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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1

꿈의 화석 - 콘 사토시 : 별점 2.5점

꿈의 화석 - 6점
콘 사토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2010년 사망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콘 사토시가 발표했던 단편 만화들을 모은 작품집입니다. 작가가 대학생이던 1980년대 중반~후반에 발표한 단편 15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부제가 "콘 사토시 단편전집"인 만큼 단편은 이 15편이 전부로 보입니다.

화풍은 오토모 가즈히로 스타일의 극화체이며, 디테일한 펜선과 사실적인 묘사가 눈에 띕니다. 실제로 오토모의 어시스턴트 경험도 있어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내용은 오토모의 디스토피아 중심 SF와는 다릅니다. 밝은 분위기의 작품들도 많고 장르도 다양하거든요. 청춘 스포츠 코미디 "얼빠진 대소동", 열혈 청춘 드라마 "한여름 밤의 긴장", "날 다 밝았네", 일상계 탐정물 "포커스", 유괴 코미디 "KIDNAPPERS", 코믹한 폭주 추적물 "태양의 저편", 따뜻한 홈 드라마 소품 "JOYFUL BELL", 전국시대 크리쳐 호러 "와이라" 등 폭넓은 장르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수준도 괜찮고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콘 사토시 특유의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느낌은 거의 없고, 초기작이라 그런지 컷 구성이나 이야기 전개가 만화적으로 미흡한 탓입니다. 작화는 뛰어나지만 그것을 만화 연출로 살려내지 못한 부분은 이케가미 료이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도 뒤로 갈수록 실력이 급성장한다는게 확실히 보입니다. 이후 만화가로 계속 활동했더라면 분명 더 좋은 작가가 되었겠지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금 보기엔 다소 낡고,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도 있습니다. 19,000원이라는 가격도 부담스럽고요. 그래도 몇몇 단편은 지금 읽어도 재미있고, 콘 사토시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팬이라면 읽어볼 만합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 작품 발표 시기와 "아오이 호노오"의 시대가 겹치기에,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카브"

1985년 발표된 초기작으로, 오토모 가즈히로의 영향이 짙은 디스토피아 SF물입니다. X-Men과 비슷한 설정을 일본식으로 변주한 내용도 흥미롭고, 기본기 역시 탄탄합니다. 다만 케이가 기계인간이 되었다는 반전은 현재 기준으론 다소 낡아 보이네요. 

그래도 풋풋한 에너지와 마무리까지 괜찮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얼빠진 대소동"

고시엔 진출을 앞둔 고교 야구부 주포와 축구부 주장 간의 다툼이 전교생의 폭주로 이어지는 청춘 코미디입니다. 사소한 장난이 큰 스케일로 커져가는 과정은 설득력 있지만, 이야기 구조나 개그는 다소 약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한여름밤의 긴장"

자전거 여행 도중 우연히 만난 여성과 엮이며 추격전에 휘말린다는, "바츠 & 테리" 느낌의 청춘 드라마. 뜨거운 여름 분위기와 80년대 감성이 잘 살아 있습니다. 그야말로 "여름이었다!".

단점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와닿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포커스"

지도 학생의 어머니에게 미행을 의뢰받은 대학생 마루야마의 이야기. 평범한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학교 선생과의 불륜이라는 반전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인공도 입체적으로 그려졌고, 조연도 괜찮고요. 만화가로의 성장이 눈에 뜨이는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의 저편"

노인 요양병원의 침대가 폭주한다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액션감 넘치는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는 "노인 Z"가 떠오르네요. 콘 사토시의 폭주에 대한 집착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JOYFUL BELL"

산타 복장의 배달원이 소녀와 만나 겨울밤의 에피소드를 겪고 아내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 "도쿄 갓파더"의 원형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5점으로 이 단편집의 최고작입니다. 콘 사토시는 SF보다 오히려 이런 일상 소품이 더 뛰어난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감옥"

ID로 통제되는 미래 사회, 담배를 사려다 근신 처분을 받고 마더 컴퓨터를 파괴하려는 청년의 이야기. 오토모풍 디스토피아 SF지만, 만화로서는 미완성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설정 등 콘 사토시 감독 스타일의 원형을 맛볼 수 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8/08

빛의 현관 - 요코야마 히데오 / 최고은 : 별점 2.5점

빛의 현관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품이 꺼진 뒤 몰락해버린 건축업계에서 친구 오카지마의 도움으로 겨우 설계일을 이어나가던 아오세는, 의뢰인 요시노로부터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평생의 걸작인 Y주택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요시노 가족이 Y주택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아오세는 그들의 행적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옛 유명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존재가 깊숙히 개입되어 있다는걸 알아채는데....

원제는 "노스라이트"로 2020년에 발표되었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최신작입니다. 2020년 당시, 온갖 순위를 휩쓴 작품이지요.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국내편 2위, '2020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위, '2020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2위 등을 차지했었습니다.

건축가가 주인공인 추리 소설은 보기 드뭅니다.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들이 사건의 무대가 되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건축가가 주인공이라고 볼 수는 없고, "낯선 승객"은 주인공 거이가 건축가지만 내용은 건축과는 무관했지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아오세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인 Y주택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심혈을 기울인 Y주택에 의뢰인 가족이 이사오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 하며 직접 찾아 나선 설정과 동기는 지극히 건축가스러우니까요.
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외국인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설명들은 나중에 아오세가 건축가로 더욱 성장하여 미술관 공모전이라는 큰 도전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아오세의 가족 복원에도 도움을 주고요. 이 정도면 건축가가 주인공이며, 건축물이 주요 소재인 추리물이라고 하기 충분하겠죠.

물론 주인공 아오세가 평범한 건축가인 탓에 대단한 추리력이나 수사력을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일반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와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꽤 괜찮습니다. 요시노 가족을 찾을 때 '브루노 타우트의 의자' 가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진품이 희귀한 덕분입니다. 그래서 요시노 도타라는 의뢰인의 뿌리를 알아내는 과정도 타당했고, 아오세가 브루노 타우트를 알아가는 과정은 독자도 함께하는 느낌이라 재미있었습니다. 

Y주택을 짓게 된 의뢰는 요시노 가족이 아니라, 이혼한 전처 유카리의 바램에서 비롯되었다는 진상을 알아내는데까지의 전개도 자연스럽습니다. 아오세와 유카리가 함께 살 때 이야기했던 내용을 복선처럼 앞에서 드러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따뜻한 가족 관계의 복원을 암시하는 마무리는 완전 제 취향이었고요. 저는 해피 엔딩을 좋아하니까요.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재이며 가족 관계 복원의 핵심인, 이른바 '노스라이트'를 끌어들여 빛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는 Y주택에 대한 묘사도 엄청납니다.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어요. 드라마화 된 영상물에서의 모습은 생각보다 작고 볼품없는 모양새라 실망스러웠지만요.

2020년 발표작인데, 아오세와 주변 인물들이 버블로 몰락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특이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극초반을 무대로 하고 있는 탓으로, 이 시기가 무대인건 1930년대 일본에 잠깐 머물렀던 브루노 타우트와 등장인물들이 연결점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됩니다. 1930년대 당시 브루노 타우트를 어린 나이에 만난 뒤, 요시노 이사쿠는 타협없는 깐깐한 장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 상황을 목격했던 90대의 야마시타 구사오가 살아서 아오세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시노 도타는 요시노 이사쿠의 손자라고 설정해도 되고, 야마시타 구사오의 증언도 일기나 편지 등의 형태로 남아있었어도 무리는 없었을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아오세가 버블 경제의 쓴 맛을 톡톡히 보았다는 설정을 위해 이 시기로 무대를 설정했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하여튼,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아주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광의의 미스터리'로 볼 수는 있지만, 정통 추리 소설은 아닌 탓이 가장 커요. 요시노 가족의 실종을 추적하는 과정만큼은 추리 소설인데, 진상이 드러나는건 뒤에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결국 주요 등장인물들의 증언이 전부니까요. 

요시노 가족의 실종이 아오세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요시노 도타의 아버지 이사쿠와 아오세의 아버지가 구관조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다가 아오세의 아버지가 절벽으로 추락사했던 과거의 속죄를 위해서라는 설정부터가 그닥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요시노가 아버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3천만엔의 거금을 쓴다는건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딱히 대단한 애정을 품지 않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살아 생전 듣지 않았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거금을 쓴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지요.

등장인물들이 서로 인연을 더듬게 되는 이유도 '아오세', '요시노'라는 성이 특이하다는 탓이 큰데,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오세라면 모를까 요시노가 그렇게 특이한 성은 아니지 않나요? 유명한 규동 체인점 이름도 '요시노야'인데....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온갖 순위를 휩쓸었는데에도 불구하고, '2020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걸로 짐작됩니다.

브루노 타우트 비중이 너무 크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작 중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 타우트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부분 등은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타우트의 작품을 계속 찾아보게 만들게끔 잘 쓰여져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타우트와 그의 작품들이 이야기에 꼭 필요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요시노 이사쿠가 브루노 타우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장인이라는게 이 작품에서 유일했던 브루노 타우트의 존재 이유인데, 자존심으로 버티는 장인이 딱히 그런 공예가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런 장인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브루노 타우트의 의자가 Y주택에 남아 있던 덕분에 요시노 이사쿠의 과거가 일부 드러나게 되지만, 이 역시 사건을 밝히는데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스쳐지나가는 오카지마의 말이 진상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가 되지요. 탐정이 아오세에 대해 조사했다는 말이었는데, 아오세는 이를 통해 탐정을 이용하던 요시노가 전처 유카리를 직접 만났다는걸 알아냅니다. 그리고 유카리가 직접 요시노의 의뢰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요. 그 뒤 목적이 아버지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였다는건 아오세가 요시노로부터 직접 듣게 됩니다. 

이렇게 진상은 등장인물들의 증언으로 밝혀져서, 추리도 무의미할 뿐더러 브루노 타우트 엮일 이유는 마찬가지로 없습니다. 브루노 타우트와 연인 에리카의 관계도 확대 해석한 느낌이고요. 이런 점을 보면, 작가가 큰 감동을 받은 브루노 타우트를 어떻게든 끌어들여 작품을 쓰려고 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네요.

아울러 전체 분량의 2/3가 지난 시점부터 클라이막스까지 이어지는, 아오세가 근무하는 오카지마 건축 설계 사무소 이야기는 앞서의 요시노 가족 실종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뿐더러, 너무 뻔했습니다. 대단치 않은 부정 - 택시비 대납 - 탓에 궁지에 몰린 오카지마가 사고로 죽은 뒤, 그가 남긴 설계안을 바탕으로 사무소 직원들 모두가 힘을 합쳐 공모안을 완성한다!는 내용은 철지난 열혈 청춘 드라마와 다를게 없으니까요.

게다가 아오세를 중심으로 한 직원들이 공모안을 완성시킨 뒤, 이를 공모전에 참여하는 대형 건축 사무소의 소장 노세에게 가져간다는 결말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설계안은 무상으로 넘기고, 이름 올려달라는 말도 안 할테니 나중에 오카지마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가 지은 건물이라고 말하게 해 달라? 대체 뭘 위한 노력이었을까요? 뻔한 열혈 청춘 드라마도 요새 이렇게 쓰면 욕을 먹을 겁니다. 이미 인생에서 쓴 맛을 여러번 겪었을 아오세가 한 말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네요. 이보다는 오카지마는 죽었지만 공모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남은 직원들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 선정된다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후지미야 하루코의 유족이 오카지마를 지지했다는 설정은 남아있는 만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요. 

오카지마의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었다던가, 마유미와 오카지마의 은밀한 관계 등은 구태여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가족간의 애정은 꼭 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조금 더 세련되게 풀어냈어야 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입부는 흥미로왔고, 건축 관련된 묘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족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가 만드는 메시지도 뭉클했고요. 그러나 브루노 타우트에 관련된 내용 비중이 지나치고, 클라이막스와 결말은 뻔하고 납득하기도 어려워 감점합니다.

2015/04/11

거침없이 한 획! - 카와이 카츠토시 : 별점 4점

거침없이 한 획! 5 - 8점
카와이 카츠토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몽키턴"의 카와이 카츠토시가 그린 청춘 학원물. 원제는 "とめはねっ! 鈴里高校書道部"

추가 부원이 없으면 폐부된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학원물은 널리고 널렸죠. 겨우 입부한 생초보 신입부원의 활약으로 전국에! 라는 내용과 해당 부 내에서 사랑이 싹튼다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한 설정이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주제가 "서도"라는 점이 큰 차별화 요소이며, 단순한 배경 설정에 그치지 않고 "서도"에 대해 진지하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서도 나름대로 재미를 살릴 수 있도록 표현하여 전개합니다. "서예"와는 비슷한 듯, 다른 듯 디테일이 재미있는데 전통적인 임서(명필의 글씨를 따라 쓰는 것)에서부터 서도로 사잔의 노래를 써낸다거나 하는 파격, 창작 서도에 이르는 과정이 치밀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갑자원, 혹은 전국대회 결승 레벨의 "서도 갑자원"이라는 전국구 목표, 경쟁 상대(심지어 처음에는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닌 강적!)인 이웃 학교, 신입부원 2명이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녀 관계라는 식으로 묘하게 열혈 청춘 스포츠 학원물 설정을 녹여내는데 이야기와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점도 신기했고요.
등장인물들의 미래를 살짝 보여주면서 여운을 남기는 결말도 인상적이에요. 끝맺음을 잘 못해 망치는 장기 연재작이 많은데 적절한 타이밍에 마무리 지었다는 것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합니다.

등장인물 설정도 좋습니다. 특히 두 명의 주인공인 오오에와 모치즈키가 성별과 반대되는 성격의 천연계 커플이라는 것도 차별화되는 설정 중 하나입니다. 여주인공 모치즈키가 전국 레벨의 유도 천재라는 것이 드라마와 잘 결합되어 있다는게 상당한 재미 요소이기도 하고요. 유도 덕분에 "대자서"를 잘 쓰게 되었다는 서도적인 설정은 물론이고, 유도에 매진하기 위해 서도부를 탈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내용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고 있거든요.
부장이자 성실녀 히노, 장난치기 좋아하는 트러블 메이커 미와, 카모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합니다만 문화부답게 여자 선배들이라는 점으로 차별화되며, 그리고 세 명의 과거나 히노가 쌍둥이라는 디테일도 재미를 살려주는 요소입니다. 

허나 "서도"의 특성상 일본의 문화적인 배경을 깔고 진행하기에 국내 독자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약간 단점입니다. 헤이안 시대 가나 서도에 대한 내용이 대표적인데, 뭐 어쩔 수 없긴 하죠.

그래도 재미와 신선함 모두를 충족시키는 좋은 작품입니다. 모든 면에서 뻔한데 색다른 소재, 그리고 약간의 변주로 이만큼의 재미와 성공을 가져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몽키턴"보다 좋았습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잠뿌리님의 글"을 보니 판권 문제로 보이는데 국내 출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아쉽기만 합니다.

2014/11/06

족구왕 (2013) - 우문기 : 별점 3점

학점도 별로에 토익 점수도 없는 식품영양학과 복학생 홍만섭. 그는 주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진할 때 "족구"와 첫눈에 반한 캠퍼스 퀸 안나에게 젊음을 건다.

족구를 소재로 한 청춘 스포츠 판타지 영화입니다. 전공과 무관한 공무원 시험 준비에 이성 친구는 만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는 고단한 대학생들 모습에서 시대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드러냅니다. 만섭이 학자금 대출 문제로 등록을 하지 못하고, 캠퍼스 킹인 강민도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허세만 부릴 뿐 고시원에 거주한다는 등의 현실의 벽 역시 끝까지 해결되지 못하고요.

그러나 이러한 것을 '족구'로 대표되는, 무언가에 대한 열정과 젊음이라는 에너지의 분출로 보듬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청춘예찬"이라고 생각됩니다. 암담한 삶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은 항상 멋있고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또 이러한 열정 분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족구"이기 때문에 스포츠물로서도 제법 볼거리가 많습니다. 강력한 라이벌 → 위기 → 각성 → 조력자의 등장 → 필살기와 함께 결말이라는 전형적인 열혈 스포츠 왕도물인데, 왕도물다운 몰입감이 제법이며 족구 시합 장면도 마지막의 허황된 필살기 말고는 꽤 설득력 있게 구성되어 있거든요. 중반에 등장하는 창호와 만섭의 더블 킥 장면이 대표적이겠죠.

그 외에도 "족구하는 소리 하고 있네"와 같은 대사들도 찰지고 코믹 요소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도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캐릭터가 확실히 잡혀 있는 등 디테일도 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 수업 시간에 배트맨과 베인의 대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대학생다운 아이디어 같았어요.

하지만 학교 이사장 - 학교장의 대립 같은 요소 등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 등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얻은 것은 없다는 결말(벤츠?)도 씁쓸했고, 무엇보다도 영어 수업시간에 고백한 대로 정말로 미래에서 왔다는 엔딩은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제작진의 의도가 이런 불순한 청년은 이 시대에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는 판타지구나 싶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현실이 슬프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오랜만에 보는 돌직구 같은 청춘물로 재미와 주제의식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꼼꼼히 따져보면 부족한 점도 제법 있지만 인생 뭐 있습니까, 복잡하게 살지 말고 좀 쉽게 좀 살아야죠.
어렵고 힘들더라도 젊은 청춘들이 짧은 한때나마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아울러 독립영화 제작사 광화문시네마의 건승을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2005/02/23

아가페이즈 - 야마다 레이지 : 별점 3점

아가페이즈 6 - 6점
레이지 야마다 지음/세주문화

비쥬얼 록밴드 "에로스"의 리더인 미즈키 유리는 천재 기타리스트 및 작곡가로 언더그라운드의 카리스마로 까지 불리우는 인기인이지만 16년동안 자신이 호모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된 불량조직 카르마 레인의 리더 우즈메는 유리에게 연민을 느끼고 유리가 짝사랑하는 야구부 스타 카네다 토라키에게 사랑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유리를 도와주고자 한다. 

하지만 얇은 선수층과 콩가루같은 팀 분위기라는 악조건에서 큐세이 고교를 갑자원에 진출시키기 위해 홀로 팀에서 고군 분투하는 토라키를 위해 유리가 야구로 도와줄 생각을 하고 전설의 풍수사 "세이메이"를 찾아가게 되면서 부터 모두의 운명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풍수마구 5행 5종을 익히게 된 유리는 마구를 하나 던질때 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하나씩 잃게 된다는 계약을 하게되고 마구를 계속 던져간다. 기타 연주력, 작곡능력 등을 차례로 잃어가다가 최후의 마구 1개를 남기고 마지막 남은 계약대상인 유리의 목소리만이라도 지키기위해 우즈메와 토라키를 비롯한 팀원들이 힘을 합치지만 결국 지구대회 준결승에서 최후의 핀치에 몰린 유리는 토라키와의 대화끝에 마음을 정리하고 최후의 마구를 던지게 된다...

도대체 이 만화의 쟝르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인어공주에서 모티브를 얻은 비쥬얼 호모 열혈 고교야구 청춘 게이 애정 멜로 만화랄까요?

그동안 주류 만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모든 코드들을 조합해서 16세의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면서도 실제적으로 드라마의 무대는 고교야구 지구 예선으로 설정하여 진행하는 엄청난(!) 만화입니다.

읽으면서 저는 아다치 테츠의 만화 "세븐틴 러브"가 일단 연상되더군요.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들과 그들의 앞뒤 가리지 않는 문란한 사생활, 거기에 현란한 대사와 독백이 난무하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제대로 된 어른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각각 어두운 가정환경과 주위 환경에 시달리며 여러 비정상적인 생활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도 비슷하네요. 그리고 대충 그린듯한 그림도요.

하지만 이러한 요소는 일부 막나가는 청춘물이나 성장물에서 끝없이 반복되어 왔던 점이라 이 작품만의 독특하거나 특별한 점으로 보기에는 힘듭니다. 결정적 차이점이자 이 작품만의 특징이 있다면 이른바 "청춘애정물"적인 성격이 강한 이 작품에서의 사랑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필연적인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풍수"와 "야구"라는 황당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매개체를 통해서 말이죠.

이 작품에서 이질적인, 제대로 된 어른이 유일하게 붙어있고 재능과 어느 정도 행복한 가정이 있는 존재인 토라키(와 토라키와 연결되는 야무) 만을 제외한다면 작품안에서 크게 진행되는 두개의 사랑의 흐름, 우즈메->유리->토라키->야무->유리마츠오->다키니->류추다 라는 두개의 사랑 모두 당사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비극으로 귀결됩니다. 첫번째는 주 당사자인 유리는 호모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특히 토라키) 노멀이라는 것 때문에, 두번째는 다키니의 죽음 때문에 당사자들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게 되지요.

또한 진정 자신에게 소중했던 모든것을 토라키를 위해 버린 유리의 경우를 비롯하여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풍수의 이론 (등가교환의 법칙?) 때문에 모두들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전개는 이들의 상처를 더욱 깊고 암울하게 합니다. 이렇게 흡사 인과율의 법칙처럼 정해진 파국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전개는 파국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베르제르크"와도 유사한 전개로 비슷한 전율을 안겨다 줍니다.

혹시 어디서 본듯한 설정이라고요? 최관->현지->오혜성->엄지->마동탁 이 생각나지 않나요? 무엇보다 최근에 거의 찾아보기 힘든 주인공인 유리, 즉 오로지 사랑때문에 자신을 파괴해가는 모습은 흡사 엄지를 위해 장님이 되면서까지 시합에 져주기 위해 발광하는 오혜성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집니다. 그러나 오혜성과 미즈키 유리의 차이점은 오혜성은 사실상 더 잃을것이 없었지만 유리는 사랑을 위해서 가진 모든것을 잃게 된다는 것, 그리고 동료들도 결국 진출한 갑자원 1회전에서 엄청난 점수차로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모든것을 희생하여 진출한 갑자원 1회전에서 무참하게 패하는 큐세이의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당연했지만 너무나 어둡고 비극적인 끝맺음이었죠. 때문에 대충 그린듯한 그림체에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설정에도 불구하고 더 비장하고 더 암울한 이야기를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권에서 모든것을 잃게된 후 각자 스스로의 처지를 알게 되어 행복을 위해 다시 모인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기 파괴적인 유리의 마지막 피칭로 끝나는 8권정도에서 끝맺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후의 전개는 에필로그-후일담 형식의 후반 이야기가 너무 길어 상당히 처지는 편이라서요. 차라리 음악을 포기하고 말없는 풍수 마구 투수로 프로를 재패하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데 음악에 대한 집념과 천재적인 음악성에 대한 묘사가 설득력이 부족해서 마지막 부분에서의 비장함이 약해 8권까지 꾸준히 달려주던 감성이 좀 무뎌지게 되거든요.

그래도 단점을 지적하기에는 너무나 독특한 고교 청춘 애정물이면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전편에 걸쳐 명장면과 명대사가 계속 등장하고 있으며 심각한 대사와 전개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특유의 개그와 과장을 계속 선보여서 이질적이고도 해괴한, 하지만 작품에는 너무나 어울리게 구성하는 센스는 놀랍습니다. 아쉽게도 야구만화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설정과 잘 조합된 마구의 특성과 던지는 법, 그리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라이벌에 대한 설명과 묘사는 흡사 20여년전의 야구만화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더군요.

작품 자체도 스토리는 황당무계하지만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이 특출나서 몇번이고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굉장히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작품이긴 하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PS : 그림만 조금 더 좋았더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었을텐데 아쉽군요. 뭐 그나마 요새는 구하기도 힘든 절판도서가 되어버렸지만요... 

개인적인 명장면 베스트...최후의 투구를 앞두고 토라키와 유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
"너 이 시합전에 자신이 게이라고 얘기했어.. 대답해 유리... 너...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싸워온거냐..?"
"핫 핫 하" 
[물론이야...] "바보-" 
[아주 좋아하고 있어] "시시껄렁한 소리 다 듣겠다" 
[너는...] "미안하지만..." 
[나의 전부야..]"내 타입이 아니야"

2017/07/30

바쿠만 (2015) - 오오네 히토시 : 별점 1.5점

히트만화 "바쿠만"이 영화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별 관심없던 차에, 이용하는 '옥수수' 앱에 무료 영화로 등록되어 있어 보 되었습니다. 와이프가 애청하는 "품위있는 그녀"라는 막장 드라마가 방영하는 동안 눈과 귀를 잡아둘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기대를 한참 밑돕니다. 원작에서 가장 좋았던, 여러 편집자 및 라이벌들과의 대화와 경쟁을 통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는 부분은 거의 사라졌으며, 당연히 "소년 점프"의 독자 앙케이트를 통한 순위 경쟁이라는 핵심 요소 역시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원작을 상위 호환 각색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설픈 코스프레로 재미없는 원작 에피소드만 조금 따라할 뿐입니다. 

캐릭터들의 각색도 아주 심각합니다. 모리타카를 좋아하는 여자의 응원 한마디로 만화에 목숨을 거는 열혈 청춘으로 단순화 한 건 짧은 분량의 영화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만, 덕분에 슈진의 분량이 대폭 삭제된건 실수입니다. 슈진은 원작을 쓴다고는 하지만, 초반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서태지가 만화 어시스턴트를 하네?'라고 생각될 정도의 역할 정도만 소화하는데 원작 팬으로서는 어이가 없네요.
하기사, 악역으로 돌변한 니즈마 에이지에 비하면 약과겠지요. 니즈마 에이지는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건방을 떠는 역할로 등장하는데, 애초에 이런 역할은 이야기에 불필요합니다. 편집부와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그렸어야 하는데, 괜히 원작의 인기 캐릭터를 끌고 들어오려고 무리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기묘한 CG와 함께 니즈마와 사이코, 슈진 컴비가 그림을 그려가며 싸우는 장면은 개중 최악이고요. 이럴거라면 두 작가 작품 속 캐릭터가 작가들을 대신해서 싸우는 식으로 화면을 꾸미는게 훨씬 보기도 좋고, 내용도 와 닿았을 겁니다.

또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사이코가 병으로 쓰러진 후 친구들과 함께 연재 분량을 완성하여 개제한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어시스턴트를 왜 안 쓰는지부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연재를 한 회 연장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서 '우정, 노력, 승리'라는 점프 3대 키워드를 써먹기 적합한 장면도 아니었어요. 대체 누구한테, 뭘 이겼단 말입니까?

물론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주인공과 라이벌들의 만화, 만화를 그리는 부분의 디테일은 상당히 괜찮았어요. 실제로 오바타 타케시가 직접 작화를 맡은 듯한 사이코의 만화는 특히나 그럴듯 했고요. 그러나 단점 투성이인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요새 일본 영화계가 위기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와 닿습니다.

2007/07/12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 박승애 : 별점 3점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박승애 옮김/노블마인

이곳 저곳에서 평이 좋길래 구입해 본 젊은 일본 작가의 청춘 추리물로 다섯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 연작집. 막 고등학교에 진학한 주인공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첫 에피소드에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뒤 두번째 에피소드부터 제목 그대로 "봄철 딸기 타르트"와 연관되어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지니는, 그러면서도 각각 일상 속의 소박한 사건들을 다루며 한편으로 완결되는 스토리가 있는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책입니다..

일단 장점이라면 일상 속 사건임에도 추리적으로 괜찮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몇몇 부분에서의 트릭과 아이디어가 꽤 재미나더라고요. 그러니 2007년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순위에도 등장했겠지만요. 전부 비슷비슷한 수준이지만 연작성격을 떠나서 제일 마음에 들은 이야기는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였습니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사실 일상 생활속에서 사람들이 강력 사건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이렇게 일상 속의 자질구레하면서도 소박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외려 현대 추리 소설에 더욱 잘 어울려 보이기도 했고요.
아울러 탐정역을 소화하고 있는 주인공 커플 역시도 "소시민이 되고 싶다" 라는 장래희망마저도 소박한, 명탐정의 전형을 깨버리는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도 정감가는 요소였습니다. (참고로 소시민이 되고 싶다는 고바토의 꿈은 추리력 과시에 의해 외려 손해를 본 과거의 트라우마라는 설정이던데 이 역시 QED의 한 에피소드와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너무 만화적인, 그림이 훨씬 어울리는 트릭이 많다는 점입니다. 만화 버젼이 연재되고 있다는데 만화 쪽이 그림만 마음에 든다면 외려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정도로 만화에 더욱 어울리는 소재들이었거든요. 책 뒤의 해설에도 나오지만 고등학교 1학년 커플이 탐정역으로 등장한다던가, 학교 또는 일상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만화 "QED"와 굉장히 닮아 있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시리즈 첫 작품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읽기에는 좀 너무 어린 취향이 아닐까 싶어서 이후의 시리즈를 계속 사 볼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추리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초심자, 그 중에서도 20대 아래의 나이층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네요.

그런데 표지가 너무 유치한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이거 무슨 아동용 동화책도 아니고...

1. 가방 찾기 대소동
고등학생이 된 후 진정한 소시민으로 거듭나려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 그러나 고바토의 초등학생 동창 겐고를 만나면서 그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겐고는 너무나 정의감이 투철한, 앞장서기 좋아하는 열혈남아였던것. 겐고가 한 여학생의 가방 도난 사건의 조사를 요청하면서 고바토는 다시금 추리의 세계로 뛰어든다.

2.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오사나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봄 한정 딸기 타르트를 실은 자전거를 도둑맞은 뒤, 고바토는 오사나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신문부인 겐고가 의뢰한 미술부의 수상쩍은 그림의 수수께끼 풀이에 도전한다.

3. 맛있는 코코아를 타는 법
주말에 오사나이와 만나던 고바토에게 겐고가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는 전화를 하고, 찾아간 둘에게 겐고는 맛있는 코코아를 대접하며 그 비결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겐고의 누나 치사토는 부엌에서 겐고가 어떤 방법으로 코코아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을 궁금해 하며 애를 태우는데...

4. 커닝페이퍼의 비밀
오사나이에게서 시험 도중에 깨진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고바토는 잠깐의 조사로 병이 깨진 이유를 알게 된다.

5. 딸기 타르트의 복수
자전거를 훔쳐간 이웃 고등학교 학생 사카가미를 우연히 발견한 오사나이와 고바토. 오사나이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고바토는 오사나이 신변을 걱정하여 겐고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선뜻 도와주지 않으려는 겐고에게 고바토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추리한 자전거 도난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고 결국 사건을 해결한다.

2024/08/10

열린 어둠 - 렌조 미키히코 / 양윤옥 : 별점 2.5점

열린 어둠 - 6점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모모

"회귀천 정사"로 유명한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 원제는 "夜よ鼠たちのために (밤이여, 쥐들을 위해)".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83년에 출간된 나름 고전(?)으로 일본에서도 꽤 오래 절판 상태였었는데,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2014년 판에서 '복각(재출간) 희망! 환상의 명작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한 덕분에 2014년에 복간된 이력이 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래와 같이 극찬하는 인터뷰와 글을 남겼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 미스터리의 재미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하면, 역시 마지막의 반전,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편에서 그걸 내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모든 작품이 놀라운 반전 구조를 그립니다. 생각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전개를 실현한 작품들입니다. 마치 네거티브 필름이 포지티브로 바뀌는 것처럼, 결말에서 흑백이 뒤바뀝니다. 모든 작품에서 완전히 속아버릴 수 밖에 없어요. 전후 미스터리 단편집 중에서, 저는 이 책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표제작입니다. 미스터리라는 성격상,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삼가겠습니다만, 제가 만약 단편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an・an」 1990년 11월 23일호, 아야츠지 유키토 「나의, 한 권. 멋진 반전의 구조. 전후 최고의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 아야츠지: 렌조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나오키상 수상작인 연애소설 『연문』이 유명합니다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역시 먼저, 『회귀천 정사』, 『은밀한 상복』 등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지금은 고분사 문고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밤이여, 쥐들을 위해』입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실업지일본사에서 신서판으로 나왔고, 신초문고와 하루키 문고로 차례로 옮겨졌는데, 현재는 절판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서술 트릭 계열 단편집의 최고봉인데......아깝네요. (「작가의 독서도 제150회: 아야츠지 유키토」에서)

읽어보니 이 정도 극찬을 받을만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호평은 이해가 됩니다. 서정성과 트릭이 잘 결합되어 있던 작가 최전성기 시절("회귀천 정사" 시절)답게,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트릭이 사용된 정통 본격 추리물에서 유괴극, 복수극, 서술 트릭 반전극, 느와르 등 수록작의 장르도 다양합니다. 과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묘사도 다른 후기작에 비하면 절제되어 있어서 부담이 덜하고요.
모든 수록작이 다 괜찮은건 아니지만, 더운 여름, 한 번 읽어볼만하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가득하다는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개의 얼굴"
화가 마사키 유스케는 아내 게이코가 신주쿠 호텔에서 살해당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택 침실에서 유스케가 살해해 뒷마당에 파묻었다. 호텔 사건의 여자가 게이코라면, 유스케가 집에서 죽인 여자는 누구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유스케는 죽인 여자의 얼굴을 그날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유스케는 호텔 사건에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발견된 여자를 게이코로 만들어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진상은 유스케의 범행을 목격한 동생 신지가 자신을 협박하던 꽃뱀 여자를 함께 처치해 버렸던 겁니다. 마침 몸매가 비슷해서 속일 수 있었지요. 이 때 집 안에 전화가 두 대 있는 것을 이용해서 '순간 이동' 트릭을 선보입니다. 전화가 걸려와 안부를 물으면 당연히 외부에서 전화를 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같은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유스케가 살해한 아내의 사체가 이동한 이유도 잘 설명되고 있으며, 사건에 대한 유스케의 심리묘사도 독자의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입니다. 서스펜스가 제법이었어요.
하지만 단편이라서 설명이 부족하며, 작위적으로 전개한 부분은 눈에 거슬립니다. 우선 신지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건 너무 뻔했습니다. 신지를 협박하던 꽃뱀 여자가 유스케 집까지 찾아와 지문을 남긴건 억지스러웠고요, 마지막 신지의 장난도 이유를 알기 어럽습니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7인 1역"과 유사하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나'는 금수저 출신으로 형사일을 견디다 못해 2년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그만 둔 이유에 대해 강 선배에게 편지를 썼다.
1년 전, 전일항공 부사장 야마후지 다케히코의 외아들 가즈히코 유괴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부인을 전화기에 붙잡아 놓은 상태에서, 담을 뛰어넘어 아이를 유괴했다. 경찰은 몸값을 확보하고 도주하던 범인을 미행하다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몸값을 받은 범인은 아이를 무사히 풀어주었고, 이후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경찰에게 정체가 드러난 범인 오카다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괴범에게 동정심을 느낀 '나'는 당시 일부러 범인이 도주하도록 수사를 방해했다. 유괴범 중 한 명이 강 선배라는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건 범인이 '내일'이 금요일인지 토요일인지 정하지 못했던 상황을 통해, 범인이 두 명이며 둘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지 않다는걸 추리해 내는건 아주 좋았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이 아이를 유괴당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부잣집 아들을 유괴해 몸값을 받아내려 했다는 발상도 재미있었어요. 실행범은 자기 아이를 유괴한 범인의 요구사항을 자기가 유괴한 사건 피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만하면 된다는 아이디어인데,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강 선배가 오카다를 살해했을거라는 결말도 합리적입니다. 오카다가 체포되면 진상이 드러날 수 있으니, 경찰이 체포하기 전 정보를 흘려 유인한 뒤 살해했다는건 말이 되니까요.

그러나 유괴가 이렇게 겹쳐서 강 선배가 피해자이자 범인이 된다는건 다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나'가 강 선배의 눈에서 이십 년 전 범인 눈빛을 떠올린 덕에 진상을 깨달았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나'가 집 안에 있는 신이치가 사실은 유괴당한 가즈히코라는걸 눈치챈건 앞선 복선으로 설명되지만, 독자는 눈치채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유괴 피해자가 몸값 마련을 위해 유괴범이 된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좋았던만큼, 이를 확장한 장편으로 묵직하게 썼다면 "킹의 몸값"과는 또 다른 딜레마를 안겨다주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래도 아이디어만으로 별점 3.5점은 충분합니다.

"화석의 열쇠"
하반신 마비 소녀 지즈가 목이 졸려 죽을 뻔 했다. 피해자 집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창문은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고, 출입구는 현관문밖에 없는데 열쇠는 관리인 사와가 보관하고 있었다.

지즈가 엄마를 집에 들이기 위해 자물쇠 바꾸는 청년을 속여 헌 자물쇠를 달게 했고, 엄마와 아빠 모두 지즈가 부담되어 살해하려 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한 정보 제공은 공정합니다. 지즈가 자물쇠 바꾸는 청년에게 상황에 맞지 않는 초콜릿 부탁을 한 것, 관리인 사와가 엄청나게 청소를 열심히 한다는 등 상황에 대한 공유는 확실하니까요. '열쇠 화석'이라는 말도 단서로서는 좋았습니다. 사와가 이 모든걸 깨닫는 전개는 일상계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 둘이 동시에 딸을 살해할 생각을 한다는건 와 닿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자기가 빠져나갈 생각을 할까요? 신파적인 결말도 별로였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의뢰"
신소에서 일하는 나에게 쓰치야 마사하루라는 의뢰인이 찾아왔다. 아내 동향 조사 의뢰를 위해서였다. 아내 사야코는 하릴없이 이곳 저곳에서 시간만 보냈다. 알고보니 그녀는 나의 미행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고, 나에게 오히려 남편 쓰치야의 행적 조사를 부탁했다. 알고보니 나를 이용해서 몰래 불륜 행각을 저지르기 위함이었다. 이 역시 쓰치야에게 들켜버렸고, 쓰치야는 자기 행적 조사를 거짓으로 전달하라고 했다. 전달하기 위한 쓰치야의 행적은 애인 유리의 맨션 주소와 연락처로 받으려 했는데, 그 뒤 유리가 살해되었다...

쓰치야는 유리의 다른 애인으로, '나'와 유리의 관계를 알고 유리를 살해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조사를 맡긴건 유리와 나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

나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리고 냉소적인 심리묘사가 대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딱히 눈에 뜨이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묘사로 '나'의 별로인 모습만 드러나 작품에 몰입하기 힘들다는게 문제입니다. 쓰치야 부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은 무능력했고, 유리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자신이 쓰치야에게 농락당한 것에 불과하다는걸 알아 버렸지만, 그냥 그대로 끝나버리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야기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밤이여, 쥐들을 위해"
어린 시절 불우했던 나는 교정을 받아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를 잃은 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복수를 결심했다. 
병원 원장 요코즈미 다다오는 '나'의 협박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집을 나선 뒤 살해당했다. 경찰은 백만엔이라는 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나'의 원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원장 사위이자 내과 부장 이시즈의 사체도 발견되었다.

'나'인 쓰무라의 아내는 불치병 뇌종양이었고, 병원의 과실로 죽은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백만엔이라는 돈을 건네려고 했을까요? 이 수수께끼는 흥미롭습니다. 알고보니 이하라의 아내 후미요에 대한 오진을 숨기려고 원장과 내과 부장이 그녀가 백혈병에 걸리게 만들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생각도 하지 못했네요. 쓰무라와 이하라의 정체가 독자가 알고 있던 것과 정 반대라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좋았습니다. 잘 짜여진 서술 트릭물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단 둘의 흉터는 너무 노골적으로 속이겠다!는 의도가 보여 좀 별로였고, 어린 시절 쥐를 죽였던 원한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하라는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밖에 없었으니 억지스럽더라도 죽일 수 밖에 없는 동기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충은 이해가 되지만, 억지는 억지에요. 그래도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에 생각보다는 잘 설명되는 편이라 다행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중생활"
마키코는 열 여섯살 많은 슈헤이에게 젊음을 바쳤지만, 자신을 버리려하는 슈헤이에게 증오를 느꼈다.

정부인줄 알았던 마키코가 진짜 아내이고, 반대로 나이많은 시즈코가 정부이자 불륜녀라는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 반전을 결말 부분까지 잘 숨기면서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서술 트릭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마키코가 남편 슈헤이와 불륜녀 시즈코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살해당한 것처럼 자살한다는 반전, 그리고 이를 위해 데쓰오와 시즈코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방법도 잘 짜여져 있어서 범죄물로도 우수한 수준이고요.

그런데 마키코가 정부 데쓰오를 범행에 끌어들인건 억지스럽습니다. 불륜을 저지르다가 살해당한 모양새이니, 마지막 순간치고는 영 폼이 나지 않으니까요. 데쓰오 없이도 현장 상황 - 슈헤이가 받아온 수면제가 들어있는, 슈헤이가 즐겨 마시던 와인 - 과 스토브 지문으로 슈헤이에게 누명을 씌우는건 가능했을것 같거든요. 시즈코마저 옭아매기 위해 데쓰오를 이용했다고보면 말은 돼지만, 이 역시 나이든 시즈코와 데쓰오가 불륜 관계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위적입니다. 조건이 갖춰진 뒤에야 실행 가능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도 힘들고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었다면 좀 더 설득력있는 인간 관계를 쌓아올리는게 가능했다는 측면에서, 조금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대역"
인기 배우 하세쿠라 슌은 아내 료코와의 이혼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자신과 꼭 닮은 남자 다카쓰 신야를 찾아냈다. 그러나 료코가 슌의 불륜을 알고 있었으며, 이혼할 생각도 없다는걸 알게된 뒤 료코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다카쓰 신야를 이용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서였다. 오사카에서 다카쓰를 자신인 척 연기시킨 뒤, 자신은 변장하고 도쿄로 가서 살해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료코는 없었고, 오사카로 돌아간 뒤 자신의 방에 죽어있는 기누에를 발견했다. 이 모든건 료코와 다카쓰의 음모였었다.


하세쿠라 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완전 범죄물로는 볼만합니다.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하세큐라 슌의 대타가 다카쓰 신야가 아니라, 료코와 기누에 입장에서는 그 반대였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현실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애초에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 주위에 같은 여자들이 엮이게 된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했는데, 말이 되는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한 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베이 시티에서 죽다"
동거녀와 믿었던 아우에게 배신당한 조직원이 출소 후, 둘이 함께 도망친 항구 도시로 찾아가 모두 죽여버린다는 느와르.. 묘사도 멋있고 배신의 진상 - 없던 죄를 뒤집어 쓴게 아니라 원래 내가 지은 죄였다는 - 도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인 맛은 거의 없고, 내용도 신선함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그냥 서정적인 '사나이' 이야기를 한 편 쓰고 싶어 쓴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열린 어둠"
불량 학생들만 다니는 사립 세이에이 고등학교 음악교사인 미즈키 마사는 '마더'라는 별명으로 학생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어느날 퇴학당한 폭주족 블랙호크스 멤버 중 한 명인 노리코가 긴급한 도움 요청을 해 왔다. 리더 다카기가 살해당했다고 했다. 노리코와 함께 현장에 온 마사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노리코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걸 알고 한 시간만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카기의 죽음이 학교 체육 교사 아카자와 다케시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카자와는 동성애자였다.

불량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학생과 얼마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열혈 신입 교사가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7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청춘 미스터리'의 영향이 가득 느껴집니다. 동성애로 인한 삼각관계가 원인이라는 점은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신선한 편이고요. 요새 이런 설정이 유행이라는데, 나도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쓴 듯한데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카기가 폐소 공포증이라는게 핵심 단서인데 - 아카자와 선생의 차는 비가 오는데도 창문이 열려있었다 -, 이는 여러가지 단서로 독자에게도 공유됩니다. 노리코가 아침에 다카기의 방에서 쫓겨난 건 창문을 닫으려고 해서, 다카기가 초고층 맨션에서 뛰쳐나온건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서, 다카기가 폭주족이 된 건 차를 타기 싫어서였다는 식으로요. 
미즈키 마사가 학생들 앞에서 추리쇼를 펼쳐 진상을 밝히는 전개도 정통 본격 추리물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다카기가 스즈타에게 아카자와 살인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고 현장을 조작했기에, 스즈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걸 증명하려고 다카기를 살해하고 노리코에게 혐의를 씌웠다는 동기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후더닛 물로는 괜찮았지만, 와이더닛 측면에서는 좋다고 하기 어렵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