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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11인이 있다! - 하기오 모토 / 서현아 : 별점 2.5점

11인이 있다! - 6점
하기오 모토 지음, 서현아 옮김/세미콜론

애니메이션으로 미리 접했었던 작품. 생각해보니 하기오 모토 작품을 책으로 읽는 것도 처음이네요. 유명세에 비하면 읽는 것이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한데, 뭐 국내 소개가 늦은 탓이 크겠죠? 여튼 표제작 "11인이 있다!"와 "동쪽의 지평선 서쪽의 영원"이라는 두 편의 중편과 함께 권말 보너스 만화 수준의 "스페이스 스트리트"라는 짤막한 개그 꽁트가 실려있더군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오래된 걸작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시간이 흐른 탓에 명성만큼의 재미나 가치를 느끼기는 어려운건 모든 고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일이겠지요. 가끔, 정말이지 아주 가끔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 있기는 한데, 이 작품은 그럴 정도의 명작은 아닙니다.

아울러 이 작품을 좋은 번역과 디자인으로 국내에 소개하여 주신 출판사 세미콜론에게는 진심으로 감사드리나 가격이 너무 쎄요. 정가가 거의 만 원이라니! 할인된 금액으로 구입하긴 했지만 이른바 "가성비" 측면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한 번쯤 볼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한 만큼 아직 읽지 못하신 장르문학(만화) 팬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지 나름 시대를 앞서간 반짝이는 부분은 확실히 있으니까요. 가격 부담만 없으시다면...

간단한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1인이 있다!"

동명 애니메이션의 원작으로, 우주대학 입학 시험을 그린 작품입니다.

10명의 수험생이 시험을 치루는 우주선에 11명의 수험생이 타고 있다는 기발한 설정 하나만큼은 최고입니다. 고립된 단체 속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설정은 흔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한 명이 수상하다!"라고 알려주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작품은 보기 드무니까요. "우주해적 코브라"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소위인지 중위인지가 두 명이라 둘 중의 한 명이 가짜다! 라는 이야기였는데...
어쨌거나 이 설정 하나 덕분에 우주선에 닥치는 갖가지 위기에서 서로 단합하기 어렵고 누가 11번째인지를 찾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기에 단순할 수 있는 입학시험이 흥미롭게 흘러가게 됩니다.

또 천편일률적이기는 해도 몇몇 캐릭터는 아주 괜찮았어요. 특히 여성이 될지 남성이 될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설정의 히로인 프롤의 독특함이 기억에 남네요. 여러 가지 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히로인입니다. "남자"가 될 것을 주장하는 히로인이라니!

허나 시대를 거스르기는 힘들었던 것일까요? 솔직히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제일 큰 문제점은 초반 테스트에서 꽤나 강력해 보였던 타다의 초능력이 왜 먹히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되지 않는 점입니다. 여기서 11번째는 충분히 밝혀졌어야 하지 않나요?
또 흥미로운 전개에 비해 11번째가 결국 자백(?)에 의해 밝혀진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설득력은 있지만 시시했거든요. 뭔가 단서라도 던져줘서 독자에게 함께 추리하게 만들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죠.

결론적으로 흥미로운 설정에 비하면 전개는 부족하고 결말은 시시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재미있게 감상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이러한 단점이 과연 시대가 흐른 탓인지, 아니면 애니메이션은 각색을 잘 했었던 것인지 궁금하네요.

"동쪽의 지평선 서쪽의 영원"

"11인이 있다!"의 후일담으로, 우주대학에 합격하여 훈련받는 타다 - 프롤 커플이 마야왕 바세스카의 초대에 응해 마야에 방문하나 급진파 - 전통파의 충돌로 전쟁 목전의 상황에 처한다는 이야기로 전형적인 SF 판타지 군웅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일 캐릭터를 등장시켜 약간 하드한 SF에서 판타지로 이어지는 구조는 초인 로크의 "신세계전대" - "빛의 검" 구성과 유사하네요.

그러나 이 작품은 "11인이 있다!"보다도 더 문제가 많습니다. 행성 마야의 위기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악당들의 음모도 유치하기 그지없으며,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과 그 와중에 낀 타다와 프롤의 행동 역시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또 타다와 프롤이 대체 이 사건에서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지도 애매하고, 입학 동기인 4세의 죽음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다른 동기들의 활약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 후일담치고는 부족한 점도 많아요. 전혀 별개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스페이스 스트리트"는 정말이지 권말 보너스 만화 수준이라 별점을 주기는 애매합니다만, 후일담 성격으로는 "동쪽의 지평선 서쪽의 영원"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재미도 있고요.

2019/11/24

엘데가인 - 인도하는 신 1~3 - 츠부라 히데토모 : 별점 2.5점

아먀야데와 루아이소테라는 두 제국이 10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날개달린 용족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소년 장은 우연히 루아이소테의 비행정에서 떨어진 류미르라는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엘데가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불사신 소녀로, 스스로 세계의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루아이소테의 가로우즈 준장이 노리는 탓에 다시 납치되었다.
모진 고초를 겪던 류미르를 장이 대활약하여 구조했지만, 엘데가인의 기동을 멈추기 위해 찾아간 죽음의 섬에서 결국 장은 죽고 류미르는 가로우즈에 흡수되고 말았다.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가로우즈는 세계를 멸망시키고 모든 동식물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새 시대의 창조주가 되려고 나섰고, 용족이 초능력으로 가로우즈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상황에서 장은 류미르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재생되어 가로우즈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데....

츠부라 히데토모의 판타지 액션 만화입니다. 국내에서는 잊혀진 전설의, 비운의 명작 쯤으로 추억되고 있는 덕분에 절판된 국내판 해적판의 중고가가 엄청난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지요.
"우주 영웅 전설"과 "사일런트 메비우스" 정도만이 그나마 이름을 남긴 가도카와 계열의 월간 코믹 COMP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고등학생 때인가.... 강남 고속 터미널에 있었던 일본 서적 판매 서점에서 단행본으로 구입해 보았던 책인데,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어 리뷰를 남깁니다.

그런데, 솔직히 다시 보니 '잊혀진 비운의 명작'은 절대 아닙니다. 전형적인 '보이 미트 어 걸' 이야기의 재탕이니까요. 게다가 "라퓨타"나 "미래소년 코난"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기도 했고요. 여주인공 류미르가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형 로봇과 함께 엮여 있으며, 그녀가 기묘한 최종 병기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설정은 이 두 작품과 판박이입니다. 현재의 세계는 과거의 고대 문명이 멸망한 뒤의 세계라는 설정, 판타지와 SF가 기묘하게 섞여 있는 묘사들도 '미야자키 월드'의 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고요. 심지어 지배자인 '흑룡'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힘을 자신이 손에 넣어 세계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가로우즈 준장 역시 '무스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형적인 미야자키 악당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월드와의 분명한 차이점은 존재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장이 '순동술'이라는 기술을 쓸 수 있는 초능력자로 액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의 형인 소시유와 시안 등 술사 동료들, 가로우스와 루아이소테 제국의 술사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초능력자들의 대결은 별다른 새로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바벨 2세"이후 "초인 로크" 등 수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을 또 보여줄 뿐입니다. 오히려 가로우즈가 마지막에 융합한 류미르와 분리되며 '칩'을 잃은 뒤 살아있는 고깃덩어리같은 형태로 폭주하는 장면 등에서 당대에 큰 충격을 안겨다주었던 "아키라"의 영향만 강하게 느껴지고요.

이야기도 많이 허무합니다. 달랑 3권 분량인데, 1권과 2권에서는 장이 납치된 류미르를 구한다, 다시 류미르가 납치된다, 그녀를 다시 구해온다, 다시 납치된다...만 반복되며 3권에서는 가로우즈와 장이 파워업하여 일기토를 벌이는 내용이 전부라 밀도가 높다고 할 수 없으며 독특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술사들의 개성을 모두 다 잘 살렸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지금도 가끔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상적인 작화 때문일 겁니다. 꼼꼼한 펜터치가 돋보이는 정성 가득한 아날로그 시절의 작화로 작가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작화로 그려낸 액션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정말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내고 있거든요. 주요 등장인물 및 몬스터까지 아우르는 캐릭터 디자인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류미르가 굉장히 귀엽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류미르의 매력이 작품의 절반 이상은 충분히 차지한다고 생각되네요. 솔직히 3권에서 장이 파워업한 뒤 급작스럽게 성장한 외모는 전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요.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았고, 시대를 뛰어넘을만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신인급 작가가 정성들여 그린 작화와 통통 튀는 매력이 넘치는 등장인물들, 화려한 액션 모두 평균 이상이지만 기본적인 이야기에서 참신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시대에 이름을 남기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느끼게 해 주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08/21

내이름은 콘래드 (This Immortal) - 로저 젤라즈니 / 곽영미, 최지원 : 별점 4점

내 이름은 콘래드 - 10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곽영미.최지원 옮김/시공사

지구가 핵전쟁으로 거의 멸망하고 타이탄과 화성 등지에 이주해 있던 이주인들이 외계인 베가인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연명하여 지구도 베가인들과 테일러에 있는 부재자 정부를 통해 타격받지 않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지배되는 시기.
지구 정부의 예술 유적 문서 보존국의 국장 콘래드 노미코스는 코르트 미슈티고라는 중요한 지위의 베가인의 지구 관광을 가이드할 것을 명령받고 래드폴이라는 저항 단체의 수장 도스 산토스와 경호원 하산 등 수상쩍은 인물들과 이집트와 그리스 등을 경유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콘래드 노미코스는 수백년을 살아온 인물로 일찌기 래드폴을 결성하여 지구정부와 베가인들에 대항했었고 그 이외에도 수많은 전설을 남긴 인물. 그는 이 여행에 뭔가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미슈티고의 경호를 강화하지만 수많은 위험이 그들을 기다리게 되는데...


젤라즈니 선생의 첫 장편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몇번 한 것 같은데 지금 와서 읽었다고 하니까 좀 늦은 감도 있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어쨌건 완독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다른 장편이었던 "신들의 사회"는 동양권, 그 중에서도 주로 인도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리스 신화 중심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인 콘래드의 설정 -불노불사의 인물인것 같다는 것과 타고난 괴력과 체력, 그리고 독특한 외모- 은 그리스 신화의 한 영웅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고, 콘래드가 외계인 관광 가이드(?)를 하며 펼치는 괴물, 식인종들과 벌이는 모험 역시 헤라클레스의 모험과 굉장히 유사하죠. 심지어 식인종 우두머리의 이름은 "프로쿠루스테스" (침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죽였던 신화속 악당) 이기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신들의 사회는 신들 그 자체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비해 이 작품은 "인간" 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파워, 그리고 불노불사의 존재라는 것은 물론이고 한 개인이 범 우주적인 거대한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 자체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자기 자신이 시도한 노력이 지금 와서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전개는 달리 생각해 본다면 "초인 로크"와 가장 비슷할 것 같네요. 히지리 유키가 이 작품에서 뭔가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개인적으로는 콘래드가 자신의 신성이나 영웅성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 남은 이후에 장편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체적인 스케일 자체는 작아졌지만 오히려 더 현실감있게 와 닿는 설득력있는 전개가 된 것 같거든요. 외계인에 대항해 싸우는 슈퍼 히어로물보다는 전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들더군요. 뭐 중간중간에 불필요한 액션 장면이 너무 길고 특히 "흑수"라는 존재와의 마지막 사투는 너무 우연에 의지하는, 뜬금없는 감이 있지만 읽는 재미는 확실한, 젤라즈니 선생의 필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뒷부분에 같이 수록된 "프로스트와 베타" 역시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SF적으로 풀어낸 걸작이죠. 물론 저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수록된 버젼으로 이미 읽긴 했지만 이 책에는 번역가가 관련된 정보를 잘 제공해 주고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 같네요. 하여간 아직 젤라즈니 선생의 글을 접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20/01/31

라멘이 과학이라면 - 가와구치 도모카즈 / 하진수 : 별점 3점

라멘이 과학이라면 - 6점
가와구치 도모카즈 지음, 하진수 옮김/부키

라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그 실체를 밝혀나가는 책입니다. 음식 관련 과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이 풀어낸 라멘에 관련된 내용은 크게 아래의 아홉 가지 항목입니다.

  • 1장_무엇이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가?
  • 2장_해장 라멘이 더 맛있는 이유
  • 3장_쫄깃쫄깃 면발의 과학
  • 4장_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라멘의 맛
  • 5장_화학조미료는 라멘의 친구인가, 적인가
  • 6장_기름과 건조 기술의 결정체, 인스턴트 라멘
  • 7장_라멘 명가의 맛을 과학으로 재현하다
  • 8장_라멘은 먹는 소리도 맛있다
  • 9장_사람들이 그 가게 앞에만 줄을 서는 이유

항목별로 간단히 살펴보자면 우선, 첫 번째 장에서는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감칠맛'을 꼽고 있으며, 이 감칠맛의 정체에 대해 상세히 분석해 줍니다. 일본의 맛국물은 보통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함께 사용하는데, 그래야 더욱 맛있어진다는군요. 이는 글루탐산의 단독 사용보다 이노신산과 조합할 경우 감칠맛이 7~8배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가쓰오부시나 다시마의 향 성분은 물에 녹아나서 라멘의 경우, 국물맛이 농후해진다고 하네요.

두 번째 장에서는 음주 후 숙취 해소를 위해 라멘이 땡기는 이유를 탐구합니다. 이 역시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시면 당을 만드는 원료가 부족해져서 혈당이 떨어지는 탓에 당이 필요해져서 단 것이나 탄수화물을 먹고 싶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알코올이 뇌 신경에 작용하여 공복감을 증가시키기 때문이고요. 과음 후 단 것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한 기분이 되는데, 술 먹고 라면을 먹으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군요.
당연히 술을 먹고 라멘을 먹으면 몸에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문가가 추천하는 술 마시고 좋은 음식은 스포츠 음료에요. 이유는 당과 소금, 염분 모두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과즙 100% 오렌지 쥬스도 좋다는군요. 수분 섭취에 칼륨도 많아서 과하게 섭취한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지방과 당 분해를 촉진하는 비타민 B1, B2도 풍부하니까요. 앞으로 저도 음주 후에는 과즙 쥬스를 먹어봐야겠습니다.

세 번째 장은 제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라멘은 자가 제면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소바의 경우 풍미가 바로 날아가므로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만들며, 공장에서 만들 경우 배송 중 향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가게에서 직접 면을 만들어야 하지만 라면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게 이유입니다. 면의 꼬불꼬불한 정도가 국물 맛이 배는걸 좌우한다는 것도 결국은 호불호에 불과해 보이고요. 게다가 물과 밀가루가 완전하게 섞이는 수화 작용에 시간이 걸려서 충분한 숙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가 제면의 약점이에요. 공장에서 제대로 만든 면을 사용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 '간수'라는 말로 소개되었던 '간스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간스이는 라멘의 맛에 큰 영향을 주지만 단지 취향일 뿐이니, 가게와 손님들이 알아서 고르면 된다고 하네요.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인건 면발 특성에 따른 팁입니다. 라멘을 밥과 함께 먹으려면 면은 부드럽게 삶아달라고 해야 한다네요. 그래야 간스이가 국물에 섞여 들지 않고 면도 퍼지지 않거든요. 면의 삶은 정도가 꼬들꼬들하면 면이 국물을 빨아들이고 국물에는 간스이 맛이 섞이게 됩니다.

네 번째 장은 라멘의 맛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5미(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중 짠맛과 신맛은 온도에 따른 변화가 없지만 단맛, 쓴맛, 감칠맛은 온도에 따라 변화하므로 5미가 조합된 요리는 온도에 따라 맛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짠맛과 감칠맛의 밸런스가 온도에 따라 달라져서 제대로 맛을 느끼려면 적절한 온도로 먹어야 한답니다.

다섯 번째 장은 화학 조미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결론은 화학 조미료를 적당히 써야 맛있는 라멘이 된다는 겁니다. 화학조미료 사용 여부보다 식재료를 듬뿍 사용한 국물인지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는 팁도 좋았고요. 이유는 효모 추출물이나 단백가수분해물과 같은 첨가물은 '식품'으로 인정되어 화학조미료로 치지 않는데, 이런걸 많이 사용하는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라네요.
또 라멘은 부족한 영양소가 있으니 제대로 만든 라멘에 무언가를 조금 더하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쇼유 라멘을 먹은 후에 채소주스를, 그리고 돈코츠 라멘의 영양가는 볶은 깨 간 것을 더하는 것만으로 훨씬 높아지고 쇼유 라멘에는 구운 김을 올리면 좋다, 미네랄을 보충하고 싶다면 미네랄이 풍부한 미소 된장으로 만든 미소 라멘이나 탄탄멘을 주문하라는 식입니다.

여섯 번째 장은 인스턴트 라멘이 정말 몸에 좋지 않은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지금의 인스턴트 라멘은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염분이 많다고는 하나 국물을 남기면 되고, 기름 열화로 식중독을 일으켰던건 다 옛날 이야기이며 용기의 환경 호르몬 역시 위험성은 오해에 불과했다는 내용이거든요. 이 정도면 앞으로 컵라면을 먹을 때 건강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너무 자주 먹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초인 로크"로 유명한 만화가 히지리 유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구루구루박X"의 외계인들이 컵라면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로 "사람이 먹는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는 작가의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에요.

일곱 번째 장은 유명 가게, 노포의 라멘을 인스턴트로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들의 비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탐방 취재 스타일의 리포트입니다. 사실 이런저런 엑기스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최대한 비슷한 맛을 찾아내는게 전부라 딱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라면의 염분 측정 결과가 더 재미있었어요. 돈코츠 라멘의 염분은 1.48퍼센트, 미소 라멘의 염분은 1.35퍼센트인데 소유 라멘의 염분은 1.58퍼센트로 소유 라멘이 가장 높았거든요. 세가지 라멘 중 가장 감칠맛이 적은게 소유 라멘이라는 점에서 맛을 증폭시키는 감칠맛의 효과로 염도를 낮출 수 있다는건 사실이라는 뜻이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도쿄의 새까만 소바 국물과 간사이의 투명한 소바 국물을 비교할 때, 간사이 소바 국물의 염분이 더 높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먹을 때 주로 표현되는 의성어 "즈루즈루"에 대해 탐구합니다. 뭘 이런것까지 조사하나 싶었는데, AI까지 동원해서 의성어의 느낌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데에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후루룩"과의 비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에요. 이 AI를 가지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면 아주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비슷한 툴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 장은 사람들이 라멘 가게에 줄을 서는 이유입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약과 동일하게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모르핀이나 헤로인의 수용체이자 신경 전달 물질인 오피오이드에 작용하게 되거든요. 그러나 실제 마약과는 다르게 보상 회로 자극은 지극히 짧습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먹기 전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하네요. 즉 '기다리는 동안', '대기하는 동안' 음식을 곧 먹을거라는 생각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포방터 돈가스집에 줄을 서서 먹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는데, 실제 줄을 서는 과정에서 이런 뇌내 보상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장기간 줄을 서는 것도 한 번쯤은 해봄직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라멘과 관련된 이런저런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재미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주 유익했습니다. 라멘 그 자체보다는 주변 정보, 지식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많아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난다는건 조금 아쉽습니다만, 재미와 교양 양쪽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이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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