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초자연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초자연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20/08/23

백사당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3점

백사당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겸 편집자 미쓰다 신조는 다쓰미 미노부라는 남자의 괴이한 체험을 들은 뒤, 그가 쓴 원고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그 원고를 읽은 미쓰다 신조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 둘 씩 괴이한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젊은 여성 편집자 다마가와는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미쓰다 신조는 이 현상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는 다쓰미 미노부를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교토에 있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집에서도 괴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실종된 다마가와는 돌아온 뒤 눈 앞에서 자살하는 등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는데....

직전 "사관장"에 이어 읽은 미쓰다 신조작가 시리즈 3부작 마지막 작품입니다. 읽고 나니 "사관장"을 읽고 든, 미완성같다는 느낌이 맞았더라고요. "사관장"은 이야기의 도입부이자 전편이고, 이 "백사당"으로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하나의 긴 장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백사당"을 통해 "사관장" 속 중요한 수수께끼들의 진상이 밝혀지거든요. 일본에서는 '작가 시리즈 3부작 전편 (사관장)'과 '작가 시리즈 3부작 후편 (백사당)'으로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 중 하나만 읽게 되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만해도 깜빡 그럴 뻔 했습니다.

하여튼, 작품은 미쓰다 신조가 겪은 괴기 체험에 기반을 둔 '작가 시리즈'답게 공포의 마물 '마모우돈'이 실제한다는걸 전제로 하고 있긴 한데, 놀라운건 이야기 속 일어났던 괴이한 현상이 모두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된다는 점입니다. 작 중 친구 소후에 고스케의 말에 따라서 - "초자연 현상은 해석할 방법이 없으니,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건 확실하게 일어났다고 인정되는 현상만 상대하는" - 요. 덕분에 그야말로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 정의에 딱 들어맞습니다. 

이 지론에 의하면, 결국 "사관장"에서의 수수께끼는 백사당에서의 아버지 실종과 새어머니 실종, 두 개의 사건만 확실히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두 사건에 대해서만 합리적인 해석이 될 수 있도록 파고듭니다.

첫 번째 수수께끼인 할머니 탕관 의식 도중 실종된 아버지 사건에 대한 탐정역인 아스카 신이치로의 추리는, 아버지는 새어머니 도미 씨에게 살해당했고 그 시체는 관 속에 숨겨져 있었다는 겁니다. 도미 씨가 백사당에 들어올 수 있었던건, 자물쇠가 잠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요.
우선 도미 씨는 탕관을 도와주겠다며 백사당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뒤, 탕관 후 이물질을 배출하기 위한 탕관구를 통해 죽은 할머니의 시신을 분해해 버리고 관 속에 대신 아버지의 시신을 넣었습니다. 그 뒤 백사당 입구 옆 공간에 숨어있다가, 다미 할멈이 백사당 안으로 들어올 때 몰래 탈출했다는 추리입니다.
백사당이 밀실이기는 하지만, 탕관을 하기 위해 설치된 탕관구라는 특이한 구멍의 존재와 요철 모양으로 입구 옆에 공간이 있는 구조라는 점을 잘 활용한 멋진 트릭이었어요.

마물에 의한 기억상실 정도로 치부되었던 도도야마 산에서의 체험도 알고보니 추리적으로도 잘 짜여져있으며, 정교한 극적 반전이 등장해서 무척 인상적입니다.
단서는 이전에 등장했던, 도도야마 산을 올랐던 사람들 이야기들입니다. 혼자서 산을 찾았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는데, 두 명이 방문하면 둘 다 무사하거나, 한 명만 무사하거나, 둘 다 죽었으며 세 명 이상이 올라가면 대부분 죽었다는게 그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이를 통해 두 명 이상이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게 아닐까라는 추리가 이어집니다.
"사관장"에서는 아이들끼리 도도야마 산을 올라가기로 결심했었는데, 할머니 장례로 흐지부지되는 듯한 묘사가 나왔었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 모두 도도야마 산에 올라갔던 겁니다! 그 중 한 명이 경찰 서장의 아들인 전학생 미쓰다 신조였고, 미쓰다 신조는 도도야마 산 정상 신당에서 다쓰미 미노부를 만났는데 둘이 정신적으로 뒤바뀌어 버리고 만 것이에요. 무언가 습격한게 아니라 둘이 급작스럽게 만난걸 계기로 정신이 바뀐 채 기억을 잃은 겁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미쓰다 신조와 다쓰미 미노부가 엮이게 되었으며, 미쓰다 신조가 무언가에 쫓기는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미쓰다 신조가 다우군 다우초를 제 발로 찾아 햐쿠미가 은거방 격자 안에 갇히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진상의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관장"에서 친구가 된 전학생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등 이를 서술 트릭처럼 활용한 전개도 돋보입니다. 아,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늙어 보이는 다쓰미 미노부가 사실은 미쓰다 신조들과 동년배라는 것 역시 서술 트릭의 일종으로 마지막 진상이자 반전의 순간 충격을 극대화하는데 일조합니다. 다쓰미는 마모우돈에게 정기를 빼앗긴 탓에 폭삭 늙어버렸다는 설정인데, 이 설정은 작품 속 또 다른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6년전 아이들 실종 사건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모우돈이 정기를 빼앗으며 나라에서부터 다쓰미가 사는 교토까지 이동하면서 벌어진 일이거든요. 마모우돈은 아이들의 정기 덕분에 아름다운 여자로 탈바꿈 하게 되었고요.

전편에서 설명이 부족했거나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보완해 주는 내용도 많습니다. 다쓰미 미노부가 겪었던 할머니의 학대는, 말 그대로 '첩의 아이'에게 명문가 대가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분노라고 이전 리뷰에서 설명드렸었는데, 이 작품에서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햐쿠미가 당주들은 모두 여성 편력이 심하고, 여성들에게 원한을 많이 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대로 햐쿠미가 당주들에게는 여성들의 저주가 씌워졌다는군요. '나'인 다쓰미 미노부(햐쿠미가에서 다쓰미가의 양자로 보내져 성이 바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던거지요.
아울러 스나가와가 살았던 집 폐허에서 만난 무언가는 스나가와의 할아버지의 원령인건 당연한데, '왜 원령이 나타나서 햐쿠미가를 원망하는지'는 전편에서는 설명되지 않았죠. 이 작품에서 원령의 존재는 앞서 설명드린 도도야마 산 체험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아이들끼리 도도야마 산을 올라갔다가 이상해졌는데, 마침 스나가와는 함께 올라가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스나가와가 아이들이 산에 올라가도록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결국 마을 사람들이 스나가와를 죽였지요. 그 뒤 스나가와의 부모는 자살하고 할아버지도 굶어죽은 시체로 발견되어 원한이 남게 된 것이고요. 스나가와가 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한이 사무칠만한 비참한 죽음인건 분명합니다.

이외에 이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괴이 현상에 대한 묘사들도 좋습니다. 다쓰미의 "사관장" 원고를 읽은 미쓰다 신조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인데, 특히 여성 편집자 다마가와가 자살하는 순간 입에서 쏟아낸 방언, 기묘하게 남긴 메시지는 섬찟할 뿐 아니라 미쓰다 신조와 다쓰미 미노부가 동일 인물이라는걸 드러난다는 복선으로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가 마모우돈을 만난 순간 두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스륵 스륵 스륵...' 의 표현도 섬찟하며, "사관장" 초반 할머니가 강제로 곰팡이 슨 만주를 먹이는 장면과 겹치는 스나가와 할아버지 원령의 전병 대접과 원한의 토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눅눅한가...')

그런데 정작 추리와 진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다쓰미 미노부와 미쓰다 신조가 할머니 묘를 파서 관을 확인해 본 결과, 관 속의 뼈는 그냥 할머니 뼈였습니다. 즉, 도미 씨의 살의를 눈치챈 아버지 나오호 씨가 입구 옆 공간에 숨어있다가 다미 할멈이 들어오는 틈을 타 도망갔다는게 진상이라 좀 허무했어요. 다미 할멈이 다쓰미 미노부를 위해 꾸민 일로 당주 나오호씨가 도망치는 큰 소동이 일어나면, 체면을 중시하는 도미 씨가 아들을 본가에서 내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다쓰미 미노부를 아꼈던 다미 할멈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라 합리적이기는 한데, 추리적으로 재미는 없습니다.
또 이 진상이 사실이라면, 도미 씨와 하룻밤 밤 백사당에 갇혀 있었을 때 무사했던게 설명 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두 번째 수수께끼에 대한 추리는 명백히 문제가 있습니다. 아스카 신이치로는 도미 씨 장례식에서 탕관을 하던 다쓰미를 습격한건 단순한 환청과 환각이었으며, 다음날 아침 백사당을 찾은 다미 할멈은 쓰러진 다쓰미를 보고 충격을 받아 죽었다고 추리합니다. 이를 발견한 두 명 숙부와 고모는 도미 씨 시체를 탕관구를 통해 없애고 다미 할멈의 시체를 도미 씨 관에다 넣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나'가 멀쩡한만큼, 다미 할멈은 고령으로 인해 백사당에서 자연사한걸로 이야기하면 되는데, 이렇게까지 무리한 트릭을 감수해가며 고모와 숙부들이 다미 할멈의 죽음을 숨길 이유는 없습니다. 앞서 첫 번째 수수께끼의 진상이 단순 도망이라면, 이러한 트릭을 고모와 숙부들이 급조해서 떠올릴 이유도 없고요.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우선은 미쓰다 신조 및 친구들의 말로가 조금 불분명하다는겁니다. 단순 실종으로 퉁치고 끝내는건, 이야기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느낌입니다.
햐쿠미가가 백마리 뱀에서 가려 뽑은 뱀신을 모신다던가, 그 외 이런저런 스쳐지나가는 괴담들같이 뭔가 있어보였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던 묘사도 많습니다. 아버지 나오호 씨가 마지막 순간, 미쓰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등장해서 살짝 폼을 잡다가 바로 정기를 빨려 리타이어 해 버리는 장면도 단지 나오호 씨의 말로에 대해 알려주는 것 외의 역할은 없는 불필요한 이야기였고요.
마모우돈이 다쓰미 미노부의 몸을 한 미쓰다 신조와는 잘 지내면서, 미쓰다 신조의 몸을 한 다쓰미 미노부는 햐쿠미가에 감금한 이유도 모르겠네요. 전의 사건들을 보면 미쓰다 신조를 납치하는건 일도 아닌데, 왜 이리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지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추리를 펼쳐보이는 탐정 역인 미쓰다 신조의 친구 아스카 신이치로의 캐릭터는 특별한 매력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모든 탐정들이 괴상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평범해서 작품에 많이 묻혀요. 탐정은 아니지만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친구 소후에 고스케도 등장하기 때문에 비중과 존재감도 흐릿한 편이고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도조 겐야 시리즈로 만드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전작과 합쳐 1000페이지를 훌쩍 넘는 어마무시한 분량도 부담스러웠고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백사당에 관련된 거의 모든 수수께끼는 완벽하게 풀린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더운 여름 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2010/11/08

소울드롭의 유체연구 1~3 - 카도노 코우헤이 / 아키요시 후우린 : 별점 2점

소울드롭의 유체연구 3 - 4점
카도노 코우헤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보는 사람에 따라 모습을 바꾸고 감추는 괴도 '페이퍼커트'. 그러나 사실 그의 정체는 '케비닛 센스'라고 불리는 킬러로, 특정인에게 목숨과 같은 가치를 지닌 물건을 훔쳐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를 쫓는 서컴 보험회사의 조사원 이사 슈운이치와 로봇 탐정 센죠 마사토는, 페이퍼커트가 범행을 예고한 요절한 천재 가수 미나모토 시즈쿠의 트리뷰트 라이브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자칭 '포카드'라는 또 다른 훼방꾼이 나타나는데...

'페이퍼커트'와 로봇 탐정이라는 설정에서 SF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지는 미스터리 초자연 스릴러물. "부기팝"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카도노 코우헤이의 원작을 만화화한 작품으로, '소울드롭'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합니다.

페이퍼커트의 존재 자체가 환상적인 요소를 띠다 보니 정통 추리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단서를 모아 결론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나름 합리적입니다. 

다만, 페이퍼커트의 예고장을 '모른다'고 했다는 결정적 증언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너무 쉽고 뻔하다는 점은 아쉬웠고,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복잡하고 화려해 보이는 설정과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난다는 점, 그리고 뛰어난 작화에도 불구하고 빠른 전개와 많은 대사를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탓입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흐름이 산만하고 복잡한 느낌이 강하거든요. 제목조차 직관적이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단점이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작가의 팬이거나 추리 만화를 모두 찾아봐야 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2016/12/18

해가 저문 이후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해가 저문 이후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 단편집입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이후 6년만이라고 하네요. 모두 13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 작품 수 부터가 남다른데, 내용도 확실히 최신 작품답습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작품은 거의 없고, 심리나 특정 상황에 대한 묘사에 기대는 작품이 대부분이거든요. 심지어 특정 몇몇 작품은 아예 공포라는 감정보다는 그냥 인간에 대한 묘사, 환상에 대한 묘사로만 이루어져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기묘한 '강박'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해요. '강박'을 주제로 한 앤솔로지 수록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전부터도 느낀 것이지만 음악을 전면에 드러내어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작품이 많다는 점도 눈에 뜨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N"에서 환자 N이 괴물을 보고 달아나면서 차에서 라디오를 켰을 때 록 음악이 터져나오는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더 후의 노래가 끝나고 흘러나온건 도어스의 "세상의 이면으로 건너오라"였는데 참으로 절묘했어요. 오싹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는 직접적인 공포가 드러난 작품을 좋아하는 탓에, 이런 변화가 좋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의 연륜이 쌓이고, 내면의 성찰이 깊어졌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이런 류의 작품을 스티븐 킹이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 탓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사후세계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윌라", 홀로 헬스 자전거 운동을 하다가 강박적인 상황에 빠져든다는 "헬스 자전거", 9.11 테러 때 회사를 땡땡이 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스콧에게 죽은 동료들을 상징하는 물건이 갑자기 찾아온다는 "그들이 남긴 것들" 입니다. 사후세계초자연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단지 소재일 뿐, 내용과 전개는 인간 관계나 강박적인 심리 묘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간 관계가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고, 딱히 반전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묘한 현상에 대한 설명도 없고, 심지어 무섭지도 않아서 지루하기만 했다는 겁니다. 스티븐 킹만의 문체와 묘사로 환상 세계를 그린 묘사는 나쁘지 않지만 이 역시 새롭다기보다는 변주에 불과해 보이기도 하고요.

이는 남편이 꾼 꿈을 통해 공포가 실체화 된다는 "하비의 꿈"과 비행기 사고로 죽은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는 "뉴욕 타임스 특별 구독 이벤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핵폭탄이 투하된 순간을 그린 초단편 "졸업식 오후" 역시나 지극히 익숙한 소재임에는 분명하고요.

다행히 과연 스티븐 킹이구나! 싶은 작품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아래 소개해드릴 4편이 바로 그것입니다. 짤막하게 소개해 드리며 리뷰를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진저브래드 걸"

에이미는 아이가 죽은 후 강박적인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웃에 사는 연쇄 살인마 피커링의 살인 현장을 목격했고, 그에게 쫓기게 되는데...

피커링에게 사로잡힌 에이미가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는 과정의 서스펜스가 어마무시한 작품입니다. 묘사가 장난이 아닌 덕분입니다. 아이가 죽은 후 슬픔을 잊기 위해 에이미가 달리기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이후 탈출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최후의 순간에 피커링이 수영을 못 한다는 설정을 갑자기 드러낸 것은 약간 반칙 같고, 어떻게보면 조금 뻔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강박증과 추격전이라는 두 개의 테마 만큼은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N"

저명한 정신과 의사 조니 본세인트가 자살하고, 그가 남긴 원고는 여동생에 의해 오랜 친구 찰리 킨에게 보내졌다.
원고는 1년 전, 조니에게 N.이라는 강박증 환자가 찾아온 날부터 시작되었다. N.은 충동에 의해 찾아간 한 장소에서 태고의 무시무시한 존재의 봉인이 풀리려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막기 위한 사명을 갖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엄청난 강박증에 시달렸던 환자였다...

대부분 1인칭으로 쓰여진 의사의 원고와 서간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작품입니다. 고대로부터 유래된 절대자, 봉인, 심연, 심지어 크쑨이라는 이름까지는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케하지만, 환자 N.이 이야기하는 그의 과거, 즉 그가 애커먼 들판에서 '크쑨'이 처음 나오려는 것을 발견한 후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의 설득력이 실로 대단하며, 이 과정을 모든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배열하려고 하는 강박증과 잘 연결시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또 유일한 증거는 N.의 증언밖에 없지만 그것을 단계별로 정신과 의사가 기록했다는 식으로 설득력을 보장함은 물론, 일종의 주간 드라마 같은 방식(환자가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므로) 독자의 흥미를 지속시키는 전개 방식도 아주 빼어났어요.
이에 설득당한 조니 본세인트, 그리고 그의 여동생 셰리아가 자살하고 이 사명을 찰리 킨이 받게 된다는 "링" 스타일의 저주의 연쇄 역시 볼만했고요.

그러나 N.이 이야기한대로 이 사명을 가진 자가 그냥 죽어버리면 '크쑨'의 봉인이 풀릴리 없다는 법칙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던가, 여러명이 크쑨을 바라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묘사가 없는 등 디테일은 조금 아쉽습니다. 혼자서 그렇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누군가와 같이 가면 되잖아요?

그리고 "링" 수준 만큼은 아니더라도 뭔가 연결고리, 법칙을 부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예를 들면 N.이 조니 본세인트를 찾아온 이유와 조니의 동생으로 이어지는 관계에 이름의 이니셜이 이어진다던가 하는 식으로 법칙을 넣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래도 러브크래프트의 진전을 이어받기도 했고,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하는 재미와 공포에 있어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벙어리"

영업사원 모네트는 성당에서의 고해 성사에서, 영업 출장 중 태웠던 벙어리 히치하이커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모네트는 히치하이커에게 아내 바브가 직장에서 거액을 횡령한 뒤, '카우보이 밥'이라고 부르는 애인과 흥청망청 쓴 후 도망가 버렸다고 했는데...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 벙어리 스탠리 두세트

그게 누구건 선의를 베풀면 보답을 받는다는 전래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고해성사를 하면서 아내 바브와 그에 얽힌 범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모네트의 입담도 볼거리고요. 보답이 불륜과 범죄를 저지른 아내와 정부를 때려 죽이는 거라는건 스티븐 킹 다왔습니다. 실제 뉴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창작 비화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결말이 좀 뻔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주 비좁은 것"

이웃 그룬왈드와 땅, 그리고 애견의 죽음에 얽힌 송사에 휘말린 주식 거래인 커티스는 어느 날 그룬왈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모든 요구를 수용할테니 이 모든 것을 끝내자는 제안이었다. 이후 커티스는 홀로 그룬왈드를 만나러 폐허처럼 버려진 공사 현장으로 찾아갔다가 권총으로 협박당한 후, 공사 현장 화장실에 갖히고 말았다...

묘사력으로는 수록작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거장의 글 솜씨가 제대로 발휘되어 있습니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별도 없는 한밤에"의 첫번째 작품 "1922"<1922>가 떠오를 정도로 읽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거든요. "1922"<1922>가 생지옥, 그리고 쥐에 대한 묘사로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면, 이 작품은 화장실과 오물에 대한 묘사가읽는게 힘들 정도로 생생합니다.

또 화장실에서 커티스가 죽게되더라도 일종의 사고사로 보이게 된다는 정황 묘사도 그럴싸 하며, 그룬왈드가 사업에 실패한 뒤 아내가 도망갔고, 심지어 암까지 걸린걸 커티스 탓으로 돌리는 범행 동기 역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나 범행 방법은 완전 범죄를 그린 범죄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잘 짜여져 있습니다.
아울러 화장실을 탈출하기 위한 커티스의 노력도 흥미진진합니다. 커티스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 애견 벳시의 인식표 덕분이라는 소소한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나 딱 한가지, 커티스가 탈출 이후 보여준 행동과 그룬왈드의 자살은 석연치 않습니다. 특히 그룬왈드가 어차피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면 커티스를 다시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텐데, 왜 포기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같으면 자살하기 전에 커티스에게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별점은 3.5점입니다. 두번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악취미이긴 한데 재미만큼은 명불허전입니다.

2010/01/16

벽장 속의 치요 - 오기와라 히로시 / 신유희 : 별점 3점

벽장 속의 치요 - 6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예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표제작 이외 8편, 그러니까 총 9편의 단편이 실린 호러 단편집입니다. 잘 모르는 작가인데 책 소개만 보고 충동구매한 책이죠.

총 9편의 단편을 분류하자면 3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령이 나오긴 하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한 "말랑말랑 에피소드" (벽장 속의 치요 / Call / 신이치의 자전거), 끔찍한 현실에 대한 모골 송연한 결말을 그리고 있는 "모골송연 에피소드"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 / 늙은 고양이 / 어두운 나무그늘), 마지막으로 빠른 전개와 박력과 더불어 블랙 코미디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는 "박력화끈 에피소드" (예기치 못한 방문자 / 살인 레시피 / 냉혹한 간병인) 정도로 말이죠. 이 가운데에서 개인적으로는 "화끈 에피소드" 쪽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발상도 기발하고 전개과정에서 쉴틈 하나 주지 않는 박력이 인상적이었거든요.

하지만 아쉽게도 나머지 두 분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단 "말랑말랑 에피소드"는 너무 분위기가 안 맞았어요. 유령이 등장한다고 해서 "사랑과 영혼"이 호러는 아니잖아요? 그나마도 너무 뻔한, 독특한 요소도 없는 이야기들이라 지루했습니다. 반대로 "모골송연 에피소드"는 호러물이라는 장르에 충실하긴 해서 어느정도 재미는 주지만 좀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더군요. 물론 호러물이 설득력을 갖출 필요는 없겠지만 약간 아쉽더라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평균적으로 3점입니다. "화끈 에피소드"와 "모골송연 에피소드" 만 실려있더라면 3.5점을 줬을텐데 나머지 이야기가 너무 취향이 아닌지라 0.5점 깎았습니다. 베스트 에피소드로는 "예기치 못한 방문자"를 꼽고 싶네요.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알았기에 "화끈" 쪽 장편이 있다면 한번 구해봐야겠습니다.
벽장 속의 치요
게이타는 실직 후 이상하게 싼 집세의 맨션으로 이사한 뒤, 벽장속에서 "치요"라는 소녀 유령이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단편집의 표제작이긴 한데 사실 큰 재미는 없었습니다. "치요"의 슬픈 과거를 게이타가 밝혀내어 성불시켜주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나로 완성될 것 같은데 이야기 서두에서 서둘러 끝마친 미완성 작품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약간의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도 아니라서 이래저래 애매해 보이네요. 별점은 2.5점.

Call
나는 미유키와 함께 죽은 대학 동창 묘지를 찾아간다. 우리 세명은 같은 대학 초자연현상 연구회 소속으로 나도 미유키를 좋아했었다...
중간에 시점이 바뀌는 일종의 서술트릭이 쓰인 말랑말랑한 멜로물입니다. 하지만 시점이 바뀌는 시점이 아무리 보아도 억지스러워서 트릭을 위한 트릭이라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네요. 이건 완전 반칙이죠... 내용도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
나와 소냐는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중국에서 탈없이 살아가는 9살배기 쌍동이.
9살배기 꼬마의 1인칭 시점으로 세모녀의 힘든 삶을 다룬 이색 단편입니다. 힘든 시기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의 모습같은 이야기 등은 굉장히 뻔한 이야기죠. 하지만 이 작품은 마지막 반전과 현실적인 공포를 드러내는 결말을 통해 상당히 재미있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별점은 3점.

예기치 못한 방문자
히라이와 리쿠조는 정부 사토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어떻게는 시체를 숨기려 하는 찰나 청소서비스 더스 클린의 예기치 못한 방문을 받게 된다.
리쿠조의 살해 직후 이야기가 시작되는 단편입니다. 전편에 걸쳐 시체를 숨기려는 자와 불청객간의 숨바꼭질이 숨가쁘게, 그리고 유머스럽게 펼쳐지는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이죠.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유머스러워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4점. 영상화해도 좋을 것 같은 흥겨운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살인레시피
야스다 후미히코는 아내 구미코를 살해할 결심으로 특별 요리를 준비한다.
바로 전 작품인 "예기치 못한 방문자"와 동일한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스릴러물입니다. 부부만 등장하여 식탁에서 서로의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는 설정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죠. 하지만 딱 두명만 등장해서 저녁식사하는 식탁에서 혈전이 벌어진다는 설정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식탁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식재료에 대한 묘사도 디테일하고요. 단 결말이 구태의연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별점은 3.5점입니다.
혹 영상화한다면 규모와 등장인물은 적지만 서스펜스 하나는 제대로 뽑아내고 있기에 영화보다는 연극에 더욱 어울릴 것 같습니다.

냉혹한 간병인
소노코는 치매로 쓰러진 시아버지 젠조를 돌보는 척 하나 실제로는 학대하는 악질 며느리.
현실적이면서 주위에 있음직한 소재에서 "몬스터 호러물"을 뽑아낸 듯한 작품입니다. 전반부의 자기중심적 악질며느리 소노코도 괴물이지만 후반부에서 본격적 복수와 응징에 나서는 젠조의 존재감, 카리스마가 압권으로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입니다. 젠조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는 계기에 대한 설명이 미흡한 등 단점도 물론 있지만 워낙에 박력이 넘쳐 별점은 4점입니다. 이 단편집에서 국내 시장에 가장 잘 맞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우리나라야말로 고부간 갈등이 많잖아요^^

늙은 고양이
나는 히데오 숙부의 사후 숙부의 집을 상속받아 이사가게 된다. 숙부가 키우던 늙은 고양이와 함께 가족이 이상하게 변해가는데...
일종의 "이형 공포물" 정도 될까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양이 한마리로 나를 제외한 가정의 붕괴를 접해가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포인트인 작품입니다. 다른 이형, 또는 바이러스 등으로 전염되듯 붕괴되는 공동체를 다룬 작품으로 좀비물이나 흡혈귀물과도 어떻게보면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군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 즉 가장 중요한 고양이의 정체를 속 시원히 밝혀주지 않는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입니다. 분위기와 묘사는 그럴듯 했지만 단점이 너무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어두운 나무 그늘
15년전 숨바꼭질을 하다가 동생 야요이가 실종된 뒤 처음으로 나는 다시 외갓집을 방문한다. 외갓집은 사촌오빠 유이치 혼자 머물고 있었다. 야요이의 흔적을 다시한번 찾던 나는 마당의 오래된 녹나무에서 이상한 무언가를 느낀다.
실제 범죄가 가증스러운 것이기에, 그리고 결말의 묘사 하나가 섬찟해서 (유이치의 얼굴이 떠올라 있던 곳은, 지상 2미터가 넘는 높이였다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모골송연" 쪽으로 분류했지만 어떻게 보면 일상계 심리물이기도 한 작품이죠. 별것 아닌 무대장치에서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전개도 흥미진진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진상이 15년동안 은폐될만한 것은 아니라는 단점 때문에 감점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신이치의 자전거
나에게 신이치가 찾아와 한밤중 사당을 탐험하는 모험을 제안한다...
어린 시절 추억을 약간의 괴담처럼 꾸민 작품. 잔잔하긴 하지만 심심할 뿐 아니라 뻔하기까지 해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9/08/25

테러호의 악몽 1, 2 - 댄 시먼스 / 김미정 : 별점 3점

테러호의 악몽 1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테러호의 악몽 2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1845년, 최신식 함정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를 타고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출발한 존 프랭클린 경 탐사대는 무리한 항해 끝에 얼음 속에 고립되고 말았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탐사대를 키가 4m가 넘는 하얀색 괴물이 습격하기 시작했고, 괴물과 추위, 식량 부족 등의 문제가 겹치며 프랭클린 경을 비롯한 탐사대원들이 하나씩 죽어가자 테러호의 함장 크로지어는 배를 버린 후 생존한 탐험대 전부와 함께 육로로 탈출을 결행했다.
그러나 계속된 괴물의 습격과 식량 부족은 생존자들을 계속 괴롭혔고, 누수방지공 히키를 중심으로 한 대원들의 반란까지 일어나는데...

"칼리의 노래"로 접했었던 댄 시몬즈의 장편 호러 팩션입니다. 실존했던 싱클레어 탐험대에게 닥친 비극과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지요. 실존하는 미해결 미스터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는 코난 도일"J.하버쿡 젭슨의 진술"이 떠오릅니다.

이전부터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 2권 합쳐서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순식간에 읽어버렸을 정도로요. 재미의 가장 큰 요소는 끔찍한 초극한 상황의 생생한 묘사입니다. 이들에게 닥친 비극은 작 중에서도 언급되다시피 포경선 에식스 호의 비극과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에식스 호는 십 수명의 선원들이 주로 '굶주림' 과 싸우며 그래도 다섯 명이나 생존했지만, 싱클레어 탐험대는 백명을 훌쩍 넘는 대원들이 아무 것도 잡지 못해 줄어드는 자원만으로 버텨야 해서 직면한 굶주림은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몇 수 위입니다. 최고 영하 60도 이하로 떨어져 맨 손으로 총을 잡으면 살갗이 벗겨질 정도니까요.

탐험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요소로는 괴혈병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묘사도 굉장합니다. 모공 등 모든 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이빨이 빠지고, 붓기가 심해지며 피부의 탄력도 사라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몇몇 선원들이 걸린 납중독 묘사도 처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죽어가는 핏제럴드 함장의 최후가 특히나 끔찍합니다. 

탐험대를 습격하는 거대 괴물 툰바크의 위협도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4m도 넘는다는 거대한 체구에 속도도 엄청나며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괴물로 인간은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나마 탐험대의 발버둥은 테러 호의 항해장 블랭키가 괴물에 맞서 오랫동안 버티며 살아남는 정도에 불과해요. 참고로 블랭키의 사투는 박력이 넘쳐서 전체 내용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어려움에서 드러나는, 인간 관계를 통한 드라마도 탄탄해서 재미를 더합니다. 작중 최고 악역인 누수방지공 코닐리우스 히키의 존재는 비교적 평범한 편이나, 다른 인물들의 묘사와 설정이 아주 빼어납니다. 실력은 없지만 운과 허세에 의존하는 존 프랭클린을 비롯, 실력은 뛰어나나 아일랜드인이라는 출신 성분 탓에 뼛 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사는 크로지어 함장, 순수한 군인이자 '인간' 인 어빙 소위, 체력이나 능력은 딱히 없지만 열정과 신념으로 무장한 해리 굿서 등 모든 인물들이 눈에 보이듯 그려져 정말 살아 숨쉬는 듯 합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다가 죽어가는 인물들과 인간임을 포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인간 군상들의 대비도 확실하고요. 사실 극한 상황에서 군율과 군기가 유지된다는게 처음에는 영 와 닿지 않았는데, 묘사를 통해 국가와 인간에 헌신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덕분에 나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탐험대가 전멸할 때 이누이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히키가 어빙을 죽이고 이누이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탓이라는 설명이 더해진 것도 좋았습니다. 탐험대가 이누이트를 복수 명목으로 학살해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탐험대의 생존 경쟁만 그렸으면 좋았을텐데,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영역의 이야기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은 탓입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툰바크, 그리고 툰바크와 관련된 벙어리 여인 실나의 정체입니다. 실존한다기 보다는 결국 이누이트 신화 속의 존재라는 진상은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크로지어 함장이 '천리안'을 갖춘 인물로 그 역시 실나와 결혼하고 이누이트 주술사로 거듭난다는 결말 역시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프레데터'와 총으로 싸우다가 나중에 부적을 붙여 퇴치한다는, 크리쳐 호러물이 갑작스러운 퇴마물로 전환되는 셈인데 영 개운치 못했거든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TV 시리즈에서는 툰바크가 실체가 있는 괴물로 그리고 있던데 그게 더 나은 선택인건 분명합니다.

그래도 워낙에 압도적인 내용이 많고 재미 또한 빠지지 않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결말만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내었더라면 4점도 아깝지 않았겠지만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밀리의 서재' 처음 한 달 무료 프로모션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 아직 '밀리의 서재' 가입을 하지 않으셨다면 무료로 읽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덧붙이자면 TV 시리즈도 무척 땡기지만, 심하게 무서울 것 같아 망설여지는군요. 호러 무비는 취향이 아니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