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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8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히가시노 게이고 / 최고은 : 별점 2점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마술사면서 사기, 거짓말, 위조도 서슴치 않는 안티 히어로 '블랙 쇼맨' 다케시 삼촌이 활약하는 단편집. 전작은 묵직한 장편 추리물이었던 반면, 이번 작품들은 가벼운 단편 범죄 드라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웠습니다. 핵심 매력 포인트였던 다케시의 안티 히어로적인 속성이 거의 사라진 탓이 큽니다. 손님들을 위해 솜씨를 발휘하는, '정의의 바텐더'로 캐릭터가 변해 버렸더라고요. 사건들도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결말도 거의 예상대로였습니다. 칵테일이 주요 소재로 쓰이는 등의 소소한 디테일만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후속작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맨션의 여자>>
마요는 손님 우에마쓰 가즈미와의 미팅 장소로 다케시 삼촌의 바 '트랩핸드'를 이용하게 되었다. 다케시는 거짓말과 사기로 가즈미 남편의 지인인 척 했다.
어느정도 마요, 다케시와 친해진 가즈미는 다케시의 바에서 오래전 연이 끊긴 오빠 유사쿠와 만나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흔쾌히 허락한 다케시와 마요는 도청장치로 유사쿠가 가즈미가 가짜라고 협박하는걸 들었다. 다케시는 간단한 조사와 추리로 가즈미는 가짜가 맞지만 진짜와 협력했을거라 생각하고, DNA 검사를 요구하는 유사쿠를 가짜 사진으로 물리친 뒤 가즈미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나에는 가즈미의 부탁으로 역할을 수행했고, 그 이유는 췌장암으로 곧 죽게 되는데 유산이 자기에게 끔찍한 짓을 한 오빠에게 상속되는걸 막기 위해서였다.

다케시가 사기꾼으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가짜 가즈미의 정체를 꿰뚫고, 조작한 사진으로 유사쿠를 물리치는 등의 활약을 보이는 전반부, 그리고 나나에의 입을 통해 가짜 가즈미가 된 이유가 설명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탐정(?)의 활약과 범인(?)의 고백이 1, 2부 구성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셜록 홈즈와 같은 고전 추리물을 연상케합니다. 

다케시의 DNA 검사 요구를 퇴치하기 위해, 유사쿠는 아빠의 블륜으로, 가즈미는 엄마의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사실을 조작한건 기발했는데, 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습니다. 나나에와 가즈미가 꼭 닮았다는 우연에 모든게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고요. 이런 우연보다는 가즈미의 재산을 이용하여 나나에에게 성형 수술을 시켜주고, 회복 기간 동안 바꿔치기를 위한 학습을 했다고 풀어가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추리, 범죄물이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는 점도 아쉽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위기의 여자>>
나미는 만남 어플로 만난 기요카와로부터 그가 가지고 있다는 하와이 별장 이야기를 듣고, 함께 트랩핸드에 방문해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를 마셨다. 연이어 자기 재산을 자랑하던 기요카와는 다케시의 칵테일 한 잔을 더 마신 뒤 미친듯이 졸려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알고보니 기요카와는 어플로 만난 여자에게 재신이 많다는 거짓말로 환심을 산 뒤, 수면제를 먹인 뒤 몹쓸 짓을 하는 악당이었습니다. 이를 꿰뚫어 본 다케시가 술잔을 바꿔치기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가 트릭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면 유도제가 범죄에 악용되는걸 막기 위해 물에 녹으면 파랗게 변하게 만들었는데 (일본 이야기겠지요?), 그걸 숨기기 위해 원래 색이 파란 블루 하와이를 선택했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거든요. 바텐더 다케시에게도 어울리는 소재였고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후속작이 나온다면 추가되어도 좋을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다케시가 기요카와의 수작을 눈치채고 경고를 하기 위해 '비트윈더시트'를 대접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재료만 듣고 칵테일 이름을 떠올리고, 이게 '경고'라고 느낄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요. 또 같은 재료라도 비율에 따라 여러 결과물이 나오는게 칵테일이라서, 경고의 의미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뭐, 이 모든게 다케시 삼촌의 억지라면 할 말이 없지만요.

그래도 나름 트릭도 사용되었고, 다케시의 활약도 빛나며 기승전결도 깔끔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환상의 여자>>
유즈키는 치과의사이자 재즈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도모야와 불륜 관계였다. 그러나 도모야갸 교통사고로 죽은 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는 절친 야요이와 함께 트랩핸드를 찾은 유즈키는 도모야가 과거 요코스카에서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모야의 과거를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코스카에서 도모야가 '딸'이라는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걸 알아내는데....

표제작. 도모야가 딸과 함께 보냈던 과거는 모두 조작으로, 유즈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려는 친구 야요이의 계획이었다는 내용.

불륜녀인 친구를 위해 본처를 설득하기까지 한 친구 야요이의 엄청난 노력은 절절이 전해집니다만, 이런 계획이 유즈키의 새로운 시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요코스카에서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조작해서 정나미가 확 떨어지게 했더라면 모를까요. 불륜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재미도 없고 알멩이도 없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2/04/08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 히가시노 게이고 / 최고은 : 별점 2.5점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쿄에서 건축사로 일하는 마요는 중학교 선생으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십여년 만에 만난 삼촌 다케시는 스스로 범인을 찾아내겠다며 수사에 나섰고, 마요도 삼촌과 힘을 합쳤다. 오래 전 사무라이 젠이라는 예명의 마술사로 활동하여 온갖 트릭과 심리전의 달인인 다케시 덕분에 결국 범인을 알아내는데 성공하는데....

일본 추리 문학계의 거물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입니다. 제목처럼 지명이 명확하지 않은 시골마을. 주인공 마요의 표현대로라면 '이름도 없는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본 적 없는 작고 평범한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그립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쉽게 읽힙니다.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배치해서 흥미를 배가시키는 솜씨도 여전하고요.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은 왜 흉기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수건같은 기묘한 도구를 사용했는지? 범인은 왜 이상하게 피해자 집을 어지렵혔는지?와 같은 핵심 수수께끼 외에도 장례식장에 나타났던 모리와키 아쓰미의 정체는 무엇인지? 가미오 에이치가 도쿄까지 가서 만났던 인물은 누구인지? 모모코의 남편은 왜 간사이에 파견 근무를 갔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마요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비밀은 무엇인지? 등 작 중에 스치듯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합치면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이에 대한 답들도 모두 합리적으로 공개되고요. 최소한 불필요하게 등장해서 끝까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맥거핀은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탐정역을 소화하는 '블랙 쇼맨' 가미오 다케시가 보여주는 여러가지 현란한 트릭들도 볼거리입니다. 도청기나 몰래 카메라같은 장치의 효과적인 사용은 기본이고, 손재주를 이용해 경찰 스마트폰을 몰래 빼돌려 정보를 입수하고, 사람들을 경험과 마술 트릭에 기반한 심리전으로 현혹시켜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는 과정이 그럴듯하게 묘사되거든요. 특히 장치, 손재주에 비해 심리를 활용하는 부분이 꽤 설득력 있습니다. 마요를 처음 만났을 때 "고양이를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할 수 있었던 방법처럼요. 나중에 알고보니 고양이를 싫어하는 여자 아이는 없고, 그림도 일단 잘 그린다고 칭찬했을 뿐입니다. 어차피 칭찬이니 큰 문제는 안되며, 설령 그림을 못 그리더라도 누군가 칭찬하는걸 들었다고 할 생각으로요. "일반적으로 인간은 뭔가를 상상하며 이야기하려 할 때 시선이 오른쪽 위로 향하는 경향이 있어. 반대로 사실을 떠올릴 때는 왼쪽 위를 향하지. 대강 말하면 거짓말을 할 때는 오른쪽, 사실을 말할 때는 왼쪽이야."라는 주장도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이전에 수차례 가키타니 경위를 만나서 확인했다는 전제가 뒷받침 된 덕분에 꽤 일리있는 추론의 근거로 사용됩니다. "대화를 통한 정보수집의 철칙은 딱 하나다. 침묵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것. 10년지기처럼 대화를 즐겨."와 같이, 전문성이 느껴지는 대사들도 좋았습니다.

그가 수집한 정보들로 펼치는 추리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기름 라이터 오일 자국에 첫 수수께끼였던 '수건을 흉기로 쓴 이유'를 결합한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마요는 범인이 몸싸움을 하다가 오일이 샌 게 아니냐고 했었지만, 라이터의 오일은 왠만하면 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오일 자체를 가지고 왔던 것이고, 이유는 무언가를 불태우기 위해, 즉 방화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오일을 적시기 위해서 가져왔던 수건이 흉기가 되었던 거지요.

그러나 정교하거나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아서 추리할 여지는 적습니다. 애초에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를 피해자 가미오 에이치 주변 인물들 조사를 통해 드러내는, 일종의 '와이더닛' 계열 범죄물이거든요. 문제는 동기가 이야기 속 당대 최고의 인기만화 "환라비"를 그린 만화가 구기야마와 관련되어 있다는게 예상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이름없는 마을'과 반대로, 당대 최고의 만화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이름이 언급되는 탓이에요.

여기에 더해 가미오 에이치가 다가오는 중학교 동창회 겸 쓰쿠미 추모식에서 무언가를 공개하려고 했었고, 쓰쿠미는 생전에 구기야마와 아주 절친했다는 정보가 결합되면 답은 뻔합니다. 구기야마는 중학생 시절, 죽은 쓰쿠미와 함께 했지만 공개되면 안되는 추억이 있었던 것이지요. 즉, 구기야마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고고노에 리리카가 구기야마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깨진 시점에서, 범인은 구기야마가 되는 셈입니다. 

작가도 이렇게 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는 없었는지 가시와기가 주도했던 '환라비 하우스'와 관련된 잇권 다툼을 내세우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퇴직한 중학교 교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요. 급작스럽게 동창회를 앞두고 범행이 일어날 이유도 없고요. 추리도 억지가 많습니다. 고고노에 리리카가 범행 시각에 구기야마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파헤쳐서, 그녀가 스기시타와 불륜 관계였다는걸 드러낸 추리처럼요. 아무런 근거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고고노에 리리카의 상대가 같은 동창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울러 다케시 캐릭터는 심하게 작위적이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첫 등장에서부터 고구레 경감과 다투기 시작하는데, 과장이 너무 심했어요. 전형적인 천재형 독불장군으로 새로운 맛도 없고요. 조카에게서도 돈을 우려내는 모습 등 안티 히어로적인 묘사도 만화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며, 마지막에 사건에 관련되었던 동창들 앞에서 다케시가 추리쇼를 펼치는 것도 오랜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는 즐길거리였지만 대체로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엔터테이너로는 뛰어나다는걸 새삼 증명해 줍니다. 재미 외에 읽어볼 만한 뚜렷한 가치는 비록 없지만, 재미가 가장 중요한 법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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