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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탐정학원 Q - 아마기 세이마루 / 사토 후미야 : 별점 2점

탐정학원 Q 22 - 4점
아마기 세이마루.사토 후미야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휴가기간동안 몰아서 본 만화책 중 하나입니다. 완결된 줄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완독했네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 완전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저연령을 타겟으로 한 만화인 탓입니다. 나이 서른 다섯이 읽으려니 정말 적응하기 힘들더군요.

탐정학원이라는 설정부터가 너무 유치합니다. 단 탐정과 조수 렌죠, 그리고 탐정 학원생들의 설정은 아케치 코고로와 소년탐정단을 다시 부활시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년탐정단'이 반세기 이전 아동물인데 이 낡은 포맷을 가져오다니, 시대착오도 정도껏 했어야죠. 게다가 지나친 만화적 상상력을 덧붙인 탓에 판타지에 가까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인공인 큐가 가장 평범한 인물이니 말 다했죠. 다른 Q클래스 친구들은 아무리 만화라도 지나치게 과장되었어요. 

후발 주자였지만 보다 큰 인기를 얻은 "코난"에서도 '거대한 악당 조직과 소년 탐정단'이라는 아이디어를 차용한 듯 싶은데, 포인트를 잘못 잡았습니다. "코난" 보다 과장된 캐릭터들과 설정들이 호흡이 길고 무거운 이야기와 합쳐지니 별로 재미를 느낄 수 없었거든요.

추리적으로 괜찮은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의 질과 수준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큽니다. 본격 추리적인 재미를 느끼기에는 부족했어요.  범죄 코디네이터라는 좋은 아이디어도 잘 살리지도 못했고요. 막강한 적인 명왕성의 범죄 코디네이팅이 하는 족족 실패니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결말도 허무합니다. 명왕성의 총수 킹 하데스와 단 모리히코의 격돌, 그리고 탐정학원 Q 클래스 학생들과 명왕성의 대결, 큐와 류의 대결 등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는데 별다른 트릭도 없이 서둘러 마무리해 버립니다. 허무할 정도였어요.

한마디로 평하자면 "김전일 작가가 그린 아동용 코난 아류작"입니다. 꾸준히 구입해 보다가 질려서 포기했었는데, 포기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작품에서 건질건 케르베로스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도 김전일의 요이치와 겹쳐져 버리긴 했지만요... 별점은 약간이나마 있는 본격 추리적인 요소를 감안해서 2점입니다만, 추천드리지는 않습니다.

2007/02/25

소년탐정 김전일 - 고쿠몬 학원 살인사건 (상 / 하)

소년탐정 김전일 2부 4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추리 만화 붐의 일등 공신인 김전일의 2부 두번째 이야기도 드디어 완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갈수록 밀도가 낮아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답습할 뿐인 수준 이하의 작품이라 이 시리즈가 계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심마저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팬으로서 무척 안타깝네요.
일단 이번 이야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트릭입니다. 과거 있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에서 트릭과 아이디어를 뽑아다가 쓴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새로운 점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핵심 트릭은 전에 제가 포스팅했던 "극한추리 콜로세움"과 동일할 뿐더러 그에 따르는 여러가지 장치들은 과거 김전일 이야기에서 많이 등장했던 여러가지를 짜깁기 한 것이었거든요. 게다가 김전일의 라이벌인 "지옥의 광대"가 살인 계획을 잡고 실행만 범인들에게 맡긴다는 탐정학원 Q의 살인 코디네이터 설정을 도입한 이야기 구조는 완전한 미스로 보여요. 이럴 바에야 스핀 오프 격으로 탐정학원 Q의 켈베로스가 등장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이야기는 왜 이렇게 긴건지....
사토 후미야의 그림체도 지금의 샤프한 캐릭터보다는 예전의 통통하고 굵은 느낌의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듭니다. 만화적으로는 더 보기가 힘들어졌다고 생각되네요.

다음 권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의무감으로 봐 주기에도 너무 지루해져 버렸습니다. 다음 권에서 뭔가 회심의 역작이 나와주지 않으면 제 마음속에서는 이젠 접어야 하는 시리즈로 전락해 버릴 듯 하네요.

2006/12/26

제 1회 독자 미스터리 대상 - 만화부분

제 1회 독자 미스터리 대상 시작.

decca님이 추진하시는 국내 최초 독자선정 미스터리 대상 투표인데 만화부분이 빠져 개인적으로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알라딘을 통해 올 한해 나온 추리 만화만 대~충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목을 불문하고 본격이나 정통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만 골라서. 시리즈는 재판이나 재간된 것이 아닌 신간만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가가 탐정 사무소 9~10 : 칸자키 스미

검은 사기 6 ~ 9 : 쿠로마루 / 나츠하라 타케시

곤충감식관 파브르 1~5 : 키타하라 마사키 / 아키야마 히데키

데스노트 7 ~ 12 : 오바 츠쿠미 / 오바타 다케시

도박 묵시록 카이지 31 ~ 33 : 후쿠모토 노부유키

라이어 게임 1 ~ 2 : 카이타니 시노부

명탐정 코난 52~55 : 아오야마 고쇼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4 : 하야미네 카오루 / 에누에 케이

미궁 시리즈 32 ~ 33 : 카미야 유

미녀형사 아시미 15 ~ 16 : 곤도 마사유키

범죄 교섭인 5 : 키 타카시

사신탐정과 우울온천 / 사신 탐정과 유령학원 1 : 사이토우 미사키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 ~ 3 : 아마기 세이마루 / 사토 후미야

원 아웃 15 ~ 17 : 카이타니 시노부

월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사사키 노리코

절대미각 식탐정 5 ~ 6 : 테라사와 다이스케

탐정학원 Q 20 ~ 22 : 아마기 세이마루 / 사토 후미야

CMB 박물관 사건 목록 1 ~ 2 : 카토우 모토히로

Q.E.D 23 ~ 25 : 카토우 모토히로

더 있긴 하겠지만 대충 대충의 기억과 조사로는 여기까지. 읽은 것은 반 이상이지만 새 시리즈는 거의 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탄력과 관성에 의해 보게되는 코난이나 김전일, QED 같은 시리즈는 선뜻 베스트라 내세우기가 좀 어렵네요.

그래도 단 한권을 꼽아야 한다면 구관이 명관, 명탐정 코난 53권과 QED 24권을 꼽겠습니다. 코난은 첫번째 에피소드는 그냥 저냥이었지만 두번째의 암호트릭이 꽤 괜찮았거든요. QED 24권은 QED만의 자그마한 에피소드인 크리스마스 에피소드가 마음에 들어서요. 

시리즈를 하나 꼽아보라면, 역시 몇년 전 부터 계속된 시리즈라 올해의 베스트로 꼽기에는 난감하지만 독특한 소재와 심리게임이 발군인 "원 아웃 을 꼽습니다.

2006/07/15

쭉쭉빵빵 꽃미녀 탐정단 (전 18권) - 키타자키 타쿠 : 별점 2점

스피드 걸이라는 만화로 조금 알려진 키타자키 타쿠의 정통(?) 추리 만화입니다. 

일단 간단하게 추리만화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자면, 추리 만화는 그동안 많이 있었고, 특히 추리강국 일본에서야 데즈카 오사무가 초기부터 쟝르물을 시도했을 정도로 그 저변이 깊고 넓습니다. 하지만 요새와 같이 하나의 "쟝르"로서 정의되고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온건 아무래도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 (소년탐정 김전일)" 대박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어요. 이후에 나온 이른바 "시리즈" 작품만 해도 한두개가 아니며 그 중에서도 "긴다이치 하지메" 처럼 누구누구의 후손이 활약한다는 이야기만 해도 제가 본 것만 두, 세개는 넘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시리즈는 유행에 편승했을 뿐 성공한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이유는 캐릭터나 추리적인 분위기만 유사하게 잡았을 뿐, 추리물의 기본 - 잘 짜여진 단서들, 정교한 트릭 등 - 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긴다이치 소년이 추리만화 쟝르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다른 유행에 편승한 작품들이 인기에 있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쟝르가 활성화 되는데 공헌한 건 "명탐정 코난"입니다. 조금 낮은 연령 취향의 설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나름대로 정교한 트릭을 선보이며 정통 추리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며 긴다이치 소년과 추리만화의 양대산맥을 이루었지요. 긴다이치와 코난의 성공과 "학원 추리물"이라는 쟝르물로서의 확고한 자리매김으로 이후에 등장하는 작품들도 정해진 공식을 잘 따라 추리와 트릭만 뒷받침 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쟝르로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 이후의 작품들로 준척급 이상의 성과를 거둔 작품은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나 "탐정학원 Q", "Q.E.D" 등이 있겠네요.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지금 소개할 이 "쭉쭉빵빵 꽃미녀 탐정단"도 이러한 "추리물"과 "시리즈물"이라는 정해진 공식에 충실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리즈를 끌고가는 탐정 캐릭터의 독특함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 "TriColore"의 멤버인 시라세 아키라거든요. 여자라는 점과 아이돌이라는 신분이 타 추리물 탐정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죠. 

주인공의 라이벌로 "괴도 리스트"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 역시 공식에 충실한데 김전일의 괴도신사나 코난의 괴도 키드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거기에 시리즈 중반 이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작품 전체를 꽤뚫는 악역인 - 김전일의 요이치나 코난의 검은 코트의 사나이들에 대응하는 - 연쇄살인마 "산타클로스"의 존재마저도 공식대로입니다. 

또한 옴니버스 시리즈물로 구성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TriColore"가 연예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큰 기둥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됨으로서 단편물로서만이 아니라 긴 호흡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며, 그 외에도 고교생인 아키라의 학교 생활이나 청춘물 같은 사랑 이야기, 협력자 격인 경찰, 여러 다양한 친구들 등 친숙한 설정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 공식에 충실하다고 다 좋은 추리만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공식보다는 추리, 그리고 트릭이 추리만화라는 쟝르의 가장 중요한 점인데 이 만화는 유감스럽게도! 정통 추리물에 걸맞는 멋진 추리적 요소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동기나 배경 설명 등은 꽤 그럴싸하지만 본격적인 추리 부분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맥이 빠질 정도로 어이가 없거든요. 다이잉 메시지, 과학적 트릭, 공간이동 트릭, 밀실 살인 트릭 등 거의 모든 추리적 트릭이 등장하고 있지만 문제가 없는 트릭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간단한 사건들의 소박한 트릭이 더욱 와 닿는 것은 정말이지 안타깝기만 하네요. 작가가 굉장한 트릭을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장면이 눈에 선하긴 한데 원체 트릭들이 한심한지라....

또 트릭이 별볼일 없는 데 비해 이야기가 너무 장황한 것은 작가 스스로도 그러한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겠지만 외려 이야기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들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시라세 아키라의 아버지가 고고학자라는 설정, 다른 멤버인 리나, 카나코의 가족 이야기들은 군더더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시라세 아키라가 학교에서는 정체(?)를 숨기고 히유가 아키라라는 본명으로 안경하나 끼고 다니면서 정체를 숨긴다는 슈퍼맨같은 변장 설정 역시 사족에 불과하고요. 그 외에도 후반부로 가면 그림쪽은 확실히 좋아지긴 하지만 전작에 비해 뭔가 무뎌진 듯한 뎃셍 등 그림에서의 문제도 눈에 많이 띄는 것, 노출이나 므흣(?)한 장면들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추리할 때에는 찬물을 머리에 끼얹고 추리하는 아이돌 시라세 아키라라는 존재만으로도 인기 시리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긴 했습니다. 추리물을 제외한 부분은 여러 인물들의 애정 관계나 인물 설정, 그리고 아이돌에 관한 여러 디테일 등으로 비록 뻔하지만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부분이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주요 멤버인 카나코가 개인 사정으로 탈퇴하는 것으로 하여 그룹의 멤버 체인지를 한다던가,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주인공들의 헤어 스타일이 바뀐다던가 하는 디테일이 마음에 들더군요. 이러한 재미때문에 18여권에 이르는 꽤 긴 시리즈로 연재된 것 같지만 위에서 설명한 추리만화로서 가지고 있는 결정적 약점, 즉 트릭이 후지다!는 것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인기가 없는 것을 떠나 다른 어디서도 관련 글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마이너 만화이지만 추리 매니아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얼마전 완결편까지 전권 구입에 성공한 기념으로 리뷰를 남깁니다. 차라리 절판된다면 책의 가치가 본의 아니게 올라갈지도 모르겠군요.

2021/11/13

노킹 온 록트 도어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노킹 온 록트 도어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우리 탐정 사무소의 현관문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지 않다.
차임벨이나 초인종, 노커 따위도 없다.
따라서 방문자들은 반드시 맨손으로 문을 노크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크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대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새로운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불가능 전문 고텐바 도리, 불가해 전문 가타나시 히사메, 두 명의 탐정이 함께 운영하는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 의뢰받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완벽한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작품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이 사용되어 있으며, 이를 추리하기 위한 단서들도 독자 시점에서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추리 소설 황금기 시절 대표작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에요. 과연 신세대 본격물로 유명했던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다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배경 본격물의 지닐 수 밖에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불가능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대물에 적합할리 없지요. 의뢰를 받기는 하는데, 보수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 모순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트릭들도 마찬가지에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트릭이 많은 탓입니다.

캐릭터도 아쉬웠습니다. 고텐바 도리가 특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탐정이라는 자의식이 넘쳐나는 캐릭터 묘사 자체가 영 별로였거든요. 우라조메 덴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캐릭터의 독특함과 매력은 훨씬 못 미칩니다. 히사메는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나마 조금 낫기는 했습니다만, 도긴개긴이었어요.

게다가 한 명은 불가능, 즉 하우더닛 쪽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불가해, 즉 와이더닛 쪽 전문가라는 설정은 최악입니다. 와이더닛 탐정 히사메의 존재는 아무리봐도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 히사메가 '불가해'를 풀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다이얼 W를 돌려라"밖에는 없습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에서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칩 트릭"에서는 트릭을 풀어냈지만 이는 이토기리 미카게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불가능 범죄에 대한 내용이라서 설정상으로는 히사메가 활약하면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반대로 불가해 상황이 등장하는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에서는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진상은 도리가 풀어냅니다. 이 역시 설정에 반하는 작품인 셈이지요. 대체 왜 두 명의 탐정이 필요했던걸까요? 셜록 홈즈와 그 라이벌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현대물에 가당키나 한 설정도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둘이 있을 때 뭔가 재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종일관 둘의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어요. 추리를 하면서 둘 사이의 티키타카가 빛났던건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가 유일했습니다. . 

아울러 악당들을 위해 트릭을 설계해주는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광대 요키치나 "탐정학원 Q"의 케르베로스와 같은 만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만들며, 경찰 쪽 협력자이자 친구인 우가치 기마리 경위가 막과자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설정들도 만화적이라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격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점들로 볼 때 차라리 만화화 버젼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킹온록트도어" 

살해당한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의 미망인 미즈에가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화가는 잠긴 작업실에서 등에 칼에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작업실은 밀실이었다. 남겨져있던 화가의 풍경화 여섯 점은 액자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 중 한 점은 온통 새빨갛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두 탐정 및 관련된 모든 설정이 소개되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작입니다. 트릭은 그림 여섯 점을 쌓아서 문 앞에 놓고, 카펫으로 덮어놓았던 겁니다. 그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문을 열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지요. 문이 잠겨있던게 아니라요. 그림 두께만큼 카펫 길이가 부족해져서, 맨 위 그림은 카펫 색깔로 덧칠했던게 새빨간 그림으로 남게 되었고요. 

범인은 걸쇠를 열 도구를 가져와 달라는 핑계로, 함께 있던 어머니와 미술상을 아래로 내려보내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잠겨져 있지 않았던 문을 여는 척 했던 화가의 아들 류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본격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트릭의 핵심인 복도의 폭과 레드 카펫의 존재, 그림 크기와 캔버스 두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서였던, 문을 두드릴 경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얀 페인트 가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빼 놓지 않고요. 트릭을 파헤친 뒤, 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전개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그림을 카펫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친구인 미술상이 그림을 밟게 만드려는 목적이었다는 히사메의 추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모욕받았다는 동기는 명확했고, 작업실을 밀실로 만들려는 목적도 확실해서 이를 불가해 상황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밀실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마지막 히사메의 추리가 없었다면, 아니, 히사메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사건 중개인 진보가 받아온 의뢰는 극단 "목이버섯"의 리더 젠다 미카 살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속옷만 입은 채 연습실의 물이 틀어져 있는 욕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가 짧게 잘린 채였다...

진상은 젠다 미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던 겁니다. 애인 오쿠데라로 변장하기 위해서요. 연습실에서 다투다가 애인 오쿠데라를 목졸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시체를 옮기기 위해 큰 상자 속 짐을 비운 뒤, 그 안에 시체를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연습실에서 시체가 발견되면 젠다 미카가 범인이라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짐은 다른 극단원 니시베를 시켜 옮기고, 자기는 오쿠데라로 변장해서 극장을 방문한 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사라질 속셈이었지요. 그럼 극장을 방문했던 오쿠데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할거라 여긴거지요. 그러나 오쿠데라는 죽지 않았었고, 의식을 회복한 후 그녀를 목졸라 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기묘한 상황을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하는 전개는 좋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본격 추리 소설로는 완벽했어요.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추리도 합리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편보다도 설득력은 약했습니다. 일단 젠다 미카의 계획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들 과학 수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검시가 이루어지면 오쿠데라의 사망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 이전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찰은 극장으로 옮겨진 커다란 '짐'의 존재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겠죠. 

머리카락을 흉기로 썼을거라는 히사메의 최초 추리도 용의자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목에 남은 흔적으로 흉기가 뭔지는 파악이 가능했을 테거든요. 죽은 줄 알았던 오쿠데라가 일어나사 젠다 미카를 다시 살해했다는 진상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 불가해한 상황 풀이인데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도리가 진상을 풀어낸다는 전개도 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라면 두 명의 탐정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설득력 높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는 추리 퀴즈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던 작품입니다.

"다이얼 W를 돌려라" 

30분 간격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첫 번째 의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어달라는 나가노사키 히토시의 의뢰였다. 유언장에 남겨진 대로, 금고 위 아래 다이얼을 돌렸지만 금고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뢰는 한 밤중 산책을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는 경찰은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며 찾아온 시마즈 나쓰코의 의뢰였다. 두 탐정은 각각 사건을 맡아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결국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로 금고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이 금고를 뒤집어 놓았던건, 윗면에 할아버지를 죽일 때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고요. 금고가 뒤집혔다는걸 알아낸 히사메의 추리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실제로 살해당했던 것을 지팡이를 통해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도리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모처럼 컴비 플레이가 빛났네요. 이를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요.

고작 십만엔 정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지, 금고가 뒤집힌걸 그렇게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왜 탐정이 오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해 놓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칩 트릭"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하나와 스쿨의 핵심 용의자였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는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평소 서재 창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를 창 밖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살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도리와 히사메, 그리고 경찰 우가치의 대학 동기인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였다...

창 밖에서 쏜 총에 유바시가 맞아 죽은건 확실합니다. 입사각도 명확했고요. 그러나 그가 창 바로 앞에 있었던게 아니라면? 서재 중앙 지점에서 발판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높이가 높아졌던 탓에 입사각이 맞아 떨어졌던 거지요.발상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총 한 발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광등을 가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중심에서 빗나가 있어도 원거리 저격은 성공했을리 없어요. 그리고 메이드 고노에가 해고되지 않기 위해, 시체를 창 밑에 옮겨놓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해고되는 것 보다, 현장 조작이 더 큰 중죄잖아요? 

또 상황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유바시가 저격당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고, 경찰도 구태여 탐정을 불러다가 불가해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날만 우연히 유바시가 창가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불가해한 상황의,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던 이야기에요.

아이디어는 평가할 만 하지만, 현실성없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였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이 쌓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칼에 찔린 가쓰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까지는 가쓰히코의 발자욱 하나만 남아 있었고, 흉기인 칼에 지문은 없었다.

동생과 싸운 뒤 흥분한 가쓰히코가 갓 세척을 마친 식칼을 들고 동생 집으로 향하다가 실수로 쓰러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진상은 합리적이었지만, 흉기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던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에 묻었던 눈이 녹으면서 씻겨 나갔다는데, 현실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물 좀 묻는다고 지문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그렇다면 손바닥에 묻었던 피는 왜 안 지워진 걸까요?

이 진상보다는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가쓰히코 공장 직원 두 명이 공모했다는 도리의 추리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한 명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죽은척 하고, 그 뒤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죽인 시체를 짊어지고 간 뒤, 시체를 내려놓고 공범자를 짊어지고 오면 된다는 추리로 꽤 그럴듯했어요. 최소한 지문이 눈이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칼에 대해 잘못 말한건, 그냥 말실수였다고 해도 무방했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십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사무소의 여고생 아르바이트 구스리코는 심심해하던 탐정들에게 학교에 가다가 들었던 기묘한 말의 진상에 대해 추리를 부탁한다. 수상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했던, "십 엔 동전이 너무 없어. 다섯 개는 더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제목과 내용 모두 걸작 단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오마쥬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탐정이 서로 각자 추리를 말하고, 반론하며 서서히 진상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의 빌드업이 좋습니다. 탐정이 두 명인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상한 남자는 꽤 여러 번 공중전화를 사용하여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남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이유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전 갯수를 어림잡았다는 점과 평일 낮이었던 시간을 근거로 둘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번호부를 통해 알아낸 특정 지역에 사는 주부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추리합니다.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이야기 특성 상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았을텐데 추리가 진짜였다는게 드러나는건 좀 별로였어요. 전화번호부와 공중전화가 과연 21세기에 먹힐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거든요. 저만 해도 집에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충분하니까요. 또 수상한 남자의 의도대로 형편좋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 들, 1분 정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목소리로 그 주부가 누구인지 특정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피해자가 마침 떨어트린 화과자 포인트 카드로 범인들이 그녀가 사는 동네와 성을 알아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변주로 적당한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추리 놀이는 놀이로만 끝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중의원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독살당했다. 후원회 파티에서 접객 담당 종업원이 날랐던, 똑같은 잔 10개 중 도자마 간조가 무작위로 고른 한 잔에만 독이 들어있었다. 독살 방법은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가 설계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리는 처음에 의원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비서가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에 독을 넣었다고 추리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게 밝혀져 실의에 빠집니다. 다른 작품과는 다른게 히사메는 트릭 담당이 아니라며 위로만 할 뿐이고요. 그래도 위로 덕분인지, 곧바로 도리는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독은 이미 마셨던 것이고, 샴페인 잔이 아니라 의원이 서 있던 위치를 가늠하여 바닥에 독을 발라 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추리와 전개 모두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던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의 착안점이 의원의 유류품이었던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여러가지 약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는데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해 마실 수 있는데, 그걸 항상 상비해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발라 놓았던 독이 떨어트린 샴페인 잔 속 내용물과 섞여, 삼페인에서 독이 검출되었다고 오인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지나치게 운에 의지했을 뿐더러, 현대 과학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본 걸로 보이니까요.

과거 도리가 목이 베여 죽을 뻔 했던 적이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동창 4명의 행보가 갈렸으며 도리는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고집하게 되었다는 과거사도 살짝 선보이지만 이야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 형성에 불과해서 거슬렸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05/11/11

추리 매니아가 본 소년탐정 김전일

akachan님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고 생각이 나서 저도 적어봅니다.

이 글에서 김전일에 대한 가치는 akachan님이 잘 설명해 주셨는데 과연 추리적으로는 어떨까요? 그것을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단 김전일 시리즈는 전부 퍼즐 미스터리에 가까운 정통파 추리물 입니다.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지며 이 와중에 여러 트릭이 등장하고 이것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데에서 지적 쾌감을 가져다 주는 쟝르라 할 수 있죠. 특히나 김전일 시리즈는 주간 연재물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어서 트릭과 범인과의 대결을 연재분마다 효과적으로 나열하여 독자에게 다음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솜씨가 대단해서 독자에게 작품에 몰입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만화"라는 쟝르적 특성 탓에 시각적으로 제공되는 정보가 소설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정보의 공정한 제공이라는 추리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독자가 만화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추리물이 만화와 만났을때의 모범 답안이랄까요? 이후 유사 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이야기 수준에 적합한 사토 후미야의 그림 솜씨가 결합하여 상승작용을 불러 일으킨 것이겠죠. 물론 연재 후반부가 되면 트릭 자체가 "숨은 그림 찾기"가 되어 버려 오히려 감점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최소한 중반부 에피소드까지는 무척이나 잘 이용했다고 생각되네요.

또한 에피소드의 거의 전 편에서 범인이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사건을 벌이는 것 역시 아주 큰 장점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건 비현실적 존재이건 간에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독자에게 감정이입을 시키면서 죄를 뒤집어 씌우는 대상이 대부분 존재하거든요. 심지어는 김전일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는 편까지 있으니까요. 이러한 전개 덕분에 김전일이 사건을 해결하려 하는 동기 부여가 가능할 뿐더러 진범을 밝히고 누명을 벗기는 과정의 흥미가 배가됩니다. 우연에 의한 사건 해결을 방지하는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할만 하고요. 사실 정통 추리물로 불리우는 작품들에서도 트릭에만 치중한 나머지 많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놀라울 뿐입니다.

비록 시리즈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부터는 이야기의 설득력과 밀도가 떨어지고 트릭의 수준도 떨어지는 등 장기 연재의 폐해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추리 만화계에서 아직까지도 독보적인, 추리 만화의 붐을 일으킨 것은 물론이고 설정과 캐릭터에 있어서 수많은 아류작을 만들어낸 ("누구누구의 몇대 후손" 등이 등장하는 등), 추리 매니아에게 언제나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PS 1 : 야마기 세이마루와 사토 후미야 컴비도 코난의 영향 때문인지 아동 취향의 모험물을 버무린 "탐정학원 Q'를 내 놓긴 했고 나름대로 히트도 쳤지만 이야기 전개가 빈약하고 설정이 유치해서 저에게는 크게 와 닿지는 않더군요. 비교해 본다면 역시 "김전일"이 대단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네요.
PS 2 : 그나저나 "부동고교"는 왜 이리 살인점과 피해자가 많은지.. 정말 굿이라도 당장 해야 합니다.

2021/03/07

ON 온 - 나이토 료 / 현정수 : 별점 1.5점

ON 온 - 4점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에이치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갓 형사과에 입사하여 서류 정리 업무를 맡은 신참 형사 도도 히나코는 미해결 사건 파일들을 암기하다가, 처음으로 자살로 보이는 어느 택배 배달원의 변사 사건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그 자살 피해자는 히나코가 암기 중이었던 미해결 성폭행 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다. 자신의 음부에 병을 박아 넣고 죽은 참혹한 시신은 당연히 살인으로 의심할 만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완벽한 증거가 곧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자신이 직접 자살하는 장면을 촬영한 스마트폰이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경찰서에 보관된 스마트폰 속 자살 동영상이 어느 날 인터넷 동영상 투고 사이트에 공개되고, 연이어 유사한 자살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일본산 범죄 스릴러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범죄자들이 연쇄 자살한 사건 수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범죄자들이 자살하게 만들었는지를 풀어내는게 핵심인데, 검시를 통해 자살한 범죄자들 뇌에 종양이 있다는게 발견됩니다. 당연히 자살은 뇌 종양이 원인이고요. 정상적인 검시 과정에서 밝혀진거라 추리의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때문에 추리의 여지를 남기고,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뇌종양을 만들었는지?"를 밝혀내는 후더닛+하우더닛 이야기로 흘러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구조를 만드는데 실패했습니다. 우선 후더닛 측면으로 보자면, 유력한 용의지 나카시마 다모쓰가 초반에 등장해서 범인이라는 인상을 팍팍 심어주는 탓에 점수를 줄 여지가 없습니다. 의외성이 전무하니까요. 

도도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양념통 지문과 자살 현장의 콜라병 지문이 일치한다는게 밝혀지는 클라이막스는 나쁘지는 않아요. 양념통을 나카시마가 만졌던 적이 있었고, 이를 통해 나카시마가 피해자 미야하라 아키오를 마지막에 만난 인물이라게 입증된 셈이거든요. 하지만 이미 나카시마가 근무하는 병원이 피해자들의 접점이라는게 드러난 이상, 곧 밝혀질 일이었어요. 뭔가 대단한, 결정적인 단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는 봐줄만 한데, 하우더닛 측면에서는 아예 빵점입니다. 상식적으로 뇌종양을 만들려면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했을겁니다. 이전에 읽었던 "숙명"에서 처럼요. 그러나 감옥에 수감된 사형수마저 종양이 생긴걸 보면, 다른 방법을 썼을 겁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전혀 셜명되지 않습니다!

나카시마가 끼고 있던 큰 반지가 자살을 시작하게 만드는 하이테크 장치였다는 설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초능력자가 염력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스캐너스"와 별로 다를게 없는 SF,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중간에 이런저런 가능성을 타진하며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조건반사, 최면술 조작이 차라리 나아 보일 정도입니다.

캐릭터들도 진부하거나, 묘사나 설명이 지나칩니다. 주인공 도도 히나코는 착하고 순진하다는 점에서, 이런 범죄 스릴러 속 스테레오 타입이었던 강단있고 강한 여형사가 아니라는 차별화 포인트는 명확합니다. 그러나 흔하디흔한 일본 컨텐츠 속 착하고 열심히 사는 여주인공 그 자체라서 스테레오 타입인건 마찬가지죠. 게다가 그녀가 절대적인 암기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왜 등장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서 별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않거든요. 히토미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잘생긴 점원에 대해 이야기한 걸 떠올린게 수사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는 합니다. 허나 이 정도는 절대 암기력까지는 필요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구태여 이런 초능력같은 설정을 붙일 이유는 없었습니다. 살인 방법과 더불어 작품의 현실성을 급락시키는 또 다른 원인만 제공할 뿐이었어요. "탐정학원 Q"스러운, 만화같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연쇄살인마 오토모 이야기는 진부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전개 상 불필요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카시마가 뇌를 조종하여 자살하게 만드는 장면을 히나코 앞에서 보여준다는,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위해 억지로 등장시켰을 뿐입니다. 살해당한 히토미가 언급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잘생긴 직원이 오토모라는게 밝혀지면, 체포는 시간문제였을테니 추리의 여지도 없고요. 그 외 범죄자들의 자살과 그들의 범행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거북했습니다. 지나치게 잔인한 탓이지요. 범죄자들이 천벌을 받게 만드는, 일종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합니다만 좀 지나쳤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천벌이 내리기를 바라는 독자의 소원을 충족시켜주며, 천벌을 위해 뇌를 조작해서 자살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꽤 흥미로왔습니다. 그러나 그걸 이야기로 잘 풀어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설득력도 낮고요. 싸구려 헐리우드 스릴러 수준에 불과해요. 시리즈라고 하는데, 후속권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