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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8 여덟 1 - 타케모토 유지 / 고현진 : 별점 3점

8 여덟 1 - 6점
타케모토 유지 지음, 고현진 옮김/시공사

짤막한 단편들로 이루어진 개그 단편집입니다. 작화, 전개 모두 복고풍으로, 전통적인 기승전결 전개에 충실하다는 점과 여러 가지 면에서 기이한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기승전결은

  • 이야기를 시작하는 운을 띄우고 (기)
  • 그것을 조금 더 자세히 수식하거나 설명하고 (승)
  •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주제를 부각시키고 (전)
  • 마지막으로 주제를 정리하는 (결) 과정

으로 이루어지는데,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작법서에서는 "4컷만화"를 만들기 위한 황금공식으로 소개되었었죠. 그런데 이 책 수록작들은 개그만화이기 때문에 주제를 정리한다기보다는 황당하게 끝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기승전황당’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예를 들어 "드래곤 소울"을 보면, 왕따 학생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기), 그러다가 몸에서 갖가지 무기가 발견되고 (승), 지나가던 교장이 말린 뒤 자기도 이지메를 당했지만 노력해서 극복했다, 사람은 약한 것이 있어 성장한다는 훈훈한 주제를 부각시키고 (전), 마지막은 팔에 장치한 무기를 한번 쏴보라고 한 뒤 그 놀라운 위력에 경악한다는 결말 (황당)입니다.

"UROKO"는 생명을 구해준 곤들메기가 여자로 변신하여 우렁각시가 된다 (기), 곤들메기가 물을 떠나서인지 시름시름 앓게 된다 (승), 곤들메기를 돌려보내려 강으로 떠난다 (전), 던진 곤들메기를 새가 낚아채 사라진다! (황당)으로 끝납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러한 전개인데, 여기에 독특한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재미를 더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SF적인 소품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좋더군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인간 전자레인지, 타임스톱워치, 인간형 휴대전화, 손바닥 맨처럼요. 팬이 있으면 공격할 수 없다는 츤데레 모질라 이야기와 "아", "이", "우", "에"라는 이름을 가진 용자들이 나오는 "마이 네임 이즈"도 빼놓을 수 없고요.

그 외에도 대부분 소소한 일상 분위기로 해피엔딩 결말이 많다는 점, 펜으로 정성껏 그린 작화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개연성 없는 황당 개그가 유행했던 적도 있지만, 저는 역시 스토리 개그가 좋네요. 복고풍 개그만화를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후속권도 빨리 읽어봐야겠습니다.

2014/05/28

미사고의 숲 - 로버트 홀드스톡 / 김상훈 : 별점 2.5점

미사고의 숲 - 6점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열린책들

2차 세계 대전 후 스티븐은 군에서 제대하고 라이호프 숲 가장자리에 있는 잉글랜드의 옛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형 크리스찬과 해후했지만, 크리스찬의 기묘한 행동에 의구심을 느끼게 되었다. 알고보니 크리스찬은 숲에 매료된 나머지 "숲"이 만들어 낸 소녀 귀네스의 환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강박적으로 라이호프 숲의 내부를 조사했던 박물학자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크리스찬은 아버지처럼 숲속에서 행방을 감췄고, 홀로 남은 스티븐은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읽은 뒤 "숲"에는 사람의 무의식적인 사고를 실체화하는 불가사의한 힘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데...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적 사고를 실체화한 것이 보여지는 것'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등장하는 전설적인 작품입니다.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Mythago는 신화(myth)와 심상(imago)의 합성어입니다. 바로 이 실체화된 결과물을 의미하지요. 개인적으로는 美思考, 즉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한자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하여튼, 작품은 크게 아래의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제1부 미사고의 숲
  • 제2부 사냥꾼들
  • 제3부 숲의 심장

1부는 고향으로 돌아온 스티븐이 형 크리스찬을 통해 미사고에 대해 알게 되지만, 형이 귀네스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뒤 그를 잃게 되는 과정까지의 이야기입니다. 2부에서는 귀네스가 실체화된 후 스티븐이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돌아온 크리스찬이 이끄는 매의 전사들에게 습격당해 그녀를 빼앗기게 되고요. 3부는 귀네스를 되찾기 위해 스티븐이 해리 키튼과 함께 숲의 내부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단계별로 이야기가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스케일이 커지는데, 개인적으로는 2부까지가 딱 좋았습니다. 특히 2부에서 매의 전사들이 나타나는데, 그 우두머리가 나이를 한참 먹은 크리스찬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반전이 괜찮았어요. 그러나 3부는 지나치게 신화화를 의식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특히 스티븐까지 신화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전투 장면, 여러 마법과 기묘한 인물들이 실체화되어 등장하기 때문에 재미만 놓고 보면 가장 흥미롭긴 하나, 단순한 모험물에 불과해 새로움이나 깊이를 느끼기 어렵기도 했고요. 이 장대한 설정이 결국은 연인을 구하기 위한 모험담이자 사랑 이야기였다는 것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언젠가는 돌아올 귀네스를 기다리는 스티븐이 그 자체로 전설이자 신화가 되었다는 케케묵은 결말은 "백발마녀전"과 뭐가 다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80년대 출간 당시라면 꽤나 신선하고 인상적이었을 수 있으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느낌이에요. 무의식 속 무언가를 실체화한다는 설정은 일본 만화 등에서 많이 본 것이기도 하죠. "파프리카"처럼요. 신화냐 꿈이냐의 차이일 뿐, 사람의 무의식을 실체화하고 그것에 외려 사람이 휘둘린다는 설정 자체는 동일하니까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신화라는 것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시리즈로 이어질 만한 재미와 설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딱히 특별한 것이 없는 흔해빠진 판타지 모험담에 불과합니다. 시대가 너무 많이 흐른 탓이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은 아니었다는 뜻도 되겠지요. 시리즈 후속권이 국내 출간되지는 않았는데, 출간되었더라도 더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덧 : 그래도 유명작품이니 만큼 인터넷 상에 정보는 많네요. 제가 본 것 중 가장 괜찮은 귀네스 이미지 한 장 올려봅니다.

2014/05/27

타인의 목 - 조르주 심농 / 최애리 : 별점 2점

타인의 목 - 4점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열린책들

사형수 외르탱은 사형 직전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했다. 사실 탈옥은 메그레 경감이 외르탱이 진범이 아님을 직감하고 진범을 알아내고자 벌인 의도적인 작전이었다. 이후 외르탱이 체코인 라데크를 만나려고 시도한다는걸 알아챈 메그레는 라데크를 집중 추궁했다. 하지만 라데크의 혐의를 입증하지는 못하고, 외려 외르탱의 자살 시도 등으로 궁지에 몰린다…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시리즈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5, 6, 7, 8번째 작품을 건너뛰고 선택하여 읽게 되었는데, 오래전 "황색견"과 함께 국내 소개되었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 대표작이겠거니 싶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점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사나이 라데크라는 일종의 소시오패스 악당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유별난 재능은 사람의 약점을 파악하여 뜻대로 조종하는 능력이라고 묘사되는데, 당대 유행하던 "팡토마스"의 영향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악당이라는 점에서도요. 노파 하나의 생명을 빼앗아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는건 "죄와 벌"과도 비슷한데, 라데크는 구원 따위는 믿지 않는 내추럴 본 악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캐릭터 크로스비도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래도 범죄를 단순한 욕망의 충족이 아닌,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기 위해 저지른다는 점과 결국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는 최소한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유감스럽게도 볼 만한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정교한 맛도 없고 전개도 뜬금없는 탓입니다. 메그레가 자신의 목을 걸고 외르탱 탈옥 작전을 벌인 이유부터가 석연치 않습니다. 외르탱이 라데크와의 접촉을 시도해서 라데크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후의 수사는 지지부진하기 그지없거든요. 라데크가 무전 취식 후 경찰과 함께 나가는 전략으로 외르탱과의 접촉을 무효화시키는걸 메그레가 막지 않는게 대표적입니다. 수고를 덜 수 있었는데 가만히 지켜본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이건 "생폴레옹에 지다"에서 메그레가 다른빈유를 방관하여 자살하게 만들었던 것과 유사한데, 과거의 실수에서 뭔가 배운게 없는걸까요?
또한, 메그레가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외르탱이 짧은 시간 안에 귀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해답이 단순히 택시를 탔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허술합니다. 수사가 부실했다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라데크가 계속 자신이 범인임을 드러내는 듯한 허세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과연 쉽게 해결되었을지도 의문입니다. 라데크가 최후의 순간에 메그레에게 총을 쏘는 우발적 행동 역시 큰 약점이고요. 이 장면 때문에 그나마 있던 천재 범죄자와의 두뇌 대결 분위기가 무너져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라데크가 무계획에 즉흥적인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리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은 L의 죽음 이후 급속도로 힘이 빠진 "데스노트"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최후의 순간에 찌질한 모습을 보여줘 실망을 안겨준 야가미 라이토와 다를게 없다는 점에서요.

이렇게 좋은 추리소설로 보기는 여러모로 어렵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물론 멋드러진 제목만큼이나 문학적인 향취는 짙고, 외르탱의 탈옥을 지켜보는 메그레에 대한 묘사는 정말 대단한 등 심농이라는 작가의 필력은 유감없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차라리 "죄와 벌"처럼 라데크의 심리를 더욱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더라면 더 나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