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8명의 여인들”을 보려고 했는데 애매한 시간땜에 바꿔서 보게 된 영화입니다. 몰랐는데 강동원씨가 무대인사를 하는 날이었는데 강동원씨가 등장하자 잠깐 난리가 나더라고요. 전 사실 누군지도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은건가?
깜찍한 외모, 순수한 미소, 유려한 말솜씨..100% 완벽美를 자랑하는 그녀, 영주. 하지만 그녀 본색은 고단수 사기경력으로 별을 달고 있는 터프걸. 영주는 가석방 심사를 탁월한 연기력으로 가볍게 통과한다. 출감하자마자 영주는 유일한 혈육인 언니결혼선물로 준비해둔 목공예 기러기 한쌍을 들고 부산행 기차에 오르는데.
한편, 용강마을 약사인 희철 역시 여친에게 프로포즈할 반지를 들고 부산으로 가던 중 영주를 만나게 된다. 첫 만남부터 영주에게 치한으로 오인 받아 죽도록 맞는 것도 모자라 낯선 남자에게 반지까지 소매치기 당한 희철. 가석방 중인 영주는 도둑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다시 반지를 찾아주려 하지만 이 와중에 그녀의 짐 가방과 희철의 반지가 뒤바뀌고 만다.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용강마을에 들어선 영주. 하지만 한번 꼬인 것이 어디 쉽게 풀리랴. 희철의 가족들은 반지를 가지고 나타난 영주를 희철의 애인으로 오인하고 진실을 밝히기엔 뒤가 깨림직한 그녀는 결국 약혼녀 연기에 돌입하고 만다.
여친에게 프로포즈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희철은 영주의 의도치 않은 사기극에 분노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상태. 희철은 가족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순진한 여인을 버린 파렴치한으로 찍히고 마침내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이제 영주와 희철, 진실과 거짓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영화는 실제 제작비는 25억이 들었다고 하니 최근 추세로는 상당히 저예산 영화입니다. 하지만 최근 본 국산 코미디 영화 중에서는 각본의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듯 합니다. 조폭이나 욕이 나오지 않는것도 마음에 들지만 초반에 최희철이 주영주의 사기와 여러 주변 상황에 속아 파렴치한으로 몰리게 되는 과정이나 용강이라는 순박하고 인정많은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여러 잔잔한 에피소드들도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 최근의 코미디 영화들 처럼 에피소드들의 시트콤식 나열이 아닌 큰 줄기를 가지고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가 좋더군요.
하지만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주영주의 교도소 동기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주영주와 한탕을 위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고추총각 선발대회” 를 이용하는 부분은 앞뒤가 잘 맞지 않더군요. 교도소 동기들을 크게 속여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가 구성상 필요했던 것 같지도 않고요. 물론 그 고추총각 선발대회 장면은 재미는 있었습니다만 기대했던 치밀한 주영주의 사기행각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아서 아쉽더라고요.
헐리우드 영화였다면 교도소 동기들을 고추총각 선발대회에서 잘 떨쳐내고 자기 자신은 무사히 빠져나온 주영주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고 마지막에 최희철이 찾아오는 것으로 무난하게 마무리 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같은 결말이지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몇몇 장면을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선생 김봉두”가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선생 김봉두는 좀 이런 장면이 많기는 했지만 이 영화는 몇몇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특히 주영주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에서 잘 처리하며 뭔가 뭉클한 것을 전해 주더라고요. 이런 감동과 눈물의 연속들로 조금 마지막 부분이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장면들이 잘 구성될 수 있는게 한국 영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좋은 영화였습니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따뜻한 테마로, 조폭이 나오지 않아도 코미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만에 보기드문 한국 영화랄까요? 요사이 한국영화가 잘 나가는 이유를 느끼게 해주는 여러 좋은 요소들이 많은 만큼 한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도 용강에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PS : 이른바 멀티플렉스라는 곳에서 보았는데 중간중간에 타 상영관에서도 “태극기..”를 하고 있어서 이런 다른 영화들 볼 시간이 너무 애매하더군요. 이렇다면 대체 멀티플렉스가 무슨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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