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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0

어두운 범람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2.5점

어두운 범람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엘릭시르

여름에는 추리 소설이지요. 좋아하는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단편집입니다. 재미와 완성도 모두 무난하고 평이했습니다. 전체적인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 5편에 대한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리 남자" 

하무라 아키라는 모토미야 하루로부터 군마현 이카호 온천 근처에 외따로 위치한 할아버지 집에 놓여있는 어머니의 유골 항아리를 회수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심령 연구가 히다리 슈지로로 사후 폐허가 된 그 집은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한 상태였다. 폐가가 된 히다리 슈지로의 자택을 방문한 하무라 아키라는 유골 항아리를 찾다가 '파리 남자'의 습격을 받아 지하실로 떨어졌고, 그 곳에서 예전 안면이 있던 작가 아사쿠라 교스케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굉장히 짧은 이야기이지만, 본격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빼어납니다. 모토미야 하루의 오빠가 과거 하무라 아키라, 아사쿠라 교스케의 취재 당시 동행했던 카메라맨 오사무였으며, 그가 '파리 남자'라는 진상을 추리하기 위한 단서가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굉장히 짧은 분량임에도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의 대사를 적절히 분배하여 단서와 정보를 전달하는 솜씨도 탁월하고요. 아사쿠라는 오빠 일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오빠가 일하다가 다쳐서 다리가 불편하다는 모토미야 하루의 말을 통해 당시 카메라맨이 하루의 오빠였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파리 남자'로 보인건 방독면 때문이고, 이는 그 집에서 화산 가스가 나오기 때문인데 이를 별 거 아닌 듯 했던 TV 속 뉴스 묘사등으로 범인의 동기, 즉 그 집 주변이 '온천 지대'로 확인되어 단순 매각이 아닌 개발을 원했다는걸 풀어내는 추리도 일품입니다.

물론 억지가 없지는 않아요. 아사쿠라에게 심령 스폿으로 공동묘지 터를 추천한건 그 땅의 소유주일 수 밖에 없다는 추리가 그러합니다. 아사쿠라가 인터넷 등 다른 루트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있으니까요.
또 집을 동생에게서 빼앗으려고 했다는 동기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유골함이 없다고 모토미야 하루가 집의 매각 계획을 철회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즉, 하무라 아키라를 습격해서 계단에서 밀어 떨어트릴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아사쿠라의 시체도 결국 모토미야 하루의 증언을 통해 행선지가 드러나면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단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작위적인 전개, 약간의 억지는 아쉽지만 항상 위험에 처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공정한 좋은 작품입니다.

"어두운 범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단편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대단치는 않습니다. 일단 이소자키가 다섯명이나 죽이는 폭주를 저지를 때 부상을 입었던 "죽지 않는 남자" 후쿠모토 다이키치의 옛 여자친구가 유코라는걸 알아내고, 펜레터를 보낸건 유코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 다다노부라는걸 알아내기까지 사용된 페이지는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아요. 그만큼 전개가 빠르며 추리의 여지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부각시키는건 이소자키가 왜 폭주를 저질렀는지? 유코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입니다. 다다노부는 이소자키의 범행 전날 밤, 태풍이 불어올 때 유코는 사라졌는데 사실은 이소자키가 그녀를 죽이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폭주를 저지른게 아닐까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다다노부의 계략이었습니다. 전일본이 미워하는 범죄자 이소자키에게 팬레터를 보낸건 누구인지 변호사가 흥미를 갖게하여 그 집을 조사하게 만들고, 그 때 시체를 발견하게 만든겁니다. 목적은 유코의 보험금이었습니다. 실종자에게는 보험금이 나오지 않으니 시체가 발견될 필요가 있었거든요.

이렇게만 보면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이소자키가 범행을 저질러 수감된 뒤 그의 아버지가 목을 맨 곳에 시체가 있었다는건 애시당초 말이 안됩니다. 자살 당시 현장 조사는 철저히 진행되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시체를 가져다 둔 건 이소자키가 아닌게 뻔하지요. 또 트렁크에 넣었다 한 들, 조사를 하면 사체가 오랫동안 묻혀있었다는 것도 바로 들통날테고요. 그럼 시체를 유기한 제 3자가 있다는 뜻이니 이소자키의 범행은 여러모로 불가능합니다. 즉, 다다노부의 계략은 헛점 투성에 불과해요. 아울러 이 과정을 통해 이소자키가 왜 폭주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유코의 백골에 많은 골절이 보여서 다다노부가 말한, 휠체어를 탄 어머니 범행설의 신빙성을 떨어트린다는 결말과, '나' 역시 다다노부처럼 노모 때문에 미칠것 같은 상황인데 다다노부의 범행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범행을 결심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은 꽤 모골 송연하기는 합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정통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기묘한 맛' 류에 가까와 보이기도 합니다. 고령자 부양 문제가 핵심 소재이며, 동기라는 점에서는 사회파 추리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테고요. 이렇게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사회 문제와 함께 덜컥 내놓는건 와카타케 나나미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범인의 계획이 헛점 투성이라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이지만, 추리 외에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게 아닌가 싶네요.

"행복한 집"

착하고 성실해 보였던 사람이 악당이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사실은 범죄로 가득했다는, 하드보일드스러운 설정을 기묘한 블랙 코미디 느낌의 묘사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런 작풍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미나미 하루히코는 바로 전작인 "어두운 범람"에도 출연했었고, 잡지를 위한 취재로 하자키 시의 헌책방에서 일한다는 독신 여성을 만나는 등 작가의 팬이라면 반가운 요소가 많았습니다. 또 고령자 부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점도 전작과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작가가 고령자 부양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나'가 고령자 부양에 대해 떠올리는 내용은 경험자가 아니면 모를 내용이라 생각되거든요.
추리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없지만, 범인 마쓰바라 사야카와의 취재에서 그녀가 수상하다는 단서는 모두 알려주는 등 정보 제공만큼은 본격물에 가깝게 공정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완성도는 미흡합니다. 내용에서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력만큼은 인정받는, 한창 때인 편집자 세쓰코가 공갈 협박에 횡령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동기부터 불투명합니다. 그녀의 죽음이 마쓰바라 사야카의 범행 때문인지도 명쾌하게 드러나지도 않고요.
미나미 하루히코의 역할 역시 모호한건 마찬가지에요. 그가 세쓰코를 위해 협박 대상을 물색한 조사자인지, 아니면 공범자인지도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마쓰바라 사야카가 범인이라면, "cozy life"의 취재에 선뜻 응한 이유도 모르겠고, 그녀가 마쓰바라 할머니를 죽이고 집을 차지했다면 "cozy life"에 자신의 집을 독자 투고 형태로 소개해달라고 보낼 이유도 없었을겁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특유의 작풍을 잘 느낄 수는 있지만 이러한 점들 때문에 감점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야나기 무네요시의 "수작업의 일본"이 읽으면 잠이 오는 특효약이라는데, 국내에 출간되면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요새 불면증이 생겨서요.

"광취"

가리야 마나부의 1인칭 독백같은 이야기입니다. 처음 어린 시절 이야기는 공손하게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면서 반말로 강하게, 협박조로 총을 들이대며 수녀들에게 이야기하는게 드러나는 구조가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특별하지는 않으며, 전개는 억지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리야 마나부가 수녀들에게 분노를 터트릴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간 쓰레기인 가리야 마나부의 아버지입니다. 오기와라 미나코가 사생아 분지를 낳고 수녀원에서 쫓겨난건 그 탓이지, 수녀들의 잘못은 아니죠. 수녀원에 돌아가고 싶은 미나코의 소원을 죽은 뒤에도 받아주지 않은 수녀원 측의 처사가 문제가 없는건 아니지만, 이는 분지의 유괴 사건 후 마나부가 언론에 그 이유 - 미나코가 유일하게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었던건 어린아이의 실종 때 자원 봉사로 카레를 대접했을 때 뿐이라 분지가 유괴를 저지른 것 - 를 공개했다면 원만하게 해결될 수도 있었을겁니다. 구태여 총까지 들이밀면서 장황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이유는 없어요.

마지막 분지가 만든 카레 재료의 정체가 무엇이냐는게 반전처럼 등장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장르 문학을 좀 읽어본 독자라면 미나코의 사체가 카레집 '파라다이스 로스트'에 놓여져 있다는 묘사에서 충분히 떠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오기와라 히로시"어머니의 러시아 수프"가 바로 떠올라서 새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인물을 등장시켜 나름의 가족애를 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러시아 수프의 정체가 '파라다이스 로스트'의 특제 카레와 정체라는 반전과 똑같으니까요.
허나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는 절박한 굶주림이라는 이유가 명확하지만, 이 작품에서 미나코의 사체를 재료로 쓸 이유는 딱히 없어서 그만큼 와 닿지도 않습니다. 이유를 좀 더 모골송연하게 끌어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으로서는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독특함과 읽는 재미는 좋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도락가의 금고"

하무라 아키라가 "조용한 무더위"에서처럼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게 된 시작을 알리는 단편으로 지방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모두 디자인이 다른 일본 전통 민예 장난감 고케시의 줄무늬를 금고를 여는 암호로 썼다는 트릭이 등장합니다. 트릭 아이디어도 꽤 기발하며, 고우다가 미스터리와 고케시 양쪽 모두의 매니아라는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 설득력은 높은 편입니다. 후처가 고케시 장인의 여동생이었다니, 장인에게 시켜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을테니까요.

하지만 암호 고케시를 찾는 하무라에게 고케시 진열장을 넘어트려 상처입힌 범인의 정체는 너무 뻔했습니다. 후쿠시마 별장에는 관리인이 있는데, 그 관리인이 고케시를 만들었던 장인이자 고우다의 매형 안도였다니 이래서야 추리의 여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게다가 안도 측에서 하무라를 다치게 만든 동기도 불분명합니다. 안도는 고케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암호 고케시 본체 없이도 금고를 여는게 가능했으며, 하무라가 고케시를 가지고 오기 전에 이미 금고를 열어 속의 원고를 빼돌렸으니 하무라와 고케시는 없어도 되니까요.

고우다가 남긴 원고의 내용이 고우다를 배신했던 후처의 언니와 그 연인의 동반 자살과 같은 내용이었다는 결말만큼은 섬찟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안도가 이 원고를 대충 읽었으면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설정 구멍으로 보이네요. 안도는 원고가 무엇인지 아는 것으로 보아 읽어본걸로 보이는데, 내용이 자기 동생의 자살이 위장된 살인일 수 있다는걸 모를 수는 없지요. 즉, 설정만 놓고 보면 안도는 고우다가 오래전 에로 소설을 썼다 정도가 아니라, 살인자일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즐길 거리가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11/07/03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1.5점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코지마 섬'은 고양이가 우글대는 고양이의 낙원으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섬에서 고양이가 칼에 찔린 채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고마지 반장은 자신의 알레르기 덕분에 기묘한 사건 뒤에 감춰진 마약 관련 범죄를 눈치채고 수사를 펼쳤다. 그러나 용의자 알베르토가 기묘하게 추락사하면서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는데..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 이번에는 하자키시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양이의 천국 '네코지마 섬'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전 두 권에 비하면 많이 처집니다. 기발한 설정이라서 기대가 컸던 전대미문의 추락사고는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고, 쓰레기 더미 속 시체 역시 주요 사건과의 접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극적 반전이 별다른 복선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 점수를 주기도 어려웠고요. 몇몇 캐릭터는 단순히 이야기를 늘리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3억 엔'을 둘러싼 수수께끼와 '페르시아'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물건의 정체입니다. 허무하기 짝이 없었거든요. 이건 수수께끼도 뭐도 아닙니다. 차라리 보석이라도 하나 사서 숨겨놓았다면 모를까, 도피 중이면서 3억 엔짜리 융단을 어디서 어떻게 샀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는 곳곳에서 살아 있었고, 이전 시리즈와의 접점도 탐정역의 고마지 반장을 비롯해 '라디오 하자키'나 아야 - 마야 쌍둥이 자매의 등장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 즐길 거리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주요 사건은 깔끔하게 해결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유머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드니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2010/12/15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3점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하자키 시에 위치한 주택지 '빌라 하자키 매그놀리아'의 비어있는 3호실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얼굴과 손이 뭉개져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빌라 주민들의 다양한 생각이 오가던 와중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고 떠벌이고 다닌 5호의 아케미마저 다음날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자키 시(市) 시리즈" 1탄입니다. 바다 옆 작은 소도시 하자키 시를 무대로 한, 이른바 "코지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으로 2탄인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를 먼저 읽었더랬죠. 코지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력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쨌건, 이 작품도 역시나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수다스럽고 왁자지껄한, 유머러스한 추리물로 읽는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탐정역인 형사반장 고마지와 부하 형사 히토쓰바시의 대화가 특히 압권이죠.

사소한 대화와 에피소드들 모두가 결국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 교묘하게 사건의 내용과 단서가 엮인 전개도 좋습니다. 산길에서 발견된 "팬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에요. 그냥 날려간 빨래인 줄 알았는데, 나름 사건과 연관이 있었거든요. 이노 게이코의 협박 사건 등 두 개의 사건을 하나로 묶어서 전개하다가, 결국 결말에서 두 건의 사건이 전혀 별개라는게 밝혀지는 아이디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작가의 장점이 잘 부각된 작품입니다. 유머러스한 분위기, 교묘하게 배치된 복선과 단서에 따라 결말에 이르는 복잡하면서도 명쾌한 구성이라는 장점 말이죠. 덧붙이자면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여자" 캐릭터를 만드는 솜씨는 확실히 와카타케 나나미를 따라올 작가가 없을 것 같아요. 그만큼 묘사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부분에서 살짝 기대에 미치지 못한건 조금 아쉽습니다. 두 건의 살인이 벌어지는데, 빌라에서 의문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은 너무 뜬금없었을 뿐더러 '사고'에 가까운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인 아케미 살인 사건은 범인의 알리바이에 우연과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 마쓰무라 켄에게 어머니가 전화를 걸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보다 빨리 해결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아울러 첫 번째 사건은 경찰이 가지고 있는 정보 없이는 해결하기가 불가능했고, 아케미 살인사건 역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마지막에서야 제공된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썩 공정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의 두 개의 반전도 지나친 사족으로 여겨졌고요.

그래도 앞서 말한 장점과 더불어 책의 구성과 번역도 훌륭하고, 시리즈답게 이어지는 캐릭터들, 그리고 헌책방 '기토당'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하무라'라는 직원이 등장하는 등 작가의 팬으로서 즐길 거리도 많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지치고 무료한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그야말로 '킬링 타임용' 재미에 최적화된 작품입니다.

2009/12/05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시작

마츠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하권이 새로 나왔기에 구매차 방문한 인터네 서점을 둘러보다가 구입한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충동구매에 가까웠는데, 다행히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자체의 구성이 신선한 덕분입니다.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이라는 중편 이야기가 총 6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펼쳐지며, 이 중편의 각 장이 끝나면 곧바로 다이도지 케이가 경찰관을 은퇴한 뒤 벌어지는 단편 에피소드들이 이어져서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단편 에피소드들이 중편 "최후의 사건"에 등장했던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중단편집이지만 일종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끔 한 것으로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물론 와카타케 나나미가 단편들을 엮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맥락을 갖추게끔 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아이디어이기도 하고요.

또 전직 경찰관이지만 지금은 작가(?)로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다이도지 케이라는 주인공은 물론,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범죄자들 모두 매력적입니다. 이상하게 사건에 엮이게 되는 다이도지 케이의 상황들도 재미있고요. 관련된 사건들 전부가 상상을 뛰어넘을만큼 황당하지만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 그리고 일상물로 여겨질만큼 평범하지만 희한하게 느껴지는 재미난 캐릭터들 모두 작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선보입니다.

또 그동안은 작가의 단점이라 할 수 있었던 요소들, 즉 본격으로 치기에는 좀 구성의 짜임새가 없고(이건 제가 단편집만 읽은 탓이 크겠죠), 즉흥적으로 보이는 장난스러운 설정과 묘사들이 단편집이라는 형태에서는 외려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약간은 억지스러운 트릭들이지만, 작품 분위기가 일상계면서도 황당한 상황들이라서 이야기에는 더 잘 어울린 느낌이에요. 작가의 팬으로서는 전작들과 어느정도 연결되는 세계관도 즐길거리였고요.

결론적으로 근간 읽은 추리소설들 중에서는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코지 하드보일드" 라는 조금은 기괴한 장르명으로 소개되고 있던데, 일상계의 탈을 어느정도는 뒤집어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코지,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하드보일드 탐정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뭐 그다지 과장된 소개는 아닙니다. 코지 계열의 팬이거나 가벼운 유머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팬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1.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경찰관 다이도지 케이는 상사 고이즈미 무사시와 함께 30대 초반 여성 살해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피해자인 자유기고가 후지노 유키의 신변을 조사하던 다이도지는 그녀에게 일을 의뢰했던 적이 있는 출판사 직원인 소꿉친구 히코사카 나쓰미를 찾아가는데.... 

총 6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중편입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 즉 아내의 비참한 뺑소니 사고와 범인을 일부러 놓아준 경찰서 내부 G반 인간들, 그리고 다이도지를 작가의 길로 끌어들이는 히코사카 나쓰미나 원숭이 조지와 같은 곁다리 등장인물이 다른 단편 에피소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의 밑그림과도 같은 작품이죠.

그러나 아무래도 단편 에피소드들을 위해서인것 같은 무리한 이야기 전개도 약간 거슬리고 내용도 설명적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크게 두드러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트릭 역시 중요한 단서가 말장난에 가까운 등 공감하기 어려웠고요.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책의 뼈대라는 점에서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 죽어도 안 고쳐져

작가가 된 다이도지 케이는 경찰시절 겪었던 얼간이 범죄자들을 다룬 "죽어도 안 고쳐져"라는 책을 발표하고 강연회를 가졌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자칭 트레이시라는 범죄자가 다이도지를 협박하며 자신이 뒤집어쓴 누명을 벗겨줄 것을 강요하는데... 

아주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소동극입니다. 범죄의 천재로 자부하는 스킨헤드 범죄자 트레이시 로즈라는 캐릭터의 등장부터 유쾌하고, 트레이시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밀실 살인 사건은 추리적으로 완벽해서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게다가 다이도지가 전세를 역전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하드보일드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단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이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 덧붙이자면, 책 뒤의 해설에서 트레이시 로즈는 포르노 출신 배우라고 하는데, 저는 80년대 헤비메탈 밴드에서 따온 이름인줄 알았습니다. 메탈 쪽이 더 이미지가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이죠...

3. 원숭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죽어도 안 고쳐져"에서 자신을 우습게 다루었기 때문에 딸이 가출했다고 소매치기 원숭이 조지가 우긴 탓에, 다이도지 케이는 딸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후 찾아온 경찰에 의해 원숭이 조지가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조금은 미묘한 작품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처럼 유머러스한 전개로 재미있게 읽히기는 하지만 범죄가 우발적이고 트릭도 별것 없으며 무엇보다도 증거가 빈약하다는 단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의 활약이 발군이라서 평작 수준은 됩니다.

4. 죽여도 안 죽어

다이도지 케이에게 한 추리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검토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경찰관 시절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작품의 살인계획이 현실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데.... 

편지로 긴장감을 높여주는 전개가 독특한 작품으로 깔끔한 이야기 구성에 반전도 확실한 편이라 즐길거리가 많은 에피소드입니다. 추리적으로 "증거"라는 것이 빈약하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이 크긴 한데 워낙에 아이디어가 돋보여서 단점도 묻혀가는 느낌이랄까요. 확실히 단편은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네요.

5. 추락과 붕괴

논픽션 작가 이소베 다카히토의 유고를 이어쓸 것을 본의아니게 떠맡은 다이도지 케이는 고카 악이라는 화산지대에 위치한 이소베의 별장을 찾아가는데... 

사건은 별게 없고 트릭도 무지하게 간단하지만 이소베라는 작가와 연관된 인물들의 악의가 거침없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이러한 평범한 악의의 극대화는 작가의 특기이기도 하죠. 전개도 합리적이라 무난한 수준의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6. 도둑의 엉뚱한 원한

하자키 문화센터에 강연차 방문한 다이도지 케이는 2인조 강도에게 납치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곤경을 해결하고 사건의 복수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물어보는데... 

앞선 이야기들과 동일한 구성, 즉 다이도지 케이가 희한하게 사건에 엮이게 된다는 전개이지만 2인조 강도단이 이야기한 사건의 내용만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들과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건도 앞선 에피소드들에 비한다면 일상계에 가까운 내용이라 가볍게 읽기에 편했고요. 단서와 복선들도 공평해서 합리적으로 전개되기에 추리적으로 만족스러운, 여러모로 평균 이상의 괜찮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