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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구스미 마사유키 / 최윤영 : 별점 2점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최윤영 옮김/인디고(글담)

국내에는 "고독한 미식가" 원작가로 잘 알려져있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음식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고독한 미식가" TV 시리즈를 보신 팬이시라면 에피소드가 끝나면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가게에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모습이 친숙하실테지요. 고기구이, 라면, 돈가스 등 모두 26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전부 저자가 특정 음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를 털어놓으며, 맨 마지막에 아주 짤막한 4컷 만화로 마무리되는 구성이고요. 하나의 음식 이야기 전부 해서 10페이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을 뿐더러 만화 외의 그림도 많아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조금 특이했던 것은 음식에 대해 확고한 자기 생각이 있으며, 이와 다른 스타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컵라면은 갑자기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원조 닛신 컵누들이 제일 좋다. 이런 저런 맛을 낸다는 본격파 따위는 필요없다. 건방지다'면서 본격적인 라면이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 먹으라고 하는 식으로요. 자기 주장이 과하고 일방적이라 좋게 보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라 재미있었습니다. 몸에 좋고 맛있는 것 보다는 정크 푸드를 가끔이지만 찬양하는 모습 등 그 외에도 소타츠와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이런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라면 피곤하겠지만, 그냥 지켜본다면 재밌게 감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먹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체계와 룰도 재미있었습니다. 고양이 맘마는 대체로 단무지 두 조각이 나오는데 마지막 밥 한 입과 단무지 반 조각이 남도록 조절하여 함께 입에 넣어 음미하는게 마무리이다, 돈가스 조각을 먹는 순서와 돈가스를 맛있게 먹으려면 돈가스 양의 최소 다섯배의 양배추가 필요하다는 등 처럼요. 돈가스 관련된 내용은 "음식의 군사" 에 등장했던 내용과 조금 비슷하기도 합니다.

간단힌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도 양배추 요리가 가장 땡깁니다. 밤새 뼈 째로 푹 고아 만든 토종닭 수프를 걸러낸 후, 여기에 십자로 칼집을 넣은 양배추를 통째로 넣어 소금으로만 간 한 후 통냄비로 한 시간 정도 푹 끓여낸 수프입니다. 누룽지밥에 유자 후추를 살짝 뿌려 먹으면 맛있다는데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닭 백숙 육수로 끓여내면 되려나요? 간단하게 치킨 스톡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볼만한 내용이 적지 않지만, 만화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구스미 마사유키라는 작가가 아니라 허구의, 가상의 캐릭터였다면 보다 마음 편하고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거든요. 너무 자기 주장이 센 부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또 딱히 건질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라 권해드리기는 조금 애매하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8/09/29

그것 1~3 - 스티븐 킹 / 정진영 : 별점 2점

그것 세트 - 전3권 - 4점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메인 주 데리 시에는 수십년 주기로 대형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왔다. 정체모를 '그것'에게 동생 조지가 희생당한 소년 빌 덴브로는 절친 '악동 클럽' 멤버들과 함께 '그것'을 퇴치했지만, 대신 그것과 그것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십 여년이 지난 후, '그것' 이 돌아오자 악동 클럽 멤버는 이전의 약속대로 다시 모여 '그것'을 퇴치하기 위해 나서는데...

스티븐 킹의 장편 호러 모험 소설입니다. 얼마전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요. 예전부터 관심이 가던 차에 새롭게 셋트 버젼이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긴 탓입니다. 초반 빌 덴브로의 동생 조지의 죽음 이후, 데리에 다시 광대 귀신이 나타났다는 전개까지는 괜찮아요.

하지만 그 뒤 38살 성인이 된 빌 덴브로와 어린 시절 왕따 클럽 친구들 모두의 시점을 바꾸어가며 과거의 기억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전개부터는 걷잡을 수 없습니다. 재미가 없는건 아니지만 비슷비슷한 묘사가 너무 많습니다. 캐릭터들도 비슷하고요. 빌 덴브로와 벤, 에디와 리처드는 서로 캐릭터가 많이 겹치니까요. 분량 정리를 위해서라도 캐릭터는 좀 줄였어야 했습니다. 스탠리가 공포에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는 설정은 공포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던 만큼 스탠리는 등장시키더라도 리더(인간 기사) 빌 덴브로, 떠벌이(음유시인, 힐러) 리처드, 행동파이자 과묵한 덩치(몸빵 탱커이자 장인) 벤 한스컴, 홍일점이자 명사수인(원거리 딜러) 비벌리 마시의 4인 파티면 충분했습니다.
'그것' 페니와이즈에 얽힌 이야기만 풀어나가도 충분한데 11살 때 왕따 클럽이 모이고 뭉치게 된 계기인 헨리 바워스 패거리와의 충돌에 관련된 묘사도 너무 길고 많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골 마을에 만연한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왕따, 인종 차별 등의 묘사도 천편일률적이라 지루함을 가중시키고요. 이런 건 "시체 (스탠 바이 미)"로도 충분했어요. "시체 (스탠 바이 미)"의 등장 인물들을 가지고 공포 소설을 써 보려고 한 시도라고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닙니다만, 분량은 확실히 더 줄였어야 합니다.

그리고 별로 무섭지 않다는 문제도 큽니다. 페니와이즈라는 초월적 존재인 절대악이 가진 능력에 비하면 하는 행동이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뜯어버리는 괴력에 자연 현상을 거스르고, 변신 자재에 공간 이동까지 할 수 있으며 데리라는 중형 도시를 지배하여 희생자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안겨주는 존재가 하는 짓이라곤 주로 약한 어린 아이를 환각에 빠트리고, 꾀어 내 죽이는 정도라니 밸런스가 심하게 안 맞습니다. 살짝 언급되는 대로 초기 데리 마을 정착자 480 여명을 한 번에 휩쓸어 사라지게 만든 정도의 위력은 보여 줬어야 합니다. 페니와이즈보다는 차라리 바워스나 헨리와 같은 개막장 정신병자 인간들이 더 무서웠어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건 불변의 진리지요.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까지 섞여 쓸데없이 길어진건 역시나 문제입니다.
게다가 최후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꽤나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던 광대 모습 대신에 흔해 빠지고 식상한(지금 시점이기는 하지만요) '거미' 형태를 취하고, 리처드에게 휘둘려 패배하고 마는 결말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야말로 "소드마스터 야마토" 급이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사람의 의지와 상상력으로 악을 없앨 수 있다는 주제야 나쁘지 않지만, 고작 리처드 한 명에게 휘둘려 무너질 정도라면 성인이 된 악동 클럽을 다시 불러 대결을 벌일 이유가 있었을까요?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헨리 바워스 한 명 보다도 떨어지는 전투력으로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헛 웃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페니와이즈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현란한 환각에 대한 묘사는 그나마 괜찮지만, 쓰여진지 이제 삽십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건 무리입니다. 지금은 워낙 자극적인 컨텐츠가 많으니까요. 페니와이즈 자체가 혐오스럽고 무섭다는 묘사라면 모를까, 동상이 움직이고 개수대에서 피가 솟구치는 등은 화려하긴 하나 무섭다는 느낌은 딱히 받기 어렵습니다.
또 이러한 묘사를 위해 불필요한 전개가 이루어지는 것도 불만스러워요. 왕따 클럽이 다시 모인 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이유로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개인 행동을 하면서 각자 무서운 환각을 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 같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친구와 함께 했을겁니다.

전개도 너무 쉽게 쉽게 흘러갑니다. 모든 건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것들이 모두 딱딱 들어맞으며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전개의 정점은 인터넷 상에서도 논란거리인 베벌리와 왕따클럽 멤버들 간의 성관계지요. 이야기 전개와는 큰 상관도 없으며, 이유도 베벌리가 '우리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고 생각했을 뿐이거든요. 생각한걸 실천하면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느낌이에요.

물론 30년이 지난 후 다시 영화화가 될 정도로 매력이 없지는 않아요. 성장기스러운 부분은 나름 가치가 있고, 어린 시절 왕따 클럽 멤버들이 다시 모여 페니와이즈를 상대한다는 전형적인 모험물 서사도 재미는 있습니다.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어린 시절 친구들이 고향에 깃든 악마를 퇴치한다는 설정도 매력적이고요.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점의 교차 전개도 절묘한 부분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아이들과 어른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아요. 아이들은 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상한 현상을 삶 속에 잘 받아 들이지만, 어른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신경망이 마비되고 결국에는 미치거나 죽는다는 것인데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아이들 때에는 페니와이즈와의 대결을 용감하게 준비했지만, 능력있고 부자가 된 어른 시점에서는 그를 두려워 하며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것이겠지요. 그 뒤 다시 하나로 뭉쳐 옛 기억을 떠올린 후에나 맞서 싸울 결심을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낡았으며 별로 무섭지 않아 감점합니다. 무엇보다 큰 감점 요소는 페니와이스의 허무한 결말입니다. 등장인물을 쳐내서 한 권 분량으로 줄이기라도 했더라면 조금은 좋았을텐데,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혹 궁금하시더라도 영화만 보셔도 충분할 듯 싶네요. 1,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읽어야 할 가치는 없습니다.

2018/09/23

죽이는 화학 - 캐스린 하쿠프 / 이은영 : 별점 3점

죽이는 화학 - 6점
캐스린 하쿠프 지음, 이은영 옮김/생각의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 속에 등장했던 열네 종의 독약 - 비소, 벨라도나, 청산가리, 디기탈리스, 에세린, 독미나리, 바꽃, 니코틴, 아편, 인, 리신, 스트리크닌, 탈륨, 베로날 - 에 대해 각각 약 3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역사와 효과, 실제 사례 및 검사 방법과 같은 정보를 여사님 작품 중 해당 독약이 등장한 대표작의 줄거리와 함께 설명해주는 병리학, 약학 서적이자 추리 소설 안내서입니다.

책은 여사님이 1차 세계 대전 중 지역 병원에서 조제사로 일하기 위해 자격 시험까지 치뤘던 나름 독약 전문가라는 설명에서 시작합니다. 덕분에 등장하는 독약의 작용 사례에 대한 묘사는 약학 학술지에서 칭찬 받았을 정도로 정확했다고 하네요. 이러한 정확하고 치밀한 묘사 덕분에 이런 책까지 나올 수 있었겠지요.

소개되는 독약의 역사, 효과, 사례 모두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례 부분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유명 사건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나폴레옹 비소 독살설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비소 염색 벽지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해줍니다. 비소 벽지의 독소는 실제로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좋지 못한 건강 상태에 기여했고, 의사들이 이를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중독성 화합물을 주입한게 죽음의 원인이라는 추리도 꽤나 그럴싸 했어요.
라스푸틴이 시안화물 중독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가설 검증 부분도 흥미로왔습니다. 특히 라스푸틴이 알코올성 위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위산이 적어서 시안화칼륨이 치명적인 시안화수소로 변환되는 양이 적었으리라는 추리는 신기했어요. 

이러한 유명인 사례 외에도 수록된 사례는 많습니다. 디기탈리스 설명에서는 1863년 처음으로 피해자에게서 디기탈리스가 검출된 사건 사례부터 설명해 줄 정도로 충실하기도 하고요. 이 사례에서 피해자의 토사물이 묻었을 침실 바닥을 대패질 해 올 정도로 끈질겼던 경찰의 수사 의지도 인상적입니다.
실제 여사님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등장합니다. "엄지손가락의 아픔"이 대표적입니다. 1935년 일어났던 워딩엄 간호사가 저지른 모르핀 독살 사건이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하는데, 설정을 보면 꽤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그 외에도 에세린이 함유된 콩이 자생되던 서아프리카 칼라바르(그래서 칼라바르 콩이라 불리움)에서 용의자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이 콩이 혼합된 음료를 마시게 한 다음 결정했다는 옛날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천천히 콩을 씹어 삼키려 했고, 죄가 없는 사람들은 죄가 없다는 확신 하에 재빨리 삼켰을텐데 천천히 먹을 수록 독약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신체가 독약을 흡수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일종의 심리적 근거가 있는 재판 방식이라는게 굉장히 새로왔어요. 

해독제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데 그 중 비소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숯"을 삼킨다는 내용은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독약을 흡수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니 사무실 숯도 치우지 말고 그냥 두어야 할듯요.

또 이미 읽었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죽음과의 약속", "비뚤어진 집", "다섯 마리 아기 돼지", "삼나무 관 (슬픈 사이프러스)", "부부 탐정" 등) 여사님 작품과 병행되어 설명되는 구성도 흥미를 자극합니다. 대표작과 독약을 결부시키기 위해 여사님 전 작품을 분석하여, 해당 독약이 쓰인 작품이 무엇인 선정한 것도 책을 참 정성들여 썼구나 싶었고요. 제일 처음 소개되는 비소 항목 첫 문단에서 "실제로는 네 편의 소설과 두 편의 단편에서 오직 일곱 명의 등장인물만이 이 악명높은 독약으로 죽음에 이르렀다."고 알려줄 정도입니다. 참고로 비소만큼이나 유명한 청산가리는 "10편의 장편과 4편의 단편에 등장하여 17명을 해치웠다" 고 합니다. 
도로시 세이어스 여사님의 맹독은 비소였는데,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여사님 작품 속 최고 킬러는 청산가리라는 사실도 재미있네요. 

이렇게 독약과 내용을 결부시켜 설명하면서도 작품 속 주요 스포일러에 대해 잘 감추는 솜씨도 빼어납니다. '탈륨' 에 대해 설명하는 "창백한 말" 에 대한 설명 외에는 흥미만 자극할 뿐 핵심 내용은 전혀 알려주지 않아서 정말로 책을 읽고 싶게 만들거든요.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만 놓고 보면 4점도 아깝지 않지만 독약의 성분과 체내 작용 과정 설명을 위한 복잡한 화학적, 생리학적 반응에 대한 설명이 조금 지루하고 따분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여사님 팬을 비롯한 추리 소설 애호가, 추리 소설 작가 등 이 쪽 바닥 사람들께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