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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인류사를 가로지른 스마트한 발명들 50 - 알프리트 슈미츠 / 송소민 : 별점 2점

인류사를 가로지른 스마트한 발명들 50 - 4점
알프리트 슈미츠 지음, 송소민 옮김/서해문집

제목 그대로 저자가 선별한, 인류사에서 중요한 50개의 발명이 소개되고 있는 과학사 - 미시사 책입니다. 

이런 류의 특정 발명이나 아이템들을 소개하는 책은 그동안 몇 번 읽어보았는데, 비교해 볼 때 그렇게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몇몇 부분은 나쁘지 않았어요. 

첫 번째는 현재의 시점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언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백열등이 LED로 바뀌고 있고,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로 바뀌는 식입니다. 대체 에너지를 중요 발명으로 언급하는 등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내용과 항목도 눈에 뜨이고요.
또 새롭거나 독특한 시각, 내용의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그 중 첫번째는 기계 베틀 항목에서 기계베틀, 즉 직조기가 발명된 후 기계 보조원으로 전락한 직조공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름 전문직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쓸모없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자 1844년 폭동을 일으켰고, 결국 11명이 총살되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는데 현재의 AI의 발전 방향을 보면 이런 일이 조만간 여러 산업분야에서 벌어질 것으로 보여서 남일 같지가 않더군요. 제가 봐도 앞으로 10년 내 필요없어질 기술이 한두개가 아니니까요. 대표적인 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우선은 운전일테고, 이후 여러 분야로 확산될텐데 저부터도 걱정이네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두 번째는 섭씨와 화씨의 어원입니다. 섭씨는 온도 측정 눈금을 고안한 '셀시우스'의 이름을 딴 것이고 화씨는 '파렌하이트'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데 저는 처음 알았네요. '셀시우시'가 중국 발음으로 '섭이사'가 되었고 그래서 '섭씨'가 되었다는데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지만 '불란서', '화란'과 비슷한 방식이죠? 외래어의 유입과 적용은 참으로 재미난게 많은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컨베이어 벨트 기술 항목에서 소개된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라는 인물 소개입니다. 이력을 보니 인간 공학의 시조와 같은 사람으로 이른바 '테일러리즘'을 만든 장본인인데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제가 UX를 업으로 한지 10년이 훨씬 넘어가는데 공부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반성이 되네요. '예전에는 인간이 첫 번째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시스템이 첫 번째 위치에 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보면 정말로 이 바닥의 선구자적인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전공 분야 공부도 빼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좋았던 부분은 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전체적인 단점을 상쇄하기에는 아쉬움이 더욱 많아요. 가장 큰 단점은 앞서 말씀드렸듯 뻔하다는 것에 더해 깊이 역시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류의 책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몇 페이지 안에서 해당 발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량에 비해 잘 요약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해당 주제에 대한 시작점 정도에 불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소개되는 주제별로 레벨이 너무 다르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은 점입니다. 어떤 것은 특정 발명품 한 가지만을 다루는데 - '안경', '나침반', '지퍼', '백열등', '자동차' 등등 - 어떤 것은 그 분야 전체를 아울러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 '도구', '무기', '약', '악기' 등 - 이는 앞서 말씀드린 깊이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발명품으로 주제를 좁히는게 그나마 적은 분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도구'는 그 자체가 발명이기에 언급되는게 이상할 뿐더러 무기, 약, 악기 등과 마찬가지로 몇 페이지로 요약될 이야기는 아닌 탓입니다. 무기 관련 책은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만 시대별, 분야별로 10권 가까이 될 정도니까요. 마찬가지로 '컴퓨터' 항목 안에 반도체와 인터넷 이야기까지 우겨 넣은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인터넷은 분리했어야죠.

마지막으로 단점으로 꼽기는 좀 어렵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인류사를 가로질렀다 하기 어려운 발명도 몇 개 속해있다는건 불만스럽습니다. 진공청소기가 우리 인류사에 그렇게 대단한 역할을 수행했을까요? 또 지퍼가 없었다면 세상이 굉장히 살기 불편해졌을까요? 이 발명으로 우리들 삶이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인류사'라는 표제 하에 소개되기에는 너무 미미한 발명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유사한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때 이 책만 특별히 좋아보이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모로 추천드리기는 좀 어렵네요.

마지막으로 이 책에 소개된 50개의 항목을 레벨을 맞추어 상세하게 분류하고 재정의하여 저만의 인류사 대표 발명을 꼽아봅니다.

불, 바퀴, 말과 글, 수학과 수체계, 배와 보트, 유리, 돈, 렌즈, 나침반, 인쇄술, 천문학, 달력, 전기, 증기기관, 항공, 철도, 화약, 전신과 전화, 백열등, 자동차, 사진, 냉장기술, 합성수지, 컨베이어벨트 기술, 라디오와 텔레비전, 페니실린, 핵에너지, 컴퓨터와 반도체, 인터넷, 피임, 인공지능, 로켓.

빠진 것은 도구, 화장실, 도자기, 기계 베틀, 온도계, 통조림, 자전거, 진공청소기, 음반과 CD, 취사 조리기, 영화와 영화관, X-레이, 지퍼, 악기, 세탁기, 레이저, 대체에너지, 위성 네비게이션입니다. 무기는 화약으로, 약은 페니실린으로, 컴퓨터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분리하였으며 로봇은 인공지능으로 바꾸었고요. 화장실과 도자기, 온도계, 취사조리기는 추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2016/12/10

스파이 vs 스파이 : 블랙(& 화이트) 작전 - 안토니오 프로히아스 / 최연석 : 별점 1.5점

스파이 vs 스파이 : 블랙(& 화이트) 작전 - 4점
안토니오 프로히아스 지음, 최연석 옮김/시공사(만화)

흰색과 검은색, 똑같이 생기고 색깔만 다른 멸치처럼 생긴 스파이 두 명이 복잡한 장치와 계획을 가지고(주로 부비 트랩이죠) 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인 "스파이 대 스파이"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수십 년 전 모 잡지(아마도 "학생과 컴퓨터"?)에서 처음 접했었지요. 슈퍼 히어로나 유명 캐릭터물만 있는 줄 알았던 미국 만화에서 처음 접했던 파괴적인 슬랩스틱 개그물이라는 문화 충격과 함께 정교한 그림, 쉽고 재미난 이야기로 즐겁게 감상했었습니다.

허나 이후 게임까지 등장한 인기에 비하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아 그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정식 소개된다는 것을 알고 출간과 동시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천득의 "인연" 같은 느낌입니다. 예전의 좋았던 추억은 추억대로 남겨 놓는게 좋았습니다. 괜히 구입해 읽었네요.
일단 책 소개를 보면 24건을 가려 뽑았다는데, 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느꼈던 정교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들이 많은 탓입니다. 특히나 "스파이 대 스파이"의 핵심은 일종의 '골드버그 장치'스러운 장치들을 활용한 개그인데, 그런 이야기의 비중이 너무 낮습니다. "유도탄 장난"이나 "잠수함 대결", "출구에서 출구로" 등 전체에서 반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아요.
또 생각외로 잔인한 발상들도 눈에 거슬립니다. 원숭이와 뇌를 바꾸어 골탕먹인다는 이야기, 피라냐를 먹인다는 식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재미있지도 않고 기분만 불쾌해질 뿐이었어요.

게다가 어렸을 때에 보았던 버전은 잡지 판형으로 한 페이지에 한 에피소드가 들어가는 식이라 화면이 축소된 덕에 작은 컷 안에 정교함이 잘 살아 있어서 좋았는데, 복간본은 한 페이지가 거의 1~2컷입니다! 원래 미국에서도 이렇게 발표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페이지를 몇 컷으로 소화할 정도로 컷의 밀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컷 분할에 따른 흐름과 호흡도 잘 느껴지지 않았고요. 특히 작품의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으로 보다 보니 스파이들의 대결이 잘 살아나지 않습니다. 이 책만큼은 판형을 키워서 1~2페이지에 한 편 정도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출간되었어야 합니다. 페이지는 얇아지더라도 훨씬 가치가 높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잊혀진 클래식의 재발굴 복간은 분명 환영할 일입니다. 지금 읽기에 낡아보인다는건 충분히 감안할 수 있고요. 그러나 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재미도 없고 책의 완성도도 낮아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혹 저와 같이 옛 추억 때문에 구입을 고려하신다면, 부디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2016/12/05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점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4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arte(아르테)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사진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로 홈런을 날린 작가 미카미 엔의 또다른 일상계 연작 단편집입니다. 유명 휴양지 에노시마에 위치한, 돌아가신 할머니의 "니시우라 사진관"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온 손녀 마유가 이런저런 일상 속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가는 내용입니다.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제목에서처럼 '사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이야기에 녹여내었다는 점입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가 책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는 것 처럼요. 별다르지는 않지만 호기심을 자아내는 수수께끼들이 등장한다는 일상계 느낌의 전개와 소소하면서도 훈훈한 분위기도 "비블리아 고서당"스럽고요.

그러나 설정과 분위기만 비슷할 뿐 "비블리아 고서당" 수준에는 여러모로 미치지는 못합니다. 우선 추리적으로 내세울게 없는 탓입니다. 2장과 3장은 범인(?)이 너무 뻔하며, 4장은 설정이 극히 작위적이라 전혀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입부인 1장이 그나마 괜찮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 이하입니다.

탐정역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가쓰라기 마유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시오리코씨의 안 좋은 부분인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을 극대화한 것에 더해, 대학 시절의 민폐 행각을 부각시킨 탓에 영 호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사진에 있어서도 대학 시절 전공했던 정도라 딱히 대단한 전문가라고 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추리 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는 적합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루이가 아직 사진관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마유가 깨닫고, 이후 루이와 다시 만나는 마무리는 후속작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만 다음 권을 읽을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마지막으로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1장

가쓰라기 마유는 에노시마에 위치한 니시우라 사진관을 찾았다. 폐암으로 사망한, 100년 동안 영업했던 사진관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외할머니 니시우라 후지코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정리를 시작한 마유는 '미수령 사진' 이라고 적힌 양철 상자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마도리 마사카즈 님'이라고 적힌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100여년전 사진과 70여년 전, 20여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에노시마를 무대로 거의 25년 단위로 찍은 한 남자의 사진 4장과 필름 3개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인물은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는데 합성은 아니었다.

마침 사진을 맡긴 마도리 마사카즈가 방문했고, 그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소중한 사진에 얽힌 수수께끼를 밝혀달라고 마유에게 부탁하는데...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거의 25년 단위로 찍은 한 남자의 사진 4장'에 얽힌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작품. 수수께끼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100여년전 사진과 70여년 전, 20여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에노시마를 무대로 한 사진 속 인물이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는데 합성은 아니다! 라는 것으로 괴담 등에서 많이 변주되었었죠.

그러나 이 작품은 괴담이 아닌지라 나름 합리적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첫번째 사진은 에어브러시를 이용한 가필, 두번째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의 할아버지, 세번째는 아버지가 약간 분장한 것이고 네번째 사진 속 모델 마도리 마사카즈는 할아버지와 꼭 닮은 사람이었다'라는 겁니다. 특히 '에어브러시'라는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합성보다는 한 발자욱 더 나아간, 사진이라는 설정을 활용한 아이디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로 모든 것이 바뀐 현재의 상황에서는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 높기도 하고요.

물론 에어브러시로 그렇게까지 똑같게 사람을 그릴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이야기의 시작으로 아주 괜찮았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장

마유가 4년전 사진을 그만둔 계기는 소꼽친구로 인기 아이돌이었던 "루이"의 개인적 비밀(특정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을 드러내는 사진을 찍었다가, 그 사진이 유출되어 루이의 인생을 망쳐버린 과거 탓이었다.

그런데 마도리 마사카즈와 사진관을 정리하던 마유는 당시 사건에 연류된 선배 고사카가 비교적 최근에 찍은 루이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고사카를 다시 만난 마유는 고사카와의 대화를 통해 마유는 사진 유출의 진상과 이후 루이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데...

루이의 사진을 누가 유출시켰는지? 에 대한 것이 핵심 수수께끼인데 사실 별 내용은 없습니다. 아날로그로 사진을 찍은 것을 전문 카메라맨이 된 아키호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즉 사진을 잘 모르는 다른 서클 사람들이 한통속이 되어 유출했다는 진상을 몇 년 간이나 알지 못하고 끙끙대었다는 것 부터가 설득력이 낮은 탓입니다. 합숙을 하느라 통신이 불가했다는건 알리바이가 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당시 마유가 서클 사람들에게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해서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 이입도 하기 어려웠어요. 아무리 비공개 SNS라도 사진을 올린건 마유의 실수라는게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또 루이에 대한 설정도 딱히 잘 짜여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소꼽친구, 엄청난 미남, 성공한 아이돌이라는 설정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루이가 추락하게 된, 사이비 종교의 신자로 교주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해당 종교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더라도 루이는 분명 피해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더라도, 세간의 비난을 받고 은퇴할만한 일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작중에서 본인이 계속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마침 사진은 좋은 계기가 된 것에 불과해 보이는데 만약 그렇다면 마유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필요가 없지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뭔가 있어보이는 마유의 과거사를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할 뿐더러, 과거사가 만화와 같은 설정으로 가득차 있어 전혀 와 닿지 않은 작품입니다.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네요.

3장

기념품 가게 주인 겐지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그는 지금의 아내 요코에게 청혼할 때 필요한 자금이 없어서 삼촌 오사무와 함께 니시우라 사진관에서 은덩이를 훔쳤었다. 잠깐 빌려간다는 의미로 차용증을 써서 남겼었는데, 겐지는 마유에게 들키기 전 차용증을 빼돌릴 결심을 한다...

은은 과거 니시우라 사진관에서 일했던 오사무 삼촌이 현상 과정에서 나오는 폐약에서 추출한 것, 캐비닛이 일종의 미니 암실?이어서 그것이 열렸다면 증거가 남는다는 설정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사진관이라는 무대에 잘 맞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후 이야기 전개는 영 별로입니다. 캐비닛과 함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겐지인데 뭐 이렇게 복잡한 설명이 필요했을지 잘 모르겠어요. 상세한 설명 없이 그냥 경찰을 부르는 게 빠른 방법이잖아요? 겐지가 은덩이를 훔친 것으로도 모자라 차용증까지 훔치려 한 것은 엄연한 범죄라 정상참작의 여지도 전혀 없고요.

그리고 캐비닛 속의 필름이 감광되었다 하더라도 열은 것이 겐지라는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단지 캐비닛이 열렸다는 증거 정도밖에는 안되죠. 시간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괜찮았던 소재를 억지스러운 전개로 망친 느낌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4장

마유는 정리 중 발견한 마도리 부자의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마도리 가문의 별장을 찾았다. 그 곳에서 마유는 아키타카의 아버지 료헤이가 아들을 대하는 매몰찬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견한 여러 가지 이상한 점 — 겐지가 전해준 아키타카는 이전의 모습이 아니다, 별장과 본가를 아키타카의 사진이 온통 장식하고 있다, 부자의 사진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있다 등 — 을 토대로 아키타카에 대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깨닫는데...

역시나 핵심 트릭은 사진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료헤이와 아키타카가 찍은 사진은 아주 오래전 료헤이가 찍은 사진에 현재의 아키타카의 모습을 합성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합성'은 사진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뻔한 조작이라 트릭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어려우며, 이렇게 복잡한 공작을 할 필요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구태여 조작까지 해서 사진을 전시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현재의 아키타카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는 것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버지가 얼굴을 바꾼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단점입니다. 너무나 미워했던 전처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탓이 컸다던가... 하는 식의 배경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물론 그랬다면 "블랙잭"의 한 에피소드, 블랙잭이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의 후처 얼굴을 어머니 얼굴로 바꾸어 놓는 에피소드와 똑같은 내용이기는 했겠지만요.

아키타카가 아버지에게 강하게, 논리적으로 반항하는 결말 정도만 깔끔할 뿐, 여러모로 부족함과 억지가 많이 느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