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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9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조세핀 테이 / 권영주 : 별점 3점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6점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검은숲

어느 봄날 오후 4시, 로버트 블레어는 이제 그만 퇴근할까 생각 중이었다.

40줄에 접어든 독신 변호사 로버트 블레어는 어느 날 퇴근 직전에 사건 의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프랜차이즈 저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는 매리언 샤프였다. 의뢰 내용은 샤프 모녀가 유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유괴당했다고 주장하는 소녀 베티 케인의 디테일한 증언 때문이었는데...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인 18세기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을 현대물로 재창조한 독특한 픽션입니다(현대물이라고 해도 작품이 쓰여진 1948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요.). 이런 저런 리스트에서 고전 걸작으로 선정되었던 유명한 작품으로, 장르와 성격은 다르지만 실제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진리는 시간의 딸"과 비슷합니다.

이런 저런 리스트에 선정될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갖추고 있습니다. 추리물, 법정물로서의 가치는 낮을지라도, 중요한 증언(첫 진술의 허점, 베티의 유혹에 대한 증언, 파트타임 도우미의 위증)을 밝혀내는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충분한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 보기 드문 짜증나는(!) 영국인 심리 묘사와 캐릭터 설정, 재치 있으면서도 지적인 영국식 대사, 자존심 강한 영국 신사 스타일의 해피엔딩 등, 고전 영국 본격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길 거리가 한가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눈 색깔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독특한 (짙은 청색 눈: 성적으로 문란 (매리언 샤프), 연푸른색 눈: 말주변 좋은 거짓말쟁이 (핼럼 경위)) 설정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아, 이 얼마나 영국적인가요!

그러나 비록 억지스러운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팩션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진리는 시간의 딸"에 비하면, 이 작품의 추리적 완성도는 많이 부족합니다. 이유는 유괴 사건의 핵심인 베티 케인의 주장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관만 슬쩍 본 저택 내부의 배치나 가방에 대한 증언이 너무 상세하고 정확해서, 단순히 때려맞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원래 사건에서도 증언이 핵심 요소였고, 작중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베티 케인의 카메라 같은 기억력, 당시 영국 저택들의 유사한 구조, 가구, 장비 등)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를 설득하기에는 많이 부족해요. 사건이 뉴스화된 이후에는 채드윅이나 그의 부인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물론 불륜이기에 드러낼 수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하지만, 작중 설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한마디로 그녀의 증언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였고, 초반 몇 발자국만 운이 좋았을 뿐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게 과연 사건성이 있나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증인인 코펜하겐의 호텔 주인이 등장하는 장면 역시 극적이기는 하나, 결국 운과 우연이 겹친 결과일 뿐이라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이런 전개 때문에 추리적인 서사는 보잘것없고, 법정 드라마적인 요소만 살아 있는 묘한 구성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또한 영국식 관용어구의 사용이 지나쳐 "버터를 입에 물어도 녹지 않는다"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다소 과한 느낌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순진한 척하면서도 뒤로는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풀어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번역자가 영국적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한 의도였겠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단점이 명확하지만, 실제 있었던 미해결 사건을 토대로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여 창작한 픽션이라는 점과,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만큼은 뛰어납니다. 

저와 같은 고전 영국 본격 미스터리 팬들이나, 조셉린 테이, 프랜시스 아일즈,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012/03/08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 김찬별 : 별점 3.5점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 8점
김찬별 지음/로크미디어

이글루스의 유명 블로거 김찬별 님이 쓴, 여러 가지 우리 음식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요리나 역사 전공자가 아니어서 더 과감하게 쓸 수 있었다고 저자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데, 충분히 그럴듯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가끔 식당 벽에 붙어 있는 "기원전", 혹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음식"이라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죠. 물론 이 책에서처럼 대부분의 음식이 정말 일제강점기 이후 자리 잡은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식당 벽의 설명문보다는 설득력이 높다고 생각되네요.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부터의 역사는 비교적 디테일하고 치밀해서 자료적 가치도 높은 편입니다. 당시의 요리를 다룬 자료가 풍부해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를 기획한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로그에서처럼 화려한 전개는 아니지만, 저자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한 문체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도 실려 있는 음식 대부분이 지금 우리 식생활에서 중요한, 매우 평범한 음식들이기에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가 예상과 달리 생소한 음식 위주로 다뤄져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반찬과 분식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책에서 빠지지 않는 짜장면, 김치, 불고기, 커피 같은 주제뿐만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가 제육볶음, 감자탕, 호떡, 삼겹살, 떡볶이, 냉면, 된장찌개까지 다루고 있어 정말 생활 밀착형 요리 미시사 서적이라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후라이팬의 역사와 동일할 것이라 추정한 튀김의 역사, 일제강점기 대유행했다는 호떡 이야기, 지금의 삼겹살구이는 1980년대 이후 정착했다는 견해, 조선시대부터 존재했지만 재료와 조리법이 크게 변한 생선회 이야기 등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신문 연재물이었던 "주영하의 음식 100년"과 유사한 부분이 많고, "돈가스의 탄생", "모던의 유혹",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등 익숙한 도서의 인용이 많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만의 견해를 덧붙여 새롭게 구성한 창작 요리 같은 책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식과 대중음식의 기원과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특수성도 돋보이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12/03/03

추상오단장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5점

 

추상오단장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데도 책은 무선 제본되어 있었다."

무사시노의 헌책방 스고 서점에서 일하는 요시미츠에게 한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무명작가 카노 코쿠뱌쿠의 리들 스토리 단편이 실린 잡지를 찾고 있던, 본명이 기타자토였던 카노의 딸 기타자토 카나코였다. 그녀는 요시미츠에게 모두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작품 중 남은 네 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기발한 일상계 추리물"과 장편 "인사이트 밀"로 좋은 인상을 남긴 요네자와 호노부의 연작 단편 형식의 장편 소설입니다. 스고 요시미츠가 단편 소설을 찾는 과정과 각 단편의 결말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가 교차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단순히 무명 작가의 작품을 찾는 일상계 미스터리처럼 보였지만, 점차 단편들의 수수께끼들이 기타자토와 관련된 과거 사건, 즉 그의 아내(카나코의 어머니)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앤트워프의 총성" 사건과 연결된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반전과 추리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리들 스토리의 결말이 실은 두 종류로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도 돋보였고, 모든 단편이 '앤트워프의 총성' 사건 기사의 수수께끼를 밝히고 있다는 것도 그럴듯 했어요.

"기적의 소녀" – 소녀는 자고 있었나? 깨어 있었나?
"환생의 땅" – 죽이고 심장을 찔렀는가? 죽이기 전이었나?
"어두운 터널" – 남자는 아내에게 달려갔는가? 그렇지 않은가?
"소비전래" – 남자는 아내를 죽였나? 그렇지 않나?

또한, 스고의 성장기같은 잔잔한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일상계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강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점도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와 설득력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단장, 기묘한 우화 같은 단편들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탓입니다. 작품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내용이 너무 쉽게 흘러간다는 느낌이랄까요.  리들 스토리, 즉 열린 결말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장르의 취지와 걸맞지도 않고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제대로 밝혀놓지도 않는 식이니까요. 

기타자토가 단편들을 리들 스토리로 만든 이유도 명확하지 않으며, 마지막에 밝혀지는 결말—즉, 단편들이 의도적으로 뒤섞여 구성되었다는 진상— 역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카나코가 진상을 아는 것이 두려웠다면 차라리 죽기 전에 모든 원고를 태워버리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스고가 이 모든 단편을 찾아낼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설정 자체가 다소 작위적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작품 "눈꽃"의 결말이 앞선 네 작품에 비해 의외성도 없고 다소 시시하게 마무리된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마무리를 감안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평도 좋고 인기도 높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아이디어와 결말을 먼저 정한 후, 그에 맞춰 설정과 전개를 조정한 느낌이에요. 조금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구성과 설정이 들어갔다면 더욱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을 텐데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리들 스토리의 대표작으로 클리브랜드 모펫의 "수수께끼 카드"가 언급되는데, 굉장히 궁금해졌습니다.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은 작품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든 찾아서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