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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3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 조르주 심농 / 이상해 : 별점 3점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열린책들

14호 수문 위쪽 정박지 마굿간에서 발견된 시체. 피해자는 술과 환락이 가득한 요트 여행 중인 영국인 램슨 경의 아내 마리로 밝혀졌다. 메그레에게 램슨 경의 식솔이자 마리의 정부인 윌리가 찾아와 마리가 주었다는 진주 목걸이에 대해 이야기한 날, 윌리마저도 시체로 발견되는데...

메그레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운하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수문, 말로 끄는 배와 요트가 가득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들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작품에 제대로 녹아들고 있습니다. 일찍이 자신의 배를 타고 다녔던 경험 덕분이었을까요? 묘사도 엄청납니다. 특히 이 작품의 "축축함"에 대한 묘사는 한마디로 최곱니다. 읽다 보면 축축한 물 냄새가 느껴질 정도예요. "갈레 씨, 홀로 죽다"의 더위 묘사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에도 추리소설에 걸맞는 '미스터리'가 존재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마리의 시체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질퍽질퍽한 흙바닥을 송진 흔적 이외에는 깨끗한 상태로 통과해서 마굿간에 숨겨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수께끼가 그다지 대단한 트릭이 아닌, 이십여 년 전 한때 부부였던 남녀의 과거에서 비롯된 자발적 행동이었다는 것과 진상은 별거 없는 용의자 신분 조회로만 밝혀진다는 결말 탓에 정통 추리소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능해 보이는 마부 장이 원래 의사였지만 막노동 끝에 지능이 퇴화한 것이라는 진상은 황당할 정도였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진작에 탈옥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친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긴, 그랬다면 또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그 외에도 주요 용의자인 램슨 경에 대한 묘사는 작위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점, 마리가 장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 윌리 살인에서 보여진 여러 가지 우연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제목 자체가 완벽한 스포일러라는 점 - 누가 봐도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가 수상하다! 라고 느낄 것이기에 -에서 조금 감점할 수밖에 없네요. 아무리 드라마가 강조된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제목에서 설명해 줄 필요는 없잖아요. 이 제목 탓에 램슨 경의 수상한 모습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고요. 다른 메그레 시리즈처럼 그냥 "14호 수문"이라던가 "운하"라던가 하는 식의 제목이었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나름의 트릭과 우직하고 한결같은 묘사는 역시나 읽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며, 메그레 시리즈 최고 걸작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메그레 경감의 저돌적인 (하루에 60여 km를 자전거로 달려 배를 따라잡는 등) 활약과 함께 진지하고 묵직한 묘사 등 시리즈의 장점이 잘 살아있는 준수한 수준의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2/03/18

화성의 존 카터 - 버로우즈 작 / 최인학 역 : 별점 2점

존 카터 청년이 애리조나의 산골짝에서 금광을 찾고 있을 때의 일.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카터의 몸은 어찌 된 셈인지 우주를 날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화성에 착륙하고 있었습니다.

자, 그럼 화성은 어떤 세계였을까요? 카터는 말 같은 8개의 발을 가진 괴물 짐승을 탔으며, 4개의 손을 가진 거인의 일행도 만났습니다. 그들은 녹색인이었습니다. 그밖에 붉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붉은 사람은 지구의 사람과 흡사했습니다. 여기는 싸움을 잘하는 자가 뽐내고, 항상 싸우는 것이 일인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카터는 쾌남자였습니다. 정의를 존중하는 사나이였으며, 칼싸움의 명수로서 무서움을 모릅니다. 녹색인에게 포로가 된 붉은 사람의 아름다운 왕녀를 지키며 놀라운 활약을 거듭합니다. 여러분, 통쾌한 카터 청년을 응원해 주십시오. <책 소개에서 발췌>

최근 개봉한 블록버스터 무비 "존 카터: 바슘 전쟁의 서막"의 원작으로 유명한 작품. 영화 덕분에 정식 완역본도 출간되었지만 저는 직지 프로젝트의 아이디어 회관 문고본으로 읽었습니다. 아동 대상의 번역일 뿐 아니라 굉장히 요약되어 있어서 읽기는 좀 불편했지만(솔직히 번역은 아이디어 회관 문고본 최악 1, 2위를 다툴 듯), 뭐 일단 읽었다는 데 의미를 둘까 합니다.

내용은 다른 곳에서 접했던 대로 굉장히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 아니 판타지더군요. 무대만 살짝 바꿔놓으면 전형적 이세계 판타지 군웅물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해당 장르의 전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세계로 소환된(?) 주인공과 이세계에서 가지는 특수한 능력. 그리고 이세계 종족 간의 거대한 전쟁에 휩쓸리고 그곳의 공주를 돕게 된다는 설정. 이세계의 기이한 애완동물. 음...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신비의 세계 엘하자드 TV ver."?

이러한 판타지적 전형성에 더하여 역시나 전형적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복수"를 사크족의 타르가스 대장 캐릭터를 통해 구현해 놓은 등, 흥행이 될 만한 요소는 다 들어가 있더군요. 이 정도면 히트를 치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겠죠.

그러나 아쉽습니다. 사실 이 작품이 출간된 시기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전형의 원조라 해도 무방할 터이나, 그동안 국내에는 정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오히려 이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후대 작품들 때문에 이 작품의 참신함이나 신선함이 훼손되어 버렸으니까요. 무려 백여 년이 지난 뒤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예산의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했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하려나요? 문제는 영화 역시도 너무 늦게 제작되어 참신함이나 신선함이 없다... 라는 이유 탓에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겠지만요.

사실 정식 번역된 결과물은 훨씬 재미있고 뛰어날 테지만 저 역시도 같은 이유, 즉 새로운 부분이 거의 없을 것이기에 구태여 원전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아바타" 전에는 소개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늦은 게 아쉬울 뿐이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SF라는 말에 어울리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것에서 조금 놀랐습니다. 에테르 세계관과 라듐엔진 등의 몇몇 과학장치들 등이 그러한데, 특히나 중립을 지키는 공기 정화 시스템의 아이디어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이 역시도 "토탈 리콜"의 원전격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2012/03/12

워 사이언티스트 - 토머스.J.크로웰 / 이경아 : 별점 3점

워 사이언티스트 - 6점
토머스 J. 크로웰 지음, 이경아 옮김/플래닛미디어

역사 속에 길이 남은 전쟁 무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을 다룬 미시사 서적. 기원전부터 현대에 걸친 기간 동안 전쟁의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 25개의 무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하늘이 내린 무기 - 칼리니쿠스의 액화
  • 투석기, 갈고랑쇠, 살인 광선 - 아르키메데스의 기이한 전쟁 무기
  • 최초의 생물학 무기 - 한니발의 독사 항아리
  • 하늘을 날며 춤추는 화약 - 위백양의 진천뢰
  • 신에 맞선 행위 - 제갈량이 개량한 연발 석궁
  • 르네상스 시대의 만물 수선공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관총
  • 결집된 화력 - 마랭 르 부르주아의 부싯돌식 방아쇠
  • 천재의 노력 - 데이비드 부시넬의 잠수함
  • 매우 부도덕한 행위 - 윌리엄 콩그리브의 로켓
  • 안전하고 영양 많은 - 니콜라 아페르의 통조림 식품
  • 권총 - 새뮤얼 콜트와 서부를 이긴 리볼버
  • 죽음의 상인 - 알프레드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 군을 무용지물로 만들다 - 리처드 개틀링의 기관총
  • 느리지만 효과적인 -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 석류를 닮은 - 수류탄을 완성한 윌리엄 밀스
  • 화학을 악용하다 - 프리츠 하버의 독가스
  • 불타는 관 -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군용기
  • 캐터필러 이동 요새 - 랜슬롯 드 몰의 탱크
  • 전염병 지역 - 이시이 시로와 세균전 과학자들
  • 세계의 파괴자 -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 구조 임무 - 최초의 헬리콥터를 만든 이고르 시코르스키
  • 반향을 기다리며 - 레이더를 발명한 로버트 왓슨와트
  • 달을 향하여 - 베르너 폰 브라운의 V-2 로켓
  • 가장 도덕적인 무기 - 새뮤얼 코언의 중성자탄
  • 총알 잡기 - 스테파니 크월렉의 방탄 섬유

이런 류의 책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워낙 잘 알려진 무기들 - 예컨대 다빈치의 무기들이나 다이너마이트, 독가스, 원자폭탄 등 - 도 포함되어 있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약점은 존재하나, 무기보다는 발명자를 중심으로 소개해 주면서 다른 유사 도서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발명자의 신상과 개인사, 말년과 후일담까지 소개해주는 꼼꼼함도 좋았어요.

25개의 병기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칼리니쿠스의 액화", 즉 그리스의 불에 대한 이야기와 새뮤얼 콜트의 리볼버,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윌리엄 밀스의 수류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불은 다른 문서 등을 통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 비밀무기와 그 제조법이라는 게 정말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런 비밀은 보통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딱 한 가지, 공기와 접하면 자연발화하는 물건은 아니었을 테니(그렇다면 과학을 넘어 마법의 영역이겠죠?) 따로 불을 붙였을 텐데, 그렇다면 공격하는 쪽도 리스크가 있는 만큼 방법이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호기심 해결사"에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그리고 새뮤얼 콜트는 이른바 "육혈포" 발명 뿐 아니라 사업가적인 수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뢰의 발명자 로버트 화이트헤드가 특허권을 팔지 않고 발명의 비밀을 독점하였으며, 그의 발명을 모방한 경쟁자들은 여지없이 실패하였다는 부분도 재미있었고요. 셜록 홈즈 시리즈의 비밀 설계도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의 손녀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잠수함 함장 폰 트라프와 결혼하여 일곱 아이를 남겨두고 사망한 뒤, 폰 트라프가 견습 수녀 마리아와 결혼한다는 후일담(?)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류탄 이야기에서는 수류탄 자체보다는 "척탄병"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었습니다. 손으로 폭탄을 던진다는 한자어 그 자체에 충실한 명칭이라니... 그나저나 프리미어 리그 스토크시티의 가공할 드로잉 능력을 갖춘 인간 기중기 로리 델랩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전쟁 때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척탄병이 되었을 거예요. 아니, 야구선수들이 더 적당할려나요?

이렇듯 재미있는 기획이고, 세세한 정리와 소개는 정말이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사이언티스트로 포장하여 소개한 경우가 제법 있다는 것은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고대의 예가 특히 많은데, 제갈량이나 한니발 같은 경우겠죠. 물론 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고, 등장한 발명품들이 전쟁의 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기에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만... 오히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입니다. 많기는 한데 정작 중요한 무기 도판은 거의 없는 탓입니다. 석궁(쇠뇌), 화승총, 로켓, 수류탄 등 기본적인 도판 몇 장이 구조나 원리를 더욱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무기들이 많은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 설명하는 무기 중 제대로 된 도판이 등장하는 무기는 부시넬의 잠수함, 개틀링의 기관총, 화이트헤드의 어뢰, 시코르스키의 헬리콥터 정도뿐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도판만 조금 더 충실했더라도 별점은 1점 정도 더 높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전쟁이나 병기 관련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