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건축가들 - 김소연 지음/루아크 |
일제 강점기 당시 유명 건축가들에 대해 소개해 주는 책. 예전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연재되었던 기사 외 몇 가지 항목을 추가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네요.
이 책의 장점은 일제 강점기 당시 '건축가'들의 이력과 삶, 활동 내역과 그 결과물을 통해 당시 조선에서의 젊은 엘리트들의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게 조선에서 건축가로 활동하기 위한 유일했던,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이력이 조선 총독부 근무였다는 것이에요. 조선에서 가장 유명했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던 건축가 박길룡을 비롯, 박동진, 김세연, 김윤기 등이 그러했을 뿐더러, 심지어 3.1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했을 정도로 애국 청년이었던 박동진마저도 조선이 일본 차지가 된 현실을 인정하고, 늦은 학부 졸업 후 조선 총독부에 들어갈 정도였다니 말 다했지요. 게다가 박동진은 총독부 근무 후, 온돌마저 폐지하자고 주장할 정도로 급진적인 근대화를 추구했다는데, 이런게 당시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초상이었을 겁니다. 애국 청년이라도 일본의 돈을 받아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결국 이들이 건축계의 주류가 된 것 처럼, 당대 지식인들이라 할 수 있는 유학파 청년들 대부분이 이러했을테지요. 물론 건축가는 근대적인 대형 건축물 건설을 경험하려면 총독부에서 일할 수 없었을테니 다른 직업군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초상이자 표본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들의 조선 총독부 근무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이들은 일종의 파벌을 이루어 몰려다니고, 근무가 끝난 뒤 일종의 아르바이트도 함께 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러한 전통적인 코스 외에 다른 길을 걸어간 건축가들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조선 최초 유학파 건축가인 박인준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항일 독립 운동을 하다가 상하이로 도주, 그 뒤 미국으로 망명 유학하여 시카고와 미네소타에서 건축을 전공했다는 그의 이력부터가 특출난 탓입니다. 파란만장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니까요. 일본 땅이 된 조선에 귀국해서 연희전문 교수가 되었지만, 항일 사건으로 학교를 떠난 뒤 개업했지만 일본어도 잘 못하고, 총독부 인맥도 없어서 수주에 곤란을 겪었고 해방 후 행적은 불명이라는 후일담은 씁쓸했고요. 이런 분이 좀 잘 되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독립 운동을 하면 3대가 가난하게 산다는게 허언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드네요.
독립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뒤, 미국인 선교사 보리스의 건축사무소에서 건축을 배운 뒤 귀국해서 주로 종교 관련 건축 작업에 종사했던 강윤 역시 행복한 말년을 보내지 못했다니, 더욱 아쉽습니다.
그 외에도 조선에서 일했던 일본인 건축가들과 유명한 선교사이자 건축가였던 윌리엄 보리스까지 소개하고 있으며, 전통 건축 장인들이 당시 널리 보급되었던 문화 주택 건설에 참여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 등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처럼, 건축가로 보기는 힘들 뿐더러 그 일대기가 잘 알려진 인물을 이 책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소개된 건축가들의 대표작 등 관련된 도판 소개가 부실하다는 약점도 크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건축, 건축가보다는 일제 강점기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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