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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 이영미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비채

무라카미 하루키가 온갖 곳에 발표했던 다양한 글을 - 심지어 수상 소감까지! - 모아놓은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잡문집이지요. 본인 스스로도 그닥 가치를 두지 않는 짤막한 요청 원고들에다가 어디에 발표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글들, 여러가지 모종의 이유로 발표하지 못했던 글들이 대부분일 터인데 이런 글들을 모아놓은 책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다시금 탄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잡문이라도 워낙 글솜씨가 뛰어나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음악, 번역 등 특정 컨텐츠를 소개하는 글들은 인상적이기까지 했어요. 프로작가가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써야 한다는 일종의 기준점이랄까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는 글을 읽으며 바로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어 보고,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인터넷 서점 보관함에 바로 담아 놓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소갯글에서는 작품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일체 설명하지도 않는데 말이죠. 피츠제럴드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멸망의 미학이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구원의 확신"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해 지네요. 뒤에 서술한 "밤은 부드러워"는 정말이지 꼭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어떻게하면 이런 리뷰글을 쓸 수 있을지 정말로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꼭 읽어보게 만드는 리뷰를 저도 쓰고 싶네요.

또 읽다가 느낀 것인데 비유가 정말 뛰어납니다. 화려한 문체는 아니지만 비유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독자에게 가장 쉽게 이해시킵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신체균형을 위해 바하의 인벤션을 쳤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요.

일종의 창작론이랄까, 글쓰기에 리듬이 중요하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비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해서 사람들이 읽게 만드는 리듬과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즉 적확한 어휘의 배열, 그리고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인 하모니와 자유로이 솟구쳐오르는 이야기의 흐름을 타는 즉흥연주, 그리고 고양된 성취... 뭐 그러하답니다. 따라하기는 힘들겠지만요.

잡문이기에 모든 글들이 빼어나거나 재미있거나 인상적인건 아닙니다. 허나 리뷰, 소갯글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히 가치있는 독서였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6/29

두 사람의 거리 추정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3점

두 사람의 거리 추정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새학기의 시작, 동아리들이 벌이는 신입생들 가입 권유 행사 신칸제에서 신입생 오히나타가 고전부에 흥미를 보여 가입하려 하였으나, 몇주 뒤 급작스럽게 퇴부를 결심했다. 전교생 참여 필수인 마라톤 대회 '호시가야 배'에서 오레키 호타로는 20Km 장거리를 뛰면서, 그녀의 급작스러운 퇴부 결심을 처음부터 더듬어 나가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 다섯 번째 권.

이번 권은 그야말로 일상계의 극치입니다. 그러나 서두의 사토시 말 대로 '신입 부원이 왔다. 마음이 바뀌었다. 탈퇴했다' 라는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흥미롭게 써냈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일상계 추리물 이야기 구성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또 이러한 간단한 사건 - 오히나타의 탈퇴와 그 이유 - 을 오레키 호타로가 마라톤을 하는 시간과 거리에 맞추어, 첫 만남이었던 신칸제(신입생 가입 권유)에서부터 그려나가는 전개도 독특합니다. 마라톤 도중이라는 점을 뺀다면 일반적인 소설 전개와 딱히 다르지는 않지만, 마라톤 덕분에 후쿠베, 이바라, 지탄다, 오히나타를 차례로 만나는 설정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괜찮은 발상이었어요.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소소한 사건들이 연속되는 전개는 빼어납니다. 소소한 사건이 연속되며 오히나타가 퇴부를 결심하게 만든 이유에 대한 단서가 하나 둘씩 던져지는데 상당히 정교하게 잘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밝혀지는 진상도 예상 외이지만 기발했어요. 등장하는 소소한 사건들 - 신칸제에서 제과연의 테이블 위에 호박이 놓여 있는 이유는?, 호타로 생일에 축하해주기 위해서 찾아온 고전부원들 중 이전에 호타로 집에 찾아왔던 것은 누구?, 오히나타 사촌오빠가 신규 오픈하는 카페의 이름은 무엇? 오히나타가 퇴부를 결심한 날 지탄다가 한 잘못은 무엇? - 모두 하나의 단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괜찮다는 장점도 큽니다. 마지막에 오히나타의 친구가 "소노코"라는 이름일 수 있다는 것도 일본어 트릭이기는 하지만 괜찮은 발상이었고요.

그러나 이러한 정교함이 외려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사소한 단서들 대부분이 일상 생활 속 대화로 오레키 호타로의 '순간 기억 능력'이 압도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 속 모든 대사를 머리속에 녹음한 수준인데 이건 말도 안돼죠. 오히나타의 "친구"가 가공의 제 3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알아내는게 특히 그러한데, 이바라가 치즈를 싫어한다는 상황의 대사와 그 다음에 있었던 카페 방문 시 주문 메뉴를 연결한다는 것은 거의 초능력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대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동안 친근했던 오레키 호타로가 일종의 초인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약간 감점했어요. 하지만 책으로 읽는 독자에게는 공정한 정보이기는 하고, 이야기도 앞뒤가 잘 짜여진 재미있는 '추리 소설' 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상계 추리물로서는 완벽한 수준이랄까요.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그나저나, 이전 권 "멀리 돌아가는 히나" 이후 오레키 호타로와 지탄다 메루의 관계가 급 진전하지 않을까 기대되는 제목인데 실상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두 사람은 지탄다와 신입 부원인 오히나타를 의미하는데, 향후 전개도 궁금해집니다. 후쿠베와 이바라도 사귀기 시작했으니....

2015/06/26

미스테리아 1호 - 엘릭시르 편집부 : 별점 1.5점

미스테리아 1호 - 4점 엘릭시르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장르문학 전문 레이블 엘릭시르에서 새롭게 미스테리 전문 잡지를 출간하기 시작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솔직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선 산만한 편집과 어수선한 디자인이 가장 거슬립니다. 엘릭시르 단행본 수준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편집 디자이너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망이었어요. 내지에 있는, 일반 기사를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만든 이유는 누가 설명 좀 해 주면 좋겠네요.

수록 기사도 대체로 실망스럽습니다. 일단 앞 부분의 단순 리뷰들부터 문제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저런 책 소개와 하등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그나마도 최신작에 집중되어 있고요. 리뷰를 쓴 사람들도 애매합니다. 맥심 편집장이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리뷰를 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요? 딱히 새로운 시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화보라도 같이 실어주었더라면 몰랐겠지만요. 다른 기사들도 대체로 별볼일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기획 의도부터가 잘못된 듯 합니다. 어차피 이 잡지를 구입한 사람은 정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일겁니다. 제목부터가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보다 매니악한 주제로 기사를 썼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리뷰라면 "온라인 서점 장르문학 MD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 All-time best 10" 같은 주제로 책들을 선정한 뒤 소개하는 형식으로요. 이런게 한국 미스터리를 보다 성장시키고 싶다는 출간 의지와도 맞물리는 것이겠죠. 이런 점에서는 "판타스틱"의 김내성 특집호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주제도 매니악하고, 의미도 있으면서도 기사도 아주 좋았던 결과물이었으니까요.

"SCREENSELLER"라는 주제로 영화화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작과 작품의 퀄리티에 상관없이 최신작 기준으로 대충 선정한 느낌인데, 데니스 루헤인 인터뷰도 실려있는만큼 "살인자들의 섬"을 가지고 "원작 VS 영화" 형식으로 심도깊게 파고드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물론 괜찮은 기사도 있기는 합니다. 기존 문학작품을 분석하여 숨겨져있는 추리소설 정서를 파헤쳐주는 "MISSING LINK 집 안의 괴물들" 이라던가 "MAZE 『밀실 입문』 (1), 밀실은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법의학자 유성호의 "NONFICTION 검은 집, 엄마의 비밀"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컨텐츠들이기도 하고요. 수록된 단편들도 읽을만 합니다.

그래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결론적으로는 기대이하였기에 별점은 1.5점. 2점을 줄 수도 있지만 14,000원에 육박하는 가격과 허술한 디자인과 편집으로 더 감점합니다. "판타스틱"은 5년전 출간물이기는 하지만 보다 두꺼웠는데도 불구하고 만원 이하였었죠. 2호째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절대로 구입해 볼 계획이 없습니다. 추리 매니아가 호구는 아니니까요.

수록 단편만 따로 짧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배신하는 별"

비밀리에 보호되던 인물이 암살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일기를 보고 창에서 보이는 "오리온 별자리"를 재구성한다는 내용.

상황 설정과 전개, 결말까지 완벽한 단편입니다. 배명훈 작가 소설은 처음인데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주 약간의 단점이라면, 비약이 심하다는 것과 시리즈물이라 모든 설정을 이 단편만 가지고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는 정도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누구의 돌"

사랑하던 동생이 실종된 사건을 추적해서 범인들을 알아내어 복수하고 남겨진 원수들은 사는게 지옥이 된다는 내용.

"나는 너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류의 설정인데 흡입력있는 전개와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범인들을 알아내는 과정이 작위적이라는 단점 - 몇년전 찍은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걸 찾아내고, 마침 주인이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고... - 이 있어서 감점하지만 재미만큼은 최고수준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구석의 노인"

정당 방위일 수 있는 살인사건의 재판을 참관하는 할머니가 제출된 몇몇 증거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

정당 방위와 과잉 방어에 대한 법리학적 설명 등 작가의 전문성을 발휘한 몇몇 디테일은 나쁘지는 않지만 작품 자체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국내 추리소설 작가 중 정교한 트릭 면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만한 도진기 작가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이유는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탓이 큽니다. CCTV로 잡은 화면에서 손의 반지가 보인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죠. 설령 보였다 하더라도 드라마에 푹 빠진듯한 할머니의 추론일 뿐, 별다른 설득력도 없고요. 범인이 정말 스토커였을 수도 있는거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신드롬"

외따로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전염병이 닥치고, 그 와중에 아내가 사라진 상황을 그린 작품.

집단 광증에 대한 분위기, 세부 디테일 - 특히 유치원 버스에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 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앞집 남자와 화자인 "나"의 시점에서 각각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 것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결말도 당쵀 이해가 안되고요. 열린 결말도 정도껏 해야 했을텐데... 별점은 2점입니다.

"말을 탄 사나이 켈러"

매튜 스커더 시리즈 작가 로렌스 블록의 단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과 싸구려 소설의 카우보이를 동일시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시작하는, 인물들을 드러내는 묘사는 역시나 대단하다 싶었어요. 매튜 스커더가 직업만 킬러로 바뀐 듯 싶긴 한데, 주변 인물들을 "배려"하고 소모적인 살인을 피하고자 흑막을 죽이기 위한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왠지 바보같지만 멋졌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갈 뿐이라는 결말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거장이 심심풀이로 여유있게 써내려간 소품 느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