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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evernote : 별점 4점

뭔가를 쓰고, 기록하고, 보존하는 목적으로는 가히 최고의 앱이라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글과 자료를 쓰고 수정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빠르고 동기화도 잘 되면서 각종 자료 공유도 용이하고, 클리핑 기능도 괜찮은 등 제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대부분 갖췄습니다. 거진 일년정도 쓰면서 딱 두번 동기화 실패로 글을 날려먹은 것을 제외하면 크게 흠잡을데가 없네요. 

구태여 흠을 잡자면 스마트폰으로 클리핑할 경우 사진이나 글을 못 가져오고 링크만 가져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은 Read It Pro와 병행 사용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Read It Pro 만큼의 클리핑을 보여주면 좋겠네요. 뭐 개선되리라 생각은 되지만요. 

사실 기능상의 흠보다는 회사에서 보안을 이유로 사용을 막아놓아 활용도가 떨어지는게 저 개인에게는 더 큰 문제입니다. 집에서처럼 크롬 브라우져에 플러그인을 설치하여 클리핑 용도로 활용한다면 유료라도 적극적으로 사용할텐데, 지금 상황으로는 PC에서의 활용이 거의 불가능해서 스마트폰과 PC에 자동으로 백업받는 기능과 거의 채울일 없는 업로드 용량 차이 말고는 딱히 다른건 없거든요. 회사에서 에버노트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한 이번 달 이후에는 두번 다시 프리미엄 버젼을 쓸일은 없을 것 같네요. 클리핑하는게 있어야 그나마 용량을 쓸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죠... 

그래도 별점은 4점입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사용하는 앱이기에 활용성도 좋고 사용성도 최고 수준일 뿐 아니라 "공짜" 이기 때문이죠. 아직도 쓰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적극 추천드립니다.

2012/03/23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 조르주 심농 / 이상해 : 별점 3점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열린책들

14호 수문 위쪽 정박지 마굿간에서 발견된 시체. 피해자는 술과 환락이 가득한 요트 여행 중인 영국인 램슨 경의 아내 마리로 밝혀졌다. 메그레에게 램슨 경의 식솔이자 마리의 정부인 윌리가 찾아와 마리가 주었다는 진주 목걸이에 대해 이야기한 날, 윌리마저도 시체로 발견되는데...

메그레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운하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수문, 말로 끄는 배와 요트가 가득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들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작품에 제대로 녹아들고 있습니다. 일찍이 자신의 배를 타고 다녔던 경험 덕분이었을까요? 묘사도 엄청납니다. 특히 이 작품의 "축축함"에 대한 묘사는 한마디로 최곱니다. 읽다 보면 축축한 물 냄새가 느껴질 정도예요. "갈레 씨, 홀로 죽다"의 더위 묘사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에도 추리소설에 걸맞는 '미스터리'가 존재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마리의 시체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질퍽질퍽한 흙바닥을 송진 흔적 이외에는 깨끗한 상태로 통과해서 마굿간에 숨겨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수께끼가 그다지 대단한 트릭이 아닌, 이십여 년 전 한때 부부였던 남녀의 과거에서 비롯된 자발적 행동이었다는 것과 진상은 별거 없는 용의자 신분 조회로만 밝혀진다는 결말 탓에 정통 추리소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능해 보이는 마부 장이 원래 의사였지만 막노동 끝에 지능이 퇴화한 것이라는 진상은 황당할 정도였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진작에 탈옥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친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긴, 그랬다면 또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그 외에도 주요 용의자인 램슨 경에 대한 묘사는 작위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점, 마리가 장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 윌리 살인에서 보여진 여러 가지 우연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제목 자체가 완벽한 스포일러라는 점 - 누가 봐도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가 수상하다! 라고 느낄 것이기에 -에서 조금 감점할 수밖에 없네요. 아무리 드라마가 강조된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제목에서 설명해 줄 필요는 없잖아요. 이 제목 탓에 램슨 경의 수상한 모습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고요. 다른 메그레 시리즈처럼 그냥 "14호 수문"이라던가 "운하"라던가 하는 식의 제목이었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나름의 트릭과 우직하고 한결같은 묘사는 역시나 읽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며, 메그레 시리즈 최고 걸작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메그레 경감의 저돌적인 (하루에 60여 km를 자전거로 달려 배를 따라잡는 등) 활약과 함께 진지하고 묵직한 묘사 등 시리즈의 장점이 잘 살아있는 준수한 수준의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2/03/18

화성의 존 카터 - 버로우즈 작 / 최인학 역 : 별점 2점

존 카터 청년이 애리조나의 산골짝에서 금광을 찾고 있을 때의 일.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카터의 몸은 어찌 된 셈인지 우주를 날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화성에 착륙하고 있었습니다.

자, 그럼 화성은 어떤 세계였을까요? 카터는 말 같은 8개의 발을 가진 괴물 짐승을 탔으며, 4개의 손을 가진 거인의 일행도 만났습니다. 그들은 녹색인이었습니다. 그밖에 붉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붉은 사람은 지구의 사람과 흡사했습니다. 여기는 싸움을 잘하는 자가 뽐내고, 항상 싸우는 것이 일인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카터는 쾌남자였습니다. 정의를 존중하는 사나이였으며, 칼싸움의 명수로서 무서움을 모릅니다. 녹색인에게 포로가 된 붉은 사람의 아름다운 왕녀를 지키며 놀라운 활약을 거듭합니다. 여러분, 통쾌한 카터 청년을 응원해 주십시오. <책 소개에서 발췌>

최근 개봉한 블록버스터 무비 "존 카터: 바슘 전쟁의 서막"의 원작으로 유명한 작품. 영화 덕분에 정식 완역본도 출간되었지만 저는 직지 프로젝트의 아이디어 회관 문고본으로 읽었습니다. 아동 대상의 번역일 뿐 아니라 굉장히 요약되어 있어서 읽기는 좀 불편했지만(솔직히 번역은 아이디어 회관 문고본 최악 1, 2위를 다툴 듯), 뭐 일단 읽었다는 데 의미를 둘까 합니다.

내용은 다른 곳에서 접했던 대로 굉장히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 아니 판타지더군요. 무대만 살짝 바꿔놓으면 전형적 이세계 판타지 군웅물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해당 장르의 전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세계로 소환된(?) 주인공과 이세계에서 가지는 특수한 능력. 그리고 이세계 종족 간의 거대한 전쟁에 휩쓸리고 그곳의 공주를 돕게 된다는 설정. 이세계의 기이한 애완동물. 음...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신비의 세계 엘하자드 TV ver."?

이러한 판타지적 전형성에 더하여 역시나 전형적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복수"를 사크족의 타르가스 대장 캐릭터를 통해 구현해 놓은 등, 흥행이 될 만한 요소는 다 들어가 있더군요. 이 정도면 히트를 치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겠죠.

그러나 아쉽습니다. 사실 이 작품이 출간된 시기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전형의 원조라 해도 무방할 터이나, 그동안 국내에는 정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오히려 이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후대 작품들 때문에 이 작품의 참신함이나 신선함이 훼손되어 버렸으니까요. 무려 백여 년이 지난 뒤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예산의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했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하려나요? 문제는 영화 역시도 너무 늦게 제작되어 참신함이나 신선함이 없다... 라는 이유 탓에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겠지만요.

사실 정식 번역된 결과물은 훨씬 재미있고 뛰어날 테지만 저 역시도 같은 이유, 즉 새로운 부분이 거의 없을 것이기에 구태여 원전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아바타" 전에는 소개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늦은 게 아쉬울 뿐이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SF라는 말에 어울리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것에서 조금 놀랐습니다. 에테르 세계관과 라듐엔진 등의 몇몇 과학장치들 등이 그러한데, 특히나 중립을 지키는 공기 정화 시스템의 아이디어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이 역시도 "토탈 리콜"의 원전격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2012/03/12

워 사이언티스트 - 토머스.J.크로웰 / 이경아 : 별점 3점

워 사이언티스트 - 6점
토머스 J. 크로웰 지음, 이경아 옮김/플래닛미디어

역사 속에 길이 남은 전쟁 무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을 다룬 미시사 서적. 기원전부터 현대에 걸친 기간 동안 전쟁의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 25개의 무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하늘이 내린 무기 - 칼리니쿠스의 액화
  • 투석기, 갈고랑쇠, 살인 광선 - 아르키메데스의 기이한 전쟁 무기
  • 최초의 생물학 무기 - 한니발의 독사 항아리
  • 하늘을 날며 춤추는 화약 - 위백양의 진천뢰
  • 신에 맞선 행위 - 제갈량이 개량한 연발 석궁
  • 르네상스 시대의 만물 수선공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관총
  • 결집된 화력 - 마랭 르 부르주아의 부싯돌식 방아쇠
  • 천재의 노력 - 데이비드 부시넬의 잠수함
  • 매우 부도덕한 행위 - 윌리엄 콩그리브의 로켓
  • 안전하고 영양 많은 - 니콜라 아페르의 통조림 식품
  • 권총 - 새뮤얼 콜트와 서부를 이긴 리볼버
  • 죽음의 상인 - 알프레드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 군을 무용지물로 만들다 - 리처드 개틀링의 기관총
  • 느리지만 효과적인 -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 석류를 닮은 - 수류탄을 완성한 윌리엄 밀스
  • 화학을 악용하다 - 프리츠 하버의 독가스
  • 불타는 관 -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군용기
  • 캐터필러 이동 요새 - 랜슬롯 드 몰의 탱크
  • 전염병 지역 - 이시이 시로와 세균전 과학자들
  • 세계의 파괴자 -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 구조 임무 - 최초의 헬리콥터를 만든 이고르 시코르스키
  • 반향을 기다리며 - 레이더를 발명한 로버트 왓슨와트
  • 달을 향하여 - 베르너 폰 브라운의 V-2 로켓
  • 가장 도덕적인 무기 - 새뮤얼 코언의 중성자탄
  • 총알 잡기 - 스테파니 크월렉의 방탄 섬유

이런 류의 책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워낙 잘 알려진 무기들 - 예컨대 다빈치의 무기들이나 다이너마이트, 독가스, 원자폭탄 등 - 도 포함되어 있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약점은 존재하나, 무기보다는 발명자를 중심으로 소개해 주면서 다른 유사 도서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발명자의 신상과 개인사, 말년과 후일담까지 소개해주는 꼼꼼함도 좋았어요.

25개의 병기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칼리니쿠스의 액화", 즉 그리스의 불에 대한 이야기와 새뮤얼 콜트의 리볼버,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윌리엄 밀스의 수류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불은 다른 문서 등을 통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 비밀무기와 그 제조법이라는 게 정말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런 비밀은 보통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딱 한 가지, 공기와 접하면 자연발화하는 물건은 아니었을 테니(그렇다면 과학을 넘어 마법의 영역이겠죠?) 따로 불을 붙였을 텐데, 그렇다면 공격하는 쪽도 리스크가 있는 만큼 방법이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호기심 해결사"에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그리고 새뮤얼 콜트는 이른바 "육혈포" 발명 뿐 아니라 사업가적인 수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뢰의 발명자 로버트 화이트헤드가 특허권을 팔지 않고 발명의 비밀을 독점하였으며, 그의 발명을 모방한 경쟁자들은 여지없이 실패하였다는 부분도 재미있었고요. 셜록 홈즈 시리즈의 비밀 설계도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의 손녀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잠수함 함장 폰 트라프와 결혼하여 일곱 아이를 남겨두고 사망한 뒤, 폰 트라프가 견습 수녀 마리아와 결혼한다는 후일담(?)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류탄 이야기에서는 수류탄 자체보다는 "척탄병"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었습니다. 손으로 폭탄을 던진다는 한자어 그 자체에 충실한 명칭이라니... 그나저나 프리미어 리그 스토크시티의 가공할 드로잉 능력을 갖춘 인간 기중기 로리 델랩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전쟁 때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척탄병이 되었을 거예요. 아니, 야구선수들이 더 적당할려나요?

이렇듯 재미있는 기획이고, 세세한 정리와 소개는 정말이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사이언티스트로 포장하여 소개한 경우가 제법 있다는 것은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고대의 예가 특히 많은데, 제갈량이나 한니발 같은 경우겠죠. 물론 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고, 등장한 발명품들이 전쟁의 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기에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만... 오히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입니다. 많기는 한데 정작 중요한 무기 도판은 거의 없는 탓입니다. 석궁(쇠뇌), 화승총, 로켓, 수류탄 등 기본적인 도판 몇 장이 구조나 원리를 더욱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무기들이 많은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 설명하는 무기 중 제대로 된 도판이 등장하는 무기는 부시넬의 잠수함, 개틀링의 기관총, 화이트헤드의 어뢰, 시코르스키의 헬리콥터 정도뿐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도판만 조금 더 충실했더라도 별점은 1점 정도 더 높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전쟁이나 병기 관련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12/03/09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조세핀 테이 / 권영주 : 별점 3점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6점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검은숲

어느 봄날 오후 4시, 로버트 블레어는 이제 그만 퇴근할까 생각 중이었다.

40줄에 접어든 독신 변호사 로버트 블레어는 어느 날 퇴근 직전에 사건 의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프랜차이즈 저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는 매리언 샤프였다. 의뢰 내용은 샤프 모녀가 유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유괴당했다고 주장하는 소녀 베티 케인의 디테일한 증언 때문이었는데...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인 18세기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을 현대물로 재창조한 독특한 픽션입니다(현대물이라고 해도 작품이 쓰여진 1948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요.). 이런 저런 리스트에서 고전 걸작으로 선정되었던 유명한 작품으로, 장르와 성격은 다르지만 실제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진리는 시간의 딸"과 비슷합니다.

이런 저런 리스트에 선정될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갖추고 있습니다. 추리물, 법정물로서의 가치는 낮을지라도, 중요한 증언(첫 진술의 허점, 베티의 유혹에 대한 증언, 파트타임 도우미의 위증)을 밝혀내는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충분한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 보기 드문 짜증나는(!) 영국인 심리 묘사와 캐릭터 설정, 재치 있으면서도 지적인 영국식 대사, 자존심 강한 영국 신사 스타일의 해피엔딩 등, 고전 영국 본격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길 거리가 한가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눈 색깔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독특한 (짙은 청색 눈: 성적으로 문란 (매리언 샤프), 연푸른색 눈: 말주변 좋은 거짓말쟁이 (핼럼 경위)) 설정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아, 이 얼마나 영국적인가요!

그러나 비록 억지스러운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팩션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진리는 시간의 딸"에 비하면, 이 작품의 추리적 완성도는 많이 부족합니다. 이유는 유괴 사건의 핵심인 베티 케인의 주장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관만 슬쩍 본 저택 내부의 배치나 가방에 대한 증언이 너무 상세하고 정확해서, 단순히 때려맞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원래 사건에서도 증언이 핵심 요소였고, 작중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베티 케인의 카메라 같은 기억력, 당시 영국 저택들의 유사한 구조, 가구, 장비 등)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를 설득하기에는 많이 부족해요. 사건이 뉴스화된 이후에는 채드윅이나 그의 부인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물론 불륜이기에 드러낼 수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하지만, 작중 설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한마디로 그녀의 증언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였고, 초반 몇 발자국만 운이 좋았을 뿐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게 과연 사건성이 있나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증인인 코펜하겐의 호텔 주인이 등장하는 장면 역시 극적이기는 하나, 결국 운과 우연이 겹친 결과일 뿐이라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이런 전개 때문에 추리적인 서사는 보잘것없고, 법정 드라마적인 요소만 살아 있는 묘한 구성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또한 영국식 관용어구의 사용이 지나쳐 "버터를 입에 물어도 녹지 않는다"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다소 과한 느낌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순진한 척하면서도 뒤로는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풀어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번역자가 영국적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한 의도였겠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단점이 명확하지만, 실제 있었던 미해결 사건을 토대로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여 창작한 픽션이라는 점과,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만큼은 뛰어납니다. 

저와 같은 고전 영국 본격 미스터리 팬들이나, 조셉린 테이, 프랜시스 아일즈,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012/03/08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 김찬별 : 별점 3.5점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 8점
김찬별 지음/로크미디어

이글루스의 유명 블로거 김찬별 님이 쓴, 여러 가지 우리 음식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요리나 역사 전공자가 아니어서 더 과감하게 쓸 수 있었다고 저자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데, 충분히 그럴듯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가끔 식당 벽에 붙어 있는 "기원전", 혹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음식"이라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죠. 물론 이 책에서처럼 대부분의 음식이 정말 일제강점기 이후 자리 잡은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식당 벽의 설명문보다는 설득력이 높다고 생각되네요.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부터의 역사는 비교적 디테일하고 치밀해서 자료적 가치도 높은 편입니다. 당시의 요리를 다룬 자료가 풍부해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를 기획한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로그에서처럼 화려한 전개는 아니지만, 저자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한 문체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도 실려 있는 음식 대부분이 지금 우리 식생활에서 중요한, 매우 평범한 음식들이기에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가 예상과 달리 생소한 음식 위주로 다뤄져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반찬과 분식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책에서 빠지지 않는 짜장면, 김치, 불고기, 커피 같은 주제뿐만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가 제육볶음, 감자탕, 호떡, 삼겹살, 떡볶이, 냉면, 된장찌개까지 다루고 있어 정말 생활 밀착형 요리 미시사 서적이라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후라이팬의 역사와 동일할 것이라 추정한 튀김의 역사, 일제강점기 대유행했다는 호떡 이야기, 지금의 삼겹살구이는 1980년대 이후 정착했다는 견해, 조선시대부터 존재했지만 재료와 조리법이 크게 변한 생선회 이야기 등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신문 연재물이었던 "주영하의 음식 100년"과 유사한 부분이 많고, "돈가스의 탄생", "모던의 유혹",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등 익숙한 도서의 인용이 많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만의 견해를 덧붙여 새롭게 구성한 창작 요리 같은 책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식과 대중음식의 기원과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특수성도 돋보이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12/03/03

추상오단장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5점

 

추상오단장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데도 책은 무선 제본되어 있었다."

무사시노의 헌책방 스고 서점에서 일하는 요시미츠에게 한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무명작가 카노 코쿠뱌쿠의 리들 스토리 단편이 실린 잡지를 찾고 있던, 본명이 기타자토였던 카노의 딸 기타자토 카나코였다. 그녀는 요시미츠에게 모두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작품 중 남은 네 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기발한 일상계 추리물"과 장편 "인사이트 밀"로 좋은 인상을 남긴 요네자와 호노부의 연작 단편 형식의 장편 소설입니다. 스고 요시미츠가 단편 소설을 찾는 과정과 각 단편의 결말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가 교차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단순히 무명 작가의 작품을 찾는 일상계 미스터리처럼 보였지만, 점차 단편들의 수수께끼들이 기타자토와 관련된 과거 사건, 즉 그의 아내(카나코의 어머니)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앤트워프의 총성" 사건과 연결된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반전과 추리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리들 스토리의 결말이 실은 두 종류로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도 돋보였고, 모든 단편이 '앤트워프의 총성' 사건 기사의 수수께끼를 밝히고 있다는 것도 그럴듯 했어요.

"기적의 소녀" – 소녀는 자고 있었나? 깨어 있었나?
"환생의 땅" – 죽이고 심장을 찔렀는가? 죽이기 전이었나?
"어두운 터널" – 남자는 아내에게 달려갔는가? 그렇지 않은가?
"소비전래" – 남자는 아내를 죽였나? 그렇지 않나?

또한, 스고의 성장기같은 잔잔한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일상계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강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점도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와 설득력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단장, 기묘한 우화 같은 단편들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탓입니다. 작품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내용이 너무 쉽게 흘러간다는 느낌이랄까요.  리들 스토리, 즉 열린 결말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장르의 취지와 걸맞지도 않고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제대로 밝혀놓지도 않는 식이니까요. 

기타자토가 단편들을 리들 스토리로 만든 이유도 명확하지 않으며, 마지막에 밝혀지는 결말—즉, 단편들이 의도적으로 뒤섞여 구성되었다는 진상— 역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카나코가 진상을 아는 것이 두려웠다면 차라리 죽기 전에 모든 원고를 태워버리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스고가 이 모든 단편을 찾아낼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설정 자체가 다소 작위적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작품 "눈꽃"의 결말이 앞선 네 작품에 비해 의외성도 없고 다소 시시하게 마무리된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마무리를 감안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평도 좋고 인기도 높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아이디어와 결말을 먼저 정한 후, 그에 맞춰 설정과 전개를 조정한 느낌이에요. 조금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구성과 설정이 들어갔다면 더욱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을 텐데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리들 스토리의 대표작으로 클리브랜드 모펫의 "수수께끼 카드"가 언급되는데, 굉장히 궁금해졌습니다.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은 작품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든 찾아서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