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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직장 내 살인사건 - 헤너 코테 & 크리스티안 룬처 / 박종대 : 별점 2점

직장 내 살인사건 - 4점
헤너 코테 & 크리스티안 룬처 지음, 박종대 옮김, 표창원 해제/지식트리(조선북스)

일의 조건이나 일자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의 대표격은, 취업을 위해 자기 윗 순위 대기자(?)를 살해한다는 내용의 걸작 "도끼"일 겁니다. 작품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읽으면서 이런 류의 실화가 분명 있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제목만 보면 이런 실화를 다룬게 분명해 보이는 논픽션이 있더라고요. 독일의 범죄 관련 다큐멘터리 작가가 쓴 책으로,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그간 눈에 뜨이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쳤네요. 주말을 맞아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볼프가 푀펠에게 법정에서 총격을 받아 살해당했던 1927년 사건은 말 그대로 '직장 내 살인사건'입니다. 볼프는 같은 회사 동료 푀펠에게 가졌던 질투심과 자신의 자리 보존을 위해 푀펠의 해고와 이익 배당금 지급 방해, 그리고 인격 모독에 앞장섰다가 살해당했습니다. 읽어보니 죽어도 싸다 싶을 정도로 못되게 굴었더라고요. 범인 푀펠이 오히려 꽤나 선처를 받았다는 이후 판결을 보아도 알 수 있지요.
1909년 호프리히터 독살 사건은 "도끼"를 연상케 합니다. 호프리히터는 출세길이라 할 수 있는 참모 본부에 들어가기 위해 엘리트 장교들에게 독약을 보냈고, 그 중 한 명인 마더 대위가 독약을 먹고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독약을 '정력제'라고 속이고 보낸 범행 과정, 호프리히터가 범인임을 밝혀내는 수사 과정 모두 한 편의 범죄 소설을 읽는 듯한 흥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한스가 유명한 철학자 슐리크를 살해한 사건도 "도끼"와 동기는 비슷합니다. 한스는 학계의 유명인사이자 실력자 슐리크의 눈 밖에 나서 먹고 살 길이 막혀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역시, 비슷한 실화가 많긴 많네요.

이렇게 직장 내 문제 때문에, 혹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에 더해,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로 '직장을 찾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금품을 노리고 저지른 범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883년, 직업 소개를 미끼로 다수의 여성들을 살해한 생크와 그 일당들의 범행, 그리고 1891년 거의 동일한 방식이었던 프란츠 슈나이더와 그의 아내가 저질렀던 범행처럼요. 그러나 이 범행들은 '직장 내 살인'으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직장'은 피해자들을 유혹한 무기일 뿐이고, 결과적으로는 금품을 노린 살인 강도에 불과한 탓입니다. 
1964년의 음식점 부부 살인 사건, 1905년의 루스 중령 살인 사건도 '직장 내' 살인 사건이라기 보다는 단순 강도 사건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피해자와 범인이 주종 관계였지만, 이들의 관계 때문에 범행이 일어난건 아니니까요. 1896년의 베르너, 그로세가 레비 변호사를 살해한 사건 역시 그 옛날에 미성년자들이 상당히 체계적인 계획하에 저지른 범죄라는 점은 놀랍지만, 단순 살인 강도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외에도 '직장 내 살인'과는 별 관계없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직장을 잃은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한 2006년의 후베르트 사건을 '직장 내 살인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회적 타살일 수는 있겠지만, 이를 직장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유명 소설 "비아말라"의 소재라는 클라인슈로트 살인 사건도, 잔혹한 가정 폭력을 저지르던 아버지를 나머지 가족들이 살해했다는 점에서 직장 내 살인 사건이라고 볼 수 없고요. 동성애 관계에 빠졌다가 파트너를 살해한 베르노 사건, 2002년, 퇴학으로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사회보호 대상자로 전락하게 된 슈타인호이저가 학교로 쳐들어가 17명을 사살한 사건도 그러합니다.
이런 사건들보다는 서두에 짧게 언급되고 지나가는, 학대받던 하녀들이 주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했다는1933년 파팽 자매 사건이 더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유니스 파치먼이 주인 가족을 살해한다는 소설인 "활자 잔혹극 (유니스의 비밀)"의 원전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직장 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이야기 비중이 적다는건 분명 기대와는 어긋나며, 시대도 1차대전 이전 제국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게 많고 지역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로만 한정된다는건 단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5/05/25

케임브리지 살인사건 - 케이트 앳킨슨 / 임정희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현대문학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케이트 앳킨슨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잘 몰랐던 작품이지만,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에 선정되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세 개의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는 1970년대 초반, 한 가족의 뒷마당에서 여덟 살 막내딸 올리비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노환으로 사망한 아버지 빅터의 책상 서랍에서 올리비아의 인형 '블루 마우스'가 발견되자, 이에 의문을 품은 올리비아의 언니들인 줄리아와 아멜리아가 탐정 잭슨 브로디에게 진상 조사를 의뢰하지요. 두 번째는 10년 전, 테오의 딸 로라가 출근했던 사무실에서 노란 골프복을 입은 남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던 사건입니다. 테오는 잭슨 브로디에게 진범을 찾아달라고 요청합니다. 세 번째는 산후우울증과 남편과의 불화 끝에, 남편을 도끼로 살해한 여성 미셸의 이야기입니다. 출소한 미셸, 그리고 사라져버린 갓난아이 탄야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지요. 

이 세 가지 사건들 모두 상당한 흥미를 자아냅니다. 중요한 장면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솜씨 덕이 큽니다. 빅터의 책상 서랍에서 올리비아의 애착인형이 발견되었다는걸 알리는 장면, 산후 우울증이 극에 달한 미셸이 도끼를 집어드는 장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후의 사건 전개들 역시 독립적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해 주고요. 그래서 한 번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들이 잭슨 브로디를 중심으로 교차되고 얽히며 하나의 큰 이야기로 수렴되는 전개도 좋습니다. 브로디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사건의 실마리를 조금씩 풀어나가고, 인물들 간의 숨겨진 관계와 과거의 비밀들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과정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거든요. 브로디 자신의 상처와 삶의 궤적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복잡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탐정 잭슨 브로디와 랜드 자매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복잡한 현재 심정을 드러내는 섬세한 묘사는 정말 압권입니다. 특히 혼란스러운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한 심리 묘사는 이 소설이 일정 수준 이상의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는걸 잘 보여줍니다.
인물 묘사도 매우 입체적이에요. 등장인물 모두가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고, 그 과거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거든요. 등장인물들 모두가 마지막에 치유되고 구원받는 서사 역시 납득할 만한 과정으로 묘사되고요. 또한 잭슨과 딸 말리, 잭슨과 노부인 빈키, 잭슨과 랜드 자매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관계도 매력적이며, 말리는 특히나 귀엽고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묘사 덕분에 영국 '인디펜던트'는 “장르를 초월한 복잡한 이야기 구성과 인물심리 묘사가 인상적”이라 평했고, '가디언'은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실은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정교한 심리 소설”이라 언급했겠지요.

다만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읽는 독자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단점은 분명합니다. 빅터가 올리비아의 인형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 당연히 그가 올리비아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상은 큰 딸 실비아가 그날 밤에 올리비아를 깨워 놀려고 하다가 입을 막아서 올리비아가 질식사했고, 빅터는 올리바이의 사체를 이웃 빈터의 집 정원에 파묻었던 겁니다. 이는 빅터의 성폭행으로 정신분열을 일으켜고 지금은 수녀인 실비아의 증언으로 밝혀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추리의 여지는 전무합니다. 빅터가 소아 성애자가 아니라면,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면서 정신분열 초기 증상을 보이던 실비아가 범인이었을게 뻔해서 의외성도 없고요.
테오의 딸 로라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더 한심스럽습니다. 로라를 쫓아다니던 옛 선생 이웃집 사람이 범인이었다는건데, 10년 뒤에 탐정이 간단한 조사로 알아낸 진상을 왜 당시 경찰 수사에서는 드러나지 못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셸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셸이 남편 키스를 도끼로 살해한게 아니라, 미셸의 여동생 셜리가 언니를 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고, 미셸이 갓난아기와 아끼는 동생을 위해 죄를 뒤집어 썼다는 진상은 나름 반전이지만,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탓입니다. 그냥 캐롤라인(과거에 미셸이었던)의 회상으로만 그려낸 방식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잭슨 브로디를 중심으로 이 사건들이 모두 얽히는 전개는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잭슨에게 줄리아와 아멜리아 랜드 자매가 사건을 의뢰했는데, 이 자매의 옛집이 하필 빅터의 과거 의뢰인이자 지인이었던 늙은 노부인 빈키의 바로 옆집이라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빈키는 자매의 과거 회상 속에서도 ‘마녀’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 잭슨에게 미셸의 여동생 셜리가 탄야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는데, 탄야는 로라 사건의 진범을 찾아달라고 잭슨에게 의뢰한 테오를 구해준 노숙자였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케임브리지에 탐정이 잭슨 브로디 한 명뿐인 것도 아닐 텐데, 이처럼 모든 인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관계도는 너무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미셸이 출소한 뒤 신분을 바꿔 시골 대지주 귀족의 아내가 되었다는 설정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사건을 저질렀을 당시의 심리 상태나 이후의 인생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인생 전환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은 탓입니다. 또한 셜리가 20년 이상이 지나서야 탄야를 찾아나선 이유도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 개연성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세 가지 사건 중 미셸 사건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빈키의 유산 상속 문제로 인해 잭슨 브로디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이야기 역시 이야기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는 느낌이라서 빠지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고요.

작품 전반에서 성적인 언급이 지나치게 빈번하게 등장하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등장인물 중 아멜리아의 욕구 불만과 정서 불안은 나름 설명해주지만 그 외에는 상징적으로나 서사적으로 적절하게 활용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일 뿐인 로라가 처녀가 아니었다는건 전혀 중요한 정보도 아니니까요.  빅터가 친 딸을 성폭행한 성범죄자라는 설정도 식상했고,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 반복되면서 싼티만 물씬 납니다. 마음에 들면 곧바로 섹스부터 한다는 식의 묘사도 지나쳐보였어요. 이게 영국인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인 걸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심리 중심의 문학 추리소설로, 인물 묘사와 감정선이 탁월하며 사건 간 연결 구조도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그러나 '추리소설'로는 별다른게 없고,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인물 관계나 개연성이 부족한 전개와 과도한 성적 묘사 등은 몰입을 방해합니다. 추리소설 애호가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렵네요.

2003/12/16

도끼 -The AX-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 별점 5점

도끼 - 8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밀알

직장에서 정리해고 된 평범한 중년남자 버크 드보레는 제지분야 관리 전문가. 그는 몇번의 취업노력끝에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경쟁자들을 없애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의 전공은 전문적인 특수 분야라서 경쟁자들이 몇명 없기 때문. 그는 가공의 회사명의로 취업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모집해서 자신의 경쟁자들 중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인물들을 뽑아 리스트를 작성한 뒤 그들을 리스트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오후 3시까지"라는 단편집의 표제작, 그리고 "9마일은 너무 멀다"에 수록된 "살인의 소리"라는 두편의 에이브러험 레빈 시리즈의 저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장편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접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장편이네요. 동서에서 리차드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악당 파커 시리즈인 "인간사냥"이 출간되었지만 아직 읽지 못했던 차에 (사실 동서 너무 비싼거 아닌가 싶어요..)우연찮게 헌책방에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부터 말하자면 대만족이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지적인 승부가 있는 정통파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심리 서스펜스에 가까운데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완벽하고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이 최고였거든요. 특히 생초보(?)였던 주인공의 작업(?)능력이 점차 발전해 나가는 부분의 묘사가 아주 탁월합니다. 무엇보다도 청년실업 40만이라는 우리나라 실정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현실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라는 점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단편만 접해보았던 웨스트레이크라는 작가의 능력이 새롭게 느껴지는 좋은 작품입니다. 영국작가의 냄새도 좀 나고 뭔가 독특한 여운을 남기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인간사냥"도 읽어봐야겠어요.

2009/09/09

박찬욱 감독 차기작이 "도끼" 라니!

박찬욱 감독, 차기작은 해외에서

sabbath님 블로그에서 소식보고 글 올립니다.

사실 박찬욱 감독 영화를 그렇게 아주 좋아하는 팬은 아닙니다. 뭔가 "스물스물"하는 그 감수성이 참 받아들이기 힘든 작가라 생각되거든요. 그러한 묘한 감수성이 매력의 하나겠지만 제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차기작에 크게 관심이 가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 차기작이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국내에서는 이미 절판된 책이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거든요. 몇년 전에도 박찬욱 감독이 영화화한다고 하다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먼저 영화를 만드는 바람에 좌절되었다라는 뉴스를 어디서 본 기억이 나는데 정말 이 영화 찍고 싶었나봐요. 참 근성있는 분이셔.^^  어쨌건 이번 기회에 책도 다시 출간되어 많은 분들에게 소개되었으면 하네요. 그만큼 정말 좋은 작품이니까요. 사실 전에도 박찬욱 감독이 영화 만들고 싶다고 언급했을때 다시 출간될 줄 알았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아쉬웠었는데, 꼭 다시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이제 가상 캐스팅 놀이나 한번 해 봐야 겠습니다. 중년남자이며 건실한 직장인이지만 삶에 좀 찌든, 그러면서도 집요하고 약간은 잔인한 캐릭터인데 과연 누가 캐스팅되려나요? 개인적으로는 "리암 리슨" 에게 한표!

2021/09/25

좀비 연대기 - 로버트 E. 하워드 외 / 정진영 : 별점 2.5점

좀비 연대기 - 6점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책세상

근대 시기 유명 장르 소설가의 좀비 관련 중단편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작가들의 명성과 장르 문학치고는 고전급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 성격은 유사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낡은 느낌이 강했던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는 다르게, "지옥에서 온 비둘기"라던가 "좀비 감염 지대"같은 시대 초월 명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최초로 '좀비'라는 말을 만들고, 아이티 부두교 좀비 설정을 확립했다는 "마법의 섬"과 같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도 눈여겨 볼 만 하고요. 크리쳐 호러물 외에도 저주받은 저택, 호러 모험 액션, 판타지에 SF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장르 스펙트럼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열 두편의 수록작 중 수준 이하 졸작도 제법 됩니다. 발표된지 100여년이 다 되어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요. 그리고 제목에서 기대했던, 우리가 지금 '좀비'라고 하면 떠올릴 몬스터가 등장하는 작품도 없습니다. 아이티 등 열대 섬나라에서 부두교 주술 등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려 노예처럼 부렸다는 초기 좀비 전설에 기반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이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일한 설정을 그대로 반복한 판박이같은 작품이 많다는거지요.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클래식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그런 앤솔러지였습니다. 좀비라는 크리쳐의 창작 초기 설정과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옥에서 온 비둘기" 

그리스웰과 존 브래너는 비둘기 떼가 날아가버린 폐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중에 공포스러운 휘파람 소리에 잠을 깬 그리스웰은 2층으로 올라간 뒤, 도끼에 맞아죽은 브래너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도망쳤다. 도망치던 그리스웰을 구해준 보안관 버크너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수수께끼와 브래너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자 늙은 부두교 주술사를 찾아갔지만, 주술사도 뱀에 물려 죽었다.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버크너와 그리스웰은 흉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지만, 그날 밤 그리스웰은 악령에게 홀려 2층으로 향하는데...

좀비물이라기 보다는, 저주받은 저택 장르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죽은 브래너의 습격, 마찬가지로 사람을 습격해 죽이는 실비아 블래슨빌 모두 시체가 되살아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복수를 위해 부두교 주술로 저주한게 원인이고,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으니, 저주물에 더 가깝고요.

저주받은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다가 악령에게 습격받는 초반부 묘사는 지금 읽기에는 다소 진부하고 심심했지만, 버크너 보안관 등장 이후부터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특히 버크너가 브래너의 시체를 발견한 뒤의 전개는 추리 소설을 떠올리게 해서 독특했습니다. 상황은 그리스웰이 범인일 수 밖에 없어요. 둘만 있던 흉가에서 한 명이 도끼에 머리를 맞아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버크너는 그리스웰의 옷에 피가 전혀 튀지 않았던 점, 그리고 그리스웰이 범인이라면 죽은 버크너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주장을 했을리 없다는 이유로 추가 조사를 벌입니다. 그리고 핏자욱을 따라 2층의 사건 발생 현장으로 이동한 뒤, 무언가 이상한 존재가 얽혀있다는걸 알게 되지요. 단서를 통한 추리,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수사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밀 방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3명의 가족이 목을 메고 죽어 있었다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진상도 오싹했습니다. 사람들을 습격해 죽였던 괴물 '주벰비'가 실비아 블래슨빌을 원망했던 혼혈 하녀 조안이 아니라, 실비아 블래슨빌이었다는 반전도 충격적이었고요. 조안은 주벰비가 되는 검은 술을 자기가 먹지 않고 주인에게 몰래 먹였던 겁니다. 이거야말로 진짜 복수네요.

믿음직하고 용감한 보안관 버크너와 겁 많은 애송이 그리스웰의 조합도 반 헬싱 교수와 조나단 하커 관계와 좀 비슷한데, 전형적이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 딱 맞는 조합이더군요. 무서움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겁쟁이와 사건을 해결하고 악령을 응징하는 용감한 보안관이 조합되니, 두려움과 공포, 액션과 정의의 응징을 다 얻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딱 한 가지, 너무 옛스럽게 쓰여졌다는 건 좀 아쉽습니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여러모로 부족한 묘사가 특히 거슬렸어요. 오래된 폐가, 몰락한 가문, 뱀으로 상징되는 저주의 주술,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 도망쳤던 생존자가 남긴 일기 등 모든 면에서 미쓰다 신조의 "흉가"가 떠오르는데, 공포를 자아내는 묘사와 전개는 전혀 미치지 못했거든요. 미쓰다 신조가 같은 작품을 썼다면 훨씬 무섭게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 방식으로 영상화하면 훨씬 대단한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좋은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검은 카난" 

커비 버크너는 고향 카난에서의 긴급 호출을 받고 귀향하다가 혼혈인 마녀의 유혹을 받았다. 최면에 걸렸던 버크너는 운 좋게 정신을 차리고 습격한 거구의 흑인 세 명을 물리쳤다. 마을에 도착한 버크너는 마을 흑인들이 모두 도망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통해 늪지대에 사는 괴인 솔 스타크가 배후에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조사 중 버크너는 마녀의 최면에 걸려 솔 스타크의 본거지로 본의 아니게 끌려가게 되었고, 친구 브랙스턴이 그를 돕기 위해 따라가는데....

부두교 주술사가 카난이라는 마을을 장악하려 하지만, 마을 지도자 버크너가 이를 물리친다는 호러 액션 활극입니다. 마녀의 최면, 주술로 만든 물고기 인간같은 공포스러운 요소가 등장하지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버크너 시점의 심리 묘사만 있는 탓이 큽니다. 버크너 캐릭터는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쾌남 영웅 스타일이라 공포를 크게 느끼지 않거든요. 공포에 사로잡힌 묘사도 잘 와 닿지 않더군요. 마녀와 괴물들이 총에 맞으면 죽는다는 것과, 최면술말고는 주인공을 크게 위협하지 못한다는 것도 작품이 무섭지 않은 이유이고요.

그래도 모험 활극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주인공 버크너는 전작의 버크너 보안관의 선조, 혹은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은데, 버크너 유니버스도 한 번 제대로 소개되면 좋겠네요.

"천 번의 죽음"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건 아버지와 그 부하들이었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나도 물에 빠져 죽었었지만 아버지의 연구 덕분에 살아났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이고 되살리는 식으로 연구를 계속하는데....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SF 호러 범죄물을 잭 런던이 썼다는건 특이했지만, 내용은 평이합나다.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건 "프랑켄슈타인" 에서부터 내려온 고전적인 설정이니까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섬에 틀어박혀 생체 실험을 한다는건 "닥터 모로의 섬"과 똑같고요. 물론 생체 실험의 대상이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로, 그가 반복적인 죽음과 소생을 거듭한다는 설정으로 확실히 차별화되기는 합니다. '폭력에 의하지 않고, 신체 장기에 아무런 훼손이 없는 죽음은 단지 생명의 보류 상태'라며 죽음과 소생을 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점도 독특했어요.

하지만 차별화 요소를 잘 살렸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독약, 질식 등으로 수차례 죽음을 맞는 고통이 잘 그려내지 못한 탓입입니다. 생체 실험의 고통을 극명하게 그려냈다면 호러물로 충분히 값했을텐데 말이지요. 과학적인 설명도 그럴듯해 보일 뿐, 실상 알맹이 없는 서술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갖은 노력 끝에 물질을 원소 상태로 되돌리는 장치를 개발했고, 이를 이용하여 아버지와 그 부하들을 없애고 탈출한다는 결말은 최악이네요. 아버지의 흑인 부하들이 자기 방으로 한 명씩 차례로 들어올 때 마다 없애고, 마지막에는 방에 들어선 아버지를 없앴다는데, 이럴 바에야 그냥 방에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칼로 찌르는게 빨랐을겁니다. 특별한 장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고, 피해자들도 한 명씩 들어와 사라질 정도로 감시가 느슨했는데 왜 진작에 탈출하지 않은건지도 이유를 모르겠고요. SF스럽게 만들기 위한 억지 장치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엄청난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보였던 아버지의 최후라기에는 너무 허무했고요.

유사한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호러물로는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가 부족했고,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아이티 호텔에서 머물다가, 호텔에서 일하는 노파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지역 주민들과 호텔 직원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과거 아이티 독립 전쟁 당시 '소금을 먹지 마라'는 금기를 어겼다가 시체가 된 연인 트레생에 대해 말해 주는데...

뒤에 수록된 "좀비와 함께 걷다"를 읽어야 설정이 이해가 되는 작품입니다. "좀비와 함께 걷다"에 따르면, 좀비는 소금을 먹으면 자신이 죽었다는걸 깨닫고, 무덤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트래생은 물론 마리도 진작에 죽었던 좀비였다는 뜻이고요. 트래생이 흑인 해방 등의 의식을 가질 정도로 똑똑했던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노예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였다니, 다른 좀비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고 보면 되겠지요.

문제는 이 설정 외의 특별한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마리도 좀비였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고요. 죽었다는걸 깨달은 좀비들이 무덤으로 폭주하는 장면 묘사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귀환자들의 마을" 

좀비 전설이 있는 열대 섬마을에 어느날 미모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에게 유혹당한 파파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괴담 소설로 유명한 라프카디오 헌의 단편인데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좀비와 다른, 열대 섬나라 좀비에 대한 설명과 파파가 관련된 이야기가 아예 별개로 진행되어 혼란스럽고, 별다른 내용도 없는 탓입니다. 섬마을의 여러 풍광에 대한 관능적이면서도 상세한 묘사를 걷어내고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한, 두페이지로도 충분했을 이야기입니다. 수록작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나트에서의 마법" 

조티크 대륙의 절반이 사막인 나라 지라의 왕자 아다르는 노예 상인 샤라그에게 납치된 약혼녀 달리리를 찾아 여러 왕국을 헤멨다. 그러다 그녀가 향했다는 요로스 왕국으로 가는 상선에 탑승했지만 항해 중 폭풍에 휘말렸고, 상선은 사악한 섬 나트로 표류하다가 침몰했다. 달릴리의 구조로 홀로 살아남은 아다르는 나트의 마법사 우두머리 바카른을 만나, 그녀는 바카른이 되살려낸 익사자라는 걸 알게 되는데....

"코난 더 바바리안"을 연상케 하는 작품. 존재하지 않는 고대 왕국을 무대로 마법사와 영웅이 등장해서 대결을 펼치는 고대 판타지라는 점에서요. 그런데 결말이 예상 외라 놀랐습니다. 영웅 포지션인 아다르가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바카른의 두 아들 음모에 가담하여 바카른을 죽이려다고 되려 찔려 죽고 말거든요. 그리고 바카른의 아들에 의해 되살아나 좀비가 된다는게 끝입니다. 달릴리와 뭔가 관계가 이루어진다던가, 정의가 이루어진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던 족제비 괴물은 어떻게 되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런 이유로 방대한 설정으로 이루어진 긴 서사물의 일부만 수록된 느낌입니다. 최소한 아다르와 달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아이티 공화국 헌법에 좀비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는 말에서 시작해서, 아이티에 진짜 좀비가 있다는 다양한 증언들이 이어지는 작품.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같은, 페이크 논픽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좀비는 소금을 먹지 않고, 좀비가 소금 맛을 보면 죽었다는걸 깨닫고 열일 제쳐놓고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무덤으로 향한다는 설정에 기반한 경험담이 이어질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화이트 좀비" 

아프리카 엔스와지 지방의 행정관 제프리 에일럿은, 어느날부터 느껴지는 악취 탓에 겁에 질렸다. 안개 자욱한 어느날, 결국 에일럿은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돌봐준 신부는 과거 에일럿과 함께 했던 전우 싱클레어의 미망인이 수상하다고 말했고, 에일럿은 탐문과 잠복 끝에 그녀가 부두교 주술로 시체들을 조종하는 현장을 목격하는데...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아프리카를 부대로 부두교 주술이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서술은 장황하지만, 정작 내용은 에일럿이 잠복해서 부두교 좀비 축제? 현장을 목격하고, 거기서 싱클레어의 모습을 확인한 뒤 부두교 주술솨를 쏴 죽인다는게 전부입니다. 악취라던가 불길한 안개 등의 설정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신부의 존재도 불필요했어요.

게다가 좀비 사건의 원인, 결과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싱클레어 부인이 부두교 주술에 빠져 시체를 되살렸는지는 아프리카의 심장 운운하며 농장 관리 목적이었다고 소개되지만 명확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싱클레어를 되살릴 이유도 없었고요. 에일럿이 악취를 느낀 이유 역시 밝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딱히 아프리카일 이유를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묘사만으로 작 중 무대가 아프리카처럼 느껴지지도 못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할로 맨" 

한 남자가 아프리카로부터 15년만에 영국으로 찾아왔다. 그는 부두 거리를 헤메다 모모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모모는 자신이 15년 전에 죽여 매장했던 고팍이 자기 식당으로 들어오는걸 보고 경악했다. 고팍은 표범 인간이 자신을 깨웠다며, 자기를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모모가 자신을 죽였기 때문이라면서. 식당에 고팍이 머문 뒤, 식당은 서서히 망해갔고, 딸 버블스마저 고팍에게 홀려 생기를 빼앗기자 모모는 고팍을 또 다시 한 번 죽일 결심을 하게 되는데....

죽은 자가 돌아왔다가, 다시 죽음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는 내용의 작품.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무서운 포인트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단 모모 시점의 심리 묘사가 부족해요. 과거에 저지른 죄로, 손을 씻고 가족과 열심히, 단란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에게 지옥문이 열린 상황인데, 고팍의 존재를 너무나 쉽게 인정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묘사에서는 절박함이나 어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내용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습니다. 왜 표범 인간이 고팍을 되살렸는지, 고팍이 영국에는 어떻게 왔는지 등이 모두 드러나지 않아요. 버블스의 생기를 빼았는다는 것도 대충대충 넘어가고요. 결말도 허무합니다. 결국 고팍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걸로 마무리되는데, 이럴 거였다면 왜 진작에 없애지 않았는지 의문이에요.

여러모로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나는 농부 폴리니스로부터 아이티 지역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들었다. 다른건 유럽과 흡사했지만, 이 지역에만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좀비였다. 나는 좀비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좀비"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는 작품으로 아이티에서 사람들이 단단한 대리석 무덤에 묻히고 싶어하고, 자기 집 마당에 묘를 만들고, 사람들 왕래가 많은 길가나 도로변에 무덤이 많은 이유로 좀비를 설명하는 등, 좀비를 실존하는 것 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아이티 형법을 증거로 내미는 장면도 그런 장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폴리니스가 해 준 늙은 추장 조제프가 데려온 좀비 이야기는 이 책에 앞서 수록되어 있는 다른 아이티 좀비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좀비가 소금기를 접한 뒤 다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최후까지요. 좀비가 되었던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조제프에게 복수를 했다는 결말 정도만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원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발표 당시에는 굉장히 새롭고, 무서운 이야기였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잘 짜여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이 작품을 다른 유사 작품들보다 앞서 수록하지 않은 이 책의 문제가 너무 커 보입니다. 지금 책의 구성은, 후대의 아류작으로 원조의 가치가 퇴색되는 셈이거든요.

하여튼, 원조라는 역사적 가치를 더해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투셀의 창백한 신부" 

흑인 부자 마티외 투셀은 스무살은 어린 혼혈 아가씨 카미유와 결혼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 기념일에 투셀은 카미유를 시체와 함께 하는 파티에 초대했고, 카미유는 미쳐버리는데....

화자가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쓴 글 형태로, 화자의 말대로 '흐지부지되었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결말이 없거든요. 투셀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셀이 파티가 연 의도가 무엇인지, 시체들은 누구였는지, 아내에게 1년간 비밀을 지키다가 갑자기 시체 파티에 초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무섭지도 않았고요.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는 문제가 많았던 소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점비" 

그랜빌리 씨는 1차 대전에서 폐를 다친 뒤, 서인도 제도 세인트크로이 섬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섬에서 친해진 제프리 다 실바와 럼주 칵테일을 함께 하던 어느날, 그랜빌리 씨는 '점비'에 대해 물었고 다 실바는 자기가 젊었을 때 목격했던 일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나온 집사 출신이라는 작가 이력이 특이했던 작품. 이런 이력이라면 좀비가 실제 있는 것 처럼 묘사되는 작품은 쓰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그러나 작품은 작가 이력만큼 특이하지는 않습니다. 다 실바가 친구 이베르센이 죽은 날, 이베르센의 유령을 만나고, 밤길에서 공중에 떠 있는 점비를 목격하고, 이베르센 집에서 개 인간을 만났다는 체험담이 이어질 뿐으로, "내가 했던 무서운 체험" 류의 기승전결없는 괴담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점비'나 개인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없고요.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래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 감염 지대" 

고든 파넘 박사는 아발론 섬에서 불사에 관련된 연구를 하다가, 죽은 시체를 되살리는 혈청을 개발했다. 마침 섬에 닥친 화산 폭발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박사는 혈청을 이용하여 그들을 되살릴 생각을 하는데...

부두교 주술로 되살아난 시체가 아닌, 과학의 힘으로 되살린 좀비가 등장하는SF 호러물입니다. 앞서 잭 런던의 단편과 비슷한 소재이지만, 되살리는 과정을 나름 과학적으로 잘 설명해 주는게 큰 차이점이자 볼거리입니다. 특히 인체는 기계와 같다는 등의 고든 파넘 박사의 생명에 대한 이론이 아주 재미있고 풍성했어요. 이 이론과 박사가 여러 동물로 진행하는 실험으로 이야기 여러 개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예를 들어 '불멸성을 부여받은 실험체들이 번식을 통해 불멸성 유전을 증명했지만, 태어난 실험체들이 태어난 상태를 유지할 뿐이었다'는 이야기는 별도의 단편으로 꾸며도 재미있겠더라고요.

시체가 되살아나지만, 영혼과 두뇌가 없이 본능만 남은 상태라 야수로 돌변한다는 발상도 아주 좋았어요. 이들이 죽지 않는 상태로 군대, 경찰을 휩쓸어버리고, 잘려진 손발이 꿈틀대며 잘린 조각들이 엉망으로 붙어 괴물이 되어버리는 묘사도 일품이었고요. 절대 죽지 않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화산 폭발을 이용하여 우주 공간으로 날려버린다는 아이디어도 신선합니다. 스케일이 정말 남달라요.

물론 화산 폭발을 사람이 제어한다는건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기에,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이 정도 허풍은 충분히 허용범위 안쪽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아니 시대를 초월한 끔찍한 아비규환을 그려낸 SF 좀비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영화로 나와도 아주 근사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12/04/27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 별점 3점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6점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알마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이신 문국진 교수 인터뷰집. 사실 인터뷰로만 이루어진 책은 처음 접해보네요. 그래서인지 큰 기대를 가지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왠걸! 서두에 인터뷰어 강창래 씨가 자신과 문국진 교수와의 인연을 말하며 언급하는 81년의 윤노파 살인사건부터 예상외의 재미를 가져다줘서 각 잡고 한 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문국진 교수의 위치, 그리고 경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의 하나로 언급된 것인데 사건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이 부분에 등장하는 박원순 변호사의 "야만시대의 기록", 조갑제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덧붙이자면 조갑제가 '변신'하기 이전에 쓴 책들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통해 문국진 박사가 어떻게, 왜 법의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해서 박사가 관련되었던 다양한 사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함께 하나둘씩 펼쳐지는 본편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만 몇 가지 뽑아보자면,

첫 번째는 "새튼이 무당" 사건. 새튼이라는 귀신과 대화한다고 주장하는 무당이 수사 대상이 되는데, "쏵~ 쏵~" 하는 이상한 소리가 정말로 났다고 합니다. 아무리 조사해도 그런 소리가 날 만한 장치가 없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무당의 치아 구조가 특이했다고 하네요. 결국 알고 보니 특이한 앞니 틈새를 이용해서 소리를 낸 것이었다는데 희한하네요.

두 번째는 중년 부부의 성행위 도중 아내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건. 박사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새튼이"에 실려 있는 이야기로 영화 "용서는 없다"에도 언급되었다고 하네요. 이유는 남편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는데, 아내가 페니실린 과민성 체질이라 페니실린 쇼크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도 놀랍지만, 이 사건을 클림트의 그림과 함께 엮어 설명하는 것도 아주 좋았어요.

세 번째는 일본 동북지방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Y양이 성폭행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진상은 그녀와 연적이었던 M양이 교살하고 다른 남자의 정액을 바르고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나 "완전범죄는 없다"라는 명제에 충실한 이야기라 인상적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여대생이 자기 하숙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그녀의 연인인 의대생 출신 편집자 P군이 유력한 용의자. 그러나 사인이 될 만한 약물의 흔적도 없었고 단지 상·하지에 가벼운 압박 흔이 있는 정도. 결국 문초 끝에 밝혀진 진상은 수면제로 재운 뒤 상지·하지를 고무밴드로 묶었다가 푼 것이라고 합니다. 혈액순환 장애가 오래 지속되면 히스타민양 물질이 생겨 쇼크가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죠.
'문초'라고 점잖게 묘사된 부분은 고문임을 짐작케 해서 수사 과정 자체는 별로지만, 의대생 출신의 의학을 이용한 난생 처음 보는 기발한 트릭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 이야기 뒤로 이어지는, 문국진 교수가 은퇴 후 전념한 북 오톱시 관련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유명인의 사인을 이후 남겨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분석한 뒤 정확하게 규명한다는 것인데,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사인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집니다. 비슷한 유형인 동서고금의 명화를 통하여 그림 주인공의 병을 설명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라 예수님의 내장위역증에 대한 이야기나 밀레의 "괭이를 든 사람"은 전형적인 디스크 환자의 모양새라는 것 등의 새롭고 신기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렇듯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여 정신없이 다 읽었습니다. 법의학 사건집이 아닌 인터뷰이기 때문에 각 사건들이 단지 한 예로만 이야기될 뿐이라 전체적인 과정과 결말이 없는건 아쉬웠지만, 한 분야의 시조이자 거목인 분의 생각을 온전히 접할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박사의 다양한 저작을 빨리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일단 "새튼이"와 "지상아"부터 찾아봐야겠네요.

2017/03/20

2016년 내 이글루 결산

 

2016, 내 이글루 결산. 결산기간 2016. 01. 01 ~ 2016.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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