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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9

천사의 잠 - 기시다 루리코 / 오근영 : 별점 1.5점

천사의 잠 - 4점
기시다 루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북스캔(대교북스캔)

교토의 의학부 연구원 아키자와 소이치는 조수 결혼식에서 13년 전 불같이 사랑했던 여성, 아키호 히후미를 만났다. 소이치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듯 떠난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뜻밖의 만남 앞에서 반가움보다는 알 수 없는 의문에 휩싸였다. 이미 중년이 되어 있어야 할 그녀가 20대의 젊음과 미모를 그대로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두 살배기였던 그녀의 딸은 열다섯 살 소녀로 성장해 있는데, 어째서 그녀만은 세월을 거스르듯 오히려 13년 전보다 더 앳된 모습인 걸까? 과거의 열정이 되살아나 다시 그녀 주변을 맴돌던 소이치는 그녀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를 사랑한 주변 남자들이 모두 수수께끼 같은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사라졌던 13년 동안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살인 단백질 이야기"로 접했던, 유전병인 치명성가족성불면증 (FFI)를 앓다가 죽어가는 가족이 주요 소재입니다. 자세하게는 몰라도 대충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라 반갑더군요. 그나저나, "살인 단백질 이야기"를 읽고나서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10년도 더 전인 2006년에 이미 관련 작품이 발표가 되었었네요.

소재도 반갑지만 여성 작가다운 디테일한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여러가지 음식들 묘사에 더해 패션에 대한 시각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빨간색 코트에 초록색 정장을 받혀 입는다던가 초록색 캐시미어 재킷에 하늘색 원피스, 노란 부츠에 파란색 가방이라는 히후미의 패션은 화려한 수준을 넘어선, 상상도 잘 안 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컬러 조합이니까요. 교토를 주 무대로 하여 은각사, 은사탄 등 각종 명소와 거리를 상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은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전해주고요.

그러나 소재와 약간의 묘사만 괜찮을 뿐, 내용은 수준 이하입니다. 아무리 현실을 뛰어넘는 이야기는 없다지만 실존하는 이탈리아 FFI 가족 이야기보다도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어딘가에서 괜찮아 보이는 실화를 접한 뒤 깊은 조사 없이 그냥 동기로 이용해서 책을 쓴 것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작품 내용만 본다면 프리온 어쩌구, 유전병 어쩌구를 소재로 사용할 이유도 없어요. 그냥 심장 이식이 필요했다고 해도 무방했을테니까요. 

그리고 범행 동기인 히후미의 에마에 대한 걱정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 자신의 딸에게 같은 병이 유전되었을지 모른다는건 어마어마한 고민이겠지만, 아무런 의학적 검사 없이 그냥 '유전병이니 죽을거야' 라고 생각한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프랑스의 유명한 연구소까지 갔다 왔다는 설정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살인 단백질 이야기"를 보면 이미 20세기 후반에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유전자 변이에 대한 검사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이 발표된 시점에서는 이미 발병 여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을거에요. 최소한의 검사도 없이 무조건 병에 걸릴거라고 믿는다? 최소한 '의학 미스터리'라고 홍보한다면 이런 식으로는 곤란합니다. 

그래도 절박한 어머니의 심정만큼은 설득력이 있다고 칩시다. 저 역시 딸이 병을 앓고 있다면 무슨 짓을 해도 고쳐주고 싶을테니까요. 하지만 프랑스 연구소에서 5억엔을 기부받으면 치료약을 완성할 수 있다는 어이없는 설정, 이 5억엔이 동기가 되어 부유한 사람들을 유혹하고 살해하는 연쇄 살인극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전무합니다. 지금도 프리온 관련 병의 치료제는 나오지도 않았으니 그냥 완벽한 사기지요. 5억엔이라는 애매한 금액은 대체 뭔가 싶고요. 차라리 피실험자로 자원한다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그걸 위해 최소한의 체류비를 목표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말은 되니까요.

연쇄 살인극 이야기는 더 가관입니다. 핵심 트릭인 '바꿔치기' 부터가 어이 상실이에요. 아무리 지인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나이부터가 차이나는 다른 사람을 대역으로 삼는다는 것 부터 어처구니가 없어요. 그것도 불법 체류자를 자신의 대역으로 마련한다? 완전히 비상식적입니다. 게다가 불법 체류자를 가르쳐서 한 사람의 간호사로 역할을 하도록 만든다는 것도 말도 안되지요. 간호사들의 업무가 그렇게 호락호락할걸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대역 본인도 아니면서 13년전 소이치와의 과거를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 히후미 본인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걸 너무 쉽게, 대충 넘기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왜 이런 범행을 저지르는지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13년 전 시점에서 히후미는 굉장한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묘사되며 나름 유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5억엔을 위장 결혼과 살인으로 마련하느니 지위가 높은, 예를 들면 의사와 결혼하여 마련하는게 더 현실적인 방향입니다. 최소한 살인 계획을 짜기 전에 그런 노력이라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히후미는 서슴없이 살인을 선택했어요. 그렇다면 5억엔을 마련하려면 범행을 최소화했어야 하는데, 이런 저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연쇄 살인극을 벌이고요. 경찰을 우습게 알아도 이건 너무 과합니다.
그리고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더라도 동기가 명확한 사람이 한 명뿐이라면 범행이 연달아 성공할리도 없어요. 공범자를 밝혀내는게 수사의 기본이니 분명히 꼬리를 잡혔을겁니다. 부유한 남편들이 연달아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돌면 더 이상 희생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근거지를 옮기지도 않고 버티는 건 무슨 배짱인가 싶네요.

남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키자와 소이치의 존재도 작품을 수렁으로 몰고갑니다. 히후미를 불같이 사랑하여 그녀를 잊지 못하다가 그녀를 '가장'한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원래의 히후미는 가차없이 버린다는 이야기의 결론만 놓고 보면, 사랑 따위는 없고 결국 그냥 젊고 예쁜게 좋았을 뿐이라는 거니까요.
또 새로운 연인이 히후미와 교제할 때 옆집에 살던 중국에서 온 매춘 소녀 레이카였고, 히후미가 소이치와 동거를 결심한게 레이카를 자신의 대역으로 삼으려던 의도였다는 전개는 작위적이라고 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유치하고 어이없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부터 레이카가 소이치를 마음에 들어했다는 안 넣으니만 못한 설정은 한마디로 쓰레기 더미에 얹은 음식물 쓰레기 느낌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소재는 흥미로우나 이를 전혀 살리지 못한 졸작입니다. '의학 미스터리' 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함량 미달이고요. 추리적으로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오래전 작품으로 이미 절판되었지만 혹시나 눈에 뜨이시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전무합니다.

2020/06/27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1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스티븐 킹의 단편집으로 어쩌다보니 2권부터 읽고, 뒤이어 읽게 되었네요. 2권과 마찬가지로 모두 열 두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모두 완성된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순문학적 작품보다는 박진감넘치는 화끈한 계열이 많다는 점은 2권과 같고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물이 수록된 2권에 비하면, 장르적인 변주는 거의 없습니다. 크리쳐 호러, 범죄 액션 스릴러가 여섯 편이나 되거든요. 게다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보아왔던 설정이 많아서 2권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순문학을 추구한건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고요. "돌런의 캐딜락"을 비롯해서, 화끈한 계열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져서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해진다는 문제도 큽니다. 강-강-강이 아니라 강-중-약으로 구성하는 편집의 묘가 아쉽더군요.

그래도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티븐 킹 다운 작품들은 여전한 매력을 선사해주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돌런의 캐딜락"

아내를 죽게 만든 갱단 보스 돌런을 향한 초등학교 교사의 집념의 복수극으로 약 80페이지 가량 되는 단편인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거의 60페이지 분량이 복수의 '과정'입니다. 

복수의 방법이 굉장히 황당해서 인상적입니다. 돌런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을 때, 그 곳에 캐딜락이 완벽하게 파묻힐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을 파는거지요. 그리고 돌런의 차가 지나갈 때 '전방에 우회도로' 표지판을 치우고 돌런의 캐딜락이 함정에 쳐박히게 만듭니다. "루니툰"에서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꾸미는 함정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계획은 간단하지만, 작열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태양 아래에서 폭 1.5m, 길이 13미터에 15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내는 과정 묘사는 정말 엄청납니다. 굴착기의 도움을 빌리지만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포기할 뻔 하는 모습이 스티븐 킹의 날 것 그대로의 묘사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람이 익어가면서 땅을 파는 모습과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묘사였어요.

하지만 돌란이 그 길을 지난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나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복수극이기는 하네요. 제가 본 복수극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준입니다. 돌런의 캐딜락이 방탄까지 완벽한 탱크같은 차이며, 항상 2명의 프로 보디가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파 묻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함정을 파는 계산처럼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넓은 범위를 폭파시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한 권선징악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과 완벽한 완전 범죄라는 점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난장판의 끝"

하워드의 동생인 천재 바비는 세계 평화를 꿈꾸다가 우연히 '라플라타'라는 마을이 범죄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걸 알게된 뒤, 그 곳의 물에 특별한 성분이 있다는걸 밝혀냈다. 바비는 그 물을 농축하여 화산 폭발을 통해 전 세계로 뿌리는데...

"살인 단백질 이야기""엘저넌에게 꽃을"을 결합한 이야기입니다. 물 안에 뇌와 비슷한 단백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는건 "살인 단백질 이야기"이고, 천재가 백치가 되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앨저넌에게 꽃을"이니까요. 특히 1인칭 시점의 일기 형태이며, 글쓴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결말은 판박이에요.
한 마디로 내용과 전개, 설정에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또 엄청난 천재라는 바비가 이 물의 성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아내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앞 뒤가 맞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스티븐 킹의 흥미진진한 묘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스티븐 킹 만의 무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허락하라" 

소갯글은 '옥수수밭의 사악한 아이들이 돌아온다!'입니다만,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변했다고 믿는 노처녀 교사 시들리 부인이 결국 아이들을 죽이다가 체포된 뒤 자살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밀리면서 점차 궁지에 몰리는 시들리 부인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시들리 부인이 폭주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 역시 예상대로지만 긴장감넘치게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들리 부인이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로 무언가에 점령당해버려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결말에서 은근슬쩍 후자일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데, 모호한 채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답답하기는 해도 작품과는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말은, A급 심리 스릴러가 B급 싸구려 호러물로 끝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타블로이드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완기자 디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공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나이트 플라이어'를 쫓아 위험천만한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서 드디어 '나이트 플라이어'와 조우하는데...

영화화도 된 유명한 작품이지요. 디스가 공항에 착륙하다가 폭풍우와 벼락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장면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이고, 월밍턴 공항에서 살육당한 시체를 보고 화장실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가 거울로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가 소변보는 모습을 확인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기 때문에 피에 물든 소변 줄기만 보인다는건데, 정말 기가 막혀요.

그러나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의 기원이나 흡혈과 살인의 목적, 동기, 이유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말 역시 경찰이 디스를 체포하는 듯한 묘사가 전부라 어정쩡한 느낌이 들거든요. 디스가 기사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영화 쪽을 확인해보니 흡혈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영화쪽 결말만큼은 소설보다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 디스가 살인마이고, 흡혈귀는 그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그럴듯한 반전이었다 생각되네요.

동기와 결말이 어쨌건 간에, 흥미로운 전개와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던 작품. 하긴, 흡혈귀가 피를 빨아 먹고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괴물이니까 그런거지. 별점은 2.5점입니다.

"팝시"

처음에는 유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괴범 셰리던이 아동 유괴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로부터 유괴 행각이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나이트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나오는 크리쳐 고어물입니다. 크리쳐는 바로 제목이기도 한 '팝시'고요. 팝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디에 있어도 유괴된 이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범 셰리던의 자동차를 찾아내어 습격하는게 작품의 클라이막스인데, 역시나 킹 다운 박진감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유괴된 아이가 팝시의 손자로 이른바 크리쳐 혈족이라는 살짝의 반전도 나쁘지 않으며,도 아동 유괴범 셰리던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게 또 다른 악인 흡혈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네요.

스티븐 킹의 장점이 20페이지 안쪽의 분량에 전부 담긴,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을 대변할만한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익숙해질거야"

캐슬록의 노인들이 잡화점에 모여 폐허가 된 뉴올 저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의 작품.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라 뉴올이 게리 폴슨에게 왜 추잡한 짓을 했는지. 노인들의 기억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완성된건지 아닌지도 헛갈리고요. 뉴올 저택을 다시 짓는 것도 당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스티븐 킹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려는거 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승전결 확실한 괴물 나오는 이야기가 더 좋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움직이는 틀니"

잡화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거대한 움직이는 틀니 장난감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작품. 간단한 설정만 보아도 무척 황당해 보이죠? 하지만 이를 박진감 넘치게,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묘사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나 호건과 브라이언의 사투, 이어지는 브라이언과 틀니의 사투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에요. 모래바람과 태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갇힌 차 안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치게 선사한다는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움직이는 틀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악마의 소도구였다던가, 누군가의 저주였다던가하는 최소한의 설명마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는 "나이트 플라이어"와 비슷하지만,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는 이 쪽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헌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2. 

흑인 하우스키퍼 마서 로즈월이 자신의 아들이 내 놓은 첫 소설책에 대해 친구 다시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친부는 강도짓을 하다가 죽은 조니인게 명확하지만, 흑인 마녀 마마 들로름에 의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백인 소설가 피터 제프리스가 되어 아이가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인가 싶기는 한데... 분명하지는 않네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모르는 내용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세면대에서 기어나오는 손가락을 없애려고 고군부눝하는 하워드 미틀라의 이야기. 스티븐 킹 특유의 고어 크리쳐물과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결합된 작품. 킹이 잠결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쓴 작품일거라 생각되네요. 변기 속에 손가락을 가두기는 했지만, 쾅쾅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기 직전 이야기는 마무리 되며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 치밀한 맛은 없고,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지만 킹이 크리쳐 물의 대가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운동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 

결국 존 텔은 유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존 텔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 뿐이에요. 폴 재닝스가 범인으로 삼만 달러를 넘게 챙겼다고 해도... 그게 존 텔 앞에 나타난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존 텔의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애매했고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들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지는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밴드가 엄청 많더군"

여행객이 길을 잃은 뒤 이상한 마을에 방문하여 위험에 처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리뷰로 소개했던 작품만 해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라던가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수록작인 "역사적 오류" 등이 그러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도 위험에 처하지 않다 뿐이지 기본 발상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테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설정이지요.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은밀한 의식과 관련이 있는게 보통입니다. 여행객들은 산 제물로 쓰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은밀한 의식'에서 한 발, 아니 두 세 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은밀한 의식'이 아니라 난리법석의 로큰롤 공연을 추구하는 마을이었던거지요. 여행객들은 공연에 관객이 없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장으로 나오는 등 설정이 워낙에 황당해서 우습기까지 한데, 이런 내용을 스티븐 킹의 묘사로 읽으니 공포가 따로 없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여전한 박력을 자랑하고요. 로큰롤 공연을 몇 일 동안 계속 보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공포스럽기도 하네요. 작중에 나오는대로 로큰롤 '헤븐'이 아니라 '로큰롤 헬'인 셈입니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어떤 설정과 이야기라도 약간의 변주를 통해 박진감넘치는 호러 소설로 만드는 스티븐 킹의 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정 분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외딴 섬 마을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매디의 이야기.

일단,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중심인 가정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 중심축을 잃고 흔들리던 매디에게 성실하고 충직한 남편 잭이 나타나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좀비 창궐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잭을 매디가 도끼로 처단한 뒤,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결말이고요. 이 이야기에 매디가 사는 섬마을 사람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며 깨어나는 시체들을 토악질을 해 가며 해치우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한 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또 매디가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아서 이게 기둥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좀비가 창궐했다면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잖아요? 기승전결로 보더라도, 완전한 '결'로 끝맺지 못한 느낌이라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섬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좀비를 격퇴하고 섬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마을 공동 묘지에서 되살아난 가족들과 싸우는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2019/04/20

살인단백질 이야기 - D.T. 맥스 / 강병철 : 별점 5점!

살인단백질 이야기 - 10점
D. T.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김영사

"책장의 정석" 에서 소개되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판되어 아쉽던 차에, 중고를 저렴하게 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인 "살인단백질", 즉 프리온은 광우병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이 책은 프리온 연구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상세하고 재미있게 소개해 줍니다. 기묘한 병의 원인이 프리온이라는걸 밝혀내는 과정 자체도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방불케하고요.

책은 이탈리아의 한 가족에게 대물림되는 치명적가족성불면증(FFI)이라는 유전성 프리온 질환 소개로 시작됩니다. 18세기 중엽 베네치아에서 한 의사의 사망으로 시작된 FFI의 유전이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마찬가지로 18세기 영국에서 축산업자 베이크웰이 동종교배로 탄생시킨 거대양 디쉴리 레스터 종이 치명적인 스크래피의 유행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는 이야기가 병렬로 전개되다가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베네토에서 전쟁의 혼란 와중에 피에트로가 FFI로 사망하고, 뉴기니 원주민 포레이족이 '쿠루'라고 불리우는 이상한 유행병으로 죽어갈 때 젊은 학자이자 의사 칼턴 가이듀색이 현지에 뛰어들어 쿠루병이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병이라는걸 밝혀내어 노벨상을 받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다음은 1970년대로 넘어가서 피에트로의 딸, 아들들이 FFI로 사망하며 본격적으로 병의 정체에 대해 연구가 벌어지고, 가이듀색의 라이벌 프루시너가 쿠루병과 스크래피 등이 '프리온' 이라고 명명한 단백질 탓에 발병하는 병이라는걸 증명하며 결국 이탈리아 가문의 유전병 역시 프리온 질병이라는게 밝혀집니다. 이 이탈리아 가족들의 데이터로 프리온이 감염병을 일으키고, 다른 종류의 프리온은 각각 뚜렷하게 구별되는 다른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지요. 이런 연구들로 프루시너 역시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1986년 영국 광우병 사태가 등장합니다. 광우병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축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 정치가들이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홍보하다가 사람에게 감염되는게 밝혀지는 내용은 굉장히 무섭고 끔찍해서 인상적이었어요. 동종교배, 소에게 소를 먹이는 행위와 같은 축산업에 존재하는 잔혹함이 광우병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동종접합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쉽게 전염되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으며, 최근에는 여러가지 연구로 치료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결말은 조금 다행입니다. 물론 치료약인 퀴나크린은 간 손상 등을 일으켜 결국 환자들은 모두 사망했으며, 또다른 약인 펜토산은 치료가 아니라 현상 유지에 그치고 있어서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가는 치료약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드네요.

이렇게 재미와 정보,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만든 좋은 책입니다. 단점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기에 별점도 5점입니다. 이전 "책장의 정석"에서 소개받아 구입했던 "얼음의 나이"는 솔직히 지루했는데 이 책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그런 책입니다. 의학, 광우병, 프리온 등에 궁금하시다면 필독서이며,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순수한 재미 측면에서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읽어보니 미국산 소고기가 찜찜하게 느껴지는데, 앞으로는 저렴하게 먹더라도 호주산을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섭니다. 아직까지 호주,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광우병 청정 구역이라고 하며 동양인은 동종접합 유전자를 지닌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고도 하니 조심해서 나쁠건 없겠죠.

2019/11/29

회색 인간 - 김동식 : 별점 2점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꾸준히 업로드한 글이 인기를 얻은 덕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결과물입니다. 과거 하이텔 시기에나 존재했을 법한 이야기의 재림이네요. 올린 글의 분량만 따지만 거의 "태백산맥"에 육박한다니 그 열정과 노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이텔 시기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 등과는 명확히 다른 점은, 굉장히 짧은 꽁트, 아니 쇼트쇼트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야기들이 표제작을 포함하여 무려 스물 네 편이나 수록된 단편집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한 편의 이야기로의 완성도가 부족한 탓입니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들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단점도 큽니다. 기묘한 설정, 그리고 그 기묘한 설정 때문에 인간들의 집단 이기주의나 탐욕이 생겨나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는 결말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기묘한 설정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지만, 그냥 기묘하다는 상황에만 매몰되어버린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건물이 급작스럽게 식인 괴물로 변하여 밖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식인 빌딩", 인간이 녹았다가 다시 돌아오면 완벽한 컨디션이 된다는 기적의 물 정화수가 대유행한다는 "흐르는 물이 되어"가 대표적이에요.
또 기묘한 설정에 기댈 뿐,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반전도 뻔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아우팅"에서 인류 모두가 인조인간이라는게 밝혀지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차라리 연구소 경비병들만 진짜 인간이었다는 반전이라도 넣어 주었어야 했어요. 그나마 조금 신선한 반전들도 대체로 기존 상식이나 그때까지의 현실을 반대로 뒤집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괜찮아 보여도 읽으면 읽을 수록 식상해 질 수 밖에 없어요.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에서 나이를 먹지 않게 만드는 영원의 구가 사실은 저주였다던가,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에서 좀비 바이러스는 무적의 재생력을 안겨다주는 선물로 사람들은 다시 인간이 되려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피노키오의 꿈"에서 피노키오의 소원이 인간이 되는게 아니라 건강한 소나무가 되는 것이었다는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반전이라도 있는 이야기는 조금 나은 편입니다. 특별한 반전 없이 인간미, 감동 쪽에 방점을 찍으려 노력한 이야기들은 더 엉망이에요. 표제작인 "회색 인간"이 대표적입니다. 1만여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납치되어 땅을 파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립니다. 먹을게 부족해서 문화는 사치였지만, 어느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 문화가 생겨난다는 결말입니다. 문화가 사라지면 인간도 아니라는 주제인데, 솔직히 억지스럽죠. 이런 상황이라면 집단이 생기고, 자체적인 법률이 생기는게 타당한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이 그냥 살기 힘든 상황만 길게 묘사되는 것도 지루하고요. 가혹한 노동 환경에서도 추구하는 문화에 대한 욕구와 인간미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외전 반장의 일일 외출록" 에서 훨씬 더 재미있게 잘 그려졌다 생각됩니다.
손가락 여섯개인 신인류를 낳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계획이 비선 실세의 농간으로 밝혀진 후, 손가락 여섯개인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생각이 모든 차별을 없앤다는 꿈같은 이야기도 황당하기 그지 없고요. 괴물이지만 또 인간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접했었던 설정도 많습니다. 어설픈 풍자, 별 것 아닌 내용을 길게 늘려쓴 이야기도 눈에 거슬렸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답게 반짝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들이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노인에게 나누어주기를 거부하자 노인이 자신이 부자라면서 통조림을 500만원에 사겠다고 제의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무인도의 부자 노인", 신에게 소원을 빌 당사자로 선택되는 개인에게 닥치는 집단 광기를 설득력있게 보여준 "신의 소원", 노인을 가상 세계에 모신다는 발상이 그럴싸 했던 "디지털 고려장" 등이 그러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후의 전개가 뻔하고 결말의 반전이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이거나 아예 없다는 단점은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

다행히 설정도 좋고, 전개도 괜찮으며 결말과 반전도 완성도 높은 보석과도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 재활용" 입니다. 돈만을 위해 살아온 두석구가 딸이 교통사고로 죽자, 13일 내 시체 세 구를 섞어 넣으면 한 명이 부활한다는 주술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생존은 랜덤이라 딸이 살아나지 못하자 두석구는 전 재산을 투자해서 13일 동안 이 주술을 계속 시도하고요.
그런데 영혼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고, 영혼들은 두석구의 딸 부터 영혼을 찢어발긴다는 마지막 반전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두석구는 딸이 살아날 때 까지 주술을 시도할테니 영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딸부터 처치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이를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마지막 대사도 좋았고요.
쇼트쇼트로는 그야말로 완벽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입니다. 이 정도면 호시 신이치의 대표작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 합니다.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도 평균 이상입니다. 정대리가 가진 보물인 쇠구슬은 손을 대면 비가 오게 만듭니다. 김대리는 이를 훔쳐내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아무리 손을 대도 비는 오지 않습니다. 아내 역시 흐려지기만 할 뿐이고요. 그런데 아기가 손을 대자 지진이 발생하여 결국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원리는 비가 오는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날이 실현된다는 이야기지요. 기묘한 설정도 좋지만 제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 모녀, 한 사내와 협곡에 갇힌 김남우가 극심한 굶주림 끝에 식량으로 희생될 사람을 뽑는 제비뽑기에 참여하는 "협곡에서의 식인"도 기묘한 맛 측면에서는 꽤 괜찮습니다. 김남우의 편인줄 알았던 사내가 놀랍게도 급작스럽게 김남우를 살해하는데, 알고보니 그들 4명은 모두 가족이었던 반전 덕분입니다. 김남우가 가족을 경계하고 오히려 위협할까 두려워 남인척 김남우 편에 섰다가 배신을 했던 거지요. 살아난 가족이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다는 마지막 한 방도 묵직하고요.
아쉬운건 에이즈가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좀 더 '천벌'에 가까운 병에 걸리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런 면에서는 "살인단백질 이야기"에 나왔던 프리온을 활용한 병이 어땠을까 싶네요. 식인으로 전염되고, 치사율 100%이니까요.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도 반전이 좋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 두석구가 지옥에서 악마들의 부탁으로 죄인들에게 환생을 약속하는 환생교를 만들어 포교합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 통제를 잘 하려는 악마들의 계획으로 생각하고요. 그러나 1년 뒤, 절대자가 강림하여 두석구를 찢어 발기고 죄인들의 희망을 끝냅니다. 죄인들에게 어설프게 희망을 주었다가 큰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말인데 아주아주 그럴 듯 했습니다.

하여튼, 전체 평균해서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 모든 수록작 중 세네 편 정도가 중간 수준, 세 편 정도가 중간 이상, 한 편이 수작이고 나머지가 모두 기대 이하이니 이 정도가 적당해 보입니다. 반 타작도 하지 못한 셈이니 전반적으로 좋은 단편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하면서, 전문적인 교육도 받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 창작하여 발표한 작가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등단도 한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음에는 보다 완성도있게 다듬어 발표해 주기를 바랍니다.

2016/05/20

책장의 정석 - 나루케 마코토 / 최미혜 : 별점 2.5점

책장의 정석 - 6점
나루케 마코토 지음, 최미혜 옮김/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일본 유명 독서가 나루케 마코토의 책장 관리법을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4개의 단락 - 책장에 대한 정의,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책장과 책 관리법, 저자가 생각하는 책 선택법과 독서법,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웹에서 호평받는 서평 쓰는 법 -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저자는 1955년 생으로 1991년 일본 마이크로 소프트 법인 사장으로 취임하여 2000년까지 역임했으며, 이후 투자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비즈니스 맨입니다. "honz"라는 서평 사이트의 개설자로 마음에 드는 책을 무조건 사고, 1년에 200권도 넘는 책을 읽는다는 독서가이기도 하고요. '시마 사장'이 떠오르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독서가답게 글도 잘 쓰고 나름의 철학도 분명히 있는 사람이더군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독서관이 명확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런 저자의 책장 관리법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보기 편할 것', '20퍼센트의 여백이 있을 것'과 '승부수가 될 책만 둘 것', '다양성은 갖되 위화감을 없앨 것', '언제나 변화할 것' 입니다. 보기 편한 것과 여백은 그렇다 치고, 승부수가 될 책만 둔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는 일절 꽂지 않고 오로지 논픽션 중심으로만 책장을 관리한다는 의미로, 소설과 만화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정보의 업데이트가 필요 없어서 책장에 계속 남아있게 되기 때문에 결국 공간을 차지하게 되어 나중에는 버리게 되는 탓이라고 합니다.
다양성은 테마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저자의 테마는 '남들이 읽지 않는 재미있는 책' 이며, 테마는 약 5년 정도? 주기로 바꾸면 좋다는군요.
그리고 마지막 '언제나 변화하는 책장'이 바로 책장 관리의 핵심입니다. 우선 앞으로 읽을 책,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두는 공간인 "신선한 책장" (장소는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편안한 곳에, 책을 눕힌 채로 놓고 책등의 제목이 보이게 쌓는, 즉 서점의 '평대' 느낌)이 있습니다. "신선한 책장"에서 다 읽은 책은 "메인 책장"으로 옮깁니다. "메인 책장"에 넣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자의 기준은 '1. 재미있는가 2. 새로운가 3. 정보가 많은가'이고요. 그리고 앞서 말한 20퍼센트의 여백과 같은 공간 관리에 신경쓰며 주, 혹은 한 달에 한 번 "메인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책장이 꽉 차면 결국 책을 처분해야 하지만 나름 선별한 것이라 버리기 어려우면, 시간을 두고 고민할 수 있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 관리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관리하면 역사 관련 서적은 어떻게 하는지 좀 궁금해집니다. 역사는 정보가 새롭게 바뀔 여지가 아무래도 적잖아요? 이미 정해진 과학, 수학 쪽 논픽션도 마찬가지일테고요. 또 정말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어보고 싶네요. 1년에 1~2권만 건진다고 해도 수십년이면 엄청 많아질텐데 말이죠.

이러한 책장 관리법 외에 저자가 추천하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 딱히 언급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독서법에서 포스트 잇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는 것은 괜찮더군요. 요건 바로 따라해봐야 겠어요.

마지막 서평 쓰는 법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좋은 책만 서평을 쓴다는 점에서 저와 차이는 있지만 같이 서평, 독서 감상문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참고될만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작법 측면에서 '1) 책 제목은 반드시 겹화살괄호로 쓸 것 2) 어미는 통일 할 것 3)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너무 떨어뜨리지 말 것 4)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2번과 4번은 저도 항상 쓰면서 고민하는 부분이라 확실히 이해가 되더군요. 참고로, 1번도 따라해보려고 했는데 html 태그 오류가 잦아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구성에 대한 설명도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총괄 1,2 - 에피소드 1,2 - 감상 - 저자 - 일러스트나 장정 - 대상 독자 - 정리의 순으로 적는다'는게 핵심입니다.
우선 총괄 1에서 그 책이 어떤 식으로 재미있는지를 분명하게 소개하고(이것만 따로 잘라 내도 서평으로 구성될 수 있는 참신한 핵심 내용), 총괄 2는 총괄 1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재미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1이 '재미있다'라면 2는 '정말로 재미있다'라고 재 확인하는 것이지요. 에피소드 1에서는 재미를 구체적으로 쓰고, 2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고요, 감상은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재미있었는지를, 다음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소개하고 일러스트와 장정 등 글 이외의 요소 언급하며 예상되는 독자층에 대해 쓰고 마지막으로 정리합니다.
정리와 총괄의 차이는 서평을 읽은 사람에게 책에 대해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인데 확실히 예비 독자들에게 꽤 유용하겠다 싶네요. 실제로 이렇게 쓴 서평 예문도 괜찮았으니까요. 지금 쓰고 있는 이 서평도 이러한 이론에 기초해서 쓴 것인데, 앞으로도 많이 써먹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앞서 말씀드렸듯 책장 정리에 대한 욕심이 솟구치게 만드는 책입니다. 확실히 고수의 책장 관리와 독서법은 남다른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확실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놀랍기도 했고요. 자신이 독서가라고 생각되신다면, 그리고 집에 쌓이는 책 정리에 고심하고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이사가게 되면 책장에 여유를 좀 두고 자주 정리해서 안 읽게 된 책은 정리해야 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책 중 국내에 소개된 책들만 따로 모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2016.05 기준).

  •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양자혁명 : 양자물리학 100년사" 까치 글방
  • 크리스틴 바넷, 이경아 "제이콥, 안녕? 자폐증 천재 아들의 꿈을 되찾아 준 엄마의 희망 수업" 알에이치코리아
  • 다니엘 T 맥스, 강병철 "살인단백질 이야기 : 식인풍습과 광우병,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김영사
  • 오코우치 나오히코, 윤혜원 "얼음의 나이 : 자연의 온도계에서 찾아낸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 계단
  • 구메 구니타케, 정애영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 1~5" 소명출판
  • 궁리출판편집부 "세계만물 그림사전" 궁리
  • 마크 레빈슨, 김동미 "더 박스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 경제학" 21세기 북스
  • 빌 로스, 이지민 "철도, 역사를 바꾸다" 예경

2015/01/26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이사카 고타로 / 오유리 : 별점 2.5점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6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현대문학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입학 후 자취를 시작한 나(시나)는 우연히 알게 된 이웃 가와사키로부터 기이한 제안을 받았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위해 서점을 터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2년 전, 펫샵에서 일하며 외국인 도르지와 동거하던 나(고토미)는 우연히 애완동물 살해범 3인조와 엮이는데....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 소설. "사신 치바"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땡기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정통 추리물 작가라 생각하지도 않았었고요. 허나 이 작품은 어딘가의 추리소설 추천 리스트에도 올라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대표작이라 관심이 가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무슨 리스트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그런데 하루 만에 푹 빠져서 완독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확실히 대표작답기는 하더군요.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달까요? 일단, 읽는 맛이 뛰어납니다. 2년 전 과거를 고토미라는 화자를 통해, 그리고 현재를 시나라는 화자를 통해 교차시키면서 전개하는 독특한 방식 덕이 큽니다. 고토미와 도르지가 얽히게 된 애완동물 살해범들의 범죄와 시나가 가와사키와 얽혀 기이한 사건에 빠져든다는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롭고요. 이 두 개의 이야기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될지 계속 호기심을 자극해 주거든요.

등장인물들도 생생합니다. 특히 막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철학이 있는 가와사키는 정말로 보기 드문 멋진 캐릭터였습니다. 도르지도 부탄이라는 나라의 종교관, 인생관에 바탕을 둔 독특함이 만만치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부탄 출신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영화 "방가방가"가 떠올라 반가웠습니다. 이 영화가 떠오른 탓에 이어지는 서술 트릭을 더더욱 눈치채기 어려워졌다는 문제는 있었지만요.

아울러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추리적인 요소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현재의 가와사키는 사실 도르지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대표적입니다. 화자를 오가는 전개를 통해 교묘하게 숨기고 있어서 마지막까지 눈치챌 수 없었습니다. 2년이라는 시차를 통해 성립될 수 있었던 어학 실력 등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고요. 이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도 좋습니다. 시나의 집 전공 도서가 사라진 것, "옆옆집"이라는 단어, 글을 못 읽는 외국인이라는 설정 등을 활용하여 일상계 느낌을 전해주며 드러내는데 참 멋졌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는건 아닙니다. 우선, 왜 고토미가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경찰에 대해 신뢰가 없었어도, 신고만 했더라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처음에는 도르지가 불법체류자라 경찰에 알리는걸 주저했던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어서 황당했어요.

불필요한 설정도 많습니다. 가와사키가 HIV 양성 보균자가 되었다는 것이라든가, 단백질 인형 같은 레이코 씨의 정체 등이 그러합니다. 특히 레이코 씨는 중요도를 놓고 볼 때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으로 설정될 필요는 없었습니다. 시나가 기묘한 상황 속에서도 평범함으로 균형을 잘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만화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영 별로였습니다.

2년 전 이야기가 현재로 이어지게 만드는 여러 가지 복선들도 작위적입니다. 가와사키가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인적 없는 숲 정도가 적당했을 텐데, 래서팬더를 훔치는 아이들을 연이어 등장시킨 것은 여러모로 무리수였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쉽게 훔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도 않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갓 이사 온 옆집 남자가 밥 딜런의 노래를 불렀다고 살인 현장의 감시를 맡긴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와사키(도르지)가 레이코를 조심하라는 말을 시나에게 한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그래도 이러한 단점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하고 있기는 합니다. 젊은 청춘들에게 다가갈 만한 괜찮은 일상계 청춘 추리 스릴러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 추리 스릴러 입문자분들께 적당한, 거부감 없이 다가갈 만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영화도 꽤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무엇보다도 소설의 핵심인 가와사키의 정체에 대한 서술 트릭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했는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덧1 :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찾아 들어보니 좋은 곡이긴 했습니다만 신이 불렀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어요.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탓이겠죠.
덧2 : 좋은 책이기는 한데 13,800원이라는 책값은 너무 비싸요. 문고본 스타일로 반값 정도로 나온다면 참 좋을 텐데, 도대체 도서 정가제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