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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7

주름 - 파코 로카 / 김현주 : 별점 3점

주름 - 6점
파코 로카 지음, 김현주 옮김/중앙books(중앙북스)

스페인 작가의 그래픽 노벨 단편집. 일본 잡지 IDEA 지난호에서 우연찮게 소갯글을 보고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만화는 처음 읽어봤네요. 신선함, 완성도 모두 좋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왜 '만화' 라고 하지 않고 '그래픽 노벨'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미국 만화는 '코믹스', 일본 만화는 '망가', 프랑스 만화는 '방 드 베시네' 라고 부르는건 말이 됩니다. 하지만 특별한 원칙, 장르 구분 없이 좀 비싸고 있어보이는 만화를 '그래픽 노벨'이라고 칭하는 행태는 사라졌으면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주름" 

요양원에 들어간 전직 은행원이었던 노인 에밀리오가 치매로 최근 기억을 잃어가는걸 노인 시점에서, 그리고 그의 요양원 친구 시점으로 그리는 작품입니다.

치매에 대해 다룬 작품은 많이 보아 왔는데, 신파 위주의 서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처럼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는게 특징입니다. 처음에 에밀리오가 '공'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장면은 큰 컷으로 그려 치매 증세에 대해 위중하게 묘사하지만, 그 뒤에는 옷을 입는 방법을 잊어 버리고, 현재의 자신을 잊고 과거 시점인걸로 착각하고, 방금 읽은 책과 방금 한 일도 잊어버리는 식으로 증세가 심해지는데에도 불구하고 모든걸 자연스러운 일로 그려내고 있거든요. 이 과정에서 에밀리오는 잠깐 분노를 표시하기는 하나, 대체로 그냥 받아들일 뿐입니다. 에밀리오 가족의 슬픔도 전혀 보이지 않고요. 하긴, 슬픔은 커녕 제대로 등장조차 하지 않지요. 유일한 친구인 불량 노인 미겔이 주동하여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일탈이 짤막하게 등장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목적도 없었고, 얼마 가지도 못해 사고를 일으켜 실패하고 만, 너무나도 미약한 일탈이었습니다. 하기사, 중증 치매 환자인 노인이 운전하는 차로 뭐 얼마나 대단한걸 할 수 있었을리가 없겠지요. 요양원에서 만났던 미겔이 에밀리오를 돌봐준다는 엔딩도 현실적이면서 씁쓸했습니다. 나라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정열의 나라라고 알고 있었던 스페인 작가가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이런 작품을 발표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네요. 이런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작화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땡땡' 시리즈가 리메이크된다면, 이런 그림으로 그려지면 참 좋겠습니다.

별다른 서사가 없거나, 서사를 드러내기에는 드라마가 약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분량도 노인들의 유대 관계를 설명하기는 부족했고요. 그래도 한 번 읽어볼만한 좋은 작품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등대" 

프랑코 독재 정부에 맞서 싸우다가 도망치던 공화국군의 젊은 군인 프란시스코를 구해준건 버려진 등대 등대지기 텔모였다. 둘은 함께 배를 만들어 환상의 섬 라퓨타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라퓨타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가상의 섬이라는걸 알게 된 프란시스코는 분노하는데, 그날 밤 프랑코 군이 등대로 쳐들어왔다...

늙은 텔모가 자신처럼 늙은 등대를 밝혀 프란시스코를 탈출시키고, 자기는 등대와 함께 무너져내린다는 결말은 많이 뻔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친구를 죽이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쟁에 끌려갔다는 등 전쟁으로 인해 벌어졌던 비극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우리나라도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마찬가지로 겪었으니 익숙할 수 밖에요. 단색톤의 작화는 정교하고 깔끔했지만, 이런 드라마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4/09/25

인터뷰 - 루드비코 : 별점 4점

인터뷰 - 8점
루드비코 글.그림/세미콜론

긴 무명 시절을 거친 뒤 단 한 권의 책 "주황색 스카프"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후 깊은 슬럼프에 빠져 아무런 영감을 얻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소설가를 삼류 기자가 찾아왔다. 원래 인터뷰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차기작을 구상하던 중 독자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던 작가는 구상 중인 소설을 듣고 감상을 말해달라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수락했다. 

"인터뷰"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대화 장면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이 두 가지 틀로 이루어진 액자식 구성의 만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과 작가의 이야기는 서로를 반영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버리는데… (알라딘 책 소개 인용)

평상시에 자주 찾아보는 잠뿌리님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된 후 독파한 웹툰.

미국 만화(혹자들이 그래픽노벨이라 칭하는)를 연상케하는 정교한 일러스트풍 작화도 좋지만, 내용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자신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온 기자에게 자신이 창작했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며 평을 요구하는데, "헝가리 사진사", "작은 마을의 요괴", "양목장의 살인자"라는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재미있고 완성도도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목장의 살인자"는 그냥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잘 만든 호러 스릴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짜여졌더군요.
또 이야기가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현실에서 비롯된 일종의 연작들이며 실화라는 것이 드러나는 전개 역시 굉장히 흡입력 있습니다. 정말이지 숨 돌릴 틈 없이 읽어버렸네요.

허나 하나하나의 이야기 완성도가 높은데 구태여 이걸 묶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는 합니다. 예를 들자면 "양목장의 살인자"가 앞의 "헝가리 사진사"와 이어진다는 마지막 장면은, "양목장의 살인자"라는 하나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완전한 사족이었던 탓입니다.

그래도 이러한 사족(?)도 "인터뷰"라는 작품 전체의 완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확실하며 작화, 내용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완성도 높은 웹툰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추후 유료화되더라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어울리는 BGM 정도만 제공해 준다면 더욱 좋을 테고 말이죠. 아직 다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니 보지 못하신 분들은 서두르시길.

아울러 루드비코는 개그만화 그리는 엽기토끼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작가였다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을 많이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은 "부조리 만화"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작가가 언급한 "부조리극"은 연극적인 특수성이 강하기에 이 "인터뷰"라는 작품은 결과물만 놓고 보면 부조리극이 아니라 전형적인 스릴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11/08/22

시빌워 / 시크릿 인베이전 : 별점 4점 / 1.5점

Civil War 시빌 워 - 8점
마크 밀러 지음, 최원서 옮김/시공사
시크릿 인베이전 Secret Invasion - 4점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지음, 이규원 옮김/시공사

할인 판매가 떴길래 냉큼 구입해 읽은 시공 그래픽노벨 시리즈.

"시빌 워"부터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시의적절한 리얼리티 쇼 비판(?)에서 시작해 항상 궁금했던 초인들의 거침없는 자경활동에 대한 해결책으로 '초인 등록법안'이 발의되는 과정과, 그 법안에 대해 찬반으로 나뉜 초인들이 맞붙게 된다는 극적인 전개가 미려한 그림과 함께 박진감 있게 펼쳐져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도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라는 찬반 양측의 리더 아래, 찬성 측의 미스터 판타스틱, 행크 핌, 쉬 헐크, 센트리 등과 반대 측의 스파이더맨, 루크 케이지, 데어데블, 블랙 팬서, 골리앗 등 마블의 주요 캐릭터가 총망라되어 있어 팬으로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 외에도 영 어벤져스, 타이그라, 비전, 팰콘 등 수많은 히어로들과 '썬더볼트'라는 이름 아래 결집한 불스아이 등의 빌런까지 등장하니, 마블 팬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이벤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주요 이슈만 모아놓기는 했지만 스토리가 크게 튀는 부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 것도 강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크릿 인베이전"은 아쉽기만 합니다. 거의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복제가 가능한 스크럴의 침입을 다루는데, 정작 스크럴의 계획이 무엇인지 애매해서 이야기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더군요. 일단 유전적으로 완벽히 복제가 가능하다면 능력도 동일하게 가져올 수 있으니 1:1 승부에서는 박빙이어야 정상인데, 그 부분을 애매하게 처리했고 애당초 "보디 스내처"처럼 천천히 잠식하여 장악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 별로 유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변신도 하지 않고 정체를 드러낸 채 전면전을 벌인다는 계획도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종족의 위기에서 지구를 손에 넣으려는 계획 치고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요.

그 외에도 급작스러운 닉 퓨리의 등장이라든가, 마지막 마블 보이의 뜬금없는 상황 종결 장면, 와스프를 이용한다는 스크럴 반전 카드의 무가치함, 총질만 조금 했을 뿐인 노먼 오스본의 급부상과 권력 찬탈 등, 이 책만 놓고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전체 이슈를 한 권으로 요약하는 데 실패했달까요.

게다가 그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데생과 펜 터치도 거칠고, 구도 자체가 문제가 많아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이야기의 중심도 영 어벤져스와 이니셔티브, 코만도스 같은 신진 세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고요.

히어로와 빌런이 손을 잡고 거대 악과 맞서 싸운다는 아이디어는 좋았던 만큼, 차라리 스크럴이 복제한 히어로들을 무찌르기 위해 빌런들이 들고일어난다는 설정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한마디로 토니 스타크의 추락, 노먼 오스본의 권력 찬탈이라는 중요한 이벤트가 발생한 것 외에는 건질 게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시빌 워"는 별점 4점, "시크릿 인베이전"은 별점 1.5점입니다. "시빌 워"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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