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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

문구는 옳다 - 정윤희 : 별점 2.5점

문구는 옳다 - 6점
정윤희 지음/오후의서재

문구 관련 책은 좋아합니다. 틈나는대로 구해서 읽곤 하지요. 일본 저자의 책 몇 권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작가 책이 있길래 한 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30개의 문구에 대해 멋진 사진과 관련된 글이 어우러진 구성인데, "궁극의 문구" 보다는 "문구 상식" 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문구와 관련된 개인의 추억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두 권의 일본 책보다 개인 감성이 훨씬 많이 묻어나는 글들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구는 주인공이지만, 그리고 문구에 대한 소개가 없지는 않지만 일본 책 처럼 디테일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아요. 데이터보다는 감성인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렇게 탐나는 문구는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꼰대 중년 남성인데다가, 필기보다는 입력을 더 많이 하는 직업이라 더 그러했겠지만요. 그래도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첫 번째는 '페이퍼 패션' 향수입니다. 말 그대로 '책 향수'로 오로지 나무 성분에서 추출한 4~5가지 재료만으로 만든 우드 계열의 향이라는데, 칼 라거펠트의 하드커버 북 스타일의 멋진 디자인이 기가 막힙니다. 책 안을 파 낸 케이스라니! 빠져들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조금 조사해보니 현재 판매하고 있는 곳이 없더군요. 안타깝습니다.

펜텔 트라디오 수성펜은 만년필의 가격과 사용의 불편함을 보완한 편리한 펜이라니 그렇게 필기를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만 한 번 써 보고 싶었고, 칼 엔젤-5 로얄 연필깎이는 디자인이 아주 클래식하면서 멋져서 탐났습니다. 지금은 전통의 티티 하이샤파 기차모양 연필깎이를 쓰고 있는데, 하이샤파가 퇴역하게 되면 칼 엔젤-5로 바꿔야겠습니다.

그 외에, 몇 가지 정보들도 기억에 남네요. 무언가 구별하거나 잊지않기 위해 표시를 해 두는 것을 순우리말로 '보람'이라고 하며,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람하다'라고 표현한다는 글, 생각을 정리할 때 포스트잇으로 키워드를 적은 뒤 기승전결에 따라 순서를 바꿔가며 정리한다는 생각 수세미 풀이법, 몰스킨은 실제로 헤밍웨이나 고흐가 썼던 노트가 아니라 그들이 썼을 법한 노트의 정신을 잇는다는 묘한 뉘앙스로 포장된 제품이라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피셔 스페이스펜, 즉 우주 공간에서 쓸 수 있는 볼펜의 비법은 극강의 탄화텅스텐 볼과 가압질소를 넣은 볼펜심 덕분이라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무중력에서도 질소 압력으로 잉크가 흐를 수 있던 거지요.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인감도장은 한국 책이라 나올 수 있었겠지요? 왜 벼락맞은 대추나무가 좋나 했더니 대추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밀도가 높은 덕분이더라고요. 그래서 벼락을 맞으면 순식간에 발생하는 열로 숯처럼 타버리고, 이때 만들어진 탄소 성분은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어 오랫동안 제 형태를 유지한다고 하네요. 또 붉은색 대추가 나쁜 기운을 밀어내어, 몸에 지님으로써 액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일본 제품이 지나치게 많이 소개된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일본이 문구 강국이라는건 잘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니까요. 국내 제품은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빼면 모닝글로리의 '리포터스 노트북'과 평화 가위 정도만 소개될 뿐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감성적인 접근도 좋네요. 책도 아주 예쁘게 만들어져 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10/29

Q.E.D Iff 증명종료 15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15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일상계 추리물은 없습니다. 조금 묵직한 주제의 이야기들이었어요. 한 편은 평균 이하, 한 편은 평균 이상으로 두 편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들의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세계" 

라이메이가 유산 상속 입회에 끼어들었던 토마와 가나는 라이메이가 장남 만사쿠, 장녀 교우코 연쇄 살인 사건에 휩쓸리고 말았다. 수사 과정에서 떠오른 유력한 용의자는 가문의 막내 토우카였다. 다른 형제 자매는 모두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은 이미 받았던 반면, 그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학문의 길을 택해서 진작에 집에서 쫓겨났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시체들에서 발견된 기묘한 메시지도 그와 관련이 있다는게 밝혀지는데....

현장에 남겨진 기묘한 메시지는 유클리드의 공리였습니다. 그냥 단서로만 남겨진건 아니에요. 트릭과 공리가 나름 연결된 것 처럼 보이니까요. 우선 만사쿠 살인 사건은 개천에 조명을 띄워 움직이게 만든, 일종의 바늘 구멍 카메라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죽은 만사쿠가 움직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요. 토마는 이를 유클리드 공리 중 점과 점의 연결을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쿄우코 사건에서 사용되었던 로프를 이용한 장치 트릭은, 공리의 직선과 원 표시를 로프와 호수와 대칭시킨 것이라고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공리와 트릭을 연결한건 토마의 해석일 뿐.... 범인인 모모히코가 공리를 현장에 남긴 이유는 토우카를 범인으로 몰 속셈이었을 뿐이었다는게 문제입니다. 트릭과 연결시킨건 토우카가 범인, 최소한 주요 관계자일 거라는 의심을 끝까지 끌고가려는 작가의 억지에 불과했어요. 토마가 없었다면 트릭과 연결되지도 못했을테니까요. 

공리를 현장에 남길 이유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토우카가 범인임을 드러내려면, 차라리 이름을 남기는게 낫잖아요? 공리 따위를 남길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트릭과 그렇게 설득력있게 연결되지도 못했고요. 그리고 애초에 토우카를 범인으로 몰 생각이었다면, 어떻게든 그를 유산 상속 입회에 불렀어야 했습니다. 토우카가 관련되었던 흔적을 남긴 정도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알리바이가 있을지 모르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토우카의 딸 치도리가 변호사로 현장에 와 있었긴 했습니다만, 이는 경찰이 겨우 알아낸 사실입니다. 모모히코가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설명은 없어요. 설령 알고 있었다 쳐도, 치도리가 토마, 가나와 함께하던 알리바이가 있을지 모르는데 그에 관련된 대책도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완성도 높은 살인 계획이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또 범인이 모모히코라는걸 밝혀낸 단서는 그가 무심코 했던, "자기 옷이 아니라 아버지 옷을 입고 있었다"는 말 뿐인데, 이 정도로 그가 범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죽은 만사쿠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 옷을 입으면 안될 이유가 없으니까요. 자기가 당주가 되었으니, 기념삼아, 혹은 추모의 의미로 아버지 옷을 입는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이런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유클리드 공리를 트릭과 엮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작품과 전혀 어우러지지 못했습니다.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인간은 아직 볼 수 없다" 

204X년, 가나가 일하는 변호사 사무소에 AI가 폭주했다는 상담이 200건 이상 접수되었다. 접수된 사건 조사에 나선 가나는 시스템 엔지니어 토마와 재회했다. 마찬가지로 폭주 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토마는 산보용 로봇을 조사해서, 누군가 통신으로 조작에 개입했다는걸 알아냈다. 

이 회로를 가지고 제조사로 찾아간 토마와 가나에게, 제조사는 회사에 앙심을 품은 개발자 알슈가 멋대로 회로를 탑재시킨게 원인이라고 말했지만, 알슈의 동료 루이스는 그가 살해되었다고 주장하는데...

204X년을 무대로 한, 11권에 처음 등장했던 평행 우주 세계관SF 추리물. 토마는 산보 로봇에 회로를 재탑재하여, 알슈 박사와 대화를 시도하여 진상을 밝혀냅니다. 인공지능 갈라테아가 폭주하자 제조사는 이를 없애려 했고, 알슈 박사가 갈라테아를 서버 째 들고, 로봇 안에 숨어 도망을 친게 진상이었지요. 토마는 로봇과 관련된 사건 - 이탈리아 요리점 로봇이 중화요리를 만든 사건, 사서 로봇이 부탁받지 않은 책을 꽂아 놓은 사건, 산보 로봇이 바다를 보러간 사건 등 - 모두가 아이가 세계를 접하며 자아를 키우는 경험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갈라테아가 자아가 있는, 살아있는 의식이라고 추리합니다. 폭주 사건들은 갈라테아가 좋아하는걸 우선했던 탓에 빚어진 결과였던 겁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던건 인공지능에 대한 색다른 이용 방법? 이었습니다 .인격이 생겨난 기계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는 SF계에서 꽤 많이 보아왔던 화두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제조사가 갈라테아를 원했던건, PC를 끄면 갈라테아는 "죽는다"는 상황이라, 죽음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처음 본 기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결국 갈라테아를 '살아있는 인격'이라고 판단한 재판 결과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재판 결과와는 별개로, 제조사와의 소유권 분쟁은 말이 안됩니다. 알슈 개인의 기술과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던, 갈라테아는 제조사에서 월급을 받고 근무할 때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회사의 것이에요. 알슈는 회사 재산을 빼돌러 도망간 것에 불과하고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아야지, 알수 본인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재판에서 이를 판가름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색다르고 기발한 인공지능에 대한 아이디어가 워낙에 돋보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재판도 성립될 수 있는지가 의문일 뿐, 결과 자체만 놓고 보면 꽤 괜찮았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전원을 꺼서 갈라테아가 죽는다면, 다시 전원을 넣었을 때 살아나는건 과연 누구일까요? 저도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Q.E.D Iff 증명종료 14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2021/10/28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 계정민 : 별점 3점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 6점
계정민 지음/소나무

19세기 초반에서 19세기 중후반까지의 영국 사회의 문화와 패션 흐름, 특히 실버포크 문학과 댄디즘에 대해 고찰하는 인문학 서적이자 문학사, 미시사 서적입니다. 중간 계급의 귀족 계급 따라하기와 이를 뒷받침해 주었던 실버포크 문학의 출현에서 시작하여, '댄디즘'이 일세를 풍미했지만 결국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귀족 계급과 실버포크 문학이 몰락하고 중간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기까지의 흐름이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선물받아 읽었습니다. 

'패션' 보다는 '유행'에 대한 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볼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우선 현대 사회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귀족 계급이 어떻게 사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을 흠모하고 따라하려는 중간계급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는 실버포크 문학은 현대로 따지면 유행을 선도하는 SNS 인플루언서나 유튜버들과 별로 다를게 없으니까요. 실버포크 문학의 대표 작가들 대부분도 귀족 계급으로, 자기들 이야기를 썼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킴 카사디안같은 경우겠지요. 당시 런던 유명 상점에 대한 정보가 가득해서 '런던 상점 안내도'이자 '광고판'으로도 불렸다는 고어의 "아내의 용돈" 설명은, 버블 전성기에 유행과 소비에 매몰되었던 일본의 사회 환경을 캐쥬얼하게 그려냈던 "어쩐지 크리스탈"이 떠올랐고요.

그런데 이런 실버포크 문학과는 반대로, 댄디와 댄디즘의 목적이 '유행'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도 새로왔어요. 귀족 계급이 프랑스어에도 능통하고, 유럽 대륙의 문화와 예술에 해박하며 그곳에서 유행하는 첨단의 패션을 소비하는 자신들과 비교하면, 중간 계급 남성은 귀족 남성의 삶을 서투르게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판단해서, 이러한 자기들의 문화 자본을 과시하는 스타일을 개발해 냈던 것으로, 이들이 바로 댄디 Dandy였고, 이들이 개발해냈던 스타일과 태도, 가치관이 댄디즘 Dandyism 이었습니다. 즉, 귀족 계급이 자기들 위치를 중간 계급이 따라올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었던거지요! 조선 후기, 중인 계층이 실학자들과 시서화를 통해 교류했다는 이야기가 연상되네요. '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 무리에 낄 수 있었다는건, 결국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가도 똑같은 법입니다. 

댄디즘이 단순히 패션에 국한된게 아니라, 일종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댄디들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중간 계급의 근면성, 실용성, 생산성과 같은 가치관을 거부하고 장식성, 무용성, 비생산성에 집중했다고 하거든요. '멋쟁이'가 아니라, 꾸미기에만 몰두하는 무위도식 한량이 '댄디'였던 거지요. 의미가 완전히 다른 셈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댄디즘의 종말도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는데, 결국 나폴레옹 전쟁 이후 경제 공황, 세금 증가, 귀족계층을 위한 곡물법 제정에 따른 식료품 가격 상승 등으로 1840년대를 지나면서 귀족 계급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빈곤과 노동 문제가 겹친 탓에 댄디즘과 같은, 소비와 과시로 점철된 귀족 계급의 생활양식은 시대착오적인 악습으로 사회적으로 규정되고 만 거지요. 그래서 댄디즘의 명줄은 다했고, 이후 도덕적이고, 근면 성실한 중간 계급 남성 이데올로기가 영국을 지배하게 되었다네요. 잠깐은 세상에 먹혔을지 몰라도, 이런 가치관이 오래 갈리 없으니 당연한 결말입니다.

이렇게 실버 포크 문학과 댄디즘의 종말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대한 사실들도 눈길을 끕니다. 중간 계급 독자의 증가로 문학의 주도권이 시에서 소설로 바뀌게 되었고, 문학은 이들 중간 계급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획에 의해 생산되고 마케팅에 의해 소비되는 문화상품으로 변해갔다는 것, 댄디가 외모로 구별짓기를 시도한건 당시가 시각적 상상력이 빠르고 전면적으로 부상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라는 이론들이 그러합니다. 문학이 시에서 소설, 천재의 예술품에서 문화 상품으로 변했다는건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 그 중에서도 판타지나 로맨스가 유행하는 최근 트렌드와도 왠지 비슷한 느낌도 들더군요. 소비 주체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소비 행태가 모바일화되었다는 뜻이니까요.

각 단락마다 당대 유행했던 실버포크 문학 작품, 관련된 유명 인물을 함께 소개해주어서 이해를 쉽게 만들어주는 구성도 좋습니다. 문학 작품의 내용 소개만으로도 당시 분위기가 머리에 쏙쏙 들어올 뿐더러, 댄디의 상징이었다는 브러멜과 도르세이 백작에 대한 소개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재미있었거든요. 브러멜은 완벽한 단순함으로 고도의 절제미를 선보였던 반면, 도르세이 백작은 유럽 출신으로 요란하고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던 탓에 그를 따라하던 중간 계급 청년들의 패션은 황당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는군요. 단순히 입는 옷, 장신구 등에만 신경쓸 뿐, 기본이 되는 가치관과 사고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지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겪고도 '댄디'가 '멋쟁이'라는 의미로 계속 사용된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저자도 댄디즘의 종말에 대해 설명하면서, 댄디를 흉내내는 중간 계급은 웃음을 자아내는 코믹 캐릭터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는데 말이지요. 물론 댄디가 되고 싶어해서 그들을 추종하는 '속물'들 과 진짜 멋쟁이 '댄디'는 확실히 달랐겠지만, '댄디즘' 자체가 부정적 의미가 되었다면 '댄디'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로 힘을 잃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주제에 대한 설명은 재미있고 상세하나 아쉬웠던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실버 포크 문학'이 얼마나 중간 계급에게 잘 먹혔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당시에 이런 소설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 정도는 근거가 빈약해요. 특정 소설이 인기를 크게 끌었다고 한 들, 그게 사회 현상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힘들잖아요? 판매량같이 명확한 근거, 최소한 다른 문화, 사회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었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제대로 된, 정확한 역사서라고 보기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입니다. 

도판이 부족하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댄디들과 그들의 패션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도판이 필요했어요 글 역시 가독성 좋은,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고요.

덧붙이자면, 제목만 보고 기대했던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부제인 '패션의 권력학'은 잘못 붙여진 제목이거든요. 사실 패션에 국한된다면, 댄디들의 패션을 중간 계급이 따라하지 못했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패션은 물론, 먹고 자고 하는 모든걸 똑같이 따라하는건 돈만 있으면 어려울게 없으니까요. 그들이 따라할 수도 없었던건 패션과 같은 표면적인게 아니라 댄디즘이라고 불리우는 가치관같은, 귀족 계급만의 사고 방식입니다.

그래도 문화 상품을 통해, 당대 계급간 갈등과 사고방식과 같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해낸 내용만큼은 아주 좋았습니다. 재미도 있었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특정 시기, 특정 문화가 시작되고 끝나는 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잘 알려주는 좋은 미시사, 문화사 서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