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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31

서점의 명탐정 - 니타도리 게이 / 이희정 : 별점 2점

서점의 명탐정 - 6점
니타도리 게이 지음, 이희정 옮김/㈜소미미디어

니시후나바시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화자인 고참 아르바이트생 아오이가 탐정역인 점장과 함께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제목과 표지만 보았을 때,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처럼 '서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룰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생각대로였습니다. 심지어 책 뒤 소갯글을 보니,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의 저자 오사키 고즈에가 '서점'으로 테마를 정했던 앤솔러지에 기고했던 것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하네요. 최근 무거운 작품들만 읽어서 기분전환차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서점이 주요 무대이며 점장이 탐정이라는 점에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서점을 무대로 한 작품도 많지요. 그러나 이 작품만의 특징이 존재합니다. 바로 "책" 자체가 수수께끼가 되는 이야기는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경우는 책들이 중요 소재였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수록작 중 "모든 것은 에어컨을 위해"의 경우, 특정한 책의 도난 사건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책인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에요. 훔쳐낸 방법이 핵심 내용이니까요. 이런 방향도 꽤 괜찮더군요. 서점이라는 장소,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에는 아주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에서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서점과 책의 특성을 잘 살린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서점이여 영원히"는 서점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고요. 그리고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주는 역할이 서점 직원의 중요 업무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의 시리즈가 나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전 먹었던 요리에 대한 기억만 듣고 추억속 요리를 재현해 주는 "추억을 파는 식당" 처럼 말이죠.

하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탓입니다. 특히 과장된 캐릭터들은 영 적응이 안되더군요. 점장부터가 그러합니다. ‘니시후나바시 POP 광고의 여왕’ 과 같은 별명, 바쁜 현장에서 빠져나와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 등 세세한 설정들은 만화 주인공같은 느낌만 전해 주거든요. 여기에 집사 역할을 수행하는 성실한 고참 아르바이트 아오이 설정은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지만, 미묘합니다. 등장하는 트릭들이 문제입니다. 대체로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오히려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고, 상황만으로 사건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가 가장 마음에 들더라고요. "서점이여 영원히"도 점장의 어설픈 추리를 뺐더라면 훨씬 좋았을테고요.

한마디로, 전형적인 가벼운 양산형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가볍게 읽기는 수록작 네 편 중 수준 이하였던 두 편이 점수를 너무 깎아 먹어서 별점은 2점입니다만, 쓱 한 번 읽기에는 적당했습니다. 일본의 서점 관련된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 싶네요.

덧붙여 실제 서점 근무 경험은 없다는 저자의 후기에는 조금 놀랐습니다. "서점 직원에게 책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책 제목을 잘못 기억하고 있다"던가, 서가로 문고본을 옮길 때 띠지는 손톱 밑으로 파고들어 다칠 수 있고, 찢어지기도 쉬워서 일부러 빼 놓는다는 등 디테일은 서점 근무 경험이 없다면 알 수 없었을 정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저자는 구제 반코의 "망나니 서점원 (暴れん坊本屋さん)"을 참고했다는데, 그 외에도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컨텐츠가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읽어 보았던 '해골 서점 직원 혼다씨' 처럼요. 이런 점은 조금 부럽네요. 하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모든걸 직접 경험할 필요야 없는게 맞기도 할 테고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서점 서가에 꽃혀있는 책을 습관적으로 정리하고 있던 손님은, 알고보니 다른 용무가 있었다. 그는 미국 유학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 연인으로부터 책들을 받았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던 차에, 이 서점에서 주문을 받았다는걸 알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이었다. 연인은 급작스러운 유학 이야기를 들은 뒤 연락 두절 상태였다. 일곱 권의 책은 그림책, 소설, 인문학, SF 등 장르가 다양했고 받았을 당시 제일 위에 "네가 없어도 괜찮아"가 놓여 있었다...

주요 등장인물들과 무대가 되는 서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시작되는 첫 이야기로, 손님이 '정리꾼'이라는 설정을 활용해서 풀어내는 간단한 암호 트릭이 등장합니다. 책들은 크기별로 놓으면 "스카이프 가입해"라는 메시지가 표시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문고판이 나온 오래전 소설의 단행본을 구태여 주문하는 등의 단서도 등장하고요. 

책을 주문하고 배달된 날짜, "네가 없어도 괜찮아"가 상자 맨 위에 놓여 있었던 이유 등을 근거로 정리꾼의 애인은 서점 아르바이트생 히라노라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주문과 배달에 보통 1주일이 소요되는데, 몇 일 걸리지 않았던게 단서였습니다. 서점에 재고가 있다는걸 완벽하게 파악했어야 하는데, 이를 조사하기 위해 서가를 훝고 다니는 손님은 없었으니 그 연인이 서점 직원이라는건 꽤 그럴듯 했어요. 포장 역시 단서였습니다. 판형이 다른 특정 책이 맨 위에 올라가려면, 직원이 직접 포장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리꾼이라는 손님이 책을 선물받고 정리도 하지 않은채 집에 두었을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책 제목 앞 글자만 따서 읽으면 되는 간단한 암호라서, 의지만 있었다면 책을 정리하지 않았어도 풀 수 있었을테고요. 경우의 수는 5천개 정도밖에 안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런걸 물어보려고 서점에 올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도 서점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일상계 추리물로 기본은 해 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든 것은 에어컨을 위해" 

서점을 찾은 손님 시마지리는 아르바이트 생 이케베의 친구였다. 그는 서점 직원들에게 이케베가 자신의 소중한 책을 훔쳐간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케베는 도저히 책을 가져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방법에 대해 서점 직원들이 모여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 놓기 시작하는데...

도난품은 유명 라이트노블 작가 하스미 쿄의 사인본으로 시마지리의 가방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시마지리가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자리를 비운 사이, 방에 있었던 이케베가 훔쳐갔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케베의 몸 속 어디에도 책은 숨길 수 없었고, 그가 가져갔던 문고본이 가득했던 상자 안에는 책을 더 이상 넣을 방법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케베가 책을 어떻게 훔쳐내었는지?에 대해 서점 직원들이 각자 추리를 이야기하는, 일종의 추리 배틀이 핵심인데,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정말로 훔쳐낼 방법이 없었다는 상황을 알려주는 전개도 괜찮았고요. 결국 책이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문고본이 가득찼던 상자 안에 넣는 방법 밖에 없었다는게 증명되거든요. 상자안의 책들 커버를 벗겨서 책 한 권이 더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는게 진상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지식이 사용된 트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덧붙여, 시마지리가 방법을 알기 위해 서점에 찾아온 이유도, 보통 손님들은 서점 직원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곧잘 생각한다는 것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인데 꽤 그럴듯했어요. 이런저런 다른 서점 동료들 캐릭터들도 읽는 재미를 더하고요.

하지만 벗겨낸 책 커버의 처리 방법은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상자 골판지 앞, 뒤를 뜯어낸 사이에 집어넣었다는데, 시마지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50권이나 되는 책 커버를 완벽하게 안에 집어넣고 재포장하는건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쓰레기 버리러 갔다 오는게 20분 이상 걸리지는 않았을테고, 설령 시간 내 집어 넣었더라도 티가 전혀 나지 않았을 것 같지도 않았고요. 이보다는 조금 더 큰 다른 상자를 미리 마련해서, 이미 포장해 두었던 박스와 책을 함께 넣었을 거라는 히라노의 추리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시마지리가 상자를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럴리 없다고 했지만, 미묘한 크기 차이를 알아내는건 힘들지 않았을까요?

작가로 성공한 친구 싸인본을 질투심에 버렸지만, 그 작가 친구가 집에 자러올지도 몰라서 싸인본을 훔쳤다는 동기도 이상했어요. 진상을 알고 난 시마지리가 흔쾌히 용서하면서, "또 사서 사인 받으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과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마지리는 다시 싸인을 받아도 되고, 이케베는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또 이름 부분 필적이 다르면 눈치채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이렇게 흔쾌히 용서할거면 시마지리가 이런 소동아닌 소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게다가 애초에 책을 훔치는게 목적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훔칠리기 만무합니다. 어떤 트릭을 써도 용의자는 자기밖에 없으니까요. 시마지리 집에 놀러가서 몰래 가방에 넣고 오는 것과 같은 상황이니, 상자 골판지를 뜯어내는 등의 불필요한 노력을 할 이유가 없어요. 문고본이 박스안에 정말로 "가득차 있었다"도 우연이었다고 생각되고요. 억지와 우연이 만들어낸 불가능 범죄인 셈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서점 업무에 대한 여러가지 디테일은 좋았지만 트릭, 동기, 상황 모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일상 업무 탐정단" 

하스미 쿄의 사인회가 있던 날 밤, 서점에 누군가가 침입하려 했었다. 다음날 출근 때, 정문 쪽에 테디베어가 목매달렸고, 가게 안 쪽에서 붙여놓은 하스미 쿄가 친필 사인한 포스터에는 핑크색 마커로 불경과 낙서가 가득 적혀져 있었다. CCTV 확인 결과 테디베어가 매달리던 새벽 3시 36분에는 포스터에는 낙서가 없었다. 이후 아침에 발견될 때 까지 모든 출입구는 잠겨 있었고, 뒷문 오토록도 열린 기록이 없었는데, 범인은 어디서 들어와 어디로 나갔을까? 

아오이, 히라미, 코미야마 모두 서점 일을 하며 트릭을 파헤치고 범인을 잡자는 결의를 다지던 와중에, 서점의 단골 손님 타와타가 밤 중에 하스미 쿄의 편집자가 도망가는걸 목격했다고 말하는데....

직전 이야기에서 인기 작가로 소개된 하스미 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스토커 타와타가 하스미 쿄의 지문을 노리고 그가 서명한 포스터를 얻기 위해 이런저런 범죄를 저지른다는 내용이지요.

핵심인 포스터 낙서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이 핑크색을 띄게 만든 뒤 비치면 핑크색 낙서는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는 트릭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테디베어를 매달던 시점 전에 낙서를 했던 것입니다. 초등학생 과학 실험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잘 되었을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작 중에서도 언급되듯, CCTV가 흑백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침 CCTV가 흑백이었던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 이 트릭 보다는, 창 밖으로 멀쩡한 포스터를 붙여서 위장했다는 히라노의 아이디어가 더 괜찮았어요. 붙인 포스터를 뗀 건 CCTV에 찍히지 않아서 기각되긴 했지만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해서 낙서를 언제 했는지를 모르게 만든 이유가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범인 타와타는 밤중에 낙서를 하고 달아나다가 점장과 아오이에게 목격되었었죠. 이 때 타와타는 자기 정체가 드러났다고 생각하고, 최소한 낙서에 대한 혐의는 벗어나기 위해 이런 트릭을 사용했다고 설명됩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이 낙서를 했다고 의심받았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점장과 아오이가 달아난 사람이 타와타라는걸 알았다면, 이런 공작을 했든 안했든 그녀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을게 뻔합니다.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점장이었을 가능성도 있고요. 타와타가 편집자 유루즈메가 도망치는걸 목격했다고 한 증언도 억지스러워요. 유루즈메가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요? 어차피 자기가 범인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 까닭도 없고요. 괜히 유루즈메가 수상하지 않다는걸 드러내는 빌미가 되었을 뿐입니다.

낙서로 포스터를 훼손한 동기도 납득이 가지 않아요. 서점이 포스터를 버리면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였으며, 하스미 쿄가 사인할 때 손바닥을 찰싹 붙이는 버릇에서 착안하여, 코트지로 만들어진 포스터에서 잔류 지문을 회수하여 집에 몰래 침입할 의도였다는데 그게 과연 가능했을까요? 또 이렇게 엄청난 공을 들여 포스터를 훔치느니, 사인할 때 버릇을 이용하여 직접 사인을 받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서점에 대한 디테일은 여전히 좋습니다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세금 관련되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등장하는게 기억에 남을 뿐인 졸작이에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 "초세금 대책 살인 사건"은 추리 작가가 세금을 낼 수 없게 되자, 경비를 부풀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산 물건, 여행지 등을 억지로 원고에 등장시킨다는 내용이라는데 재미있을 것 같네요.

"서점이여 영원히"

아오이가 일하는 사사쿠라 서점은 경영이 악화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서점을 살리려고 문예서 담당인 이치노세와 아오이는 힘을 합쳤지만, 점장의 얼굴을 보기도 힘든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 잡지에 "진열대에서 빼지 않으면 유해 서점으로 간주하겠다"는 협박장을 꽂아놓고 가는 사건이 일어났고. 거액의 사진집이 도난 당한 날에는 "유해 서점으로 지정되었다"며 밤 11시에 뒷문 앞으로 모이라는 협박장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누군가 서점에 불을 지르는데...

약간의 서술 트릭이 도입된 작품으로 점장 이치노세와 고참 아르바이트 아오이가 처음 만났던 '사사쿠라 서점'에서 일어났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욕없고 자리를 자주 비우는 점장은 남자인 사사쿠라 점장인거지요. 이걸 마지막에 드러내고 있는건 꽤 그럴듯 했습니다.

실제 사건에 대한 추리 역시 괜찮은 편이에요. 서점 밖에서 서점 안 화재 경보기를 작동시킨 방법은 유치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는 합리적이면서, 서점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협박장인 빨간 괴문서는 언제나 반품 직전 잡지에서 나왔는데, 인기 잡지들이라 손님이 먼저 가져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서, 협박장을 보낸건 서점 내부 사람이라는걸 밝혀내는 식입니다. 협박장을 꽂은 잡지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여기에 더해, 착화제가 남자 화장실에 버려졌다는걸 단서로 이치노세는 범인이 서점 내부의 남성이라고 확신합니다. 남자 화장실 휴지통에 착화제를 버리고 뚜껑을 닫은건 조작이 아니라 정말로 버린 것이며, 그렇다면 다른 성별로 위장할 필요가 없다는 추리였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사사쿠라 점장이 불을 지른 동기입니다. 점장은 목적은 보험금 때문이었다면서 서점은 이제 사라질 것이라면서, 아무도 책을 읽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책 말고도 오락거리가 넘쳐난다면서요. 문고본과 만화 매출은 늘어나지 않았냐는 이치노세의 반론에, "다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아니면 중고 서점에서 산다, 요즘은 잘 나가는 책만 들여놓는 편의점 수익이 훨씬 높다. 어차피 인터넷 서점에는 상대가 안된다"며 자신의 좌절감을 강하게 토로하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저 역시 도서관, 중고 서점을 애용하고, 인터넷 서점으로 책을 사니까요. 동네 서점이 사라지는데 일조하고 있나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하지만 "책과 서점은 다르다. 서점에서 보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것이다"는 이치노세의 말과 그 외에도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어서, 카리스마 직원의 힘을 빌려서, 전문성을 특화시켜서, 지역 밀착형 등으로 살아남고 명맥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아오이의 생각, 그리고 뒤이어 서점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섞인 기대와 함께 끝나는 결말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암요, 책만 파는 공간은 비디오, DVD 대여점처럼 언젠가 없어질게 분명해요. 살아남으려면, 시대 흐름에 맞춰서 계속 변화해야지요. 어떻게 변화하는게 좋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작중 등장하는, 지금의 니시후나바시에 위치한 서점이 꽤 잘 되어가고 있는 것 처럼, 동네 서점들이 꾸준히 살아남아 주면 좋겠네요. 저도 동네에 이런 서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암에 걸릴 것 같던 만화책 절도 사건 등 여러가지 디테일도 좋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도나 조 나폴리가 썼다는 "도망친 숲의 마녀"라는 책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를 주인공을 했다는 소개가 꽤 재미있었거든요.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네요....

2021/07/30

영어 조선을 깨우다 1 - 김영철 : 별점 4점

영어 조선을 깨우다 1 - 8점 김영철 지음/일리

영어라는 외국어가 조선에 언제 처음 들어왔는지, 누가 영어를 가장 먼저 접했는지, 누가 영어를 처음 배웠고, 누가 영어를 처음 가르쳤는지, 조선에서 영어의 위치는 어땠는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미시사 서적.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고 있으며, 내용은 모두 확실한 사료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책은 조선에 처음 들어온 영어 사용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양선의 출현과 관련 사건을 거쳐 조일통상조약 뒤 미국과의 연합을 추진하면서 영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과정, 개화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영어 학습이 이루어지는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영어 학교가 설립되고, 영어가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까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을 조금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우선 조선에 처음으로 나타난 영어 사용자는 영국함선 프로비던스호 선원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정조 때 부산 동래 용당포 앞 바다에 나타났고, 배가 항구에 머무는 8일 동안 일반인들과 지방 관리들이 배에 올라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함장 브로튼이 이에 대해 기록을 남겼고요. 그 뒤 통상 등을 목적으로 여러 외국 배가 계속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 중 중국어 통역이 함께 한 배들이 등장해서 서로의 대화가 어느정도 가능해지고, 관련 기록도 풍성해지게 됩니다. 이 중 암허스트호의 린제이가 남긴 보고서에는 조선 관리들에게 스위트 와인과 독주 (Spirits)를 대접했는데, 관리들이 모두 독주를 선호했고 상당한 양을 마셨는데 멀쩡했다는 기록이 재미있네요. 아, 자랑스러운 조선 남아들이여!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그리고, 당시에 '영어'가 핵심 용어가 된 이유도 인상적입니다. 외국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출간된 관련 서적 들 중 가장 유명했던 "해국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미국이 부강하면서 공평한 나라임을 강조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지금 미국에 대한 이미지가 이미 이 때 형성된거나 다름이 없는 셈입니다. 덕분에 고종과 개화파 역시 미국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요. 여기에 더해 조일통상조약 후 본격적으로 타 국가와의 외교가 시작되었을 때, 중국의 이홍장은 일본이 조선을 병탄할 수 있으니 서구 열강과 외교 관계를 맺으라고 권고했고, 청나라의 일본 공사 허루장도 "조선책략"을 통해 미국과 연합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호의를 가졌던 고종은 미국과의 수교를 서둘렀고, 조미조약으로 미국 공사의 조선 주재, 보빙사 파견 등이 이루어짐으로써 조선 내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더욱 상승했습니다. 고종은 미군이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정도라니 말 다했지요. 그래서 결국 영어가 개화기 당시 조선에서 지배적 위치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영어 교육은 본격적으로 조약 체결을 하기 전, 정부 지원으로 중국에 유학생들이 파견된 것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이 중 가장 괄목할 성장을 보였던건 역관 가문의 고영철이었고, 귀국 후 영어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고 하네요. 이맘때 쯤 언어천재 윤치호도 등장하고요. 조미조약 체결 이후에는 당연히 영어 구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져서 조선 최초의 영어 학습기관 '동문학'이 만들어졌습니다. 교습법은 영어로 된 교재만 사용하여, 원어민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직접교수법'이었다고 합니다. 원어민 선생들이 조선어를 할 수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죠. 그래도 덕분에 학생들의 영어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동문학 출신들은 조선 근대화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생도 남궁억이 남긴 기록에는 학생들이 가마를 타고 오고, 하인들이 요강과 학용품까지 들고 오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그려지고 있는데, 재미있네요. YMCA 야구단생각도 나고요. 

조선 내의 학습 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김옥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영어를 배웠다는데, 김옥균은 영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는게 눈길을 끕니다. 확실히 난 사람은 난 사람이랄까.... 세계 정세를 보는 시각만큼은 뚜렸했군요. 

동문학에 이어 본격적인 조선의 왕립 영어 학교였던 육영공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육영공원은 초반에는 상당한 성과를 보였지만, 이미 벼슬이 있는 학생들이 태업해서 제대로 끝맺음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고관대작의 자제들인 탓이 가장 컸지요.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을 누리면서 포기하지 않으려는, 적폐들이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건 역시나 변함이 없군요. 이 육영공원 출신 적폐 무리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 이완용이라는 점은 더욱 그런 생각을 굳히게 만들고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이 앞다투어 설립한 사학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제중원 알렌의 영어 교실에서 시작하여, 아펜젤러의 배재학당, 이화학당, 정신, 배화 등이 설립되고, 운영된 과정을 알려주는데, 이 중 조선의 영어 학습열에 대한 아펜젤러의 판단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는 조선인들의 영어 공부 목적이 "출세" 라는걸 명확하게 알고 있더라고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당시 영어만 할 줄 알면 어떻게든 출세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많은걸 느끼게 해 주네요.

이러한 영어 교육의 시작과 여러가지 교육 기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조선 후기와 개화기 당시 있었던 주요 사건들과 영어를 배웠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 중 개화기에 밀사로 활약했던 조선의 괴승 이동인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어요. 개화파로 일본에 자주 방문했고, 나중에 조선 정부의 밀사가 되었지만 돌연 실종되었다는데, 정말 혼돈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간 것 같거든요.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이 '보빙사'로 조선 사람 최초로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여러 시찰 행적들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민영익이 입었던 화려했던 관복에 대한 묘사 - 자색 비단의 길고 넓은 겉 옷, 백설처럼 하얀 바지, 황금으로 기이하게 아로새긴 넓적한 허리띠, 가슴과 배에는 자두 빛 바탕에 희게 수놓은 쌍학과 가장자리에는 여러가지 화려하게 빛나는 포목 - 가 기억에 남습니다. 조선이 이렇게나 화려했었나요? 새삼 놀랐네요. 하지만 보빙사였던 민영익이 나중에 망명 후 공금을 착복하여 상하이에서 호화생활을 누리다 천수를 다했다는 후일담은 씁쓸했습니다. 개인이 뭘 어쩔 수 없는 시대였다고는 해도, 일국을 대표했던 영관급 인물이 고작 이 정도 밖에 안되나 싶은 아쉬움이 큽니다. 앞서의 이완용과 마찬가지로, 적폐는 확실히 처단했었어야 했어요.

이렇게 '영어'라는 소재로 조선 후기, 개화기 당시 근대사를 돌아보는 독특한 시각도 좋았고, 여러가지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많아서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언급된 내용들의 출처도 확실하여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비슷한 소재였던 "외국어 전파담"과는 다르게, 조선 근대사와 영어의 관계에만 집중하여 이해도를 높이는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그러나 지나치게 '영어' 중심이라는건 약점이기도 합니다. 이 책만 읽으면 조선 후기와 개화기 당시 청나라, 일본, 러시아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외교를 했는지는 알 수가 없거든요. 우리나라에 미국보다 훨씬 큰 영향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요. 도판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장점이 훨씬 많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빨리 2권도 읽어봐야겠네요.

2021/07/24

살인과 창조의 시간 - 로렌스 블록 / 박산호 : 별점 2.5점

살인과 창조의 시간 - 6점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튜 스커더에게 비밀스러운 봉투를 맡겼던 스피너가 살해당했다. 소식을 들은 매튜는 봉투를 열었고, 봉투 안에는 스피너가 협박해 왔던 세 명에 대한 증거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셋 중 누군가가 스피너를 죽였다고 생각한 매튜는 그들에게 접근해서 협박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스피너처럼 자신에게도 범인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프레이저는 자살했고, 베벌리는 이혼당해 모든걸 잃었다. 진상을 알아챈 매튜 스커더는 세 번째 협박 대상인 휘샌들을 찾아가, 그가 스피너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걸 알리며 마지막 담판을 벌이는데...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매튜 스커더가 술을 끊고 알콜 중독자 치료 모임에 다니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시거든요. 찾아보니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네요.

얼마 전 읽었던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가 하드보일드의 탈을 쓴 헐리우드 스타일의 펄프 픽션 범죄물이었다면, 이 작품은 정통 하드보일드에 가깝습니다. 매튜 스커더는 진짜 사나이로 거의 범죄에 가까운 방법을 동원해가면서 정의 구현에 최선을 다합니다. 베벌리 에스리지라는, 유혹과 살인을 동시에 행하는 전형적인 팜므 파탈도 등장하고요.

하지만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에서 설명해 주었던, 변해버린 시대상을 반영한 하드보일드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선 탐정역인 매튜 스커더부터 알콜중독자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고, 타인의 죽임에 대해 고민하는 나약하고 감성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정의 구현에 나섰지만 실제로 정의로운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프레이저는 스피너 죽음과는 무관했고, 그가 협박당했던 과실도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던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매튜 스커더가 스피너를 죽인 범인을 찾는다며, 기존에 스피너가 했던 협박을 이어갔기 때문에 프레이저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매튜 스커더 스스로는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게 살인이 아니라면 뭐가 살인일까요? 오래전 하드보일드에서 탐정 때문에 죽어나가던 등장인물들은 모두 죽어 마땅했었는데, 탐정 때문에 지극히 선량한 인물이 죽음을 택하는 경우는 처음 봤네요. 이런 정의, 선과 악이 모호한 설정은 시대가 변했다는걸 강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팜므 파탈이 부자 남편을 잃었지만, 나름대로 개과천선하고 매튜 스커더와 친구?가 된다는 결말도 마찬가지고요. 

여기에 더해 “나도 목석은 아니거든요.”라며 방을 찾는 베벌리에게 “내 호텔이 있지."라고 말하는 매튜 스커더의 마지막 대사는 화룡 정점이었어요. 몰락한 팜므 파탈과 불완전한 탐정이 '몸친구' 사이가 되는 결말이라니! 이 얼마나 현대적입니까! 고전 하드보일드에 흔하게 등장했던 복잡하고 꼬인 인간 관계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당연하겠죠. 이제는 과거와 같은 깊은 정을 나누는 관계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세 명의 협박 피해자들 외에는 고작해야 프레이저의 딸 스테이시 정도가 살짝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하지만 현대적으로 구현해 낸 하드보일드 캐릭터와 설정들에 비해 추리적으로는 특별한 건 없습니다. 세 명 중 한 명이 범인이다!라는 생각에, 세 명 모두에게 자기가 새로운 표적이라는걸 알리고 공격을 기다리는게 전부인 탓입니다. 이 중 스피너를 죽였던 휘슬러의 하수인과 베벌리의 옛 남자 룬드그렌이 각각 공격 시도를 했으며, 매튜 스커더는 모든 공격을 룬드그렌이 했던 것으로 착각했을 뿐이지요. 결국 프레이저는 죽었고, 베벌리도 아니라면 남는건 휘슬러 뿐이라는 간단한 결론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명의 공격이 겹쳤다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문제인데, 이 결론을 토대로 마지막에 휘슬러와 담판을 짓는 장면은 더 억지스럽습니다.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까요. 휘슬러가 스피너가 죽었다는걸 알고 놀랐다는걸 증거라고 제시하는데, 이건 증거도 뭐도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범죄가 등장하는 드라마에 가까와 보입니다.

그래도 읽기 적당한 분량에, 결말까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재미는 확실했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현대적인 하드보일드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그리고 매튜 스커더 시리즈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