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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2

부자연스러운 죽음 -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블루프린트 : 별점 3점

부자연스러운 죽음 - 6점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블루프린트

<<아래 리뷰에는 동기, 진범 등을 밝히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경과 파커 경위는 한 의사로부터 흥미로운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3년 전, 부유했던 도슨 부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의사의 주장으로 부검도 진행되었었다. 사망 원인이 불명확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도슨 부인의 유산을 물려받을 메리 위태커 양을 모함했다며 의사를 따돌렸고, 결국 그는 병원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의 냄새를 맡은 피터 경은 노처녀 클림슨 양을 투입했다. 그녀는 사건이 벌어졌던 햄프셔 주 리햄튼 시에 방을 구한 뒤, 이런저런 정보들을 수집하여 알려주었다. 이를 통해 피터 경은 사건 직전에 해고되었다는 도슨 부인의 하녀 고우트베드 자매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여겼고, 그녀들을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지만 자매 중 동생인 버사 고우트베드가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현장에서 발견한 단서들과 관련되어 있던 포레스트 부인에게서도 별다른 혐의를 찾아낼 수 없었고, 위태커 양은 절친 핀들레이터 양을 통해 버사 고우트베드가 살해되었을 당시 알리바이가 증명되었다.

무엇보다도 도슨 부인은 불치병인 암을 앓고 있어서 곧 죽을 예정이었는데 그녀의 죽음을 앞당길 이유가 없었고, 죽였다 해도 범행 방법도 알아내지 못했으며, 버사 고우트베드 양 살해 방법도 밝혀낼 수 없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마는데...


도로시 세이어즈의 피터 윔지경 장편 (이하 피터 경). 사실 저는 피터 경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트릭 면에서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도 별로 없었고, 피터 경의 잘난척도 도가 지나쳐서 호감을 갖지 못했던 탓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미스테리아 35호>>에서, 샌드위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끔 쓰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 - 추리소설과 요리'라는 글에서 샌드위치를 다루어볼까 하던 차여서, 과연 어떻게 샌드위치가 사용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의외로 재미있어서 놀랐습니다. 트릭도 여러가지가 사용되고 있고, 피터 경의 추리도 눈부시며, 동기도 공들여 만들어져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아주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암에 걸려서 살 날이 머지 않았을 도슨 부인을 왜 위태커 양이 죽였는지?에 대한 동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위태커 양은 도슨 부인 유산의 유일한 상속자로 누구나 알고 있었기에 도슨 부인을 서둘러 살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슨 부인이 사실은 위태커 양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주려 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되었는데, 도슨 부인이 유언장을 쓰지 않았다는게 밝혀지며 이는 부정됩니다. 오히려 변호사와 위태커 양이 유언장을 쓰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슨 부인이 유언장을 쓰면 재수가 없어질까봐 극렬하게 거부했다고 하고요.
그러나 알고보니 명확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1926년 1월부터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어서, 유언장 없이 누군가 사망할 경우 그 재산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어서 메리 위태커가 전부 물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생겼던 겁니다! 그래서 위태커 양은 도슨 부인에게 유언장을 쓰게 만드는데 실패한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부인을 1925년 안에 살해했어야 했던 거지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동기였습니다.

독극물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범행의 트릭도 기발했습니다. 간호사였던 위태커 양이 피하주사로 '공기'를 주사하여, 일종의 공기 탄환으로 심장 마비를 일으켰던 거지요. 많이 알려져 있어서 지금은 조금 식상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는 굉장히 참신한 트릭이었을겁니다.
메리 위태커가 런던에서 이런저런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 포레스트 부인으로 변장하여 살고 있었다는 트릭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포레스트 부인이 공범으로 절친 핀들레이터 양이라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보다 더 과감하면서 괜찮았어요. 메리 위태커의 사진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메리 위태커는 일종의 동성애적인 관계에만 몰두했다 등의 복선으로 잘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고요. 확실히 유명 작가는 저 같은 일반인과는 뭔가 달라도 다른 법이지요.
마지막에 핀들레이터 양을 살해한 뒤, 도슨 부인의 먼 친척인 할렐루야 목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계획도 나름 정교했습니다. 특히 이 부분은 '흑인'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편견과 증오심을 잘 활용한게 눈에 뜨입니다. 범행 현장에서 여러 남자가 덮친듯한 현장 발자욱이 모두 동일인의 것이라는걸 알아내고 계획을 파헤쳐버린,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한 피터 경과 파커 경위의 추리도 아주 괜찮았고요.
일종의 데이트 폭력 범죄로만 여겨졌던 버사 고우트베드 사건을 명확한 살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만든게 '샌드위치'라는 것도 제 기대를 충족시킨 부분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작품 전개에 큰 역할을 한 요리라는걸 부정하기 힘들 정도에요. 이건 앞서 말씀드렸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로 다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메리 위태커는 버사 고우트베드를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녀가 도슨 부인을 속여 유언장을 쓰게 만들려 했던 과거가 폭로될 수는 있었겠지만, 이건 죄가 아닙니다. 어차피 도슨 부인은 공식적인 부검을 통해 자연사로 확인되었고, 시체가 재발굴되어 검시되더라도 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을테니까요. 오히려 포레스트 부인이라는 존재가 드러났고, 결국 위증을 하게 만들었던 절친 핀들레이터까지 살해해서 사건을 키워버렸으니 안 하느니만 못한 범행이었습니다.
또 새로운 법률에 대해 상담했던 변호사 트리그를 살해하려 했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일을 벌렸다가, 트리그를 죽이지도 못해서 위기에 빠진 셈입니다. 트리그가 겁을 먹고 사건에 대해 입을 닫았기에 망정이지, 진작에 꼬리가 잡힐 뻔 했었지요.

그리고 메리 위태커가 포레스트 부인이라는걸 알아내는 마지막 장면을 클림슨 양의 탐문 수사를 통해서도 알려주는 부분은 전개에서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그냥 피터 경과 경찰들이 진작에 입수했던 포레스트 부인의 지문과 메리 위태커의 지문이 같다는걸 알게 되는 장면만으로 반전의 맛은 충분했어요. 정체만 알아내면 메리 위태커를 핀들레이터 살인범으로 체포하는건 어렵지 않았으니 전개에도 무리가 없었고요. 여성의 능력도 남성 못지 않게 뛰어나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기 위했던 장치라 여겨지는데, 당시라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식상했습니다. 피터 경 시리즈를 많이 읽었을 여성들에 대한 서비스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며, 그동안의 제 편견을 모두 깨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저와 같은 이유로 피터 웜지 경 시리즈를 싫어하시는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9/07/30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제 블로그를 자주 찾아주신 분들이라면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오래전 '추리 소설 속 요리'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우연찮게도 이야기가 잘 되어 그 글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정식 출간 전이며, 출판사에서 텀블벅을 통해 펀딩 진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상세 정보는 위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추리 소설 속 요리에 관심있으시다면 한 번 둘러봐 주셨으면 합니다. 제발요~

2019/09/29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 한상진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 6점
한상진 지음, 황은영 그림/CABOOKS(CA북스)

얼마 전, 텀블벅에서 펀딩을 한다고 알려드렸던 저의 졸저가 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오래전 "경성탐정록" 출간 시에도 이래저래 발을 담그기는 했었지만, 온전히 제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건 이번이 처음이라 무척 감개무량하네요.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런저런 추리 소설 속에 중요하게 등장했던 여러가지 요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종의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요리나 음식들이 단순하게 스쳐 지나가는게 아니라 작품 속에서 나름 중요한 소재, 단서로 쓰인 작품들 위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시스 미뉴이, 양다리 통구이 등 이 바닥에서 유명한 요리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접하지 못했을 작품에서 뽑은 요리들도 있다는게 나름의 자랑거리지요.

물론 당연하게도 판매는 부진하고, 반응도 악평보다 나쁘다는 무반응인게 현실입니다. 모쪼록 후속권이 이어질 수 있을 정도의 유의미한 결과를 낳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2024/04/21

용서받지 못한 밤 -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 별점 2.5점

용서받지 못한 밤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놀
<<아래 리뷰에는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키히토의 아내 에츠코는 어린 딸 유미가 베란다에 올려두었던 엉겅퀴 화분을 떨어트린 탓에 일어난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15년 뒤,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은 유키히토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협박범은 '사고를 친 딸, 엉겅퀴에 대해 알고 있다'며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협박범을 만나자마자 유키히토는 기절했고, 장성한 딸 유미는 휴양 겸 해서 아빠 고향으로의 여행을 권했다.
유키히토 가족이 고향 하타가미를 등진 이유는 30년 전, 유키히토의 아버지 미나토가 마을 유지들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었고, 유키히토는 말이 나온 김에 누나 아사미와 함께 당시 사건의 진상도 밝힐겸 하타가미로 향했다.


미치오 슈스케의 장편. 30년 전 하타가미에서의 사건과 15년 전 에츠코의 사고사, 그리고 현재 하타가미에서의 살인 사건이 연결고리를 가지고 펼쳐집니다. 
핵심은 30년 전 사건 - 신울림제에서 마을 유지 4명에게 독버섯을 먹여 2명을 죽게 만든 - 의 진범은 누나 아사미였으며, 현재의 협박범 시노바야시 유이치로가 유키히토를 협박한건 이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딸아이 유미가 실수로 엄마를 죽였다는게 아니라요. 시노바야시는 유키히토가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은걸 모르고, 전화를 받은게 아버지 미나토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30년 전 사건에서 아버지가 혐의를 뒤집어쓰게 되었던 원인인 마을 신사 신관 다라베 요코의 편지는 아버지가 일부러 조작 - 눈을 벼락으로 바꾸어서 - 했었습니다. 딸이 진범인걸 알고 딸을 지켜주기 위해서요. 마침 벼락을 맞아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던 아사미는 자신이 범인인걸 모른 채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고요.

이런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복선도 탄탄합니다. 유키히토가 애초에 집에서 엉겅퀴를 키웠던 계기는 어린 시절 하타가미에서의 추억에서 비롯되었던 겁니다. 어머니가 꽃에 해박해서 집에서 키워 약으로도 썼었거든요. 마침 아사미가 독버섯 해독제로 엉겅퀴를 쓴게 두 사건을 연결하여 유키히토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요. 아버지가 한자에 해박해서 한자를 가지고 여러가지 장난을 치는 설정은 다라베 요코의 편지 내용 조작을 알려주며, 누나 아사미가 사건 당시 기억 - 특히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까지 - 을 극히 최근까지 잃었다는 증거도 여러가지 일화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런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개에 녹여낸 솜씨는 일품이라 할 수 있어요.
그 외에도, 유미가 아기일때 저지른 실수로 에츠코가 죽은걸 협박범이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30년 전 사건은 정말로 미나토가 저지른 것인지? 협박범 시노바야시를 죽인건 누구인지? 등의 수수께끼가 계속 펼쳐져서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은 없다'는 마지막 문장도 대박입니다. 아무리 선의에 의한 행동이라도 그 결과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씁쓸함을 이렇게 잘 그려낸 작품은 쉽게 찾기 어려울 듯 합니다.

하지만 '딸아이의 사고'와 '엉겅퀴'라는 키워드는 어떻게든 연결시켰지만, 전개와 설정에 억지가 많다는건 단점입니다. 아사미가 무려 30년간 기억상실이었는데, 마침 30년만에 방문했던 고향에서 벼락이 치는걸 보고 기억을 되찾는다는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마침 그 순간에 옆에 있었던 협박범 시노바야시를 본의아니게 살해하게 되었고, 이 순간이 마침 그 순간에 벼락 사진을 찍던 아야네의 카메라에 잡힌다는 일련의 연쇄는 우연이 너무 지나칩니다.
아사미가 기억을 되찾은 뒤, 남은 마을 유지 2명을 마저 살해하다가 결국 죽고 만다는 결말도 뜬금없었습니다. 복수를 생각했다면 꼭 이 시점에 했어야 했나? 싶고, 누가 보아도 수상한 외지인 유키히토를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이유도 알 수 없어요.
가족의 엄마가 환각 버섯에 중독되어 성폭행당하다가 살해당했다는 등의 설정도 이렇게 길게 끌고갈 필요가 있었을지는 좀 의문이에요. 이런 설정 없이도 4명의 '갑뿌'가 허튼 짓을 하다가 엄마가 죽게된건 누구나 떠올릴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독자가 추리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큽니다. 30년 전 사건 당일 아사미가 독버섯을 넣으러 신사로 향하던 순간에 찍힌 사진이 그 예입니다. 화면에 '고스트 현상'이 보인다고 이야기되는데, 알고보니 이건 '눈'이 찍힌 것이고 이를 통해 독버섯을 넣은건 벼락이 치기 전날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작중 묘사만 가지고 이를 추리해내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눈'을 '벼락'으로 바꾼 트릭 역시 번역된 글로는 떠올리기 불가능한건 마찬가지고요.

오래된 사건을 조사한다는 아야네는 사건의 핵심 당사자이기도 한 유키히토 가족과는 다르게 반쯤은 장난처럼 사건을 바라보는 행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고전 본격물 속 떠돌이 탐정같은 설정도 도무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요. 무언가 시리즈 캐릭터로 보이는데, 억지로 등장시켜서 시리즈로 만드는 것 보다는 빼는게 더 나았습니다. 실제 사건 해결에 별로 기여하지도 못하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졸저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후속으로 '요리 외의 추리 소설 속 여러가지 중요 소재들'을 쓰게 된다면 이 작품 속 '엉겅퀴'는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사건을 일으키는 핵심 소재이기도 하고, 중요 단서가 되기도 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런 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2023/10/08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히가시노 게이고 / 최고은 : 별점 2점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마술사면서 사기, 거짓말, 위조도 서슴치 않는 안티 히어로 '블랙 쇼맨' 다케시 삼촌이 활약하는 단편집. 전작은 묵직한 장편 추리물이었던 반면, 이번 작품들은 가벼운 단편 범죄 드라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웠습니다. 핵심 매력 포인트였던 다케시의 안티 히어로적인 속성이 거의 사라진 탓이 큽니다. 손님들을 위해 솜씨를 발휘하는, '정의의 바텐더'로 캐릭터가 변해 버렸더라고요. 사건들도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결말도 거의 예상대로였습니다. 칵테일이 주요 소재로 쓰이는 등의 소소한 디테일만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후속작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맨션의 여자>>
마요는 손님 우에마쓰 가즈미와의 미팅 장소로 다케시 삼촌의 바 '트랩핸드'를 이용하게 되었다. 다케시는 거짓말과 사기로 가즈미 남편의 지인인 척 했다.
어느정도 마요, 다케시와 친해진 가즈미는 다케시의 바에서 오래전 연이 끊긴 오빠 유사쿠와 만나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흔쾌히 허락한 다케시와 마요는 도청장치로 유사쿠가 가즈미가 가짜라고 협박하는걸 들었다. 다케시는 간단한 조사와 추리로 가즈미는 가짜가 맞지만 진짜와 협력했을거라 생각하고, DNA 검사를 요구하는 유사쿠를 가짜 사진으로 물리친 뒤 가즈미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나에는 가즈미의 부탁으로 역할을 수행했고, 그 이유는 췌장암으로 곧 죽게 되는데 유산이 자기에게 끔찍한 짓을 한 오빠에게 상속되는걸 막기 위해서였다.

다케시가 사기꾼으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가짜 가즈미의 정체를 꿰뚫고, 조작한 사진으로 유사쿠를 물리치는 등의 활약을 보이는 전반부, 그리고 나나에의 입을 통해 가짜 가즈미가 된 이유가 설명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탐정(?)의 활약과 범인(?)의 고백이 1, 2부 구성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셜록 홈즈와 같은 고전 추리물을 연상케합니다. 

다케시의 DNA 검사 요구를 퇴치하기 위해, 유사쿠는 아빠의 블륜으로, 가즈미는 엄마의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사실을 조작한건 기발했는데, 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습니다. 나나에와 가즈미가 꼭 닮았다는 우연에 모든게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고요. 이런 우연보다는 가즈미의 재산을 이용하여 나나에에게 성형 수술을 시켜주고, 회복 기간 동안 바꿔치기를 위한 학습을 했다고 풀어가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추리, 범죄물이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는 점도 아쉽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위기의 여자>>
나미는 만남 어플로 만난 기요카와로부터 그가 가지고 있다는 하와이 별장 이야기를 듣고, 함께 트랩핸드에 방문해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를 마셨다. 연이어 자기 재산을 자랑하던 기요카와는 다케시의 칵테일 한 잔을 더 마신 뒤 미친듯이 졸려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알고보니 기요카와는 어플로 만난 여자에게 재신이 많다는 거짓말로 환심을 산 뒤, 수면제를 먹인 뒤 몹쓸 짓을 하는 악당이었습니다. 이를 꿰뚫어 본 다케시가 술잔을 바꿔치기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가 트릭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면 유도제가 범죄에 악용되는걸 막기 위해 물에 녹으면 파랗게 변하게 만들었는데 (일본 이야기겠지요?), 그걸 숨기기 위해 원래 색이 파란 블루 하와이를 선택했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거든요. 바텐더 다케시에게도 어울리는 소재였고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후속작이 나온다면 추가되어도 좋을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다케시가 기요카와의 수작을 눈치채고 경고를 하기 위해 '비트윈더시트'를 대접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재료만 듣고 칵테일 이름을 떠올리고, 이게 '경고'라고 느낄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요. 또 같은 재료라도 비율에 따라 여러 결과물이 나오는게 칵테일이라서, 경고의 의미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뭐, 이 모든게 다케시 삼촌의 억지라면 할 말이 없지만요.

그래도 나름 트릭도 사용되었고, 다케시의 활약도 빛나며 기승전결도 깔끔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환상의 여자>>
유즈키는 치과의사이자 재즈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도모야와 불륜 관계였다. 그러나 도모야갸 교통사고로 죽은 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는 절친 야요이와 함께 트랩핸드를 찾은 유즈키는 도모야가 과거 요코스카에서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모야의 과거를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코스카에서 도모야가 '딸'이라는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걸 알아내는데....

표제작. 도모야가 딸과 함께 보냈던 과거는 모두 조작으로, 유즈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려는 친구 야요이의 계획이었다는 내용.

불륜녀인 친구를 위해 본처를 설득하기까지 한 친구 야요이의 엄청난 노력은 절절이 전해집니다만, 이런 계획이 유즈키의 새로운 시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요코스카에서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조작해서 정나미가 확 떨어지게 했더라면 모를까요. 불륜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재미도 없고 알멩이도 없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0/03/21

문학을 홀린 음식들 - 카라 니콜레티 / 정은지 : 별점 2.5점

문학을 홀린 음식들 - 6점
카라 니콜레티 지음, 매리언 볼로네시 그림, 정은지 옮김/뮤진트리

푸주한이자 전직 페이스트리 요리사이자, 뉴욕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자신의 유년시절, 청소년기, 성인 시절에 읽었던 문학 작품들 속에서 인상적인 요리들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본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자의 경력에 딱 맞는 책이네요.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 속 요리들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제법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비슷한 책만 해도 "죽이는 요리책",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시피"가 있지요. 그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헤밍웨이의 작품 속 요리에 대해 다루는 등의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책들이 그동안 불만스러웠었습니다. 그냥 등장한 요리의 나열일 뿐, 그 요리가 작품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차지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레시피 소개와 재현에 치중할 뿐 그 요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책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저 스스로 이 시장에 뛰어들어 추리 소설 속 주요 등장 요리들을 주제로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졸저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제 원칙은 작품 속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한 요리라 하더라도,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았다면 주제로 삼아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그 요리들에 대한 단순 레시피 뿐 아니라 그 요리에 대해 제가 구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정리하여 해당 요리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고요.

이 책은 제가 추구한 방향과 어느정도 비슷합니다. 주제로 선정된 요리들이 작품이나 주인공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요. "오만과 편견"에서 "니콜스가 화이트 수프를 흡족하게 만드는 대로" 초대장을 발송하겠다고 한 뜻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저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이트 수프는 역사가 깊은 요리로 부유한 가정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미스터 다아시나 미스터 허스트 등 프랑스 요리에 정통한 까다로운 손님들을 초대하려면, 화이트 소스를 만들 준비가 되어야 했다는 뜻인 것이죠.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오만과 편견" 속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좋은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베카"에서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를 음식이 서빙되는 순서로 드러내는 장면이라던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오블론스키가 굴을 탐식하는 장면을 그의 끝없는 성욕과 연결시키는 부분 등도 마찬가지에요.
정말 핵심 소재라서 등장하는 요리들도 많습니다. 저도 딸 아이가 어렸을 때 읽어주었던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에 등장하는 핫 케이크 반죽이 대표적입니다. "위대한 유산"의 유산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음식 중 하나인 '동그란 돼지고기 파이'도 비중만 놓고 보면 충분히 소개해 줄 만 하고요.

아울러 해당 요리의 역사 등에 대한 자료는 부족하지만 요리사이기도 한 저자의 직업 덕분에, 저자 스스로 만들어 본 상세한 레시피들은 제 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도 제가 주제로 삼은 요리를 실제로 재현해 봤어야 하지만,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재료와 장비의 수급이 어려워 이런 부분에 힘을 쏟지 못했거든요. 이 차이는 "오만과 편견" 속 화이트 수프 레시피를 당시 요리책에서 찾아보고 직접 만들어 본 결과를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18세기 레시피는 모두 끔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의 '화이트 갈릭 수프'를 제안하지요.
그 외에도 남부식 비스킷을 만드는데는 라프 라드가 꼭 필요하다는 팁 등의 유용한 정보도 많아요. 곁들여진 일러스트들도 최고 수준이고요.

그러나 소개되는 모든 요리들이 그러한건 아닙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처럼, 작품이 아니라 저자의 인생과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기도 하고, 또 해당 작품을 읽었을 때의 저자의 경험에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는 등 개인적인 경험이 담뿍 담긴, 개인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도 많습니다. 원래 개인 블로그에서 시작되어 책이 출간되었다니 어떻게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문제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런 개인적인 글들이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면 갈 수록 제 방향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감점합니다. 그래도 요리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아주 돋보였습니다. 이런 분과 손잡고 추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요리에 대해 합작하면 참 좋겠다 싶네요.

2025/08/15

리버스 - 미나토 가나에 / 김선영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대학을 졸업했지만 작은 사무용품 회사에 근무하는 후카세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10년 전, 대학 친구들 - 아사미, 다니하라, 무라이, 히로사와 - 과 떠났던 여행에서 술을 마신 친구 히로사와가 운전대를 잡게 하여 죽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취미인 커피와 연인 미호코 덕분에 안정을 찾은 후카세에게 ‘후카세는 살인자다’라는 의문의 편지가 배달되었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메시지가 공개적으로 뿌려졌다는 사실을 들었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낀 후카세는 휴가를 얻어 범인을 찾는 대신, 죽은 히로사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고백"으로 잘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의 중편 소설입니다. 이전, 한 유튜버의 '결말이 충격적인 미스터리 5편'에 선정되었길래 관심을 갖고 있다가, 여름 휴가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후카세가 히로사와의 옛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히로사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 중심입니다. 때문에 정통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열등감으로 가득찬 후카세가 탐색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에서 성장기로 볼 수도 있고요.
이 과정에서 모두가 의지했던 말이 없고 묵묵한 히로사와가 — "뽀로로"의 포비가 떠오르는 — 오히려 후카세나 후루카와처럼 존재감 없는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게 밝혀지는건 신선했습니다. 꽤 묵직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요.

이러한 드라마 외에도 10년 전 사건을 고발하는 편지를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흥미롭고, 히로사와의 과거를 되짚는 여정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전개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라는 메시지를 보낸게 미호코라는 진상은 좀 아쉽습니다. 운과 우연에 의지한 측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후카세가 여자친구 사진을 친구들에게 공개했더라면 금방 들통났을테지요. 졸업 앨범을 통해 아사미의 동료 기다가 히로사와의 동창이라는걸 알아냈더라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히로사와의 연인이었던 미호코가 히로사와 사망 이후 후카세와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이외에도, 미호코가 유독 후카세에게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고발장을 보낸 이유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후카세가 진상 - 그들이 히로사와가 운전대를 잡게끔 만들었다 - 을 술술 털어놓은 것도 역시 잘 납득이 되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미호코가 메시지를 보낸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게 문제입니다. 메시지를 보낸게 자기라는게 드러나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될겁니다. 심지어 다니하라는 기차에서 밀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10년 전 죽은, 잠깐 사귀었던 연인을 위해 증명도 하지 못할 범죄를 고발하려 한다? 전혀 와 닿지 않아요.

히로사와가 메밀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에 술이 아니라 후카세 만들어 준 메밀꽃 벌꿀 커피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반전도 과합니다. 솔직히 나올 필요가 없었어요. 불운한 사고를 딛고 후카세가 한 뼘 성장해 가는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마무리가 가능했으니까요.
아울러 벌꿀을 넣은 커피, 지역 특산물 벌꿀 등의 언급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히로사와의 알레르기 설정이 반전 직전에야 언급된다는 점에서 치밀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급작스럽기만 했어요.
한마디로, '결말이 충격적인'게 아니라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강박에 가까운 반전일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으로, 미스터리적 재미보다는 인간 관계와 내면 심리에 집중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흥미롭고 빠르게 읽히는 장점도 크고요. 다소 과했던 반전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덧붙이자면, 벌꿀을 넣은 커피는 한 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등장하는데,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후속 권이 나온다면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2023/10/13

COCKTAILS WITH PHILIP MARLOWE, SAM SPADE, AND BOGART

예전에 제가 썼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에세이에서 추리 소설 속 칵테일에 대해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셜록 홈즈가 연재된 잡지로 영원히 기억할 "The Strand Magazine"에서 비슷하게 하드보일드 탐정들과 칵테일에 대한 칼럼이 있길래 번역해보았습니다. 수준은 엉망이고 의역도 많으니 내용 참고 정도로만 보아 주세요.
"I like liquor and women and chess and a few other things."- 필립 말로우 <<기나긴 이별>>

누아르 속 탐정의 이미지는 샘 스페이드 역의 보가트, 하루 일당을 받고 갱스터와 팜므파탈과 싸우는 하드보일드 탐정 필립 말로우 역의 로버트 미첨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영화와 배우들을 통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가상의 탐정들 캐릭터는 그들이 선택한 술에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고요. 분홍색 빨대와 함께 제공되는 프로즌 다이키리는 없습니다.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진하면서 요란하지 않은 클래식 음료를 마셨지요. 지저분하고 어두운 술집이나 구식 호텔 바, 스테이크 하우스 옆 칵테일 라운지, 현지 펍에서요.
"어둡고 연기가 자욱한 바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음모를 꾸미고, 비밀을 밝히고, 속삭이는 고백에는 낭만적인 느와르가 있습니다."라고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리사 웅거(Lisa Unger)는 말합니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탐정 필립 말로우는 열렬한 애주가였습니다. 그는 항상 사무실에 올드 포레스터 버번 한 병을 보관했습니다. "나는 손을 뻗어 올드 포레스터 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병은 3분의 1 정도 차 있었다."라고 소설 <<리틀 시스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 토비 위디컴이 쓴 <<레이몬드 챈들러를 위한 독자 가이드>>에는 챈들러 작품 속 등장 음료에 대한 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핑거맨>>에는 바카디가, <<빅 시티 클루스>>에는 바카디와 그레나딘이 등장합니다. <<더 하이 윈도우>>에는 포 로즈 위스키가 등장하고요. <<라온트 피전>>에는 더블 깁슨이 있습니다. 이 목록에는 올드 그랜드대드 위스키와 브루클린 스카치도 포함됩니다.
칵테일 문화에 대해 말로는 영구히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김릿에 대해서였습니다. 소설 <<기나긴 이별>>에서 영국 출신이자 열렬한 애주가인 테리 레녹스는 필립 말로우에게 "진짜 김렛은 진 반, 로즈 사(社)의 라임 주스 반을 섞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거죠. 마티니는 비교도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뒤 말로우가 혼자 바에 갔을 때, "바텐더가 내 앞에 음료를 갖다 놓았다. 라임 주스 때문에 엷은 녹색 기미가 있는 신비한 노란 빛깔이었다. 입을 대 보니 부드러운 단맛과 날카롭게 혀를 찌르는 강한 자극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자기 잔을 들어 내 앞에 올려 보였다. 우리는 함께 마셨다. 그제서야 그녀의 음료도 똑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라고 했지요.

김릿
진 2온스 
로즈 라임 주스 ¾온스 
얼음과 함께 쉐이커에 넣은 뒤 30초간 세게 흔든다. 칵테일 잔에 따른다.

대쉴 해밋의 사립 탐정 샘 스페이드는 위스키를 즐겨 마셨고, 해밋의 코믹한 부부 범죄 해결사 닉과 노라 찰스는 칵테일 잔을 손에 들고 있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닉 찰스가 1934년 소설 <<씬 맨>>에서 묘사한 것처럼, 이들은 완벽한 칵테일을 만드는 전문가였습니다. 닉은 "중요한 것은 리듬입니다. 항상 쉐이킹에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맨해튼에서는 폭스트롯 음악에 맞춰, 브롱크스에서는 투스텝 음악에 맞춰 흔들지만 드라이 마티니는 항상 왈츠 음악에 맞춰 흔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작가 제임스 크럼리의 미스터리 소설은 술집과 맥주, 초라한 인물들로 가득합니다. 1975년에 발표한 소설 <<잘못된 사건>>에서 사립 탐정 밀로 드라고비치는 음주에 대해 긴 독백을 합니다. "아들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독선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절대 믿지 마라. 그는 항상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테니까. 그들 중 일부는 선한 사람이지만 선의 이름으로 세상의 대부분의 고통을 야기한다. 그들은 심판자이자 간섭자야. 그리고 아들아,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남자는 절대 믿지 마라. 그들은 보통 겁쟁이나 바보, 그렇지 않으면 비열하고 폭력적인 무언가를 내면 깊숙이 두려워하고 있는 놈이기 때문이야. 자신을 두려워하는 남자는 믿을 수 없단다. 하지만 가끔 변기 앞에 무릎을 꿇는 남자는 믿을 수 있다. 그는 겸손과 인간 본연의 어리석음,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야. 남자가 더러운 변기에 내장을 내밀 때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

사람들이 미스터리를 쓰는 한, 술을 좋아하는 탐정은 계속 존재할겁니다. 사립 탐정은 힘든 직업입니까요. 긴 근무 시간과 낮은 급여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은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가끔은 미키 스필레인의 소설 속 주인공 마이크 해머처럼 술집에 가서 주문을 해 봅시다. "더블 버번 한 잔, 병은 놔두게."

2023/03/18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공지.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안내

서비스 종료에 대한 소식은 알고는 있었지만 포스팅이 늦었네요.

2003년 12월 7일에 개설하였던 이 블로그의 수명도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군요.
그나마 다행인건 어느정도 이사가 완료된 상태라는 점입니다.
이미 2010년에 관리자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부여되는 권한 오류 사고 때 의구심을 가졌었고, 2013년 SK에서 서비스가 독립한 이후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토로할 때 고민하면서 블로그 글을 조금씩 옮겨왔거든요.
현재 약 90% 넘게 글을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새 거처는 구글의 블로그스팟이며,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hansang1000.blogspot.com/
글 내부 deep link를 수정하지 못하는 점, 기존 댓글과 트랙백 등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점 등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원본 글이나마 살려 놓았습니다. 앞으로 제 글은 이글루스 폭파 시점까지 이곳과 블로그스팟 두 군데 모두 올릴 예정이에요. 100% 이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정리 등으로 새로 글을 올리기는 힘들겠지만요.

사실 이글루스의 서비스 종료도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위의 글들은 물론이고, 작년에 이런 글을 썼었지만,
아무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걸 보고 거의 확신했어요. 오래가지 못할거라는걸요.
오히려 제 생각보다는 서비스가 오래 버틴 편입니다.


물론 끝을 예감하고는 있었다고 해도, 섭섭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7천일이 넘는 기간 동안 3천 7백개가 넘는 글을 올린 이 블로그는 그야말로 제 인생의 한 축이나 다음이 없었으니까요.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동안,
4개의 회사를 차례로 옮겼고,
결혼도 했고,
소중한 딸 아이도 만났으며,
형과 합작했던 추리소설 <<경성탐정록>>의 발표와 출간이 있었고,
제 이름으로 된 첫 책인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을 펴냈으며,
추리 소설 리뷰도 1,000편을 달성하는 등 참 많은 일이 있었죠.
이글루스의 빅 웨이브였던 이글루땅 열풍 참여처럼 온라인 상으로 나눈 수많은 분들과의 이야기와 함께했던 경험도 소중한 추억이고요.
이전에 썼던 글처럼, 서비스를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면 유료화에도 참여할 생각이 컸는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이미 서비스 종료는 결정된 사항이니 어쩔 수 없지만요.
(솔직히 일부 지저분한 정치 글을 밸리에서 더 안봐도 된다는 건 좋네요)

이글루스에 둥지를 트셨던 모든 분들께서 모쪼록 이사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EST님이 보내주셨던, 제 이글루스를 대표하는 이글루땅 홈즈 버젼을 올리며 글을 마칩니다.

2020/02/09

타르트 타탱의 꿈 - 곤도 후미에 / 문기업 : 별점 2.5점

타르트 타탱의 꿈 - 6점
곤도 후미에 지음, RYO 그림, 문기업 옮김/영상출판미디어(주)

비스트로 "파 말"은 미후네 셰프와 요리사 시무라, 소믈리에 가네코 씨와 갸르송인 다카쓰키 도모유키 4명만으로 운영되는, 카운터 일곱 석, 테이블이 다섯 개 뿐인 상점가의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 내 놓아 인기가 많은 가게.
이 곳에 온 손님들이 이런저런 경험담, 과거 일화를 이야기하면, 무뚝뚝한 미후네 셰프는 항상 그만의 추리로 손님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곤도 후미에의 프렌치 비스트로를 무대로 한 일상계 미스터리 연작 단편집입니다.

저자 곤도 후미에의 일상계는 이전에 "샤를로트의 우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딱히 좋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디테일한 묘사와 번득이는 재치는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프렌치 비스트로를 무대로 여러가지 요리들이 주요 소재라는 점에서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책을 쓴 작가라면 읽어봐야 할 것 같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특정 가게의 주인이나 능력있는 종업원이 방문한 손님들의 수수께끼를 해결해 준다는 일상계 추리물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가게도 서점, 헌책방, 사진관, 중고매장이나 골동잡화점과 같이 다양하지요. 하지만 절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술집이나 음식점입니다. 화과자점니혼슈 바도 포함해서요. 아무래도 주인과 손님과의 대화가 다른 가게들보다는 더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음식보다는 손님이 가져온 수수께끼가 중심인 작품들이 많은데 반해, 이 작품은 프렌치 비스토로라는 장소와 요리의 특징을 살린 이야기가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몇몇 이야기는 아이디어도 돋보였고요.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좋은 수준이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또 "파 말"의 손님들이 주인에게 고민거리를 이야기하지 못해 안달난 것 처럼 보이는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어요. 추리를 시작하기 전에 고민거리가 있는 손님들에게 셰프 특제 뱅쇼를 서비스하는 단계 역시 폼은 나지만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뻔한 캐릭터도 감점 요소에요.

그래도 이 정도면 다음 권도 찾아서 읽어볼 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가벼운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타르트 타탱의 꿈"

다카라즈카 연극 배우인 나쓰미, 아니 구시모토 씨가 니시다 씨와 결혼한 뒤 연기를 그만둔다고 하자, 그녀의 팬이었던 여자아이는 앙심을 품었다. 마침 약혼자 니시다 씨가 프랑스 요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자, 요리 학원에 다니던 여자 아이는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나쓰미가 만들었다고 하고 대접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나쓰미는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그러나 이는 함정으로, 여자 아이는 니시다 몫의 전채 주키니와 게 갈레트에 날달걀 껍데기를 갈아 넣었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표제작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소재는 제목 그대로 타르트 타탱으로, 미후네 셰프는 배탈이 났다는 손님 니시다 씨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먹은 타르트 타탱이 이상하다는걸 간파하고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이상한건 오븐에서 구워지던 타르트 타탱의 캐러멜색이었지요.

그러나 추리와 전개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범인인 소녀를 바로 잡아온 것도 작위적이지만, 핵심 단서인 캐러멜리제 된 타르트 타탱이 오븐에서 보였던게 저는 그리 이상하다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니시다씨가 다 구워져서 먹기 직전인 상태를 봤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구시모토 씨가 향신료 강한 음식을 싫어한다는 복선이 등장하기는 하나, 니시다 씨와 확실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게 절대적이지 않았으리라는 점도 아쉬웠어요. 곧 결혼할 연인과 둘만 나누어 먹는 식사에서는 얼마든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지나치게 프렌치 비스트로를 염두에 둔 작위적인 이야기입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로뇽 드 보의 결의"

편식이 심한 가스야 씨는 "파 말"의 골칫덩이 손님으로 항상 똑같은 미녀와 함께 찾아와 온갖 투정을 부려 셰프를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어느날 셰프가 만든 특선 요리에 감탄하고, 그 모습을 본 동행했던 미녀 오케타니 유리코는 따로 시간을 내어 미후네 셰프를 만나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스야 씨와 불륜 관계인데, 아내와 맞서 싸울 용기를 얻었다고. 이유는 그의 아내 요리는 정말로 심각했고, 재료를 맛있게 하려는 고민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기에 유리코는 아내가 가스야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후네 셰프는 이를 반박하고, 얼마 뒤 사랑에 실패하여 찾아온 유리코에게 자신이 생각한 진상을 들려주는데...

가스야씨의 극단적인 편식부터가 작위적이지만, 가스야 씨가 맛없는 아내의 요리를 먹는게 사랑이라는 진상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랑한다면 영양소가 풍부한 맛있는 요리를 해 주면 되잖아요? 하다못해 먹을 수 있는 재료에서나마 많은 영양소를 얻었으면 하고 바랬다면 말이지요. 양파나 토란을 물에 담근다고 영양소가 유의미할 정도로 빠질 것 같지도 않고요. 게다가 불륜녀가 자신의 불륜과 결심을 비스트로 셰프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어떤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졸작으로 수록작 중 워스트입니다.

"갈레트 데 루아의 비밀"

크리스마스에 요리사 시무라의 부인인 샹송 가수 아사미의 공연이 취소되자 "파 말"의 셰프 미후네는 자신의 가게에서 공연할 것을 부탁했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영업 후 관계자들만 모여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졌다. 미후네 셰프가 신 메뉴로 개발한 갈레트 드 루아를 내 놓자, 아사미는 예전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에 있었던 미스터리를 풀어 놓는데...

오래전, 시무라가 만들었던 갈레트 데 루아 속 페브(도자기 인형)가 사라진 사건의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아사미를 마음에 들어했던 티에리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시무라가 페브가 자신이나 그녀에게 가도록 케이크를 구워냈고 자기가 당첨되자 몰래 먹어버렸다는게 진상입니다. 파티에 참석했던 파트리스, 파트리스의 여자 친구인 주디, 시무라에게 티에리가 페브 당첨 시 테이블 아래 쪽으로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지요. 당첨되면 그날의 왕이 될 수 있어서 티에리는 그 기회를 이용해 아사미와의 사랑을 성사시키려 했거든요.

그러나 유일한 단서는 갈레트 데 루아가 '못 생겼다'는 것 정도라서, 이걸로 추리를 이끌어내는건 과장이 심합니다. 또 페브가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아몬드 크림이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오븐의 쟁반을 기울여 놓아서) 조금 부풀어 있는 곳을 찾으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를 몸수색까지 감행한 모든 파티 참석자들이 무심히 넘겼다는 것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자기 인형'을 삼키는게 과연 가능했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파티와 특별한 케이크라는 주제는 좋고, 사랑 이야기에 해피 엔딩이기까지 하니 마음은 푸근해지네요. 젊은 청춘이라면 사랑을 위해서 도자기 인형정도 소화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최소한 전작들보다는 나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소 이라티를 둘러싼 불화"

와키타라는 손님이 이틀 연속 "파 말"을 찾아와서, 아내가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고 한탄했다. 이유를 물어보지만, 잼 한 통을 지인에게 준 것 밖에는 모르겠다는 와키타에게 미후네 셰프는 한 번 더 가게를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파 말"을 찾은 와키타에게 바스크 지방의 요리들을 대접한 후, 마지막으로 프로마쥬 서비스 단계에서 하드 치즈 한 개만을 내어 놓았다. 그것은 바스크 지방의 양젖 치즈 브르비였다. 그리고 미후네 셰프는 브르비에 검은 체리 잼을 발라 먹는 방법을 알려주며, 와키타 씨의 부인이 가출한 이유를 알려주는데...

이전 부부가 가게를 방문했을 때, 부인의 말을 와키타 씨는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고 잼도 이전에 이야기했지만 와키타 씨가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추리의 전부입니다.

그래도 단지 잼 한 통을 선물한 것 때문이 아니라, 과거 와키타가 "파 말"에서 부인과 함께 있을 때 보였던 무관심을 토대로 부인이 실망하여 가출한 이유를 밝혀낸다는 전개는 나쁘지 않아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계속 누적된 불만이라는걸 효과적으로 전해주니까요. 잼을 곁들여 먹어야 맛있는 바스크 지방의 양젖 치즈 오소 이라티를 통해 이 과정을 드러내는 방식도 그럴듯했고요.

여러모로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비스트로를 무대로 특정 요리가 활약하는 일상계 추리물로는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불가사의한 술주정뱅이"

젊은 화과자 가게 주인 하기노 씨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파 말"에서 식사를 즐겼다. 그러면서 그들은 학창 시절, 갑자원을 노리고 분투하던 야구부였는데 불미스러운 사고로 출장이 취소되었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말썽꾼이었던 2학년 '야마다'가 합숙소에서 술에 취한 채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신체 검사 및 소지품 검사, 출입 통제 및 감시로 술을 입수하기가 불가능했었는데 야마다가 술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방법은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미후네 셰프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틀 뒤 가게를 다시 방문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틀 뒤 세 명에게 미후네 셰프가 내어 놓은 것은 냉장고에 들어있던 수박이었다.

수박에 구멍을 뚫어 독주를 집어 넣은 뒤 밀봉하고, 이를 배달시켰다는게 진상으로 설득력있는 동기, 그리고 충분히 실현 가능한 트릭이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요리가 중요하게 활용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미후네 셰프가 이 트릭에서 영감을 얻어 '술주정뱅이 수박 프루트 샐러드'라는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기는 하지만, 정통 프렌치도 아닐 뿐더러, 딱히 새로운 요리로 보이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하기노 씨가 만든다는 '매실주 수박이 들어간 미쓰마메' 가 더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일상계 추리물로는 거의 완벽합니다. 이 단편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트릭다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별점은 3.5점입니다.

"텅빈 카슐레"

단골인 편집자 미키모토 씨가 유명 에세이스트 데라카도 고유키 씨와의 식사 예약을 하며, 거위 콩피로 만든 카슐레를 주문했다. 미후네 셰프는 데라카도 고유키 씨가 실연했던 과거를 그린 에세이 "최악의 카슐레"를 통해, 그녀가 맛 보았던 최악의 카슐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식사 당일, 셰프는 요리와 함께 5년 전 그녀의 애인 앙리가 준비했던 거위 콩피 카슐레의 진상에 대해 알려준다. 

최악의 거위 콩피 요리는, 메인인 푸아그라를 빼 내고 남은 오리로 만든거라 맛이 없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앙리는 푸아그라를 이용하여 제대로 고유키 씨 생일을 축하해줄 생각이었던거죠. 우리나라 식이라면, 메인인 생선 요리를 준비할 때 딸려온 서더리로 먼저 매운탕을 끓여 내 놓았다는 식으로 변주할 수 있겠죠? 이렇게 특정 요리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설득력도 높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손님이 고민거리를 자의적으로 털어놓는게 아니라, 고유키 씨의 기묘한 주문과 그 이유를 전해듣고 미후네 셰프가 그녀가 썼던 에세이를 읽어본 뒤 추리를 펼친다는 전개도 설득력있고요.

앙리가 무려 5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는건 인터넷과 SNS가 널리 활성화 된 작금의 상황에 잘 맞아 떨어지지는 않습니다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수록작 중 최고로 별점은 4점입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초콜릿"

"파 말"에 방문한 커플이 서로 싸우는 심각한 상황에서, 남자는 "파 말"에서 내 놓은 봉봉 오 쇼콜라가 맛없다고 지적했다. 쇼콜라는 외부에서 구입한 제품으로 실제로 맛이 변했던게 맞았기 때문에, 미후네 셰프는 남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차에 잡지 기사를 통해 그 남자가 최근 유명한 쇼콜라티에 쓰루오카 다다시라는걸 알게 되었다.

갸르송 다카쓰키 토모유키는 쓰루오카의 가게 "놈브르 프르미에"를 방문하여 셋트 메뉴를 구입해 오고, "파 말" 관계자 모두 맛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리플릿을 통해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된다. 세트 메뉴의 구성이 2개, 3개, 5개, 7개......에서 41개로 불규칙한 숫자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었다. 요리사 시무라 씨는 이 숫자들이 소수라는걸 알아낸다. 그런데 왜 세트 메뉴를 소수로 구성했을까? 

쓰루오카와 싸우던 여자는 그의 동생으로, 암에 걸려 임종을 앞 둔 어머니 병문안을 오빠에게 부탁하고 있지만 거절당해서 울었던 겁니다. 그러나 쓰루오카가 불효막심해서 그런건 아닙니다. 어머니를 사랑한 탓에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던거죠. 이는 세트 메뉴 구성으로 밝혀집니다. 어머니가 쓰루오카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누어주고 딱 한 개만 남았을 때만 먹었다는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즉, 쓰루오카는 어머니가 어떻게 초콜릿을 나누어 주어도 꼭 먹을 수 있도록, 어떤 숫자로 나누어도 1이 남게끔 소수로 구성한 것입니다.

일단, 소수라는 숫자를 이런 이야기에 활용한건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여태까지 보았던 일상계와 수학 관련 아이디어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세트 메뉴 구성이 어머니에 대한 쓰루오카의 애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건 대충 이해가 되지만, 정작 당장 병문안을 가지 않는걸 단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것이다'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는건 그다지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한다면 중간 과정이야 어쨌건, 만사 젖혀두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야 맞는거잖아요?

한마디로 빼어난 아이디어를 이야기가 잘 받쳐주지는 못한 작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11/12

경양식집에서 - 조영권 / 이윤희 : 별점 3점

경양식집에서 - 6점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린틴틴

전국 유명 노포 중국집을 찾아다니며 맛 본 음식들에 대해 쓴 글을 모아 "중국집"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의 신작. 이번에는 전국의 노포 경양식집을 찾아 다닌 결과물입니다. 28년 동안 탐방했다고 광고하고 있네요. 마침 소개되고 있는 경양식집도 28곳이고요.

장점이라면 편집과 디자인입니다. 전작은 폰트와 기본적인 편집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디자인도 도전적이기는 했으나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가로로 돌려 보아야 하는 부분 등은 영 불편했으니까요. 수록된 사진들의 퀄리티도 그다지 좋지 못했었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이 완벽하게 보완되었습니다. 전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윤희의 만화가 그대로라는 점도 좋았고요. 전작의 편집자 박진홍 씨가 회사를 옮긴 뒤 기획한 책으로 보이는데,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만든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전문 요리 서적은 아니고, 일종의 맛집 탐방기에 가까운데 그 주제가 '경양식집' 이라니! 완전히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저자는 입맛을 돋우는 수프와 같은 전채에서 시작해서, 주로 튀김 요리인 메인 요리에 빵이나 밥 같은 탄수화물, 샐러드 등의 곁들임 야채들과 깍두기와 단무지같은 식사용 반찬, 그 외 이런저런 부록(?)에 후식 커피까지 전부 갖추어져 있는 풀 코스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경양식이야말로 가성비 좋은 완벽한 음식이라고 말하는데, 무척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이런 경양식을 많이 먹어 보았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제대로 한 상 차려내는 곳을 찾아보기는 힘들지요. 무척 반갑기도 했고, 옛 추억이 떠올라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소개되는 경양식 요리들도 굉장했습니다. 단순한 돈까스가 아니라 단호박 돈까스, 치즈 돈까스, 고구마 김치 돈까스, 해물 돈까스와 같은 응용도 많고, 그 외에도 생선까스나 함박스테이크에 오므라이스, 심지어는 베이컨 더블 치즈 버거 등 여러가지 요리가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평범한 일반인에 가까운 시각으로 가게와 음식을 바라보고, 방문했을 때의 일상을 수필처럼 함께 기록해주는 편안한 글들도 여전히 매력적이었고요.
또 우리나라 최초의 경양식집 서울역그릴을 비롯, 경기도 인천, 광명, 안성 등의 수도권에서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등 전작처럼 전국 각지가 모두 등장하는데, 놀랐던건 이번에는 전작처럼 조율을 위해서 방문한게 아니라, 일 없이도 훌쩍 떠나 경양식을 먹고 오는 이야기도 제법 된다는 겁니다. 정말 맛 탐방을 위한 노력과 정성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기도 광명의 라임 하우스, 동두천의 라르고, 서울의 그릴 데미그라스는 가게 주인의 인터뷰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좋은 정보였습니다. 라임 하우스의 장인 정신, 라르고의 편안함, 그릴 데미그라스의 도전 정신과 열정은 본받아야 마땅하지요. 주인 분들이 더 나이가 드시기 전에 라임 하우스와 라르고는 한 번 꼭 가봐야겠어요.

그러나 만화가 전작보다 분량과 비중이 줄은건 아쉽습니다. "중국집"에서 만화는 거의 80페이지에 달했는데, 이번에는 50페이지가 안되거든요. 무려 40%나 줄은 것이죠. 출판사는 달라졌지만 같은 시리즈이니 만큼, 같은 판형으로 출간해 주는게 훨씬 좋았을테고요. 디자인이 달라서 시리즈로 보이지도 않지만, 판형마저 다르니 책꽂이에 꽂아놓으면 아예 다른 책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적당한 식도락 수필입니다. 구스미 마사유키 등 일본 작가들이 쓴 책 비슷하게요. 그러나 명확하게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차이점에 더해 사진과 만화 등 함께하는 컨텐츠의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좋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참고로 이 책의 전작 "중국집"은 출판사 CA에서 제 졸저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출간 바로 전에 펴 냈던 책입니다. 담당자도 박진홍씨로 동일했고요. 그래서 저도 책의 존재를 알고 인연을 맺게 되었었지요. 제 졸저도 이처럼 후속작이 어딘가에서 기획되어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2022/02/20

양과자 시간여행 - 나가오 켄지 / 비앤씨월드 : 별점 3점

양과자 시간여행 - 6점
나가오 켄지 지음/비앤씨월드

제목 그대로, 여러 양과자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책. 첫 번째의 가토 데 루아에서부터 마지막의 비스킷까지 모두 15 종의 양과자가 소개되고 있는데, 단순 소개 이상의 식문화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양과자를 누가 만들었는지?" 뿐 아니라, 그 양과자가 만들어진 이유를 시대적 배경과 상황과 함께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4월의 물고기'를 설명하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물고기 과자가 4월 1일에 만들어진 이유가 예전 유럽 관습과 관련이 있다며 상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이 책에 따르면, 봄의 도래를 상징하는 춘분은 예전부터 농경민족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이전 유럽의 책력에서 1년의 시작은 3월 25일이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3월 25일부터 일주일에 걸쳐 신년을 축하하고 8일째 되는 날인 4월 1일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관습이 있었고요. 그런데 1564년 프랑스 왕인 샤를 9세가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도입해 1년의 시작이 1월 1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변해도 오래된 관습은 프랑스인들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변함없이 4월 1일을 진짜 신년인 것처럼 가장하고 계속 축하했습니다. 이렇게 '허위 신년, 거짓 신년을 축하하는 풍습이 세월과 함께 조금씩 변화해 '타인을 속이고 즐기는 풍습으로 변모해서 만우절이 된 것이지요. '4월의 물고기'는 이후 로렌 공과 관련된 설화 등에서 차용되어, 만우절에 물고기 그림을 등에 몰래 붙이는 장난이 생겨난 이후 과자로 진화하였고요. 재미있네요.

달걀이 부활절의 상징이 된 이유도 명쾌하게 알려줍니다. 그것이 생명을 만들어내는 근원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는 관련이 없고요. 원래 부활절 축제는 유대교의 과월제, 게르만 시에 등장하는 봄의 여신에서 유래되었고, 기독교 성립 이후 부활과 결부된 것이라나요. 부활절 토끼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부터 새끼를 많이 낳는 동물로 알려졌고, 그래서 풍작을 상징해서 부활절 축제와 이어진 겁니다.

뷔슈 드 노엘의 본래 의미는 크리스마스의 뷔슈, 즉 장작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장작을 태우는 풍습은 옛부터 있어 왔습니다. 기독교 이전 '동지'에 태양의 재생을 상징하고, 빛과 온기를 더하기 위해 태웠던게 계속 이어졌던 거지요. 그리고 19세기 후반, 서민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었지만 그들은 장작을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집은 좁고 설비도 간소했기 때문입니다. 또 뷔슈 드 노엘은 불을 붙인 후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까지 절대 불이 꺼져서는 안돼서, 적어도 3일간은 계속해서 타야만 했는데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계속 타기 위한 큰 장작을 태울 난로도 없었고요. 그래서 뷔슈는 점점 작아지다고, 집에 난로가 없는 집이 늘어남에 따라, 결국 길모퉁이 제과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뷔슈 드 노엘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실제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관련된 유래 외에도, 처음 누가 만들었는지?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와 같은 정말 양과자의 발전 과정을 다룬 설명도 자세합니다. '자허토르테'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프란츠 자허가 이 과자를 처음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진실에 대한 추적에서 시작합니다. 프란츠 자허가 메테르니히 공 주방에서 일한건 사실이지만, 만들었다는 시기에는 너무 어렸는데 왜 연도를 속였을까?라는 수수께끼가 불거지고요. 이유는 아들 에두아르트 때문이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호텔 자허를 설립한 뒤 프란츠 자허가 메테르니히를 위해 만들었다는 설을 퍼트렸습니다. 19세기 후반 약소국이 된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메테르니히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이용하려 했던 겁니다. 저자 말대로, “메테르니히 공이 사랑한 그 초콜릿 케이크야말로 우리 호텔의 스페셜리티입니다. 당신도 꼭 메테르니히 공이 맛본 이 과자를 우리 호텔에서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요?"라는 권유였지요. 에두아르트의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자허토르테는 유명한 과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자허 가문의 몰락과, 과자 레시피가 두 개로 분리된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어원에 집중한 설명들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에클레르는 '번개'라는 뜻인데, 저자는 '천천히 먹으면 손과 입 주변이 크림으로 끈적끈적해 지기 때문에 번개처럼 빨리 먹어야 했다', '과자 옆에 번개같은 날카로운 선이 뻗어 있었다', '벨기에에서는 아예 과자 모양이 번개 모양이었다', '과자를 만든 파티시에가 이걸 완성한 순간 창 밖에 번개가 번쩍였고, 그 때 머리에 과자 이름이 번쩍 떠올랐다' 등의 다양한 설을 모두 소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윗면에 캐러멜로 광택을 입힌 에클레르가 원래는 '바통 드 자코브'라는 중세 이후 대항해시대에 사용된 측량 기구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바통 드 자코브의 캐러멜이 빛을 받아 번쩍하고 반사되는 모양이 번개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에클레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을 거라는 저자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 외에도 마들렌, 매그 파이 등의 어원 등 다양한 과자의 어원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의 폭은 상당히 넓습니다. 원래 이름 뿐 아니라 미국에서 밀푀유가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이유까지 탐구할 정도로요. 저자는 가토 나폴리탄이라는 밀푀유를 본뜬 과자에서 나폴레옹이 유래되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근거는 불명확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해석이었어요.

도판도 충실한 편입니다. 애플파이 레시피가 적힌 가장 오래된 문헌은 <<캔터베리 이야기>>와 거의 동시대에 나온 요리 해설서 <<폼 오브 퀴리(Forme of Cury)>>였고, 약 200년 후 극작가 로버트 그린의 <<아케이디아>>에 애플파이에 대한 대사가 나온다는 등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료적인 근거도 제법 갖추고 있고요.

파티시에, 혹은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위해 쓴 글인듯 지나치게 전문 용어가 많다는 점, 그리고 모든 양과자 설명에 참고 문헌과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여러모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졸저 <<콘 비프 샌드위치에 먹는 밤>> 증보판이 나온다면 (설마? 과연?) 써 먹음직한 내용이 많다는게 제일 좋았습니다. 과연 써 먹을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2019/08/07

텀블벅 펀딩 성공!

얼마전 제가 쓴 책의 텀블벅 펀딩이 시작되었다고 소개해 드렸었죠. 그런데 펀딩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100% 달성에 성공했더군요. 금액이 얼마 되지 않은 덕에다가 지인 비중도 높겠지만, 기분은 좋네요. 앞으로도 탄력받아 쭈욱 잘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