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열린책들 |
14호 수문 위쪽 정박지 마굿간에서 발견된 시체. 피해자는 술과 환락이 가득한 요트 여행 중인 영국인 램슨 경의 아내 마리로 밝혀졌다. 메그레에게 램슨 경의 식솔이자 마리의 정부인 윌리가 찾아와 마리가 주었다는 진주 목걸이에 대해 이야기한 날, 윌리마저도 시체로 발견되는데...
메그레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운하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수문, 말로 끄는 배와 요트가 가득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들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작품에 제대로 녹아들고 있습니다. 일찍이 자신의 배를 타고 다녔던 경험 덕분이었을까요? 묘사도 엄청납니다. 특히 이 작품의 "축축함"에 대한 묘사는 한마디로 최곱니다. 읽다 보면 축축한 물 냄새가 느껴질 정도예요. "갈레 씨, 홀로 죽다"의 더위 묘사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에도 추리소설에 걸맞는 '미스터리'가 존재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마리의 시체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질퍽질퍽한 흙바닥을 송진 흔적 이외에는 깨끗한 상태로 통과해서 마굿간에 숨겨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수께끼가 그다지 대단한 트릭이 아닌, 이십여 년 전 한때 부부였던 남녀의 과거에서 비롯된 자발적 행동이었다는 것과 진상은 별거 없는 용의자 신분 조회로만 밝혀진다는 결말 탓에 정통 추리소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능해 보이는 마부 장이 원래 의사였지만 막노동 끝에 지능이 퇴화한 것이라는 진상은 황당할 정도였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진작에 탈옥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친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긴, 그랬다면 또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그 외에도 주요 용의자인 램슨 경에 대한 묘사는 작위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점, 마리가 장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 윌리 살인에서 보여진 여러 가지 우연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제목 자체가 완벽한 스포일러라는 점 - 누가 봐도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가 수상하다! 라고 느낄 것이기에 -에서 조금 감점할 수밖에 없네요. 아무리 드라마가 강조된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제목에서 설명해 줄 필요는 없잖아요. 이 제목 탓에 램슨 경의 수상한 모습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고요. 다른 메그레 시리즈처럼 그냥 "14호 수문"이라던가 "운하"라던가 하는 식의 제목이었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나름의 트릭과 우직하고 한결같은 묘사는 역시나 읽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며, 메그레 시리즈 최고 걸작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메그레 경감의 저돌적인 (하루에 60여 km를 자전거로 달려 배를 따라잡는 등) 활약과 함께 진지하고 묵직한 묘사 등 시리즈의 장점이 잘 살아있는 준수한 수준의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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