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5/05/29

소원의 집 -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하창수 : 별점 2점

소원의 집 - 4점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하창수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바다출판사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스무 번째 책. "정글북"으로 유명한 키플링의 말년 단편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얇고 짤막하고 만듦새도 예뻐서 부담 없이 가끔 집어들고 읽곤 합니다만, 대체로 내용이 어렵고 대중적이지 않은 탓에 잘 와닿지는 못해왔습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기로는 역대 제가 읽은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예요. 그래도 다른 책들은 한두 편이나마 쉽거나 대중적인, 흥미를 끌만한 작품이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거든요. 덕분에 두께는 얇지만 읽는 시간은 웬만한 장편급으로 시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작품은 표제작인 "소원의 집"입니다. 한 여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그의 고통을 자신이 받게 해달라는 소원을 혼백이 살고 있는 소원의 집에 빈 뒤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애시크로포트 부인과 피틀리 부인이라는 두 할머니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으로, 소원의 집에 대한 반전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암이라는 과학적, 의학적 반전이 등장한다는 점만큼은 인상적이었어요. 소원의 집에서 빈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기발하긴 했으니까요.

그리고 "알라의 눈"에서 지옥을 묘사하기 위해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한다는, 역시나 과학적인 발상은 괜찮았어요.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허나 그 외에는 제가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며, 왜 이러한 내용을 썼는지에 대해서도 알기 어려워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군요. 때문에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만, 저도 잘 모를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기에 그리 공정한 점수는 아니긴 합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015/05/28

광기의 왕국 - 프리드리히 글라우저 / 박원영 : 별점 2점

광기의 왕국 - 4점
프리드리히 글라우저 지음, 박원영 옮김/레드박스
아래 리뷰에는 내용 일부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퇴가 머지 않은 노형사 슈투더에게 갑작스러운 의뢰가 찾아왔다. 란트링겡 정신병원 원장 울리히가 사라진 날, 환자 피에털렌이 탈출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독일 추리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유럽 추리소설은 별로 취향이 아닌데다가 얼마 전 읽었던 넬레 노이하우스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 딱히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었는데, 국내 최고의 추리애호가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자리를 빌어 이벤트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스위스 베른 주 경찰청 소속으로 정년퇴직을 앞둔 노형사 슈투더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의 두 번째로, 최근에 발표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추리소설 황금기라 할 수 있는 1936~41년 사이에 발표된 고전이더군요. 제가 워낙 고전 황금기 걸작을 좋아하기에 읽기 전에는 굉장히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전 본격 황금기 시절 장편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정교한 플롯이나 트릭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간 심리에 바탕을 둔 일종의 수사물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북구 유럽 계열 작품이에요.

물론 이런 작품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슈투더 형사가 사건에 뛰어들어 진행되는 모든 수사 과정은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그냥 증언을 듣고, 그 증언에 따라 무언가를 수사하고,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리고 무언가를 또 찾아내고... 하는 전통적이고 우직한 수사만 있을 뿐이거든요.

사건 해결도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길겐 간호사의 집을 찾아간 것은 순전한 우연, 거기서 이르마 바젬과 피에털렌의 밀회를 목격한 것도 우연, 카플라운이 유츨러를 죽이려 하는 것을 목격한 것도 우연... 게다가 위험한 산길을 걷던 중 경비원 드라이어가 카플라운을 죽이고, 그 드라이어마저 체포 도중 차에 치어 죽는다는 마지막 결말은 무슨 개그물을 보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또 슈투더가 라두너 박사와 그의 아내 앞에서 벌이는 추리쇼, 즉 마지막 상황과 카플라운의 증언 등을 통해 추리해 낸 결론은 진상이 아니며 라두너 박사가 말한 것이 진상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탐정은 수사관이자 정보제공자에 불과하며 진짜 탐정은 의뢰인!이라는 발상 자체는 혁신적이지만, 전혀 공정하지 않기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범인은 세속적인 동기, 즉 돈이 목적이었던 드라이어라는 진상도 문제입니다. 원장과 대립하며 환자에게 수상쩍은 치료를 하여 매일 밤 환자가 죽어나가게 만들고, 원장의 돈지갑까지 가지고 있으며 수족처럼 부리는 환자와 직원이 있는 악의 축 라두너 박사가 사실은 너무나 좋은 인물이었으며, 심지어는 탐정이었다! 라니 비약이 너무 심하잖아요.

내용, 설정 면에서의 오류도 눈에 뜨이는데 왜 라두너 박사가 슈투더를 불렀는지, 애초에 왜 경찰이 원장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는지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나 라두너 박사가 모든 진상을 꿰뚫었다는 점에서 슈투더를 부른 것은 불필요한 행동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길겐 등 불필요한 희생만 초래했을 뿐이거든요.

물론 인상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정신병원이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작품답게 "광기의 왕국"으로 통칭하여 정신병에 대해 풀어놓는 부분은 좋았으며 그 중에서도 피에털렌의 설정만큼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본인만의 논리로 범죄를 저질렀는데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어서 정신병원에 수용된 뒤, 정말로 미쳐버렸다는 캐릭터인데 이렇게 주변인물로 소모되기 아깝더군요. 그 외의 정신병 관련 다양한 이론과 치료방법들의 디테일도 잘 살아 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인간 심리, 정신병에 대해서 고심한 작가의 노력은 느껴지지만 좋은 추리 소설로 보기는 어려워 감점합니다. 작중 슈투더 형사의 표현인 "아 도대체 언제 이 장광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대로 정신병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묘사가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게 묘사된 탓도 크고요. 인간 심리 묘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하겠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2015/05/27

알고나 먹자 - 전호용 : 별점 2.5점

알고나 먹자 - 6점
전호용 지음/글항아리

딴지일보에 연재되었다는 음식 관련 컬럼 모음집. 존경하는 이웃 블로거 밥과술님이 추천해 주셔서 관심이 가던 차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호평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재미도 있고 장점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재료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게 가장 마음에 듭니다. 부제인 "본격 식재료 추적 음식문화 박물지"에 어울리는 디테일로 된장, 고추장에서 시작해서 고기와 각종 야채, 곡물까지 대부분의 한국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를 일람하고 있거든요. 온갖 농산물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고, 김장이라는 큰 주제로 중간 부분을 마무리하는 목차 구성도 좋고요.

그리고 저자가 실제 농사일을 해왔던 경험을 토대로 썼다는 점도 특별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 글 줄 하나하나마다 저자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게 흡사 동네 할아버지가 해 주는 재미난 농산물 관련 옛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한 내용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이렇게 경험 바탕으로 다른 책들과 상당한 시각 차를 보인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황교익은 염전은 허구이며 갯벌을 썩게 만든다고 주장했지만, 이 책에서는 경험에 기인한 나름의 긍정적인 부분, 즉 젓갈이 좋았다... 라는 이야기를 해 주는 식이거든요. 장점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경험자의 의견으로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것 같아요.

저자의 농사 경험 및 실제 요식업에 몸을 담았던 경력에 토대를 둔 노하우를 소개하는 점도 좋습니다. 젓갈을 사러 가면 양념 젓갈은 사지 말라는 것, 이유는 양념 젓갈은 그 상태로만 먹어야 하고 다른 요리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500그램 한 통 사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젓갈집 들어가서 이거저거 하나씩 먹어보고 "이거 양념 안 한 것도 있어요?"라고 물어보라는 팁은 그야말로 꿀팁이지요. 양념 안한 젓갈이 있다면, 그건 그 집에서 담근 젓갈일 거라는 뜻인데, 이거야말로 다른 책에서는 알기 어려운 좋은 정보였습니다. 이 챕터는 저자가 곰소에서 산 바지락젓을 이용한 계란찜과 황새기젓의 살을 발라 다진 뒤 청양고추, 마늘을 다져 넣고 발사믹 식초를 넣은 양배추 쌈장의 레시피로 마무리되는데, 한마디로 개인 경험담에서 시작해서 음식 관련 정보 소개, 그리고 레시피로 이어지는 완벽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흔한 음식 관련 서적에서 많이 소개되지 않는 소소한 것들에 대해 자세하게 파고든 것도 큰 장점이입니다. 마늘이나 생강, 각종 향신료, 콩과 잡곡 등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려준 책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거든요.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라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도 많습니다. 다른 곡식을 심었더라면 배는 주리지 않았을 텐데 구태여 쌀을 심은 이유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 그러하죠. 쌀은 마약이었다! 라는 결론인데 참신했어요.

겉보리가 꽁보리라던가, 고량주는 수수로 담근다라던가, 전래동화 "해님 달님"의 호랑이가 떨어진 곳이 수수밭의 수수대를 날카롭게 잘라낸 밑동이 있던 자리라는 것, 그래서 호랑이 피가 수수대에 묻은 것이 아직 남아 수수대 밑동이 붉다는 전설 같은 것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시시콜콜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제공해 주는 것도 기대에 값하는데,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의 소개, 늙은 고기는 싸지만 보쌈, 수육에는 좋다던가 집에서 쓰는 칼에 대한 정도 등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지요.

그 외에도 지나치게 우리 농산물을 강조하지 않는 것도 독특했던 점이에요. 중국산 마늘은 씨알이 굵고 매운맛, 향이 강하니 고기 요리나 볶음 요리를 할 때 넣으면 좋다는 것은 아주 유용한 것이죠. 타박만 할 게 아니라 용도에 맞게 쓰라는 것, 암요. 맞는 말이고 말고요.

아울러 전형적인 딴지일보 마인드가 엿보이는 것도 다른 유사 에세이와의 차이점으로,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비판하는데 설득력 충분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 자체가 불편한 독자도 분명 있겠죠. 그리고 농산물에 대한 불안을 토로하며 GMO 농산물을 비롯하여 고기 소비, 물고기 양식 등 총체적인 것에 대한 비난은 그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생협, 또는 직거래 장터와 같은 단기적인 방안이 크게 실효를 거두리라 생각되지는 않으며,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음식 관련 서적으로 보기에는 학술적 근거 대신 개인 생각과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어 적절치 않으며, 요리 서적으로 보기에는 레시피가 거의 없기에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도 레시피가 부족하다는 것으로, 간단한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되고 있긴 하나 실제 집에서 해 볼 수 있을 만큼의 디테일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관심 있으면 따로 찾아보라는 뜻일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있는 글들이라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만 단점도 있고 일부 기대와 다른 부분 때문에 감점합니다. 재료보다는 조금 더 "요리", "음식" 쪽으로 포커스를 옮긴 후속작이 나와주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