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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6

역사로 남은 조선의 살인과 재판 - 이번영 : 별점 3점

역사로 남은 조선의 살인과 재판 - 6점
이번영 지음/이른아침

정조가 남긴 "심리록"을 기반으로,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 내용을 덧붙여 정조 당시 대표적 옥사 18건을 추린 후 사건의 전말과 소송의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입니다. 참고로 "심리록"은 정조가 자신이 관여한 모든 중범죄 소송에 대하여 그 과정과 결과, 판단의 근거 등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긴 뒤, 이를 묶어 편찬한 종합적인 형사소송 판례집이라고 하네요.

무려 1,850건이나 되는 "심리록" 사건 중 대표적인 사건을 꼽아서 수록한 덕분에 기본 재미는 보장됩니다. 소설 형식으로 쓰여져 읽기 편하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고요. 정조 시절의 형사 사건에 대한 수사 및 심문, 최종 판결에 이르는 과정이 사건별로 상세하게 소개되어 자료적인 가치도 아주 높습니다.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후진적인 끔찍한 사건들, 그리고 두 번째는 그것과 비교되는 생각보다 놀라울 정도의 치밀한 과학 수사 및 판결 과정입니다.

문중 며느리가 간음의 소문이 났다는 이유로 친오빠까지 합세하여 물에 빠뜨려 죽인 사건, 소문으로 정절을 의심받은 여인이 소문을 낸 원수를 참혹하게 살해한 사건, 동네 천것에게 희롱당해 팔을 잡힌 여인이 작두로 자신의 팔을 자른 사건, 아버지의 원수를 직접 죽이고 그 간을 꺼내어 씹고 창자를 몸에 둘렀다는 엽기적인 복수극 등, 소문 중심의 동기와 여성의 정절과 인륜을 법보다 중시 여기는 문화에서 이어지는 끔찍하고 잔혹한 범행은 굉장히 후진적입니다.

반대로, 범인을 잡은 후 실제 판결을 내리기까지 심지어 10년 이상 걸릴 정도로 집요하게 사건을 심리하는 과정은 나름 합리적이면서도 인간적이라 대비됩니다. 일단, 수사는 "무원록"을 기반으로 한 검시가 기준이 됩니다. 예전에 "신주무원록에 대한 책"은 읽은 적이 있지만, 이 책이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무원록이 활용되었는지 설명되는 덕분에 훨씬 쉽고 이해하기가 편했습니다. 무원록에 '만삭 여인의 태아가 다치거나 죽은 경우'까지 수록되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그 상세함과 깊이에 새삼 놀랐습니다. 

이른바 "상명의 율", 즉 누군가의 목숨은 다른 목숨으로 대신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지만, 사형만큼은 극도로 신중하게 판단한 후 임금이 직접 지시와 판결을 내리는 모습도 돋보입니다. 목숨을 중히 여기는 모습에서 후대에 명군으로 알려진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헛점이 발생한 경우 관찰사 등 관계자까지 처벌하는 꼼꼼함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나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원수의 간을 씹고 창자를 꺼낸 복수극'의 원인이 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현감과 부사가 제대로 형사사건으로 처리하지 않은 탓에 사적인 복수극이 일어났다는걸 명확히 밝힌 후, 현감과 부사를 사헌부에서 구속·처벌케 하는 판부를 내린 것이 대표적입니다. "격쟁"이라는 제도를 통해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고하는 행위도 지금보다 낫더군요.

물론 이러한 판결 과정도 후진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심문과 취조는 형벌 중심이라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덕분에 취조 중 용의자, 범인이 장독으로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시대를 감안하면 당연했을 수 있습니다. 조카며느리 일가를 도둑으로 몰아 일곱 명이 자살하게 만든 사건의 범인 이경휘에게 '장일백으로 엄중히 처벌하라'라는 처벌로 '엄중히' 처벌받은 이경휘가 관문도 벗어나기 전 동헌 뜰에서 숨이 끊어지는 속 시원한 경우도 있어서 필요악이었다는 생각도 들긴 하고요.

판결을 내리는 데 기준이 되는 "대명률"에 있는 몇 가지 조항들도 후진적입니다. '부모를 죽인 현장에서 살인자를 죽이는 복수는 죄가 되지 않는다.' 처럼요. 상식적으로는 당연한 일이긴 한데, 이를 법전에서 최상위 조항으로 정해놓았다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악용될 소지도 있고요. 

그리고 정조가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실무자들이 철저히 조사하여 올린 보고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하거나, 보고와 다른 본인 생각대로의 판결을 내리는 건 좋아 보이지 않더군요.

하여튼, 이러한 점을 종합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사건을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가장 복잡하고 최종 판결까지 오래 걸린 사건인 "04. 자신의 목을 세 번이나 찔러 죽은 의문의 자살 사건"입니다. 시어머니의 구박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박여인 사건입니다. 사건부터가 후진적이지요?

그런데 시체를 검시하는 과정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무원록"을 토대로 한 검시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펼쳐지는 덕입니다. 바보 같은 의견도 있지만 - 치명상이 세 번임에도 자살로 판단한 것 등 -, 목 맨 자국이 초검에서는 나타났으나 재검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죽은 뒤 목을 매어 목의 혈맥이 돌지 않은 까닭이라 밝히는 것 처럼 현대 과학 수사 못지않은 의견도 등장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시어머니와 간통남이 둘의 행각을 며느리에게 들켜 살해한 것이 진상인데, 간통남 조광진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밤에 상복을 입고 방문했다는 일종의 트릭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당시 예법상 상제로 상복을 입고 다니던 이차망이 장기간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만, 수사 중 관계자의 증언으로 결국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도 볼거리였습니다. 간통남으로 몰린 이차망이 석방 전 옥사하고, 진범인 간통남 조광진도 심문 중 사망한다는 것 역시 앞서 말씀드린 형벌 중심의 후진적 취조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고요.

한마디로 후진적 사건을 해결하는 과학 수사와 단서를 조합하는 추리, 후진적 판결 과정 모두가 결합된 이야기였습니다. 

그 외 다른 이야기들 모두 놀랍고 흥미진진하다는 점은 대동소이합니다. 소설 형식으로 구성되어 읽기도 편하고요. 조선 시대(후기)의 형사 사건 수사와 판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셔야 할 책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6/04/24

4의 재판 - 도진기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판사가 문제다. 인간의 한계다.

살인에 걸래?가 형사 재판의 물음이라면, 살인에 걸래, 교통사고에 걸래?가 민사 재판의 물음입니다.

선재는 약혼자 지훈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범인 양길의 유죄 판결을 기대했다. 그러나 양길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정황 증거 외에 직접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양길은 형사 재판에서의 무죄 판결을 이유로 19억원에 이르는 보험금 수령에까지 성공했고, 선재는 절망에 빠졌다...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로 유명한, 검사 출신 작가 도진기의 신작 장편입니다. 그러나 시리즈 작품은 아니고, 정통 추리 소설도 아닙니다. 한국 사법 시스템의 허점과 판결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사회파 소설에 더 가깝습니다. 

여러 유명 사건 -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인 사건, 여수 금오도 차량 추락 사망 사건 - 의 판례를 바탕으로 한, 독자의 분노를 자극하는 양길의 완전범죄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양길은 누가 봐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지만, 살인을 저질렀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이후 민사소송을 통해 거액의 보험금까지 타내게 됩니다. 뉴스를 통해 비슷한 사건들을 접해는 왔었지만 왜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지는 몰랐는데, 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검사 출신 작가답게 판사와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고발하는 시선도 분명합니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차이를 비교적 쉽게 설명해 주는 점도 좋았고, 법률가 출신 작가다운 소재 활용도 돋보입니다. 선재가 양길 측 수사 기록을 복사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복사 현장에서 적발되었지만 복사지가 스스로 구입한 자신의 물건이고, 변호사 사무소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법 침입이 성립하기 어려워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은 신선했어요.
양길이 지훈의 어머니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는 부분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죄가 선고된 재판정에서 살인자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의 명예 훼손이 성립한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이는 아들을 잃은 피해자 측이 가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줘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여 양길이라는 인간의 사악함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입니다.

양길이 일사부재리가 적용되지 않는 필리핀 현지에서 체포된 뒤, 유죄판결을 받는 반전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다만 소설 자체가 아주 잘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개가 심심한 탓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선재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고요. 형사재판 과정에서 선재는 철저하게 방관자에 머뭅니다. 피해자 측 유족인 이상 법정 공방에 직접 개입할 수 없고, 실제 재판은 검사와 양길 측 변호사 사이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형사재판 후에는 문병일의 변호사 사무소에 위장 취업해 사건 자료를 복사해 빼돌리는 활약을 보여 주지만, 그것 역시 재판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이래서야 재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양길의 재판 과정도 분량에 비해 밋밋합니다. 법정극에서 기대해 봄직한 강한 반전이나 드라마틱한 공방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양길의 무죄를 뒤집을 만한 뚜렷한 전환점이 없고, 판사의 판단이 전부인 흐름이 이어져 답답합니다. 

등장인물 묘사도 아쉽습니다. 선재가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이라는 설정은 결과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맥거핀에 불과해요. 심리 묘사 역시 진부하고요. 게다가 장인규나 서찬휴는 작가 대신 법률 이론과 재판의 불합리함을 설명하기 위한 스피커에 불과합니다. 전혀 생동감을 느낄 수 없었어요. 둘의 이야기는 비슷한게 반복되어 지루하게 느껴지고요.

결말도 신선하지만 갑작스럽습니다. 선재가 불법적으로 총을 손에 넣어 직접 복수를 할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건 불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형식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양길의 체포도 묘사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없고, 결국 양길이 필리핀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결말도 한 줄 설명에 그치며 양길 시점의 묘사가 전무해서 아이디어에 비하면 잘 쓴 결말이라고 하기는 어렵네요.

그리고 검사 출신으로 판사의 신성불가침(?)성에 태클을 걸고 싶어한 작가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작품이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개된 사건처럼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판결도 있지만, 시체가 없거나 직접 증거가 없어도 유죄 선고가 내려진 사건도 있으니까요. 부산 시신없는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법과 재판의 허점을 드러내는 사회파적인 성격, 형사와 민사의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 주는 점, 그리고 법률가 출신 작가다운 세부 설정은 분명 장점이지만 소설로는 영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대폭 줄이고, 등장하는 사건은 작중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지 말고 뒤에 별도로  소개하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덧붙이자면,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의 "4의 재판"은 3심제를 벗어나더라도 네 번째 재판이 남아있다는 의미로 쓴 게 아닌가 싶네요.


2024/07/06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세기의 재판 이야기 - 장보람 : 별점 2.5점


딸아이 논술용 교재인 청소년용 법 관련 미시사 서적. 제목 그대로 어떤 식으로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12개의 재판에 대해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재판 및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소크라테스의 재판 : 다수결이 과연 옳은 것인지?
  2. 토머스 모어의 재판 : 현행 법과 어긋나더라도, 옳은 양심을 처벌할 수 있는가?
  3. 세일럼 마녀 재판 : 제대로 된 근거 없이 타인을 비방하는 것에 대한 문제
  4. 드레퓌스 재판 : 억울한 상황에서는 여론의 힘도 중요하다
  5. 2차 대전 전범 재판 : 전쟁에서 일어났던 범죄를 어떻게, 그리고 왜 처벌해야 하는가?
  6. 로자 파크스 재판 : 인종 차별 악법 없애기
  7. 미란다 재판 : 법에서는 결과 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
  8. 제인 로 재판 : 낙태는 허용되어야 하는가?
  9. 워터게이트 재판 : 대통령도 탄핵될 수 있다
  10. 카렌 앤 퀸란 재판 :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지?
  11. 에린 브로코비치 사건 : 부도덕한 기업과 싸우는 방법
  12. 벌링턴 산업 재판 : 성희롱은 기업도 책임져야 한다.
주요 쟁점들 모두 한 번 생각해볼만한 것들이며, 과거 사례를 현대에 빗대어 현대 재판 설명도 곁들여 주고 있는게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 형사 소송과 민사 소송의 차이라던가 3심 재판의 기능 및 조건, 중재 등 여러가지 현대 법률 용어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미란다 재판 이야기에서처럼 국내 판례를 예시로 들어주는건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피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고 강제 연행하여 음주 측정을 한 결과는 위법한 수사이므로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이를 통해 '공권력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는걸 알려주는데, 범죄임이 명확한 상황에서도 이런 한계를 두는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생기네요.
에린 브로코비치 사건을 통해 중재 절차에 대해 알게된 것도 수확입니다. 법원의 판결 없이 당사자들끼리 합의하여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걸 그동안은 잘 몰랐었거든요. 이런 방식은 크게 조정과 중재가 있는데 조정은 당사자 한쪽 또는 양쪽이 요청해 제3자를 조정자로 선임하여 해결 방안을 제시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 중재는 반드시 '쌍방이 요청'한 후 중재인이 판정하면 양 당사자 동의 없이 바로 받아들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랍니다. 우리나라도 민사 조정 신청 절차가 별도로 있고, 소송 비용도 1/10이라고 하니 필요하다면 적극 고려해봐야 겠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재판보다는 재판 관련 상황에 더 촛점이 맞추어진 사건이 너무 많습니다. 대표적인게 드레퓌스 재판입니다. 이는 누명을 쓰게된 상황, 판결을 받은 뒤 벌어진 일련의 과정 등이 재판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재판 이야기라고 보기 어려워요. '인종 차별', '낙태권', '존엄사' 등도 해당 이슈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재판'이라는 수단으로 설명할 뿐입니다. 
또한 절반 이상의 내용이 현대가 무대라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역사'를 바꾼 재판이라면 과거 이야기부터 소급해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현대 재판을 가지고 설명하더라도, 미국 사건만 가지고 온 것도 불만스럽고요. 재판들도 어느 정도 수준을 맞춰주었어야 했습니다. '벌링턴 산업 재판'이 여기 사건들과 어깨를 나란히할만한 사건인지는 솔직히 갸우뚱합니다.
소크라테스 재판 이야기에서 '다수결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답이 없이 다른 법적 이론 - 시민 불복종, 저항권 - 을 설명하는 것도 경우에 맞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저런 이슈를 한번 쯤 고민해봐야 하는 청소년이라면 모를까, 제 기대에는 별로 값하지 못했습니다.

2021/05/29

다섯 번째 증인 - 마이클 코넬리 / 한정아 : 별점 2.5점

다섯 번째 증인 - 6점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키 할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담보대출 관련 민사소송 변호를 시작했다. 그런데 의뢰인 중 한 명이었던 리사 트레멀이 자신의 집을 압류하려 한 은행가 미첼 본듀란트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자, 다시 형사 소송 변호에 뛰어드는데...

해리 보슈를 창조했던 마이클 코널리의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큰 인기를 끌어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매튜 매커너히 주연 영화로 발표되기까지 했었지만, 마이클 코널리의 전작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동안은 손대지 않았었습니다. 엄청난 두께도 큰 진입 장벽이었고요.

하지만 읽어보니, 그동안 진작 읽지 않은게 후회될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재미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법정물로 완벽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입니다. 리사 트레멀 재판에서 변호사 미키 할러가 승리하기 위해 프리먼 검사와 벌이는 치열한 법정 공방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에요. 또 미키 할러는 재판 과정에 철저한 작전을 세워서 변칙적이고, 어떻게 보면 불법에 가깝거나 비열해 보이는 짓까지 서슴없이 동원합니다. 단순히 증거 몇 개로 난타전을 벌이는 수준이 아니고요. 그래서 더 치열하고, 처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생하게 묘사되는 미키 할러 캐릭터도 인상적입니다. 미키 할러는 피고인이 정말 무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거든요. 돈을 받은 이상, 의뢰인 승리 - 여기서는 무죄 판결 - 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렇게 기브 앤 테이크에 충실한 모습, 그러면서도 변호, 그 중에서도 형사 사건 변호라는 직업적 전문 분야에서의 출중한 능력은 '페리 메이슨'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함께 일하는 수족과 같은 동료들과 유들유들하고 능글맞은 성격, 엄청난 말주변까지 더해져 있으니까요. 그야말로 페리 메이슨의 적자인 셈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름대로 현실적인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피해자 미첼 본듀란트는 키가 180cm가 넘어서, 키가 160cm밖에 안되는 의뢰인 리사가 망치로 정수리를 가격해서 살해하는건 어려웠다는 증언이 리사의 무죄 평결에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리사는 풍선을 이용해서 본듀란트가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보게 만든 뒤, 뒤에서 망치로 가격했던 겁니다. 

그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 미키 할러가 복수하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리사가 전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은닉했다는걸 폭로하고, 본인은 더 이상 변호사를 하지 않고 검사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정말 제대로 된 복수를 보여줄 것 같아 두근두근해지더라고요.

그러나 리사가 진범이라는 반전과 트릭은 좋았지만,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동기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리사가 본듀란트를 급작스럽게 죽인 이유가 딱히 설명되지 않거든요. 작 중 미키 할러의 변론을 통해서도 설명되지만, 미키 할러에 의해 리사의 집 압류는 늦춰질 예정이었지요. 작장을 잃은건 한참 전이니 그 때문에 갑작스럽게 살의가 폭발했을리도 없고요. 우발적인 범행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풍선을 이용해서 사건 현장을 꾸민게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미키 할러의 재판 전략도 복잡하지만, 실상 들춰보면 그렇게 알맹이가 많지는 않아요. 검찰에서 내민 증거는 많다지만, 실제로 리사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직접 증거는 없기 때문입니다. 리사가 쓰던 정원용 장화에 피해자 피가 아주 미량 묻어있던게 거의 유일한 증거지요. 흉기인 망치는 리사 집에 있었던 것이라는게 증명되지 못했고, 오히려 장화와 망치가 놓여있던 차고가 잠겨 있지 않았다는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탓에 직접 증거로 보기는 애매해 졌으니까요. 그러니 장화에 묻은 피 정도로 리사를 살인범으로 단정 짓는다는건 무리로 보였습니다. 제가 배심원이었다면,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을거에요.

그리고 앞서 설명드렸던 결정적 트릭, 즉 키가 큰 피해자 정수리를 때리기 위해 풍선을 이용했다는 트릭도 조금만 생각해봐도 억지스럽습니다. 검시 결과, 피해자 무릎이 깨져 있는걸로 드러나고 이로써 고개를 뒤로 젖힌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부각됩니다. 그러나 고개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정수리를 가격당한다면, 당연히 뒤로 넘어가서 뒷통수가 깨질 겁니다. 무릎을 다칠 이유는 없어요.

위탁 추심업체 ALOFT의 수장 오파리지오가 본듀란트로부터 협박을 받아 그를 죽였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미키 할러의 작전도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본듀란트의 협박(?)성 편지는 딱히 큰 위협이 되지 않는걸로 보였고, 실제로 오파리지오가 회사를 매각하는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요. 미키 할러가 법정에서 오파리지오가 마피아와 관련이 있다는 증언을 끌어낸 뒤 그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장면도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리사가 사건 현장을 잘 빠져나가고, 대부분의 증거를 인멸하는데 성공했다는 것도 설명이 부족했던건 마찬가지에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니,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만요.

그 외 전개에서 불필요한 부분도 많습니다. 미키 할러의 전처 등 사건 외적언 이야기라던가 미키 할러를 깡패들을 시켜 폭행하는 이야기, 잔챙이 3류 영화 제작자 허브 달의 존재, 신참 변호사 애런슨의 정의에 대한 고민 등은 이야기를 길게 늘일 뿐, 딱히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킬링 타임용 펄프 픽션으로는 적당했습니다. 제 2의 페리 메이슨 자리를 차지하는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책 보다는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낸 영화로 보는게(나온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2024/06/05

Q.E.D. iff 증명종료 23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3.5점

Q.E.D Iff 증명종료 23 - 8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전통의 시리즈. 오랫만의 수작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화"
가나는 캐스터네츠를 돌려주기 위해 플라멩코 댄서 지망생 타케다 사키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한달 쯤 전 사라졌다. 애인 유키토 때문에 엮인 뒤 친해진 부잣집 딸 마츠자와 리카의 별장 파티 직후였다. 리카는 사키에게 매료되어 절친이 되었지만, 강하고 폭력적인 성격 때문에 주변 인물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은폐를 한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던 리카는 가나에게, 자신에게 동화된 사키를 위해 거금을 주어 그녀가 스페인으로 유학가도록 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토마는 사키 방에 있던 수상한 인형, 사키가 리카를 협박했던 증거가 담겨있는 스마트폰을 회수하지 않은 것, 유키토에게 더 이상 사키와 리카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협박한 것, 사키가 스페인으로 간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마지막으로 캐스터네츠를 누군가 훔쳐간 것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낸다.


리카가 아니라 사키가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이후 리카로 살아가게 되었다는건 누구나 예측 가능한 진상입니다. 앞서 둘이 닮았다는 묘사도 등장하니까요. 그런데 이를 위한 단서와 설명은 부족했습니다. 유키토만이 둘 모두를 사귀었어서 둘을 구분할 수 있을터라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것 부터가 비현실적이에요. 친한 사람이 그 외에 없었을까요? 리카에게는 부하는 물론 가족도 있었습니다. 모아서 파티를 열 정도로 친구도 많았고요. 이들 눈을 모두 속이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사키 자신이 스페인으로 떠난 것으로 소문내고 꾸몄다면 모든게 깔끔했습니다. 구태여 자신이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여지 - 침실에 있던 인형과 현장에 남겨진 스마트폰 - 를 남겨둘 필요는 없었어요. 수사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단순 실종과 살인 사건은 그 수준이 다르잖아요?
가나가 캐스터네츠를 보여주었을 때 리카(로 변장한 사키)가 플라멩코 방식으로 캐스터네츠를 사용한게 중요한 단서라는 것 역시 설득력이 약해요. 리카는 사키의 플라멩코 공연을 보았으니, 캐스터네츠 사용법은 당연히 알 수 있었을테니까요.

그래도 캐스터네츠에 지문이 남겨졌기 때문에 그걸 훔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착안은 좋았고, 마지막에 현장에서 발견한 사키의 핸드폰을 리카(로 변장한 사키)가 지문인식 해제하도록 만들어 리카가 사키라는걸 밝혀내는 장면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잘 어울리는 깔끔한 마무리였어요.
덕분에 별점은 3점입니다. 앞서의 전개만 좀 더 타당하게 만들어 주었더라면 별점 4점 이상도 충분했을텐데 아쉽네요.

"형식적 진실"
우마오이 토비나가의 사후, 유산이 네 형제와 집사에게 고르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막내는 불륜으로 입적한 탓에, 형과 누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유산 분배 현장에서까지 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현장을 목격한 토마와 가나는 막내 쇼료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장남, 차남은 피해자가 먼저 화장실에서 폭행을 저질러서 방어한 것이라 주장했다. 가나가 반격했지만, 형제가 다시 입을 맞추고, 증인이 될 수 있는 집사 코바도 사건 이후 행방불명 상태라 쇼료는 피해자임에도 합의금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다.

민사의 '형식적 진실주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를 통해 잘 보여주는 작품. '형식적 진실주의'는 쌍방 서로 다툼이 없이 합의한 부분은 진실로 다루는 민사재판의 원칙입니다. 반면 형사 사건은 합의에 그치는게 아니라 다각적으로 사실을 분석, 검증하는 '실체적 진실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작 중 쇼료는 피해자임에도 형들의 위세에 눌려 합의하고 말았습니다. 아를 통해 형들이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다는게 '형식적 진실주의"에 따라 법률적으로 입증되었고요. 하지만 이는 쇼료의 큰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형들과 집사 코바에 의해 살해당했다는걸 알아챈 뒤, 복수에 나섰던 겁니다. 먼저 화장실에서 코바를 살해하고, 형들에게 자연스럽게 폭행 당하도록 설계했지요. 이후 코바의 시체가 발견되고, 형사 사건 수사를 통해 화장실이 범행 현장이라는게 밝혀집니다. 그리고 앞서의 민사 소송 합의 내용을 통해, 쇼료는 알리바이가 생겨나고 형제가 범인이 되어 버립니다. 화장실에 먼저 들어간 사람이 범인일 수 밖에 없거든요. 아무리 민사지만, 다른 증거가 없으니 경찰도 이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토마도 형제가 이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완벽한 계획입니다!
쇼료의 어머니를 살해한 트릭도 '폭포'라는 현장을 잘 이용하고 있고요.

형제가 화장실에서 쇼료에게 반드시 시비를 걸었으리라는 보장이 부족하다는건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만, 학습 만화로서도 우수한 Q.E.D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추리적으로도 빼어난 오랫만에 보는 수작이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2025/03/24

법정유희 판례 검토

"법정유희"를 읽고, 가오루가 고발했을 때 판결이 어땠을지 궁금하여 ChatGPT에 해당 사건의 판결을 요청해 보았습니다. 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피고 1 (여학생 - 무고 및 명예훼손)

  • 징역 3~6년
  • 무고죄 및 명예훼손죄 적용.
  •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으나, 법적 인과관계 인정 여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질 수 있음.

2. 피고 2 (담당 검사 - 부실 수사 및 직권남용 의혹)

  • 형사처벌 가능성 낮음, 대신 감찰 및 징계 조치 예상
  • 기존 판례에 따르면 직권남용죄 적용이 어려우나, 감찰을 통해 정직·해임 등의 징계 가능성 높음.

3. 기존 유죄 판결 번복 가능성 (재심 청구)

  • 재심 청구 후 무죄 판결 가능성 큼
  • 여학생의 무고가 밝혀지면, 피해자의 유족이 재심을 청구해 판결을 번복할 수 있음.
  • 기존 판례(익산 택시기사 사건 등)와 유사한 사례로, 무죄 선고 가능성 높음.

4. 국가배상청구 가능성

  • 유족이 국가배상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받을 가능성 높음
  • 검찰의 부실 수사 및 무고한 사람에 대한 기소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으므로 국가배상법에 따라 보상 가능하며, 기존 사례를 보면 수억 원대 배상 판결이 나온 전례가 있음.

결론적으로, 한국 기준으로 미레이는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으므로 징역형을 선고받을 테고, 검사측은 특별한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 선고를 받고, 국가 배상을 받는 게 현실적인 결론으로 보입니다.

이 정도 형량이라면 직접 복수를 꿈꾼 게 아예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죽을 필요가 있었는지는 좀 애매하군요. 결론에 그렇게 큰 차이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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