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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1

검은 옷을 입은 신부 - 코넬 울리치 / 홍연미 : 별점 2점

검은 옷을 입은 신부 - 4점
코넬 울리치 지음, 홍연미 옮김/페이퍼하우스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켄 블리스는 자신의 약혼 축하 파티장에서 추락사했다. 미첼은 자신이 거주하던 낡은 호텔방에서 독살당했다. 프랭크 모런은 자택 창고에서 질식사했고, 퍼거슨은 화실에서 화살에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네 명의 죽음은 모두 한 여인과 관련이 있었는데...

서스펜스의 거장 코넬 울리치(윌리엄 아이리시)의 대표작입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가죠. 참고로, 저는 오랫동안 제목의 "신부(Bride)"를 "신부(Priest)"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작품을 요약하자면, 연인을 잃은 주인공 줄리의 복수극으로, 성별이 바뀌긴 했지만 사실상 "상복의 랑데뷰"와 동일한 플롯을 가진, 자가 복제 표절작 남매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복의 랑데뷰"보다는 확실히 처집니다. 총 5명의 인물에 대한 복수가 펼쳐지는데, 여자 혼자 별다른 준비 없이 몸으로 부딪히는 느낌이라 긴장감이 떨어졌고, 작가 특유의 서스펜스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엄청난 미모 외에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주인공 줄리의 캐릭터도 평범했고요.

무엇보다도, 결국 엉뚱한 사람들을 오해로 죽여 나갔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게다가 복수의 원인이 된 줄리의 남편 닉 칼린의 죽음이 "동업자가 입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렇다면 닉 칼린 역시 어느 정도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어 복수 자체가 적반하장으로 느껴졌습니다. "상복의 랑데뷰"가 이 작품 발표 후 8년 뒤에 나왔다는 점을 보면, 작가 스스로도 단점을 깨닫고 보다 정교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미첼 사건에서 벽에 걸린 사진 등으로 사람을 분석하는 모습이나, 모런 사건에서 아이를 통해 정보를 캐내는 장면, 그리고 선량한 다른 사람들을 용의자로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줄리의 행동, 경찰이 줄리를 쉽게 포착하지 못했던 이유 등은 소소하게 건질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작가 특유의 문체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그들 한가운데에서 그의 얼굴은 깊은 연못 바닥에 가라앉은 흰 조약돌처럼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순백색 베일 아래쪽에는 조그마한 빨간 점 하나가 쉼표처럼 찍혀 있었다. 그녀는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 붉은 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었다. 마침표였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있더라도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동일한 플롯이라면 "상복의 랑데뷰" 한 작품만 읽어도 충분하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6/18

미스테리아 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5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구하게 되면 읽곤 하는 장르문학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 5호입니다. 작년 초에 출간된 한참 전 과월호지요. 언제나처럼 특집 기사와 신간 소개, 이런 저런 연재 기사, 인터뷰, 수록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관심 있던건 특집입니다. "음식 미스터리"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 속 요리'에 대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좋은 비교, 혹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소재가 진부하다는 겁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해 빠진 내용이에요. 도입부의 식인 천재 범죄자 한니발 렉터,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대표적입니다. 그나마도 인터넷을 뒤지면 알 수 있는 내용일 뿐이고요. 정작 기대했던 내용은 실려있지도 않습니다. 저라면 한니발 렉터의 '전두엽 소테'나 네로 울프의 '소시스 미뉴이'를 소개할 때 최소한 해당 음식의 레시피와 조리 사진을 수록했을 겁니다.
이어지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속 독약에 대한 소개는 '음식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기는 무리입니다. 차라리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같은 작품 소개가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작품 속 요리를 재현하는 코너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제와 연결되는 요리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미스테리아 측에서 별다르게 창작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참고 도서 속 - 주로 "미국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 -  요리를 재현한 것에 불과해요. 그나마 셜록 홈즈가 '해군 조약문'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던 "해군 조약문" 속 치킨 커리 정도만 어느정도 주제에 값할 뿐, 재현한 요리가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의 '10권의 맛있는 미스터리' 소개는 실망의 정점을 찍습니다. 기준, 근거를 알기 어려운 탓입니다. 일단 소개작 중 "스위트 홈 살인사건",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기나긴 이별"은 절대로 음식 미스터리로 포장할 수 없습니다. 억지에요. "어느 백만장자의 죽음"은 아슬아슬하게 음식 미스터리 범주 안에는 들기는 한데,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추천 도서로 떡 하니 내미는 행위는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는 빈말로도 좋은 작품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 외 작품들도 음식 미스터리로는 볼 만 하지만, 추천할만한 수준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특별 요리""맛" 외에는 모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주자면 1.5점 정도? 제 개인 프로젝트에 필적할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는 조금 안심했지만,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 힘든 기획입니다. 

다행히 특집 외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빼어난 리뷰가 많아서 "미스테리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간 소개 코너는 역시나,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좋은 리뷰들이 많더군요. 솔직히 읽어본 결과에 따르면 좀 과한 홍보의 결과물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번에 소개된 작품 중 마쓰모토 세이초의 "범죄자의 탄생"은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원작,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신부""상복의 랑데뷰"보다 낭만적인 애상으로 넘쳐흐른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완성도 면에서 천지차이니까요. 영상화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해 주면 좋겠습니다.

연재물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의 밀실에 대한 대담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써먹기는 힘들다는 단점은 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특히 다다미를 걷어내면 아마추어는 다시 깔 수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는 정보를 토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내 놓는 아이디어 - 다양한 기술자들이 등장하는 탐정물 - 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로관을 예로 들며 전기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 등 건축 전문가의 식견이 느껴지는 여러 코멘트들도 기억에 남고요.

한국의 50~60년대 추리 소설을 발굴한 추리소설 평론가 박광규 씨와의 인터뷰 역시 좋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재 사고와 관련된 논픽션, 폴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젊은 지식인 발라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웠는데, 특히 범인 크리스티안 발라와 그의 작품 "아목", 형사 브로블레브스키라는 키워드는 꼭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봐야겠습니다.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를 추적하며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다는 기획물인 '동아시아 미스터리, 정치적 죄와 서스펜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대중 서사의 최고봉이라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 "별이 차가운 밤이면"과 김내성의 "청춘 열차"는 틈 나는 대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두 편의 단편도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척박한 한국 장르 문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좋은 잡지이지만, 이번호는 특집이 너무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2편의 단편의 짤막한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나비 부인의 커튼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두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 건너편에 '나비 부인'이라는 카페가 개업했다. '나비 부인'은 가면을 쓰고 서빙하는 독특한 컨셉과 인테리어, 커피 맛이 입소문을 타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던 중, 기묘한 노인이 '나비 부인'에서 진상을 부린 다음 날 '나비 부인' 사장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최혁곤의 단편입니다. 시리즈 캐릭터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콤비가 등장하는 단편집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전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쾌한 분위기의 버디물인데, 아쉽게도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별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초반에 나왔던 수상쩍은 노인이 범인으로 체포되는 등 수수께끼의 여지도 없고요. 

특히 후더닛 물로는 영 아니올시다에요.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 사람을 공격하여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버 테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회파적 측면이 강하며, 이것이 동기로 밝혀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와이더닛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사회파적 설정이 잘 어울리지는 않네요. 인터넷의 비방글로 자살을 한다는 것도 와 닿지 않고요. 또 고3 수험생 투신 사건도 불필요할 정도로 질질 끄는 느낌입니다. 동기 부분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와이더닛물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진범 검은 뿔테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도 불분명하니까요. 남자 친구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낮아요.
진소담의 가족 관계 증명서 정도만 나름 증거일 뿐, 추리가 모두 정황 증거에 기반한다는 약점도 크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던 범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버디물로서는 충분히 즐길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단편집은 한번 읽어 볼 생각입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기흥 보리산 자락에 있는 무당의 당집에서 처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완벽한 밀실 안에서 홀로 생존한 채 발견된 유홍석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 그러나 판사에게 유홍석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한국에서 보기 드문 본격 추리물들을 발표하고 계신 도진기 판사님 - 현 시점에서 변호사가 되셨지만 - 의 스탠드얼론 단편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뼛속까지 고전 본격물 애호가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1인칭의 수기 형태로 전개되며, 끔찍한 사건이 초자연적인 현상과 얽혀 일어난다는 점이 완전 고전 스타일이었거든요. 비교하자면 코난 도일경의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이라던가, 앰브로스 비어스의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에 수록된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워낙 고전물을 좋아하기에, 완전 제 취향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단지 스타일을 따온 것에 그치지 않고, 무당 '인문희'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덕분에 독특한 한국적 오컬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에요. 특히 그녀가 서상표의 집에 몰래 부적을 붙인게 드러나는 장면은 굉장히 섬찟합니다. 만약 영상화한다면 클라이막스로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문희에 비하면 서상표는 전형적인 한국 쓰레기 남자와 다를 바 없어 지루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상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어요. 괜찮은 고전 오컬트물이 갑자기 크리쳐 호러로 변질되는데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게다가 잘린 목이 경동맥을 물어 뜯었다면 부검으로 밝혀지는게 당연한데 간과되고 있고, 유홍석이 현장 문을 잠가 밀실로 만든 이유도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등 디테일에서도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고전 스타일 오컬트 호러 스릴러임에는 분명합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굉장히 탈 텐데 저한테는 호 쪽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씀드린 부적이 드러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2023/04/08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5. 오뚜기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5. 오뚜기

마이코가 사무실에 나타나자 정체된 방의 공기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마이코는 검은색 정장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색 옷은 몸매를 날씬해 보이게 했고, 빨간 스카프가 잘 어울렸다. 마이코는 토시오에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신문을 읽고 있는 후쿠나가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운석이 차에 부딪히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사고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사고 조사에는 많은 과학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토모히로의 차를 불태운 것은 틀림없이 운석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현장에서는 무게 13kg, 지름 20cm 정도의 석철 운석이 수습됐다.

"운석이란 유성이 타다 남은 찌꺼기잖아요?"

"유성이 타는 것은 아닙니다."

후쿠나가는 신문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태양계에는 무수히 많은 고체 물질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구에 닿으면 지구의 인력으로 끌어당겨지죠. 물질의 기세가 거세져 초속 수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공기 중으로 돌진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수천 도의 마찰열이 가해져 갑자기 기체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이를 증발이라고 합니다. 이 고온의 가스가 빛을 내는 겁니다. 불이 타오르는 것과는 다르죠."

"시골에 가면 맑은 밤하늘에 유성을 자주 볼 수 있잖아요."

"우다이 씨, 유성은 하루에 몇 개나 떨어진다고 생각하세요?"

"한 시간에 두세 개 정도일까요?"

"육안으로 볼 수 있는건 그 정도겠죠. 하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유성을 포함하면 하루에 지구로 날아오는 별은 대략 수십억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수십억 개라고요?"

토시오도 그 숫자에 조금 놀랐다.

"네. 그런 유성은 그냥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끊임없이 먼지처럼 지상에 떨어지죠. 그래서 지구의 질량은 매년 4백만 톤씩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떨어진 유성 먼지의 양은 지표면 3미터를 덮는다고 계산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운석이 되어 지상에 떨어지는 별도 꽤 많다는 얘기군요."

"그런데 또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유성이 되는 물질은 대부분 쌀알 정도, 설탕 한 알 정도 큰 것들만 떨어지거든요. 이건 아까 말했듯이 공기 중에 들어가면 금방 증발해버립니다. 드물게는 큰 물질이 운석이 되어 지상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 수는 극히 적습니다. 한 해에 오백 개 정도라고 하네요."

"그래도 오백 개나?"

"지구의 3분의 2가 바다니까, 지상에 떨어지는 건 백 오십 개 정도일겁니다. 확인된 숫자로 따지면 그보다 더 적고요."

"그중에는 꽤 큰 것도 있겠군요."

"그렇죠. 가장 큰 운석은 서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바 운석. 69톤이나 된다고 하니 대단하지요. 일본에서는 1885년 오쓰(大津)시에서 발견된 다카미(田上)운석이  가장 컸어요. 최근에는 1975년 오후 7시에 보름달의 몇 배나 되는 불덩어리가 세토나이카이로 떨어지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지요. 발견되면 1톤급 운석으로, 다카미시마 앞바다에 떨어져서 다카미시마 오키(高見島沖)운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상태로 현재 조사 중이에요."

"그런 것이 도시에 떨어지면 큰 재앙이 되겠군요"

"석유 공업 단지나 신칸센 열차에 떨어진다면 큰 사고가 나겠죠. 하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그런 대형사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예전에 이탈리아의 한 신부가 운석의 직격탄을 맞고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1954년 미국 앨라배마주에 떨어진 운석은 사람의 집 지붕을 관통해 그 집에 있던 여성이 부상을 입었고요. 기후에 떨어진 가사마쓰 운석도 사람의 집 지붕을 뚫고 들어갔었어요. 이번 사고도 그렇고, 어쨌든 정말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운석에 맞은 사람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걸까요?"

후쿠나가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사람의 회사, 해바라기 공예는 어떤 회사일까요?"

마이코가 물었다. 후쿠나가는 조금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장난감 제조업이요. 저는 예전에 장난감 업계 신문사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장난감 업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요."

"후쿠나가 씨는 어떤 업계든 잘 아는군요."

마이코가 칭찬한다.

"글쎄,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해바라기 공예는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지만 역사는 꽤 오래됐어요. 뭐, 전통 있는 노포 부류죠. 마와리 가문이 요코하마로 이주해 와서 농사를 짓는 한편 부부가 작은 인형 제작을 시작한 것이 가에이 말기였는데, 마와리 사쿠조(馬割作蔵)라는 남자였습니다. 아내는 요코하마 출신이지만, 사쿠조는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없어요. 마와리 가문에서 출생을 철저히 숨긴 느낌입니다. 나는 업계 인명록을 편집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는데, 해바라기 공예를 창립한 사람은 사쿠조의 아들인 도키치(東吉)였습니다. 나중에 그는 호도(蓬堂)라는 이름을 쓰게 되지요. 하지만 그 전에 아버지 사쿠조가 츠루슈도(鶴寿堂)라는 작은 장난감 가게를 운영했던 것은 확실합니다."

"해바라기 공예에서 선대인 츠루슈도는 소개하고 있지 않나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잘 모르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쿠조 자신과 그의 아들 호도는 사쿠조를 은폐하려 했던 것 같지만요. 내 생각에 사쿠조는 어느 번(藩)의 하급 무사로, 어떤 잘못으로 번에서 쫓겨나서 아내의 생가로 이주한 것 같아요. 그 원인이 뭔가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을테고요. 그래서 숨긴 것이겠죠? 사쿠조는 아내의 땅으로 오자마자 아내의 생가 근처에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사가 장난감을?"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무사와 장난감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어요. 센다이의 향토 장난감에 츠츠미 인형이라는 것이 있어요. 알고 있나요?"

"아니요."

"도호쿠의 대표적인 도자기입니다. 동북 지방의 풍토를 반영하는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인형 애호가들이 애지중지하고 있지요. 이 인형의 기원은 발꾼의 부업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다테라는 땅은 리쿠우(陸羽) 가도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었지요. 다테 가문에서는 이곳에 하급무사들의 집을 배치했는데, 봉록이 적었던 탓에 부업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도공들과 함께 만든 것이 츠츠미 인형이라고 하고요. 이런 사례는 이 밖에도 있었어요.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여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서 더 많은 궁핍한 무사들이 생겨났고요. 메이지 초년, 이미 무사들이 가진 물건을 팔기 시작했죠.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판다고 하면 뭘 내놓겠습니까?"

"사치품이겠죠."

"그렇죠, 무사의 아내의 혼수품, 값비싼 히나(ひな)인형 등이 거리의 대로변에 진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사치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습니다. 봉록이 적었던 하급무사들은 팔아먹을 물건도 없었으니까요. 결국 스스로의 손으로 장난감을 만들게 된거지요. 나고야에는 나고야 토인형이라는 향토 장난감이 있어요."

"그것도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한 건가요?"

"네. 오와리 도쿠가와번의 무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교토의 후시미 인형 기술을 배웠다는군요. 히나인형과 연극용 인형, 장식용 말과 토종 방울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어요. 메이지 말기에는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최근에는 만드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하네요. 관동지방의 인형으로는 사이타마현 이와쓰키(岩槻)의 이와쓰키가 유명하고요."

"알고 있어요. 히나 인형의 대부분은 이와쓰키에서 생산된 것이지요."

"이와츠키의 인형이 현재처럼 번영하고 있는 것은 메이지 유신 때문이기도 해요. 오쿠라 류지로라는 원래 무사였던 사람이 가문을 버리고 에도에 와서 인형에 손을 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메이지 유신 때 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와쓰키에 피신했는데, 이미 이와쓰키에는 인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 땅은 닛코 가도의 길목에 있어 닛코 도쇼구(日光東照宮) 건설을 마친 장인들이 이와쓰키에 정착해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 오쿠라 류지로(大倉留次郎)는 그 곳에서 인형의 옷 입는 기술을 가르쳤고, 오늘날에는 이와쓰키 인형의 공로자로 이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대의 변혁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장난감을 만들어내는군요."

"재미있는건 이번 전쟁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와쓰키에 피난을 오게 된 수많은 장인들이 이와츠키 사람들과 함께 군수 공장에 징용되어 일했는데, 이는 이와츠키의 인형계에는 행운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장인들은 본업으로 돌아갔지만, 이와츠키의 인형 기술은 여기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거든요."

"역사라는 것은 반복되는 것이군요."

"낙오된 무사들이 만들게 된 장난감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로 킨스케마리(金助毬, 금방울)가 있네요. 큰 공이 되면 6, 70센티미터나 되죠. 물론 손으로 잡고 노는 것은 아닙니다. 3월 3일 히나의 날 장식용으로 만들어졌어요. 홍백색 비단으로 꿰매고, 모란에 당사자, 마차, 송죽매 등을 금실과 은실로 수놓습니다. 실로 만든 공 중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것 중 하나입니다. 이 금방울은 가고시마번 하급 무사 부녀자들의 수공예품이기도 하지요. 절기가 다가오면 그녀들은 보라색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금방울을 팔러 다녔고, 이것이 명물이 되었어요."

"연극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네요."

"그림이 되지요. 어느 날, 부인이 불쑥 상대의 얼굴을 봅니다. 젊은 날의 연인으로 지금은 가게의 주인이 되었구나. 억지로 시집갔지만 남편은 폐번으로 인해 봉록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길거리로 나가 공을 팔아야만 하는 신세. 세상의 이치라고는 하지만 너무도 황당한 이 만남 ......"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한 장난감이 아직 남아 있나요?"

마이코가 말문을 막았다. 후쿠나가가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네, 아직 있어요. 야마가타의 이타지시(板獅子)는 쇼나이(庄内)번의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했지요. 시코쿠의 다카마쓰하리코는 다카마쓰번의 가신인 카지가와 마사요시가 창시했고요. 마쓰에 번에서는 아네사마, 도야마 번에서는 흙인형......"

"그래서, 마와리 사쿠조는?"

"아, 그렇죠. 가에이 말기, 오노와에 정착한 사쿠조는 농사를 짓는 한편 작은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쿠조는 금세공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가자시(假裝師)의 하청으로 가쿠라스즈(神楽鈴)와 철제 비야봉 등을 만들었어요."

"비야봉이 뭐예요?"

"10센티미터 정도의 철제 장난감이지요. 머리는 고리 모양이고, 두 개의 다리가 나와 있습니다. 고리를 입에 물고 발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비야봉이라는 소리가 납니다. 분세이 연간에 유행해서 아이도 어른도 모두 비야봉을 가지고 놀았어요. 어른들을 위해서는 은으로 만든 고급품도 등장해 한동안 금지된 적도 있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도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만들어졌어요."

"옛날에는 신기한 장난감이 많았군요"

"네, 그런 장난감은 요코하마의 외국인들의 눈에 들어왔죠. 이국적이고 정교한 일본 장난감은 특히 외국 업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장난감의 수출은 이렇게 해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죠. 죽방울, 수중화, 작은 우산 등이 수출 1호였다고 합니다. 사쿠조도 이런 와중에 '츠루슈도'라는 가게를 만들었습니다. 기우카아가, 코보시, 장난감 기츠키, 판카라쿠리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일부는 해바라기 공예에 그대로 옮겨져 지금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츠루슈도의 장난감은 모두 소품이지만, 고급스러운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기츠키는 용수철 스프링을 사용했고, 도금 기술을 장난감에 도입한 것도 츠루슈도가 가장 빨랐던 것 같아요. 해바라기 공예는 지금도 도금 공장을 가지고 있지요."

"기츠키? 지금도 달그락달그락 새라는 장난감이 팔리고 있어요."

"그건 기츠키를 개량한 거지요. 원래는 모래 같은 건 안 쓰고 그냥 스프링으로만 만들었어요. 이 장난감은 지금의 해바라기 공예 사장인 마와리 데츠바가 아이디어를 더해 부활시킨 거라고 하네요."

"마와리 데츠바는 호도의 손자죠?"

"맞아요, 그 전에 사쿠조의 아이, 도키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순서겠지요. 도키치가 해바라기 공예의 창시자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했듯 도키치는 훗날 호도(蓬堂)라는 호를 쓰게 됩니다. 호도는 일대의 기인이어서 수많은 기행이 남아있습니다. 호도는 장난감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네요.”

"장난감 장사가 장난감을 싫어하면 곤란하잖아요."

"호도는 원래 장난감을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아버지가 한쪽 팔로 낑낑대며 장난감을 만드는걸 보아왔기에, 그에게 장난감은 고통의 상징이 되어버린거지요. 그런 경험이 있기에 본질적으로 장난감을 싫어하게 된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요."

"본업에 열중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 대신에, 돈 장사에 손을 대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돈 장사?"

"당시 멕시코에서 주조된 은화는 품질이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막부에서는 대항 차원에서 양은과 동질의 안세이일분은(安政一分銀)을 주조했습니다. 이 질이 좋지 않은 은을 '도로은(ドロ銀)'이라고 불렀지요. 도로의 시세는 요코하마에서 형성되었는데, 호도는 이 도로 시세꾼으로서의 재주가 뛰어났답니다. 그래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군요. 호도의 기행 중 하나로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텐포센 (천보전)으로 바꾸어 항아리 속에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텐포센이라고 하면 그, 놋쇠로 만든 돈을 말하죠?"

"네, 덴포 6년(1895년)에 처음 주조된 텐포 통보를 말합니다. 가치는 백문으로 당백전이라고도 불렸지만, 실제로는 그 액면 가치는 전혀 없어서 메이지 신통화 체계로는 8리로만 통용되었습니다. 한 푼에 2리 부족하다는 뜻에서 조금 모자란 사람을 텐포센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죠. 그런 가치없는 텐포센을 실제로 모았을리는 없으니, 저축했다기 보다는 텐포센이라고 불릴 만한 행위를 많이 저질렀던게 와전된게 아닌가 싶어요. 그 중 하나로 호도는 오와노 땅에 우스꽝스러운 집을 지었습니다. 서양식도 아니고 일본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형용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나쁜 취향을 가진 건물로, 현지 사람들은 나사 저택이라고 부르지요."

"나사 저택이라니........"

"호도는 어둠의 영역에서는 네지베에(ねじ兵衛 / 나사 아저씨)라고도 불렸기 때문입니다. 네지베에가 만든 뒤틀린 건축물이니 나사 저택인거지요. 현재도 오노와에 남아있고, 데츠바가 살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장난감 사업이 호도에게 적합했다고도 볼 수도 있어요. 즉, 전후의 훌라후프나 닥종이 인형 등의 광기 어린 유행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장난감 업계는 상당히 투기적인 성격이 강하죠. 호도는 그 투기성을 잘 포착할 수 있었어요. 다이쇼(大正)시대에는 도르래를 이용한 장난감이 기록적인 수출을 기록하기도 했고요. 판매 가격이 1달러로 속칭 '원달러 물건'이라 불리며 수출의 꽃이었던 셈입니다. 유명한 독일 라이오넬의 기관차는 당시 가치로 한 대에 천엔이었다고 하니 일본 장난감이 얼마나 저렴했는지 알 수 있을거에요. 호도는 그 흐름을 잘 올라탔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도로은 시세에 정통했다 한들 나사 저택과 같은 자유분방한 집을 지을 수는 없었을거에요."

"호도에게 자식은 있었나요?"

"쇼이치로라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해바라기 공예를 물려받았지만, 호도처럼 될 수는 없었어요. 어쨌든 해바라기 공예는 호도 혼자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호도가 죽으면 쇼이치로가 감당할 수 없었을겁니다. 한편 장난감 업계는 쇼와(昭和)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호황을 누렸고, 양초를 응용한 폼폼마루, 용수철로 걷는 펭귄, 뒤집히는 쥐, 깡충깡충 뛰는 병아리 등 걸작이 속속 등장해 구미의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카니발용으로 활발히 수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해바라기 공예는 한 시대 전의 장난감을 세밀하게 만들어내는 방식을 택했죠. 쇼이치로는 일찌감치 일에서 손을 떼고, 젊은 두 아들이 해바라기 공예를 이어받게 되는데 그게 바로 마와리 데츠바(馬割鉄馬)와 류키치(龍吉) 형제였습니다."

"지금 사장님이신 거군요."

"네, 두 사람은 능력도 있고 일도 잘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어요. 그중에서도 쇼와 13년, 구리, 황동, 철강을 사용한 내수용 완구 제조가 금지된 것이 큰 타격이었지요. 수출액도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참담한 상황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백깨비도 도자기로 대체되고, 셀로판 풍선은 종이로, 고무공마저도 결국 사라졌으며, 두 사람은 군수 공장에 징용되어 종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장난감은 부흥했을텐데..."

"그렇죠, 하지만 수출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환율 변동과 불량 완구 등의 문제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해바라기 공예의 첫 번째 히트작은 달가닥달가닥 새인데, 데츠바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그 전후로 동생 류키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류키치의 하나뿐인 외아들이 이번에 기적과 조우한 토모히로죠"

"후쿠나가 씨의 지식에 놀랐어요. 데츠바를 많이 찾아뵈었나 봅니다."

후쿠나가 씨는 겨우 웃었다.

"아니요, 그 할아버지는 고집불통이라서 좀처럼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뭔가 구멍이라도 찾아볼까 해서 연구 좀 했죠."

"구멍이 있었나요?"

"아니요, 완패입니다. 구멍은 커녕 티끌만한 허점 하나 조차 찾기 힘들었습니다."


마이코는 토시오를 우다이 경제연구회의 모회사로 데려갔다. 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상가 건물로, 1층은 중국 음식점이었다. 건물의 크기는 니시키 빌딩과 거의 비슷한 크기인데, 다이토 흥신소는 4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네, 다섯 명의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이코는 책상을 돌며 한 명 한 명에게 토시오를 소개했다. 모두 50~60대였다. 마이코는 마지막으로 층 안쪽에 앉아 있는 백발의 남자 앞에 토시오를 데리고 갔다. 다이토 흥신소의 요코누마 소장이었다.

요코누마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토시오는 그저께까지의 일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잊어버리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복서였어."

마이코가 대신 말했다.

"호오......."

요코누마는 다시 한 번 토시오를 쳐다보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 이상의 것을 이해한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더 강할까?"

요코누마는 두 사람을 비교했다.

"설마."

마이코가 웃었다.

"마이코는 유도 3단이었지?"

"그만해. 이런 곳에서."

"그런데, 어제 교통과 교도 형사가 전화가 왔다고 하지 않았어? 무슨 일이야?"

"내가 마와리 토모히로를 미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그 사고와는 상관없겠지?"

"그래. 하지만 교도 씨는 변함없이 끈질긴 사람이야.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하니 앞으로 한번 들러볼 생각이야."

"그래. 만나면 잘 부탁해."

대동흥신소를 나오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마이코는 밥을 먹자며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카레라이스, 어때?"

어제 다방에서와 같은 분위기다. 토시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코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안돼."

토시오는 웃으며 카츠동 덮밥이 좋다고 다시 말했다.

"그럼 됐어."

마이코는 큰 소리로 주문한 뒤 가방을 열고 작은 인형을 꺼냈다.

"마사오의 가방에 들어 있었어."

"그 사람의 가방을 열어 보았어요?"

토시오는 마이코의 행동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래. 마사오는 동네 약국에서 수면제를 살 수 있는 처방전도 가지고 있었어. 나머지는 흔한 물건들이었는데, 이 인형이 특이하더군. 그래서 가져왔어. '마도죠'라는 장난감은 아무래도 이것인 것 같거든."

마이코는 인형을 토시오에게 건넸다. 마사오의 물건을 손에 넣는 것이 꺼려졌지만, 마도죠라는 말에 흥미를 느꼈다.

15센티미터 남짓한 여자아이 인형이다. 눈이 크고 뺨이 부풀어 올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양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빨간 드레스, 빨간 신발. 보기에는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형이었다. 토시오가 의기소침한 얼굴로 인형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이코가 말했다.

"등에 단추가 달려 있어. 그것을 눌러봐."

토시오는 인형의 등을 살폈다. 마이코의 말대로, 등짝의 옷감 아래에 작은 돌기가 느껴졌다. 토시오는 그 버튼에 힘을 주었다.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인형의 목이 빙글빙글 돌면서 뒤쪽을 향했다. 인형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싫다 싫다를 하는 인형이 있었다. 그런 종류일까. 그러기에는 뒤쪽을 향한 모양이 기괴했다. 토시오는 다시 한 번 등쪽의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그러자 인형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 얼굴을 보고, 무심코 인형을 떨어뜨릴 뻔했다. 토시오는 소스라치게 놀라 변해버린 인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이 귀까지 찢어지고 긴 독한 붉은 혀가 떨고 있었다. 두 눈이 2센티미터나 튀어나왔고, 게다가 한쪽은 빨갛고 한쪽은 흰 눈이었다. 머리는 대머리, 회색 두개골에 거미줄처럼 생긴 혈관이 거미줄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토시오가 버튼을 눌렀다. 인형이 다시 뒤로 돌아갔다. 계속 버튼을 누르자 원래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위로 향했다.

"악취미같은 장난감이야."

마이코가 비판했다.

"이 인형은 하나의 목에 두 개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하나는 소녀의 얼굴이고 하나는 해골의 얼굴이야. 해골의 얼굴은 목 밑부분에 아래쪽으로 숨겨져 있고. 처음 버튼을 누르면 소녀의 목이 뒤로 젖혀지지. 다음 버튼을 누르면 목이 위로 올라가고 숨겨져 있던 해골의 얼굴이 위로 향하게 돼. 동시에 여자아이의 얼굴은 아래쪽을 향하게 되어 숨겨져 버리고. 목은 인형의 몸통에서 지지대가 나와서 양 귀에 붙어있는데, 머리카락으로 잘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어 있어."

"마도죠라는 것은 ‘마도녀’를 말했던거군요."

토시오는 인형을 마이코에게 돌려주었다.

"이런 인형, 팔릴 것 같아?" 

"안 팔릴 것 같아요. 모양부터가 보기 싫잖아요. 여자애들이 보면 울음을 터뜨릴 거예요. 기계적으로도 그렇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요."

"토모히로가 죽기 직전까지 이 인형에 대해 말한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아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인형의 몸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을지도…. 인형의 몸 안에 뭔가 소중한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재보의 행방을 기록한 고문서 같은거?"

마이코는 놀란 표정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재미있겠는데."


에노키마치서에 도착한 마이코는 마치 내 집에 온 듯이 편안한 발걸음으로 교도 형사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교도 형사는 삐뚤빼뚤한 입을 크게 벌리고 마이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이코가 없어진 후로 외로웠다고."

마이코는 여기저기서 경찰관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나한테 반했나 봐."

"뭐야. 그냥 싸움이 부족해졌을 뿐이야. 요코누마 씨는 어떻게 지내?"

"변함없어. 교도 씨를 만나다고 했더니 안부인사 전해달라고 하더군. 어제는 카츠군을 잘 돌봐주었지? 고마와."

"그거 말이야."

교도 형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쪽에서 얘기하자"

그는 일어서서 계단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2층으로 올라가서 한 작은 방 문을 열었다.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허름한 방이었다. 교도 형사는 접이식 의자를 펴서 두 사람에게 권했다.

"마이코는 왜 마와리 토모히로를 쫓아다녔지? 일 때문인가?"

"그런 것도 있지. 하지만 진짜 목적은 그 사건을 명백히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 사건... 마이코가 그만두게 된 그 사건 말인가?"

"그래, 내 뇌물 사건"

교도는 괜찮냐는 듯이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이 사람한테도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알겠어, 그 사건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 에노키마치에서 마이코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를 세웠었지. 그러자 차 안에 있던 남자는 갑자기 너에게 돈을 주고 달아났어. 마이코가 그 돈을 주머니에 넣는 것을 목격한 남자가 소란을 피우며 경찰차를 불렀었고."

"그래, 확실히 나는 돈을 주머니에 넣었어. 남편의 일이 마음에 걸렸던게 사실이었거든."

"우다이 군이 과격파의 돌팔매질로 다리에 부상을 입은 직후였으니까."

"나는 잠시 망설였었어. 망설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거야. 하지만 그 차를 놓칠 생각은 절대 없었어."

"그런데 지나가던 한 남자가 마이코에게 돈을 요구했다며 욕설을 퍼부었지. 마이코는 그 남자와 철저히 맞서 싸웠어야 했어."

"다들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어. 나는 그 자리에서 사표를 썼고."

"마이코는 원래 생각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는 여자였으니까."

"지금은 달라졌어."

마이코는 토시오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아직 고생이 뭔지 몰랐군, 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상태로 두면 안 되겠더라고."

"우다이 군을 위해서도 말이야."

"그래, 왜 그때는 그걸 몰랐을까? 나는 경찰을 불러 신고했던 남자를 만났어. 그 남자가 얼마 전에 교통법규 위반 때문에 벌금을 많이 낸 직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정말인가? 분풀이로 그런 증언을 한 거로군."

"그리고 최근에 우연히도 나에게 돈을 준 남자를 찾았어."

"그거 참 대단한데! 두 사람의 새로운 증언이라면 마이코의 억울한 누명도 깨끗이 벗겨질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게 생겼어. 그 남자가 바로 마와리 토모히로였거든."

"......"

"대동흥신소에서 온 일 중에 토모히로가 의뢰한 신용조사가 있었어. 첫눈에 토모히로가 돈을 주었던 그 남자였다는걸 바로 알아보았지. 에노키마치도 해바라기 공예와 오노와를 잇는 길이었고. 나는 토모히로에게 칼을 들이댈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 조사 보고서를 전달한 후 추궁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토모히로는 마사오를 데리고 갑자기 떠나려고 했어. 나는 깜짝 놀랐고, 어쨌든 비행장에서 그를 붙잡아 말만이라도 남겨두려고 했지. 그 여행길에 토모히로가 죽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채."

"벌금형에 처해진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불안한데."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구. 사실 다른 증인이 한명 더 있어."

"다른 증인?"

"토모히로의 차 뒷좌석에 한 노인이 타고 있던걸 봤어. 그 노인은 토모히로의 삼촌인 마와리 데츠바가 틀림없다고 생각해."

"노인이 그날 있었던 일을 기억할까?"

"기억하게 만들거야. 몇 번이든 찾아가서라도."

"호오, 오뚜기같군."

"내가 오뚜기라고?"

"이봐,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가나자와의 오뚜기는 미인이야.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신경 안 써. 나는 다시 복직해서 교도 씨와 맞붙을 생각이니까. 각오하라고."

"월급은 싸다구."

"알아. 지금 하는 일도 계속할 생각이야."

교도 형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마이코를 바라보았다.

"조금 만나지 않은 틈에 빈틈없는 여자가 되었네. 그나저나, 어제 사고는 신문에서 읽었어. 그 사고였구나."

"그래."

"오늘 밤이 토모히로의 철야네."

형사는 마이코의 검은 옷을 보았다.

"데츠바를 만나러 가는거야?"

"만날 거야. 하지만 철야 상황에서는 그 사건 이야기를 꺼내진 못하겠지. 그냥 얼굴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해줘."

"교도 씨, 조금 만나지 않은 틈에 인간적인 대사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2020/04/03

[번역] 2DK 개미지옥 - 아토다 다카시

일전에 졸역한 'A 사이즈 살인사건'을 올리며, 반응이 괜찮으면 다음 편도 번역하겠다고 약조한 바 있습니다. 너무나도 엉망인 번역 탓에 송구스럽지만, 즐겨주신 분이 계신 듯 하여 다음 편인 '2DK 개미지옥'도 소개해 드립니다. 의역으로 가득찬 졸역이지만, 추리적으로는 전작보다 훨씬 나은 작품이라 생각되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창 심심하신 분들께 위안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관리 측면에서 좀 길지만 한 편으로 올리는 점, 참고 부탁드려요.

도요코 선의 N 역에서 하차하여 서쪽의 개찰구로 나오면, 길고 완만한 오르막 언덕이 나타난다.
"아저씨, 비켜비켜! 비켜요!"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위험하잖아!"
사무라 에이스케는 다급하게 보도 옆으로 몸을 피했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그 옆을 지나갔다.
언덕의 길이는 50여 미터, 경사는 78도. 확실히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학교에서는 분명히 도로에서 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시키고 있겠지만, 개구쟁이 아이들이 귀담아들을 리가 없다.
"뭐, 다른 놀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무라는 석양빛으로 길게 드러워진 아이들의 그림자를 뒤로 한 채, 다시 서둘러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면 바로 묘법사다. 절에는 산호(山呼)와 사호(寺呼)가 있는 법이니, 묘법사도 정식으로는 어딘가산 묘법사라고 불러야겠지만, 사무라도 산호까지는 모른다. 똑같이 시체를 취급하는 장사라도, 수사 1과의 형사가 산호까지 알 정도로 절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 리는 없다.
산호가 있는 건 절이 분명 산 위에 있기 때문이다. 묘법사 정문까지 긴 고갯길이 이어진 것에서도 그러한 산호의 유래를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이곳 주변도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한적한 산길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회색 빌딩과 콘크리트 포장길이 무표정하게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가운데 묘법사만 홀로 고집을 부리듯 화려하게 자연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채로 가는 쪽문을 빠져나와 마당 쪽으로 고개를 내밀자, 형형색색의 튤립이 피어 있는데, 툇마루를 따라 화려한 와인잔을 늘어놓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
사무라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툇마루 쪽을 향해 말했다.
"여어. 기다렸다고."
감색 티셔츠를 입은 주지 스님이 사무라를 알아채고 고개를 까닥였다. 스님 앞에는 몇 년 전 은거한 노사가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주지 스님은 노사의 머리를 면도하는 중이었다. 노사는 치매가 시작된 후에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은 탓이겠지. 사무라와 친한, 현재의 주지 스님은 데릴사위로 노사는 그의 장인이다. 주지 스님이 수행승이던 시절부터 장인의 머리를 깎는 일은 그의 몫이었을 거다. 그 습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으로, 평소엔 멍한 얼굴을 하는 노사도 오늘만큼은 위엄을 떨치듯 고개를 바짝 세우고 있었으며, 그 뒤에서 티셔츠를 입은 스님이 얌전히 면도하는 모습은 시간이 십수 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곧 끝나니까. 2층에서 기다리게."
지켜보던 사무라에게 주지 스님이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푹 쉬고 있으라고."
사무라는 현관으로 돌아 나온 뒤, 젊은 수행승의 안내로 언제나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는 아니나 다를까 벌써 바둑판과 방석이 갖추어져 있었다. 오월의 바람이 어디선가 꽃향기를 날라와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살인사건 얘기를 꺼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이렇게 상쾌한 봄날 저녁 스님을 상대로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지내고 싶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
스님이 큼직한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들어왔다. 사무라 에이스케는 살인 담당 형사로는 아직 신출내기로 쉰을 넘은 주지 스님과는 부모 자식만큼이나 나이 차이가 났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이 잘 맞았다. 바둑 솜씨는 서로가 상대보다 조금 강하다고 생각하는 정도. 세상에 이렇게 멋진 적수는 없다.
"자, 시작할까?"
스님은 바둑판 덮개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잡을게요'
사무라가 선을 잡았다.
"정선."
"네."
잡은 돌을 세어보니 열한 개였다. 흑을 잡은 사무라는 가벼운 묵례 후, 우상귀에 돌을 두었다. 돌은 고급품으로, 1.5cm 정도의 두께였다. 내려놓은 돌이 바둑판 위에서 살짝 떨렸다.
"오늘은 그쪽부터 두는건가?"
"우선 이쪽 집을 벌어 놓으려고요."
"그렇군."
번갈아 열 수 정도 둔 뒤, 사무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혼잣말하듯 사건을 입에 올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는데 시체가 마중을 나왔답니다."
돌을 집어 든 스님의 손이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
"이런, 벌써 교란 전술 시작인가?"
"천만에요. 이건 진짜 사건이에요. 지난주 시모키타자와에서 일어난 정말 기묘한 사건이지요."
스님은 사무라의 공격을 살짝 피하며 물었다.
"부처님은 남자였나? 아니면 여자였나?"
그때 미닫이문이 열리며 수행승이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아직 식사하기에는 좀 이르지? 술이나 한잔하자고."
'항상 죄송합니다.'
안주는 죽순조림과 참치 초무침이었다. 닳고 닳은 스님 같으니라고. 술은 흠뻑 취할 정도로 마시고, 남의 살도 매우 좋아한다. 먹을거리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정말로 밝다. 살아가는 도중에 우연히 묘법사의 사위가 되어 스님이 된 것 같은데, 스님이 되기 전에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사무라도 아직 물어본 적이 없다.
수행승이 나가자 사무라가 말했다.
"부처님은 남자입니다."
"그렇군. 그럼, 부처님은 새 신부의 옛날 애인쯤이려나."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럼 신랑의 친구였나?"
"그렇지도 않고요."
"호오. 그럼 신랑, 신부, 그 누구와도 관계가 없다고?"
"본인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어요. 그 남자가 부부의 2DK 아파트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죽었는데 말이죠."
* 2DK : 방 2개 + Dining Room (식당) + Kitchen (부엌) 으로 이루어진 집
"아이고 부처님, 알몸으로? 그런데 이 돌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나저나 알몸으로 죽으면 안 되지."
스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구석진 돌을 공격해 들어갔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화요일, 5월 9일의 일입니다. 시모키타자와의 그린 아파트에 사는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이죠. 스즈미 코지와 스즈미 료코 부부로...."
"잠깐만. 아파트에 살던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아닐까?"
".….…?"
"그렇지만 맞잖아.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아직 부부가 아니었으니까."
"아하하하. 스님의 억지는 당할 수 없네요.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두 사람이 결혼한 건 5월 3일입니다. 아파트를 빌린 것은 4월 중순이고요. 남자가 결혼식까지 혼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뒤 일주일간 규슈를 돌아보았고......."
"그리고 돌아와 보니 세상에나! 벌거벗은 남자가 죽어있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 이건 안 돼. 방심하면 안 되지. 엄청난 실수를 할 뻔했군."
스님은 입을 삐죽이며 사무라를 노려보았다. 오른쪽 구석에서 사무라의 흑과 대치 중인 백의 생사가 불안했다. 스님은 얼굴을 바둑판에 묻고 그 돌 무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무라는 어려운 사건을 맡을 때마다, 고양이가 다래나무에 이끌리듯 묘법사를 찾는다. 그래서 스님은 웃으면서 '자네는 뭔가 풀 수 없는 사건을 만나면 절에 발길을 옮기는군'이라고 말하곤 했다.
오늘의 방문도 마찬가지 목적이다. 이번 사건은 정말로 기묘했다. 스님에게 이야기한 대로 사건이 신고된 날은 5월 9일 화요일이었다. 그날, 시모키타자와의 번화가로부터 조금 뒷골목에 들어간 3층짜리 아파트에 스즈미 코우지, 료코 두 사람이 돌아왔다. 코우지는 굵은 체크 재킷에 밤색 바지, 료코는 꽃무늬 투피스에 연지색 모자를 차려입었다. 낡은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모습이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막 신혼여행을 끝낸 뒤, 걸음걸이도 가볍게 둘만의 스위트 홈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신랑이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도 기다릴 리 없는 방을 향해 말을 걸었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인기척이 없는 실내에 공기가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신부가 이 아파트에 발을 들여놓은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결혼식 전에 짐을 나르고 청소를 하거나, 혹은 내친김에 미래의 배우자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이러쿵저러쿵 몇 번이나 이 아파트를 찾았었다. 그러나 정식 거주자로서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시각은 오후 4시가 넘었다. 실내는 밝았다.
"나올 때 커튼 치는 걸 깜빡 한거야?"
며칠 전 신랑은 이 방에서 결혼식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음, 그랬었나?"
코우지는 자신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료코는 시원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 그런 다음 오늘부터 자신이 지배하게 될 땅을 점검하듯 부엌을 살펴본 뒤, 욕실 문을 열었다. 순간 숨을 삼키는 듯한 기색이 흐르고, "꺄악!"이라는 비명과 함께 료코가 도망치듯 튀어나왔다.
"왜 그래?"
"사, 사, 사람이......"
료코는 남편에게 매달려 욕실 쪽을 가리켰다. 코우지는 옆에 매달아 놓은 프라이팬을 손에 들고 조심조심 욕실로 향했다. 프라이팬을 든 것은 무의식중에서도 무기가 될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기는 필요 없었다. 희미하게 김이 피어오르는 욕실 좁은 욕조 속에서 한 남자가 목을 늘어뜨린 채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죽었어."
"정말?"
"틀림없어……. 가스가 새고 있어."
확실히 욕실에 발을 들여놓자, 날카로운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스즈미 코우지는 서둘러 욕실 창문을 열고 가스 욕조의 밸브를 잠갔다.
"누구야? 이 사람은?"
료코가 코를 막으며 물었다.
"모르겠어. 난 몰라, 이런 남자."
코우지는 숨을 멈춘 뒤, 다시 한번 욕실로 돌아가 시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34, 5살쯤 되어 보이네."
시체는 섬뜩했지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야. 도대체 누굴까..... 너는 어때?"
새신랑은 "너"라는 호칭을 약간은 어색하게 사용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료코는 두려움을 억누르려는 듯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며 욕실을 들여다보았다.
"몰라, 이런 사람."
"그래도 모르니까, 잘 봐."
"잘 보라니......몰라."
"좋아. 어쨌든 경찰에 전화하자."
"으....."
축복받아야 할 새로운 삶의 첫걸음은, 낯선 노출광에 의해서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죽은 남자의 신원은 알아냈나?"
묘법사의 주지 스님은 천천히 고개를 위, 아래로 움직여 바둑의 형세를 가늠하며 물었다. 바둑은 중반의 접전을 끝내고 종반전에 진입한 상태였다. 지금까지의 전황은 사무라가 우세했다. 스님은 형세를 단번에 만회할 수단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이제 둘 곳도 없는 곳들을 상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둘 데가 없을걸요? 그 근처는."
"응. 없는 것 같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심야 방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게 효과적이라는데, 스님의 두뇌도 그런 구조인 것 같다. 바둑을 두면서 동시에 사건을 추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둑이 별로일 때에는 아직 추리 쪽도 정리되지 못한, 암중모색의 단계이다. 아까부터 변변한 수가 없는 걸 보면 스님의 추리는 아직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한 듯 싶었다. 사무라는 이 상태에서는 적당히 스님의 비위를 맞추며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제일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했느냐 하면……."
사무라는 흑돌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걸 모르면 이야기가……. 안 되지...."
팟! 하고 스님의 흰 돌이 응전해왔다.
"우리 경찰은 우수합니다. 당연히 밝혀냈죠."
"그렇군."
"미나토구의, 가전 제조업체 경리부에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이름은 코이즈미 노부히코, 나이는 37세. 가족으로는 아내와 자식은 두 명…….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와 유치원 다니는 남자아이입니다. 세타가야의 공단 주택에 살고 있고, 월급은 20 수만엔 정도. 잔업 수당은 부인에게 주지 않고 모두 용돈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듯한 평범한 직장인이고, 취미는......"
"골프와 마작."
"그것도 추리인가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골프도 못 치고, 마작도 못 한다네요. 취미는 산책과 사교댄스, 그리고 패션이었답니다. 멋 내기를 좋아했다는군요."
"술은?"
"조금."
"유흥 업소는 다녔던가?
"스님이 그걸 물어볼 거로 생각해서 회사 동료에게 물어봤죠."
"잘했네. "
"직장인이라 가보긴 했지만, 부지런히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는군요. 구태여 말하자면 적당하였달까요?"
"흥, 흥......"
스님은 갑자기 화제를 바둑으로 돌렸다.
"어, 거기 그런 수가 있었나?"
"이쪽 돌은 덕을 좀 본 것 같죠?"
"이미 대세에 영향은 없나."
"그런 셈이죠."
"확실히, 여기서 끝났구먼."
"그런 것 같네요."
"유감이군. 이번에는 내가 졌네. 잠시 모습을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늘었는걸? 수사는 대충 하고 바둑책을 읽으면서 공부한 거 아냐? 덕분에 범인은 전부 다 놓치고 말이야."
"와, 엄청난 말씀이시네요. 스님 쪽이야말로 틈나는 대로 비밀로 전해진 전설의 두루마리를 숙독하면서 공부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아니, 환절기에는 부처님이 되는 사람이 많아서 절도 꽤 바쁘다고."
"그래요?"
계가해 본 결과, 흑집은 마흔 둘, 백집은 스물셋으로 덤을 빼도 무려 열네 집 반의 승리였다.
"아이고 망신스러워. 이건 대패야 대패."
스님은 갑자기 생각난 듯 손을 두드려 술을 추가 주문했다.
"그러면 다시 한 판 더?"
"네, 네."
첫판에서 사무라가 이기면 스님은 분해서 꼭 다음에는 이기려고 한다. 착수도 날카로워졌고, 그 영향으로 추리 쪽도 좋아진다. 사무라에게는 더 바랄 나위 없는 결과였다. 사무라는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목구멍에 흘려 넣고, 맛있게 버무린 초무침을 한 입 깨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흑으로 시작하지."
"네."
바둑돌을 치운 뒤,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스님은 흑 1, 3, 5로 시작하는, 슈사쿠 명인의 포석으로 두기 시작했다.
사무라가 손을 잠깐 멈춘 사이,
"그 살해당한 남자,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하고 스님 쪽에서 교란 전술을 써왔다.
"고이즈미 노부히코입니다."
"그래그래. 그 고이즈미와 신혼부부의 관계는?"
"그게 아무래도 확실치 않아요."
"호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남편은, 이런 남자는 전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아내 역시 이런 사람 알 리가 없다고 경찰에서 줄곧 증언하고 있거든요."
"그럼 왜 그 남자가 아파트에 있었지?"
바둑은 포석이 끝나고,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심사숙고가 필요한 중반의 공방전에 돌입하였다. 사건의 추리도 조금씩 조금씩, 까다롭고 어려운 부분을 향하였다.
"그게 문제라고요. 아파트 관리인이나 이웃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그런 남자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 고이즈미 누군가가 전에 그 아파트에 살았던 건 아니겠지?"
"맞아요. 그 부분은 정말로 아주 상세하게 수사를 진행했는데, 고이즈미 노부히코와 그린 아파트를 연결하는 것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아, 깜빡했네!
스님은 정석대로 흑돌을 놓으며 외쳤다.
"뭘요?"
"살인사건이 맞나?, 애초에, 욕실에는 가스 냄새가 났었잖아? 사고사 가능성은 없나?"
이번 한 수로 흑이 형성한 빗살 모양 세력이 백의 중요한 지점을 단절시켰다. 스님의 수는 두면 둘수록 점점 날카로워졌다.
"사고사 가능성도 있습니다. 목욕탕의 가스 욕조는 뚜껑을 닫으면 불이 꺼지도록 만들어진 물건인데, 고무관을 연결한 부분이 느슨하더군요. 그 부분에 가스 누출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충분하죠."
"하지만 자네 말로는 신혼부부는 아파트로 돌아가서 한동안 가스 냄새를 눈치채지 못했잖아? 작은 아파트 목욕탕에서 사람이 죽을 정도로 가스가 샜는데, 거실 다다미방에서 알아채지 못한다는게 말이 되나?"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부부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현관을 열자마자 약간 가스 냄새가 났던 것 같기도 했다 하고, 부인은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너무 놀라서 냄새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욕실에 얼마나 가스가 차 있었는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고요.".
"나중에 테스트 해봤을 거잖아. 같은 욕조로."
"물론이죠. "
"어땠나?"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는 꽤 오랜 시간, 대략 한 시간 정도 가스가 누출된다면 모르고 목욕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응, 응. 그렇지. 가스 중독은 먼저 운동 중추를 마비시키니까. 뭐지? 몸이 이상한데?라고 깨달았을 때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스님은 부처님 만드는 법도 잘 아시네요."
"그런 거북한 소리 말라고. 그것보다도 구석의 이 대마 말이야, 이 녀석도 부처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아무리 스님이라도 좀 힘들어 보이는데요?"
"그래, 그래."
스님은 다시 바둑판으로 몸을 기울였다. 사무라는 화제를 되돌렸다.
"그래서 욕실 정황만으로는 뭐라 말할 수 없어요. 목욕탕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일어난 사고사는 도내에도 매년 몇 건씩 신고되니까요."
"그럼 고이즈미 누군가 씨도 사고사라고 하는 게 어때? 경찰도 바쁠 거잖아."
"가능하다면 그렇게 처리해버리고 싶기는 합니다. 위에서도 그럴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사인도 마침 일산화탄소 중독이니까요. 하지만 피해자가 어째서 생면부지의 집에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게 문제에요. 그것 때문에 최소한 저는 그렇게 간단하게 사고사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의 경찰, 민중의 지팡이로서 말이죠."
"고맙군그려."
탁! 소리가 났다. 바둑판 위의 돌이 흔들렸다. 두 번째 판은 스님의 우세로 흘러가고 있다.

시신이 발견된 그린 아파트는 콘크리트 3층 건물로 문제의 방은 306호실, 계단을 올라 안쪽에서 두 번째 방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다다미 넉 장 반쯤 되는 식당 부엌이 있고, 오른쪽 안쪽으로 가스대와 싱크대가, 왼쪽에 좁은 널빤지를 세워놓은 듯한 욕실 미닫이문이 있다. 식당 겸 부엌의 안쪽은 다다미 6장짜리 방, 그 안쪽으로 다다미 8장짜리 방이 있는데 신혼부부는 이곳을 침실로 삼으려 했는지 큰 더블베드, 그리고 막상막하로 큰 옷장이 놓여 있다. 사체 부검 결과, 사망 추정 시각은 발견된 시간으로부터 40시간에서 45시간 전, 즉 전전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의 사이이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사. 사체에 외상은 전혀 없이 깨끗한 상태였다. 약물의 흔적도 없었다.
"자물쇠는 구석구석까지 채워져 있었겠군."
바둑은 세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판은 스님의 압승. 사무라는 도중에 돌을 던졌다.
"맞아요. 그리고 혹시 창문이 잠겨있지 않았었더라도 방은 3층이고 창문 밑은 절벽입니다. 현관 말고는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어요."
"현관문은 확실히 잠겨 있었나?"
"남편인 스즈미 코우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누군가의 옷과 신발은?
"있었어요. 욕실 미닫이문 위에 선반이 있는데, 거기에 놓인 의상 바구니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렇군."
세 번째 판은 중반까지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팬티, 셔츠, 양말, 이름이 새겨진 와이셔츠, 영국제 양복 상, 하의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습니다. 주머니에는 명함, 던힐 라이터, 테크노 시계 등. 신발은 구찌 제품으로 신발장 안에......"
"고급품뿐이네. 누군가의 지문은?"
"선명한 것은 침실에서 두 개, 다다미 6장짜리 방 하나, 부엌에서 목욕탕까지 일곱 개 정도."
"기묘하군."
스님이 과장되게 팔짱을 꼈다. 뭔가 복잡한 생각이 뇌리에 오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는 팟! 사무라의 흑집 안에 백돌을 놓았다. 세력을 새롭게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신발에 붙어있는 흙은 아파트 부근의 것이었습니다."
"그렇군."
"뭔가 아시겠어요?"
"아니, 아직 아무것도……. 신혼부부 사이는?
"좋은 것 같아요. 뭐, 신혼부부는 대체로 사이가 좋지만....... 신랑 선배의 권유로 맞선을 보고 6개월의 교제 끝에 결혼. 당사자들은 물론 양가 부모님들 모두 좋은 인연이라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둘이 죽은 남자를 모른다는 게 정말이겠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정성 들여 수사했지만, 고이즈미와 부부, 구리고 그린 아파트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저도 부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확실하겠지."
"이거 참, 송구스럽네요."
"죽은 고이즈미는 어떤 사람인가?"
"평범한 직장인인데, 여자관계는 깔끔하지 못한 편입니다. 4년에 한 번꼴로 부인을 울렸거든요."
"올림픽 같은 남자잖아."
스님은 자신의 농담을 즐기듯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바둑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정말 별난 사건이구먼."
"예, 뭐......"
"죽은 남자의 회사는 그래, 경기는 괜찮았다던가?
"최근 몇 년 동안의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요."
"그래?"
스님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사건을 생각하고 있는지 바둑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사무라 쪽도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좋다.
"좋아."
생각을 마친 스님은 굳은 결심을 한 듯, 사무라의 흑 세력을 비집고 장렬하게 돌을 내려놓았다. 묘수였다. 백에게도 위험한 수였지만, 흑으로서는 도무지 뾰족하게 응대할 방법이 없는 멋진 수였다. 무리해서 장렬한 싸움을 시작하더라도, 결과는 흑의 패배임이 눈에 보이듯 뻔했다.
"아! 굉장한 묘수네요. 완전히 당했습니다."
"아니야, 이쪽도 약점이 있어."
그러나 스님이 승리를 확신했다는건 말투로도 잘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스님의 추리도 막바지에 이른 게 틀림없다.
"사무라"
"네."
"자네, 피아노 칠 줄 아나?"
"아뇨, 음악은 전혀 재능이 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자네 아파트에서는 피아노를 쳐도 되나?"
"예, 일단은요. 피아노를 치든, 방망이를 두드리든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해 본 적은 없지만요."
"그럼 그린 아파트는 어떨까?"
"글쎄요......"
"그린 아파트에서 피아노를 쳐도 되는지,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되는지, 이 점을 조사해 주게."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 기묘한 질문이 사건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무라는 검은 수첩을 꺼내 스님의 질문을 적었다.
"아무래도 바둑은 이것으로 끝이군요."
스님의 한수로 반상 위의 모든 싸움은 끝났다. 계가해보니 백의 일곱 집 반 승. 종반전에서 스님의 수가 절묘했던 덕분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사무라가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아니, 아니. 정말 운이 좋았다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건 쪽 말인데...."
"네, 네."
스님은 뒤섞여 있는 돌들을 색깔별로 골라낸 뒤, 손끝으로 좌우로 나누며 말했다.
"신혼부부 아파트 침실......"
"예......?"
"거기 옷장 서랍......"
"네?"
"거기에 자석에 달라붙는 게 몇 개나 들어 있을까?"
"그걸 조사해야 하는 거군요."
"맞아. 내친김에 죽은 고이즈미 누군가 씨. 이 사람은 텔레비전 영화 따위를 보면서 자주 졸지 않았는지, 부처님 부인에게 물어봐 달라고. 그리고 사건이 있었던 306호실, 베란다에 러닝머신이 놓여 있었는지, 커다란 화분은 없었는지......"
"글쎄요. 그건 분명히......"
"일단 알아봐 달라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그린 아파트 306호실에 살았던 여자 중에서는 누가 수학을 제일 잘했을 것 같은지......"
"네? 그런 거 물어본다고 알아낼 수 있을까요?"
"뭐, 괜찮아. 아무튼 물어보라고."
"관리인이나 이웃을 만나서 어떻게든 대답을 모아보겠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해서 수학을 제일 잘할 것 같은 여자를 알아내면, 그녀를 만나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여자를 만나서 개미를 좋아하는지 물어봐 줘."
"개미라니……. 그……. 저…. 설탕에 꼬이는 그거요?"
"그렇고말고."
"점점 모르겠네요"
"그렇게 불평하지 말고 한번 해 보라고."
"물론 물어보고말고요. 다른 건 없나요?"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오늘은 그 정도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알아낼 수 있겠나?"
"글쎄요."
사무라는 여태까지의 이야기를 적은 수첩을 쳐다보았다.
"모레, 이틀 후 점심때까진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그거 딱 좋군그래. 나는 그날 2시 즈음까지는 잠깐 본업 쪽 일이 있어서 외출하지만, 3시 이후에는 완전히 비어 있거든. 또 바둑을 두러 오라고. 오늘은 내가 이겼지만, 모레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저는 항상 살인사건을 떠안고 다니기 때문에 바둑에 집중하는 건 어렵단 말입니다."
"천만에. 나야말로 자네가 힘든 숙제를 가져오기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다고."
"그럼, 이번의 숙제는 모레 무사히 해결될까요?
"글쎄, 그건 모르지."
지금 여기서 스님의 추리를 물어봤자 말해줄 리가 없다. 모든 것은 모레의 즐거움. 사무라는 그때까지 스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탐문과 조사를 해 올 수밖에 없다.
"정말 귀찮게 해드렸습니다."
"조금만 더 붙잡고 싶긴 하지만, 자네도 바쁘잖은가."
"그럼 실례했습니다."
현관을 나서자 부드러운 바람이 또 어디선가 농밀한 꽃향기를 실어 온다. 사무라는 향긋한 냄새를 가슴 가득히 담으며 긴 고갯길을 내려갔다.

이틀이 지나고, 스님에게 부탁받은 조사를 모두 마친 사무라는 약속한 3시에 맞춰 묘법사로 이어지는 언덕을 올라갔다.
"아저씨, 위험해요!"
그저께와 같은 개구쟁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언덕을 내려왔다. 사무라는 아이와 지나쳐 절의 입구를 통과했다.
"실례합니다."
"시간을 딱 맞췄군."
스님이 감색 줄무늬 옷을 입은 채 현관으로 나왔다. 지금 외출에서 막 돌아온 것 같았다.
"모처럼이니까 한 판"
"네."
사무라는 한시라도 빨리 스님의 입에서 범인으로 점찍은 사람이 누구인지 듣고 싶었지만, 묘법사 주지 스님의 두뇌는 언제나 바둑돌의 움직임과 함께 활동을 개시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바둑을 두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는다.
"자, 오늘은 기껏해야 한 판이겠네."
스님이 선을 잡은 결과, 사무라가 흑이었다.
"글쎄요. 과연 어떨지....."
"어때, 부탁한 조사 쪽은?"
"네, 다 조사를 마쳤습니다. 만족하실지 어떨지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아니, 아니, 천만에."
"우선 피아노는 말이죠."
"그래."
"치는 건 금지입니다. 뻐드렁니에 쭈글쭈글한 아줌마로 엄청나게 짜증나는 스타일인 아파트 관리인이 신경질적으로 답하더군요. 벽이 얇아서 이웃에 폐를 끼치니까 악기류는 절대 사절! 이라고요."
"개,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금지지?"
"아, 그렇습니다. 잘 아시네요."
"왠지 그런 느낌이 드네."
"그리고 다음에는......"
사무라는 주머니의 수첩을 꺼내 들었다.
"맞아, 맞아. 양복장 서랍에 자석에 달라붙는 게 몇 개 들어 있는지......"
"맞네 "
"스님의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조사해 왔습니다. 손톱깎이, 가위, 양복장 열쇠, 부서진 시계, 클립, 회사 배지, 금속 빗, 안전핀, 샤프펜슬의 이상 아홉 개가 자석에 붙었습니다. 샤프펜슬은 플라스틱이지만 연결 부분이 쇠로 되어 있어서 붙더라고요. 대충 이 정도입니다."
"수고 많았어."
"그다음에 죽은 고이즈미 노부히코가 TV를 보면서 자주 졸았는지 여부였죠? 이건 부인에게 물어봤어요."
"아, 4년마다 눈물을 쏟았다는 올림픽 부인?"
"맞아요. TV를 보면서 선잠 자는 건 항상 자기였으며, 남편은 졸지 않는 쪽이었다고 대답하더군요. 하지만 곧바로 이런 질문이 수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따가운 눈총과 함께 쏘아붙여서 혼났습니다."
"그건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럼 다음에 조사한 건……."
"이봐, 자네 차례야."
"아, 고맙습니다."
사무라는 스님만큼 편리한 이중구조식 두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바둑 쪽에는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다음은 베란다에 러닝머신과 화분이 있는지였죠?"
"그래. 맞아."
"스님에게 그걸 들었을 때, 나도, 어라?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혹시 모르니까 조사해 봤습니다. 그런데....."
"베란다가 없었어?"
"맞아요. 아예 베란다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베란다에 러닝머신이든 화분이든 놓을 방법도 없죠. 창밖에 있을 수 있는 건 공기와 유령뿐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
"정말이에요? 바둑처럼 억지 부리시기 없습니다."
"바둑 쪽도 억지 따위는 부리지 않는다고. 어차피 요즘은 이기기만 하니까 억지 부릴 기회조차 없잖은가?"
"어, 그랬나요?"
"이론보다 증거. 이 수는 어떤가?"
스님이 둔 수에, 사무라 오른쪽 세력이 갑자기 약해졌다. 묘수였다.
"이건......"
"괜찮았지?"
"음....."
절묘한 수를 보니, 스님의 뇌세포는 최고조로 향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조사 중에서 제일 어려웠던 건, 예상대로 지금까지 306호실에 살았던 여자 중에 누가 가장 산수를 잘하는지였습니다."
"산수가 아니야. 수학이라고."
"아, 맞네요. 하여튼 이웃 등을 조사한 결과를 말씀드리자면, 3년 정도 전에 이사 간 미야오 씨라는 젊은 부인이 가장 잘하는 거로 결론났습니다. 이분은 약사 면허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이과 전공이라면, 당연히 제일 수학을 잘했을 거라는 이유죠."
"그러면 그 젊은 부인에게, 개미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았는가?"
"네, 찾아가 물었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권투 선수 말인가요? 라고 되묻더군요."
"무하마드 알리와 착각했군."
* 일본어로 개미는 '아리'
"네, 그래서 권투 선수가 아니라, 곤충인 개미 이야기라고 했더니,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라고요."
"그 여자는 매력적인 외모에, 두 살쯤 된 아기가 하나......"
"세상에, 맞아요! 스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팟! 스님이 돌을 한층 더 강하게 바둑판 위에 내려놓았다.
"그 여자가 범인이니까"
"정말요?"
사무라는 아연실색하며 스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동기는? 어떻게 살해한 거죠?"
"본좌는 억지를 잘 부려잖나.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는 없지."
"억지는 농담이었습니다만... 빨리 알려주세요."
"자네 말을 하나씩 하나씩 듣다 보면, 이쯤에 범인이 숨어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
"자 보라고. 죽은 남자에게는 아무런 외상이 없고, 구두에는 아파트 부근의 흙이 묻어 있다고 했지?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죽은 누군가 씨는 덩치가 상당히 큰 데다가 306호실은 후미진 곳에 있고 창문은 높아. 이런 걸 종합해보면, 누군가 씨는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306호실에 왔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해."
"그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사교댄스를 좋아하고, 패션을 좋아하는 멋쟁이고, 여자 문제로 4년에 한 번꼴로 아내를 울리는 남자가 한밤중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파트를 방문했다는 것은……. 소모산 (作生)!"
스님이 웃으며 선문답의 표어를 외쳤다.
"즉, 여자겠죠."
사무라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어. 306호실의 실제 거주자들은 한창 신혼여행 중. 그렇다면, 이 방에 들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유력한 건 관리인이겠지. 하지만 관리인은 고이즈미 누군가 씨가 도저히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짜증나는 쭈글쭈글 아줌마였어. 맞지?"
"네."
"그렇다면 그다음 후보는 306호실의 이전 거주자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이사할 때 방 열쇠는 관리인에게 돌려주지만, 그 이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여벌 열쇠를 만드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건 그렇죠."
"그린 아파트는 피아노를 쳐도 안 되고,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런 아파트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어."
"그렇군요."
"그렇다면, 306호실에는 지금까지 몇 명의 젊은 부인이 살았으며, 그 부인들이 아이를 낳은 뒤 어디론가 이사를 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해. 또 요즘 젊은 부인들이 남편 몰래 남자 친구를 만들고 있을 확률은 약 8%라고 하지."
"정말입니까?"
"아하하하. 주간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 매력적인 부인이라면 좀 더 비율이 높을지도 몰라."
"음, 확실히 그 젊은 부인, 미야오 유키에 씨라고 합니다만, 상당한 미인이었습니다."
"경찰이 이상한 관심 가지지 말라고."
"아이고, 이거 참, 잘 알고 있다고요."
"그 젊은 부인은 예전에 어딘가에서 고이즈미 누군가 씨를 알게 되어 불장난을 시작했던게 아닐까? 사교댄스를 추는 댄스홀에서 만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고이즈미 누군가는 별로 좋은 남자는 아니었어. 대단한 악당은 아니지만, 남의 약점을 잡은 뒤 협박하여 용돈을 갈취하는 정도의 범죄는 저질렀을 거야. 목욕탕 선반에 놓인 영국제 양복, 신발장의 신발은 경기가 별로인 회사에 다니는 월급이 20수만 엔인 월급쟁이에게는 사치스러우니까. 미야오 유키에 씨도 이 남자에게 협박을 당했겠지."
"그게 살인의 동기였을까요?"
"아마도. 마지막까지 몰린 나머지 살의를 품은 거야. 3년 전에 살고 있던 아파트의 열쇠를 이용할 생각을 한 뒤, 간단한 조사를 통해 지금 사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떠나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운다는 걸 알아내고는 범행에 이용한걸세. 결혼과 신혼여행은 널리 알리는 경사이니만큼, 이웃에게 물으면 곧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그 틈을 타서 남자를 유인해서 죽인 거야."
"그랬군요."
"남의 아파트를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속이고는, 남편이 출장을 갔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만나고 싶다는 정도만 말해도 플레이보이 고이즈미 누군가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 조심을 거듭하여 몰래 숨어들어왔을 테지."
"그리고 그곳에서 목욕을 시키다가......"
"그건 아니야. 가스 목욕 중에 사고로 죽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계획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드는 건 어려워. 일단 가스가 새는 상태에서 욕조 안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죽지 않는단 말이지. 그러나 자네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에게는 조는 버릇이 없었어. 욕조에서 자는 사람은 상당히 선잠을 좋아하는 사람일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하잖은가. 설령 졸았다 해도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 약물 흔적도 없고."
"과연, 일리 있네요."
"게다가 범인으로서는, 혹시라도 이웃들이 가스 냄새를 눈치채면 큰일이란 말이지. 그런 위험한 짓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 어떻게...?"
사무라는 남은 돌을 바둑판 위에 떨어트리며 말했다.
"어라? 돌을 던지는 건가?"
"네, 도저히 승부가 안 되네요."
"음, 그렇겠지, 그렇겠지. 그러면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고이즈미 누군가가 살해된 건 목욕탕이 아니었어.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는 더 좁고 밀폐된 곳이 필요했어. 바로 침실 옷장이지. 옷장 열쇠는 서랍 속에 있었지? 자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말이야."
"자석에 달라붙는 게 뭔지는 그래서 조사를 시키신 거군요. 그런데 남자는 옷장 안에 왜 들어간 거죠?"
"여자가 시켜서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려는 찰나! 여자가 남편이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겠지. 방은 3층이고, 창문 밑은 절벽이야. 도저히 도망칠 방법이 없어. 숨을만한 베란다도 없는 데다가 알몸이고. 그 상황에서 고이즈미 누군가가 아닌 그 누구라도, 여자가 빨리 옷장으로 들어가요! 라고 말하면 들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지. 그 뒤 옷장 문을 밖에서 잠가야만 열 수 없다는 설명을 들으면, 밖에서 자물쇠를 채워 버려도 수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테고."
"스님, 보고 오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아하하, 그럴 리가. 하지만 이 추리는 대충 맞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그건 미야오 유키에 씨에게 자네가 개미 좋아하느냐고 물어봤기 때문이지. 그때 그녀가 새파랗게 질렸다고 했잖은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추리가 맞다는걸 롹신했다네."
사무라는 고개를 저었다. 개미를 좋아하면 어떻다는 것일까. 스님은 즐거운 듯이 웃고 있다.
"도시가스 냄새는 강하니까. 수면제라도 먹이지 않는 한 그렇게 쉽게 큰 남자를 죽일 수는 없어. 옷장 안에 숨어 있어도 가스 냄새가 나면 남자는 난리가 날 테고. 그래서 범인은 냄새가 없는, 순수한 일산화탄소를 맡게 할 생각을 한 거야. 그 뒤 사고사로 수습되기를 꿈꾸며 시체를 욕조에 집어넣은걸세. 잘만 됐더라면, 뭔가 이상한 사고사로 대충 마무리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
"그런 걸 생각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해 실행까지 하려면 확실히 화학에 대해 지식이 필요해. 그래서 수학을 잘하는 여자라는 힌트로 찾아보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약사님이 등장하시더구먼."
"예"
"실험실에서 일산화탄소를 만들려면, 황산과 개미산을 혼합하면 된다네. 옷장 뒤에 구멍을 뚫어 튜브라도 꽂아두면, 쉽게 안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어. 형사에게 갑자기 개미를 좋아하느냐는 말을 듣고 그 부인이 새파래진 것은 그 탓이야. 그녀는 개미라는 말을 들으면, 개미산이라는 특별한 약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거든. 범행이 인상 깊게 남아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여자가 범인이라는 걸 확신한거야. 뭐, 일부 세세한 점은 내 추리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욕실에서 가스 중독을 시키는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뒤, 내 추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네...."
스님은 여전히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건 신식 개미지옥이네요."
"그거 딱 어울리는 말이구먼. 이제부터 그린 아파트로 가서 옷장 뒤에 구멍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그다음에는 그 여자, 미야오 유키에 씨를 다시 한 번 방문한 뒤, 옷장 뒤에 개미구멍이 있었다고 말해 주라고. 매력적인 여성분께서 어떻게 나오실지, 몹시 기대되는구먼."
놀랍게도, 스님의 추리는 이번에도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