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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하늘의 공포 - 아서 코난 도일 외 : 별점 2.5점

표제작을 포함한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직지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하나로 구글북스를 통해 무료로 읽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데, 번역 및 책의 구성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각 단편 서두에 실려 있는 짤막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도 학습 문고 스타일이고요. 예전에는 이런 책들도 이렇게 포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하긴 하네요.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괜찮지만 이렇게 대상 연령대에 맞추어 가공된 탓에 저 같은 일반인 독자가 읽기에는 여러모로 조금 애매했습니다.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 무료이니 한번 읽어보시고 괜찮다 싶으시면 정식 번역본(비록 많지는 않지만)을 구해 읽어보는게 좋을겁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사나이" H.G 웰즈

지구가 갑자기 멈추면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는 고전적인 과학 지식이 등장하는 유명한 꽁트. 포저린게이가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반전의 묘미가 살짝 있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작품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하늘의 공포" 아서 코난 도일

비행기로 고공 기록에 도전할 경우 비행사들이 이상하게 죽는 - 비행기 잔해는 발견되었지만 비행사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든지, 겨우겨우 비행장에 돌아와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다든지, 시체의 머리만 없어진 채 발견된다든지 - 사건에 도전한 영국의 명조종사 조이스 암스트롱의 수기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코난 도일 경도 초창기에는 수기 형식을 굉장히 애용한 듯 싶네요.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처럼요. 이 수기가 몇 페이지가 찢겨져 있다며 궁금증을 자아내는 도입부는 아주 괜찮았어요.

그러나 암스트롱이 "고공밀림"이라 부르는 곳에 도달하여 그곳에 사는 괴물들과 조우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루며 끝나버려 실망스러웠습니다. 딱히 대단한 수수께끼가 있지는 않은 그냥저냥한 크리처물에 불과한 탓입니다. 수기의 마지막 글 "아아 이제 끝장이다"는 여운이 남기기는 하지만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작은 거인" 폴 F 에른스트

1만 미터가 넘는 깊이의 구리 광산 갱도에서 신발을 신은 인간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다. 그리고 난장이들의 유령이 보인다는 설이 퍼지는데...

지하에 거주하는 난장이 인간에 대한 상상력을 펼친 SF입니다. 지하는 기압이 높고 열도 높은 탓에 지하 인간의 몸은 분자구조 자체가 단단하게 되어 콘크리트 같은 물질도 물처럼 유영할 수 있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습니다. 발자국 화석도 밀도가 높아서 무게로 그냥 땅이 푹푹 파였다는, 설정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였지요(물론 현실성은 없습니다만).

또 지하 인간들이 지성인으로 나름의 과학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굉장히 호전적이라서 주인공의 친구를 죽이고 표본으로 삼기 위해 시체를 가져가려 한다는 일종의 크리처물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주인공이 지하 인간의 지구 정복이 머지않았다고 절망하는 결말도 나름 괜찮았고요. 

다만 주인공의 걱정을 뒷받침해주는 복선이 약간이라도 등장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벽속의 아프리카" 레이 브래드베리

아이들 방이 가상현실을 투영한 공간으로 바뀌는 고도로 자동화된 세계에서 벌어진 기이한 참극입니다. 섬뜩한 SF의 거장인 레이 브래드베리 (브래드버리)의 솜씨가 잘 발휘된 단편으로,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 수록된 "대초원에 놀러 오세요"와 동일한 작품이지요.

"왜 가상현실의 사자가 현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자동화된 기계에 모든 것을 맡겨 극도로 이기적이면서 양심과 도덕에 대해서 둔감해진 아이들에 대한 묘사는 지금 읽어도 섬찟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주 스파이" 필립 K 딕

우주인과 전쟁 중인 지구에 우주인이 지구인과 똑같이 생긴 폭탄을 몰래 잠입시키는데...

"사기꾼 로봇 (Imposter)"라는 제목으로도 유명한 작품이지요. 폭탄 로봇이 살해당한 원래 인간과 똑같은 인격을 지니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바디 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설정도 기발하지만 주인공 올햄이 자신은 로봇이 아니라고 믿으며 진상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긴박하게 묘사되며 마지막 결말까지 인상적인 걸작입니다. 아동용 축약 버전이 아니라 정식 버전으로 다시 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우주에서 온 거머리" 로버트 셰클리
"불사판매 주식회사"의 저자인 셰클리의 단편으로, 물리적인 모든 것을 흡수하는 바위(거머리)가 등장하여 점점 커져가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거머리보다는 거머리를 배탈나게 하기 위해 굉장히 강력한 물리적 힘(수소폭탄)을 동원하는 멍청이 오도넬 장군의 폭주로 오히려 사건이 커지는 중반부가 인상적입니다. 원폭에 대한 시대적 공포를 반영한 풍자로 보이는데, 오도넬 장군이 억지로 거머리를 폭파시킨 뒤 더더욱 큰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는 결말까지도 완벽한 풍자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예전 "로보트 킹"에서 유탄이 에너지를 흡수하는 적에게 오도넬 장군 마인드로 킹의 모든 에너지를 때려넣어 과부하로 폭파시키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하긴 유탄은 무식한 놈이었지...

2020/02/07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3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그럭저럭 좋아합니다. 작품들의 편차가 큰 탓에 선뜻 읽게 되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이 단편집은 스스로가 선정한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오랜 만화가 경력 기간 중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뽑았다면 전부 기본 이상은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목차는 크게 3장, "제 1장 신이 된 인간, 혹은 귀신이 된 인간" 과 "제 2장 기괴한 사건이 일어나다", "제 3장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다"로 나뉘며, 목차별로 각각 1장에 세 편, 2장에 두 편, 3장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 대표 시리즈들이 적절히 선정되어 있으며, 작가의 평상시 작풍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작품까지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대에 값합니다.

국내에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이는 '자선 단편집' 특성 상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정도면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팬에게는 충분히 어필할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도원기"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출세작인 중국 호러 판타지 중 한 편입니다. 도연명이 원량, 잠과 함께 복숭아 나무에 숨겨진 마을에서 불로장생을 꿈꾸지만,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정신을 차린다는 이야기로 속세의 모든 것을 내려두고 불로 장생을 꿈꾸는, 즉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신이 되고 싶었지만 신이 되지 못한' 인간들의 종말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연명은 그들과 함께 하려다 헛된 꿈을 꾸고 말고요.

내용 자체는 굉장히 평이합니다. 불로장생 마을은 요상한 요물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요물이 사라지자 모두 백골로 화했다는 전개는 뻔하디 뻔하니까요. 그러나 마을의 비밀을 더듬어 나가는 과정은 꽤 긴박감이 넘치며, 도연명의 본명이 도잠, 자는 연명 또는 원량으로 일행이었던 원량과 잠도 그 자신이었다는 반전은 독특합니다. 

1980년 발표 작품인데, 작가 자신의 스타일이 충실히 구현된 좋은 작품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진수의 숲"

오랫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산책 중 신사 근처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를 하다가 기묘한 시대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누군가에게 잡혀 왼쪽 눈이 뽑혀 나간 뒤 신사에 감금되었는데, 이는 1년에 한 번, 인신 공양에 이용되는 '두옥'이라는 신령의 권속인 산 제물로 선정된 까닭이었다. '나'는 신사를 탈출하여 숲에 숨어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버티다가, 스스로 '귀신'이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현대'로 이동하는데...

'귀신이 된 인간'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일본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인신공양의 대상으로 신령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귀신, 도깨비가 된다는 이야기를 현실감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요괴 헌터" 느낌이랄까요? '한쪽 눈이 빠진' 상태와 도깨비를 연결시킨 아이디어도 좋아요.

그러나 아쉬운건 결말이 다소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된 뒤 다시 타임 슬립하여 현대로 돌아온다는건 안이한 발상이 아닌가 싶거든요. 딱히 반전도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복수 클럽"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통해 맞이하는 갖가지 불행들이 사실은 '복수 클럽' 때문이라는 내용의 작품. 불특정 다수가 회원이라서 상관없는 사람의 복수를 대행시킨다는 설정은 꽤 그럴듯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귀신이나 이세계 이야기, 설화나 SF적인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순수하게 현대 사회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회 풍자극이자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이런 작품은 정말이지 처음 보네요.

그러나 반대로, 왜 이런 작품을 많이 그리지 않았는지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작화라던가 전개 방식이 영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후지코 후지오의 "웃는 세일즈맨" 같은 형식에 더 적합한 아이디어라 생각이 되더라고요. 더 웃기거나, 더 극적인 반전이 있는 쪽으로 가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3.5점.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약간 아쉽습니다.

"모가지괴"

"이계록"에 수록되었던 중국 설화 이야기로 안정적인 작화와 전개 모두 괜찮은 수작입니다. 별다른 반전이야 없지만 원전이 되는 이야기가 그러한 탓이겠죠.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왜 "이계록"에서 이 작품을 선정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살아있는 목 사건"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작이죠. 기괴하면서도 일상에 맞닿아 있고, 또 은근히 웃기기까지 한 좋은 작품입니다.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대충 손가는대로 그린 듯한 작화도 이야기의 멋을 잘 살려줍니다. 누가 뭐래도 작가의 최고 대표작 중 한 편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연못의 아이"

남아메리카 오지의 차크타 호수에서 동물처럼 지내는 두 남녀가 발견된 후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인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아이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애매하며, 여자 쪽은 헐리우드의 총아가 되지만 남자는 목동으로 살다가 자살한다는 결말도 뜬금없는 탓입니다. 딱히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며 흥미롭지도 않은 졸작이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이의 놀이"

어린이들이 몰래 키우던 무언가가 그 아이를 대체한다는 내용인데 단순한 일상계 호러는 아닙니다. 사춘기나 '철 든다'는 특정 시기의 변화를 이러한 존재의 대체로 설명하려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주인공이 이런 변화를 너무 쉽게 수긍하는건 좀 석연치 않았습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걸 더 극적으로 그려내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또다른 "바디 스내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역립 원인"

직립 원인의 미싱 링크로 역립 원인이 있었을 거라는 황당한 아이디어의 꽁트. 별점을 주기 애매한 쉬어가는 소품입니다.

"꿈꾸는 기계"

사람들은 모두 꿈만 꾸고, 일상 생활은 기계로 대체된 사회를 그린 SF인데, 1974년 발표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와 너무나 똑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서 블랙 코미디 요소를 빼고, 액션만 넣는다면 "매트릭스"인 것이지요. 한마디로 시대를 20년이상 앞서간 작품이에요.

그러나 작화가 이야기와 영 어울리지 않다는 문제와 함께, 전개가 약간 아쉽습니다. 도시가 정지해버리는 결말도 너무 안이하고요. 한 발자욱을 더 못 나간 느낌이랄까요? 오토모 가즈히로가 그려내었더라면 영원히 이름이 남을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거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18/03/31

고양이 발 살인사건 - 코니 윌리스 / 신해경 : 별점 3점

고양이 발 살인사건 - 6점
코니 윌리스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SF 쪽에서는 명성이 높은 코니 윌리스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쓴 작품들을 모아놓은 중단편집입니다.
코니 윌리스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데 아주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도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수록작 대부분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갖춘 데다가, 밝고 따뜻하면서 유머러스해서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통 SF라기 보다는 약간의 SF 설정이 가미된 작품들로 일상 - 홈 드라마이자 사회 비판물인 "말하라, 유령", 본격 추리물 "고양이 발 살인사건"과 로맨틱 코미디 첩보물 "절찬 상영중",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SF "소식지", 로드무비 "동방박사들의 여정", 일상 드라마인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로 장르를 구분할 수 있는데 대부분 기본 이상은 해 줍니다. 친숙한 작품들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익숙한 클리셰, 설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장르문학, 컨텐츠 애호가로서 반가왔던 점이에요. 그만큼 볼거리가 아주 풍성합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하지만 아래 상세 리뷰에서 처럼 별점 5점짜리! 작품도 수록되어 있는 만큼, 장르문학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저도 크리스마스 관련된 이야기를 몇 번 써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수준 차이가 엄청나네요. 반성하게 됩니다.

"말하라, 유령" 

이혼남으로 책이 유일한 취미인 서점 직원 그레이의 유일한 낙은 크리스마스에 딸 젬마와 보낼 시간이었다. 그러나 서점의 사인회와 전처 때문에 딸을 만나지 못하게 된 그레이는 서점 직원으로 임시 채용된 크리스마스의 유령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는데...

딸 아이를 위해 열심히 해 보려고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꾸만 엇나가는 그레이와 사람을 개과천선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유령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약간의 판타지 설정으로 흥미를 자아내며 묘사도 일품입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때 바쁜 백화점 서점에 대한 무시무시한 묘사가 압권이에요. 이래서야 정말 빠져나가기 힘들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으니까요.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해 딸 젬마가 좋아하는 소공녀, 그 외에도 디킨스와 월터 스콧의 작품이 많이 인용되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완벽한 크리스마스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건 의외였습니다. 마지막에 유령들이 뭔가의 슈퍼 파워로 딸 젬마를 그레이에게 데려다 줄 줄 알았는데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끝나버리거든요. 돈이 최고고(작 중 표현대로라면 유일한 것), 유령들은 힘도 없고, 크리스마스에 기적 따위는 없다는 결말은 서늘하고 냉소적인 사회 비판 소설에 가깝습니다. 이게 현실적이긴 합니다만 씁쓸하네요. 디즈니 작품과 비슷한 가족 판타지로 위장된 탓에 이런 갭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군요. 저는 다소 불호입니다. 딸아이 아빠로서 젬마는 최소한 행복해졌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양이 발 살인사건" 

세계 최고의 탐정 투페는 크리스마스에 친구 브리들링스 대령과 함께 마웨이트 장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사건을 의뢰한 샬롯 발라디 부인이 영장류를 연구하는 인공지능 연구소로 사람의 말이 가능한 고릴라 달타냥, 추리소설도 좋아하는 똑똑한 침팬치 하이디가 하인으로 일하는 등 연구 실적이 빼어난 곳이었다. 그러나 함께 사는 그녀의 동생 제임스는 영장류를 증오하여 자신이 유산 상속을 받으면 모두 쫓아낸다고 공언한 상태. 다행히 그들의 아버지인 억만장자 알리스테어 경은 치매로 난폭한 바보가 되었지만, 앞으로 수년은 더 살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다.
투페 컴비는 다른 손님들, 기자인 루트거스와 폭스양, 지역 경찰 유스티스 경사, 알리스테어 경의 간호사 파치트리 양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고, 이 와중에 의뢰하는 수수께끼가 단지 영장류의 존재에 대한 질문임을 알게 된 투페는 당장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알리스테어 경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모든 정황이 고릴라 달타냥의 범행임을 암시했는데....

포와로와 헤이스팅스 컴비를 빼닮은 탐정 컴비가 등장하고, 전형적인 영국 장원을 무대로 하는 클로즈드 써클 미스테리입니다.

일단, 고전 본격물에 대한 높은 이해가 돋보여요. 탐정 컴비의 묘사는 물론 장원에 머무는 사람들 모두가 모두가 동기가 있고 수상쩍은 등 여사님 작품에서 보았었던 그런 느낌으로 묘사되거든요. 패러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전 캐릭터를 쏙 빼 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전형적입니다. 사건과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 역시 고전 본격물 그대로에요. 무엇보다도 추리에 있어서 영장류의 지능이 높다는 설정으로 독특함과 재미를 안겨다 주는 부분이 탁월했습니다. 이 설정이 단지 재미 요소가 아니라 진짜 반전의 핵심 요소인 덕분입니다. 영장류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들이 알리스테어 경을 살해하고 제임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약간의 SF가 가미된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정통 본격물로 추리와 재미 모두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고전 본격물 팬이시라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실 거에요. 별점은 5점!입니다.

"절찬 상영중"

"크리스마스 소동" 이라는 고전 영화를 보기 위해 애쓰는 사라와 그녀가 그 영화룰 왜 못 보는지를 설명해주는 전 애인 잭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사라가 방문한 영화관 시네드롬은 온갖 영화 관련 오락거리가 가득차 있는 일종의 테마 파크인데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손님들이 밀어닥친 탓에 난리도 아닌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러한 복잡한 상황 묘사가 대단합니다. 

그리고 사라가 영화를 보지 못한 이유도 아주 그럴듯해요. 영화를 만든다고 사기를 친 뒤 시네드롬에 돈을 좀 쥐어줘서 아무도 못보는 환상의 상영관을 확보한 후 제작비를 쓴 것처럼 꾸미는 제작사의 음모이고, 이는 백 개도 넘는 상영관을 모두 채우는 건 무리였던 시네드롬에게도 필요했던 사기라는 진상인데 생각도 못했네요.

이러한 내용을 소비자 사기국에서 근무하는 잭의 화려한, 영화를 방불케하는 첩보 작전처럼 풀어나가는 것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사라에게 사 준 티셔츠가 카메라 부착형이라는 아이디어 등 디테일도 볼거리이며, "백만 달러의 사랑", "아이 러브 트러블", "위기의 암호명" 등 비슷한 영화들의 장면 장면과 엮이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거든요. 실제로 로맨틱 코미디 첩보극이라는 장르 공식에 굉장히 충실하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지요. 그 외 다수 영화들의 인용, 묘사도 흥미로운데, "디워"가 원작에도 언급되는건지는 좀 궁금합니다.

그런데 망한 영화도 매니아가 따라붙고, 온갖 매체에서 흥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설정같지는 않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잭이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소설보다는 영상물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소식지" 

크리스마스를 앞 둔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착해졌다. 이를 처음 눈치챈 건 주인공 "나"의 직장 동료이자 그녀가 흠모하는 이혼남 게리였다. 둘은 곧 착해진 사람들이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다른 악영향없이 착해지기만 한 탓에 이를 밝히고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착해진 사람들의 몸 관절이 이상해지는 부작용을 알아낸 주인공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생수를 박멸하고자 직장과 집의 온도를 올렸다(모자를 벗게). 다행히 기온이 올라 이 소동은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로 변주된 "신체 강탈자의 습격 (바디 스내쳐)" 입니다. 기생수의 부작용이 착해지는 거라니 정말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네요. 이변을 눈치채지만 착해지는 게 과연 무슨 문제인지?를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딜레마도 웃음을 자아내고요.

하지만 디테일이 좀 지나쳤습니다. 보다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텐데, 과유불급이랄까요? 제목이기도 한 가족들 간의 '소식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들의 이변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품이기는 하지만 구태여 등장시킬 필요는 없었어요. 지역별 편차가 있고 이유는 기온이다!를 드러내려면 TV나 신문 등의 뉴스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등장인물들도 너무 많은데, 이 역시 주인공과 게리가 잘 되게 만드는 식으로 깔끔하고 단순하게 마무리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별점은 3.5점입니다. 크리스마스에 걸맞는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여정" 

눈보라가 휘몰아쳐 도로가 통제되는 와중에서 자기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계시에 따라 예수를 찾아나선 목사 멜과 친구 BT,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여성 캐시 3인의 여정이 그려진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동방박사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온 일종의 로드 무비(?)입니다. 백인 목사, 흑인 과학자, 전직 영어 교사인 여성 3인이라는 파티 구성도 나름 완벽해서 눈길을 끌고요.

그러나 여정에 대해 상세하게 그린다기 보다는, 실제로 동방박사가 겪었음직한 고뇌(이게 계시가 맞는지? 내가 미친건 아닌지? 와 같은)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적 재미는 별로 없어요. 독백과 종교적 고뇌로 가득찬 작품이 애초에 재미있을 리가 없지요.
게다가 중간, 중간 계시와 유사한 카니발 조명과 예수일지도 모르는 카니발 운전사 등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그 정체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차라리 알 수 없는 계시의 파편을 모아 그것을 토대로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는, 일종의 추리 과정이라도 동반되었더라면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이야기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아쉬웠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결말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세 명이 카니발을 찾아가 예수(?)를 만나는지, 그들을 방해하는 헤롯왕의 수하들은 누구인지 등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마무리 되는 탓입니다. 이래서야 모험이 시작되자마자 이야기가 끝나는, "반지의 제왕" 1부와 같은 수준의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이야기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완성된 이야기냐는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네요. 수록작 중 개인적으로는 최악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 

책 뒤에 작가가 꼽은 크리스마스를 다룬 최고의 영화, 책, TV 시리즈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 중 최고는 "러브 액츄얼리"를 꼽고 있더군요. 이 작품은 작가가 나름대로 변주한 "러브 액츄얼리" 입니다. 족 모임을 위해 오리를 구우려는 루크, 이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미구엘의 양육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파일러, 남편과 사별하고 멕시코로 여행온 베브, 아내 마진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는 워런, 크리스마스 이브 결혼식을 주장하는 친구 스테이시의 들러리로 여행 온 폴라,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대폭설을 연구하는 네이선 박사와 조수 진성 등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다양한 등장인물이 한 꼭지 씩 이야기를 선보이다가 마지막에 연결되는 결말인데 전개 방식이 똑같거든요. 대부분 해피엔딩이며 감동적인 이야기와 적절한 코미디가 섞여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차이점이라면 이야기들 속 대 소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 폭설" 이라는 SF적인 설정이라는 것 뿐입니다.

모두 재미있고 따뜻하며,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는 가정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도저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어요! 거짓말을 하다가 파멸한 불륜남 워런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아주 속 시원해서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도 대폭설의 원인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이 모여서 일어난 것이라는 어처구니없으면서도 크리스마스다운 발상이 아주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던, 반짝반짝한 작은 소품들이 모인 선물 상자같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도 영화로 꼭 만나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