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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계간 미스터리 2011.가을 -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별점 3점

계간 미스터리 2011.가을 - 6점
청어람M&B 편집부 엮음/청어람M&B

국내 최고의 추리소설 커뮤니티 "하우미"에서 진행한 이벤트로 당첨된 도서입니다. 먼저 이벤트를 주최한 황금펜클럽 편집부와 하우미 담당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드립니다.

"계간 미스터리"는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 잡지이며 제목 그대로 계간지인데, 이번 호 특집은 김내성 선생님에 대한 새로운 연구 자료들과 선생님의 미발표 논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시, 김내성"이라는 제목의 자료입니다. 이 자료 하나만으로도 이번 "계간 미스터리"에 대한 만족도는 아주 높았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단편들과 연재작이 실려 있습니다. 간단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일석간 - 김내성

거금 2천 원의 분실 사건에 얽힌 유쾌한 연애물. "연문기담"과 유사한 일상계 로맨틱 코미디 추리물입니다. 단서가 너무 명확하고 우연이 많이 개입된다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범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와 동기가 확실해서 깔끔하다는 장점도 돋보입니다. 변격물로 유명한 김내성의 새로운 면을 느낄 수 있었던 수작입니다. 귀여운 악녀 이미지의 미망인 전혜봉 여사 캐릭터도 인상적이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킬힐 (Kill Heel) - 정석화

시체와 함께 발견된 여인과 그녀를 취조하는 형사, 두 명의 대화와 심리 묘사로만 전개되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설정은 평범하나 사소해 보이는 단서를 통해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위적인 알리바이 트릭, 경찰 수사로 비교적 손쉽게 드러난 범인들의 관계, 반전이기는 하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아버린 진짜 동기 등 자잘한 부분에서 정교함이 약간 아쉬웠어요. 특히 진짜 동기가 밝혀진 뒤가 그러합니다. "디아볼릭" 등 수십 년 된 작품과 유사했기 때문이죠. 또, 오타가 굉장히 많은데 거슬리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 동네 살인마 - 정명섭

동네에서 벌어진 한 일가족의 집단 음독 사건을 수사하는 청년 백수의 모험담.

추리소설가를 꿈꾸는 추리 애호가이자 청년 백수인 탐정 캐릭터와 더불어 시종일관 유쾌한 전개가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국내에도 이런 작품이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개인적인 이번 "계간 미스터리"의 베스트 단편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딱 한 가지, 진범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게 단점인데, 작품 길이를 늘리더라도 이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게 좋았을 것 같네요.

막다른 골목 - 김이제

한적한 시골 마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 있다... 라는 설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작품.

문제는 설정은 그럴듯한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겠죠. 한국적 이차원 판타지랄까요? 나름 의미를 부여하자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장르문학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네요. 재미도 그닥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The Whisper of Blood - 미지의 속삭임 (2부)

1부를 읽지 않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세계 지능체와 엮여 고생길에 접어드는 주인공을 그린 SF입니다.

독특한 이세계 지능체 캐릭터는 괜찮았는데, 세계관이 이런 류 작품치고는 많이 뻔한 편이었어요. "기생수"를 비롯한 근미래 SF에서는 많이 보아온 설정이었거든요.

그러나 아직 완결된 것도 아니고 일부만 읽었기에 속단하기는 이를 것 같습니다. 별점은 완독할 때까지 유보합니다.

위험한 호기심 - 홍성호

펜션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 살인 사건 수사가 시작되고, 형사 준영은 펜션에서 사라진 충전기에 주목하는데...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당선작입니다. 전개와 결말이 이치에 맞고,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를 거쳐 수사해 나가는 과정이 괜찮은 범죄-수사 스릴러물로, 첫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네요.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일단 지나친 성적 묘사가 거슬렸어요. 뭐, 사건이 성적인 관계에 기반한 만큼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외에도 의도하지 않은 알리바이의 작위성 등 우연이 많다는 점, 주인공 형사 캐릭터가 그야말로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데뷔작이기도 하고, 아이디어와 전개는 좋았던 만큼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정태원 추모글

한국 추리문단에 큰 공헌을 하신 고 정태원 선생님에 대한 추모글입니다. 소개된 선생님의 저작만 해도 정말 엄청나서 다시금 고개가 숙여집니다. 평이나 별점을 남길 글은 아니죠.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알리바바의 주문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경의 부고 기사에서부터 시작되는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피터 웜지 경 시리즈 단편인데 "검은별"과 너무나 판박이였습니다. 설정부터 전개가 똑같아요.

덕분에 추리물이 아니라 모험물로 보일 뿐더러, 추리적인 요소가 거의 없고 아동 취향의 수준 낮은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작가의 명성과 시리즈의 후광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작품으로, 차라리 "검은별"을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그 외 노원 선생님의 장편 연재작은 연재물이라 이번 권만 읽어서는 이해가 힘들어서 뭐라 평가하기 어렵네요. 스케일이 큰 작품인데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추후 단행본이 나오면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별점은 그때까지 유보합니다.

이러한 단편들을 포함한 총 별점은 3점입니다.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지답게 미발표 외국 단편이 한두 편 정도 더 소개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약간은 들긴 하나, 앞부분 김내성 선생님의 다양한 글들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기에 큰 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한국 추리문학을 사랑하시는 몇 안 되는 모든 분께 추천드립니다.

2011/11/23

하야미 라센진의 육해공 대작전 - 하야미 라센진 / 진정숙 : 별점 4점

하야미 라센진의 육해공 대작전 - 8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 진정숙 옮김/이미지프레임(길찾기)

1~2차 대전 당시를 주무대로 하여 가공의 국가와 병기를 선보이는 "마차마 전기"가 150여 페이지 분량으로, 그 외 암즈 매거진 연재 카툰 칼럼, TRPG 리플레이 만화, 기타 칼럼과 일러스트로 구성된 하야미 라센진 작품집입니다.

"마차마 전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잡상노트", 문효섭의 "강철의 대지"와 굉장히 유사한 가공의 밀리터리 역사 만화입니다. 실제로 있었음 직한 병기 - 두프르카프루 왕국의 왕립 장갑 코끼리 부대, 장갑취사차, 남미 소국의 늪지 장악을 위한 장갑 갤리선, 아프리카 바오밥 부대의 펄스제트 전투기 플라밍고, 이라크전에 참전한 장갑 3륜차 등 - 와 그 일화들을 그럴듯하게, 그것도 인간미 넘치는 유머러스함으로 그려낸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앞선 두 작품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인물과 무기들 묘사가 좋은 것은 물론이고, 오타쿠다운 디테일과 고증이 아주 돋보였습니다. 1, 2차 대전 지식은 관련된 서적 몇 권 읽어본 것이 전부인 저 같은 풋내기 매니아에게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수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상의 제도 왕국 - 서방 공화제 전쟁 이야기보다는 2차 대전같은 실제 전사를 무대로 한 이야기가 훨씬 좋았습니다만, 이야기들 모두 평균 이상의 수준입니다.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TRPG 리플레이 만화는 게임 소개라는 취지에도 적합하지만, 만화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스테로이드 퀘스트"라든가 "바바리안 킹"은 게임 자체에도 꽤 흥미가 갔을 정도입니다. 이런 류의 스토리텔링 창작 게임들은 창작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말이죠. 여튼, 그야말로 "소개" 만화의 바이블이라고 불러도 좋겠네요.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림 좀 그리는 오타쿠가 자신의 관심 분야를 궁극으로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정말 좋아하면서, 즐겨서 그렸구나 싶은 생각이 읽는 내내 드는 즐거운 작품이었어요. 아... 저도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부럽네요. 

번역도 아주 좋아서 오역 없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 없으며(번역가 진정숙 씨에게는 고료를 2~3배를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빼곡한 글들을 번역한 정성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손글씨를 한글화한 수준도 높습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중간중간 페이지 낭비스러운 짤막한 일러스트 등이 잉여스럽기에 약간 감점했지만,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해요. "잡상노트"가 이렇게 번역된다면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다만, 추천드리기에는 좀 어렵습니다. 밀리터리나 TRPG 쪽에 관심이 없다면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책이거든요.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이 있다면 재미를 느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2011/11/20

클라인의 항아리 - 오카지마 후타리 / 김선영 : 별점 2.5점

클라인의 항아리 - 6점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비채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년 백수 우에스기가 한 잡지에 응모한 게임북 시나리오 "브레인 신드롬"이 입실론이라는 회사의 새로운 가상현실 게임기 K-2에 채택되었다. 그로부터 1년 반 뒤, 우에스기는 K-2 시운전 모니터 요원으로 참가했다. 우에스기와 같은 모니터 아르바이트생 리사는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현실적인 K-2의 세계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K-2 내부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언온 뒤 리사가 실종되었고, 우에스기는 리사의 친구 나나미와 함께 K-2와 입실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는데...

일본의 컴비 작가 오카지마 후타리의 마지막 발표 작품. 이런저런 리스트에 포함되는 대표작 중 한 편이기도 하죠. 국내에는 어째서인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컴퓨터의 덫"과 컴비 해산 이후 컴비 중 한 명인 이노우에 유메히토가 발표한 작품인 "메두사", 이렇게 딱 두 편만 소개된 낯선 작가입니다. 그러나 추리 애호가로서 명성만큼은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작품의 출간은 무척 반가웠어요.

일단 1989년이라는 발표 시기를 감안한다면 "가상현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설정과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구미에서 사이버펑크가 유행한 뒤라서 참신하지는 않고, 지금 읽기에는 낡아빠진 소재이지만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듯한 Klein-2 (K-2)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은 꽤 그럴싸했거든요. 1테라 메모리로 완벽한 가상현실을 구현한다는 시스템이라서 설득력이 많이 약한, 꿈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외의 설정과 묘사는 괜찮았습니다. 하긴 스티븐 킹이 말했듯 "무엇이 로켓에게 움직일 힘을 주느냐" 하는 것은 과학잡지가 따질 문제일 테니까요.

그리고 이 기계에 얽혀 있는 음모를 밝혀낸다는 모험담 그 자체로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엔터테인먼트 작품이라는 점도 확실합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리사의 실종, 나나미의 등장에서부터 전개되는 과정이 긴박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 때문이죠. 마지막의 현실과 비현실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모호한 결말은 왠지 "메두사"를 연상케 하는데,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는 측면에서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점 역시 확실합니다. 설정부터 이야기하자면 K-2에 대한 설정 이외에는 부실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CIA가 언급될 정도의 거대 시스템 관리가 소홀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겠지요. 게다가 게임 소설 한 권 써본 청년 백수가 달랑 며칠 조사해서 진상을 꿰뚫는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았고요.

"가상현실"을 이용한 중간 부분의 트릭, 즉 현실을 속이고 건너뛰게 만든다는 것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점은 비슷한 류의 가상현실 SF를 많이 본 탓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꽤나 중요한 떡밥으로 사용된(하도 많이 등장해서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는) 모모세 노부오의 경고가 단지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당황스러운 점이었습니다. "메가존23"의 이브처럼 직접적인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뭔가 도움은 줄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 외에도 이 기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결국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이노우에의 엔딩이 실질적인 클리어가 아니라는 것(여기서 이노우에가 더 큰 의문을 가지고 행동을 벌이게 되니까) 등 세세한 디테일도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그래도 흥미와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는 별게 없고 가상현실을 이용한 이야기가 워낙 많이 있기에 신선함은 떨어지나, 흥미진진한 모험담으로서는 충분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왠지 영화나 만화 쪽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긴 하네요.

마지막으로 컴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99%의 유괴"가 번역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