애한 베이브 루스와 위대한 선구자 재키 로빈슨을 비롯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자유 계약의 선구자인 플러드에 얽힌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재판으로 선수 생활을 망치고 이후 외국을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암까지 걸렸다는 후일담이 씁쓸했기 때문입니다. 야구 세계화의 대표적인 예로 스즈키 이치로가 등장하는 것도 반가왔고요.

이렇게 야구의 역사를 일람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크로노스 총서' 시리즈의 한권으로 휴대하기 편하고 읽기도 쉬운 장정과 판형도 마음에 들고요.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야구의 역사가 아니라 "MLB의 역사"라고 해야 될 정도로 MLB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이 책에 소개된 것 보다는 야구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분량으로 언급해야 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최소한 양키스에 대해 할애한 한 챕터보다는 비중있게 등장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 야구라는 비즈니스에 있어 정말로 중요했던 역사적인 변곡점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 시합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희대의 명승부 이야기야말로 매니아를 끓어오르게 만드는데 말이지요. 같은 이유겠지만 기념비적인 기록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이 역시 조금 김이 빠집니다. 덕분에 포털 등에서 많이 보아온 "메이저리그 스타 열전" 류의 컬럼에 비하면 재미, 뜨거움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야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단, 굉장히 지엽적이고 한정적인 정보만 다루고 있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