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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 사토 겐타로 / 서수지 : 별점 2.5점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 6점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사람과나무사이

제목 그대로, 세계사를 바꿨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약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만 보면 무슨 약이 대관절 세계를 바꿨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의외로 정말 그랬음직한 약들이 많아 조금 놀랐습니다.

사실 세계사를 바꾼건 병원균 쪽 역할을 더 큽니다. 말라리아가 훈족의 침략을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무릎을 꿇은 건 발진티푸스의 창궐 때문이었다는 등 전쟁이나 이민족의 침입 등에서 여러가지 전염병이 승패에 영향을 주었다는 역사적인 기록은 아주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큰 흐름 외에도 산모가 병원균에 감염되어 죽는 산욕열로 수많은 산모가 죽은 것도 여러가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특정 인물에 관련된 세세한 소개가 많습니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 부인의 죽음은 석가모니의 수행과 깨달음에 큰 영향을 주었고, 카이사르의 딸이자 폼페이우스의 부인이었던 율리아가 출산 도중에 죽은건 두 영웅이 피할 수 없는 전쟁을 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요.

당연히 '약'이 주인공이기에 약이 병을 퇴치하여 세계사를 바꾼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역시 상세한 실제 사례가 중심이에요. 예를 들어 강희제가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예수회 선교사가 진상한 특효약 퀴닌 덕분에 회복한게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는건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황태자가 강희제의 위독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곧 황위에 오를거라 생각해 기뻐했기 때문에 폐위되고, 옹정제가 다음 황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능력한 소인배 황태자와 달리 명군으로 칭송받는 옹정제가 강희제와 건륭제의 가교 역할을 잘 수행하여 청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죠. 옹정제가 아닌 다른 황제가 황위에 올랐더라면 청이 그렇게까지 장수한 제국으로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약이 발견, 개발되기까지의 과정도 상세합니다. 비타민 C가 발견될 때, 헝가리의 센트죄르지와 미국의 킹 사이에 벌어졌던 지저분한 다툼, 인공적으로 퀴닌을 합성하려다 보라색 염료를 발견하여 거부가 된 윌리엄 퍼킨, 마취약을 개발하려다 임상 실험 도중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내는 실명하게 만든 일본의 하나오카 세슈 등 여러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가득하지요. 

마지막에 소개된 아스피린의 특수성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한 세기 전 발표된 약임에도 지금도 끊임없이 팔려나가는 이유를 고찰하는데 아주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작은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진통 효과를 일으키는 이유가 과학적으로 잘 설명된 덕분입니다. 게다가 아직 아스피린의 전체상은 다 밝혀진게 아니라는게 놀라왔어요. 항혈전 기능이 있고 심지어 치매 예방 효과까지 있다고 연구되는 중이라니 정말이지 대단한 약이네요.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제목과는 조금 동떨어진 주제들이 있습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아스피린이 제목처럼 세계사를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또 일본인이 썼기 때문에 지나치게 일본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매독이 전 세계에 맹위를 떨쳐 여러가지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건 잘 알겠지만, 그 예로 오타니 요시쓰구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처럼요. 요시쓰구는 히데요시 휘하의 맹장이었지만 매독에 걸린 탓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분투하다 패배하여 자결하고, 그의 죽음이 서군 패배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데 그렇게 대단한 역사의 분수령이라 생각되지도 않을 뿐더러, 매독과 전쟁의 패배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쓰센산을 만들어낸 하나오카 세슈, 매독 치료약 살바르산 개발에 큰 도움을 준 일본인 시가 기요시와 하타 사하치로의 활약은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어 보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단점도 있기에 감점합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룬다기 보다는, 청소년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적당한 그런 책입니다.

2019/12/02

오래된 책들 (8) - 홍길동과 헤딩박

박수동 화백은 약간 성인 취향인 '고인돌' 시리즈가 대표작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아동용 명랑만화들도 유명합니다.
우선은 새소년 클로버 문고의 한 권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땅콩 찐콩"이 떠오르네요. '고인돌' 시리즈 세계관으로 풀어낸 아동용 명랑 만화였습니다. 오성과 한음을 제 머리 속에 각인시킨 "신판 오성과 한음"도 잊을 수 없고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책거리'라는 말을 처음 알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구독하던 '소년중앙'에 절찬 연재되었던 "번데기 야구단"도 웃음과 감동이 가득한 걸작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 "홍길동과 헤딩박"입니다. 홍길동 이야기를 명랑 만화로 적당히 각색한 재미있는 만화로, '헤딩박'이라는 독창적인 캐릭터도 빛나는 명작입니다.
며칠 전 방문했던 본가에 아직 이 책이 남아있는 걸 보고, 기쁜 마음에 포스팅 합니다.

휘리릭 넘기다 보니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등장해서 찍어보았습니다. 홍길동이 헤딩박을 제압하고 부하로 삼게되는 일기토 장면입니다. 특유의 펜 터치가 잘 살아있으며, 생동감이 넘치는 좋은 그림이에요. 이런 작품들이 복간되어 많은 아이들에게 소개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제 딸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은데 말이죠. 새로운 만화, 웹툰들도 좋지만 이런 고전 만화들도 제 맛이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2019/12/01

미래 세시기 바이오 묵시록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2점

미래 세시기 바이오 묵시록 - 4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유전자가 뒤섞여 새로운 종이 태어나는 근미래. 농장에서 인간형 잡초가 사람을 습격하고, 사람 얼굴을 한 닭들이 양계업자를 쪼아 죽인다. 뒤 이어 사람에게도 이상 유전자가 발현하며, 동물 유전자가 발현된 사람들끼리 육식 동물의 유전자와 초식 동물의 유전자로 나뉘게 되는데...

유전자 때문에 여러가지 종의 특성이 섞이고, 기묘한 새로운 생물이 태어나는 상황을 무대로 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근미래 디스토피아 SF 연작 단편집입니다. 

유전자 때문에 다양한 특성이 발현된다는 설정은 참신하다고 보기 힘들지요. 그렇다면 의외성이나 반전이라도 돋보여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 역시 부족합니다.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들을 엮어서 연작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작 기본 설정 외에는 딱히 연결되는 내용도 없습니다. 이왕 연작 구성이라면 주요 이야기는 이어지는게 좋았을텐데, 초반부 식물이 된 난민과 새가 된 난민만 연결고리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래서야 불필요한 구성이에요. 하루오와 미나코 정도는 결말 부분에서 다루어주어도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리고 "채소밭"과 "양계장"은 엄연히 사람이 키우고 재배하는 작물과 가축에 이상 유전자가 섞인 뒤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를 다루고 있는데, 그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사람에게 이상 유전자가 발현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아마 앞의 두 편은 2000년에 발표되었으며, 뒤의 이야기들은 2006년부터 약 반년 주기로 연재된 탓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사람 얼굴을 한 암탉들이 동네 아줌마들같은 잡담을 하면서 자신들 편의대로 시스템을 조작하게 만든다는 두번째 에피소드 "양계장" 만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와 함께 의외성이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양계업자의 유전자가 닭에게 주입되어 양계업자의 얼굴을 한 닭이 나타난다는 반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고장난 로봇 사토루가 자신은 원래 인간으로, 지금의 모습은 로봇 유전자가 발현했다고 믿는 이야기도 유전자 발현이라는 설정이 잘 엮인 괜찮은 내용이었는데 주변 이야기로 밀려나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맛이 없지는 않으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확실히 못합니다. 리뷰를 길게 쓰고 싶은 마음도 별로 들지 않을 정도로요. 작가의 대단한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