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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7

산괴담 - 이토 준지 외 4인 + 아즈마 준페이 : 별점 2점

산괴담 - 4점
이토 준지 외 4인 그림, 아즈미 준페이 원작/미우(대원씨아이)

아즈마 준페이의 원작을 이토 준지, 이토 미미카, 이노카와 아케미, 이마이 다이스케, 요시토미 아키히토의 5인이 만화화한 단편집입니다. 등산 중 일어났던 여러가지 괴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사토끼가 블로그에 연재하는 만화 소갯글을 보다가 꽂혀서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무섭지도 않고, 재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 '괴담'일 뿐, 기승전결이 거의 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며, 비슷한 설정이 많다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원작자 솜씨가 부족한 탓이겠지요. 

마사토끼가 무섭다고 했던 첫 번째, 네 번째 이야기가 그나마 볼 만 했지만 과연 만원이라는 가치에 어울리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만, 한없이 1.5점에 가깝습니다. 마사토끼의 소개가 훨~씬 재미있었어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이야기. 이토 준지. 

H다케 일출 산장에 관리인과 3명의 등산객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며칠 전 일어났던 기묘한 조난 사건에 대해서였다. 노련한 등산객이었던 50대 여성이 등산로에서 제법 먼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했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젊은 등산객과 사진 작가가 각각 자기들이 등산 중 만났던 괴이한 남자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데... 

호러이토 준지 작품이라 기대했었는데,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등산로에서 얼굴에 증오심을 한껏 드러낸 괴이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가 한 명이면 왔던 길을 되짚어 도망갈 수 있었지만 두 명이면 어쩔 수 없이 등산로를 이탈하여 도망가다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별로 무섭지 않던 탓입니다. 전개도 뻔했고요. 이토 준지다운, 괴이한 남자에 대한 묘사만큼은 볼만 했습니다만 기승전결이 있는, 완성된 이야기라고 보기 어려우며, 전체적인 수준도 그닥이에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뻔하더라도 일출 산장에 모였던 사람 중 한 명이 그 남자였다! 아니면 이야기를 끝내자 산장 문을 열고 그 남자가 들어왔다! 같이 마무리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문으로 들어오면 도망갈데가 없으니...

두 번째 이야기. 이마이 다이스케. 

T대학 산악부는 1년 전, 신입인 코이즈미를 구하려다 실종된 리더 추모 등반에 나섰다. 그날 밤, 산장에 급작스러운 눈보라가 몰아쳤고, 누군가 코이즈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1년 전 죽은 리더가 코이즈미를 계속 찾다가, 코이즈미의 괜찮다는 말을 듣고 안심한채 성불한다는 이야기로 괴담이 아닙니다. 뻔하디 뻔한 감동 신파극에 가깝달까요. "오겐키데스카~"와 별다를게 없어요. 전혀 무섭지 않은건 당연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이토 미미카. 

3-1 : 버섯 채집을 나선 아즈미와 타키가와. 버섯 채집은 실종자가 많이 발생하는 위험한 산행이었다. 송이버섯에 정신을 빼앗긴 아즈미는 길을 잃고 말았다. 헤메던 중 폐허가 된 리프트를 발견하는데... 

3-2 : 아즈미는 등산 중 급작스러운 악천후로 휘테로 향하던 중, 지친 등산객과 만났다. 그리고 휘테에서, 그 등산객이 이미 죽어있는걸 알게 되는데...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 편 모두 뻔하고 별로 무섭지 않다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앞서의 이야기가 조금 더 낫기는 합니다. 아쉽지만 리프트가 사람을 홀려 죽게 만든 뒤, 망자를 태우고 움직인다는 설정을 효과적으로 풀어냈더라면 괴담으로서는 꽤 쓸만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너무 짧고, 결말도 시시해서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네 번째 이야기. 요시토미 아키히토. 

10년 전, 곤들메기를 잡기 위해 산행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 누군가 먼저 텐트를 쳐 놓은 것을 발견했지만, 텐트 주인은 자러 들어갈 때 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잠자리에 누으니 옆 텐트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모두 자기가 사고로 죽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사토끼가 무섭다고 한 또 다른 이야기로 "이트맨", 등의 작가 요시토미 아키히토의 작품입니다. 그다지 무섭지 않다는 점에서는 다른 작품들과 똑같지만, 그래도 기승전결이 있는 완결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조금 낫습니다. 특히 '나'가 텐트를 친 곳 바로 옆 텐트에 귀신들이 모였던 이유가, 텐트를 친 곳이 물살이 잔잔해져 조난자들이 많이 발견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괜찮았어요. 무언가 타당한 이유를 대고 있다는 점에서요. 제 별점은 2.5점으로,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였습니다. 확실히 단편으로 단련된 작가는 다르네요.

다섯번째 이야기. 이노카와 아케미 

5-1 : 아즈미는 오래 전, 겨울에 카미코우치에 들어가면 K다이라 캠핑장에 있는 화장실은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선배로부터 들었다. 화장실 거울을 봤을 때 목이 없으면, 사고로 목이 날아간 시체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배도 K다이라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화장실 거울을 본 것일까?

5-2 : 신주쿠발 급행 '알프스'를 타고 북알프스로 향할 때, 파란 비옷을 입은 청년을 만났었다. Y다케에서 청년이 알려준 흑백합 군락지를 찾았는데, 그 곳에서 청년의 시체를 발견했다. 

세 번째 이야기처럼 두 편의 짤막한 괴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조금 더 낫다는 것도 똑같네요. 곧 죽을 사람은 목이 잘린 채로 보이는 거울이 있다는 설정이 꽤 흥미로왔거든요. 물론 단순한 괴담이고, 결말도 시시한 편이라는 단점마저 같다는건 문제지만요. 뒤이은 이야기도 이미 죽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종의 드라마라는 비슷한 설정을 반복할 뿐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6/01/18

엠브리오 기담 - 야마시로 아사코 / 김선영 : 별점 3점

엠브리오 기담 - 6점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서평이 기억에 남아 주말 동안 읽기 위해 집어든 책으로 에도, 아니 메이지로 보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환상 문학 단편집입니다. 온천에 대한 여행기를 쓰는 길치 이즈미 로안과 그의 짐꾼이자 동료인 미미히코가 등장하는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대물 설정, 거기에 전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괴담이라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이나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 작품들보다는 환상 문학에 훨씬 가깝고,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들보다는 읽기 쉽고 명확한 내용이라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수록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나 리처드 매드슨 등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엠브리오 기담"은 일상계 크리처물, "라피스 라줄리 환상"은 윤회 판타지, "수증기 사변"과 "끝맺음"은 일상계 괴담, "얼굴 없는 산마루"는 일상계 드라마, "있을 수 없는 다리"는 전형적 괴담, "지옥"은 끔찍한 고어 호러,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는 괴담 분위기의 자살극으로 넓은 장르를 포용하기 때문입니다("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그냥 사족입니다)

이렇게 많은 장르물을 포괄하면서도 대체로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도 대단합니다. 코미디에서 호러까지 오가는 선배 작가들만큼의 넓은 변화 폭은 아니긴 하지만요. 이 정도면 이름 모를 작가 치고는 제법이라 생각했는데, 후기를 보니 야마시로 아사코는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이더군요. 솔직히 취향이 아니라 많은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팔색조 매력은 여전한 듯 하여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초 서평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오츠 이치의 이색작이라는 소개 때문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놈의 기억력...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제법 있는 등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이 정도면 null괴담물로 기본은 해 주었으며, 오츠 이치의 단점이라 여겼던 만화적인 상상력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좋은 작품입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사족인 마지막 이야기를 제외한 별점은 3점입니다. 괴담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앞서 말씀드린 대로 수록 작품들의 장르가 천차만별이지만 절반 이상이 '괴담'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추리 / 호러' 장르로 분류합니다.

덧 2 : 저도 온천을 좋아하는데 딸아이가 좀 더 크면 온천이나 다녀봐야겠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끔찍한 경험은 사절입니다만 끔찍한 경험을 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가 그래도 온천을 다니는 것을 봐서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게 분명하겠죠.

단편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엠브리오 기담"

미미히코는 갓난아기 전 인간의 모습인 '엠브리오'를 우연히 구했다. 금세 죽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엠브리오는 살아남았고, 도박빚에 시달리던 미미히코는 엠브리오를 이용하여 돈 벌 계획을 세우는데...

인간의 태아(이전 단계)인 '엠브리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엠브리오에 대한 설정 - 하얀 애벌레 같아 허여멀건 몸뚱이에 볼록 튀어나온 배, 발달이 덜 되어 단순한 돌기에 지나지 않는 손발, 몸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머리에 점을 콕 찍은 듯한 눈, 도마뱀처럼 꼬리 같은 것까지 있고 갓난아기 피부와 내장 표면의 딱 중간 정도 피부로 쌀뜨물을 먹고 미지근한 물을 좋아한다 등등 - 이 실제 존재하는 생물처럼 상세하다는 것이 재미 요소입니다.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기묘한 상상력'이 크리처에 발휘된 환상 문학이지요.

다만 결말은 아쉽습니다.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엠브리오를 넘겨 무사히 출산하게 하고, 수년이 지나 미미히코와 그 아이가 재회한다는건데, 공식대로라서 식상했던 탓입니다. 그래도 더 이상의 좋은 결말을 찾기는 어려웠으리라 짐작되며,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수준이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라피스 라줄리 환상"

도매 서점에서 일하는 린은 행수 어르신의 지시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의 여행에 동행했다.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일행은 마침 발견한 마을에서 잠깐 머무는데, 다음날 촌장의 증손자가 고열로 쓰러졌다. 마침 린이 가지고 있던 약으로 아이는 생명을 구했고, 답례로 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피스 라줄리(유리)'를 선물하는데...

린이 '라피스 라줄리'를 받은 이후, 인생을 되풀이한다는 윤회 판타지입니다. 윤회를 하면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내용도 잔잔하니 읽을 만한데, 작품의 핵심은 반전입니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촌장 노파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태어날 때 죽는 어머니를 위해 뱃속에서 탯줄을 스스로 목에 감는 방법으로 자살을 한다는 결말이거든요. 행복한 결혼 생활도 해 보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공부도 해 보았지만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것인데 참 절절했습니다.
다른 수록 작품과는 다르게 미미히코 시점이 아니라 린 시점 묘사라는 점도 특이했고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라피스 라줄리의 힘이 어디서 온 것인지 등 세세한 설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린은 이전 기억을 계속 쌓아나가기 때문에 환생할 때마다 강해질 수밖에 없는데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건 설득력이 약해 보였거든요. 미래도 읽을 수 있고, 그에 어울리는 공부도 한다면 세계를 바꿀 만한 재산이나 세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증기 사변"

로안과 미미히코는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뒤 산기슭 온천 마을을 찾아냈다. 둘은 마을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여관에 묵으며, 마을 온천을 밤에 찾아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밤에 온천에 몸을 담근 미미히코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로 죽어버린 유노카를 온천에서 만는데...

저승과 연결되어 있는 온천을 그리고 있습니다. 유령이 등장하는 괴담으로 죽은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 어린 시절의 추억과 유노카의 죽음에 대한 진상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잔잔한 일상계입니다. 마지막에 미미히코가 유노카의 모습을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문제는 너무 잔잔해서 극적인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유노카의 죽음이 단순 사고보다는 드라마틱했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사실은 미미히코의 잘못으로 죽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끝맺음"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묵어 가게 된 바닷가 마을. 그곳은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기묘한 곳으로 식재료마저 그랬던 탓에 미미히코는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해 아사 직전에 놓이는데...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는 이토 준지스러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만화나 영화 같은 시각 매체로 발표되었더라면 굉장히 그로테스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상상의 여지가 더욱 많은 소설이 섬찟함을 느끼게 하는 데 더 좋긴 하겠지만요.

게다가 굶어 죽기 직전의 미미히코가 자신을 끔찍하게 따르던 닭 아즈키를 잡아먹고 살아난다는 결말도 마음에 듭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팔아넘기고 살아남는 왕따물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마을의 정체가 무엇인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조금 감점합니다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있을 수 없는 다리"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는 근사한 구름다리를 발견했다. 허나 마을에서는 구름다리는 이미 사십 년 전에 무너졌다고 했다. 둘의 말을 들은 숙소의 노파는 밤중에 넌지시 구름다리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구름다리가 무너졌을 때 아들을 잃었는데, 지나는 여행객들로부터 다리에서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미히코는 다리에서 노파의 아들을 발견하고 둘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감동적인 상봉을 기대했지만 실상 소년은 그야말로 '귀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존재였다는 반전이 돋보입니다. 이전 수록작인 "수증기 사변"과 비슷한 작품이라 생각하고 읽다가 깜짝 놀랐네요. 하긴 이게 귀신의 본모습이겠죠.

반전에 더해 묘사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화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귀신이 본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의 묘사도 좋지만, 특히 귀신이 노파를 데려가려고 하자 그녀가 미미히코를 붙잡고, 미미히코는 욕설을 하면서 노파를 어떻게든 떼어 내려 하는 처절한 묘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재미도 있고 반전도 있는, 괴담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얼굴 없는 산마루"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우연히 방문한 마을 사람들은 미미히코를 보고 놀랐다. 이유는 그가 사고로 죽은 마을 사람 모키치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미미히코가 자신과 똑같이 생기고 비슷한 인생을 살아간 모키치의 가족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는 일상계 소품. 잔잔하고 여운을 주는 내용은 좋았습니다.

허나 모키치의 아내 야에의 말을 듣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뻔한 결말, 그리고 미미히코가 모키치와 모든 면에서 똑같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건 단점입니다. 그냥 닮았다고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흉터까지 같다는 것은 무리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조금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입니다.

"지옥"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는 여행 중 강도를 만났다. 사로잡힌 미미히코는 신혼부부 후지와 요이치와 함께 축축한 구덩이 속에 갇혔다. 셋은 강도 가족이 던져주는 육포 조각을 먹으며 삶을 이어갔는데, 강도들이 한 명을 꺼내 준다고 제안해서 여성 후지를 올려 보냈다...

구더기 그득한 축축한 구덩이 감옥 묘사도 사람 잡는데, '후지가 빠져나간 뒤 육포가 아니라 신선한 고기가 던져진다'에서 시작되는 공포스러운 묘사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핵심은 강도 가족이 사람을 죽여 먹고, 가죽으로 생활용품 등을 만든다는 설정으로 스코틀랜드의 소니 빈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게 분명해 보입니다. 허나 단순히 영감을 얻은 수준은 아닙니다. 아이가 사람 얼굴 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노는 등의 디테일이 잘 살아 있거든요.

이러한 묘사에 더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미히코가 머리카락을 엮은 줄을 이용하여 요이치를 끌어 올렸던 밧줄을 회수하고, 구덩이에서 탈출하여 역으로 강도 가족을 구덩이에 쳐 넣는 데 성공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찾아가 보니 강도 가족이 구덩이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기에 뚜껑만 덮고 도망쳐 온다는 결말까지 정말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해 줍니다. 이런 류의 돌직구 고어 호러는 오츠 이치의 특기이기도 하죠. "ZOO - seven rooms"처럼요.

물론 해당 단편과 단점은 동일합니다. 왜 강도 가족이 포로를 잡자마자 죽이지 않고 귀한 육포를 먹여 가며 살려두는지가 설명되지 않는 점 등 세부 설정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제법 있는 탓입니다.

그래도 섬찟함과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수록작 중 최고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전 작품이 쉬어가는 느낌이라 공포심이 더욱 배가된 듯한데, 목차도 작가의 의도인지 살짝 궁금해지는군요.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

전편의 경험으로 미미히코가 여행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즈미 로안은 다른 고용인과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로안은 미미히코에게 동행인이 죽었다며,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는데...

떨어진 빗을 줍는 것은 고통과 죽음을 줍는 것이기에 꼭 빗을 주워야 할 때는 발로 한 번 밟은 뒤 주워야 한다는 설정이 바탕입니다. 빗을 그냥 주웠다는 고용인이 머리카락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입에 들어 있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니 엄청난 양이 나왔다는 부분까지는 평범한 괴담입니다.

그러나 노파가 빗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거짓말로 그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머리카락은 죽은 어머니의 것이라고 밝혀지는 결말이 아주 독특했습니다. 괴담을 너무 좋아한 청년이 자작극을 벌이면서까지 괴담이 되려 했다는 내용이니까요. 누군가의 이야기가 괴담이 된다는 점에서 "백귀야행"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단순 괴담이 아니라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결혼한 뒤 온갖 괴롭힘을 당하던 여자가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데...

이즈미 로안이 길치가 아니라 사실은 차원을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텐구의 자식이라는 설정을 알려주기 위한 이야기.

단순한 설정 보강용이라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자를 괴롭히던 시댁에 뭔가 천벌이 내렸다는 이야기라도 있었더라면 완결성이 있었을 텐데요. 별점은 빵점입니다.

2009/06/03

몸 - 김종일 : 별점 2점

 - 4점
김종일 지음/황금가지

인터넷에서 평이 상당히 괜찮았던 한국작가의 호러단편집입니다. 중고서점에서 저렴한 가격덕분에 충동구매로 구입하여 읽게 되었네요. 한국 호러소설은 "분신사바" 이후 처음이군요.

"몸"에 속한 소재들을 주제로 쓴 단편집이라는 설정은 얼마전 읽었던 "인체 모형의 방" 과도 유사한데... 읽고난 감상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입니다. 모든 단편이 기발한 상황전개나 반전이 있는 작품은 하나도 없이 단지 "이형異形" 이나 "컴플렉스"와 같은 불쾌한 부분에 대한 집요한 묘사로 공포심을 유발시키려고 할 뿐으로 - 예를 들자면, "눈" 은 깡패들에게 한쪽 눈을 잃은 주인공이 의안을 통해 깡패들에게 복수하고 스스로 "눈알" 이 된다는 전개. "입"은 다이어트 때문에 거식증에 걸린 여주인공 몸에 입이 돋아난다는 이야기. "귀"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사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 "몸"은 키가 작은 것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은 남편이 PC에 빠져 살더니 결국 PC와 한몸이 된다는 내용... 식으로 - 전체적으로 비스무레하다는 인상만 줄 뿐 큰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스플래터, 고어 장면에서의 뻔한 동어반복적 묘사 역시 비스무레하다는 인상만 더욱 강화시킬 뿐이고요. (덧붙이자면 왜 이 책의 등장인물들 욕은 항상 "십할" 일까요???? 이거 하나 때문에 등장인물들 성격마저 똑같아 보입니다!!!)

어차피 "몸"이라는 소재에서만 통일성을 지니는 연작 단편집이라면, 앞서말한 "인체 모형의 밤" 이나 "Zoo" 처럼 꼭 괴물이 등장하거나 신비한 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일상계" 호러물을 포함시켜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손톱"을 소재로 해서 손톱을 깎다가 손톱깎기에 손가락이 잘리는 호러물라던가....^^ (농담입니다) 물론 이 책에도 일상계 호러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손" 이라는 작품이 한편 실려있기는 합니다만 아쉽게도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유사한 묘사 때문에 강약 조절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작가가 스스로의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나칠 정도로 "이토 준지" 스러운 스타일이라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도 큰 약점으로 보이네요. 이토 준지는 싫어해서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특히 "머리카락"이라는 단편은 아무리 봐도 이토 준지 단편을 그대로 소설로 옮겨놓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외의 "이형異形" 묘사들도 대체로 유사해 보이더군요. 하지만 이토 준지의 경악스러운 기묘한 상상력은 따라가지 못한채 단편적인 묘사만 유사하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겠죠...

그래도 컴플렉스와 일종의 정신착란? 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는 "얼굴", 등산 중 조난을 당한 뒤 과거의 망령과 맞부닥친다는 "링반데룽" 정도는 괜찮았습니다. 두 작품 모두 지나칠 정도로 전개와 결말이 뻔하긴 하지만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라는것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 두 작품처럼 작품마다 확실히 다른 이미지, 다른 전개를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아직 이 나라에서 호러 소설은 갈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하는 독서였습니다. 정치가 호러라서 사람들이 정작 호러라는 쟝르에서는 별로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걸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07/03/25

살육에 이르는 병 - 아비코 다케마루 / 권일영 : 별점 3점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시공사

가모우 미노루는 우연히 한 여대생을 교살하고 그녀를 범하는 것의 쾌감을 깨닫게 된 이후 폭주해 나가는데 그런 그의 마수에 은퇴한 경부 히구치를 사모하던 간호사 도시코가 걸려든다. 도시코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 히구치와 도시코의 동생 가오루는 힘을 합쳐 범인을 잡으려 하는데...

-주의 :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일본 신본격 대표 작가중 하나라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대표작. 지인이신 decca님이 고맙게도 도움을 주셔서 받게 된 책입니다.

여러모로 전에 읽었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하고 유사합니다.
일단 두 작품 모두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벚꽃지는..."은 악덕 판매 조직을 파헤치고 이 작품은 "아버지 부재"의 일본 사회를 비판하고 있죠. 또한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작중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입시킴으로서 소재와 이야기를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맛이 뛰어나다는 점도 동일합니다.
아울러 주요 캐릭터의 시점으로 단락이 진행되고, 각 단락을 짜맞추어 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진행 방식도 유사합니다. "벚꽃지는..."이 2명이라면 이 작품은 살인범 가모우와 어머니 마사코, 은퇴한 형사 히구치 3인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작품이 닮아보이는 이유는 반전의 존재입니다. 두 작품 모두 그야말로 "반전에 죽고 반전에 사는" 작품이죠. 반전의 성격도 유사해서 "벚꽃지는.."은 주인공 나루세와 사쿠라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이라면 이 작품은 범인인 가모우 미노루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반전인데 정말로 뜻밖이며 큰 놀라움을 안겨다 줍니다. 사실 살인범의 정체에 대한 반전은 고전 "싸이코"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한페이지로 모든 것이 밝혀지는 반전은 다른 비교대상과의 논쟁이 무의미할만큼 워낙 뛰어난 탓에 일본 아마존 서평대로 저도 앞에서부터 다시한번 읽어가며 작가의 장치를 다시금 점검하는 절차를 거쳤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고 복선과 설정이 완벽한 것이 정말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두 작품 모두 반전이 묵직하게 작품의 기본적 사회파적인 설정을 웅변하고 있고요.

하지만 단점 역시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반전을 의식한 탓에, 즉 주인공이자 살인범인 가모우 미노루의 정체를 감춰놓았다가 드러내는 것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장치이기에 이것을 설명해 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작위성이 드러나며, 또한 전적으로 소설적 장치 (해설에 따르면 "텍스트 트릭") 에 의존하고 있어서 본격 추리적인 요소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은 추리 매니아로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점은 큰 단점은 아닙니다. 정작 문제는 잔인한 묘사에요. 네크로필리아 가모우의 범행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이 "19세 미만 구독 불가" 판정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잔인합니다. 못지않게 잔인한 책도 많이 있다지만 이 책만이 이쪽 쟝르에서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공식적 19금 금서지요. 솔직히 저는 읽으면서 굉장히 역겹기까지 했고, 이러한 파괴적인 범행에 대한 반복된 묘사 때문에 마지막 반전의 충격이 강하게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감각이 좀 둔해졌다고나 할까요?
다른 예를 들자면 제가 이른바 천재라는 클라이브 바커의 책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의 상상속의 지옥을 간접체험하기가 싫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며 이토 준지의 책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책은 그들 못지않은 만만찮은 아우라를 뽐내고 있어서 다시 잡기가 많이 꺼려집니다.
번역자조차 이 책의 목적이 "끔찍한 장면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다시금 강조하고 있지만 저는 유감스럽게도 끔찍한 장면묘사가 더욱 기억에 강하게 남네요. 최소한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했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검은집"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해되지만 말이죠.

이러한 잔인성 때문에 재미는 있지만 추천하기도 난감하고, 외려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 수록 추리문학이라는 쟝르에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 신본격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책을 내고 싶었다면 보다 착하고 안전한 작품을 선정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이 책을 선정하여 발간한 시공사와 decca님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별점은 3점 이상 주기 어렵네요.

PS : 번역과 주석은 완벽한 수준이라 책의 재미를 더합니다.

2004/02/11

백귀야행 - 교코쿠 나츠히코 / 홍영의 : 별점 2점

백귀야행 - 4점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홍영의 옮김/초록배매직스


이마 이치코의 동명 만화가 아닌 일본에서 날리는 호러+추리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의 단편집. 제목대로 귀신을 테마로 한 소설집입니다. 2차대전 직후 일본을 배경으로 일상 속 광기와 어우러진 공포를 모두 10편의 단편을 통해 그려내고 있죠.
대체로 사회적, 개인적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일상 생활속에서 과거의 트라우마와 관계된 낯선 존재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되고, 결국 서서히 붕괴해 가는 과정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병약한 자기와 동생을 비교하다가 가정과 함께 무너져 가는 여인을 그린 “문고요비”, 전쟁 후 성적으로 불능이 된 주인공이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아내를 훔쳐보다 들켜 아내가 자살한 뒤 사방에서 “눈”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는 “눈,눈,눈”, 가족을 위해 몸을 팔다가 들켜 죽은 누나의 시체와 다락방에서 놀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찰관이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창녀의 머리카락”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머지 단편들도 오니라던가 갓파, 깔깔 웃는 여자 같은 여러 일본 귀신들을 일상생활과 결부시켜 표현하는 방식과 문체가 독특해서 여운이 깊게 남네요.

그러나 아무래도 국내 정서에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설정이 그닥 와 닿지 않을 뿐더러 묘사가 너무 어렵고 낯설어서 읽기가 좀 힘들더군요. 묘사는 번역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이토 준지”같은 황당한 상상력의 일본 호러를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기대치에도 미치지는 못했으며, "호러", "공포" 소설임에도 별로 무섭지 않다는 것도 큰 단점일테고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이래저래 굉장히 독특하기도 하고, 뭔가 생각하게 하는 단편집임에는 분명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기대되네요.