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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6

안개의 항구 - 조르주 심농 / 최애리 : 별점 2.5점

안개의 항구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리 시내 한 복판에서 머리에 수술을 받은 채로 기억을 잃은 남자가 발견되었다. 신문 광고를 통해 그는 위스트르앙의 항만 관리소장인 조리스 선장이라는게 밝혀졌다. 하녀 쥘르 르그랑이 나타난 덕분이었다. 조리스 선장은 쥘르, 메그레 반장과 함께 위스트르앙 자택으로 귀가했다.
하지만 귀가한 바로 그 날, 조리스 선장은 독살당하고, 메그레 반장은 끈질긴 수사를 통해 이 사건에 마을 시장 그라메종과 쥘르의 오빠 그랑 루이, 그리고 노르웨이인 장 마르티노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게 되는데...


1932년에 발표되었던,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시리즈 초기작. "피해자가 총상을 입은 뒤 정성껏 치료를 받고 살아났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다시 독살당한다"는, 다른 메그레 반장 시리즈에서는 보기 드문 기묘한 사건이 등장한다는게 특이했습니다. 선장을 누가 공격했으며, 결국 누가 죽였는지? 다친 선장을 깔끔하게 치료해준건 누구인지? 선장에게 30만 프랑의 거액을 입금해 준 건 누구인지? 등 여러가지 본격물스러운 수수께끼도 가득하고요.
이를 밝혀내는 메그레 반장의 추리도 빼어납니다. 메그레가 그랑 루이와 노르웨이인 장 마르티노 (레몽)를 체포하고, 그랑메종 시장을 자살하게 만든건 모두 수사 과정에서 알아낸 정보를 통한 추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덕분이지요.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추리력보다는 경험과 통찰력이 돋보이며 범죄 드라마에 가까운 다른 메그레 시리즈보다는 본격 추리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밝혀진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르웨이인 장 마르티노는 원래 그랑메종 시장의 조카 레몽으로 과거 함께 일했지만 부정을 저지르고 외국으로 쫓겨났었습니다. 그 뒤, 그랑메종은 장의 연인 엘렌과 결혼했고요. 그런데 당시 엘렌은 레몽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거부가 된 레몽은 아들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랑메종으로부터 아들을 빼앗아 오기 위해 작전을 벌이게 되었지요. 이 때 레몽을 도와주던 조리스 선장이 그랑메종의 총에 맞았고, 레몽은 그릴 정성껏 치료하고 여생을 편하게 보내기 위해 30만 프랑까지 입금해 주었지만, 조리스 선장이 입을 열 걸 두려워했던 그랑메종이 그를 독살했던 겁니다.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 느낌도 살짝 드는데, 그만큼 대중적으로 먹힐만한 소재 - 기억 상실, 거액의 유산, 숨겨진 아들, 복수 등등등 - 들이 엮여있는 셈이지요. 그래서인지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사나이'인 메그레 반장과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그랑메종 시장의 대비, 그리고 둘의 알력 다툼도 눈에 뜨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짜증나긴 하지만 당대 부르주아를 잘 묘사했을 그랑메종 시장 캐릭터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크리스티 여사의 짜증나는 부르주아 독신녀들 묘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니까요.

추리적으로도 괜찮고, 읽는 재미도 좋은 반면 아쉬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관계자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는 설정은 답답할 뿐더러 납득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특히 레몽의 경우, 선장을 독살한 범인이 누군지는 모른다쳐도, 그에게 총상을 입혔던건 그랑메종 시장이라는걸 경찰에게 알리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시장이 자살한 뒤에도 입을 다물 이유는 더더욱 없고요. 레몽도 레몽이지만, 단순 조력자였던 생미셀호 선원들이 입을 다문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선원들간의 의리'로 입을 다물었다는 식인데, 이 정도 설명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조리스 선장의 죽음에 대한 복수는 선원들간의 의리에 해당하지 않는걸까요?
그랑메종의 행동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엄연히 남의 아들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한 까닭부터 잘 모르겠습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는 건지... 또 선장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걸 알았을텐데, 돌아온 날 바로 살인을 저지를만한 이유도 설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파리에서 온 형사가 함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거부인데도 불구하고 범행을 직접 저지를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네요. 하긴, 레몽과 일당들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형사가 있는데도 다시 아들을 빼돌릴 생각을 했으니, 다들 메그레 반장을 너무 우습게 본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 다른 메그레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추리적인 요소들은 좋았지만, 이런저런 비현실적이고 지루했던 전개는 조금 아쉬웠어요. 그래도 평작 수준은 충분하니, 메그레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여, 쥘리의 오빠 그랑 루이가 쥘리를 찾아왔을 때 쪽지를 남겼으리라는건 당대 프랑스인의 상식이었을까요? 쪽지가 있다는걸 당연하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사소한 점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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