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6/01/26

미스터 메르세데스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미스터 메르세데스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은퇴 형사 빌 호지스는 홀로 외로이 TV에 빠져 살다가 자살까지 꿈꾼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가 형사 시절에 해결하지 못했던, 시티 센터에서 8명을 살해하고 도주했던 싸이코 살인마 "메르세데스 살인마"가 보낸 편지였다. 그의 목적은 호지스의 자살 유도였다. 그러나 이를 도발로 받아들인 호지스는 새롭게 삶의 의미를 다지고, 그를 자기 손으로 체포하기 위해 다시 수사에 나서는데....

호러의 거장 스티븐 킹이 발표한, 은퇴한 형사 호지스와 '미스터 메르세데스'라고 불리는 싸이코 살인마 브래디 하츠필드의 대결을 그린 600페이지의 대장편 하드보일드입니다. 2015년 에드거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관심 가던 차에 늦게나마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장단점 모두 기존 스티븐 킹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우선 첫 번째 장점으로는 읽는 재미가 최고 수준이라는 겁니다. 브래디가 빌 호지스를 자살로 몰아넣기 위해 편지를 보내는 도입부에서 시작해서, 오히려 삶의 의욕을 되찾은 빌 호지스가 범인이 지정한 채팅 사이트 '데비스 블루 엄브렐라'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며 범인에게 접근해 나가는 전개가 아주 흥미진진한 덕분입니다. 차를 도난당한 올리비아 트릴로니의 증언을 믿지 않았던게 큰 실수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롭고요.
범죄물로도 괜찮은 편이에요. 브래디가 자동차를 훔친 방법,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호지스 등을 염탐한 방법, 본인의 범행을 위해 이런저런 발명을 하는 부분 등이 아주 설득력 있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장점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입니다. 주인공 빌 호지스부터가 그러해요. 은퇴 형사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피터 러브시의 "다이아몬드 형사" 시리즈 등 상당히 많습니다. 최근 쏟아지는, 은퇴한 전직 특수 요원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영화들도 비슷한 류일 테고요. 허나 본작의 주인공 빌 호지스는 제가 읽었던 유사 작품 주인공들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현실적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묘사도 아주 좋고요. 초반의 자살을 기도하는 모습, 브래디를 잡기 위해 의욕을 불태우는 과정 모두 자연스러우며 체중 등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것을 신경 쓰는 묘사 역시 한몫 단단히 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제이니가 폭사한 직후 모습은 정말 압권이에요. 연인이 산산조각이 되어 팔 하나만 나뒹구는 상태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최대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데, 속된 말로 '간지 폭풍'이었습니다. "우주해적 코브라"의 한 에피소드에서 도미니크가 죽은 것을 알게 된 코브라의 대사가 떠오르더군요('안녕 도미니크 다음에 만날 때에는 지옥이겠지').
악당인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 역시 나름의 존재감을 뽐냅니다. 어머니와 근친상간 관계에 동생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다는 등의 가족사는 진부했지만, 일반인보다 약간 똑똑한 미친놈이라는 설정을 인상적으로 잘 그려낸 덕입니다. 항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성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주 설득력 높았어요. 사람 마음(빌 호지스)을 갖고 놀려다가 실패하는 과정의 디테일도 잘 살아 있고요.
다른 인물들도 독특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사이드킥 제롬은 엘리트 흑인 집안의 아들인 우등생이라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설정인데, 작중 언급되는 버락 오바마와 더불어 달라진 미국 흑인의 지위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다만 또 다른 조력자 홀리는 컴퓨터 천재지만 심한 우울증을 앓는 기묘한 노처녀라는,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기는 했지만요.

허나 역시나 스티븐 킹 작품의 단점도 그대로입니다. 첫 번째는 '탐정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를 달고 나온 것 치고는 '추리물'로 볼만한 부분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빌 호지스부터가 은퇴한 형사라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단서를 전해주는건 범인 브래디의 역할이거든요. 호지스는 던져주는 단서를 받아 먹을 뿐입니다. 그나마 범인과의 두뇌싸움이라든가, 범인이 보낸 편지와 채팅에서 입수한 것을 통해 프로파일링을 한 결과는 상당히 정확하지만 호지스 스스로의 입으로 이야기하듯 '감'에 의지한 것이라 그닥 정교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급작스러운 억지 전개가 많다는게 두 번째 단점입니다. 올리비아의 동생 제이니 패터슨과 사귀게 되어 잠자리를 같이하는 관계까지 발전하고, 마지막에 아이돌 가수 콘서트에서 폭탄을 터뜨리려는 브래디의 계획을 홀리와 제롬이 저지한다는 결말이 대표적입니다. 솔직히 좀 가관이었달까요. 하긴, 이건 스티븐 킹 소설이니까...

마지막으로 호지스의 실수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예요. 대표적인 것이 제이니의 죽음이죠. 작중에서 계속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어떻게 차를 훔쳤는지까지 알아내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호지스의 실수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그녀의 죽음은 독자가 브래디가 처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게 만들지만, 주인공의 무능력함을 돋보이게 하니 과연 적절한 장치였나 의구심이 생깁니다.
호지스가 월권에 가까운 단독 수사를 고집하는 것도 석연치 않아요. 애초에 올리비아 컴퓨터에 심어진 수상한 파일에 대해 알게 된 시점에서 경찰에 모든 자료를 넘겼다면 사건은 진작에 해결되었을 텐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정통 하드보일드는 절대로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공통적으로 탐정 스토리의 모습을 취하며, 범죄나 폭력, 섹스에 대해 이렇다 할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묘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는데, 이 작품은 추리물이지만 무미건조한 묘사는 아니니까요. 과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정 묘사는 풍성합니다. 그렇다고 폭력이 난무하는 마초물도 아닙니다. 호지스 캐릭터만 놓고 보면 정 많고 정의감 넘치는 동네 아저씨거든요.
물론 호지스와 브래디 둘의 시점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전개에서 브래디 시점 묘사는 고전 하드보일드 느낌이 살짝 나기는 합니다. 스티븐 킹이 서두에 '제임스 M 케인을 그리며'라고 했는데 제임스 M 케인의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누른다"가 떠오를 정도로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모로 하드보일드보다는 전통적인 서부극에 가깝습니다. 캐릭터와 서사 구조 모두요. 은퇴한 총잡이에게 신세대 총잡이가 도전하고, 도전을 피하는 늙은이를 도발하기 위해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서 결국 대결이 벌어지며, 이 와중에 은퇴한 총잡이가 새로운 삶의 보람을 깨우친다는 내용이니 당연하지요.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으나 단점이 더 컸고, 제 취향도 아니라서 감점합니다. 재미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이기는 한데 딱히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특히나 저처럼 '하드보일드'라는 말에 낚이신다면 크게 실망하실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앞서 말씀드렸듯 에드거상은 물론,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선정한 2015 최고의 장르소설 베스트 10에도 당당히 선정되어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제 취향의 문제일까요?

2016/01/25

굿 다이노 (2015) - 피터 손 : 별점 2점

픽사의 신작. 딸아이와 주말에 더빙판으로 감상했습니다.

픽사 작품치고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흥행에 실패했다는데, 각본이 너무나 별로인 탓으로 생각됩니다. 공룡이 문명에 근접한 수준으로 진화하고, 인간은 일종의 애완동물 포지션이라는 독특한 설정은 괜찮습니다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나약한 주인공이 몇번의 위기를 거쳐 한 몫하는 존재로 성장한다"라는 전형적인 성장기와 똑같은 진부한 내용에 불과하니까. 픽사 특유의 재치 역시 찾아보기 어려우며, 벌어지는 위기는 유치하고 작위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대체 이 세계관에서는 왜 이리 폭풍이 많이 몰아치는 걸까요? 

이야기가 부실하다면 주인공인 알로와 스팟 컴비라도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종이 역전된 것에 기반한 약간의 재미 외에는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기존의 인간 - 다른 반려 동물 컴비가 등장하는 작품과 똑같아요. 외려 알로가 상상 이상으로 나약해서 짜증만 났습니다. 

그래도 CG의 완성도만큼은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자연의 표현이 정말 대단해요. 캐릭터들만 빼면 그냥 '다큐'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죠. "한반도의 공룡 점박이"처럼 정말로 '공룡'이 주인공인 다큐를 만드는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딸아이는 그런대로 재미있게 본 모양인데 저에게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CG의 수준이 높고 본편 전에 상영된 인도 신화 기반 슈퍼 히어로물 "산제이의 슈퍼팀" 덕에 큰 감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권해드리기는 어렵네요.

2016/01/23

마약 밀매인 - 에드 맥베인 / 박진세 : 별점 2.5점

마약 밀매인 - 6점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추위가 몰아치는 12월의 어느 날, 순찰경관 딕 제네로가 시체를 발견했다. 자살로 보이지만 부검 결과 타살로 밝혀졌고, 카렐라는 피해자인 마약 밀매인 아나벨의 구역을 이어받은 '곤조'라는 마약 밀매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한편 범행 현장에 있던 주사기에 남은 지문 문제로 87분서의 번스 경위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데...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로 카렐라 결혼 직후 이야기입니다. 비교적 초기작으로 "경관혐오"와 같은, 1957년에 발표된 작품이네요. "노상강도"에 이어서요.

그간 읽어본 바로는 에드 맥베인 작품은 초기작이 훨씬 좋았기에 나름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세 명이나 죽고, 카렐라마저도 총에 맞아 중태에 빠지는 등 강력 사건이 계속 이어지지만 이야기가 너무 간단한 탓입니다. '조무래기 마약상 아나벨이 살해당하고 형사들이 아나벨의 구역에서 마약을 파는 마약상을 쫓는다. 그의 별명이 '곤조'라는 것을 알아낸 뒤, '곤조'를 잡아서 사건을 해결한다'가 전부거든요. 별거 아닌 이야기를 억지로 장편으로 늘린 느낌입니다.

그리고 범행 동기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아나벨을 살해한 이유부터 문제에요. 번즈 경위의 아들 래리가 아나벨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라는걸 가지고 번즈를 협박해서 편하게 마약 거래를 할 속셈이었다는데, 곧바로 수사를 통해 '곤조'의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에 별 의미 없는 협박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 번즈를 협박하기 위해서는 ‘래리가 정말 범인일지도 모른다!’라는 의심을 독자와 번즈 모두에게 잠깐이라도 심어주었어야 합니다. 그럼 이야기가 조금은 복잡해졌겠죠. 허나 번즈가 래리의 마약 중독을 알아내고 훈육 (구타?)하던 밤에 마리아 에르난데스 살인을 저지렀기 때문에 이 역시 물 건너가 버리고 맙니다. 범인의 협박 계획 역시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요. 최소한 번즈는 자기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마리아 에르난데스 살인은 아예 이해 불가입니다. 마리아에게 래리와 말다툼했다는 증언을 강요하다가 수틀려서 살해했다는데, 래리의 존재는 범인 자신만이 알고 있어야 협박이 가능했습니다. 경찰들에게 래리의 존재를 알리면 얻을 게 하나도 없지요. 그런데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해서 무덤을 파는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작중 등장하듯 살인이 버릇이 된다는 이유라면 너무 억지스럽죠.

그래도 전통의 시리즈 중 한 편이고, ‘그랜드 마스터’의 작품인 덕에 볼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경관혐오"의 ‘더위’만큼이나 ‘추위’가 정말 생생하게 묘사되는 등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확 와 닿는 생생한 묘사는 여전히 압권이에요. 초기작답게 지나치게 적나라하지도 않고요. 번즈 경위가 아들 때문에 고뇌하는 장면, 그리고 카렐라가 곤조와 대치할 때의 묘사도 아주 멋졌습니다.

간단한 이야기 구조라 이렇다 할 건 없지만 추리적으로도 딱 한 가지, 경찰 끄나풀 대니 김프가 곤조를 찾아내는 과정만큼은 그럴싸했습니다. 이 바닥에서 곤조를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중독자들이 그에게서 마약을 사려고 했을까? 그건 아마도 그놈이 이 구역에 있는 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죽은 아나벨의 마약 루트를 물려받았을까? 그건 적어도 그놈이 아나벨을 개인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추리해나가는데 설득력 높은, 잘 짜인 이야기였어요. 곤조가 사실은 굉장히 어린, 순진해 보이는 청소년이었다는 나름의 반전도 상당히, 아주 괜찮았고요. 외려 보다 잘 써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쉽게 소모한 듯싶어 좀 아쉽더군요.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한 추위와 잔혹한 사건이 이어지지만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맞는 시점에서 범인을 체포하여 사건은 해결되고, 래리의 마약 중독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고, 곤조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카렐라가 살아난다는 완벽한 해피 엔딩도 좋았어요.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작품은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이라든가 "영국식 살인" 등 많지만 이 작품 역시 한자리 차지해도 좋겠다 싶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기대보다는 못해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읽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