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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구스미 마사유키 / 최윤영 : 별점 2점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최윤영 옮김/인디고(글담)

국내에는 "고독한 미식가" 원작가로 잘 알려져있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음식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고독한 미식가" TV 시리즈를 보신 팬이시라면 에피소드가 끝나면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가게에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모습이 친숙하실테지요. 고기구이, 라면, 돈가스 등 모두 26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전부 저자가 특정 음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를 털어놓으며, 맨 마지막에 아주 짤막한 4컷 만화로 마무리되는 구성이고요. 하나의 음식 이야기 전부 해서 10페이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을 뿐더러 만화 외의 그림도 많아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조금 특이했던 것은 음식에 대해 확고한 자기 생각이 있으며, 이와 다른 스타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컵라면은 갑자기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원조 닛신 컵누들이 제일 좋다. 이런 저런 맛을 낸다는 본격파 따위는 필요없다. 건방지다'면서 본격적인 라면이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 먹으라고 하는 식으로요. 자기 주장이 과하고 일방적이라 좋게 보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라 재미있었습니다. 몸에 좋고 맛있는 것 보다는 정크 푸드를 가끔이지만 찬양하는 모습 등 그 외에도 소타츠와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이런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라면 피곤하겠지만, 그냥 지켜본다면 재밌게 감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먹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체계와 룰도 재미있었습니다. 고양이 맘마는 대체로 단무지 두 조각이 나오는데 마지막 밥 한 입과 단무지 반 조각이 남도록 조절하여 함께 입에 넣어 음미하는게 마무리이다, 돈가스 조각을 먹는 순서와 돈가스를 맛있게 먹으려면 돈가스 양의 최소 다섯배의 양배추가 필요하다는 등 처럼요. 돈가스 관련된 내용은 "음식의 군사" 에 등장했던 내용과 조금 비슷하기도 합니다.

간단힌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도 양배추 요리가 가장 땡깁니다. 밤새 뼈 째로 푹 고아 만든 토종닭 수프를 걸러낸 후, 여기에 십자로 칼집을 넣은 양배추를 통째로 넣어 소금으로만 간 한 후 통냄비로 한 시간 정도 푹 끓여낸 수프입니다. 누룽지밥에 유자 후추를 살짝 뿌려 먹으면 맛있다는데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닭 백숙 육수로 끓여내면 되려나요? 간단하게 치킨 스톡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볼만한 내용이 적지 않지만, 만화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구스미 마사유키라는 작가가 아니라 허구의, 가상의 캐릭터였다면 보다 마음 편하고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거든요. 너무 자기 주장이 센 부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또 딱히 건질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라 권해드리기는 조금 애매하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9/05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구스미 마사유키 / 최윤영 : 별점 2점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최윤영 옮김/인디고(글담)

"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의 음식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모두 26가지 요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10페이지 안되는 짤막한 분량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글에서 약간은 장난스럽고, 소탈해보이는 작가의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덕분에 읽기는 편했어요. 있어보이고 젠체하지 않으니까요. 친근한 동네 형, 동네 아저씨 느낌이거든요. 등장하는 요리들도 모두 친근한 것들 뿐이며, 싸구려 정크 푸드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집에서 해 먹음직한 간단한 요리 소개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고양이 맘마'에 날달걀을 올린 '야옹이불알', 오징어 젓갈을 밥에 얹고 그 위에 뜨거운 호지차를 부어 먹는 '젓갈 오차즈케', 살짝 데친 양배추 물기를 제거한 뒤 명란젓을 말아먹는 '양배추 말이' 등은 간단하면서 맛도 좋아 보였거든요. 작가가 먹었던 가장 맛있는 양배추 요리인, 뼈째 고아 만든 토종닭 수프에 십자로 칼집을 넣은 양배추를 통째로 넣어 소금만으로 간해 한 시간 정도 푹 끓인 뒤, 솥에 지어 살짝 눌어붙은 누룽지밥에 끼얹어 먹는 수프밥 소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누룽지 백숙에 양배추도 넣어 국물을 낸 셈인데,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레시피나 실제 맛있어 보이는 새로운 음식에 대한 소개는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과 소신에 대한 것들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거진 다 어딘가에서 접했본 느낌이 강했다는게 문제입니다. 한 가운데에서부터 먹기 시작한다는 돈가스 먹는 방법 등은 "음식의 군사"의 돈가스 에피스도와 비슷하며, 대부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술 한잔 인생 한 입"의 소다츠의 개인 취향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탓입니다. 이야기 별로 마지막에 추가되어 있는 4컷 만화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친근해서 쉽게 읽히고 허허, 이 사람은 이런걸 이렇게 생각하는군! 하는 재미는 있는데 그 외에는 별다른게 없었습니다. 딱히 추천드릴만한 책은 아닙니다.

2023/04/30

낮의 목욕탕과 술 - 구스미 마사유키 / 양억관 : 별점 2점

낮의 목욕탕과 술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지식여행

<<고독한 미식가>> 원작으로 유명한 구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 제목 그대로 낮에 목욕탕에 갔다가 술을 먹는 10군데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와 장단점은 같은데, 장점은 <<술 한장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를 연상케하는 인생관이 글에 잘 녹아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밝을 때 목욕탕에 갔다가 또 아직 밝을 때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고 또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그야말로 소다츠스러운 생각이 담뿍 담겨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생각이지만 소다츠라면 그야말로 격렬한 동의를 보일 법한 발상이에요.
맛깔나게 잘 쓴 글이기도 합니다. 특히 비유가 아주 찰집니다. 한낮에 타는 완행 열차를 '어른용 원숭이 열차 (아마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유원지 코끼리 열차겠죠?)'에 비유하고, 목욕탕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들어가는건 '낯선 땅의 야만스러운 공기 속에 나 몰라라 하는 이방인이 되어 몸을 던져 넣는 스릴이 느껴진다'는 식이에요. 이 중에서도 최고는 오래된 목욕탕 안젠탕을 블루스에 비유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폐자재를 때는 목욕탕은 친환경을 이야기하는 현재와 맞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갈 데 없는 괴로움, 끝도 없이 찢어지는 마음을 우스꽝스럽게 절규하는 블루스가 느껴진다는건데 캬,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이 비유가 직접 작사한 가사가 어우러지는데, 이 부분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음식의 군사>>에서 오뎅 먹는걸 제갈량의 진법에 비유하는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니까요.
벚나무들을 스쳐갈 때 차량 전체가 벚꽃색으로 물든다는 등 묘사력도 좋고, 특히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찰집니다. 이건 소개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장점, 비유와 묘사력, 그리고 소다츠스러운 감성이 잘 살아있는 명문이기 때문입니다.

목을 타고 넘어간 맥주가 이윽고 위 안으로 스며든다.
아, 맛있어.
나는 지금, 온몸으로 맥주를 받아들이고 영혼을 다 바쳐서 맞아들인다.
사랑, 그런 느낌이다.
바보인가, 바보라도 좋아. 아니 바보라서 다행이다.
지혜 따위 필요 없다. 옳고 그른지 따질 것도 없어. 작전도 포기. 내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뭐.
꼰대 아저씨 주제에, 목욕탕에서 다시 태어나 신제품으로 변신한 내가 전면적으로 맥주를 맞이한다.
지금, 맥주는 내 몸 안으로 무혈입성을 달성했다.
나의 모든 세포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열광한다.
"맥주 만세!" "맥주 만세!" "임금님 만세!" "임금님 만세!"
물론 임금님은 나다. 어리석은 임금. 벌거벗은 채 왕관 하나 달랑 쓰고 당나귀 귀를 쫑긋 세워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백성을 향해 손을 흔든다.
다시 한 모금, 쭈욱 들이킨다.
황금빛 액체가 목을 치달려 내려간다. 이미 길은 닦였다.
취기라는 아련한 벛꽃색 공기가 머리 쪽으로 출렁 흐르기 시작한다.
행복하다. 이것을 행복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인생일꼬.

지극히 소다츠스럽지 않습니까? 여기에 더해 "술꾼이란 결국 마시고 만다. 반드시 마신다. 술집이 보이지 않으면 편의점 주류 코너라도 돌진한다."는 말까지 더하면 그냥 소다츠에요. 

목욕에 대한 찬양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반년 만에 목욕을 하게 된다면,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가 눈을 뜨면 빛이 있었다. 악마가 사라진 세계가 수증기 속에 펼쳐진다. 성스러운 탕 안에서 벌거벗은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묘사는 목욕을 부활과 천지창조에 비유한건데, 이거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 싶네요.
만화가답게 같은 사물을 보아도 독특한 발상으로 풀어내는 것도 재미 요소입니다. 일본식 목욕탕이 옛날 신사 스타일 지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일본인에게는 목욕이 종교와 가까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요.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목욕탕에 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는데, 그럴듯합니다.

새롭게 알게된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상식들도 있습니다. 긴자에 목욕탕이 있다는 이야기처럼요. 작가가 전설의 만화잡지 <<가로>>에서 데뷰 후 겪었던 편집장 나가이 씨와의 에피소드 - 돈이 없으니 맛있는걸 대접할 수 없다. 그래서 목욕탕으로 먼저 데리고 가서, 싸구려 술집의 맥주를 몇 배 더 맛있게 마시게 하려고 했다 - 도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겠지요. 물론 원고료도 주지 않으면서도 힘들면 죽어버리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나가이 씨는 영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씁쓸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전 책처럼 자기 생각과 철학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도 여전합니다. 지극히 꼰대스러운 사고방식이 넘쳐나는데,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건 목욕탕 손님들을 관찰하며 자기만의 생각을 펼치는 부분입니다. 재미를 떠나서 그들을 폄하하는 듯한 - 예를 들어 '큰 인물이 될 것 같지 않은 느낌, 어딘지 모르게 좀스럽다' -설명을 덧붙여 조롱거리처럼 삼는건 솔직히 불쾌했습니다. 나이 좀 들었다고 남을 폄하할 권리는 없으니까요. 여러모로 배려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스러움 가득한 글이었습니다.
음악 파트너 구리 짱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로 비유한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리 짱이 이 글을 읽으면 굉장히 불쾌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런 글을 서슴없이 쓴건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본인도 바보로 비하하지만, 자신을 비하한다고 남을 비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기대했던 음식 측면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목욕'에 더 집중하는 탓입니다. 꼬치구이 가게 <<만페이>>의 고기가 들어있지 않다는 소프트 햄버그스테이크만 처음 들은 메뉴라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어육 소시지를 다져 만든 햄버그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한번 쓱 읽기는 괜찮은 에세이이지만 구태여 찾아 읽을만한 글은 아닙니다. 이와마 소다츠가 누군지 모르신다면 아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8/10/09

고독한 미식가 2 - 구스미 마사유키, 다니구치 지로 / 박정임 : 별점 2점

고독한 미식가 2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이숲

단권으로 별다른 내용은 없었던 전작 독특한 매력 덕분에 드라마화가 되어 성공한 후 뒷 이야기가 이어진, 역주행의 아이콘같은 작품이지요. 원판으로 읽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국내 출간본을 읽은 김에 짤막한 리뷰 남깁니다.

작품은 드라마 성공 이후의 후속작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강합니다. 평범한 독신 중년 남자의 평범한 혼밥에 가까워 진 점,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배가 고파서 처음 간 동네에서 모르는 가게를 탐색하다가 들어간다는 점, 그리고 전작의 고로는 나름 꼰대 마인드를 보였는데 이번에는 별로 그렇지 않고 좀 더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점 등이 드라마 설정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전작만큼의 과식도 하지 않는 점도 그러하지요. 전작에서는 야키니쿠를 먹으러 가서 '인간 화력발전소' 운운하면서 엄청난 고기와 잡채 등을 위 속으로 밀어 넣는데, 2권에서는 돈코쓰 라멘에 밥 반공기, 사리 한 개를 추가해서 사리를 반이나 남길 정도니까요.

드라마의 팬으로서 이러한 사소한 설정의 변경은 나쁜 방향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허나 전작의 매력 포인트, 구루메 만화로 보기는 힘들 정도의 일상성과 독특한 캐릭터는 많이 희석되어 버렸습니다. 오차즈케를 먹으러 갔다가 부하 직원에게 술을 강권하는 부장을 쓰러트리는 에피소드 정도만 전작을 떠오르게 하는데, 전작의 햄버그 집 에피소드와 너무 똑같아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냥 추억은 추억대로 두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23/03/04

맛있는 인생 - 루시 나이슬리 / 최세희 : 별점 4점

맛있는 인생 - 8점
루시 나이슬리 지음, 최세희 옮김, 박찬일 감수/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일상계 먹부림 만화는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 작품이라면 <<고독한 미식가>> 등 구스미 마사유키가 원작을 맡은 작품들이 대표적일테고, 우리나라는 조경규의 작품들을 떠올릴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런 일상성 넘치면서 먹부림 이야기만 하는 만화는 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었던게 사실입니다. 국내 소개된 미국이나 유럽 만화는 슈퍼 히어로물 시리즈아니면 모두 고급진 -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만화가 대부분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뉴요커가 그려낸 일상계 먹부림 만화가 있더군요. 첫 등장은 10여년 전 (2013년) 이고 국내 소개도 2014년에 되었었는데 제 무지 탓에 이런 작품이 있는지도 몰랐었습니다. 알고나서 주저없이 구입하였습니다.

작가 루시 나이즐리가 어렸을 때 부터 성장해 나가면서 접했던 여러 음식, 요리들과 관련된 추억과 에피소드들을 총 12장에 걸쳐 소개해주고 있는데, 별로 평범하지 않았던 루시의 추억담 - 요리 전문가 엄마가 아빠가 이혼한 뒤 귀농하여 농사를 지었고, 엄마 덕분에 요리에 눈을 떠서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했던 등 - 을 재미있게 펼쳐나가면서 요리, 음식 소개를 곁들이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요리들은 상세한 레시피를 소개해주는 식으로 상세한 소개와 설명을 곁들여주고 있고요. 루시의 엄마표 버섯 소테는 바로 도전해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미리 버섯을 말려야 한다는게 조금 걸리는데 뭐 그냥 해도 괜찮겠지요. 물론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소개해주는 기묘한 초밥 등 받아들이기 힘든 레시피도 없지는 않고, 어떤 장은 본편과 전혀 상관없는 부록같은 정보가 실려있기도 합니다만 이런 내용도 재미는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건 음식과 요리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루시의 추억과 일생이 가득 녹아들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장을 통해 루시가 "왜 이 만화를 그렸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게 최고였요. 즉, 이 작품은 누군가 시켜서(편집부) 그려낸 맛집이나 요리 소개 만화라기 보다는, 개인이 주체적으로 그려낸 자신만의 세계관이 담긴 작품이라는 뜻이니까요. 그게 무엇이건 간에 자신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으로도 읽히는데, 이런게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울러 작화도 제 취향이었습니다. 조금은 전형적인 미국 카툰 스타일이기는 한데, 내용에도 잘 어울리면서 과하지 않은 컬러가 마음에 쏙 들더군요.

지나치게 개인 추억담에 가까운 탓에 기승전결이 확실치 않은 이야기가 많기는 한데, 추억이라는건 다 그런 법이죠. 딱히 단점을 찾기 어려운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찾아보니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몇 편 소개되었던데, 차분히 구해봐야겠습니다.

2022/01/22

혼밥 자작 감행 - 쇼지 사다오 / 정영희 : 별점 3점

혼밥 자작 감행 - 6점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시공사

일본의 만화가겸 에세이스트 쇼지 사다오의 먹부림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시카와 쥰의 "만화의 시간"에서 넌센스 만화의 제왕으로 접했던 작가지요. "만화의 시간"도 구입한지 20년을 훌쩍 넘어가는데,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니 중고가가 어마무시하게 형성되어 있더군요. 살짝 기뻤습니다.

하여튼, 별 기대없이 심심풀이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일상 속 소소한 혼술과 혼밥에서 맛있게 먹기 위한 자기만의 디테일과 원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제가 사랑하는 먹부림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과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와마 소다츠가 에세이를 쓴다면, 딱 이런 글들을 쓸 거라 확신이 들 정도에요. 설견주는 우아와 숭고의 세계이므로, '하아~ 쓰읍~' 하면서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부산스럽게 고기를 구울 수도 없다던거나, 요시노야에서 아침을 먹게 되면 단연코 낫토 정식이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술 한잔 인생 한입"에 그대로 등장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작가 스스로 애정하는 먹거리에 대해서는 고민과 연구를 거쳐 자신만의 레시피를 정립하는 모습도 이와마 소다츠스러웠는데, 200억엔 짜리 레시피라는 '정어리 통조림 덮밥'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립한, 최고의 레시피라는데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먼저 정어리 통조림 뚜껑을 따고, 그 째로 가스 불 위에 올려 데웁니다. 덮밥용 그릇에 뜨거운 밥을 풀고 그 위에 삶은 계란 흰자를 잘게 다져 5mm 두께로 덮고요. 잘게 다진 양파도 같은 식으로 덮은 뒤, 뜨거워진 정어리 캔을 뒤집어 밥 위에 덮습니다. 마지막으로 줄기를 제거한 무순과 잘게 썬 우메보시를 뿌리면 완성이라는데 한 번 따라 해 보고 싶어지네요. 우메보시는 없으니 대신 레몬을 뿌리면 되겠지요? 참치 통조림으로 해도 괜찮을 듯 싶어요. 이외에 버터 간장밥이나 계란프라이 덮밥에 대한 작가만의 레시피라던가 기존에 존재하지만 따라해봄직했던 무채 된장국, 두부 한 모 통째로 덮밥 레시피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이런 요리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는 점이 이 에세이의 매력 포인트인 거지요.

라멘집 사장을 관찰하거나, 카레 국물 부족에 대해 논하는 에세이들도 인상적이었어요. 돈가스 카레를 먹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꽤나 긴 분량의 고찰도 그러하고요. 이런 소재를 이렇게까지 재미나게 풀어낼 수 있다는게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고기 망치와 스테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샬라핀 스테이크'라는 나름 전문성 있는 지식을 풀어놓는 의외의 모습도 볼거리였고요. "오니기리는 속 재료 주변을 밥이 감싸고 있어서 첫 입은 맨밥일 경우가 많아서 정말 싫다"는 글처럼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도 좋았고, 직접 그려낸 일러스트들도 책에 잘 어울렸습니다. 아래의 돈가스 카레의 종류에 대해 그려낸 그림처럼, 내용에도 딱 들어맞고 이해하기도 쉬운 일러스트들이었거든요.

물론 자신의 주장을 절대 옳다고 우기며 절대로 고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은 꼰대스럽기는 합니다. 내 주장이 절대 옳고,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겠다!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탓입니다. 또 사회적인 관계를 아예 드러내지 않는 것도 억지스러웠고요. 이 정도 경력, 나이가 있는 작가가 혼밥, 혼술과 자작을 추구한다는게 쉬이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먹부림 에세이 중에서는 재미, 가치 모두 좋았습니다. 자신만의 고집은 "맛의 달인" 원작자 카리야 테츠, 이자카야 술안주 류가 대부분인 소재와 유머스러운 분위기는 "고독한 미식가" 등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양 쪽의 장점만 잘 합쳐서 재미나게 구성한 덕분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왜 "술 한잔 인생 한입"처럼 만화로 그리지 않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고전 4컷만화스러운 그림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내용이었다면 꽤 잘 어울렸을거라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저자도 지금은 만화가보다는 에세이스트로 인지되는 경향이 큰 것 같기는 합니다만...

2021/11/12

경양식집에서 - 조영권 / 이윤희 : 별점 3점

경양식집에서 - 6점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린틴틴

전국 유명 노포 중국집을 찾아다니며 맛 본 음식들에 대해 쓴 글을 모아 "중국집"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의 신작. 이번에는 전국의 노포 경양식집을 찾아 다닌 결과물입니다. 28년 동안 탐방했다고 광고하고 있네요. 마침 소개되고 있는 경양식집도 28곳이고요.

장점이라면 편집과 디자인입니다. 전작은 폰트와 기본적인 편집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디자인도 도전적이기는 했으나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가로로 돌려 보아야 하는 부분 등은 영 불편했으니까요. 수록된 사진들의 퀄리티도 그다지 좋지 못했었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이 완벽하게 보완되었습니다. 전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윤희의 만화가 그대로라는 점도 좋았고요. 전작의 편집자 박진홍 씨가 회사를 옮긴 뒤 기획한 책으로 보이는데,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만든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전문 요리 서적은 아니고, 일종의 맛집 탐방기에 가까운데 그 주제가 '경양식집' 이라니! 완전히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저자는 입맛을 돋우는 수프와 같은 전채에서 시작해서, 주로 튀김 요리인 메인 요리에 빵이나 밥 같은 탄수화물, 샐러드 등의 곁들임 야채들과 깍두기와 단무지같은 식사용 반찬, 그 외 이런저런 부록(?)에 후식 커피까지 전부 갖추어져 있는 풀 코스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경양식이야말로 가성비 좋은 완벽한 음식이라고 말하는데, 무척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이런 경양식을 많이 먹어 보았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제대로 한 상 차려내는 곳을 찾아보기는 힘들지요. 무척 반갑기도 했고, 옛 추억이 떠올라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소개되는 경양식 요리들도 굉장했습니다. 단순한 돈까스가 아니라 단호박 돈까스, 치즈 돈까스, 고구마 김치 돈까스, 해물 돈까스와 같은 응용도 많고, 그 외에도 생선까스나 함박스테이크에 오므라이스, 심지어는 베이컨 더블 치즈 버거 등 여러가지 요리가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평범한 일반인에 가까운 시각으로 가게와 음식을 바라보고, 방문했을 때의 일상을 수필처럼 함께 기록해주는 편안한 글들도 여전히 매력적이었고요. 

 또 우리나라 최초의 경양식집 서울역그릴을 비롯, 경기도 인천, 광명, 안성 등의 수도권에서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등 전작처럼 전국 각지가 모두 등장하는데, 놀랐던건 이번에는 전작처럼 조율을 위해서 방문한게 아니라, 일 없이도 훌쩍 떠나 경양식을 먹고 오는 이야기도 제법 된다는 겁니다. 정말 맛 탐방을 위한 노력과 정성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기도 광명의 라임 하우스, 동두천의 라르고, 서울의 그릴 데미그라스는 가게 주인의 인터뷰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좋은 정보였습니다. 라임 하우스의 장인 정신, 라르고의 편안함, 그릴 데미그라스의 도전 정신과 열정은 본받아야 마땅하지요. 주인 분들이 더 나이가 드시기 전에 라임 하우스와 라르고는 한 번 꼭 가봐야겠어요.

그러나 만화가 전작보다 분량과 비중이 줄은건 아쉽습니다. "중국집"에서 만화는 거의 80페이지에 달했는데, 이번에는 50페이지가 안되거든요. 무려 40%나 줄은 것이죠. 출판사는 달라졌지만 같은 시리즈이니 만큼, 같은 판형으로 출간해 주는게 훨씬 좋았을테고요. 디자인이 달라서 시리즈로 보이지도 않지만, 판형마저 다르니 책꽂이에 꽂아놓으면 아예 다른 책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적당한 식도락 수필입니다. 구스미 마사유키 등 일본 작가들이 쓴 책 비슷하게요. 그러나 명확하게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차이점에 더해 사진과 만화 등 함께하는 컨텐츠의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좋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참고로 이 책의 전작 "중국집"은 출판사 CA에서 제 졸저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출간 바로 전에 펴 냈던 책입니다. 담당자도 박진홍씨로 동일했고요. 그래서 저도 책의 존재를 알고 인연을 맺게 되었었지요. 제 졸저도 이처럼 후속작이 어딘가에서 기획되어 출간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