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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권일용, 고나무 : 별점 3점을 읽는 자들 - 권일용, 고나무 : 별점 3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6점
권일용.고나무 지음/알마

권일용은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입니다. 경찰 학교를 졸업하고 일선 형사로 근무하다가 발탁되었지요. 감식 업무에서 재능을 발휘했던걸 눈여겨 보았던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장 윤외출의 덕이었습니다. 그 뒤 여러 수사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프로파일러로서의 입지를 굳혔고요. 

이 책은 권일용이 프로파일러로서 수사에 참여했던 6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국내 수사 기관에서 프로파일링이 어떻게 시작되어 성장했는지를 설명해주는 논픽션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2001년 조현길이 저질렀던 여아 살인 사건입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피해 여아 사체를 냉동실에 보관해서 사체 등 부분에 생겨난 일정한 간격의 가늘고 긴 눌린 흔적으로 냉장고 모델을 찾아낸 겁니다. 해당 냉장고는 업소용 중대형이었고, 이를 비롯한 여러가지 직접 확인한 단서를 토대로 권일용은 한국 범죄 사건 수사 역사상 처음으로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그의 보고서가 수사에 기여한 바가 있고, 보고서 속 범인상이 진범 조현길과 대체로 일치했던 덕분에 이후 국내 범죄 수사에서도 프로파일링이 활용되게 되었고요. 국내 프로파일링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뒤이어 권일용이 투입되었던 2003년 유영철 사건에서는 연쇄 살인을 알아채지 못하는 실패를 겪게 됩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영철이 경찰 수사 방향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유영철은 범행 수법을 바꾸었고, 그 탓에 권일용은 이전 사건과 이후 사건을 연결짓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정통 수사기법의 한계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수사팀은 대낮에 범행을 저지르고 피가 묻은 상태에서 도망을 갔는데도 목격자가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차량을 이용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차량 수색에 집중했지요. 하지만 권일용은 시대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는걸 깨닫고, 차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들어맞았습니다.
최초 노인 살인 사건 현장 근처에 교회가 있었던게 나름 의미가 있었다는 것도 권일용의 생각대로였습니다. 유영철은 '교회가 옆에 있지만 바로 앞에 사는 이 사람도 무참히 죽는다’라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체 매장 현장에 표식을 한건 완전히 헛다리를 짚기는 했습니다. 권일용은 범인이 자신의 살인 행위를 반추하고 되돌아볼 것이라는 낭만적인 추정을 했는데, 유영철은 그냥 '사체를 묻은 데를 또 파면 귀찮아서' 표시를 한 것 뿐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단순한 실패보다는 나름 성과가 있었던 유영철 사건이 있었던 덕분에 권일용은 더욱 성장했고, 경찰 내에도 프로파일링 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뒤이은 정남규 사건에서는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단순 강도 상해범으로 체포되었던 정남규가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임이 드러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자백을 권일용이 이끌어내게 되거든요.

2009년 강호순 사건에서도 권일용 팀의 분석이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범인은 '호의동승'으로 피해자들을 유인했고, 이를 위해 고급차를 탔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일거라는 분석이었는데 실제로 강호순은 에쿠스를 탔으며, 범행 당시 깔끔한 양복을 입기도 했고, 차 대쉬보드 위에 개와 함께 있는 사진을 장식해 놓는 등 치밀하게 본인을 위장했다고 밝혀졌으니까요. 주변 사람들 평가도 굉장히 좋았다고 하지요

강호순 사건 중간에 맡았던 2007년 제주에서 발생했던 아동 성범죄자 성유철 사건은, 프로파일링의 활용보다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2007년에 벌어졌던 고정민 (가명) 양 실종 사건에서는 사람의 자백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거짓 자백에 이르는 과정과 거짓 자백 후 범행의 줄거리를 지어내는 모습 모두 교과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더라고요. 흔히 이야기하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확 물어버리고 소리를 지르는걸 왜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힘든 '공포심' 때문이라는데 굉장히 와 닿았어요.

또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1960~1970년대에는 살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죄였는데, 왜 그 양상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분석도 상세합니다. 자본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사회가 일부 구성원들을 스트레스로 압착할 때 일부 반사회적인 범죄자들이 복수심으로 무차별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살인자의 반사회성은 후천적 영향일 가능성이 높고요. 서구 사회에서는 반사회성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고 여기지만, 단일 민족인 한국에서 유전적 이유로 누구는 괴물이 된다는 건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인데 그럴듯합니다. 복수심,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었던 유영철, 정남규와는 다르게 진짜 서구적인 쾌락 연쇄 살인을 저지른 강호순과의 차이도 잘 드러나고요. 하지만 저는, 과거에도 잔혹 범죄는 존재했던 만큼 연쇄 살인이 양극화로 더 증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경찰 수사력의 발달로 과거 사건화되지 않았던 사건들도 밝혀지고, 이게 과거보다 발달한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탓에 증가한걸로 보이는게 아닌가 싶거든요. 이런 부분에 있어 깊게 연구된 자료가 있으면 좋겠네요.

그 외 단순히 당시 벌어졌던 범죄와 그 수사, 해결 과정 뿐 아니라 수사에 참여했던 프로파일러들의 생각과 행동도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프로파일러가 무슨 마법사나 천재가 아니라, 수사를 돕는 역할이라는게 잘 드러나지요. 수사 현장에서 쓰이는 전문적인 은어 등 디테일도 좋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 아픈 현실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사형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잠깐 스쳐지나가듯 등장하기는 하지만, 권일용도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입장이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도소에서 교정, 교화가 가능하다고 쳐도, 사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중죄를 저지른 범인을 교정, 교화시켜 사회에 복귀시킬 이유는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읽어 볼 만한 논픽션인건 분명한데, 건조한 르포르타쥬 문체가 아니라 권일용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적인 구성과 문체로 쓰여진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저는 확실히 불호 쪽이에요. 분명 실화인데 뭔가 각색되어서 왜곡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프로파일링의 역사를 담기 위한 취지 탓이었겠지만, 익히 알려진 사건에서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빼곡하게 채워 놓은 부분들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한국 범죄사, 프로파일링 역사에 대해 알고싶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5/09/07

한국의 연쇄살인 - 표창원 : 별점 3점

한국의 연쇄살인 - 6점
표창원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요새 이 책이 많이 포스팅되더군요. 저도 관심가는 분야라 눈여겨 보긴 했는데 형이 구입했길래 냉큼 읽어봤습니다.
실제 범죄 전문 학자이자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교수가 저술한 책으로 책 안에 단순한 범죄 사실에 대한 나열만이 아닌, 경기도 연쇄 살인사건 (속칭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 같은 여러 정보와 분석이 가득해서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거기에 연쇄살인 사건의 대부분이 제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들이라 더욱 흥미로왔던 것 같습니다. 해당 사례별 외국의 연쇄살인범과의 비교를 통한 분석도 재미있었고요. (물론 꼭 들어맞는 케이스는 거의 없었지만요)

한국 연쇄살인의 시초에서부터 접근해서 최근의 유영철 사건까지 10년 주기의 연도별로 챕터를 구분하여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당시의 기사와 자료를 토대로 상세하게 분석, 작성되어 자료적인 가치가 굉장히 높은 책이라 더욱 마음에 듭니다. 관련 도판도 주로 기사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꽤 충실한 편이고요.
거기에 분석을 통해 나름 해결책 같은 것도 제시한 것도 학자로서 좋은 태도로 여겨집니다. 국내 연쇄살인의 케이스는 외국과 달리 성범죄쪽 보다는 못가진자의 한(恨)을 토대로 한 범죄가 많고 어린 시절의 학대에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회적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강합니다. 아울러 분석에 따라 경찰 수사의 문제도 많이 지적하고 있는 것도 좋고요.

한가지 아쉬운점은 외국처럼 범인에 대한 인터뷰를 좀 해줬었으면 한데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국내 현실상 무리였을까요? 이미 형 집행된 인물들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유영철 같은 최근 사건의 범인은 가능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조금 아쉽네요. 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읽고나니 사형제도는 절대 없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죄도 죄 나름이니 만큼...

2015/07/13

공허한 십자가 - 히가시노 게이고 / 이선희 : 별점 3점

공허한 십자가 (보급판)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자음과모음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카하라는 딸이 살해당한 뒤, 아내 사요코와 이혼했다. 그리고 5년 후 그녀마저 살해당했다는걸 알았다. 이전 장인, 장모를 통해 사요코가 남긴 원고를 전해받은 나카하라는 그녀의 죽음이 단순한 강도 살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알라딘 이벤트로 무료 대여해 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수수께끼 풀이가 핵심인 추리물은 아닙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써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신념이 생긴 사요코가 그 신념으로 무리한 추궁을 하다가 본인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으로, 죗값과 사형제도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볼 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게 핵심이거든요. 이러한 메시지를 사요코의 죽음이 그녀의 신념과 관계되어 있다는걸 추리적 서사를 통해 밝혀내는 과정 안에 잘 녹여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과연 베스트셀러 작가다운 솜씨에요. 그 외에도 생명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와 청소년 피임에 대해 확실한 주의를 주는 점도 좋았고요.

그러나 사요코 사건이 단순 강도 사건이 아니고 다른 의도가 있었으리라는 것이 초반에 밝혀진 후 진상이 드러나는 과정은 작위적입니다. 나카하라가 지즈코를 우연히 장례식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 등이 그러합니다. 아무래도 메시지 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디테일을 놓친 느낌이 있습니다.

또한 사요코 죽음의 원인이 된 신념이, 딸아이의 죽음이라는 계기가 있다손 치더라도 너무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중생이 몰래 낳은 아이를 죽였다는 것은 심각한 범죄이지만, 사리분별 못하는 아이들이 벌인 일이라는 점, 공소시효가 훌쩍 지난 점, 중절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다가 사오리는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지옥일 정도로 인생 자체가 망가졌다는 점 등을 놓고 보면, 속죄나 정의를 실현해야 할 만큼의 죄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든 느낌이에요.

그래도 재미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전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무료로 읽어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참고로 죗값과 사형제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작중 나카하라의 입을 통해 "사람을 죽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아마 이 의문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다"라고 설명됩니다. 이것도 정답일 수는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사형 제도에 찬성합니다. 무기징역 같은 처벌로 제 세금을 흉악범들에게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작중에서도 설명되듯, 감옥 안에서 반성하거나 갱생하는 걸 기대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목 그대로 공허한 십자가일 뿐이죠. 아울러 저 역시 딸아이 아빠로서, 작중 사건처럼 어린 딸이 무참히 살해당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부모라면 이런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을까요?

사형 제도의 문제라면 "데이비드 게일" 등에서 지적하듯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13계단" 등에서 말하듯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 역시 또 다른 살인이라는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범인에게, 그것도 모두에게 공분을 산 흉악범에게는 확실하게 사형을 적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예를 들면 강호순, 유영철 같은 사형수들 말입니다. 제발 이런 인간들은 사형이 빨리 집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에서 사요코가 쓴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4/12/15

반가운 살인자 - 서미애 : 별점 2점

반가운 살인자 - 4점
서미애 지음/노블마인

한국의 여성 추리 작가인 서미애의 단편선입니다. 일상계 범죄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들로 총 1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표제작이 영화화되기도 해서 궁금하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이야기들의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정이입이 힘들었던 탓입니다.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심리 묘사가 등장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모두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습니다.

아울러 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도 잘 모르겠어요. 정통파 본격 추리물도 아니고, 기묘한 맛의 반전물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범죄가 테마인 드라마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묘사력이나 깊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도진기 작가의 작품집처럼 최소한 한두 작품이라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추리물이나 스릴러 애호가분들께 상기의 이유로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가운 살인자"

보험금 때문에 사고로 죽어야 하는 가장이 자신을 죽여줄 연쇄살인자를 찾아다닌다는 내용입니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지요.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연구하는 게 당연합니다. 연쇄살인마가 어디서 나올 줄 알고 헤매고 다닙니까? 그거 쫓아다니면 오히려 운동이 되어서 더 오래 살겠네요. 아울러 재미를 위해서라면 연쇄살인자의 정체라던가, 이야기의 흐름에서 반전이 한번 정도 나와줬어야 합니다. 

영화화가 되었다고 해서 잠깐 조사해보았는데, 사뭇 다른 각색으로 제작된 것 같더군요.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연쇄살인마를 찾아다니는 백수가 연쇄살인마로 몰린다는 영화의 설정이 더 나아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남편을 죽이는 방법에 골몰하던 주부가 실제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당황하다가, 완전범죄 이야기로 넘어가는 작품입니다. 정신과 의사와 주인공의 관계가 드러나면 꼬리가 밟힐게 뻔해서 잘 짜여진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입니다. 나름 반전이 있다는 점도 괜찮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냄새 없애는 방법"

냄새에 민감한 여주인공이 이웃집의 개 때문에 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런데 주인공부터 정상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예민해서 감정이입하기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거의 초능력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이럴 거면 슈퍼히어로물을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또 공동주택에 살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는 게 당연한 상식이며, 단지 6개월치 월세를 선불로 주었다고 이사를 고려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피냄새를 지우는 방법을 알게 된 204호 남자가 덕분에 연쇄살인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한데 대단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딱 하나, 남자의 이름이 "유영철"이라고 밝혀지는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살인 협주곡"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으로 앞서 이야기한 천편일률적인 심리묘사가 이어져서 지루합니다. 서로 미워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왜 이혼 같은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지도 설명되지 않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블랙코미디로 풀어나가는 게 나았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 읽었던 "완벽한 부부"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완전범죄를 계획하다가 둘 다 죽는다는 걸작 단편과 굉장히 유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에필로그까지 완벽했던 해당 작품과 비교할 때 완성도도 더 낮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정글에는 악마가 산다"

파파라치로 돈을 벌려는 찌질이에게 닥친 가혹한 현실을 다룹니다.

최근 이슈인 수원에서 발견된 토막 살인 사건과 약간 겹쳐지는 부분이 조금 있어서 신기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공통적인 문제는 여전합니다. 장기 밀매를 하는 범인들이 시체를 서툴게 처리한 이유, 주인공이 사건의 핵심에 접근할 때 무방비로 접근하는 이유 등 설명되지 않는 것도 너무 많고요. 채팅 프로그램이 트리거가 된다는 아이디어 하나만 신선했을 뿐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숟가락 두 개"

평생 중 교도소 생활이 더 길었던 전과자와 벙어리 아가씨가 가족이 된 뒤 벌어진 가혹한 현실을 다룬 일종의 드라마입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이 떠올랐는데, 약간 억지스러운 감동 외에는 별다른 반전이나 극적 요소가 없어서 감히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뻔하기도 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녀만의 테크닉"

친구가 자기의 남자를 빼앗았다고 생각한 여인의 납치극으로 시작되어, 다중인격 백합물로 끝나는 이색작입니다. 아무런 복선 없이 급작스럽게 진상이 드러나는 구성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광기 묘사도 별로 새롭지 않았고요. 차라리 완벽한 서술트릭물로 꼼꼼하게 작업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비밀을 묻다"

불륜 관계였던 친구 남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이야기. 촬영 테이프에 찍힌 자동차 번호판과 친구의 지인은 별로 중요한 단서로 생각되지 않으며,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인 아내의 친구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설명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그나마 조금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경계선"

왕따와 원조교제 소녀의 기이한 교제와 학교 일진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다룬 작품입니다. 핸드폰을 숨겨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지만 그 외의 요소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원조교제 소녀는 당췌 왜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콩가루 집안의 설정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작품과는 별 상관없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가족관계의 회복을 그린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미디어믹스를 노린 티도 너무 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거울 보는 남자"

살인자의 관상이 따로 있다는 뻔한 아이디어를 현대적으로 풀이한 설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개의 비약이 너무 심해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교수의 분노나 주인공의 범죄가 딱히 설득력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요. 좀 더 짧고 임팩트 있게, 서늘하게 써야 했을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9/07/21

귀신나방 - 장용민 : 별점 1점

귀신나방 - 2점
장용민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했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였다.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가 없어서 경찰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바우만으로부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국 작가 장용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부활을 다루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한국 작가가 섣불리 손 댈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또 히틀러의 부활에 대한 창작물은 굉장히 많아서 차별화를 통한 비교 우위를 가져가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히틀러의 머리 (뇌)만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모레", 클론을 만든다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있지요.
이 작품에서는 요제프 멩겔레의 뇌이식을 통해 젊은이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차별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기술을 터득한 멩겔레가 주도하여 히틀러의 부활을 이끈다는 케케묵은 설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나마 뇌이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부활까지는 히틀러의 뒤를 쫓는 비밀 조직 아디 헌터와의 악연 등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부활 이후부터입니다. 아담 휘슬러로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가 미국 정복(?)을 위해 일으킨 사건들과 여러 계획이 펼쳐지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탓입니다.
첫 번째로 아담은 시골 마을에서 6명이 죽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심리 조작을 통해서요. 그런데 이 참극을 통해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다 틀어지게 만든 것도 아니고, 악감정이 있던 두 집안 사이에 불똥을 튀긴 정도니까요. 경제학 서적을 독파해가며 자본주의를 통달한 세기의 악마가 하는 일 치고는, 그리고 사악함을 드러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그 뒤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를 손에 넣겠다는 두 번째 계획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무려 800톤이 넘는 금괴의 댓가로 하는게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밀턴의 비서가 되는 것 뿐입니다! 2019년 7월 현 시세로 금 1kg은 6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48조의 현금성 자산으로 2019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20위권이에요. 현금성이라 투자 시 자본 증식과 대출 가능 규모를 감안하면 몇 배가 될 수 있고요. 한마디로 스스로의 돈과 능력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고작 비서가 되는게 다라니 이게 말이나 될까요? 비서가 되려는 목적도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밀턴에게 뇌수술을 알선하는 댓가로 밀턴의 주식을 넘겨받으는건데, 이를 위해서는 구태여 비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로건 간에 자신이 히틀러라는걸 증명만 하면 죽기 직전인 밀턴이 알아서 접근해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연방 준비 위원회 주식을 소유한다고 그가 미국을 지배하는게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연방 준비 위원회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이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회장이 되려는 계획이 더 설득력이 높아요. 2019년 현 시점에서 연준 위원장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보다 세계 파워 랭킹 순위가 낮으니까요. 아니면 직접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던가....

세 번째 계획인(두번째 계획에서 이어지는) 케네디 암살에 히틀러가 있었다는건 황당하고 어이없는 픽션의 정점입니다. 일단 케네디 암살의 이유는 그가 은본위의 새로운 화폐계혁을 단행하여 연준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케네디에게 알려준건? 히틀러입니다! 연준의 권력을 먹으려는게 계획인데, 연준에 괜한 위험을 가하고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낸다? 이 쯤 되면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하는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은 리스크도 너무 크고요.

거기에 더해 무리수 설정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옛 연인 에바 브라운, 그리고 그녀의 전생인 죠안나 이야기는 없으니만 못합니다. 사악한 카리스마만 희석될 뿐입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하기사, 죠안나 설정은 그나마 낫지 연쇄살인범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수부대 출신 킬러들을 불러모아도 시원치않을판에 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UFC 파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방법은 한니발 렉터를 표절한 천재 교수의 설명되지도 않는 수학 공식이고, 그들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방법은 히틀러가 혈혈단신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게 전부니 더 말을 해 무얼하겠습니까.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 바우만의 집요한 추적도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고작해아 달라스 경찰서 형사인 그가 온갖 배후 정보에 손을 대 가면서 히틀러를 추적하는 과정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히틀러라고 확신하고 쏴죽인 애덤이 사실 히틀러가 아니라 뇌수술을 받은 밀턴이라는걸 정작 조사를 시작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크리스틴이 밝혀낸다는 이야기도 당황스러워요. 바우만의 반평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작위적인 전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케네디 암살 현장에서 모사드 요원이 바우만을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정도 지켜봤으면 누가 흑막인지 당연히 알아채고 아담을 죽이거나 납치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총 한자루 전해주고 손을 터는건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히틀러는 살아있다는 극적인 진상이 귀신나방 이야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자신이 살아있는걸 아는 사람을 다 죽여놓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여기자 크리스틴 앞에서 살아있다는 암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도 직접 칵테일을 대접하는 등 있는대로 폼을 잡으면서?

이렇게 어디서 본듯한 설득력없는 설정, 전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계획들, 작위적인 수사, 개연성없는 전개라는 환장의 4종 셋트가 모인 망작으로 종이가 아까운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가 희대의 망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발표한지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발전한 부분은 전무하네요.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