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의 퀴즈 - ![]() 오가와 사토시 지음, 문지원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
퀴즈 최강자를 가린다는 Q1 그랑프리 결승에서 미시마 레오는 도쿄대 출신의 천재인 유명 방송인 혼조 기즈나와 맞붙었다. 팽팽한 6:6 상황에서, 혼조 기즈나는 사회자가 문제를 말하기도 전에 정답을 맞추어 우승했다. 레오와 퀴즈 마니아 동료들은 방송국의 '짬짜미'를 의심했고, 레오는 스스로 조사에 나섰다. 조사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과 퀴즈 사랑에 대해 반추해 나가던 레오는 결국 이건 '짬짜미'가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그리고 혼조를 만나 진상에 대해 듣게 되는데...
2023년 제2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소설 부문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신예 작가 오가와 사토시의 작품입니다. 작가의 "거짓과 정전"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어서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책 소개만 보았을 때는 퀴즈 마니아의 퀴즈 관련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퀴즈라는 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하고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퀴즈에 대한 진지한 접근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명확한 규칙과 전략이 존재하는 진지한 ‘시합’으로 설명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퀴즈에는 '확정 포인트'가 있다고 합니다. 문제 중에 퀴즈의 답을 확정할 수 있는 포인트이지요. 그리고 퀴즈 플레이어는 상대보다 빠르게 답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답을 알고 누르는게 아니라 답을 '알 것 같은' 단계에 눌러야 한다는 등입니다. 이런 정보들과 함께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퀴즈 대회 Q1은 실제 대회를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며, 미시마 레오가 퀴즈를 풀어내는 사고를 세밀하게 그려내어 정말 하나의 '스포츠'를 보는 듯한 박진감을 안겨줍니다. 작가가 설명하는 퀴즈 관련 정보들도 실제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에 등장한 서술만으로도 충분히 그럴듯해 보일 정도로 잘 설명되고요. 작가는 이런 세심한 설정을 통해 퀴즈가 단지 지식을 겨루는 게임이 아니라, 사고와 감각이 살아 있는 장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퀴즈와 인생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이 부분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는 주인공이 겪었던 경험들이 정답과 우연히 연결되었었는데, 이 작품은 퀴즈의 정답, 아니 퀴즈 자체가 레오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인생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퀴즈의 정답을 맞힌다는 것은 그 정답과 어떤 형태로든 연관해 왔다는 증거다.'라는 레오의 말 처럼요. 그리고 작품에서는 Q1에서 레오가 맞춘 문제를 통해 레오의 인생을 어린 시절 - 퀴즈를 몰랐던 때 부터 퀴즈에 빠지고, 여자 친구를 사귀고,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 부터 돌이켜보게 해 줍니다. 이 과정에서 레오가 퀴즈를 정말 사랑한다는게 자연스럽게 드러나고요. 레오가 알고 있던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의 정답이 ‘덴포잔’에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히요리야마’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레오는 퀴즈가 '살아있다'는걸 깨닫고, 퀴즈에 대해 더 충실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이는 단순히 지식을 외울 뿐이었던 혼조와 비교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미시마 레오도 호감이 갑니다. 지극히 평범한 청년으로,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단지 퀴즈에 대한 애정만으로 잘 하게 되었다는게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등장인물 뿐 아니라, 작가가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본 여러 묘사들도 인상적입니다. 하루의 시간대를 나타내는 단어는 모두 태양의 움직임이 기준인데 심야만 성격이 다른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 그리고 그게 퀴즈 정답을 말했을 때의 전율과 엮이는 묘사는 정말 빼어났어요.
그리고 미스터리물로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 7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작품답네요. 핵심은 ‘혼조 키즈나가 어떻게 문제를 듣기도 전에 정답을 말했는가?’라는 수수께끼 풀이인데, 레오가 과거 영상과 시합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진상을 추적하는 과정은 긴장감이 넘칠 뿐더러, 작은 단서에 의해 하나 둘 씩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는 미스터리 장르로서의 재미 또한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 비해 진상 자체는 다소 아쉬움을 남깁니다. 혼조가 퀴즈 프로그램의 본질을 꿰뚫고 문제 출제의 경향을 파악했다는 점까지는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Q1 그랑프리에서는 참가자들이 반드시 정답을 맞힐 수 있는 문제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설정은 말이 되니까요. 그러나 혼조가 마지막 문제로 과거 악연이 있는 연출자 사카다와 관련된 문제가 나올 것이라 확신한건 도박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문제를 듣기도 전에 정답을 외친 이유가 화제를 유도해 이후 자신의 온라인 및 유튜브 사업 홍보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건 최악이었어요. 레오와 박빙의 승부를 펼칠 정도의 인물이기에, 보다 더 강렬한 철학이나 신념을 기대했는데 너무 세속적인 동기라 실망스러웠어요. 이보다는 혼조가 레오를 만났을 때 해 주었던 이야기 - 아픔을 주었던 '곰의 장소'였던 야마가타가 정답을 알려주어 퀴즈에 진정한 매력을 깨닫게 해 주었다 - 가 훨씬 나았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혼조가 도박을 벌인 이유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결정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요.
진상이 실망스러웠던건 혼조의 묘사가 별로였던 탓도 큽니다. 도쿄대 의대 출신의 천재로 사전을 머릿 속에 집어 넣고 있다는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인 설정도 별로고, 어린 시절 학폭같은 불필요한 서사를 등장시킬 필요도 없었습니다. 앞서 말한 '곰의 장소' 이야기로 끌고갈게 아니었다면 말이지요.
그래도 퀴즈를 단순한 게임이 아닌 삶과 연결된 진지한 시합으로 그려내며, 미스터리적 긴장감과 감성적 깊이를 동시에 갖춘 좋은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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