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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4

오랫만에 베어스 이야기 : 삼성이 레전드를 살려줬지만, 리빌딩이 답이다.

오랜만에 두산 베어스 관련 글을 씁니다.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기대하며 개막을 맞이했는데, 시즌 초반부터 실망스러운 경기력이 이어지며 글을 쓰는 것조차 망설여졌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제 몫을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팀 성적이 떨어진 것은 명백히 투수진의 부상 이탈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곽빈 선수, 홍건희 선수, 이병헌 선수 등 작년 필승조의 핵심 선수들이 이탈한 데다, 최지강 선수까지 부진하며 현재 남은 믿을 만한 불펜 자원은 이영하 선수 한 명 뿐입니다. 

그러나 저 선수들의 부상 대부분은 작년 이승엽 감독님의 투마카세 기용 탓이 큽니다. 올 시즌도 감독님의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 기용으로 팀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고 있고요. 프로야구도 '명장'이라는게 존재한다는걸 올 시즌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김태형 감독님이었다면 최소 중위권 싸움은 하고 있을 겁니다. 김태형 감독님 시절에는 이겨야 할 경기는 거의 이겼었지요. 

사실 KT 루징 시리즈에 이어, 작년에 엄청나게 약했던 주말 삼성전이라 호흡기 떼고 감독 경질이 구체화될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위닝 시리즈를 거두더군요. 삼성이 레전드의 체면을 지켜주려고 일부러 패한건 아니겠지만 공교롭게도 말이지요. 그래도 이번 위닝 시리즈에서는 그간 보아왔던 어처구니없던 투마카세, 타마카세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기대를 갖게 만드네요. 앞으로도 최소한 아래의 사항들을 지키며 시즌을 운영했으면 합니다.

  1. 필승조부터 명확히 정리하라. 최지강 선수는 현재 필승조가 아닙니다. 작년에 무리하게 등판하다 부상당한 이후로는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영하 선수 외에는 넓게 보아도 박치국 선수만 현재 필승조입니다.
  2. 지는 경기에 필승조를 투입하지 마라. 점수 차가 2점이든 1점이든 지고 있으면 이영하, 박치국 선수는 투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베어스가 경기 후반에 상대 필승조 상대로 역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3. 4점차 이상으로 이기고 있는 경기에도 필승조를 아껴라. 이런 상황에서는 홍민규, 박신지 선수 등 롱 릴리프 자원을 활용하는게 바람직합니다.
  4. 계투진은 누구든, 롱 릴리프 보직을 명확히 한게 아니라면 멀티이닝으로 기용하지 마라. 최근 홍민규 선수를 굴리기 시작했는데, 투수진에서 또 부상자가 생기면, 그 책임은 오롯이 감독이 져야 할 겁니다.
  5. 이름값으로 선수 기용하는 일은 삼가하라. 2루수로 기용되며 조금 살아나는 모습이지만, 지금의 강승호 선수가 1군 주전 야수로 계속 출전한다면 2군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들의 사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값 높은 주전이라도 공정한 평가를 해야 합니다.
  6. 2군에서 콜업된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다른 팀들에는 유망한 젊은 야수들이 꾸준히 출전 기회를 받는데, 왜 우리 팀에는 그런 선수가 없을까요?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7. 초구에 무의미하게 건드려 아웃되면, 페널티를 부여하라. 선수들에게 집중력과 타석 운영, 상대 투수 투구수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8. 스트라이크존 밖 공에 대한 탐욕 스윙으로 아웃될 때 경각심을 주어라. 도저히 못 봐줄 스윙으로 삼진 아웃될 때에는 벌금 등 내부 규율을 강제해서라도 선수단 전체에 메시지를 주기 바랍니다.
  9. 조수행 선수는 작작 써라. 앞으로는 제발 대주자나 대수비로만 기용하세요. 타석에 김인태 선수, 아니면 최소한 김민석 선수가 들어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수행 선수를 고집하는건 감독의 직무유기입니다.
  10. 후반 초입에 타마카세좀 그만해라. 김인태 선수를 1, 2점차로 이기고 있다고 6회 쯤에 조수행 선수로 바꾸지 마세요. 우리는 필승조가 약해서 1, 2점차는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조수행 선수가 투입되었다고 1점 더 날 가능성도 별로 없다면, 타선의 강력함을 유지하는게 더 나은 방향입니다. 후반에 얼척없는 대타도 그만 쓰고요.

그러나 이렇게 운영해서 이기는 것 보다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연패를 거듭해서 꼴찌를 해도 좋으니 코칭 스탭과 선수단의 전면 개편이 일어나서 진득한 리빌딩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비록 남은 시즌이 아직 길고, 상황을 반전시킬 복귀 선수가 없는건 아니지만, 어차피 우승 전력이 아닌데 왜 투수진을 망치고, 탐욕 스윙하는 고액 연봉자들의 스탯타를 보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미 작년에 한 해는 제발 리빌딩하자는 글을 썼는데,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신인들이나 꾸준히 기용하면 좋겠습니다. 대타로만 쓰거나 선발로 내보내도 몇 경기 부진하면 바로 제외시키는 운영 방식으로는 젊은 선수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명진 선수는 물론, 김민석, 추재현, 여동건, 임종성, 김동준, 류현준 선수 등이 활약하는 베어스를 보고 싶네요.

2025/05/03

브라이턴 록 - 그레이엄 그린 / 서창렬 : 별점 2.5점

브라이턴 록 - 6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런던의 신문 기자 헤일은 브라이턴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뒤, 자신의 불길했던 예감대로 죽음을 맞는다. 그가 생의 마지막 날에 잠시 만났던 여자 아이다는 헤일이 자연사했다는 검시 소견에 의문을 품고서 단서를 찾던 중, 고인이 죽기 직전 들른 곳으로 밝혀진 스노 식당의 직원 로즈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미 헤일의 죽음을 설계한 젊은 갱 두목 핑키가 먼저 로즈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로즈는 아이다의 추궁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핑키는 점점 다가오는 아이다의 추적을 피해 자신의 살인을 덮고자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하고, 유일한 증인이 될 로즈의 입을 영원히 틀어막을 방법을 궁리한다(출판사 제공).

오랫만에 묵직한, 500페이지가 넘는 고전 정통 장편 범죄 소설을 읽었네요. 그레이엄 그린이 1938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문학과 범죄의 교차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지요. 영국 남부 해안의 휴양지 브라이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 갱과 주변 인물들의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카톨릭 교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 선과 악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천착하며, 단순한 범죄 소설을 넘어선 문학성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범죄 소설로도 평가가 높습니다. "CWA 선정 100대 범죄소설"에 46위로 선정되었고, 2010년 타임즈(The Times)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범죄 소설 50선”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우선 1930년대 영국 휴양지 브라이턴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싼티나는 쾌락과 범죄가 넘쳐나는 타락의 도시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등장 인물 역시 브라이턴 못지 않게 생생하게 그려지며, 그 중 압권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 소년 핑키입니다. 술도 못 마시고 여자도 모르는 미성년자가 어른 여럿을 수하에 두고 아무런 죄책감없이 사람을 죽이는 과정은 섬뜩함을 자아냅니다. Brighton Rock의 유튜브 검색 결과에서 Pinkie's first appearance가 가장 먼저 뜨는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 외에도 핑키에게 푹 빠져 타락하고 마는 순진한 소녀 로즈, 탐정 역할을 자임하는 중년 여성 아이바, 핑키의 부하 스파이서와 커빗, 최초 피해자 프레드 등 주요 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상세하고 생생합니다. 

범죄극으로서도 뛰어난 편입니다. ‘프레드의 사인을 경찰은 왜 자연사로 판단했을까?’라는 미스터리도 등장하니까요. 진상은 핑키 일당이 프레드의 입에 '브라이턴 락' 사탕을 쑤셔 넣어 급사하게 만든겁니다. 의도한건 아니라서 트릭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앞서 핑키 일당의 주무기는 면도날이라는 언급을 계속 해 주었기 때문에 일종의 서술 트릭으로 읽혔습니다.
아이바의 끈질긴 탐문 수사, 그리고 몇 안 되는 핑키가 남긴 단서도 공정하게 공유되며 마지막 아이바의 일격은 추리적인 재미를 더합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 역시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특히 반전이라 할 수 있는 핑키의 욕설 레코드가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과연 '구원'이라는게 가능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요.

반면 단점도 존재합니다. 핑키가 로즈와 결혼할까 말까 고민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장황하고 지루했습니다. 또한 핑키가 술을 못 마시고 여자를 모른다는 설정도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다소 지루하고요. 또한 이런 묘사들이 핑키를 철없는 소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들을 부리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조직 우두머리'라는 핑키의 독특한 존재감을 희석시키는 탓입니다. 핑키에 대한 설명도 너무 부족해요. 별다른 완력이나 두뇌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카리스마도 없는데 어린 나이에 범죄조직 우두머리가 되었다는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프레드의 죽음에 대한 핑키의 두려움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미 경찰이 자연사로 판단한 사건에 몇 가지 단서가 더해졌다고 해서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핑키의 '두뇌'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만 들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카톨릭의 구원과 타락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나, 교인이 아닌 독자로서는 크게 와닿지 않아 흥미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교인이었다 하더라도 다소 낡은 논의였다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타락한 도시와 범죄 조직, 도덕의 경계를 주제로 한 설정과 상세한 묘사는 좋지만, 개연성과 몰입도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많이 지난 느낌입니다. 

2025/05/02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 이노우에 마기 / 이연승 : 별점 2점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 4점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론 사업 벤처기업 탈랄리아 직원 다카기 하루오는 어린 시절 형의 사고사를 방조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다카기는 최첨단 조사용 드론 아리아드네의 3세대 모델인 SVR-3가 채택된 지하도시 WANOKUNI 개막식에 참석하는데, 마침 그날 지진이 일어났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사히 대피했지만, 붕괴와 침수가 계속되는 지하 5층에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제는 이 생존자가 헬렌 켈러처럼 시각, 청각, 언어 모두에 장애가 있는 나카가와 히로미라는 점이었다. 물이 완전히 차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여섯 시간뿐으로, 다카기는 동료들과 함께 유일하게 지하에 접근할 수 있는 드론 아리아드네를 원격 조종해 생존자 수색과 구조에 나서는데....

일본 작가 이노우에 마기가 쓴 재난 구조 SF 소설입니다. 구조라는 테마에 첨단기술과 장애인이라는 소재를 결합한 매우 흥미로운 작품으로, 기존 재난소설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탈출극 추천'이라는 리스트에서 소개하길래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구조 과정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듬뿍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드론'을 활용하여 헬렌 켈러와 똑같이 시력, 청력 및 대화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지하 도시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이지요. 그래서 '드론'은 '촉각'과 '후각' 만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해서 아리아드네는 향수를 내뿜어 도착을 알리고, 점자 카드가 포함된 구호 물품을 투척하며, 장착된 하네스(유도용 와이어)를 잡게하여 경로를 안내합니다. 또 이러한 설정들은 단순한 SF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가능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구조 과정의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작품의 배경인 지하도시 WANOKUNI의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에너지 보존과 탄소 배출 감소, 지진 대응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하 건설의 타당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드론을 활용한 물류 시스템, 개인 맞춤형 서비스, 광덕트를 통한 자연광 유입 등 매력적인 기술들이 상세하게 소개되는 덕분입니다. 특히 통신망이 단절된 상황에서도 드론 조종이 가능했던 원리, 드론의 무선 충전 방식 등이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는게 좋았습니다. 구조 과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니까요. WANOKUNI가 정치적인 이유로 활성 단층 위에 건설되었다는 설정도 괜찮았고요. 

재난 구조 소설답게 구조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들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진으로 인해 구조용 드론이 추락하고, 지하 4층 스파 구역에서 발생하는 누전, 폭주하는 지게차들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들, 그리고 다카기가 폭로 유튜버의 드론에 맞아 아리아드네의 통제권을 놓치는 장면까지, 하나하나의 위기들이 정교하게 쌓여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갑니다.

아울러 추리소설로서의 매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히로미가 조명 스위치를 작동시키거나, 쥐떼를 감지하고, 돌진하는 지게차를 스스로 피하는 등, 의아한 행동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정말 시각을 잃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고, 이 수수께끼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상 - 히로미가 사실은 도시에 추락했던 다른 장애인 미도리를 업고 있었고, 모든 기이한 행동들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반전 - 은 깊은 감동을 안겨주고요. 아울러 이 진상은 광덕트 붕괴와 발걸음이 갑자기 느려진 이유, 이유를 알 수 없는 배낭의 열기 등 여러 복선들과도 절묘하게 맞물려 있어서 정교함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재난 생존물로서 치명적인 약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구조 대상자인 히로미가 아니라 드론 조종자인 다카기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인물의 긴박감을 그리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카기는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원거리에서 드론을 조작하는 입장이라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래서야 일종의 1인칭 슈팅게임과 별다를게 없지요.

또한, 서사의 일부 전개는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예컨대, WANOKUNI 입주식 날 하필 지진이 발생한다는 설정은 이야기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끼워 맞춘 듯 합니다.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지진이 발생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구조 활동 중에 온갖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다카기, 그리고 계속해서 민폐를 끼치는 니라사와의 모습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특히 장애가 있는 동생을 계속 잃어버리는 니라사와의 행동은 짜증을 유발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장애인을 구조하는 독특한 설정과 드론 기술의 활용,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반전은 매력적이지만, 긴박감을 살리지 못한 시점 선택과 작위적인 전개는 아쉽습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