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옥토버리스트 - ![]()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비채 |
가브리엘라는 딸 세라를 유괴당했다. 유괴범 조셉은 가브리엘라의 사장인 찰스 프레스콧이 가지고 있던 '옥토버리스트'와 돈 50만 달러를 요구했다. 가브리엘라는 우연히 만나 친해진 펀드회사 대표 대니얼의 도움으로 리스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조셉과 협상에 나서는데...
제프리 디버는 링컨 라임 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지만 이 작품은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닙니다. 어딘가의 리스트에서 걸작이라고 추천했던 기억이 나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무슨 리스트인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요.
36장에서 시작해 1장으로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영화 "메멘토"에서 처음 접했던 방식인데, 소설로는 처음 접해보았습니다. 이 역순 전개는 단순한 실험을 넘어서,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는 중요한 구조적 장치로 작용하며, 덕분에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선입견이 하나씩 깨지는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랭크가 칼로 사람을 찔러 죽였는데 실제로는 게임 속 상황이었고, 교회 집사라 선한 인물일 거라 생각했던 노란 셔츠의 딕슨이 사실은 킬러였으며, 엘레나가 차에 치인 줄 알았던 장면도 알고 보니 연기였다는 식입니다.
이러한 일종의 반전 요소들은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강도가 더욱 커져 긴장감을 높입니다. 대니얼이 킬러였다는 첫 번째 반전을 시작으로, 가브리엘라는 대니얼을 잡기 위해 함정 수사를 벌이던 형사였다는 두 번째 반전, 그리고 가브리엘라 역시 다른 조직과 연계된 킬러로 애초에 대니얼 일당을 제거하는게 본래 목적이었다는 마지막 반전으로 이어지거든요.
결말에서는 대니얼 일당은 가브리엘라의 계획대로 조셉에게 살해당하고, 경찰이 가브리엘라의 행방을 놓쳤던건 그녀가 소지품을 쓰레기차에 버렸기 때문이었다는 등 모든 떡밥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도 합니다. 이런 떡밥에는 '옥토버리스트'는 대니얼을 유인하기 위해 대충 만들어낸 맥거핀으로 명칭조차 "옥토버 페스트"에서 따왔다던가, 대니얼이 의미심장하게 언급했던 ‘프리스턴 솔루션’은 알고 보니 요트 커버 색깔에 불과했다는 등도 있고요.
책 맨 마지막에 수록된 목차의 진짜 제목들이 이런 정리를 도와주는데, 예를 들어 챕터 35의 제목은 ‘대니얼의 무덤’입니다. 대니얼은 이 챕터에서 죽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역순 전개가 반전을 위한 장치로만 활용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야기의 설득력을 희생하고 맙니다. 예를 들어, 케플러와 수나리 형사는 이미 가브리엘라가 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작품 중반까지 이에 대한 단서나 암시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내용을 전부 이해한 뒤 돌이켜보면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요 반전들이 충분한 복선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한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가브리엘라가 형사이자 킬러였다는 설정, 대니얼의 정체 등이 대표적인데요. 모두 과거 사건이나 대화 장면을 갑자기 삽입해 설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반전은 많지만 정교하게 설계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특히 가브리엘라가 킬러였다는 반전은 반드시 필요했는지 의문이에요.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전체적인 설득력이 떨어져 버린 셈입니다.
또한 프랭크처럼 중요한 인물처럼 보였지만 결국 큰 역할 없이 사라지는 인물들이 많았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 보이기는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이야기의 밀도를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독특한 형식과 실험 정신은 분명히 흥미롭지만, 반전 위주의 전개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전체적인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굳이 찾아 읽을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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